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31일 화요일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십니다

사람들은 종종 우리에게 이렇게 편지합니다. “나는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내짐을 나눠 지지 않습니다. 아무도 나의 부르짖음을 들어줄 시간이 없어요. 내 마음을 쏟아 부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다윗 왕은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는 결혼하여 가족이 많았고 그의 곁에는 많은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다윗에게서도 같은 부르짖음을 듣게 됩니다. “내가 누구에게 갈꼬?” 얼굴과 눈이 있고, 우리의 말을 들어줄 귀가 있고 우리에게 충고해 주는 다른 인간을 원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욥이 그에게 닥친 시련으로 인해 압도당했을 때 그는 비통하게 부르짖었습니다. “누구든지 나의 변명을 들어다오”(욥31:35). 그는 자신의 소위 친구라는 자들 앞에 앉아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친구들은 욥의 우환에 대해 아무런 동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절망의 사자였습니다.

슬픔가운데 욥은 오직 주님께 향했습니다.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니”(욥16:19-20). 시편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처럼 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62:8). 다윗은 또한 시편 142편에도 썼습니다.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내가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 다 내가 가는 길에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 오른쪽을 살펴 보소서 나 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 여호와여 내 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오 살아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 깃이시라 하였나이다”(시142:1-5).

내 심중으로 나는 이 메시지가 성령께서 당신에게 주님께 당신의 영혼을 자주 쏟아 부을 수 있는 개인적인 장소를 찾으라는 초청장이라고 믿습니다. 다윗은 “그의 원망을 토해내었고” 당신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예수님께 모든 것, 즉 당신의 문제, 현재 겪고 있는 시련, 당신의 재정, 건강 등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고 당신이 얼마나 중압감을 느끼는지, 또 얼마나 낙심하고 있는지 조차 말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사랑과 동정심을 가지고 당신의 말을 들으실 것이며 당신의 부르짖음을 멸시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응답하셨습니다. 그분은 욥에게 응답하셨습니다. 그리고 수세기에 걸쳐 그분의 약속을 신뢰한 모든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부르짖음에 응답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분은 당신의 부르짖음을 듣고 인도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진실로 그분은 당신의 힘이 되시겠다고 맹세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분께로 가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새롭게 되어 나올 것입니다.

2011년 5월 30일 월요일

하나님은 절대로,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경제가 어떻게 되든지, 우리가 어떤 위기를 직면하든지, 어떤 슬픔이나 고난이 우리 인생길에 닥치든지, 우리의 복된 주님은 우리의 모든 발걸음을 인도하시고 돌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애굽으로부터 구원해낸 자들을 결국 포기하셔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분의 사랑하는 품속에서 그처럼 기적적인 양육을 받은 후에도 그분을 의심하고 제한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려운 시기에 단순히 우리가 그분을 신뢰했으면 좋겠다고 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그것을 요구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불신에 대해 우리에게 그토록 강력하게 경고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주님을 비통하게 만들고 그분이 약속하신 모든 복과 선한 일을 차단한다고 들었습니다. 우리의 불신은 모든 약속을 “효력없이” 만들어버립니다.

뉴욕 시에 사는 우리에게 이것은 죽은 신학이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매일 살아남기 위해 우리가 설교하는 것을 실행해야만 합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의 약속들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고 우리 안의 모든 것으로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두려움과 공포로 얼어붙을 것입니다. 이곳의 거리들은 전쟁 지역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지속적인 두려움과 위험 가운데 살고 행인들이 좌우에서 살해당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을 돌보기 위한 비용이 상당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필요는 엄청나게 큽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변함없는 약속 안에서 안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압도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도당하지 않습니다. - 우리는 두렵지 않습니다. 문제가 악화 될수록 우리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 더욱 강해집니다.

2011년 5월 27일 금요일

주님의 임재를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나를 풍성하게 축복해 주는 히브리 원어 성경 본문이 있어서 당신에게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주의 법에서 먼, 악을 꾀하는 자들이 내게 다가왔을 때, 오 여호와여, 주는 당신의 모든 신실한 계명들과 함께 가까이 계셨습니다”(시편 119:150-151, 헬렌 스퍼렐 역).

마귀의 통치자들과 권세들은 다윗을 둘러싸고 그와 이스라엘을 폐허로 만들고 파괴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하나님의 사람은 대적이 가까이 다가올 때 주님이 보다 더 가까이 다가오실 것을 믿는다고 증언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그분의 오른 손으로 자기를 붙들고 모든 원수의 공격을 통과시켜주셨다고 말했습니다.

다윗의 이 증언은 당신과 나를 위한 놀라운 약속입니다. 사탄이 주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파괴하고 괴롭히며 끌어내리려고 한다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원수는 우리를 절망, 혼돈, 죄와 정죄의 구덩이에 빠뜨리려고 그의 능력의 범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것입니다.

지금 당신을 대항해서 마귀의 “악을 꾀하는 자들”이 다가오고 있습니까? 압도적인 유혹입니까? 시련들입니까? 재정적 부담입니까? 결혼생활이나 가족 문제들입니까? 사업상 문제들입니까? 당신을 쫓는 자들이 당신을 파멸시키려는 의도로 다가올 때, 기억하십시오.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 보다 더 가까이 계십니다. 그분이 당신 곁에 계십니다. 그분이 당신 가까이에 계시면 당신을 위해 행동하실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그분의 자녀 옆에 가까이 계시면서 그분의 사랑하시는 자를 마귀가 어떤 방식으로든지 학대하고 타락하게 만들도록 허용하시면서 앉아 계신 모습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시편 68편 1-4절을 읽고 당신이 그분을 신뢰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당신에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들을 보십시오. 당신은 이 네 구절을 지금도 또 한 해 내내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 구절들을 암송하고 그 위에 서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당신의 원수를 쫓아버리실 것입니다.

2011년 5월 26일 목요일

하나님의 평강이 당신의 심중에서 다스리시기를

성령께서는 내가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는 한 나의 모든 기도가 완전히 헛된 것이라고 명백히 하셨습니다. 내가 기도하는 중에 울고, 금식하고, 중보하며 고민하고 애쓸 수도 있지만 주님께는 전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 내가 이 모든 것을 단순하고 어린아이 같은 믿음을 가지고 하지 않는 한.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행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런 사람은[의심하는 자]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약1:7).

주님은 그분을 신뢰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에 대한 신뢰가 너무 적고, 우리의 심령의 부르짖음에 그분이 기꺼이 응답하기를 원하신다는 데 대해 너무나 작은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게 되면, 우리의 처분대로 쓸 수 있었지만 우리의 믿음이 연약하여 우리의 것으로 만들지 못한 모든 축복과 평강과 능력을 발견하고 놀라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믿음을 증강하도록 당신을 도전하라고 성령께서 나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이십니다.

주님께 당신의 불신을 용서해주시고 그분이 당신의 신실한 기도에 넘치게 응답해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확신으로 당신의 영혼이 넘치기를 구하십시오.

믿음이 커지기를 원합니까? 다시 기도하러 갈 때 다음의 성경 구절을 가지고 주님과 의논해 보십시오. 그분은 자신의 말씀을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구절들을 붙드십시오.

- 시편 62:8
- 시편 91:4
- 시편 56:3
- 잠언 30:5
- 예레미야 29:10-14

믿음으로 붙드십시오. 그분이 응답하실 것입니다. 속히.

2011년 5월 25일 수요일

경이로운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합니다

당신의 믿음을 북돋우기 위해 시간을 내어 강한 힘이 있는 시편 142, 143 편을 읽어 보시라고 권해 드립니다.

다윗이 “내 영이 내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142:3)라고 말했을 때 그가 어떤 일을 겪고 있었는지 나는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143편 4절에도 이 구절을 반복했습니다.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참담하니이다.” 다윗은 실상 하나님께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환난가운데 빠져 죽어가고 있습니다. 내 대적들이 나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나를 비천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142:6-7).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말씀들은 우리를 위해, 우리를 교훈하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환난과 시련에 압도당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격려하는 말씀이 여기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과중한 채무로 재정난에 빠져 있습니다. 수많은 귀한 신자들이 거의 생계를 유지하지 못합니다. 많은 과부들과 노부부들이 가까스로 살고 있습니다.

나는 때때로 지나치게 음울하고, 너무 부정적이라는 비난을 받아왔습니다. 아무도 나쁜 소식을 듣기 원치 않고 사람들은 고통이나 괴로움, 환난들에 관해 말하는 설교자로부터 돌아선다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우리들 대부분은 때때로 삶이 절대적으로 우리를 압도할 수 있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다윗처럼 우리도 환난의 홍수에 직면합니다. 우리의 의 가운데서도 시련을 당합니다. 우리는 그 다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채 질병,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혼란의 시기들을 견뎌냅니다. 우리의 믿음에 대항하는 사탄의 지옥과 같은 공격들을 직면합니다.

우리가 압도당하는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구하는 것을 배우고 우리의 고통가운데서 부르짖는 것을 배웁니다. 다윗은 말했습니다.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142:2).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143:1). 당신은 바로 지금도 당신 삶의 상황에 압도당해 있습니까? 다윗이 했던 것처럼 하십시오.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143:6).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143:7-8).

-“여호와여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건지소서 내가 주께 피하여 숨었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주의 영은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살리시고 주의 의로 내 영혼을 환 난에서 끌어내소서”(143:9-11).

격려를 받으십시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계십니다. 그분이 정시에 당신의 필요를 채우실 것입니다.

2011년 5월 24일 화요일

당신의 전쟁은 주님께 속한 것입니다. (역대하 30:15 참조)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당신이 당면하고 있는 전투가 당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사탄이 "당신에게 크게 분낼” 것이라는 것을 확신해도 됩니다.

역대하 20장에서 엄청난 대군이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해서 왔습니다. 여호사밧왕과 그의 백성들은 주님을 구하고 금식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왕은 우리의 영적 여정에서 우리들 대부분이 한 때 기도드렸던 기도를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20:12).
“여호와의 영이 회중 가운데에서 ....임하셨으니....말씀하시기를 너희는.....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29:14-15).

이사야는 사탄의 전 세력들에게 이 경고를 했습니다. “네가 훼방하며 능욕한 것은 누구에게냐 네가 소리를 높이며 눈을 높이 들어 향한 것은 누구에게냐I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에게니라”(사 37:23).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이 전쟁은 네게 대항한 것이 아니다. 네 안에 거하는 주, 나에게 대해 사탄이 분을 낸 것이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거처와 네 출입과 네가 나를 거슬러 분노함을 내가 아노라“(37:28).

당신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전쟁은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의 결혼 생활입니까? 사업이나 직장입니까? 재정입니까? 건강입니까? 당신의 전쟁이 날이 갈수록 심해집니까? 당신이 예수님을 향한 마음이 있고 그분께 붙어 있고자 원한다면 지옥의 분노를 직면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당신께 속한 전쟁이 아닙니다.

당신이 선택한다면 당신의 전쟁을 속히 끝낼 수 있습니다. 그저 그만두고 당신의 두려움과 의심에 항복하면 됩니다. 사탄은 주님에 대한 확신을 저버리는 사람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전쟁은 주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역할이 있습니다. 그것은 소망이 없고 불가능한 듯 보이는 것의 면전에서 그분의 약속을 신뢰하고 믿는 것입니다.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사 40:27).

믿음은 내가 나의 모든 문제들, 즉 나의 모든 위기 상황들, 모든 두려움, 모든 불안들을 주님의 손안에 넘겨드릴 것을 요구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고 나의 전쟁이 내 능력 밖에 있는 것을 알 때, 나는 모든 것은 그분의 손안에 기탁해야 합니다.

우리의 주님은 사탄의 분노를 알고 계시며 우리는 그분이 일하실 것을 진정으로 믿어야만 합니다. 그분이 우리를 홍수들과 불들을 통과하여 나오게 하시고 모든 영적 원수를 쫓아내실 것입니다. 그분이 하실 일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이 여기 있습니다. “네가 나를 거슬러 분노함과 네 오만함이 내 귀에 들렸으므로 내가 갈고리로 네 코를 꿰며 재갈을 네 입에 물려 너를 오던 길로 돌아가게 하리라”(사 37:29).

당신이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의 약속 안에 안식하며, 당신 마음속에 침입하는 모든 사탄의 거짓말을 거부하며 당신의 믿음을 굳게 붙든다면, 하나님이 그분의 영으로 당신의 상황 가운데 오셔서 당신의 특정한 전쟁에 대해 기대하던 결말을 가져오실 것이라고 기대하십시오. 그분은 당신을 구원하고 길을 내기 위해 하늘과 땅을 움직이실 것입니다. 벗어나는 길은 신뢰, 신뢰,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가....전쟁을 쉬게 하심이여”(시 46:9).

2011년 5월 23일 월요일

약속들

히브리서에는 우리의 인내가 매우 많이 필요하다고 반복해서 나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그리하여 그가 인내하여 견딤으로 약속을 얻었느니라” (히브리서 6:13-15, 이탤릭체 부분 저자 주).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 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6:12).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10:36).

죄의 모든 사슬을 끊고, 죄의 모든 통치를 이기도록 우리에게 능력을 부여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시기 위해, 우리를 정결케 하고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르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약속들을 많이 주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이 우리에게 확신을 줍니다.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유다서 24).

한편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이 모든 일들을 오직 그분의 스케줄에 따라 행하십니다. 그분은 마감시간에 쫓기지 않습니다. 또한 즉석에서 만병통치해 달라는 모든 요구를 무시하십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 편에서 진정한 믿음은 우리가 인내하며 우리 주님을 기다릴 것을 요구합니다. 그분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다음과 같아야만 합니다. “주님, 나는 당신이 당신의 말씀에 충실하심을 압니다. 내안에 있는 당신의 영의 능력으로 나는 당신이 이 일들을 내 삶속에 이루어주실 때 까지 인내하며 기다릴 것입니다. 내 역할은 당신을 기다리며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당신은 무서운 시험과 유혹들을 견뎌내야 할지 모릅니다. 사탄이 속삭여대는 끔찍스러운 거짓말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 실족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목표에 도달하기나 할까하고 의아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이 이 모든 시련을 견디면서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지키며, 하나님이 당신의 여호와 시드케이누(주님은 우리의 의)가 되시고, 오로지 인내를 가지고 믿음을 붙든다면 그분은 당신을 의롭다고 여기실 것입니다. 그분은 맹세하셨습니다. “믿음으로 너는 약속을 받을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 4:20-23에서 의에 대한 주님의 정의를 보여줍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 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성경이 이보다 더 명확하게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의는 그분이 자신의 말씀을 지킬 것이라고 온전히 설복하여 하나님의 약속들을 믿는 것입니다. 거꾸로 말해서 불신은 하나님이 약속들을 행하실 것을 의심하며 그분의 약속들 앞에서 머뭇거리는 것입니다.

2011년 5월 20일 금요일

나에게 너의 모든 내일을 맡겨라

주님은 어느 날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믿을 수 없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12:1).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갑자기 하나님이 한사람을 택하셔서 그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일어나 가기를 원한다. 모든 것, 너의 집, 네 친척, 네 나라조차도 뒤로하라. 나는 너를 어떤 곳으로 보내기 원한다. 가는 도중에 그곳으로 가는 길을 인도해 줄 것이다.”

이 믿기 어려운 주님의 말씀에 아브라함은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11:8).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왜 하나님은 온 나라들을 뒤져 한 사람을 찾으시고 그를 부르셔서 모든 것을 버리고 지도도 없이, 방향도 예상 못하고, 목적지도 모른 채 여행길에 오르라고 하셨을까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계신지 생각해보십시오. 그분은 아브라함의 가족을 어떻게 먹이고 필요를 채우실지 결코 보여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얼마나 멀리 가야하는지 또 언제 목적지에 도달할지 알려주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애초에 두 가지만 말씀하셨습니다. “가라” 그리고 “내가 길을 보여 주겠다”.

요점만 말하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오늘 이후로, 나는 네가 너의 모든 내일들을 내게 맡기기를 원한다. 너는 네 남은 생애 동안 너의 미래를 한 번에 하루씩 내손에 맡기고 살게 될 것이다. 나는 내가 너에게 한 언약에 너의 생애를 의탁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만약 네가 이것을 행하겠다고 결단하면 내가 너에게 복주고 네가 상상해 본적이 없는 곳으로 너를 안내하고 인도할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인도하여 가시고자 하는 곳은 그분이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지체들을 데리고 가기 원하시는 곳입니다. 아브라함은 성경학자들이 “모형 인간” 부르는, 즉 주님 앞에서 어떻게 행하여야하는지 그 예를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의 예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이 결단으로 부르셨을 때 그는 젊은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마도 그의 가족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계획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부르심의 경중을 달아보며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에 대해 염려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15:6).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믿고 신뢰하는 사람은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우리의 모든 내일들을 주님의 손에 맡기라는 똑같은 부르심에 청종하였기에 의롭다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2011년 5월 19일 목요일

사자의 발톱에서 건져내심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은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과거에 우리가 구원받은 기억은 현재 겪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믿음을 증가시키는데 도움이 됩니다.

위기에 직면했습니까? 가정이나 직장 또는 가족 사이에 위협적인 거인 같은 문제가 있습니까? 거인을 직면하는 유일한 방법은 다윗이 했던 것처럼 하는 것입니다. 사자와 곰을 기억하십시오. 다윗은 지난 날 자신에게 신실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함으로써 두려움 없이 골리앗에게 맞설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자원했을 때,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물어 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사무엘상 17:33-36).

다윗은 골리앗과 상대하는데 따르는 위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풋내기도 아니었고 허세를 부리며 싸움을 거는 순진한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다만 지난날 자신의 구원들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원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17:37).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오늘날 모든 면에서 거인들과 직면합니다. 그런데 다수가 두려움으로 위축됩니다. 당신의 모습도 이렇습니까? 당신이 몹쓸 병으로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을 때 주님이 당신을 일으켜주신 것을 잊어버렸습니까? “이것으로 그만이다. 나는 끝났다,”고 생각했던 금융위기의 때에 주님이 당신을 끝까지 보살피시고 오늘 까지 지켜주신 것을 기억합니까?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고 우리가 주님과 함께 본향에 있기 까지는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이 치유하실 수 있고 또 그분은 모든 상황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어디서 믿음과 용기를 찾아 그분 안에서 일어나 승리를 얻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로지 사자와 곰을 기억함으로써 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놀라우신 신실하심과 그분이 당신에게 베풀어주신 과거의 승리들을 기억할 수 있을 때 옵니다. 당신의 삶속에서 하나님의위엄과 영광을 그려보며 이해할 수 있을 때 까지는 당신은 거인을 직면할 수 없습니다.

2011년 5월 18일 수요일

새로운 힘 발견하기

우리는 얼마나 빨리 우리 인생에 있었던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을 잊어버리는지요. 그분이 우리 삶에서 베푸신 기적들을 얼마나 쉽게 당연하게 여기는지요. 그런데 성경은 반복해서 “너희의 구원들을 기억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제자들과 매우 흡사합니다. 그들은 그분이 초자연적으로 단지 몇 개의 떡과 물고기를 가지고 수 천 명을 먹였을 때 그리스도의 기적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기적을 두 번 행하셨습니다. 한 번은 오천 명을 먹이셨고 다음에는 사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이 사건은 제자들의 기억에서 사라졌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것은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의 누룩에 대해 그들에게 경고하셨을 때 였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여정에 떡을 가져오는 것을 잊었기 때문에 그분이 이 말씀을 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 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느냐”(마태복음 16:9-10).

마가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자신의 제자들이 얼마나 빨리 잊어버리는 가에 대해 난감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 둘 이니이다”(마가복음 8:17-19).

이 구절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합니까? 기적적으로 사람들을 먹이실 때 제자들 중 아무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멈추고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이 사람들이 바구니를 들고 자신들의 눈앞에서 기적적으로 불어나는 떡과 물고기를 나누어주며 무리들 사이를 걸어가는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당신은 그 제자들이 무릎을 꿇고 이렇게 외쳤으리라 생각할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엄청날 뿐이다. 인간으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오, 예수님, 당신은 진실로 주님이십니다.” 나는 그들이 떡을 나누어주던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촉구하는 상상을 합니다. “여기 있습니다. 영광으로부터 온 기적의 양식을 마음껏 드십시오. 예수님이 공급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두 눈으로 똑똑히 이 기적들을 보았습니다만, 어쩐 일인지 그 의미심장함은 그들의 뇌리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기적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마찬가지로 당신과 나도 우리 삶속에서 하나님의 기적들을 잊어버립니다. 어제의 구원들은 오늘의 위기 속에서 신속하게 잊혀 집니다.

구약과 신약 모두를 통틀어 우리는 이렇게 읽습니다. “너에게 기적을 베푸시는 주님의 강한 팔을 기억하라. 지난 날 너희의 모든 구원을 기억하라.” 홍해의 기적이 있은 후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권한 말을 생각해 보십시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애굽 곧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온 그 날을 기념하여 유교병을 먹지 말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너희를 그 곳에서 인도해 내셨음이니라”(출애굽기 13:3).

2011년 5월 17일 화요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입니다!

이 글을 읽는 어떤 분은 예수님의 만지심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지상에서 사역하실 때 괴로움 당하는 사람들을 단지 손을 대기만 하심으로 고치고 회복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장모에게 손을 얹으셨을 때 “열병이 떠났”습니다. 그분이 죽은 아이의 관에 손을 대셨을 때 소년이 살아났습니다. 소경의 눈에 손을 대셨을 때 그들이 보게 되었습니다. 귀머거리의 귀를 만지셨을 때 갑자기 그가 들을 수 있었습니다. 부모들이 예수님께 자녀들을 데리고 와서 “만져주심을 바”라였습니다. 그분의 부드러운 손길이 모든 것을 변화시켰습니다. 수많은 무리가 그들의 병들고 연약한 자들을 데리고 왔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모두를 만지시기 위해 시간을 내시고 그들을 고치셨습니다.

당신이 만약 주님을 진정으로 친밀하게 안다면 예수님의 손길을 알고있고 느꼈을 것입니다. 고독할 때, 낙심했을 때, 혼돈스러울 때, 몹시 고통스럽고 불확실할 때, 당신은 영혼의 심연으로부터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 당신의 만져주심이 필요합니다. 당신의 임재를 느껴야 합니다. 예수님, 오셔서 나의 갈급한 영혼을 만져주십시오!”

어떤 사람은 그들 마음에 주님의 만지심이 필요합니다. 사탄은 자신의 사악한 권세들과 함께 와서 불신의 생각들, 그리스도답지 않은 생각들, 두려운 생각들, 하찮은 생각들, 하나님이 불쾌하시다는 생각들 등등, 지옥에서 나온 생각들로 마음을 괴롭히고 부담을 줍니다. 정직한 신자들은 그들도 이렇듯 마음에 대한 공격을 경험했다고 당신에게 말할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믿음과 주님에 대한 의지를 부수려고 작정하였습니다.

성경에서 보면, 예수님의 만지심은 부르짖음에 대한 응답으로 왔습니다. 그분이 한 번이라도 그러한 부르짖음을 무시했다거나 거절했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당신의 부르짖음에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당신의 필요에 자비롭게 응답하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에서 우리는 나병환자가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하며 주님께 나아오는 것을 읽습니다. 예수님은 손을 내미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오늘 예수님과 따로 있을 장소를 찾아 나병환자가 말했듯이 그분께 말하십시오. “주님, 당신은 하실 수 있습니다. 나를 정결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는 주님이 당신을 만지시고 마음, 육체, 영과 혼을 고쳐주실 것을 기대하십시오. 주님의 손은 당신을 향해 뻗어있습니다만 그분은 필요를 구하는 부르짖음, 도움을 청하는 부르짖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것은 또한 기대하는 부르짖음이기도 합니다.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히며 우리에게 중노동을 시키므로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시고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신26:6-9).

2011년 5월 16일 월요일

하나님이 복주시고 평안히 지키시기를

성령이 나를 움직이셔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것을 묘사하고 있는 출애굽기 12장을 읽게하셨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 문에는 좌우 인방과 설주에 양의 피가 발라졌습니다. 이것은 죽음의 천사가 지나갈 때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날이 되자, 60만 장정들과 여자들,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 즉”(출12:41).

다음 장, 3절에서 나는 멈추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너희를 그 곳에서 인도해 내셨음이니라”(출13:3). 인간의 수단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힘에 의해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받았습니다.

다윗은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견고한 요새시며 나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시며...그가 위에서 손을 매니사 나를 붙드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그들은 나보다 강했기 때문이로다...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삼하 22:33, 17, 18, 31).

우리의 믿음과 힘은 약해 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약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새롭게하고 힘을 주시기 위해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주께서 내게 전쟁하게 하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삼하 22:40).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삼상 2:4).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시 29:11).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나니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시 68:35).

-“내 힘이 쇠약할 때에 나를 떠나지 마소서...내가 주 여호와의 능하신 행적을 가지고 오겠사오며 ”(시 71:9, 16).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시84:5, 7).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하나님이 강하신 것을 믿습니까? 그분이 강하시다면 아무런 능력도 그분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그분의 강력한 힘과 능력의 손안에 맡기십시오. 그분이 길을 여실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말씀을 믿으십시오.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시138:3).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시고 복주시기를.

2011년 5월 13일 금요일

용서받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condemnation)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한복음 5:24). 예수님이 사용하신 condemnation은 헬라어로 심판입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나를 믿는다면 심판에 이르지 않고 죽음을 지나 생명에 이를 것이다.”

진실로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님이 우리의 죄를 사하시면 자신의 기억에서 그 죄들을 지워버린다고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이 사야 43:25).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같이, 네 죄를 안개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 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 이니라”(이사야 44:22).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 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 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예레미야 31:34).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 라”(히브리서 8:12).

“주께서 이르시되 그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히브리서 10:16-17).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미가서 7:19).

여기 자신의 육의 행실을 스스로의 힘으로 억제하려고 땀 흘리고, 노력하고 애써보았던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좋은 소식이 풍성하게 있습니다. 당신도 이들에 포함됩니까? 당신은 결국 지키지 못한 약속을 얼마나 많이 하나님께 했습니까? 당신의 정욕과 습관을 싸워 이김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해 봤지만 또 다시 실패한 적은 얼마나 많습니까?

당신을 위해 미가서에 기록된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너희의 모든 죄악을 진압할 것이다.” 이 구절들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의 죄를 기억에서 지워버리시는 지에 대한 이미지를 연달아 보여주십니다. 그분은 죄를 닦아내시고,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시고, 바다에 파묻어 버리시고, “진압(subdue)”해 버리십니다. 진압해버린다는 것은 끝까지 추격하여 포로로 잡는다는 뜻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우리의 허물을 가져다 어깨너머로 던져버린다고 까지 말합니다.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이사야 38:17). 이것은 하나님이 절대로 우리의 죄를 다시 쳐다보시거나 인정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제 묻겠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잊으셨다면 왜 당신과 나는 잊지 못하는 걸까요? 우리의 모든 죄가 이미 그리스도의 피로 덮였는데 왜 우리는 언제나 마귀가 우리 과거의 오물더미나 수렁을 파헤쳐 우리 면전에 흔들도록 허용하는 것일까요?

정결하게 하고 용서하는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은 모든 것을 총망라합니다. 우리의 전 생애를 덮습니다!

2011년 5월 12일 목요일

승리 직전

만약 당신이 혼돈과 아픔, 고난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라면 아마도 하나님이 그분 자신의 방식으로 당신을 위해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중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이 오직 그분만이 아시는 마스터플랜을 펼쳐 나가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든 고난을 통하여 그분은 일하십니다. 곧 기적이 혼란의 뒤를 따를 것입니다.

성경을 공부해 보면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 가운데서 이 동일한 패턴을 발견할 것입니다. 사례를 볼 때마다 하나님이 자신의 언약을 이행하시기 시작할 때 먼저 지붕이 붕괴되는 듯합니다.

다니엘과 세 명의 히브리 친구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거룩한 삶 그리고 세상과 세상의 모든 쾌락과 단절된 삶에 자신들을 드렸습니다. 다니엘은 기도, 눈물, 그리고 중보의 삶에 자신을 헌신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그와 그의 히브리 친구들 세 명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승리 직전에 시험이 왔습니다!

기도의 골방에서 어떤 승리의 산꼭대기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사자 굴로 갑니다. 헌신함으로써 오직 안락하고 축복받는 삶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불붙는 용광로로 갑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고통과 고난을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항상 하나님의 뜻대로 끝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자들과 불게 타는 용광로를 통과하여 하나님의 완전한 뜻으로 갑니다!

엘리야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그 땅에 영적 각성을 주시고, 풍부한 비를 내리시고, 하나님의 백성이 승리하는 새 날, 그리고 아합과 이세벨을 타도할 것이라는 영광스러운 언약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언약을 주신 후에 발생한 모든 혼란을 보십시오. 이세벨이 그의 목숨을 위협하고 그를 추격하여 산속에 숨도록 만들었습니다. 악의 세력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그 땅에는 여전히 사악함과 가뭄이 계속되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이 속임수처럼 보였습니다.

엘리야가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 상상이 가십니까? “응답받은 기도가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온전히 홀로 남겨졌다. 주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그분의 언약은 실패한 것인가?” 하나님은 이 모든 와중에 그분이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신 대로 정확히 실행하고 계셨습니다. 혼란은 곧 지나가고 응답이 가까이 다가올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모든 혼란과 고통으로부터 그들을 지켜줄 언약을 남겨주셨으나 제자들은 슬픔에 잠겨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마태복음 26:32).

다시 말해서 “모두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 혼란의 시기에 대해 묻지 말라. 그것은 너희들의 전투가 아니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다! 이 일이 모두 끝난 후 나는 여전히 너희 앞서 갈 것이다. 너희의 목자는 여전히 그곳에 있을 것이다.” 참으로 힘을 북돋아 주는 말씀입니다!

2011년 5월 11일 수요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존됨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kept)을 받았느니라”(베드로전서 1:5). 나는 이 예언에서 하나님이 다시 한 번 이 말세에 보호하시는 능력을 그분의 백성에게 나타내실 것이라는 것을 봅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제자들에 관하여 아버지께 기도했습니다.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요한복음 17:12). 제자들이 스스로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도록 지킨 것이 아니라 그들 외부에서 강력한 능력으로 보호 받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지키시는 능력 없이는 그들은 하루도 살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얼마나 영광스러운 기도를 드렸는지 모릅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요한복음 17:15).

헬라어로 kept라는 단어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5절에 쓰인 것처럼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 군사적 전초기지를 세우다.
  • 수비대로 경비하다, 에워싸다, 보호하다.
  • 전 군사 체제와 전 군사 장비를 동원하여 요새를 구축하다.

훨씬 앞서 적을 분별하여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다.

주님은 견고한 망대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완전 무장한 군대가 배치된 군사적 전초기지를 구축하십니다. 우리는 실제로 임전 태세를 갖춘 군인들과 말과 병거가 있고, 훨씬 앞서 다가오는 적을 포착하는 보초가 있는 강력한 군사적 전초기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keep)하시기를...” 여기서 헬라어로 keep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 무엇이든지 나쁘고, 악하고, 비통하게하고, 해롭고, 음란하고, 악의가 있고, 사악한 일의 결과나 영향력으로부터의 구원.
  • 사탄 자신과 그리고 모든 부패하고 병든 것들로부터의 구원.

종합해 보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훌륭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군사적 전초기지로서 전투 대열을 이룬 헤아릴 수 없는 말과 병거와 군인들로 구성되고 모든 적의 계획과 전술에 대한 완벽한 정보를 가진 완전 무장한 영적 군대의 보호를 받으며 사탄과 온 우주의 모든 악의 세력에 대항하여 전적인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말씀,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요한일서 4:4)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1년 5월 10일 화요일

만군의 여호와가 지키심

구약의 성도들은 우리 신약의 성도들이 거의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만군의 여호와로 알았습니다. 사무엘로부터 말라기에 이르기까지 구약에서 200번도 넘게 하나님은 이 이름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는 말씀을 읽습니다. 이 위엄 있는 칭호는 시편에서 반복해서 볼 수 있습니다.

*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 다” (46:7).
*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여 주와 같이 능력 있는 이가 누구리이까 여호와여 주의 성실하심이 주를 둘렀나이다” (89:8).
*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84:8).
*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24:10).

히브리어로 만군(hosts)은 tsbaah입니다. 그 의미는 “임전 태세를 갖춘 군대,”입니다. 예정된 시각에 출전하기 위해 준비된 군인들, 말들과 병거들; 소집되어 점호를 마치고 명령을 기다리는 군대입니다.

한 때, 앗수르 군대가 히스기야 왕과 유다를 향하여 쳐들어왔습니다. 흉포한 군대에 포위당했을 때 히스기야 왕은 요동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를 따르는 온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니라”(역대하 32:7-8).

구약의 성도들은 전적으로 강력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군대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소집된 이상을 보며 안심했습니다. 다윗은 다음과 같이 자랑했습니다. “하나님의 병거는 천 천이요 만 만이라 주께서 그 중에 계심이 시내 산 성소에 계심 같도다”(시편 68:17). 시편 기자에 따르면 그들은 우리를 위해 징집된 것입니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121:5).

우리는 자신의 능력으로 우리를 악으로부터 보호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사탄과 싸우지 않습니다. 만군의 주께서 우리를 지키셔야만 합니다. 성경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그가높은 곳에서 손을 펴사 나를 붙잡아 주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 내셨도다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그들은 나보다 힘이 세기 때문이로다”(시편 18:16-17).

유다서에 보면 우리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유다서 24절).

2011년 5월 9일 월요일

주님은 당신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구약 열왕기하 6장의 스릴 넘치는 이야기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지킴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잘 묘사해줍니다.

아람왕 벤하닷이 이스라엘에 선전포고하고 대군을 이끌고 행진해 왔습니다. 군대가 행진해 나갈 때 그는 종종 그의 전쟁 참모들을 사저로 불러 다음 날의 전략을 짰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엘리사가 적의 군대의 모든 동향을 자세히 이스라엘 왕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엘리사의 경고 덕에 여러 번 패전을 모면했습니다.

벤하닷은 진노하여 자신의 신복들을 불러들였습니다. “우리 계획을 이스라엘 왕에게 일러주는 자가 있도다. 이 반역자가 누구냐?” 그 신복들이 대답했습니다.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주의 진영이나 궁정에는 반역자가 없나이다. 우리는 모두 진정으로 충성된 자들이니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을 이스라엘의 왕에게 고하나이다 하는지라”(열왕기하 6:12).

벤하닷은 엘리사를 체포하기 위해 말과 병거와 군사의 무리를 급파했습니다. “도단으로 가서 그를 나에게 데려오라” 그가 명령했습니다. 그들은 기습하여 늙은 선지자를 데려올 계획으로 밤에 가서 성을 포위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의 사환은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가 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15절) 겁에 질려 엘리사에게 뛰어가 외쳤습니다. “아아, 내 주여 우리는 포위당했습니다. 우리가 어찌 하리이까?”

엘리사는 자신에 찬 미소를 띤채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그들과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열왕기하 6:16-17).

시편 기자와 마찬가지로 엘리사도 위기의 한가운데 서서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말 할 수 있었습니다.

-“천만 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 하지 아니하리이다” (시편 3:6)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 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라”(시편 27:3)
-나를 대적하는 자 많더니 나를 치는 전쟁에서 그가 내 생명을 구원하사 평안하게 하 셨도다(시편 55:18).

나의 기도는 엘리사의 기도와 같습니다. “주님, 우리의 눈을 열어주셔서 만군의 여호와의 불말과 불병거가 가득한 산을 보게 하여 주십시오”

2011년 5월 6일 금요일

가만히 있어 알지어다

전쟁을 그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에 이어 성경은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편 46:10)라고 말씀합니다.

“가만히 있어”라는 말의 히브리 원어는 raphah 로서 중지하다, 내버려두다, 약해지다, 연약해지다, 라는 의미입니다. 어근 rapha 에서 나왔고 고치다, 의사의 손에 의해 완전히 고쳐지다, 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통틀어 일관성이 있습니다! 그분은 전쟁을 그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자신의 일을 마치실 때 까지 우리는 자기 의에서 나온 모든 노력을 그치고, 모든 것을 그분의 손에 맡기고 우리의 약점과 연약함을 고백하고 우리의 미래와 회복을 우리의 위대한 의사이신 그리스도의 손에 맡겨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신자여러분, 당신의 내적 갈등이 당신을 갈가리 찢어놓고 있습니까? 당신은 사탄의 일격을 받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당신을 상하거나 파괴할 수 없습니다. 아마 십중팔구 당신이 하나님을 더욱 훌륭히 섬기는 준비로 심도 깊은 십자가의 계시를 위해 벗겨지고 있는 중일 것입니다.

당신은 오순절로 가기 전 모든 것이 벗겨진 베드로와 같습니다. 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유다의 언덕을 밑바닥에 떨어진 채 목표 없이 방황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베드로는 한 때 물위를 걸었고 기적적으로 많은 무리를 먹이는 것을 도왔습니다. 그는 실제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했고, 축복받고, 뛰어나고, 쓸모 있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종이었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다른 누구보다도 주님을 실망시키는 죄를 범했고 그 후 그의 구원과 사역을 잃어버렸다고 통곡하며 슬퍼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그는 거듭 되뇌어 물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시험을 받을 때 왜 아무런 능력과 힘이 없었을까? 왜 원수를 대적하기 위해 비축된 도덕이나 의지력이 없었을까? 왜 하필 내가 실족한 사람이 되었을까?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이 그토록 끔찍한 일을 그의 주님께 행할 수 있었을까? 위기의 때에 아무런 힘도 없는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설교할 수 있었을까?”

하나님이 베드로의 실패를 야기하신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유익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속사람 안에 깊이 뿌리박은 것을 드러내기 위해 허락된 것으로서 하나님의 사람을 벗기는 일의 일부였습니다. 오직 실패만이 자존심과 자만을 겉으로 드러낼 수 있습니다. 실패가 베드로를 깨뜨려 자신의 순결과 의를 포함하여 모든 일에 주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해야할 필요를 그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십자가 그늘 안에서 우리는 가장 큰 유혹과 실패를 견디고 돌파하여 부활로 나아올 수 있습니다!

2011년 5월 5일 목요일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목표는 평강과 안식입니다

자신의 모든 자녀들을 위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는 풍성함 삶입니다. 그분은 결코 우리가 죄와 실패에 집중한 삶을 살 것을 계획하지 않으셨습니다. 복된 소식은 우리가 절대적인 사랑의 하나님, 자신의 사랑하는 자들을 모든 혼란 너머에 있는 자리로 인도하기 원하시는 자비의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우리를 온전히 동일시하기 전에는 천상의 자리에 그리스도와 함께 앉는 우리의 위치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체험하지 않고는 승천하는 삶으로 들어가는 돌파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우리가 진실로 죽기 전에는 결코 진실로 살 수 없다는 지식을 넣어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관된 운명, 즉 죽음과의 데이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가 어느 위치에 있는 지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두려움, 공허감, 외로움, 실패, 죄와의 타협. 주님이 약속하신 평강을 우리가 실제로 거의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승리하는 크리스천이 어떠해야 하는 지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에 너무 뒤떨어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승리, 평강, 죄의 통치로부터의 자유에 대해 명확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몇 사람이 그 아름다운 확신의 삶으로 돌파해 들어간 것을 보았고 이렇게 묻고 싶어 합니다. 어떻게 그러한 승리에 이르게 되었습니까? 그러고 나서 우리가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까 궁금해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십자가로 이끌어가서 세상과 죄에 대해 죽는 현실을 직면하도록 하셔야만 합니다. 우리가 모든 면에서 주님이 주되심을 원하며 주님을 부지런히 구하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저항할 수 없이 성령께 이끌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헐벗고, 연약하며, 우리 육에 대해 아무런 자신감 없는, 우리 자신의 마지막 종점으로 인도될 것입니다.

나는 성령께서 그분의 교회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의 삶과 동일시하는 영광스러운 진리로 돌이키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죽음은 매우 두려울 수 있습니다. 죽음 건너편의 영광을 볼 수 없다면 특히 두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자신의 영원한 사랑을 우리에게 확신시키시고 평강과 기쁨 그리고 그분의 부활 생명에 대한 소망을 주십니다.

2011년 5월 3일 화요일

데이빗 윌커슨을 추모하며 바칩니다

데이빗 윌커슨은 2011년 5월2일 텍사스주 린데일에 안장되었습니다. 장례식에서 조객들에게 그를 추모하는 영상이 상영되었습니다.
이 영상을 보려면
http://pleasepassthebread.org/2011/05/02/a-tribute-to-david-wilkerson/ 을클릭하십시오. Gwen 사모님을 위해 계속 기도해 주십시오.

2011년 5월 2일 월요일

무제한적인 믿음의 사람

사랑이 넘치는 남편이며 아버지요, 맹목적인 사랑을 베푸는 할아버지. 버림 받은 자와 고통 받는 자의 친구.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능력에 대해 두려움 없는 증인. 그분의 교회를 향해 하나님을 대신한 열정적인 목소리. 과부들과 고아들 그리고 가난한 자들의 다정한 후원자.

그리고 여러 세대에 걸친 영적 아버지 - 가난한 자로부터 권력 있는 자까지, 어른들로부터 십대 청소년들에 이르기 까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인생의 모든 여정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특징은 데이빗 윌커슨의 삶을 정의하는 데 있어 단지 시작에 불과합니다. 그는 60여 년간 전도 사역들을 설립하고 인도하며 주님을 신실하게 섬겼습니다. 이 전도 사역들은 세월이 흐르며 국제적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이 모든 일 뒤에는 하나님이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고 끊임없이 그들에게 다가 가기 원하신다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데이브 형제”라 불리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자신의 무제한적인 믿음으로 인해 실제로 수백만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갱 멤버였던 사람들의 인생도 변화시키실 수 있다고 믿었고 또한 가장 절망적인 마약 중독자들도 변화시키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는 뉴욕시 타임즈 스퀘어 한 복판에 역동적인 교회를 세울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내와 자녀들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했습니다.

데이빗 레이 윌커슨은 1931년 5월 19일 Indianna 주 Hammond에서 헌신적인 오순절파 설교자들 집안에 태어났습니다. 순복음 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일생의 반려자로서 이후 57년간 그의 사역현장에서 함께 섬긴 그웬돌린 카로쏘와 결혼하였습니다.

시초부터 데이브 형제는 사역에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정신을 적용했습니다. 한편 하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서 일하신다고 믿으며 고민과 아픔을 가지고 설교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스스로를 계시하시기 위해 세상의 지혜를 부끄럽게 하신다는 것을 알았고 이 진리는 데이브 형제가 설립한 사역들을 통해 거듭 증명되었습니다.

1958년 그는 뉴욕 시에서 재판을 받던 갱 멤버에게 전도하기 위해 펜실바니아 주 필립스버그에 있던 자신의 작은 교회를 떠나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그의 형제 던 윌커슨에 따르면, “그는 뉴욕에 가 본 적이 없어요. 더군다나 갱 멤버나 마약 중독자를 만난 적도 없어요.” “그는 그저 단순하고 순수하게 (당신이 좋을 대로 부르세요) 이곳에 왔고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어요.”

데이브 형제의 친구며 뉴욕 타임즈 기자인 맥캔들리쉬 필립스가 기록하였듯이, “그의 방식은 단순, 직설적이며 총체적으로 세련되지 않음의 절대적인 모델이었습니다. 그는 그저 거리로 나가 아이들과 어울렸고 얼굴을 맞대고 설득하고, 때로 성경을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성공했습니다.”

이와 같은 담대한 활동으로부터 그리스도 중심의 마약과 알코올 재활 프로그램인 Teen Challenge사역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사역은 5천만여 부가 팔리고 30개 언어로 번역된 The Cross and the Switchblade (십자가와 잭나이프) 라는 책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과 80여 개 국에 걸쳐 1,000 곳이 넘는 센터로 성장하였습니다.

그 후 주님은 데이브 형제를 감동시켜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인 Youth Crusade를 설립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들 전 세대가 자신들의 삶이 하나님께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에 고무되었습니다. 데이브 형제는 또한 다수의 저술을 남겼습니다. 그의 책들은 여러 세대의 독자들을 그리스도안에서 거룩한 헌신의 삶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그가 집필한 많은 책들은 강력한 직관, 명확성과 신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연약함과 자신에 대한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에 대해 지속적으로 말하며 자신이 쓴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동명의 옛 다윗 왕처럼 데이브 형제도 그의 세대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그는 불굴의 열정을 가지고, 끝까지 기품을 지키며 설교했습니다. 그는 팡파르나 환호, 거창한 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세계 지도자들과의 만남에 초대하는 제안은 거절하였지만 가난한 고아와 절망에 빠진 과부들에게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었습니다.

지상에서 아버지의 마지막 임무는 가난한 자 중에서도 극빈자를 위해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과 빈곤한 나라들의 굶주린 아이들과 과부들과 고아들을 구제하고 지원하는 일입니다. 이 사역을 위해 그가 설립한 Please Pass The Bread는 8개국에서 56개의 사역처를 통해 매일 수 천 명의 어린이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자신의 경주를 달렸고 임무를 완수했을 때 그는 본향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데이빗 윌커슨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감동시켰고 하나님의 감동으로 설립한 사역들은 이제도 살아남아 있습니다. 그의 설교, 저술, 세상을 변화시킨 사역들에서 뿐만 아니라 그의 사랑, 헌신, 연민, 더 위대한 일을 향해 우리의 믿음을 촉구하는 능력에 있어서도 그의 삶의 영향력은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데이빗의 아들 개리는 그의 아버지를 알고 사랑했던 모두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드립니다. “내가 알기로는 만일 아버지가 오늘 말씀으로 당신을 격려할 수 있었다면, 당신의 전부를 예수님께 드리고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 당신을 내어주라고 초청했을 것입니다.”

데이브 형제의 마지막 블로그 포스팅 “모든 수단이 실패로 끝났을 때”는 그에게 감동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드리는 적절한 하직 인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오직 선과 사랑으로 행하시는 데 결코 실패하신 적이 없습니다. 모든 수단이 실패로 끝났을 때 그분의 사랑은 승리합니다. 당신의 믿음을 단단히 붙드십시오. 그분의 말씀 안에 견고히 서십시오. 이 세상에 다른 소망은 없습니다.”

데이빗 윌커슨의 소천은 많은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깊은 상실입니다. 하지만 그가 헌신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예수님을 열정적으로 사랑하며 보람되고 충만한 삶을 산 것을 알기에 우리는 기뻐합니다.

그의 유족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인 Gwen Wilkerson,
딸 Debi Jonker, 사위 Roger, 손자 Brent 와 Matthew, Matthew의 부인 Christina 와 증손녀, 손자, Eva 와 Grant;
딸 Bonnie Hayslip, 사위 Roger, 손자 David 과 Brandon, Brandon의 부인 Christina;
아들 Gary Wilkerson, 부인 Kelly 와 손자 손녀, Ashley, Elliot, Evan 과 Annie;
아들 Greg Wilkerson, 부인 Teresa 와 손녀 손자, Alyssa, Ryan;
형제들, Don Wilkerson, Jerry Wilkerson, Ruth Harris.

그의 손자들이 관을 메는 일에 수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