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31일 수요일

하나님은 내 모든 질문에 답이 있으신가요?

자신의 기도생활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원하는 신자는 누구나 이 질문을 해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을 갖고 계신가? 답을 찾기 위해 다른 곳으로 가야할까?”

이 질문은 물어 볼 필요조차 없는 것처럼 단순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크리스천들이 즉시 “네, 물론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내가 필요한 전부를 갖고 계신다고 믿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완전히 확신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에 관한 찬송을 부르고 설교합니다. 하지만 위기가 닥치고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는 듯 보일 때 우리는 그분이 우리가 필요한 것을 갖고 계신다고 실제로 믿지 않습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립보서 4:19). 주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기 위해 풍요로운 창고를 갖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곤경에 처한 여인은 왜 정의롭게 재판해주기를 요청하며 불의한 재판관을 번거롭게 했을까요? 그 사람만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권세와 권위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누구에게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누가복음 18:1-8 참조).

만일 우리에게 하나님만이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갖고 계신다는 내적 지식이 있었다면 우리는 절대로 헛되이 다른 공급원에게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은 정의롭고 거룩한 재판관이시고 우리가 직면하는 어떤 문제라도 해결하시는 모든 지혜와, 능력과 권위를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이 지속적으로 그들의 원천이요 공급자가 되실 것이므로 그들이 절대로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이스라엘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40년을 보내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다님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신명기 2:7).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에게는 부족함이나 결핍함이 없다. 나는 네가 필요한 모든 것을 갖고 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신명기 8:7-10, 12).

오늘날 주님은 우리를 약속의 땅, 즉 그리스도 안으로 인도해 들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거처이십니다. 그분은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나타나신 분입니다.

2011년 8월 30일 화요일

그분의 능력의 우렛소리

“보라 이런 것들은 그의 행사의 단편일 뿐이요 우리가 그에게서 들은 것도 속삭이는 소리일 뿐이니 그의 큰 능력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헤아리랴”(욥기 26:14).

사람은 능력이 필요합니다
능력이 없는 자를 돕기 위해,
힘없는 자들을 강하게 하기위해,
지혜 없는 자에게 조언하기 위해
사물의 진면목을 선포하기 위해
죽은 영들을 새롭게 하기 위해
지옥의 벗은 멸망을 가리기 위해.
하나님은 모든 능력이 있습니다.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시며
허공에
우주를 펼치시기 위해.
수면에 경계를 그으시며
빽빽한 구름으로 물을 싸십니다.
능력으로 바다를 가르시고
교만한 자를 치십니다.
그의 입김으로 하늘을 맑게 하십니다.
날렵한 뱀도 지으셨으나,
이것들은 그분의 능력을 일별한 것뿐입니다-
들은 것도 그분에 대한 단편일 뿐입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들에게 능력을 약속하셨습니다.
이후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 안에 우렛소리가 있을 것입니다-
불공평, 부도덕과 범죄에
대항하는 우렛소리
위선과 사소한 일에 대한 압제에
대항하는 우렛소리
물질주의와 증오에
대항하는 우렛소리
그러나 한결 더 깊이,
사랑
그것이 능력의 우렛소리입니다.

2011년 8월 29일 월요일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분의 손바닥에 새겨져 있습니다

다음은 내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의 하나입니다.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이사야 49“:13-16).

하나님은 내가 바로 그분의 손바닥에 새겨져 있다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어로 “새겨졌다(tattooed)”는 말은 제거할 수 없는, 지울 수 없는 이란 뜻입니다. 그분은 손을 내밀 때 마다 나를 기억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에게 확신을 주기 원합니다: 당신은 시련과 고난을 통과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당신은 주님 안에 있기를 소원하지만 현실은 거리가 멀지 모릅니다. 하지만 다른 어떤 것보다도 한 가지는 당신이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그분께 기쁨입니다!

나는 내 심령으로 확신과 지식을 가지고 당신에게 글을 씁니다. 비록 내가 아직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그분은 나를 그분의 남은 자 중 일부분으로 만드셨습니다. 전심으로 나는 내가 왕관, 그분의 손 안의 왕관이고, 그분의 영혼의 기쁨인 것을 믿습니다. 그분은 나에게 진노하지 않으십니다-나를 기뻐하십니다!

이 경이로운 약속을 들어 보십시오:

“내가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은 주께서 나의 고난을 보시고 환난 중에 있는 내 영혼을 아셨으며 나를 원수의 수중에 가두지 아니하셨고 내 발을 넓은 곳에 세우셨음이니이다...........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시편 31:7-8, 19).

하나님은 당신이 자유롭고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셨습니다. 당신의 상황을 보시고, 그분은 돌아보십니다. 당신이 그분을 부를 때 그분은 당신을 껴안고 그 순간 당신을 돕기 위해 나아오실 준비가 되어있으십니다.

2011년 8월 26일 금요일

무한 출입권

매 4년 마다 1월 달에 미국에서는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지위”라고 불리는 대통령이 취임합니다. 그의 서명은 곧 법입니다. 그는 세계에서 제일 막강한 군대를 통솔합니다. 그리고 단추만 하나 누르면 전 세계를 파멸로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당신과 나에게 주신 권세에 비교하면 그가 장악하고 있는 권력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 존전에 출입할 절대적 권리가 있습니다-뿐만 아니라 그분이 우리에게 오시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브리서 10:19-22).

이 출입권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야 유효하게 되었습니다. 성전의 휘장이 둘로 갈라진 그 순간에 발효한 것입니다. 이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의미는 인간은 들어갈 수 있고 하나님은 나오실 수 있어, 그분이 우리를 만나시게 된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담력이라는 말은 “터놓고 꾸밈없이 공표”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공표”는 마귀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옥에 있는 모든 귀신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나는 하나님 존전에 들어가 그분께 말씀드릴 수 있는 권리가 있고-그분도 나에게 말씀하신다!”

당신은 이런 권리, 즉 하나님이 기꺼이 나오셔서 당신을 만나시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믿습니까? 온전한 믿음으로 가득 찬 심령으로 그분께 더 가까이 가도록 합시다! 우리는 새나 염소 또는 소의 피를 의지하여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 예수의 피를 의지하여 나아갑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브리서 9:12-14).

자신의 자녀가 주뼛거리지 않고 담력을 가지고 자기에게 나아오는 것보다 더욱 하나님의 마음을 감격하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나는 이곳에 올 권리가 있다. 내 심령이 나를 정죄할 지라도 하나님은 내 심령보다 위대하시다!”(요한일서 3:20 참조)라고 말하며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2011년 8월 25일 목요일

하나님은 당신에게 말씀하시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마치 당신이 그분과 함께 앉아 식사하고 있는 것처럼 당신에게 말씀하기 원하십니다. 어떤 것이든 모든 문제에 대해 마음과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기 원하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오한계시록 3:20).

이 구절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자주 쓰입니다. 입구를 찾으며 죄인의 심령의 문 앞에 서 계신 예수님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 그리스도는 믿는 자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용을 보면 그리스도가 흰옷(의)이 입혀진 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불로 연단한 금을 사고, 그들의 눈에는 기름이 발라지고(계시를 받음), 사랑을 받으며 책망을 받고 징계를 당하는 자들입니다. (요한계시록 3:15-19 참조). 이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알기 원하는 회개하고 거룩한 백성들입니다!

이 구절에서 20절을 되풀이하여 읽을 때 세 단어가 계속 나를 향해 뛰어 나왔습니다. “문을 열어라! 문을 열어라!” 그러자 하나님의 영이 내 심령에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데이빗, 내가 들려지기를 원하는 만큼 네가 나의 말을 듣지 못하는 이유는 네 심령이 활짝 열고 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이 문은 헌신을 상징합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아직 온전히 이루지 못한 부분 입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기도합니다. “주님, 제가 필요한 것은 약간의 충고, 갈 바를 지시해 주는 몇 마디 말씀이 전부입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상기 시켜주는 것 말입니다. 내가 잘하는지 잘못하는 지만 알려주십시오. 내 앞서가시며 문들을 열어주십시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대답하십니다. “네가 나에게 원하는 것이 지시가 전부라면 나는 너에게 선지자를 보낼 수 있다. 네가 알고자 하는 것이 다만 어디로 가며 무엇을 해야 하는 가라면, 내가 어떤 사람을 보낼 수 있고 너는 그를 통해 모든 것을 여과시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너는 나를 놓치게 된다!”

예수님은 당신과 가까워지고 당신의 감정 깊은 곳, 문을 잠근 당신의 방을 원하십니다. 그분은 당신과 앉아 그분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모두 나누고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말씀하기 원하십니다. 계시록 3장은 이에 대한 멋진 묘사입니다. 사랑과 친밀함, 비밀을 나눔, 부드러운 음성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이 들어오실 때 그분은 양식과 떡을 가지고 오십니다-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을 가지고 오십니다. 당신이 그분을 먹을 때 온전히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2011년 8월 24일 수요일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에베소서 3:17-19).

여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라는 말은 “네 발아래 너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이해하는 깊고 튼튼한 기초를 쌓으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지식이 다른 모든 진리가 그 위에 쌓아올려져야 하는 기초적인 진리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함이 세워져야 할 기초입니다. 하나님을 거룩하게 경외하는 것은 당신이 사소한 잘못을 하다 들켰을 때 그분이 기다렸다는 듯 매를 들 것이라고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반역에 대한 그분의 거룩함을 두려워하는 것이며 빛보다 흑암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어떻게 행하시는 지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죄책감, 두려움과 정죄감 가운데 사는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천부께서는 우리의 죄와 연약함을 위해 죽게 하시려고 그분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당신에 대한 그러한 사랑을 온전히 알고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면 당신은 결코 안정되고 영원한 기초를 갖지 못할 것입니다!

“능히..............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comprehend, KJV)...”(에베소서 3:18-19). 헬라어로 comprehend 는 여기서 “열심히 파악하고 붙들다”라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사도 바울은 당신이 이 진리를 파악하여 당신의 크리스천 신앙생활의 기반이 되도록 하라고 합니다. 당신이 영적인 손을 내밀고 “나는 이 진리를 붙들 것이다!”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당신은 떨어버릴 수 없는 듯 보이는 유혹에 공격당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또는 절대로 기대치에 이르지 못하고 자격이 없다는 생각- 마귀가 당신을 넘어뜨려 하나님을 실망시키도록 만들 것이라는 두려움-을 지고 다닐 수도 있습니다.

오늘이 바로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눈뜨는 날입니다! 당신이 이 메시지를 읽을 때 무언가 당신의 심령 깊은 곳을 두드려 “데이브 형제여, 당신 말이 맞아요. 그게 나예요. 나는 그런 식으로 살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당신이 이 진리를 붙들기를, 그리하여 이 진리가 당신의 눈을 열고 그분과 함께 동행하는 매일의 여정에서 전혀 새로운 기쁨과 평강의 영역에 들어가도록 돕기를 기도합니다.

2011년 8월 23일 화요일

출구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곧은 길이 큰 물에있었으나 주의 발자취를 알 수 없었나이다”(시편77:19).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피할 길을 주시겠다고
유혹으로부터-
바다로 향하는 길,
큰 물속으로 난 통로.
나는 근심하여
심령이 상하였습니다.
피할 길?
바다 속으로?
깊고 큰 물속으로?
난 깊이 생각하고
부지런히 찾았습니다.
깊은 물이 나를 둘러싸고
시련의 바다에서 난 헤엄쳤습니다.
주님은 나를 버리셨나요?
더 이상 총애하지 않으시나요?
그분의 자비가 영원히 사라졌나요?
은혜 베푸시기를 잊으셨나요?
진노하셔서 나를 가두셨나요?
혼돈의 바다 가운데?
그러자, 난 기억했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백성을 양떼처럼 인도하셨던것을
모세의 손으로
큰 물 가운데로.
하나님이여 물들이 주를 보았나이다
물들이 주를 보고 두려워하며 깊음도 진동하였고
순종하여
물들이 갈라졌습니다.
나도 믿음으로 걸으렵니다
큰 물속으로,뒤에서 당신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계속 걷겠습니다.
기억할 것입니다,
어떻게 그가 바다를 갈라
물을 무더기 같이 서게 하셨는지.
난 지나갈 것입니다.
그들과 함께.

2011년 8월 22일 월요일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기

당신이 갈 바를 알기 원한다면 - 그분이 요청하시는 일을 행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마음을 동요하는 말씀, 고생스럽고 거부당하는 임무, 성령의 위로 외에는 아무 편안함도 보증되지 않는 믿음의 삶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그것이 바로 이사야에게 일어났던 일입니다! 이 선지자는 “주여 나를 보내소서.” 자원했고 하나님은 고생스럽고 어려운 임무에 파견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이사야 6:9-10).

이사야가 들었던 말씀은 듣기 좋은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가 미움 받고 인기 없도록 만들 말씀 이었습니다. 주님이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내가 하는 말을 듣기를 거부하는 자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라! 그들의 눈과 귀를 닫아라-그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일을 완수하라!”

당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알기 원한다면 그분이 말씀하시는 모든 것을 기꺼이 들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누가 갈꼬?” 묻기 전에는 절대로 “가라!”고 말씀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은 당신에게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기꺼이 무엇이든지 하며 또 기꺼이 내 방식대로 하겠느냐? 네 생명을 기꺼이 내려놓겠느냐?”라고 물으시며 오십니다.

수 년 전 나의 갈 바에 대해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뉴욕으로 돌아가라.” 그것은 내게 아주 심기가 불편한 말씀이었습니다. 나는 은퇴할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책을 저술하고 장소를 선정하여 설교할 계획이었습니다. 나는 생각했습니다. “주님, 나는 이미 그곳에서 내 인생의 황금기를 보냈습니다. 그만 하시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 합니다 하지만 편안하게 듣고자 합니다! 우리는 그것이 우리를 흔들기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분에게 순종할 것을 확신하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지시하시는 음성을 들려주시겠습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그 때에 들은 것에 먼저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배웠습니다.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아들 이삭을 희생 제물로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창세기 22:2 참조).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행동으로 옮겼고 그의 순종은 온 세상을 감동시키는 향기로운 흠향이 되었습니다.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창세기 22:18).

2011년 8월 19일 금요일

그분의 음성을 듣고 알기

베드로는 말세의 성도들에게 사탄이 그들을 두렵게 하려고 큰 음성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베드로전서 5:8).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입니다. 이 말세에 사탄이 자기의 능력을 수많은 길 잃은 영혼들에게 나타내고자 자기 음성을 알린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의 천부의 음성을 아는 것이 얼마나 더 중요하겠습니까? 사탄이 세상에 대고 울부짖을 때 주님이 무심하게 잠자코 계시리라 생각합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이사야가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장엄한 목소리를 듣게 하시며”(이사야 30:30).

아담과 하와의 때부터 하나님은 인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창세기 3:8). 아담의 말입니다.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두려워하여...”(창세기 3:10).

창세기로부터 신약의 끝까지, 하나님은 자신의 음성을 알리셨습니다. 선지서들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반복되어 나오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음성은 알려졌었고 이해되었습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선한 목자의 예를 들어 이것을 확인시켜주셨습니다.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요한복음 10:3-4).

아담은 자신의 죄에 대한 죄책감과 수치심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숨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 중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기 두려워하여 숨어버립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한다면 당신의 영혼을 정화하고 깨끗케 할 준비가 되어야만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한일서 1:9).

2011년 8월 18일 목요일

나는 네 하나님이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10).

아브라함,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너의 하나님이시라
너를 구원하고 굳세게 하시리라
너의 조상들에게 하셨듯이
너를 도우시고,
붙드시리라,
너를 지키시리니,
두려워 말라, 낙담하지 말라.
그분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아는 자들은
위업을 행하고 강해지리라.
그분이 네 원수와 보복하는 자들을 잠잠케 하시리라.
네 연약함 가운데
그분이 자신의 힘을 온전케 하시리라
그분의 손안에 모든 권세와 능력이 있으므로
네가 구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너머 넘치게 행하시리라.
그분이 네게 말씀하시니라,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
나는 네 하나님이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2011년 8월 17일 수요일

창고로 가십시오!

하나님의 창고로 가서 당신이 필요한 것을 취하는 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그분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가 당신이 모든 유혹과 시련을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모든은혜와 자비를 대량으로 구하십시오. 사탄은 당신이 죄의식을 느끼고, 두려워하고 정죄당하고 혼돈스럽게 만들 수 있는 백만 가지 방법이 있고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네 마음속에 쓸모없는 잡동사니가 들어있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래 전에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를 그쳤습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새카맣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내 아버지가 보시기에는 어린 양의 피로 덮여 있기 때문에 하얗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느끼든지 상관없습니다. 그저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분이 깨끗이 없던 일로 만드셨습니다!

2. 당신을 들어오라고 하신 것은 그분의 뜻이었던 것을 하나님께 상기시키십시오. 당신이 “아버지, 나는 당신이 소유하신 모든 것을 원합니다,”하며 주님께 가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내 것은 전부 네 것이다. 들어와 취하라!” 말씀하시며 당신을 초청했습니다.

3. 그분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받아들이십시오! 성경은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갖고 계신 모든 것은 믿음으로 획득할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당신은 다만 믿음으로 “주 예수님, 당신이 그것이 내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니 당신의 평강에 잠기게 하소서. 내 영혼을 위해 안식을 구합니다.” 당신의 노력으로 이룰 수 없습니다. 찬양이나 경배로 임하도록 할 수 없습니다.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에 뿌리를 내리고 기초를 둠으로 오는 것입니다. 어떤 느낌으로 온다기 보다는 그분 자신이 말씀하신 말씀 가운데 옵니다: “내 집에는 남아돌 만큼 양식이 넉넉하다!”

4.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당신의 모든 두려움, 죄의식과 정죄감을 망치로 쳐서 산산조각 내십시오! 이 모든 것을 거부하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마귀로 내게 와서 거짓말을 하게하라. 내 아버지께서 이미 다 알고 계신다. 그분이 나를 용서하시고 깨끗이 씻으셨다. 내게는 죄의식이나 정죄가 없다. 나는 자유롭다!”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이 이 진리를 붙들어 뿌리를 내리고 기초를 두도록 지금 성령께 도우심을 청하면 당신의 앞날은 이제껏 지내온 날들 가운데 가장 멋진 날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해도 됩니다. “주 예수님, 앞으로도 실수할 것을 알지만 승리를 얻고 그 안에서 살기위해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당신이 갖고 계시기 때문에 아무것도 나를 흔들지 못할 것입니다.”

그분의 창고로 와서 당신의 사랑하는 아버지가 주시는 당신 소유 전부를 청구하십시오!

2011년 8월 16일 화요일

걸인처럼 살기를 그치십시오

당신이 필요한 모든 것이 공급되어 있는데도걸인처럼 사는 것이 지겹습니까? 어쩌면 당신의초점이 잘못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당신은자신의 약점이나 유혹에 넘어간 일 그리고 과거의실패에 연연하는 경향이 있습니까? 자신의마음을 들여다보면 거기서 보이는 것들이 당신을낙심하게 만듭니까? 죄의식이 스며들도록내버려두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사탄이 와서 당신 마음에 있는 어떤 약점을지적할 때 마땅히 다음과 같이 대답할 권리가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이미 모든 것을 알고계시고 여전히 나를 사랑하신다! 승리를 얻고그것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그분이나에게 주셨다.”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때문이라”(요한일서 3:20). 그분은 당신에 대해모든 것을 아시며 “들어와 네가 필요한 모든 것을가져라. 창고가 열려있다!”고 말씀하실 만큼여전히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분의 창고 문은 활짝 열려있으며 그분의 부요는차서 넘쳐흐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재촉하고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브리서 4:16).

얼마나 오랜 동안 당신은 밖에 있었습니까?당신에게는 당신을 위해 예비한 엄

2011년 8월 15일 월요일

잔치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칫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아가서 2:4).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의 기쁨은 아들과 함께 연회석에 앉기 전까지는 완벽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이 용서받았으며 그의 죄가 씻어졌음을 알도록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어린 양을 먹으며 식탁에 앉아있어야만 했습니다!

당신이 만약 그 순간 창문으로 들여다보았다면 지금 막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진정한 계시를 접하게 된 젊은이를 보았을 것입니다. 그는 춤추고 있습니다! 음악이 흐르고 그는 웃으며 행복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미소 지으며 그로인해 즐거워합니다!(누가복음 15:25).

그는 두려움의 구름아래 있지 않습니다. 그는 “너는 곧장 돼지우리로 가게 될 것이다! 너는 이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하는 원수의 상투적인 거짓말에 귀 기울이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의 용서를 받아들였고 들어오라는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였으며 자신이 필요한 모든 것을 취하였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자기와 자기 형에게 속삭이는 말을 들었습니다.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앞으로 다시는 굶주릴 필요가 전혀 없다. 너는 절대로 외롭거나 거지가 되거나 나의 창고로부터 차단당할 일이 없다”(누가복음 15:31참조).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 하나님의 사랑의 충만, 바로 그 핵심이 있습니다! 우리의 흑암의 시기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옹하고 이끌어 들이실 뿐 아니라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아 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잔치를 베푸는 내 집에는 내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풍성한 진수성찬이 있다”(누가복음 15:22-24 참조).

오늘날 우리는 이보다 더 나은 약속이 있습니다.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에베소서 3:19-20).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약속이 여기 있습니다. “나는 너에게 넘치도록 풍성한 충만- 모든 위기에 대한 대비책, 네 전 생애에 걸친 기쁨-을 베풀어 준다. 너는 창고로 가서 그 모든 것을 청구해도 된다!”

2011년 8월 12일 금요일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무조건적인 사랑

탕자의 비유는 두 아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한 아들은 자기 자신의 자원들이 고갈된 지경에 이르렀고 다른 아들은 자기 아버지의 자원들을 청구하지 않았습니다. 이 비유는 또한 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그의 집에 있는 양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작은 아들이 그의 아버지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누가복음 15:12). 그가 받아 허비한 분깃은 자기 자신의 지분, 즉 그의 재주, 능력, 인생과 삶에서 부딪치는 모든 문제에 직면하여 그가 사용했던 모든 것을 나타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이지적이고 위트가 넘치고 든든한 배경이 있다. 세상으로 나가 혼자 잘 해낼 수 있다!”

작은 아들의 태도는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들의 모습을 묘사해 줍니다. 하지만 어려움이 닥치면 얼마나 빨리 우리 자신의 자원은 바닥나는지요! 얼마나 신속하게 우리 자신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소비해 버리는 지요! 우리는 얼마간 문제들에서 빠져 나올 길을 생각해 내기도하고 다소 시련들을 견뎌낼 내적 힘을 찾아내기도 합니다만 기근이 영혼을 공격하는 때가 오고 맙니다!

당신은 어느 길로 향해야 할지 알지 못한 채 당신 자신의 막바지에 도달합니다. 당신의 친구가 도울 수 없습니다. 당신은 고통당하며 당신 안에 의지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텅 빈 채 남겨집니다. 당신은 녹초가 되고 모든 투지를 잃습니다! 당신에게 남은 것은 두려움, 우울, 공허함, 무기력이 전부입니다.

당신은 아직도 텅 빈 가운데 뒹굴며 굶어 죽어가면서 마귀의 돼지우리 언저리를 맴돌고 있습니까? 그것이 바로 탕자에게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의 안에는 의지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자원들을 탕진했고 전적으로 자신을 의지했던 것이 그를 어디로 끌고 왔는지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가 제 정신이 들도록 만든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그가 자기 아버지의 집에 있는 모든 풍족한 양식을 기억했을 때였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충분히 많지 않은가!” 그래서 그는 돌아가 아버지의 풍족한 양식을 제 것으로 만들기로 작정했습니다!

이 비유에서 탕자가 그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 때문에 돌아왔음을 암시하는 말은 단 한 마디도 없습니다. 진실로 그는 회개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나는 아버지와 하나님을 거슬러 죄를 지었습니다. 아버지 집에 들어갈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외치며 무릎을 꿇었으나, 결코 “아버지, 아버지를 사랑하기에 돌아왔습니다!”라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계시된 바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는가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사실은 우리가 마음속으로 그분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조차도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2011년 8월 11일 목요일

영광가운데 있는 보배들

우리가 쓰도록 영광가운데 간직해두신 풍성한 부요와 연관된 하나님의 공급하심은 그분의 사랑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어느 때나 승리하며 살도록 돕기 위해 우리에게 삶의 모든 위기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수 주간 나는 기도했습니다. “주님, 당신의 마음을 알고 싶습니다. 내 서재에 있는 어떤 책에서도, 지상에 살았던 가장 거룩한 사람에게서도 나를 향한 당신의 사랑에 대한 계시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당신으로부터만 올 수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마음으로부터 직접 나오는, 나 자신의 것인, 당신의 사랑에 대한 계시를 원합니다. 아주 똑똑히 보아서 내가 당신과 동행하는 법과 내가 사역하는 길을 바꾸고 싶습니다.”

기도하면서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분의 사랑에 대한 계시가 영광의 홍수처럼 내 영혼에 밀려들어 올까? 어떤 대단한 통찰력의 형태로 나타나서 나를 숨 막히게 할까? 그분께 매우 특별하다는 느낌일까? 또는 너무 생생하여 영원히 나를 변화시킬 나를 만지시는 그분의 손길일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단순하고 작은 구절을 통해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사랑하사........주셨으니”(요한복음 3:16). 그분의 사랑은 영광가운데 있는 그분의 부요 - 우리를 위한 그분의 풍성한 공급하심-과 묶여있습니다!

성경은 주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그분에 대한 순종으로 나타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은 다른 방법 - 그분의 주심-으로 증거됩니다. 주시는 하나님으로 그분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그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천부의 모든 보배, 영광과 상급들을 그분의 아들 예수에게 투자하신 다음 예수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골로새서 1:1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2:9-10). 다시 말해서 “그분 안에서 너희는 모든 것을, 네가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값없이 베풀어주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시간을 내는 크리스천들이 매우 희박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추구하지도 않고 소유하지도 않기에 종종 그리스도의 보배들이 청구되지 않은 채 영광가운데 놓여있습니다!

우리가 영광으로 들어갈 때 얼마나 충격을 받을까요! 그 때에 하나님은 그분의 사랑이 공급해 주셨던 모든 부요를 우리에게 보여주실 것이고 우리가 어떻게 그것들을 사용하지 않았는지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2011년 8월 10일 수요일

하나님의 사랑을 믿기

성령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잘 이해하도록 기도하라고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요한일서 4장 16절을 읽은 후에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며 동행하는 데 대해 내가 거의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나는 대부분 크리스천들이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신학적으로만 안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사랑에 대한 성경말씀을 배웠고 설교를 들었지만 그들이 이해하는 것은 어린이 찬송 가사에 나오는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있네,” 정도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세상과 길 잃은 자들을 사랑하신다고 믿습니다만 그것은 추상적인 믿음입니다! 근거를 가지고 “네, 나는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심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사랑에 대한 지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내가 매일 살아가는 기반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크리스천은 많지 않습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매일 매일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가운데 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죄의식, 두려움과 정죄의 구름 하에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정죄가운데 살라고 당신을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한복음 5:24).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로마서 8:1). 모든 죄의식과 정죄는 마귀로부터 오는 것이 명백합니다. 정죄라는 단어에는 진노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당신이 그분의 심판 아래로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즉 심판의 날에 당신이 그분의 진노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죄라는 말은 또한 “결코 기준에 못 미치는 느낌”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신자는 결코 기준에 못 미치는 느낌을 갖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에베소서 3:17-19).

여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진다는 말은 “당신 발아래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이해하는 깊고 안정된 기초를 다지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지식이 다른 모든 진리가 세워질 기초적인 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2011년 8월 9일 화요일

예수님, 입혀주소서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전신 갑주를 입으라”(에베소서 6:11).

예수님,

당신은 마귀를 대적하라 그러면 도망칠 것이라고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대항하지 못합니다.
당신이 내게 필요한 모든 능력과 대항하는 힘을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니 대적할 힘을 내게 주소서.
당신은 내가 내 산들을 움직일 수 있다고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내가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다면.
하지만 나의 산은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에 대한 내 믿음이
내 생각만큼 크다 할지라도.
당신은 하늘과 땅을 창조 하셨습니다.
나의 산을 옮겨 주소서.
당신은 “악은 모양이라도 피하라”고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힘껏 도망쳤습니다,
그래도 죄가 나를 따라 잡았습니다.
가장 열심히 노력할 때 말입니다.
당신은 능력이 있으십니다.
기적과 표적과 기사로
대적의 모든 권세를 이기는.
사탄의 함정에서 나를 건지소서.
나는 전신갑주를 입을 기운도 없습니다.
그러니 나의 병기든 자가 되셔서 입혀주소서.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아오니 내 대신 해주소서.

2011년 8월 8일 월요일

요셉은 성령의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언제나 사람들을 그분께로 부르십니다 -거룩, 마음의 순결함, 분리된 삶으로- 그리고 모든 세대에서 남은 자가 이 부르심에 대답합니다. 요셉은 아주 어린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그의 형들 열 명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의롭게 행하라는 동일한 부르심을 받았으나 세상에 남기로 선택했습니다.

적어도 두 경우에서 모든 야곱의 아들들이 성령의 부르심을 아주 명확하게 받았습니다. 첫 번째는 야곱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을 때입니다(창세기 33:18-20). 야곱은 아들들을 제단으로 불러 그분을 예배하고 주님께 무릎꿇고 그분을 따르자고 하였으나 요셉의 형들은 돌이켜 도리어 복수하고 피를 흘렸습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이 명확하게 이 열 명을 부르신 것은 벧엘에서 였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아들들이 우상숭배에 빠지고 순결과 의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하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들에게 경고했습니다.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창세기 35:2-3).

이것은 모든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가장 명확한 부르심의 하나입니다. 히브리어로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는 말은 정신과 마음의 도덕적, 영적 정화를 의미합니다. 외부적으로 야곱의 아들들은 순복했습니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4절). 그러나 그들의 회개는 표면적인데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회심하지 않았습니다. 즉시 반란, 증오, 시기와 투쟁으로 돌아갔습니다!

요셉은 그의 형들과 달랐습니다. 그의 회개는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이 었습니다. 그는 성령의 부르심에 응답했고 전적으로 주님을 따르기로 작정했습니다. 부도덕하고 악한 환경가운데에서도 요셉은 깨끗한 손과 순전한 마음을 유지하였습니다.

요셉은 집안의 양떼를 돌보던 그의 형들을 돕기 위해 들로 보내졌습니다. 그러나 곧 그의 형들이 이방인들처럼 말하고 생활하였기 때문에 슬퍼하였습니다! 그의 순전한 마음은 자기 가족의 사악함으로 인해 부서졌습니다.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37:2), 요셉은 아버지에게 그의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습니다. “아버지, 그들이 어떻게 사는 지 믿지 못하실 겁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하나님을 거슬러 말합니다. 그분은 슬프게 만들고 있습니다!”

요셉 군단의 표식은 그들이 죄에 대해 슬퍼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든 우상을 버리고 예수님과 사랑에 빠지고 그들의 마음은 그분의 거룩함으로 불탑니다. 그들은 땅의 죄를 보지만 무엇보다도 교회 안에서의 죄로 인해 슬퍼합니다. 그들은 영혼으로부터 부르짖습니다. “오, 아버지, 당신의 자녀들 가운데 벌어지는 일들을 보십시오!” 만일 당신이 이 말세의 군단의 일원이라면 죄를 간과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당신 안에서 무언가 일어나 말할 것입니다. “오, 하나님, 나는 그들이 당신의 이름에다 행하는 짓을 견딜 수 없습니다!” 당신은 기도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사람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잠식하는 마귀의 권세에 대항하여!

2011년 8월 5일 금요일

요셉의 가장 큰 시련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시편 105:17, 19). 요셉은 여러모로 시험당하고 연단 받았으나 그의 가장 큰 시련은 그가 받았던 말씀이었습니다!

요셉이 견디어냈던 모든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겨우 열일곱의 나이에 그는 옷이 벗겨진 채 굶어죽으라고 구덩이에 던져졌습니다. 냉정한 형들은 자비를 구하는 그의 탄원을 조롱하며 그를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아넘겼고 그들은 캐러밴에 싣고 애굽 노예시장으로 그를 데려가 보통노예로 팔았습니다.

하지만 요셉의 가장 큰 시련은 형들에게 버림받은 일이나 노예로 전락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잃은 일이나 또는 감옥에 던져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요셉의 영을 혼란에 빠뜨리고 시험한 것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들었던 명백한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꿈을 통하여 요셉에게 그가 높은 권력을 부여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할 것이라고 계시하셨습니다. 그의 형들이 그의 앞에서 절하고 그는 많은 사람들의 위대한 구원자가 될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것이 하나라도 요셉의 자아도취적인 생각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께 오로지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 이 말씀은 그에게 운명에 대한 겸손한 의미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주님, 당신의 위대하고 영원한 계획 가운데 나에게 한 역할을 맡기시려고 당신은 내게 당신의 손을 얹으셨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안 것만으로도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삶에 있어서 상황은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부어주신 것과는 정 반대였습니다. 그는 하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절을 해야 했습니다. 자신이 노예인데 어떻게 그가 어느 날 많은 사람들을 구원할 것이라고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는 이렇게 생각했을 게 틀림없습니다. “이것은 말이 안 된다. 어떻게 하나님이 내 발걸음을 감옥으로, 망각으로 들어가라고 명하실 수 있을까? 하나님은 내가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요셉은 십년 동안 보디발의 집에서 성실하게 섬겼으나 결국에는 오해당하고 사람들은 그에 대해 거짓을 고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이김으로써 도리어 감옥에 갇히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시기에 그는 당연히 다음과 같은 끔찍한 질문들에 대해 심사숙고 했을 것입니다. “내가 정확하게 들었는가? 내 프라이드가 이런 꿈들을 지어냈을까? 내 형들이 옳았던 것일까? 아마 이 모든 일들은 어떤 이기적인 열망에 대한 징계로 일어나는 일들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그분이 나에게 원하시는 일들을 보여주신 적이 있습니다. 사역, 봉사, 쓰실만 함, 하지만 모든 상황은 그 말씀과 정 반대였습니다. 그러한 때에 나는 생각했습니다. “오, 하나님, 이것은 당신의 말씀일 리가 없습니다. 내 육의 말이 틀림없습니다.” 나는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험받는 중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의 약속들을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는 약속들, 그 모든 약속들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2011년 8월 4일 목요일

모든 말씀과 약속이 성취 되었습니다

요셉은 생애 가장 어두운 날들을 지내고 있었습니다. 외롭고 낙심되어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위치에 의문을 품고 그의 꿈을 포기할 찰나에 있었습니다. 갑자기 왕의 시위대 중 한 사람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요셉! 몸을 씻어라, 바로가 너를 부르신다!”

그 때, 나는 하나님의 성령이 요셉에게 힘차게 강림하셔서 그의 심장이 흥분되어 뛰었으리라고 믿습니다. 그는 이제 그 모든 일의 의미를 이해하게 될 참이었습니다!

요셉은 면도하고 머리를 다듬으면서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약속하신 것의 시작이다. 이제 나는 내가 그분으로부터 들었다는 것을 안다! 마귀가 통제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고 내 삶이 허비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내내 모든 것을 지시하고 계셨던 것이다!”

몇 분 내로 요셉은 바로 앞에 서서 그의 꿈에 대해 듣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다가오는 기근에 대해 해석해 주었고 바로가 나라의 곡식들을 모아 저장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창고들을 감독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일을 총괄할 지혜가 충만한 사람을 찾아야만 합니다.”(창세기 41장 참조)

바로는 주위를 돌아보다가 요셉을 향해 몸을 돌렸습니다. “너! 요셉! 내가 너를 총리로 임명한다. 이 왕국에서 오직 나만이 너보다 더 권력이 있을 것이다. 네가 이 모든 일을 총괄하라!”

얼마나 신속하게 만사가 변했는지요! 요셉이 형들 앞에 서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왔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세기 50:20).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45:7-8).

성도 여러분, 아주 곧 당신의 현재 불같은 고난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이 당신에게 주신 약속으로 당신을 인도해 들이고 계시며 홀연히 그 모든 것이 이해될 것입니다. 그분이 결코 당신을 버린 것이 아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당신을 연단하고 준비시키고 모든 일에 그분을 신뢰할 것을 당신에게 가르치기 위해 이 길을 가게 하셨어야만 했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쓰임 받을 시간을 계획해 두셨고 그 시간은 바로 앞에 있습니다!

2011년 8월 3일 수요일

요셉과 하나님의 은총

천부께서는 그분의 자녀 중 어떤 특정한 자를 총애하시나요?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말하지요? 구원과 그분의 경이로운 약속들에 관하여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취급하시지만 한편, 그분의 부르심에 전심으로 응답하고 그분께 온전히 자신의 삶을 드리는 자들에게는 특별한 은총을 베푸십니다!

욥이 말했습니다. “ 생명과 은혜를(favour, KJV) 내게 주시고”(욥기 10:12).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favour, KJV) 그를 호위하시리이다"(시편 5:12).

우리의 천부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온전히 그분께 드리는 자들에게 특별한 옷을 입히십니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사야 61:10).

요셉은 성령의 부르심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응답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의 총애를 받아 그를 다른 사람과 구별하는 옷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의 총애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요셉의 관계들이 깨어지는 대가를 치렀고 그는 거부당하고 몰이해와 조롱 받게 되었습니다. “그의 형들이......그를 미워하여”(창세기 37;4).

왜 요셉의 형들은 그에게 분을 내었을까요? 그 열쇠는 11절에 있습니다.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들은 요셉이 입은 옷을 보았을 때 그것이 은총과 의를 대변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들이 거절한 성령의 부르심을 상기시켰기 때문에 미워했던 것입니다! 요셉은 그들의 열의없는 생활태도에 대한 질책이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서로 둘러앉아 하찮은 가십과 자기중심적인 이야기에 몰두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토지, 소유와 미래로 꽉 차 있었으나 요셉의 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관한 일들, 초자연적 교제들에 대해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꿈을 주셨는데 그 당시 이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과 같은 말이었습니다.

당신 주위의 미온적인 신자들은 자동차, 집이나 직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겠지만 당신은 도리어 영원한 것들,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자 할 것입니다. 곧 당신은 그들의 열의없는 태도에 대한 질책이 될 것입니다. 당신이 자신들이 거절한 성령의 부르심을 나타내기 때문에 그들은 당신을 시기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은 다른 옷을 입은 사람이었고 이 다른 점이 그를 형들 사이에서 미움 받고 시기 당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이 예수님께 완전히 팔려버리면 동일한 일이 당신에게 일어날 것입니다!

2011년 8월 2일 화요일

요셉 군단

말세에 전적으로 주님께 헌신한 신자들의 조직인요셉 군단을 당신에게 보여드리고자 합니다.그들은 매일 하나님과 교제하고 삶의 모든 세세한부분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지금 이 순간그들은 계시와 지혜 그리고 결실 맺는 자리로들어가기 위해 큰 시련에서 나오고 있는중입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진리와 지식을부여하시며 그들 가운데 역사하고 계시고 이제 곧요셉에게 하셨듯이 그들을 부르실 것입니다

대부분의 오늘날 교회들이 광범위한 영적 기근을겪고 있습니다. 깊이 없는 설교, 죽어 있는 회중들,의로운 삶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생명 있는”예배

하나님은 언제나 그분의 교회의 모든 영적 기근에훨씬 앞서 역사하셨습니다. 모든 세대에 걸쳐그분은 자신의 백성이 빠져나갈 길을 예비하기위해 앞서서 운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앞서 역사하지 않으셨다면 야곱 족속일흔 다섯 명은 온 세상에 닥쳤던 기근으로 인해죽었을 것이고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은소멸되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기근이 닥치기이십 여 년 전에 하나님은 이미 그분의 백성이소멸되지 않도록 구해내기 위해 계획을 가동하고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미리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셨습니다!이십 년 동안 그를 고립시키고, 연단하고 권위있는 직위에 적합하도록 준비시키면서 하나님은이 사람을 다루셨습니다. 왜냐하면 요셉은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의 생명을 구원할 자가 될것이기 때문이

2011년 8월 1일 월요일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당신은 얼마나 자주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이 그분의 교회에서 새 일을 행하고 계신다,”고 말하는 것을 듣습니까? 그들이 말하는 “새 일”은 아마 부흥, 부어주심, 찾아오심 또는 하나님의 운행하심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새 일”은 빈번히 매우 빨리 식어버립니다. 그리고 한 번 시들해지면 다시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운행하심이 전혀 아니었음이 증명됩니다. 실제로 크리스천 사회학자들이 이러한 찾아오심들을 여러 개 추적하여 이 일의 평균 수명이 약 5년인 것을 발견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하나님이 오늘날 그분의 교회에서 새 일을 행하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이 위대한 사역은 어느 한 지역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옛 것을 폐하시기 전에는 그분의 교회에서 새 일을 시작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 성경의 원리는 수세기에 걸친 교회사에서 증명되었고 신구약 모두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진정한 하나님의 움직임은 어느 것이든 이 원리의 지배를 받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그분은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담지 않으실 것입니다(마가복음 2:22).

옛 것을 폐하고 새 것을 일으키는 원리는 맨 처음 구약 성경에 있는 실로에서 알려졌습니다. 사사 시대에 하나님은 이 도시에 거룩한 역사를 세우셨습니다(사사기 18:31). 주님의 성소가 서 있던 실로는 이스라엘에서 모든 종교적 행사의 중심지였습니다. 실로라는 이름 자체가 “주님의 것”이라는 의미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상징하고 그분의 본성과 성품을 계시하는 것들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로에서 그분의 백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주님이 그에게 그분의 뜻을 계시하셨습니다(사무엘상 1장 참조).

주님은 제사장이 태만하고 방종해지고 이 도시가 타락하게 되자 실로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멈추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약하면, “실로가 너무도 더럽혀져서 더 이상 내가 누구인지 나타내지 못한다. 이 집은 더 이상 내 집이 아니다. 이곳은 이제 나와 끝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성소에서 그분의 임재를 거두시고 문 위에다 “이가봇”이라고 적으셨습니다. 이 의미는 “여호와의 영광이 떠났다”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옛 것을 완벽하게 폐하셨고, 허나 다시 한 번 새 일을 일으키셨습니다. 그 이후 예루살렘의 성전이 “여호와의 집”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그곳에서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