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30일 금요일

불신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차단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브리서 11:6).

세상의 모든 기도를 드린다 해도 당신이 기도에 믿음을 화합하지 않는 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삼일 동안, 삼주 동안 금식기도를 드린다 해도 믿음이 없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마음이 믿음에 닻을 내리고 있지 않는 한 당신이 기도드린 모든 시간, 모든 간구들, 당신이 “주님께 나아온” 모든 것들이 당신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야고보서 1:6-7).

하나님과 두 시간을 보내고도 그분이 당신에게 응답할 것을 전혀 믿지 않는다면 당신은 두 시간동안 하나님을 당황하게 만든 것입니다! 아마 당신은 기분이 좋았거나 거룩하게 느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당신은 시간을 낭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두 시간 동안 불신과 의심을 드린 것입니다.

나는 매일 기도하고 주님 앞에 자주 울기도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크리스천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무겁고 우울에 빠집니다. 그들의 삶은 항상 혼란 스럽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분이 약속을 이행하실 것이라는 것을 온전히 납득하지 않은 채 그분의 존전에 나아옴으로 주님을 당혹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마가복음 11:24).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1:22).

하나님의 백성 중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일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되었기 때문에 영적 걸인들처럼 삽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왜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도록 허락하셨는지 이해할 수 없을 때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까?”

그들의 혼동에 대해 인간적인 대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시초부터 종말을 알고 계시고 우리가 하늘나라에 갔을 때에야 왜 이러한 바람과 파도가 우리를 뒤흔들고 왜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허락하셨는지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가 대답해 주었고 나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알아야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이것이 전부라고 믿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이사야 49:15-16).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너는 나의 자녀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썼으니 나를 신뢰해라.”

2011년 9월 29일 목요일

불신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듭니다!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요한일서 5:10).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범한 모든 추한 죄의 목록을 생각해 보십시오. 불평, 원망, 우상숭배, 배은망덕, 반역, 호색. 하지만 이들 중 어느 것도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시게 만든 것은 그들의 불신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민수기 14:11).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그들을 위해 행한 모든 것을 거짓으로 만든다! 기적을 되풀이해서 베풀었고 반복해서 그들을 구원해 내었다. 어느 때에야 그들이 나를 신뢰하고 내 안에서 안식하겠느냐?”

잠시 멈춰서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베푸신 모든 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은 당신을 지키셨고 이런 저런 기도를 응답해 주셨습니다. 이런 위기 저런 위기에 당신을 만나주셨습니다. 시련을 통과하도록 인도하셨고 하늘로부터 만나를 내려 먹이셨고 기적과 다름없는 일들을 당신에게 행하셨습니다.

38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그분의 기적을 그들의 마음속에서 지워버렸습니다. 그들이 너무도 자주 불평과 불신에 빠져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12절). 그분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나를 신뢰하는 자리까지 절대로 이르지 못할 것이므로 나는 내 백성을 포기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요단강 이편에서 승승장구할 때, 모세가 엄숙하게 선언했습니다. “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올라가서 차지하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소리를 들으시고 노하사 맹세하여 이르시되 이 악한 세대 사람들 중에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신명기 1:21, 29-30, 32, 34-35).

하나님은 그분의 이름 위로 그분의 말씀을 높이십니다. 말씀하신 모든 말씀을 의도하시고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이런 모든 것들은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우리가 불신하며 행동하면 우리도 그분의 진노를 야기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읽고 설교단에서 선포되는 그분의 모든 약속을 듣습니다만 우리 자리로 가서는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해주셔만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그분이 당장 행하시는 것을 보지 못하므로 안달합니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이 우리의 영혼에 닻을 내리도록 허용하지 않을 때, 우리가 위대하고 소중한 약속들을 듣고 나서도 마치 버림 당한 듯 행동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2011년 9월 28일 수요일

모든 죄의 모체

나는 믿음이 있는 크리스천들이 행하는 죄들의 전체 목록을 열거할 수 있습니다만, 그중 어느 것도 내가 말하고 싶은 죄를 따라올 만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죄의 모체-다른 모든 죄를 낳는 죄-그것은 불신의 죄입니다!

나는 마음이 강퍅한 죄인의 불신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뢰한들, 영지주의자들과 무신론자들의 불신에 대해 하나님은 흠칫도 하시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진노하시도록 만드는 것은 자신을 그분의 이름으로 부르는 자들의 불신과 고뇌에 찬 의심들입니다! “나는 예수님에게 속했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마음속에 의심과 두려움과 불신을 품고 있는 그분의 자녀가 다른 어떤 것보다 그분을 가장 슬프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불신의 죄를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시는지요! 유다는 다음과 같은 말로 교회에게 경고했습니다.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유다서 5).

유다는 신자들에게 하나님이 불신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시는 지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그분의 구원받은 백성들 가운데 있는 불신에 대해 극도로 혐오하신다는 것을 너희에게 기억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백성을 구원해 내셨으나 그 후 믿지 않는 자들을 멸하셨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하나님이 그분의 교회에게 이 동일한 일을 기억하게 하려고 나를 부르셨다고 믿습니다!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고린도전서 10:11). 하나님은 더 이상 구약에서 그러하셨듯이 그분의 백성을 육체적으로 멸하시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오늘날 우리의 불신에 대한 그분의 심판은 영적인 것이며 엄중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불신은 오늘날도 과거와 다름없이 파괴적입니다. 우리가 소금 기둥으로 변하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목이 굳고 원한에 차 있습니다! 땅이 갈라져 우리를 삼키지는 않지만 고민, 스트레스와 가족 문제들이 우리를 삼킵니다. 불이 내려와 우리를 사르지는 않지만 우리의 영적 삶은 파괴되었습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죄의 모체인 죄를 범하고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불신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이 그 죄에 대해 윙크 정도 하시는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우리의 몸과 영혼을 인간에게 알려진 다른 모든 죄에 열어주는 바로 그 하나의 죄입니다.

2011년 9월 27일 화요일

지혜는 어디에?

“그러나 지혜는 어디서 얻으며 명철이 있는 곳은 어디인고 그 길을 사람이 알지 못하나니 사람 사는 땅에서는 찾을 수 없구나”(욥기 28:12-13)/p>

지혜,
어디서
누가 찾을 수 있으랴?
깊은 물이 이르기를 내 속에 있지 아니하다 하며
바다가 이르기를 나와 함께 있지 아니하다 하느니라
순금으로도 바꿀 수 없고
은을 달아도 그 값을 당하지 못하리니
귀한 청옥수나 남보석으로도
그 값을 당하지 못하겠고

진주와 벽옥으로도 비길 수 없나니
보석과 바꿀 수 없도다.
지혜의 값은 산호보다 귀하구나
그런즉 지혜는 어디서 오며
명철이 머무는 곳은 어디인고

하나님이 그 길을 아시며
있는 곳을 아시나니
이는 그가 온 천하를 살피시며
바람의 무게를 정하시며
사람에게 말씀하셨도다
“보라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
주를 경외함이
모든 지혜의 시작이로다.

지혜를 가진 자는
사랑가운데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죄를 버릴지니라.”

2011년 9월 26일 월요일

그분이 하늘의 창들을 열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의 기도에 넘치도록 응답하시기를 좋아하신다는 것을 증명하는 약속들로 가득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익숙한 약속들 중 하나는 에베소서 3장 20절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모두 잘 알고 있지만 우리 중에서 이것을 믿는 것처럼 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상상 조차 못할 만큼 우리에게 넘치게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보잘것없는 요청이 아니라 그분의 부요와 능력에 따라 우리에게 응답하기 원하십니다.

성경은 그분이 우리에게 풍성하게 응답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누가복음 6:38).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고린도전서 2:9-10).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베드로후서 1:4).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디모데전서 6:17).

하나님은 실제로 위대한 것들을 구하라고 우리에게 부탁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우리 왕”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하지만 우리 왕의 위대함에 걸맞는 큰 규모의 기도를 드립니까? 왕은 자신의 신하들을 돌볼 책임이 있고 그의 백성은 왕이 그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갖고 있으며 풍성하게 공급할 것이라고 믿으며 큰 규모로 요구함으로써 왕을 명예롭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은 하나님을 “왕”이라고 부르면서 그분이 자신의 백성 중 하나를 계속 궁핍하게 내버려 둔다고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의 보잘것없는 요청으로 하나님을 당황스럽게 만든 적이 있습니까?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라기 3:10).

2011년 9월 23일 금요일

완전한 승리

“암몬 자손이 또 요단을 건너서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과 싸우므로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사사기 10:9).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고치기 위해 암몬 자손을 쓰셨습니다(사사기 10:6-8 참조). 이제 그들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향해 행진해 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당황하고 낙심하여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 우리를 건져내옵소서”(사사기 10:15).

이 백성은 너무도 자신들의 죄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구해달라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하나님께 요청할 생각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가장 단순한 기도였습니다. “주님, 이번 한 번만 우리를 구원해 주십시오! 우리 원수에게 패하거나 침략당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그들은 한 번의 승리를 구했으나 하나님은 마음에 그 보다 더한 것을 생각하고 계셨고 그들의 기도를 강력하게 넘치게 응답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보호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우세하였습니다! 그들은 암몬 족속을 완벽히 진압했습니다!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매우 크게 무찌르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사사기 11:32-33).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암몬 족속을 무찌를 용기와 작전을주셨습니다! 그들은 그 때로부터 암몬족속을 진압하고 다시는 그들 때문에 고통당하지 않았습니다! 완전한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바로 오늘도 하나님은 이처럼 그분의 백성에게 넘치게 응답해주기 원하십니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이 전투에서 한 번만 이기게 해주세요.” 그러나 주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십니다. “내가 이기게 하겠고 더 많은 것들이 너를 위해 기다리고 있다. 나는 네 원수를 진압하기 원하지만 한 번에 한 번씩 승리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나는 네가 완전한 승리를 하기 원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분은 당신에게 단순히 승리하는 능력이 아니라 모든 원수를 진압하는 능력을 주기 원하십니다. 당신이 단순히 죄를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정복자보다 더 나은 것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단순히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 더 풍성한 생명을. 단순히 기쁨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이루 말할 수 없고 영광으로 가득 찬 기쁨을. 단순히 하루, 한 주일, 한 달 동안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전 평생 동안 해방되기를!

2011년 9월 22일 목요일

하나님은 기도에 넘치게 응답하십니다!

교회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십니다!”입니다. 하지만 이는 절반의 사실에 불과합니다. 온전한 사실은 “하나님은 기도에 넘치게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에게 예언했습니다. “너희는 타락했으나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이다”(호세아 14:1참조).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호세아 14:2).

이스라엘의 기도는 단순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구한 바는 그들의 죄를 제거하시고 은혜로 그들을 받아주소서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주여 긍휼히 여기소서!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당신의 은혜 안으로 다시 받아주소서.” 하나님은 그들을 정결케 하시고 은혜로 받아들이셨을 뿐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복들을 더하셨습니다!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그의 가지는 퍼지며 그의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의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그들은 곡식 같이 풍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호세아 14:4-7).

하늘의 이슬(14:5)은 주님의 임재입니다. 이제까지는 하나님이 은총을 거두셨기 때문에 기근이 있었고 모든 것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진정한 회개와 마음으로부터의 기도로 인해 하나님은 사방에서 생명이 솟아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용서받을 뿐 아니라 또한 부흥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가지가 퍼지며 번성할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구한 것은 자비와 용서 그리고 용납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늘의 창들을 여시고 그들이 감히 바라지도 못했던 복들을 그들에게 퍼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대규모로 넘치게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도 동일하게 행하셨습니다! 당신이 회개했을 때, 하나님께 당신이 구한 것은 정결한 마음, 용서와 평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얼마나 넘치게 당신에게 응답하셨는지 보십시오. 그분은 당신에게 예수로 굶주린 심령과 갈증을 주셨습니다! 당신을 맹렬히 격노한 마귀로부터 보호하셨고 당신의 영혼에 소망과 즐거움, 기쁨이 홍수처럼 밀려오게 하셨습니다!

당신은 다만 구원받고 정결케 되기를 구했으나 하나님은 당신에게 복위에 복을 부어주셨습니다! 당신에게 넘치게 응답하셨습니다!

2011년 9월 21일 수요일

야곱은 주님과 겨루었습니다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우리의 싸움 상대가 결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절대로 직장동료나, 이웃, 또는 아직 구원받지 못한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문제를 해결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당신이 그분 앞에서 올바르면 -그리스도의 피로 뿌림 받고 삶에서 죄를 짓지 않으며 기도에 승리하면-모든 지옥의 귀신들이 하나님이 행하기 원하시는 일에 흠집을 낼 수 없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이처럼 거룩한 힘을 갖기 원하십니다.

호세아는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유다[그의 백성]와 논쟁하시고”(호세아 12:2). 하나님이 그분의 교회와 논쟁하실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영적 게으름입니다! 우리는 기적들, 축복들, 구원을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바랍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 중 어느 누가 야곱처럼 밤새워 기도하고, 겨루고, 싸우며, 울며 하나님께 부르짖습니까? 누가 거룩함과 순결, 그리스도를 닮기 원해서 실마리가 보일 때 까지 기꺼이 하나님과 함께 홀로 떨어져 있으려고 합니까? 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매진하여 모든 습관과, 모든 정욕으로부터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하나님이 모든 결박을 깨뜨려 주실 때까지 하나님께 부르짖고, 싸우며 겨룹니까?

호세아는 이스라엘에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원하는 것은 번영과 안전이 전부이다! 너희는 확고한 태도를 취하려 하지 않는다.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원하는 것이 아니라 네 자신의 기쁨을 위해 살기 원한다!”

야곱은 태어나는 날부터 투사였습니다. 그는 힘에서 우세했고(창세기 25:26 참조) 당신과 나도 그래야만 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힘을 소유하고 있으나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골로새서 1:11).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에베소서 3:16).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이 우리가 그분을 진정으로 구하는 것을 보실 때 까지 하나님이 그분의 몸을 위해 예비하신 것을 결코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야고보서 5:1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므로 당신이 그분을 붙들기 원하십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 있으니 원한다면 와서 가져라!” 그분은 당신을 그분의 군대에 합당한 강한 군사로 만들기 원하십니다!

2011년 9월 20일 화요일

하나님은 내 편이시라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시편 57:2).

행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실족하지 않도록 나를 능히 구원하시고,
모든 재난을 통과하는 동안 나를 붙드시는.
내가 두려울 때 그를 신뢰할 것이라.
그가 내 영혼을 평강가운데
나를 치는 전쟁에서 구원하실 것이라.

내가 하나님을 부를 것이라
그러면 그가 나를 구하시리라.
그가 내 눈물을 병에 담으시며
내 모든 발자국에 주목하시리라.
내가 그에게 부르짖을 때
내 원수가 물러갈 것이라
하나님이 내 편이시므로.
내가 그에게 신뢰를 둘 것이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내 마음이 확정되었도다.
내가 노래하고 찬송하리라;
내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그가 나를 불과 홍수에서 건져
소망의 피난처로 인도하시리라.
그의 얼굴을 내게 비추시며
매일 은총을 베푸시리라.
그의 얼굴을 숨기지 않으시고
신속히 내 기도를 들으시리라.
결코 나를 혼돈에 두지 않으시리라
나를 구원하시리라 약속하셨으므로-
하나님이 내 편이시므로.

2011년 9월 19일 월요일

야곱이 위기에 빠졌습니다 - 또 다시!

야곱이 위기에 빠졌습니다 - 또 다시-이제 그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야곱이...이에............. 이르되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창세기 35:1-3).

벧엘은 우리가 곤궁할 때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이스라엘과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이것입니다. 야곱이 위험이나 문제에 처했을 때- 사태가 불길하고 소망이 없을 때- 그는 어디로 가야하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너는 내가 어디에서 너에게 말할 지, 어디서 네가 내 음성을 들을지 알고 있다. 벧엘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만났던 제단으로 가라. 내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너의 집에서 모든 우상숭배를 제거하라!”

야곱은 그의 아들들을 불러 모든 우상들을 가져오게 한 다음 상수리 나무아래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가족들을 벧엘로 인도하여 그곳에서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다시금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창세기 35:9-13 참조).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창세기 35:5). 사면 고을들이 이 작은 유대인 지파 야곱을 두려워하였습니다 - 하나님이 그들에게 두려움을 넣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여전히 벧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벧엘로 올라가라. 내가 너를 거기서 만날 것이다! 문제가 생기거나 곤궁에 처할 때마다 제단으로 달려가라! 부르짖고 나와 함께 홀로 떨어져 있어라!” 그분은 기도의 은밀한 골방에서 우리가 그분을 만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야곱은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확실한 말씀을 듣기 위해 어디로 가야하는 지 알았습니다. 그는 벧엘로- 제단으로 갔습니다! 은밀한 장소에서 하나님과 홀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고 믿습니다. 나는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우리가 무릎 꿇을 때 일어납니다. 이곳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시겠다고 말씀하신 곳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당신이 모든 환경에서 당신의 눈을 떼라고 부르십니다. 당신의 현재 상황으로 무엇이든 판단하지 마십시오. 한꺼번에 파악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두려움이 당신을 절망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기도가운데서 당신을 만나실 것입니다!

2011년 9월 16일 금요일

싸울 준비가 안됩

어떤 권투 트레이너가 자신이 담당한 선수를 외딴 훈련 캠프에 데리고 가서 전 훈련기간을 큰 시합에 대비해 그의 사기를 높이는 데 소비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링사이드에서 너와 함께 있을거야- 네 옆을 절대로 떠나지 않아. 여기 역대 위대한 선수들의 목록이 있으니 그들의 모든 동작을 연구해봐. 고된 연습으로 고생할 필요 없어. 네가 승자라고 내가 말했잖아, 그럼 된 거야! 링에 올라서서 상대편 괴물 선수를 어떻게 이길 수 있는 지 도표를 보여줄게!”

이런 트레이너가 있을까요? 너무나도 어리석지요! 좋은 트레이너는 어떻게 할까요? 그의 능력에 닿는 한 제일 훌륭한 권투선수를 찾아내어 그를 자신이 훈련하는 선수와 함께 링에 오르게 하여 둘이 힘껏 겨루게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얼마나 많은 크리스천들이 시험을 받거나 훈련받은 일도 없이 자신을 용사라고 부릅니까? 우리는 이 나라의 수많은 기도의 용사에 대해 너무도 많이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들 거의 대부분은 전투에 임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훈련을 받지 않았고 싸울 준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최근 나는 주님께 왜 그리도 많은 수의 진정한 크리스천들이 너무 짐스럽고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심한 고난이어야 합니까? 나는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계에 이르도록 시험을 당합니까?”

하나님은 사탄이 마지막 전투의 때에 놓여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지옥의 모든 권세를 이길 잘 훈련된 용사들이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그분은 그분의 남은 자들 가운데 신속한 작업을 하고 계십니다 - 이것은 위기 훈련이라 불립니다!

이 고난당하고 심한 시험을 받은 성도들은 그분의 종말 군대의 대장들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 안에 성령의 싸움을 부어주시고 하나님과 겨루었으므로 시험과 시련을 당한 용사들을 양성하고 계십니다. 그들이 고난을 당할수록, 시련이 극심할수록, 하나님은 더욱 위대한 일을 그들에게 하라고 맡기실 것입니다!

이러한 훈련은 육체적 훈련뿐만 아니라 영적 훈련을 요합니다. 야곱은 그의 전신을, 자신의 모든 인간적인 능력을 전투에 던졌습니다. 그의 안에 투쟁정신이 솟구쳤고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호세아 12:3).

이 구절은 기도로 승리하기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커다란 의미가 있습니다. 야곱이 “힘으로” 겨루어 이겼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종말의 시대에 이기려고 한다면, 당신의 전신과 모든 힘을 쏟아 부어야 할 것입니다!

2011년 9월 15일 목요일

싸우는 태세로

에서는 모태에서 먼저 나왔습니다 - 이 아기는 털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털이 많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의 쌍둥이, 야곱은 아직 태 안에 있으면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습니다. 에서가 발꿈치를 작은 손에 붙들린 채 세상에 나온 것을 보았을 때 산파가 얼마나 놀랐을까요!

“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호세아 12:3-4).

야곱에 대한 이 짧은 구절에서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과 어떻게 겨루어 이기는지 요약해 주었습니다.

호세아의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자신을 위해 하나님이 갖고 계신 모든 것에 대해 욕심을 내는 사람이 여기 있다!”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갈망하며 싸우는 태세로 태에서 나왔습니다! 이 아이에게는 어떤 경건한 본능이 있었습니다. 마치 그는 이렇게 말하는듯 하였습니다. “형이 하나님의 충만함을 원치 않는다면, 내가 원해. 길을 비켜 줘! 하나님의 축복에 관한 한 뒤지지 않을거야!”

장자 권과 야곱의 전 생애를 통해 그가 바라던 축복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축복을 상징합니다! 그렇지만 야곱이 추구하던 것은 아버지 재산에 대한 곱절의 몫도 아니요 땅에 대한 약속도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야곱은 더 이상의 것을 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메시아의 족보에 오를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적인 축복을 원했습니다. 단지 지파의 제사장 일 뿐 아니라 또한 남들을 축복할 수 있는 제사장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창세기 27장 전체를 통해 그리고 이삭이 야곱에게 손을 얹고 그를 축복할 때: “..............내게 축복하소서” (창세기 27:10) 이러한 제사장적 사역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손이 그에게 임하시는 높은 명예이며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바로 이 말세에 신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들의 삶을 영위하는 것, 집을 소유하고, 좋은 차를 타는 것만 염려하지 않는 백성을 일으키기 원하십니다. 그분은 스스로를 위해 소비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에 그분께 쓰임 받으려고 하나님의 축복에 욕심내는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2011년 9월 14일 수요일

새롭게 기름 붓는 능력

하나님은 당신이 마귀로부터 방어되도록 만들기 위해 당신에게 시련을 허락하십니다. 이것은 당신이 다시는 공격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꿋꿋이 견뎌낼 수 있도록 훈련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모두 당신이 더욱 위대한 봉사, 훌륭한 기름 부음 그리고 그분의 나라를 위해 지경을 넓혀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그분이 당신을 준비시키는 과정입니다.

더 나아가, 주님은 마귀의 궤계에 대항하여 당신을 강하게 하려고 하시는 중입니다. 그분은 마귀를 직면했었고, 마귀에 대항하여 강해졌으며 그의 계략을 알고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신자들의 일단을 양성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왜 이것을 겪고 있는 지 이해하면 네가 잃어버렸던 모든 터전을 되찾게 될 것이다. 네가 다시 통제하게 될 것이다 - 성령의 능력으로 인해!”

엘리야의 시련이 끝나게 되면 (열왕기 상 19장 참조) 그는 다시는 도망치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방향 감각이 생기고 그의 영은 자신감을 되찾았습니다. 아시다시피, 하나님은 왕들과, 지도자들과 선지자들을 세우기 위해 그를 여러 나라로 보내실 참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네 길을 돌이켜...가서....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열왕기상 19:15-16). 엘리야는 새롭게 기름 붓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다시금 그가 통제하게 된 것입니다!

“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19절). 엘리야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동굴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강물 같은 눈물을 흘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단순히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귀가 당신에게 행사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지배력은 두려움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믿음 안에서 두려움을 떨어버려야만 합니다! 이렇게 말해야만 합니다. “나는 침몰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나에게 새로운 기름부음을 주실 것이다 - 그분이 나를 사용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당신과 끝난 것이 아니라 그분이 더 나은 일을 위해 당신을 가르치시고 훈련하신다는 것을 믿습니까? 그분은 실망의 동굴 안에 있는 당신에게 말씀하기 원하십니다. 당신에게 무엇을 할 지, 어디로 갈 지 말씀하기 원하십니다 - 그리고 당신을 데리고 나오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절망에서 일어나 두려움과 우울의 속박을 떨어버리십시오! 당신의 동굴을 떠나십시오. 당신이 일어나 걸어 나오는 순간, 기름 부음이 흐름을 발견할 것입니다!

2011년 9월 13일 화요일

혁명의 언어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잠언 12:18).

혁명가들은
엄청나고 과장된 말을 합니다.
칼로 찌름 같이,
그들은 혀로 후려 칩니다
기존의 시대 조류를.
악인은 악을 파내고
입에는 타오르는 불,
끌 수 없는 지옥의 불이 있습니다.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말미암아 그물에 걸립니다.
입을 지키는 자는
자기 생명을 보전합니다.
그러나 입을 크게 벌리는 자는
파멸을 맞을 것입니다.
의인은 거짓 입술과
치료하지 못하는 입술을 미워합니다.
악인의 등불은 꺼지게 되고
그의 입술은 닫힐 것입니다;
악한 언어는
폐해지고
슬기로운 자의 혀는
안녕을 발할 것입니다.

2011년 9월 12일 월요일

정결하고 흠 없는 삶의 능력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흠 없이 살기로 작정할 때, 즉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식으로 살 때,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당신을 두려워하고 아울러 경멸하게 될 것입니다. 미온적이거나 타협하는 크리스천들은 당신의 삶으로 인해 틀림없이 불편해지고 불쾌하게 느낄 것입니다.

사무엘상에서 이것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다윗이 그의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 사울은 다윗이 크게 지혜롭게 행함을 보고 그를 두려워하였으나” (사무엘상 18:12-15).

다윗의 흠 없는 행동은 사울의 마음에 두려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울은 다윗의 주위에 있을 때마다 자기가 하나님의 은총과 사람들의 존경을 누렸던 시기를 기억했습니다. 그러나 불순종, 시기심, 자존심과 자기 의지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했던 모든 능력을 댓가로 지불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모든 존경도 빼앗겼습니다.

이제, 사울은 자신 보다 경험도 적고 아마 언변도 더 조리 있지 못하고 더 어리지만 거룩의 능력과 고결함이 배어나오는 사람을 직면해야 했습니다. 그는 마음이 순전하고 성령 충만했었으며 사울은 그를 두려워했습니다!

다윗을 두려워했던 사람이 이방 우상을 섬기던 사람이 아니었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렇지 않습니다. 사울은 성령의 능력을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한 때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았었고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용사였었습니다!

다윗은 단순히 정결한 삶을 살고 있었고 하나님은 은총을 그에게 퍼부으셨습니다!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니 그가 자기들 앞에 출입하기 때문이었더라” (사무엘상 18:16).

사울은 다윗 주변에 있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사울이 그를 자기 곁에서 떠나게 하고” (사무엘상 18:13). 애석하게도, 사울은 오늘날 타협하는 교회, 타협하고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상실한 크리스천들을 상징합니다. 그는 한 때 성령으로 충만했고 세례 받고 하나님을 위하여 열정이 불타올랐으나 자신들의 불순종, 자존심과 정욕으로 인해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 이전에 알았던 모든 것을 빼앗긴 신자의 유형입니다.

타협한 크리스천들에게 거룩하고 흠 없는 삶보다 더 두려운 것은 없습니다. 당신의 삶이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거룩함에 맞추어 질수록 당신은 타락한 신자들에게 더욱 더 혐오감을 줄 것입니다.

2011년 9월 9일 금요일

하나님의 은총가운데 살기

하나님은 흠 없는 신자에게 놀라운 은총을 약속하십니다.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잠언 3:1-4). 하나님은 만일 당신이 그분 앞에서 흠 없이 살기로 목표를 정하면 그분의 은총가운데 살고 그분을 기쁘시게 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또한 능력을 포함합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데살로니가전서 1:5). 그분의 은총은 당신의 모든 언행에 성령의 능력을 부여하십니다. 당신의 말은 성령의 능력을 지닐 것이므로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들 성령에 힘입은 말들이 위대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1:6).

바울의 말들이 왜 그토록 능력이 있고 효력이 있었습니까? 그의 말에 의하면 “그러므로 [우리가].......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7절). 바울의 설교나 그의 기도가 사람들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의 본받을 만한 삶이 그리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울 속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은총을 베풀 만큼 정결한 마음을 발견하셨습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은총은 또한 사람들 가운데서 존경을 받도록 만드셨습니다. 다윗의 기록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모든 신하보다 더 지혜롭게 행하매 이에 그의 이름이 심히 귀하게 되니라” (사무엘상 18:30).

다른 사람들 앞에서 거룩하게 삶으로써 예수님의 이름을 보존하는 사람은 그들 앞에서 귀한 이름을 얻게 될 것입니다 - 하나님 그분이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어떤 크리스천들은 말합니다. “나는 내 이름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지 상관없습니다. 나는 알려지지 않고 무명이기를 바랍니다. 주님만이 모든 영광을 받으십시오.” 이것은 겸손하게 들리지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잠언 22:1). 하나님은 의인에게 귀한 이름을 주셔서 그들이 그분을 더욱 넘치도록 영화롭게 하는 데 사용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2011년 9월 8일 목요일

흠 없는 삶이란?

사도 바울에 의하면 흠 없는 신자의 행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흠 없는 것은 어떤 종류의 거짓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데살로니가전서 2:3). 흠 없는 크리스천은 그의 심령 안에 어떤 거짓도 없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설교하고 한편 다른 삶을 사는 사기꾼이 아니다. 내 행위는 다 알려져 있다!”

2. 흠 없는 것은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만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권면은......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데살로니가전서 2:3).

여기서 바울이 강조하는 점은 육욕 또는 정욕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부정한 말은 한 마디로 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내 대화는 순결하고 깨끗한 마음에서 나온다.” 바울은 자신의 몸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육적인 열정이 그를 몰고 가지 않았고 정욕이나 음행의 영이 그의 마음을 차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자유인이었습니다!

더러운 농담을 하거나 성적인 암시를 하거나 추파를 던지는 눈을 가진 신도는 아직 마음의 정결함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앞에서 흠 없이 살려거든 정결한 귀와 정결한 마음과 정결한 혀를 가져야만 한다!”

3. 흠 없는 것은 잘못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에서 난 것이 아니요” (3절).

잘못이나 부정이 없는 크리스천은 지능적이거나 교활하거나 조작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는 감춰진 계획이 없고 전적으로 공개적이며 정직합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나는 너희를 조종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해 들이지 않았다. 또한 교활한 말을 사용하거나 너희의 감정을 조작하려하지 않았다. 나는 복음을 직선적으로 전했다!”

바울은 결코 말장난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도록 하려고 심리학을 사용하지도 않았습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2:7). 그러나 죄가 들어왔을 때 그는 하늘에서 치는 우렛소리로 꾸짖었습니다! 어느 누구의 승인을 구하거나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전심으로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5-6절).

바울은 하나님이 그를 주시하고 계시며 그의 동기를 체크하고 계신다는 것을 항상 마음에 두었습니다. “악은 어떤 모양” (데살로니가전서 5:22) 이라도 끊어버리고 마치 예수님이 한 시간 안에 오실 것처럼 살았습니다!

2011년 9월 7일 수요일

흠 없는 삶의 능력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데살로니가전서 2:10).

이것은 당신의 거룩함에 대해 하나님을 증인으로 부르는 강력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주저 없이 데살로니가에 있는 신자들에게 자랑했습니다. “나의 동역자들과 나는 너희와 하나님 앞에서 흠 없이 살았다. 우리의 행동은 의로웠고 정결했다. 하나님이 우리의 거룩한 행위에 대해 증인이시고 너희도 또한 증인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이 행한 것을 너희가 보았다!”

바울은 유능한 설교자였고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비결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살아있는 영혼, 모든 정사 앞에 담대히 서서 증거 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매일 거룩하신 하나님의 눈길 아래 살고 있다. 나는 그분의 거룩하신 눈이 나를 보시고 있는 것처럼 행한다. 그리고 너희는 모두 나의 흠 없는 삶의 증인들이다!”

이 사도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데 있어 그가 가졌던 동일한 능력을 모든 신자가 갖기를 바랐습니다. 그는 밤낮으로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이 세워지기를 기도했습니다.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데살로니가전서 3:13).

예수님께 나아왔던 부자 청년 지도자는 어렸을 때부터 바르게 행해왔고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과 존중을 받았습니다(마태복음 19:16-20 참조). 그러나 부족한 점이 있었고 바로 그 한 가지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의 모든 언행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동일한 목적이 작용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결코 흠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데살로니가후서 1:12).

이것이 바울이 흠 없는 삶을 살도록 만든 원동력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영광과 이름을 사모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이 기초위에 세워져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의 선함은 더러운 걸레와 같기 때문입니다! 흠 없는 삶을 특징짓는 것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존숭하고자 타오르는 갈망입니다.

2011년 9월 6일 화요일

두려움을 이기는 능력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시편 56:3).

나는 두렵습니다.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닥쳐옵니다;
죽음의 공포가 나를 덮쳤습니다.

두렵습니다
내 안에 선보다 악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의보다는 거짓이,
강함 대신 약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설익은 감람나무 같아서
열매가 없습니다.
오, 만일 내게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내가 나의 피난처로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리라.

두렵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던지시고
이 푸른 나무를 저주하실까봐,
그분이 열매를 찾으러 오셨으나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두렵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신뢰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그분은 나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나를 대적하는 자 많더니
나를 치는 전쟁에서
그가 내 생명을 구원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

그분이 내 눈물을 병에 담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편이십니다.
그분이 내 발이 실족치 않게 지키시며
그분 앞에서 행하게 하실 것입니다

산 자의 빛가운데서.

2011년 9월 5일 월요일

하나님은 왜 다윗의 기도를 응답하셨는가?

다윗은 우리에게 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응답하셨는지 말해줍니다. “나를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나를 구원하셨도다”(시편 18:19).

여기서 기뻐하시므로(delighted) 라는 말은 “좋아하다 또는 기뻐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나는 하나님께 즐거움을 드린다. 단순히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시기 때문에 나를 구원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러분, 그분은 또한 당신과 나도 기뻐하십니다!

알다시피, 주님을 신뢰하는 우리는 그분의 거룩한 시온, 그분의 거룩한 남은 자입니다. 남은 자라는 말은 간략하게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을 부르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나태한 기독교도로부터 부름 받아 온전히 예수님께 헌신한 자들입니다.

시온의 선택받은 자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다시는 너를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쀼ㄹ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이사야 62:3-4).

왜 하나님은 나를 구하러 오시며 그토록 기꺼이 나를 구원하실까요? 왜냐하면 그분이 나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분께 즐거움이며 그분은 나와 나누는 우정을 즐기십니다!

어떤 귀한 젊은이가 내게 말했습니다. “나는 한 번도 진정으로 주님께 인정받았다고 확신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합당하다고 느낀 적이 거의 없습니다-그저 자격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선행을 함으로써 그분의 노를 가라앉히려고 계속 시도하곤 합니다.”

너무도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렇게 느낍니다! 수년 간 나는 주님 안에서 확신을 가져본 적이 없는 오래된 크리스천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격이 없고, 깨끗지 않고,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이라는 것을 결코 믿지 못하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항상 무언가 그들 생애에서 이루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분야에서 실패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보려고 다른 영역에서 세 가지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래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당신이 예수님께 나올 때 당신은 그분께 어떤 것도 보상해 드릴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이 당신에게 모든 것을 보상해 주십니다. 그분이 바로 그런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말씀합니다.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요엘 2:25).

당신의 실패와 단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당신에게 보상해 주십니다!

2011년 9월 2일 금요일

하나님은 기꺼이 나를 도우러 오실까요?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기꺼이 신속하게 오실 것을 믿습니까?

이 부분에서 많은 크리스천들이 실패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갖고 계심을 압니다. 그분이 돌보시는 것을 인정합니다만 그들을 돕기 위해 기꺼이 신속하게 오시리라는 확신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부르짖음에 즉시 응답하지 않으실 때 그들은 스스로 안에서 장애물과 내부의 막힌 것들을 상상합니다. 주님이 기꺼이 그들을 돕기 위해 오실 수 없는 온갖 이유를 생각해 냅니다.

갈멜 산에서 엘리야는 이방신 바알이 그 자녀들을 방치해 둔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들이...........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이르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열왕기상 18:26).

“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더라” (열왕기상 18:27-29).

이 말들을 다시 들어보십시오. “아무 소리도 없고...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더라.”

우리는 바로 이처럼 하나님이 자녀를 방치한다고 비난합니다. 우리는 기도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나 그분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다고 믿지 않고 우리 마음대로 행동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존전에서 떠나고, 교회를 떠나고 골방에서 떠납니다-그분이 돌아보시기는 하는지 의아해 하며!

주님은 항상 도움을 청하는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응답하실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나는 다윗이 그분에 대해 한 말씀을 사랑합니다: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시편 86:5, 7).

다윗은 말했습니다. “내가 그분께 부르짖는 바로 그 순간 나의 하나님은 기꺼이 내게 응답하실 준비가 되어있다! 나는 멈춰서 내 문제들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로인해 슬퍼하거나 해결해 보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내 주님께 가서 ‘도와주십시오,’라고 부르짖는다.”

어린아이 같은 믿음으로 발하는 당신의 상한 심령의 부르짖음 -그것이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시는 것, 전부입니다.

2011년 9월 1일 목요일

하나님은 내가 겪고 있는 일을 아실까요- 돌아보고 계실까요?

하나님이 물으십니다. “너는 내가 지금 현재 네가 견뎌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안다고 진정으로 믿느냐?” 이글을 읽는 시점에 당신은 하나님께 당신을 위해 역사해 주실 것을 구하는 어떤 일을 겪고 있는 중일 수 있습니다. 당신의 문제꺼리는 성격 상 하나님의 응답을 요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마치 아버지가 어린 자녀를 대하듯 당신의 모든 행동을 지켜보신다고 믿습니까? 당신의 모든 생각을 그분이 해석하고 계신다고 진심으로 알고 있습니까? 그분이 모든 눈물을 병에 담고 모든 한숨을 듣고 계시며 당신 위를 감도시며 사랑하시고 당신을 돌보시며 일하고 계시는 것을 믿습니까?

성경은 그분이 바로 그렇게 일하신다고 묘사합니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시편 34:15, 17).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역대하 16:9).

당신은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완전하게 당신의 모든 생각, 슬픔, 고통, 시련, 경제적 부담, 가정의 문제를 아시며 당신이 그 모든 것을 통과해 나오도록 보살피기 원하신다는 것을 믿습니까?

시편기자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시편 103:13).

여기서 긍휼히 여긴다는 말의 히브리 단어는 “귀여워하다, 껴안다, 사랑하다, 동정심을 갖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은 주님이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품에 껴안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팔로 두르시고 뺨을 토닥이시고 당신을 안으십니다. 그분은 말씀합니다. “나는 너의 생각, 염려, 네가 직면하는 모든 전투를 알고 돌보고 있다!” 당신이 어떤 일을 겪고 있든지, 당신이 어떻게 느끼든지, 주님은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당신이 연약하다고 느끼는 바로 그 감정을 느끼십니다. 당신의 모든 동작 - 당신의 모든 언행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당신에게 진노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을 소중하게 여기시고 껴안으시며 사랑하시는 생각을 하고 계십니다. 당신이 어떤 식으로 느끼는지 아시며 돌아보십니다! 그분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 너는 큰 시련을 겪고 있는 중이다. 시험 당하며 까불림을 당하는 중이다. 그러나 너는 나의 자녀이고 나는 절대로 원수가 너를 함정에 빠뜨리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네가 통과해 나오도록 인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