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31일 금요일

마음 속의 우상

선지자 에스겔에게 찾아와 주님의 안내를 구했던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몇명 있었습니다. 아예 까놓고 우상들에게 무릎을 꿇던 다른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들은 다릅니다. 거짓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며 우상의 제단을 섬기는 사원 같은 곳에서는 그들을 볼 수 없습니다. 그들은 누구에게든지 경건한 사람같이 보여야하는 백성의 지도자들이기 때문에 그런 곳에는 빠집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하나님께로 마음이 쏠려 평생 하나님 말씀을 구하며 사는 사람들 같습니다. 이런 모양으로 에스겔 선지자에게 접근하였지만 그들의 본색을 하나님이 드러내보이십니다. 에스겔서 14장 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다시 말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해주십니다. “이들이 네게 와서 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다, 명령대로 순종하며 살고 싶다고 말하고 있지만 거짓말이다! 삶속에 감춰놓은 죄악이 있느니라.”

비밀로 숨겨진 곳에서 이 장로들은 모두 우상숭배자들입니다. 문걸어잠근 채 탐닉하고 있는 죄의 멍에를 마음 속에 벗지 못한 그들이건만 아무도 겉모양만 가지고서는 알아차릴 수 없었습니다. 반대로 그들의 모양새는 이교도나 우상숭배자가 아닌 하나님 사역에 분주한 존경스러운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한결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재미가 무색해지도록 당신과 하나님 사이에 끼어든 악한 것들 즉 죄의 유혹이 있다면 그런 것들이 모두 거침돌입니다. 모든 고질적인 죄가 믿음을 휘청거리게 만듭니다. 내심 부끄러워지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이름에도 명예롭지 못한 욕망입니다. 주님께 도움을 청하면서도 아직 버리지 않은 죄악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들어와 두손 들고 큰소리로 경배하지만 마음 속엔 불법의 거침돌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온 맘 바쳐 회개하며 우상으로부터 돌이키는 것만이 주님 말씀이 다시 들리고 명백하고도 신성한 인도를 받는 유일한 길입니다. 회개할 때 첫번째 당신께 돌아오는 이득은 분별력인데 죄악을 멀리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분명하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보게 됩니다. 그분 특유의 정말 진리에 실려있는 권세로 말씀해주심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2012년 8월 30일 목요일

내가 사모하는 폭포수 같은 성령강림

우리 교회는 기도에 많은 시간을 씁니다. 최근 우리는 하루 24시간씩 30일간 이어서 기도하는 특별연쇄기도를 마쳤습니다. 그러면 정확하게 무엇을 위해 기도했습니까? 우리가 바라본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교회에서 자라나던 나의 어린 시절, 주로 많이 듣던 아버지와 할아버지 말씀은 항상 곧 임박할 대부흥이었습니다. 캠프부흥회 같은 데에서 부흥강사들이 주로 하는 말은 “부흥이 오고있습니다. 곧 하나님 나라로 많은 무리를 몰아서 거두어들일 것입니다.”

이 모든 부흥에 관한 이야기의 중심은 기본적으로 단 한 가지 생각입니다. “우리가 길거리로 나가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여기 남아서 기도하면 성령께서 사람들을 불러모으신다”는 것입니다.

부흥을 정의하면 이렇습니다: “시체가 되어버릴 위험성에서 깨어나거나 부활하는 것” 다시 말해 죽은 교회를 깨우며 다시 살게 하는 것이며 소생술로 일으키듯 한 결과 경건치 못한 사람들까지 마음이 내켜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현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가 기사회생하지 않으면 안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커다란 부흥을 위해 기도해야만 하는 상황은 참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있는 동안에도 우리 나라에서는 참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도시들은 불타기 직전인데 국민들은 섹스와 쾌락과 스포츠 우상이나 실컷 즐기고 있습니다. 결혼한 가정 둘 중 하나 꼴로 이혼으로 끝납니다. 우리는 젊은 세대를 몽땅 냉소주의, 강퍅함, 환멸 같은 것들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이 폭력으로 학대받고 배고파 우는 소리는 점점 천둥소리같이 우리네 도시에서 울려퍼집니다. 일자리가 없어 절망한 나머지 일거리를 찾아 헤매는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수백명씩 거리에 넘쳐납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과연 무엇을 해야할까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만약 나서서 인간의 필요를 채운다면-세상을 불쌍히 여기라는 성경의 명령에 순종하여 남의 필요을 위해 자신을 내어줄 줄 안다면-우리가 물댄 동산처럼 된다고 하십니다.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이사야서 58장 5-12절).

하나님은 세상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 마음에 우리 모두 하나 되기를 원하십니다.

2012년 8월 29일 수요일

남돕는 일에 초점을 두라

우리가 꿈꾸는 최대의 부흥을 얻으려고 이웃 너머 먼 데로 우리가 여행을 꼭 떠나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떡을 나누어 배고픈 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 가난한 자들을 집에 들이고 헐벗은 자들에게 옷을 입히고 고통 속에 굶주려 죽는 이들에게 정성을 쏟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끊임없이 인도하고 공급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마치 물댄 문전옥답 같이 되고 이사야서 58장 10-11절 말씀처럼 마르지 않는 샘에서 흘러나오는 물과 같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남을 돕는 일에 초점을 맟추어라! 가난한 자들과 괴로워하는 자들에게 나아가라. 그러면 내가 응답하고 인도하므로 흡족할 것이다. 너는 남들에게 생명샘 같이 될 것이며 네가 비는 축복이 결코 빈말이 되게 하지 않겠다.”

이같은 구약의 가르침에 익숙치 않으시다면 예수님이 하신 다음 신약의 말씀을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5장 42-46절).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요한일서 3장 17절).

이 정도쯤에서 이렇게 나오시는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나도 딱한 사람을 보면 동정하며 돕고싶은데요 어떻게 하면 됩니까?”

그러면 나는 다음과 같은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실 것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습니다: “주님, 모든 인간의 필요들이 도처에 보입니다. 이 도시에서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유일한 예수님 모습이란 바로 나와 내 교회를 통해서 비쳐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압니다. 주님, 보여주옵소서.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내 지갑도 집도 시간도 다 맡기오니 어디로 갈지 보여주옵소서, 주님.” 정말 무슨 필요든지 주님이 그대의 문앞 계단까지 틀림없이 보내주실 것입니다.

2012년 8월 28일 화요일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

지상에 계시던 때에 예수님 모습은 인생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 마음의 화신입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의 고통을 보시며 불쌍히여기셨다라고 한 대목을 종종 봅니다(마가복음 6장 34절, 8장 2절). 당시의 세상을 보면서 그러하셨던 예수님이라면 2천년이 지난 오늘 세상을 보시는 심정이 어떨까요?

세상 끝날 이전에 미리 개입하여 이 사악한 세상을 끝내버리지 않고 하나님이 꾹 참게 할 만한 것이 내가 믿기론 전적으로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 마음입니다. 나는 그분이 어떤 해롭지 않은 영적인 존재로서 천상에 앉아서 이 세상에서 활개치며 돌아다니는 끔찍한 악령들을 그저 무심하게 바라만 보는 분이라고는 절대 믿지 않을 겁니다. 절대 아닙니다. 고통받는 자녀들을 보면 괴로워하며 불쌍해 하는 보통 아버지이십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예레미야애가 3장 22절). “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시편 86편 15절).

정말 믿기 어려운 장면을 성경에서 봅니다. “큰 무리가 절뚝발이와 불구자와 소경과 벙어리와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앞에 두매 고쳐 주시니”(마태복음 15장 30절).

상상이 되십니까? 예수님 주변에 괴롬당하는 사람들이 즐비하게 앉거나 누워있는 광경이-앉아있을 힘조차 없어 쳐저있는 애들, 혹은 고통으로 신음하며, 고열에 시달리며, 귀신들려서, 도와달라 부르짖으며 모인 각종 병자들 천지인 광경.

예수님은 그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신유와 귀신을 쫒아내는 기적으로 벙어리가 말하며 앉음방이가 일어나 뛰고 소경이 눈을 뜨고 병자들에게서 아픈 것과 질병이 갑자기 떠나가고 괜찮아지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매번 이런 기적을 보일 때마다 모인 무리가 더 가까이 조여옵니다. 병든 자녀들을 서로 먼저 드리밀려고 하고 제자들은 질서를 잡으려고 애쓰는 광경이 눈에 선합니다.

이 사람들이 광야에 나온지 벌써 사흘이고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파 현기증이 날 지경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마태복음 15장 32절입니다.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하나님은 세상을 불쌍히 여기는 자신의 마음에 우리도 모두 하나 되기를 원하십니다. 만약 당신도 그러하시다면 그분은 누군가의 필요를 당신의 문전에 배달하실 것입니다. 주님께 쓰임받기 위해 자신을 한번 드려보십시오. 그러면 그분은 기회의 문을 여실 것이고 당신은 긍휼로 가득찬 그분의 마음을 진실로 알게 될 것입니다.

2012년 8월 27일 월요일

믿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by Gary Wilkerson

사람들이두려워하는 것은 여러가지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사람들은 혼자 있는 것을, 또 다른 사람들은 군중 속에 있는 것을 두려워 한다고심리학자들이 말합니다. 대중연설 역시 사람들이 보통 많이 느끼는 걱장꺼리입니다.

어떤 사람은 두려움때문에 삶이 가져다주는 위대한 선물들을 놓칩니다. 하나님의 일에 관여하려면 의당 감안할 필요가 있는 위험을 부담스러워하며 두려워하기에 하나님이 어떤 일들을 당신 마음속에 태동시키실지라도결국 놓치고맙니다.

수년전 제아내와 제가 뉴욕에 살면서 타임스퀘어교회에서 사역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영국 런던에 교회를 하나 개척하는 문제로 주님께서 우리 마음 속에 분명코 말씀하시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위험부담이 큰 일이었고 두려워할만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가진 자원도 별로 없었고 영국엔 아는 사람도 하나 없다시피 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러다 런던에 살 집이 하나 생기나 했더니 우리가 출발하기 몇 주전쯤 그만 무산되어버리고 만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단기선교팀을 대동하여 남아공화국까지 갔다가 임무를 마친 다음 영국을 향해 떠나는 일정으로 우선 출발했습니다. 제 아내와 함께 제가 남아공에 도착해서 머문 곳이 어느 현지 사업가의 집이었습니다. 어느날 아침, 그 사업가가 저를 보더니 묻기를, “지내가가 괜찮습니까?” 그러길래, “좀 걱정되는 일이 있는데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고나서 영국에 갈 계획과 그곳에 가서 막상 살집도 없는 형편을 털어놓았습니다.

“사실은 내가 런던을 참 좋아하거든요. 거기 내 집이 하나 있지요”라며 의외로 그 사업가가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며칠후 그분이 오더니 제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그집 열쇠입니다. 거기 계신 동안 마음놓고 쓰세요.”

우리 계획을 취소해야만 하는 걸까 라며 걱정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거기에 미리 가 계셨습니다! 뉴욕에 있는 한쌍의 부부가 런던으로 가서 있을 집을 구하는 어려움 가운데 일이 해결된 것을 보면 여러가지 일들이 이처럼 완벽한 조화속에서 일어나게 만드신 이는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불가능한 일들과 불가피한 상황을 하나님이 먼저 조성하십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은 항상 자신이 하신 일로 끝매듭을 지어주시는 분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일들을 체험하고나면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대한 확신과 담대함을 가지고 인생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2012년 8월 24일 금요일

긍휼히 여기심

“긍휼”은 단지 연민이나 동정이 아닙니다. 단순히 감정적으로 동요되어 눈물을 흘리는 것 그 이상을 의미합니다. 긍휼은 무언가를 변화게 하려는 갈망이 동반된 동정심과 자비함을 의미합니다. 진정한 긍휼은 우리로 하여금 무언가를 하게 감동시킵니다.

예수께서 기도하시기 위해 빈들로 가신 적이 있습니다. 무리들이 예수님의 행방을 듣고는 걸어서 그 분을 따랐고 주님께 절룩발이, 소경, 죽어가는 자들 귀신 들린 자들을 데려 왔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긍휼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니라” (마태 14:14).

만일 예수님이 우리의 현대적 사고로 제한이 되었더라면, 그의 제자들을 불러 모아 회의를 소집한 후 이 사회의 모습을 형성한 궁극적인 죄를 분석하며 이야기 했을 수도 있겠지요. 그 분은 거품 문 귀신들린 자를 가리키며 다음과 같이 슬프게 말씀 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 자 보아라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되는지, 이 얼마나 비극이냐?”

아니면 주님께서는 신성한 체하는 수많은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을 수도 있겠지요. “ 이것 보아라, 나는 너의 아픔을 느낀다. 너에게 열심히 사역해 왔었지만 이젠 나도 지쳐서 아버지께 말씀 드려야겠다. 나중에 내가 제자들을 불러모아 기도회를 열고 우리는 너의 필요를 위해 기도하도록 하자. 자 이젠 평안히 가거라.”

간단히 말하자면 바로 이것이 현대의 신학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기도하기를 원하지만 실행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마 태복음 9장은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9:36).” 여기에서 “불쌍히 여기심” 이란 구절은 “행동을 불러 일으켰다” 라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무엇을 하셨을까요? 그 분은 그저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마음은 그가 보신 것으로 인해 동요되었고 바꾸고자 하는 불타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느끼신 연민과 동정의 느낌은 그 분이 행동으로 옮기게 했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5절) 이것은 어떤 허망한 신학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잘 지내시면서 “ 주님 당신의 추수 밭에 일꾼들을 보내세요.” 라고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절대 아니고 말고요. 예수님은 그 분 자신이 직접 가셨습니다. 그 분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실질적이고 아주 친밀하게 개입하셨답니다.

2012년 8월 23일 목요일

그 분께서는 당신에게 아버지가 되실 것입니다

저의 육신의 아버지도 제가 잘못 행동했을 때마다 사랑으로 저를 꾸짖으셨습니다. 하지만 저를 체벌하신 후에는 항상 저로 하여금 아버지를 껴안게 하셨습니다. 원치 않았던 아버지와의 포옹을 회상 할 때면 아버지의 어깨 위에 기댄 채 눈물을 쏟았던 제 모습 또한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항상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지요 “데이빗아 사랑한다. 하나님의 손이 너에게 임해있고 나는 결코 너를 마귀에게 빼앗기지 않을 거란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린도인들에게 보내는 바울의 두 번째 편지에서 우리는 하늘의 아버지로부터의 사랑의 꾸짖음을 들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죄와 세상을 멀리하고 악으로부터 떠나시오!”

“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라 하셨느니라” (고린도 후서 6:17-18).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 나는 너의 아버지가 되기로 택했고 마귀와 나의 역할을 나누지 않을 것이다. 만일 네가 세상과 섞이려 하고 너의 삶 가운데 깨끗지 않은 어떤 것이라도 붙들려고 한다면, 그 때에는 우리는 함께 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내가 너의 오직 한 아버지가 되려면 너도 너의 죄를 내려 놓음으로써 세상과 세상의 쾌락을 떨쳐 버려야 한단다. 너는 너의 삶 속에 어떤 누추한 것도 가지고 있을 수가 없단다.”

하나님께서는 더 나아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나는 너를 이끌고 인도하기를 원한다. 나의 자녀에게만 줄 수 있는 그런 은혜를 너에게 주기를 원하지. 그렇게 때문에 나는 네가 깨끗지 않은 것을 만졌던 손을 가지고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더러운 것들로부터 구별되거라. 그러면 내가 너를 아들로, 딸로 영접할 것이다. 나는 너에게 아버지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단다!”

만일 당신이 예수님을 따르기 원한다면 그 분께 반절짜리 마음으로 오지 마십시오. 세상을 다 버리고 완전히 오십시오. 당신의 아버지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 만일 네가 나를 너를 구원할 아버지로 신뢰한다면, 나는 너에게 성령을 보내어 너에게 능력과 권세를 입혀 줄 것이다. 나는 네가 고통가운데 있을 때 너에게 소망을 줄 것이며 네가 그것을 이길 수 있게 해 줄 것이야.”

2012년 8월 22일 수요일

사랑의 행동

하나님께서는 제가 그 분의 아들이 될 자격 조건이 “충분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모든 교리들을 파악할 때까지 기다리시는 것도 또한 아니었고요. 절대 아니었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네가 죄 가운데 빠져 있을 때조차도 나는 너와 화해하려고 왔었다. 네가 추한 죄에 빠져 있을 때에도 너를 사랑했었다. 나는 너를 불렀고 택했으며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내 양자 삼았단다.”

저는 때때로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내려다 보시고 사랑하실 수 있었는지 의아해 합니다. 우리는 너무도 사랑스럽지 않으며 때때로 너무도 못됐고 너무도 보잘것없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자비 가운데 그 분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나는 너를 원했고, 너를 택했다 왜냐하면 나는 너에게 아버지가 되기 원하기 때문이란다!”

“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데 하셨는고…” (요한 일서 3:1).

“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4:10)

하나님께서 저를 택하셨습니다, 제가 그 분을 먼저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 분이 저를 먼저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 분의 자녀로 양자 삼으신 것입니다.

이 모든 사실들이 저로 하여금 놀라운 결론에 이르게 합니다. 즉 나는 그 사실들을 알아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나는 칭의, 성화, 금욕, 영화 의 깊은 교리들을 이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알아야 하는 것의 모든 것은 그 분이 나를 그 분의 아들로 선택했다는 것, 곧 내가 아버지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음부가 내게 무슨 짓을 하려 하든 상관이 없습니다. 그 어떤 것도 내가 사랑 받고 있고 그 사랑 안에 안식할 수 있다는 이 놀라운 지식으로부터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나를 택하시고 사랑하시는 그 분께서 나를 지키시고 이끄시며 또한 결코 나를 버리지 않으실 테이니까요. 그 분은 내 손을 절대로 놓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저의 아바 아버지, “나의 아버지”이니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이 땅의 한 아비로써 하늘과 땅 모든 이유를 통틀어서도 제가 저의 자녀들을 버리거나 떠날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하물며 당신의 하늘의 아버지께서 이 삶 가운데 당신이 겪는 모든 것들을 이겨내도록 당신과 함께 더욱 더 같이 계시지 않으시겠습니까?

2012년 8월 21일 화요일

하나님께서는 제 아버지가 되시길 택하셨습니다

“ 나는 내가 네게 어떠한 존재가 되고 네게 어떻게 보여질지를 원하는 바대로 선택했었단다. 나는 네가 나를 너의 사랑하는 하늘의 아버지로 알기를 원한다.” 제가 그 분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분께서 제 아버지의 역할을 맡으시기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분이십니까? 그분께서 전지 전능하십니까? 그 분이 홍수 중에 좌정하신 왕이십니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물론 ‘그렇지요’ 입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에 대한 다음과 같은 다른 깨우침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 나는 너에게 아버지가 되기를 원하며 너는 내게 아들과 딸이 되기를 원하노라”

예수님은 전 생애를 아버지가 누구셨는지를 알아가면서, 그 분의 뜻을 알아가면서, 그 분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 땅에서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의 빛 아래에서, 결코 혼란이나 의심 없이 모든 시간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아셨기에 마귀가 던지는 모든 시험, 모든 어려움을 직면하실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겠지요 “ 나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안다. 그분은 나를 택했고 나를 지명하셨다. 그리고 그 분은 항상 나와 함께 하신다. 나는 절대 혼자가 아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즉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 요한 17:21 )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 너희는 나를 알기 원한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옳고 좋은 것이지. 그러나 지금 나는 너희가 나의 아버지를 알기 원한다. 나는 너희가 내가 그분을 아버지로 알고 누리고 있듯이 그렇게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노라!”

아버지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 나는 너희의 보호자로써 모든 대적의 공격을 몰아 내고, 너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며 또한 너의 모든 시련을 이겨 내도록 도와주며 너희 위에 머물기를 원하노라. 나로 너의 아버지가 되게 해주겠니!”

생각해 보세요: 그 분께서는 이 지구상의 수십억 인구들 중에서 당신을 택하셨습니다. 또한 당신을 택하셨을 뿐 아니라 당신을 그 분의 자녀로 양자 삼으셨습니다. 그 분의 영은 당신에게 “ 아빠! 당신께서는 저의 아버지이십니다. 당신은 아브라함의 아버지, 베드로와 바울의 아버지일 뿐만 아니라 저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리고 당신은 저를 예수님과 같은 상속자요, 예수님의 형제가 되게 하셨습니다. 당신은 진정 저의 아버지십니다!”라고 부르짖으라고 말씀하십니다.

2012년 8월 20일 월요일

예수님의 좋은 소식 by Gary Wilkerson

“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인가 심중에 의논하니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누가 3:15-16 ).

세례요한은 복음이 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구약의 어떤 선지자들보다도 복음을 잘 꿰뚤어 볼 수 있는 계시를 가지고 있었고 이 복음이 올 때 그것은 성령의 불의 복음이 될 것이라는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께서 그분의 불을 가지고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 주의 영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주께서 나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려고 기름 부으셨음이라.”

그것이 복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 이 복음은 바로 나의 것이며 나는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들에게 가져가기를 원한다. 그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가져가기를 바라노라.”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누가 4:18-19 )

주의 은혜의 해, 그것은 희년이라고 불려집니다.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매 70년 마다 노예들이 자유 하도록 풀려지며 모든 빚들은 탕감 되어집니다. 그것은 용서함을 받는 해, 기쁨의 해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해가 오기를 간절히 바래왔고 예수께서는 이제 그 복음이 왔으며 그 복음은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십니까? 그것은 희년입니다!

당신은 복음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계시나요? 그것은 포로된 자를 자유케 해주는 것입니다!

당신은 정말 복음이 무엇인지를 아십니까? 그것은 지금이 주님의 은혜의 해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오셨다는 좋은 소식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메시야는 오셨고 세상은 진정 바뀌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2012년 8월 17일 금요일

예수님과 친해지는 목적

예수님과 친해지는 목적은 아버지에 대한 계시를 받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아버지에 대한 눈이 열리지 않았다면 아직 그리스도와 친밀한 관계가 주는 충만함에 아직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9절 내용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버지가 누구신지를 알려주는 계시가 너희들에게 필요하단다. 현재 목자 없는 양처럼 헤매는 남들을 너희들이 가르칠 수 있어야만 한단다. 아무도 자기네를 돌보는 사람도 없고 마치 사생아인 것처럼 여기는 그들이란다. 그러니 너희가 내가 일하는 것처럼 일하고 내가 말하는 것처럼 말해야만 된단다. 하늘에 사랑하시는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그들도 알 필요가 있기 때문이란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 역시 이 계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향하여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삶을 자세히 보세요. 내 말을 들어보세요. 내가 하는 일들을 보세요. 이 모든 것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 관한 일입니다.”

나는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을 상상합니다. “나보고 아버지를 좀 보이란 말이냐? 가나에서 있었던 결혼식을 한번 생각해보렴.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었지. 그걸 해주고 싶은 분이 아버지이시다. 그분은 아무리 작고 하찮은 것일지라도 자녀들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살피신다. 자녀들의 가정과 결혼과 양식까지 챙기신다는 것을 그때 보여주신 것이지. 그게 바로 아버지께서 일하고 계신 증거! 오직 그분이 나보고 하라는 것만 하는 내가 내 맘대로 한 것은 아직까지 한번도 없었다”(요한복음 14장 10-11절 참조).

그분은 계속 말씀을 이어갑니다. “사천명을 먹이고 오천명을 먹인 것은 또 어떻고. 그 사람들이 거의 사흘간이나 먹을 것 없이 지내고 있을 때 자네들도 그 사람들이 얼마나 배고픈지 보았지 않았나. 그때 내게 묻기를, “우리가 어찌 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줄까요?” 그래서 내가 떡과 물고기를 떼어서 나누지 않았는가. 그때 자네들도 보았지만 얼마나 넉넉히 배부르게 다들 먹었나. 그래서 먹고 남은 음식 부스러기만도 몇 광주리였는지 생각나지 않는가!”

그러면 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중에 성령께서 이 모든 것들이 다 생각나게 할 거라고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그래야 아버지에 대한 계시를 우리가 소유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기적, 해방의 엄청난 역사들을 우리가 삶 속에 연결시킬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한 모든 것들은 다 아버지의 표현방식이다-자신이 누구시며 너희들에게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려주시려는.”

2012년 8월 16일 목요일

우리가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요한복음 14장 5절에 보면 도마라는 제자가 예수님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라고 했는데 이때 예수님은 틀림없이 크게 놀랐을 것입니다. 도마가 한 말은 실제로 이런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아주 친한 분인 것처럼 아버지께 돌아가신다는 말씀을 하시지만 사실 우리는 그분을 잘 모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아버지께 가는 길을 알겠습니까?”

이것은 고백이었습니다. 도마가 이렇게 시인한 것입니다. “우린 주님을 압니다. 지난 3년 동안 얼마나 친하게 지냈습니까. 그렇지만 아버지의 사랑, 돌보심, 부드러움 같은 것에 대한 계시는 따로 받은 적이 없는 걸요. 주님 떠나시기 전이라도 제발 아버지를 좀 보여주세요.” 그런데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지난 3년간 해오셨던 일이었습니다. 다만 이 제자들이 보지 못했던 것뿐입니다.

만약 우리가 사랑으로 자상하게 돌보시는 아버지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 맞다면 원수마귀가 우리를 대적해 접근할 때 왜 절망합니까?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재정적 부담에 눌리면서 왜 실망합니까? 고질적인 이 죄 문제 하나도 우리는 왜 극복할 수 없는 걸까 하면서 당황합니까?

주님이 도마에게 대답했던 말씀에 자세히 귀를 기우리십시오. 바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요한복음 14장 7절).

이제 빌립이 나서며 말합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8절). 예수님으로선 귀를 의심할 정도로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빌립에게 대꾸하시는 예수님의 말투가 들릴 것 같습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9절).

다시 말해, “도마야, 빌립아, 내 귀중한 제자들아, 어떻게 이 따위 질문을 하는 것이냐. 너희들 말로 너희가 나를 안다고 했고 우리가 친하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지난 3년동안 내가 보여준 계시들을 읽지 못하고 다 놓쳤다는 말이냐? 내가 한 그 엄청난 일들 속에서 아버지가 누구신지, 어떤 분 같으신지, 너희들에게 이런 분이었으면 했던 모습들이 정녕 안보인단 말이냐? 내가 가르친 이 모든 것은 그분의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지 내것이 아니었단다.”

예수님의 전생애가 실물설교였습니다. 매일매일 그가 일으킨 기적마다 그가 가르친 비유의 말씀마다 아버지가 자신을 표현하신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성령을 보내시어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보다 큰 일들을 할 수 있게 하고 새로운 세대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계속 계시하여 전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2012년 8월 15일 수요일

실물로 보여주는 설교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하신 모든 일들은, “이렇게 아버지가 일하고 계셔. 아버지는 바로 이런 분이셔”라고 알려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든 것으로부터 죽은 자를 살리신 것까지 모든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주기 위한 실물설교였습니다.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한복음 8장 28-29절).

다시 말하자면 이런 말씀입니다. “내가 지금껏 여기저기 맘대로 다니며 말했다. 예루살렘 거리에서도 베들레헴과 유다에서도 누누히 말했듯이 내가 한 모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다. 오직 눈과 귀를 열어 내 말을 받기만 했어도 내가 그분을 너희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으련만.”

종교지도자들은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는 것을 내세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요한복음 10장 30절에서 말씀하셨을 때 그들이 격분하여 예수를 마귀라고 부르면서 돌을 들어 쳐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응하시면서, “너희가 나를 신성모독죄를 범한 범죄인 취급을 하면서 아버지께서 직접 선택해서 세상에 보내신 나를 돌로 쳐죽이려 하느냐?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않는다. 나는 아버지를 존경할 뿐이다. 나는 그분을 알고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데 그것은 그분과 내가 하나이기때문이다.”

“너희가 내 말을 받기 싫으면 내가 하는 일들을 보면 될 것이 아니냐. 그러고 나서 그런 일들이 아버지를 대변하고 있다는 것을 최소한 믿기만 하거라. 너희에게는 아브라함만이 너희 조상으로 중요한 분이 아니라 더 크신 분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말하고 보여주려고 내가 여기에 왔다”(요한복음 10장 31-38절 참조).

예수께는 이것이 중대사였습니다.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과 하늘 아버지에 대한 계시를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예수님이 볼 때 아버지의 사랑, 자비, 은혜를 모르는 그들에게 남겨질 것은 죽은 종교, 죽은 조상들, 그래도 붙들만한 여지가 좀 있어보일만큼 살아있는 것이 전무한 상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방향감각도, 소망도, 비젼도 없었습니다.

2012년 8월 14일 화요일

하나님을 보여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인류가 빠져있는 온갖 죄악과 억매임과 영혼의 감옥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이땅에 오셨습니다. 이 사실을 대부분 기독교인들은 생각과 가슴으로 잘 알고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이땅에 오신 뜻은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에게 옳바르게 계시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가 나를 보내셨다”고 하셨고(요한복음 5장 36절), 또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한다고 하셨고(30절) 끝으로,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고 밝히셨습니다(14장 12절).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나는 아버지께로부터 왔기에 여기 있는 동안 나는 그분의 뜻만 행할 따름이다. 나는 조만간 아버지께로 다시 갈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전 생애가 하나님 아버지의 일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지상에 오심, 이곳에 계신 동안의 목적 및 다시 오심이 모두 아버지를 계시하시기 위함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아버지께서..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요한복음 5장 19-20절).

예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은 전혀 없다..이땅에서 행하신 모든 것은 아버지의 일밖에 없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로 그리스도는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내 삶과 사역과 내가 행하는 모든 기적들과 선행들을 좀 보거라.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를 보게 될 것이다. 내가 하는 하나하나가 다 아버지께서 누구라는 것을 반영하고 있고 그분을 너희들에게 밝히 보여주고 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태복음 11장 27절).

여기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보여주지 않는 한 너희들은 아버지를 알 수 없단다. 단순히 성경을 스스로 읽고 교회에 간다고 그런 계시를 혼자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말아라. 아버지는 내가 반드시 보여주어야만 알 수 있단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장 6절).

2012년 8월 13일 월요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by Gary Wilkerson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마땅히 아버지의 일 즉 선교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해야할 것입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오해합니다. 심지어 같이 교회를 다니거나 교제하는 사람들조차도 오해를 하는나머지 “너무 그렇게 바깥 일에만 치중하지마세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은 돌아보지도 않으면서”라고 불평합니다.

사실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만약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돌보지 않으면서 밖으로만 나돈다면 그건 뭔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로서 여기에 있다는 것은 예수님이 한때 이땅에 계셨던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통해 돌보아야 합니다. 만약 당신의 삶에 아픔이 있고 망가짐과 얽매임이 있어 자유함과 성령의 충만이 필요하다면 그럴 때 교회가 그런 당신의 필요를 채우도록 여기에 존재합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필요가 채워질 때 그것이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식의 경험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제자들에게 사역의 사명을 주어 파송하실 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복음 10장 7-8절).

하나님께 많은 것을 받아누리고 싶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 받은 한 분복을 먼저 남에게 주어버리십시오. 그런 다음 두번째 분복을 달라고 하십시오. 생기면 남들에게 주어버리십시오. 그런 다음 세번째 분복을 달라고 하신 다음 또 주어버리는 과정을 반복하십시오.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의 원리는, “더 많이 줄수록 더 많이 받는다”입니다. 남보다 복을 많이 받으셨다면 더 많이 주어야 마땅합니다. 많이 줄수록 하나님은 당신이 더 많이 베풀 수 있도록 계속 더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과 사랑을 반영하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우리는 하나님께 받아서 남들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저 받은만큼 거저 주어야 합니다.

2012년 8월 10일 금요일

십자가상의 위기

우리는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어떻게 예수님의 승리와 능력을 얻습니까? 그 분의 부활과.

새로워진 삶을 어떻게 저희 삶에 적용할 수 있을까요?

먼저 질문 드리겠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물론 믿음으로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오직 믿음으로 말미 암아 우리가 구원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똑같이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그것을 끌어 안고 예수님의 흘리신 보혈의 승리하는 능력을 믿음으로서 승리를 얻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저에겐 제 자신을 구원할 힘도, 내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을 힘도, 죄를 이길 힘도 없습니다. 저는 죄에 대해 죽기 위한 저의 모든 노력을 포기 합니다.” 라고 인정 해야만 합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모든 혜택들을 누리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도 아시다시피 우리가 태어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었습니다. 즉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일어났던 모든 것 에 참가 한다는 뜻이지요.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가 극도로 악하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십자가가 주시는 좋은 것들에 대해서도 역시 동의 해야만 합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를 위해서 그 일들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단 우리가 십자가를 품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 분과 함께 부활하여 새로운 삶 가운데로 들어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육신을 주님을 섬기는 일에 드리며 우리 지체들을 의의 병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때때로 당신은 불신으로 인해 넘어질 때도 있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궁극적으로 승리는 당신의 것이라는 진리를 꼭 붙드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 주님 저는 승리가 올 때까지 당신을 신뢰하려고 합니다.” 라고 외치기 때문이지요

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 드리며 또한 그로부터 오는 위기에 감사 드립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은혜의 설교”는 십자가를 전하는 것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십자가의 위기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당신이 그 곳에서 구출되기를 바라는 그 견고한 진은 어떤 것이었나요?

오늘 당신을 위한 구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을 때까지는 찾아 오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해야만 합니다. “저는 더 이상 나의 죄 가운데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단 한 시간도요. 하나님, 지금 저는 그 죄를 하나님께 가져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