2011년 4월 29일 금요일

개리 윌커슨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사도행전 13:36).

수요일 오후, 나의 아버지 데이빗 윌커슨은 자동차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아버지, 신실한 남편,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을 잃은 데 대해 애도합니다. 57년간 아내였던 나의 어머니 그웬도 동승했었으나 완전히 회복될 것이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60여 년간의 사역은 가까웠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늘 우리는 개인적인 상실로 인해 슬퍼하지만 동시에 아버지가 헌신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예수님을 열정적으로 사랑하며 보람되고 충만한 삶을 사셨기에 기뻐합니다.

그는 무제한적인 믿음의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갱 멤버였던 사람들의 인생도 변화시키실 수 있다고 믿었고 또한 가장 절망적인 마약 중독자들도 변화시키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뉴욕시 타임즈 스퀘어 한 복판에 역동적인 교회를 세울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자신이 아내와 자녀들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했습니다.

아버지는 팡파르나 환호, 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세계 지도자들과의 만남에 초대하는 제안은 거절하였지만 가난한 고아와 절망에 빠진 과부들에게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었습니다.

마치 옛날 다윗처럼 아버지도 자신의 세대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완수했습니다. 불굴의 열정과 그칠 줄 모르는 기품으로 설교했습니다. 놀라운 직관과 명확성, 그리고 신념을 가지고 집필했습니다. 자신의 경주를 달렸고 임무를 완수했을 때 본향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은퇴생활을 즐겼으리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분은 안락의자에 앉아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는 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예수님이 이것을 아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아버지를 본향으로 부르셨다고 믿습니다.

지상에서 아버지의 마지막 임무는 가난한 자 중에서도 극빈자를 위해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굶주린 아이들과 과부들과 고아들을 구제하고 지원하는 일입니다. Teen Challenge, World Challenge, Times Square Church를 설립한 후에 아버지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들의 굶주린 아이들을 먹이는 일을 추구했습니다. 현재 Please Pass The Bread는 8개국에서 56개의 사역을 통해 수 천 명의 어린이들의 목숨을 구하고 있습니다.

옛날 다윗 왕처럼, 하나님의 목적을 완수한 후에, 아버지도 돌아가셨습니다. 만일 아버지가 오늘 말씀으로 당신을 격려할 수 있었다면, 당신의 전부를 예수님께 드리고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 당신을 내어주라고 초청할 것입니다.

아버지가 시작한 일은 여전히 살아 남아있습니다. 그의 설교와 글, 그리고 세상에 도전하는 사역들의 설립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그의 사랑과 헌신, 열정 그리고 보다 더 위대한 일로 나아가라고 우리의 믿음을 촉구한 데 대하여 우리 모두는 그가 우리에게 끼친 영향을 증언할 수 있습니다.

2011년 4월 28일 목요일

Press Release

지난 4월 27일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께서 갑자기 서거하셨음을 깊은 애도의 마음으로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추가 소식이 입수되는 대로 이 웹사이트에 정보를 올릴 예정이니, 후에 다시 검색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2011년 4월 27일 수요일

모든 수단이 실패로 끝났을 때

모든 수단이 실패로 끝났을 때 믿는 것은 하나님을 몹시 기쁘시게 하고 가장 받으실 만 합니다. 예수님은 도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 하시니라”(요한복음 20:29).

기도에 대한 응답의 증거가 없을 때 믿는 자들, 모든 수단이 실패로 끝났을 때 소망을 넘어 신뢰하는 자들은 복됩니다.

어떤 사람이 소망이 전무한, 소망의 끝, 모든 수단의 마지막에 도달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있고 의사는 아무런 희망도 주지 않습니다. 죽음이 불가피한 것 같습니다. 소망이 사라졌습니다.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하지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때 사탄의 떼가 두려움, 분노, 위압적인 질문들로 당신의 마음을 공격하기 위해 옵니다.
“네 하나님이 지금 어디 있느냐? 너는 눈물이 말라버릴 때 까지 기도했다. 금식 했다. 너는 약속들 위에 섰다. 너는 신뢰했다.”

당신의 마음속에 불경한 생각들이 주입 될 것입니다. “기도는 실패했다. 믿음은 실패했다. 하나님을 떠나지는 말아라. 다만 더 이상 그를 신뢰하지 말라. 소용이 없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심이 당신 마음속에 주입 될 것입니다. 이것들은 오랫동안 사탄이 사용했던 장치들입니다. 세상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경건했던 남녀들도 이러한 악마적 공격을 당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있는 분들은 이 말씀을 들으십시오. 울음은 어둡고 무서운 밤들 사이에 지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둠 가운데서 머지않아 당신은 아버지의 속삭임을 듣게 될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지금 당장은 네게 이유를 말해 줄 수 없지만 언젠가 모두 이해하게 될 것이다. 모두가 내 계획의 일부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다. 네가 실패한 것이 아니다. 견고히 붙들어라. 네 고통의 시기에 나로 너를 품안에 안게 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오직 선과 사랑으로 행하시는 데 결코 실패하신 적이 없습니다. 모든 수단이 실패로 끝났을 때 그분의 사랑은 승리합니다. 당신의 믿음을 단단히 붙드십시오. 그분의 말씀 안에 견고히 서십시오. 이 세상에 다른 소망은 없습니다.

2011년 4월 26일 화요일

우리는 우리의 실족과 실패로 시험 받습니다

과거의 죄에 다시 빠지고 세상으로 되돌아가는크리스천들이 시험을 받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그렇지 않습니다. 그러한 신자들은 믿음의파선에 직면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경고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삼가라”(베드로후서 3:17). 베드로는 거룩함안에서 자라가고 주님을 따르기로 작정한신자들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당신들 중 어떤 이들은 주님과 관계에서 많은진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족했는지도모릅니다. 무엇 때문에 실족했느냐고 묻는다면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겠지요. “데이브 형제여,일순간 분노가 치밀었던 거예요. 내 가족이 나를화나게 만들었고 나는 그만 폭발하고 말았어요.이해할 수가 없군요. 내가 좀 더 다정해지고주님을 좀 더 닮아간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누군가 단추를 잘못 누르자 물거품이 되고말았어요.” 당신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요.“나는 인간일 뿐 이예요. 내가 얼마나 감당해야하는 건가요?”

누군가 당신을 도발했든지 또는 당신이 옳다고할지라도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당신을화나게 만들었다는 자체가 당신에게 구원이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성경은말씀합니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 냄과떠드는 것과 [싸움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앙심과] 함께 버리고”(에베소서 4:31).

하나님은 당신이 “내 안에는 나가야만 하는 영이들어있다,”라고 말할 때 까지 계속 시험하실것입니다. 당신이 “주님, 당신이 옳습니다.그것을 뽑아내 주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당신은 그리스도안에서의 성장이나 가정,직장에서 평안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이 이런 영역에서 또는 이 같은 문제로 다른영역에서 시험을 받는 중이라면 당신은 이런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나는 정말무가치하다고 느낀다. 나는 얼마나 많은 기반을잃어버린 것일까? 주님은 여전히 나를사랑하실까?”

성도여, 당신이 진정으로 회개했다면, 당신은어떠한 기반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사랑하는 손으로 당신을 두르시고 말씀하십니다.“네가 네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보도록 하기위해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을 허락했다. 하지만너는 진보하고 있는 중이다. 네가 나와 동행하기원한다고 말했기에 내가 너를 가르치는 중이다.나는 네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네가 그것을모두 제거해 버릴 때 까지 네가 도발을 받도록허용할 것이다.”

시험을 받는 중입니까? 그렇다면 기도하십시오.“주님, 당신은 내안의 어떤 영역에 손을대셨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그것들을뽑아버리십시오. 나를 격려하셔서 내가 뒤로돌아가지 않게 해 주십시오. 나는 당신과 함께앞으로 나아갑니다.”

2011년 4월 25일 월요일

곤경에 직면하여 하나님 신뢰하기

곤경에 직면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영광스럽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신속하게 기적들과 과거의 축복들을 잊어버리는지요!

시편 106편에서 홍해가 애굽의 군대위로 함몰하여 모든 군인이 물에 빠져 익사하는 엄청난 기적을 이스라엘이 목격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의 대적들은 물로 덮으시매 그들 중에서 하나도 살아남지 못 하였도다 이에 그들이 그의 말씀을 믿고 그를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도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은 이렇습니다. “그들은 그가 행하신 일을 곧 잊어버리며”(13절).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과거의 경험들에 의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 빨리 잊어버리고 기억은 매우 부서지기 쉽습니다. 과거의 경험만으로는 현재 처한 곤경가운데서 우리를 강하게 하기에 충분치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공급되는 하나님의 말씀, 즉,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신선한 말씀에 닻을 내린 신선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곤경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한층 더 그분의 은혜, 그분의 전적인 충족, 그리고 그분의 힘을 당신에게 베푸실 것입니다.

극한 곤경의 면전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기 위해서는 모험하는 믿음, 즉 모든 것을 그분의 돌보시는 손길에 맡기는 믿음이 요구됩니다. 우리가 깊은 데로 나아가서 모든 염려를 그분께 던져 버려야만 하는 때가 올 것입니다. 이 모험하는 믿음이 그분을 전적으로 기쁘시게 합니다.

믿음만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고 곤경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빠져나와 모든 것을 그분께 맡깁시다!

2011년 4월 22일 금요일

폭풍가운데 닻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히브리서 6:19).

이 성경구절에 언급된 닻은 소망입니다. 이 사악한 세상에 대한 소망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들을 지키시고, 복주시고 다스리시겠다고 하신 맹세에 기초한 소망입니다.

이 소망만이 지금 현재 지구상에 닥치고 있는 폭풍가운데 우리의 유일한 닻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6:12)가 되라고 훈계합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상속자들”, 즉 그리스도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맹세하셨습니다.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하”(6:18)려고 모든 노력, 모든 의심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그분은 맹세를 하셨습니다.

우리의 소망이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이행하시리라고 맹세하셨고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습니다.

그분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자신의 말씀을 지키셨습니다. 당신이 그분을 신뢰할 때 당신에게 하신 자신의 말씀을 지키실 것입니다. 이 같은 시기에 우리는 큰 안위가 필요 합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또 이제껏 소망에 대해 많은 설교들이 있었지만 결국 결론은 이것입니다. 기꺼이 모든 것을 그분의 손에 맡기고, 그분의 말씀 안에 안식하며, 그분이 당신에게 약속하신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온전히 확신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요동하지 않고 서 있겠습니까?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당신은 휘장을 넘어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2011년 4월 21일 목요일

예수님 바라보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브리서 12:2).

나에게 지금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경고했던 모든 일이 말세에 일어날 것입니다!” 그분은 사람들의 마음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두려워 낙심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각처에서 일어날 지진에 대해 경고하셨고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고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여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살아서 우리의 바로 눈앞에서 모든 종말에 대한 예언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21장 11절, “곳곳에 큰 지진”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모든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볼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셨습니까?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머리를(눈을)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21:28).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이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놀라거나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통제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처음 그처럼 무시무시한 뉴스를 보거나 들으면 두려워 떱니다. 하지만 그때가 바로 예수님을 바라볼 때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해 오셨고 그분이 우리 믿음의 주이시며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그분은 우리를 소망과 평강으로 결승점까지 이끌고 가실 것입니다.

오늘, 어떤 나쁜 소식이 당신의 영혼을 낙담하도록 만들지 마십시오. 눈을 들어 온전히 예수님께 집중하십시오. 그분은 아주 곧 오십니다.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히브리서 10:23).

2011년 4월 20일 수요일

다가오는 폭풍 가운데 희망

다윗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폭풍을 직면한 예수님의 태도에 대해 명확한 묘사를 보여줍니다. 그는 그리스도에 대해 예언적으로 이야기합니다.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사도행전 2:25). 이것을 직역하면 “내가 그분의 얼굴을 보며 항상 그분의 임재 안에 있었도다,”입니다. 다윗은 예수님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2:26).

여기 비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항상 자신의 얼굴 앞에 두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골방에 있기 위해 지속적으로 은밀한 장소를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계신 후에야 자신의 아버지가 항상 자신과 함께 하신다고 온전히 설복하시고 사역하기 위해 나오셨습니다. “그분이 나의 우편에 계시므로 이 지구상 어느 것도 나를 요동하게 하지 못한다.” 여기서 요동하다(move)의 헬라어는 “동요하는, 흔들리는, 불안한”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들, 악한 것들, 닥쳐오는 사건들, 그 어느 것도 나를 낙심하게 하거나 내 확신을 흔들 수 없다. 내 아버지께서 완전히 통제하고 계신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약 우리가 다가오는 폭풍을 직면해야 한다면, 우리는 그 어느 것도 우리의 영혼을 훼방하지 않도록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며 아버지의 임재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과 함께 골방에 있어야만 합니다. 그분이 우리의 우편에 계시다는 것은 온전히 설복할 때까지 우리의 무릎을 꿇고 그분의 임재를 연습하며 그분을 찾으며.

하나님은 명백하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네가 무엇을 보든지 요동하거나 동요하지 말라. 눈을 나에게 고정하라 그러면 너는 네 기쁨을 유지할 것이다.” 그리고 다윗에 의하면 예수님은 이렇게 증거 하셨습니다.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사도행전 2:28).

이것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너희가 시간의 종말의 때에 직면하게 될 모든 것을 직면했다. 다가오는 폭풍을 보았기 때문에 나도 동일하게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내 아버지의 임재 안으로 달려갔고 그분이 나의 모든 염려를 거두어 가셨다. 그분이 이 일의 결과를 모두 나에게 보여 주셨다. 그리고 그분의 임재 안에서 나는 마지막 날 끝까지 내게 필요한 모든 기쁨, 소망과 안식을 발견하였다. 나는 그분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평강과 기쁨이 있다.”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2:26).

2011년 4월 19일 화요일

믿음은 말씀에 기초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염려하시는 것은 자신의 백성들이 믿음에 있어 흔들리는 것입니다. 즉 자신들이 부르짖는 문제에 대해 그분을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최악의 죄는 그분이 약속하신 것을 행하실 것을 기꺼이 믿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륜, 간음, 마약과 알코올 남용 또는 다른 어떤 육체의 죄보다 더욱 그분의 감정을 상하게 합니다.

그분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베드로후서 2:9)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10:13).

이 구절들은 복음이든가 거짓말이든가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만약 복음이라면 우리는 이 말씀들 위에 서야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주님, 내가 당신이 나를 끝까지 지키실 것을 신뢰하며 여기 선 채 죽는다면 믿음 안에서 죽게 해 주십시오. 살든지 죽든지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지옥의 모든 바람과 파도가 당신에게 오도록 내버려두십시오. 모든 것이 당신에게 오도록 내버려 두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자신이 능력이 있다고 말씀하셨고 그분은 당신을 구원하는 법을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당신과 내가 우리의 여정에서 모든 기쁨과 평강, 승리와 안식을 누리도록 의도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암흑의 시대에 다가오는 일에 대항하여 굳게 설 남녀들, 즉, 그들 안에 그리스도가 거하시므로 고요와 평강으로 서 있을 하인들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그러한 신뢰의 자리로 나아오기를 무척 바라십니다. 당신이 다시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고 그분의 권세와 능력 안에서 진정으로 안식하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이 오직 그분을 신뢰하기만 하면, 그분은 모든 덫과, 시련과 시험으로부터 당신을 구원하시는 법을 알고 계십니다.

2011년 4월 18일 월요일

뜻대로 제게 행하시옵소서

마틴 루터는 그의 시련이 극에 달했을 때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주님, 이제 저를 완전히 용서하셨으니 뜻대로 제게 행하시옵소서.” 루터는 자신의 모든 죄를 씻어내실 수 있고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하나님이시라면 자신의 육체와 물질적 필요도 확실히 돌보실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루터의 말을 요약하면, “사람이 나에게 무슨 일을 행할지 내가 왜 두려워해야 하는가? 나는 나의 불의를 깨끗케 하실 수 있고 내 영혼에 평강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을 섬긴다. 내 주위의 모든 것이 무너진다 해도 상관없다. 나의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실 수 있고 영원토록 내 영혼을 보전하실 수 있다면 왜 내가 이 지구상에 사는 동안 내 육체를 돌보아 주실 수 없겠는가?”

“오, 주님, 저는 이제 죄 사함 받고 용서받아 심판의 날에 넘치는 큰 기쁨으로 주님 앞에 설 수 있으니 당신 뜻대로 제게 행하시옵소서.”

형제, 자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이 현재의 삶은 실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실제는 우리의 복된 주님의 임재가운데 있는 영생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지키십시오! 만물은 서서히 종말로 가고 있지만 우리는 올라가고 있습니다!

2011년 4월 15일 금요일

그분은 전쟁을 쉬게 하십니다

“그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시편 46:9).

영혼의 전투로 인해 부서지고 찢어진 하나님의 자녀에게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지요! 내 영혼의 전쟁은 그분의 전쟁이며 오로지 그분만이 끝낼 수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는 육이나 마귀가 나를 괴롭혀 내가 패하도록 허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내 전쟁은 야고보에 의해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야고보서 4:1). 이 정욕들은 탐욕, 자존심과 질투를 포함합니다.

전 시대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자들은 동일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정욕의 전쟁이 내 생전에 과연 끝날 것인가?” 이것은 오늘날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묻는 질문과 동일한 것이 아닙니까?

그에 대한 답변은, 물론, 이 전쟁은 끝나야만 하고, 끝날 것이며 이제껏 알지 못했던 가장 큰 평강이 필연적으로 뒤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전쟁이 끝나며, 누가 끝을 냅니까? 그것이 만일 나의 전투이며 끝내는 것이 나의 의무라면 하나님이 나에게 방법을 보여주셔야만 합니다. 만약 그것이 진실로 그분의 전투이면, 그분의 시간에 그분의 방법으로 그분이 끝내셔야만 하고 싸움이 진행되는 동안 내내 그분이 나를 사랑하심을 알므로 인내하도록 인내심을 주셔야만 합니다.

야고보가 사용한 헬라어는 stratenomai 인데 육적인 성향에 대항하는 전투, 전쟁에 임한 군인을 암시합니다. 이 말은 stratia 라는 어근에서 나왔는데 큰 무리, 군대 진영을 의미합니다. 다윗이 우리를 대항하여 진을 친 무리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육적인 성향들은 우리 마음을 두려움과 불신으로 공격함으로써 우리의 믿음을 파선시키고자 우리를 잠식하고 혼란에 빠뜨리기로 작정한 군대, 사악한 무리입니다.

다윗이 시편 46:9에서 사용한 전쟁이란 말의 히브리 원어를 살펴보면, 매우 기뻐할 이유가 있게 됩니다. milchamah 는 ~을 먹고 살다, 소진하다, 게걸스레 먹다, 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이 실제로 여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오로지 경이로울 따름입니다. 하나님은 대적이 우리를 소진해버리고 우리를 삼키는 것을 중지시킬 것입니다. 그분은 더 이상 정욕이 우리를 먹이로 삼거나 우리를 이기도록 허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정욕의 전쟁을 그치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쟁이며 그분은 절대로 패하지 않으십니다.

2011년 4월 14일 목요일

낙담

마음이 상하고 외로우며 두렵고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상황들에 압도당할 때 우리는 진정한 평강과 승리의 원천으로부터 재빨리 돌이켜 인간적인 방법과 자원들을 바라봅니다.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지요! 우리는 하나님이 여전히 보좌에 앉아 우리가 그분을 부르기를 기다리고 계심을 압니다. 우리의 모든 필요에 대한 해답은 하나님과 홀로 골방에 있을 때 찾을 수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영적 친구들에게 이렇게 고백도 할 것입니다. “나는 기도할 필요가 있음을 알아요! 하나님이 해결책을 갖고 계심을 알아요! 하나님 임재가운데 부르짖을 필요가 있음을 알아요!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의 위엄과 신실함을 무시하며 두려움과 절망에 항복하는 것은 최악의 낙담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늘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 스스로 보았으니.....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출애굽기 20:22,24).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의 얼굴을 가리셨으니...”(시편 10:11).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이사야 49:14).

당신은 낙담한 크리스천입니까? 만일 당신이 주님의 존엄한 약속들을 무시하고 그분이 말씀하신 것을 이루실 것을 의심한다면 당신은 낙담한 크리스천입니다. 그분은 약속하셨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이사야 49:15-16).
당신이 단순히 주님의 위대하고 귀중한 약속들 위에서 안식할 것을 거부함으로써 불필요한 죄의 짐과, 두려움, 외로움, 불안과 혼란을 계속 지고 간다면 당신은 의기소침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음과 같이 약속하셨을 때 그분은 자신의 자녀를 조롱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

“여 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시편 34:15, 17)라고 약속하실 때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인내하지 못하여 우리 감정에 따라 행동하지 맙시다. 우리에게 문제가 생겨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자비와 도우심을 청할 때 온 하늘이 우리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주님이 그분을 부르며 신뢰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좋을 것들을 볼 수 있도록 우리에게 영적 세계를 들여다보게 하신다면 우리 눈에 엄청난 광경이 될 것입니다.

2011년 4월 13일 수요일

그리스도의 완전함 나타내기

우리는 가지로서 나무인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졌습니다(로마서 11:17-19). 그분 안에 있는 바로 그 동일한 능력이 우리를 능하게 하십니다. 그분을 살리신 바로 그 동일한 성령이 우리를 살리십니다. 그분이 앉아계신 하나님의 우편 바로 그 동일한 자리가 믿음으로, 성령 안에서 우리가 있는 곳입니다. 우리 죄가 사함 받은 것을 어떻게 압니까? 오직 믿음으로 압니다! 우리는 이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때, 우리마음에 큰 평강이 주어집니다.

이렇듯 말씀은 그분의 능력과 함께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능력이 이제 우리 안에서 역사하여 우리가 뜻을 정하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도록 하신다는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 능력은 오직 믿음으로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명령을 행할 수 있도록 그분이 우리를 도우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우리의 연약함을 직면해야만 합니다.

일어나 걷고 자신의 침상을 들고 간 중풍병자는 죄의 문제를 극복한 신자의 한 유형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얼마나 훌륭하게 나타냈는지요! 무기력하고 곤궁에 빠진 모든 사람들에게 큰 소망을 주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하나님이 추구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이 악한 세대에게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죄의 통치로부터 완벽하게 구원하시는지 보여주는 세상의 본보기가 되는 승리자들을 찾고 계시는 게 아닐까요? 죄인들은 이 세상의 정욕과 쾌락을 초월하여 살아가는 신자들을 보아야만 합니다. 아내를 사랑하고 신실한 사람들; 부정(不貞)하지 않고 좋은 엄마이며 살림꾼인 아내들; 순결을 지키며 모든 더러움을 멀리하는 젊은이들.

우리에게는 복음 라디오, TV, 그리고 남을 이용하기에 바쁜 크리스천들이 충분히 많이 있습니다. 복음운동, 연주회, 집회들도 충분히 많습니다. 계획, 프로젝트, 프로그램, 세미나, 책, 음반, 테이프, 잡지, 서신등도 차고 넘칩니다.

이런 좋은 일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진정으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보여주는 크리스천들이 충분치 않다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 주는 사람이다! 저 사람은 부활하시고 영광 받으신 그리스도외에는 판촉 할 것도, 증명하려는 것도 없는 사람이다! 저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과 단순함으로 빛나는 형제, 자매가 있다! 저 사람은 내가 갖고 싶은 것, 즉, 부인할 수 없는 실제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족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유일한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성취하는 것, 즉 그리스도의 충만함과 완전함을 나타내는 증인이 되는 것!

2011년 4월 12일 화요일

일어나 걸어라

마가복음 2장에 나오는 중풍병자는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보시기에 정결케 되었으나 여전히 자신의 시련의 포로였습니다. 그는 모든 죄에서 해방 받았으나 아직도 무력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자원의 원천이 아니라 구제하는 분으로 알았습니다.

용서받은 장애인, 해방된 포로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우리가 해야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역할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정결케 하는 것이고 우리의 역할은 일어나 걷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에서 구제받은 것을 넘어 그분의 자원의 자유로움 속으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마가복음 2:9-11).

그 사람은 자기 힘으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가 그분의 힘을 그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리스도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로지 그분의 힘과 성령의 권능을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이 사람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나는 너를 죄를 이기는 내 능력의 본으로 삼으려고 한다. 네가 가장 약했던 곳에서 가장 강하게 될 것이다. 너를 포로로 만들었던 것을 네가 들고 갈 것이다. 너는 너를 억누르고 있던 바로 그것을 극복하게 될 것이다.”

영적 장애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표식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능력이 충만한 삶과 죄의 굴레에서 벗어난 승리의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약점과 취약한 부분을 알고 있고 사탄은 우리가 그 점에서 항상 약할 것이고 언젠가 그 약점이 우리를 이기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우리의 가장 약한 점을 가장 강하게 만드실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는 그분의 능력이 내 약한데서 온전하여진다는 의미입니다.

무엇이 당신을 막습니까? 괴롭히는 죄, 연약함, 해결되지 않은 내적 싸움입니까? 무엇이 되었든지 그것은 나가야 합니다! 당신은 더 이상 실패의 침대에 묶여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믿음으로 이것은 모두 성취되었습니다.

주님은 당신이 그 침대에서 일어나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당신이 이기고 전적인 구원 가운데서 행하기에 필요한 모든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2011년 4월 11일 월요일

놀라운 은혜

우리 안의 어떤 것이 우리 구주의 놀라운 은혜와 자비 그리고 용서를 받도록 할까요? 어떤 아름다움, 선 또는 힘일까요? 우리안의 어떤 잠재력일까요?

아닙니다! 그분의 은혜를 받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크나큰 필요와 철저히 무력함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이 그분의 힘을 끌어냅니다. 우리의 무력한 상황은 마가복음 2장에 나오는 중풍병자가 바로 좋은 예입니다. “사람들이 한 중풍 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가지고 예수께로 올 새”(마가복음 2:3).

절대적으로 무력함에 대한 묘사, 즉 티끌만한 힘이나 능력도 없는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 그리스도께로 올 수 조차 없었습니다. 두려워 떨며 연약하고 무기력한 사람, 자신의 침대에서 풀려날 수 없는 사람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해 뭔가 알기 전, 당신과 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이 무기력한 사람 앞에 서서 그를 지붕에서 달아 내리도록 놓아두시고 그의 신체적 조건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그를 깨끗하고 정결케 하여 아버지의 임재 안으로 이끌고 가기로 정하셨습니다. 그의 몸이 회복되기 이전에 그는 인정받을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마가복음 2:5).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얼마나 아름다운 그림인지요! 여기 자신의 약함에 압도당하여 신음소리조차 낼 수 없는 무력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작은 소리로 고백할 힘조차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에베소서 2:10). 자신의 모든 선행과 자랑으로도 바리새인은 절대로 주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도록 행함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혐오하는 죄의 괴롭힘에 대항하여 고생하며 죄의 짐과 절망 아래 짓눌려 무기력하고 연약하게 느끼는 하나님의 자녀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풍성한 은혜의 대상인 사람을 당신에게 보여주겠습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칩니다(로마서 5:20 참조).

회개했을 때, 십자가에서 종결된 일 위에 믿음으로 서십시오! 그분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당신의 죄는 피 아래 있습니다. 당신은 이제 사랑받는 자들 중 하나로 인정되어 그리스도와 아버지와 하나 되어 천상의 장소에 그리스도와 함께 앉혀져 휘장 건너편에 살고 있습니다! 당신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해결되었습니다. 당신은 이제 정복자 보다 월등한 자로서 성령 안에서 살며 행동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생명과 경건에 관계된 모든 것을 충족하는 능력을 가지신 그리스도의 충만함으로 채워졌습니다. 당신은 마음으로 새로워져 그리스도 주께 속한 모든 것을 유업으로 받은 그분의 눈동자입니다.

2011년 4월 8일 금요일

거룩함

그리스도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말할 때, 나는 그분의 구원하시는 능력 뿐 아니라 또한 보존하시는 능력에 대한 신뢰를 말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성령이 우리를 지키시고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한다는 것을 신뢰해야만 합니다.

당신 자신의 간증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전에 우리는 악한 행실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멀리 있었습니다. 그분과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당신은 어떤 선한 행실을 했습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도 스스로 거룩해지거나 자신을 거룩하게 보존할 수 없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그분이 거룩한 것처럼 너희도 거룩하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할 때 우리는 매일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거룩하심 안으로 인도 받습니다.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골1:21-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라는 구절에 주목하십시오. 그리스도는 “계속 나를 신뢰하고 믿음으로 살라. 내가 너희를 아버지 앞에 정결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세울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모두 성령의 성화 사역입니다. 성령은 당신에게 육신의 행사를 억제하는 능력을 부여하시면서 죄를 자각하게 하시고 또 위로하시며 당신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오직 단 하나의 거룩함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거룩함 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 어느 누구도 “당신보다 거룩”할 수 없습니다. 거룩함에는 등급이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안에서 성숙의 정도가 있을 뿐입니다. 새 신자라 할지라도 예수 안에서 절대적으로 거룩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에 비교해 자신을 헤아려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의 기준, 즉 그리스도의 거룩함으로 헤아림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 안에 있으면 동일한 양만큼 그분의 거룩함이 우리의 것입니다.

다시는 다른 크리스천을 보며 “아, 저 사람처럼 거룩해 봤으면,”하고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사람만큼 절제하거나 기도 생활에 전념하지 못할지 모릅니다. 그 사람보다 자주 더 고투하고 더 많이 실수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가 당신 보다 더 아버지께 인정받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하고도 비교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보시기에 당신보다 더 사랑받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여러분, 발에서 신을 벗으십시오. 당신의 육을 의지하는 것을 벗어버리십시오. 당신은 여기 다음과 같은 기초위에 서서 살아가야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나의 거룩함을 청구합니다. 나는 그분 몸의 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는 내가 그분 안에 거하므로 나를 거룩하다고 여기십니다.”

2011년 4월 7일 목요일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기

“그들이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말하며 주의 의를 노래하리이다”(시편 145:7).

우리는 하나님이 그분의 모든 위대하심을 찬양하라는 요청을 거절할 수 없지만 특별히 우리는 그분의 선하심을 찬양하기 위해 부름 받았습니다.

시편 기자가 아버지의 선하심을 기념하는 풍성한 찬양을 강조하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마치 샘에서 물이 솟아나오듯 콸콸 흐르도록 하기 위해 그들은 히브리어로 풍성하게 표현하며 노래했습니다.

시편 107편 8절, 9절에서 다윗은 기록했습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심이로다”

과거에 행하신 선하심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 진리는 내 심금을 울렸고 다윗이 했던 것처럼 나도 하고픈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선하심을 기념하기 위해 부름 받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말하려는 선하심에 대해 공개합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시련과 불행에 대해 동정하시며 자비를 베풀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출애굽기 34장 6절을 빌려왔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과거를 회상하고 주님이 당신에게 얼마나 선하셨는지 기억하십시오. 결코 실패하지 않고 당신을 끝까지 인도하셨던 그분의 측은히 여기시는 마음을 기억하십시오. 나는 모든 일에 대해 기쁘게 하나님을 찬양하지만 특별히 그분의 선하심에 대해 찬양하기를 기뻐합니다. 단지 과거에 베푸셨던 선하심 뿐만 아니라 매일 내가 보는, 현재 나의 주변에서 내가 보는 선하심에 대하여 찬양하기를 기뻐합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 23:6).

2011년 4월 6일 수요일

현재의 광기

나는 현 세계의 광기에 경악하고 있습니다. 정부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사법질서에 대해 문외한입니다. 그토록 수많은 정치가들과 지도자들의 무지를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들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듯이 더듬거립니다.

마치 모든 제어력이 내팽개쳐지고 도덕적 광기가 무리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한 것 같습니다.

이런 모든 광기를 보면서 나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신 그리스도 예수로 인해 한층 더 기뻐합니다. 이 세상의 길을 따라 살며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영과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의 권세 아래 한 때는 육과 마음의 온 정욕을 채우며 죄에 죽기조차 했던 자들이 이제 성령에 의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 생명을 얻고 그리스도안에서 하늘에 앉아 있기에 나는 기뻐합니다.

오늘날, 현재의 광기에 대해 슬퍼하면서 당신이 그 모든 것으로부터 구원받았음을 인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십시오.

하나님, 찬양을 받으십시오!

2011년 4월 5일 화요일

평안히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온전케 했느니라

오늘 말씀을 묵상하던 중, 나는 17세기에 윌리엄 브리지가 전한 설교 중 일부를 읽었습니다. 당신과 나누도록 인도하심을 느꼈습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 믿음 입니다:모든 수단들이 실패하여 우리가 속수무책일 때 믿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특히 영혼을 의롭게 합니다.:이것이 단연 영혼을 구원하는 믿음입니다.

누가복음 7장을 살펴보고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구절은 이렇습니다.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이 여인의 믿음에 대해서는 이에 앞서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47절에 그녀의 사랑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 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이 여인의 눈물에 대해서는 앞서 38절에 언급이 되어있습니다.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여기에는 그 여인의 눈물과, 후한 마음과, 너그러움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언급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 구세주 그리스도는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여자여, 네 눈물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여자여, 네 회개와 네 겸손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나에 대한 너의 사랑과 너그러움이 너를 구원했으니 여자여 평안히 가라,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 구세주는 이 여인에게서 자신이 엄청난 죄인이므로 그분에게 의뢰하는 은밀한 행동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으니 평안히 가라!

2011년 4월 4일 월요일

하나님의 자비

사도행전 9장에서 우리는 이제까지 세상에 살았던 사람들 가운데 가장 종교적이었던 사람의 하나인 다소사람 사울에 대해 알게 됩니다. 그는 “오늘까지 하나님 앞에서 선하게 양심껏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경건한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사울은 예수님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 차 유대인의 영토 밖에서도 결단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했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서 그는 주님의 백성을 박멸하려고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이었습니다.

후에 가장 위대한 크리스천 복음 사역자가 된 이 사람에 대해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쳤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를 가두기 위해서 입니까? 그에게 죄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정죄하기 위해서입니까? 그를 파멸시키려는 것입니까? 그에게 진노와 심판을 선고하려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불의가 용서받고 죄가 가려졌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입니다.

빛나는 빛 앞에 엎드려 그의 노정에 대해 거룩하신 하나님의 규탄을 듣는 대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 사울의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그가 들었던 말은 “나는 예수라!”였습니다. 그가 행하던 악에 대한 말은 한 마디도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가 박해했던 분은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동일한 예수님은 우리에게 동일한 자비를 베푸십니다. 심판과 규탄받아 마땅하건만, 우리는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습니다. “나는 예수, 너의 구원자라.”

오늘 당신에게 보여주신 자비로 인해 그분께 감사하십시오.

2011년 4월 1일 금요일

십자가에서 해결 됐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 결단코 이해해야만 합니다. 그분은 우리가 항상 그분의 임재 앞에 나갈 권리를 얻게 하기 위해 하나님의 거룩하신 눈을 거스르는 것을 영원히 치워버리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인정받았고 하나님의 마음속에 우리를 적대하시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당신이 온전히 용서받았다는 그리스도의 피의 효력을 배우기 전에는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마십시오! 십자가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를 정결케 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잊어버릴 수 있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잊지 않으십니다. 휘장이 찢어져 우리로 들어가도록 했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인정받았다! 너는 사랑받는 자 가운데 있는 내 것이니 내 보좌로 담대히 나오라.”

하나님이 흡족하시다면 우리가 흡족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이것이 해결되어야만 하는 사안입니다. 당신과 당신의 천부사이에 무언가 있습니까? 당신은 “내 마음이 나를 정죄합니다! 나는 성령을 슬프게 만드는 말과 행동을 했습니다. 나는 하찮은 존재라고 느끼고 하늘이 놋쇠처럼 보입니다,”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당신은 “하지만 하나님은 내 마음보다 위대하시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죄를 미워합니까? 죄를 고백했습니까? 예수님을 통해서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사도행전 13:38)을 믿습니까?

많은 크리스천들이 실패하는 부분이 여기 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의 승리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불필요한 두려움 속에 종노릇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눈에 정결하며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완전히 흡족히 여김을 받았으나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의 두려움과 지식이 부족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그분에게 나아가는 것을 막는 것이 없습니다. 휘장이 찢어졌을 때 하나님이 당신과 나에게 나오셨습니다! 우리는 들어가고 그분은 나오십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요! 우리는 하나님을 진노하게 했으나 그분은 자신이 보시기에 우리를 깨끗하게 하기를 간절히 원하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 스스로 마련한 제물을 보내셨습니다. 죄는 심판을 받았고 범죄는 제하여 졌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히브리서 8:12). 그분이 스스로 간격을 없애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우리의 탓으로 돌리기 원치 않고 계십니다. 오히려 우리를 자신이 감수하고자 하십니다. 그분은 죄의 문제가 영원히 십자가에서 해결되었다는 것을 아는 축복가운데 우리가 살기를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