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31일 목요일

문들을 통하여 어떤 짐도 들여오지 말라

“만일 너희가 내게 열심히 경청하여 안식일에 이 성읍의 성문들을 통하여 어떤 짐도 들여오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여 그 날에 일하지 아니하면 그때는 다윗의 보좌에 앉은 왕들과 고관들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성읍의 성문들로 들어오리니 그들과 그들의 관원들과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이라. 떠 이 성읍이 영원히 남으리라” (예레미야 17:24-25). 저는 이 전체의 말씀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에 대한 예언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다윗의 씨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다윗의 보좌에 왕으로 앉아계시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예레미야가 묘사하고 있는, 병거와 말을 타며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왕들과 왕자들은 누구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그 사람들이며 우리는 또한 엄청난 약속을 받았습니다. 즉 짐 짊어지는 자에게 우리의 짐을 다 맡긴 채, 우리는 영원한 평강가운데 살 것이며. 모든 굴레로부터 자유케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짐을 그분께 맡기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분을 신뢰함으로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너희가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는 것과 안식일에 짐을 지지 않는 것과 심지어는 예루살렘 성문들로 들어오는 것까지 내게 경청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 성문들에 불을 지러 예루살렘의 궁전들을 삼키게 하리니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27절)

그 선지자는, “만일 당신이 당신의 짐을 지는 것을 멈추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 짐들에 의해 소멸되어 버릴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이 것은 오늘날의 많은 신자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의 문제들에 고민하는 것을 그치지 못한 나머지 밤에 거의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그것들은 그들의 마음속에서 “ 어디서부터 내가 잘못한 걸까? 어떻게 이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가 있지?” 라고 생각하면서 업치락 뒤치락 합니다.

그들이 깨어나면 그들의 마음은 그들의 마음의 짐으로 곧장 향해집니다. 샤워를 할 때도, 옷을 입는 중에도, 아침 식사를 하는 식탁에서도 말입니다. 그들이 대문을 나설 때 이미 그들은 너무 짐이 무거워서 미소조차 지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러한 크리스천들은 그 분이 값없이 주시는 안식을 단 하시간도 누리지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2013년 1월 30일 수요일

서명 있는 심판

저는 하나님께서 앞으로 다가올 힘든 때를 위해 우리에게 아주 특별한 약속을 주셨다고 믿습니다, 그 약속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 대해 맹세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대로 우리를 우리 원수의 손에서 구하여 내심은 두려움 없이 주를 섬기기를,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하여 그분 앞에 거룩함과 의로움으로 하게 하려 하심이라” (누가 1:73:75)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원수, 모든 두려운 것들로부터 구해주시겠다고, 그래서 우리가 그분을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해 두려움 없이 섬길 수 있도록 해 주시겠노라고 맹세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배고픔은 우리의 원수입니다, 헐벗음과 가난도 원수들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이 맹세는 모든 위기와 재앙 그리고 두려운 때를 향한 우리의 믿음의 기초가 되어야만 합니다. 외우시기 바랍니다! 그 약속이 은혜의 보좌 앞에서의 당신의 거룩한 주장이 되게 하십시오!

시편 121편에서 다윗은 인간에게 주어졌던 가장 능력 있는 거룩한 성령의 주장들 중 하나를 우리에게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시편 전체는 우리의 도움은 오직 주님으로 부터 온다고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시편 124편은 또 다른 거룩한 주장으로 당신으로 하여금 특정한 신뢰를 쌓을 수 있도록 해주는 특정한 약속입니다.

바로 지금 미국은 하나님의 “ 서명 심판(signature Judgment)” 하에 있습니다. 서명 심판은 하나님께 대항해 저지른 죄들이 거울처럼 보여지는 하나님의 특별한 표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심판은 우리의 눈 바로 앞에서 행해지므로 이에 대한 우리의 오직 해결방법은 예수님을 우리의 방패로 삼는 것입니다. 오늘 그분을 만나기 위해 기도하십시오 당신의 뿌리가 그분 안에 깊이 박히게 하고 주님께서 모든 상황가운데에서 당신을 지켜 주시리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직면할 수도 있는 어떤, 그리고 모든 재앙을 위한 다음의 특별한 약속들을 굳게 잡으십시오:

“정직한 자에게는 암흑 속에 빛이 일어나니 … 주를 신뢰함으로 그의 마음이 확정되었도다. 그의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하지 아니 하리니…” (시편 112:4, 7-8)

“그는 의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며 정직으로 백성들을 판단 하시리로다. 주께서 또한 압제 당하는 자들의 피난처가 되시리니 곧 고난의 때에 피난처가 되시리라. 주의 이름을 아는 자들은 주를 의지하리니 이는 주께서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않으셨음이라” (시편 9:8-10)

2013년 1월 29일 화요일

우리 아버지의 공급하심

저의 일생 중에 지난 3년 동안만큼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얘기해 본적이 없습니다. 미국이 완전 겁에 질려 있습니다.

건축가들, 월 스트릿가의 전문가들, 소매업자들, 경영자들, 법률가들, 소기업 주인들 모두들,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것보다 더 형편이 안 좋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나빠지고 있고요!” 우리는 너무도 어려운 때를 향해 달음질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도 이러한 종류의 소식을 듣기 좋아하지 않지요 사실 이 소식들은 사람들을 아주 우울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청교도들은 이런 속담이 있답니다.” 우리의 애착은 우리의 분별을 매수한다” 우리는 모두 미국 과 우리 식의 삶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실을 직면하지 않으면 이 나라의 어려운 때가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하게 될 신뢰와 자신감을 결코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안심하십시오, 이것들 중 어떤 것도 예수님을 놀라게 할 수는 없답니다. 주님은 그 모든 것이 오고 있음을 아셨습니다. 사람의 모든 머리 털까지 세시고 땅에 떨어진 모든 참새도 세시는 주님은 그분을 따르는 자들이 이 마지막 때에 겪을 일을 미리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연방 예산 중에 모든 달러들이 어디로 갈지, 그리고 당신의 월세와 세금이 올라가는 것도 다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그분의 자녀들이 당할 모든 직장해고, 당신의 모든 청구서들, 그리고 당신의 자녀가 몇 명인 것까지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은혜로우신 구세주가 모르시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 25절에서 33절에 걸쳐 이렇게 아주 자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것들에 대해 염려하지 말아라. 너의 천부께서는 너의 매일의 필요에 대해 다 알고 계시고 그분께서 너를 돌보아 주실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어려움 가운데 있는 크리스천이 그의 육체적 한계에 대해 생각을 안 할 수 있는지 의아해 합니다. 제 말씀은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의 약속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바로 이 말씀은 영원합니다. “ 내가 너희에게 말 하노니…” 사실 당신은 그러한 모든 말씀들을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할 수 있답니다. “ ‘내가 너희에게 말 하노니, 너희의 필요로 인해 염려하지 말아라!’ 라고 여기 붉은색으로 써 있어요”

얼마나 많은 은행이 문을 닫고 혹은 실업자들의 줄이 얼마나 점점 길어지던 간에 우리 주님께서는 공중에 나는 새도 먹이시고 들판의 백합화도 입히시며, 큰 바다에 사는 모든 물고기들의 매일의 먹이도 공급하고 계십니다! “ 당신의 천부께서 그들을 먹이십니다” (마태 6:26). 단 하나의 피조물도 우리의 주님이 모르는 채 고통 당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어려운 때가 우리의 아버지의 공급하심을 결코 막지는 못할 것입니다. “ 너희들이 그들보다 더 귀하지 아니하냐?... 하나님께서 너희를 더욱 더 잘 입히지 아니하시겠느냐?” (마태6:26, 30)

2013년 1월 28일 월요일

평생을 위한 은혜 by Gary Wilkerson

하나님께서는 주리며 기다리는 심령들에게 호의와 축복을 넘치게, 그리고 그분의 은혜를 물 쏟듯 아끼지 않고 주십니까? 대답은 ‘ 예’ 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누가복음 1장에서 이에 대에 설명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리아에게 한 천사가 나타나 그녀의 삶에 일어날 엄청난 일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고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 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누가 1:26-29)

성경 학자들은 마리아가 아주 어렸으며 아마도 십대소녀였을 거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경험이 그녀에게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이었을지 상상해 보세요. 잘 알려지지 않은 마을의 지극히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소녀 앞에 한 천사가 서있습니다. 그리고 천사가 일러 가로되, “은혜를 입은 자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누가 1:30-31)

마리아는 그녀가 듣고 있었던 말이 이해하기에는 쉬운 말이었지만 자신이 들었던 것에 대해 확실치 않았듯 보입니다. 남성주도적인 문화가운데 살면서 그녀는 아무런 영향력도 없었고 자신의 삶에 대한 기대도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좋은 아내 그리고 어머니가 되는 특권 외에 그 이상의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이 마리아와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환경이 바뀌어지는 것을 보기보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싫은 친척들이 고쳐지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문제있는 자녀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발견하기를, 그리고 우리의 예민해있는 결혼생활이 원래의 기쁨을 회복하기를 갈망합니다. 마리아처럼 우리는 생각합니다, “주님 저의 삶은 당신의 특별한 은혜를 비쳐주고 있지 않아요. 저는 당신께서 제 삶 속에 당신의 빛을 비춰주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늘로부터 “ 너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이다”라는 음성을 듣는다면 어떻게 되나요?

용기를 내십시오! 하나님은 사실 당신에게 특별히 은혜 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마리아와 같이 이렇게 외친다면 말입니다.” 주님 저는 당신께서 저의 삶 가운데서 영광 받으시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2013년 1월 25일 금요일

여러분의 기도를 잠시도 멈추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기도의 응답이 아무리 오래 걸릴지라도 여러분 스스로 인내하기로 작정하는것을 확실히 보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포기하지 않기로 작정하기를 기대하신다는 증거로 한 비유를 주셨읍니다. 그 비유는 바로, 자기 원한을 풀어달라고 재판관을 번거롭게 했던 그 끈질긴 과부 이야기입니다 (누가복음 18:2-8). 그 재판관은 그녀의 끊질긴 간구때문에 단지 더이상 괴롭힘을 받기 싫어서 마침내 그녀의 간구를 들어주었읍니다.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5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7-8절).

당신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죠.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구절에서 역설적으로 말씀하시고 계신것이 아닐까요? 먼저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오래 참으신다’고 말씀하신 후에 ‘그가 속히 우리의 원한을 풀어주시리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우리 대부분은 이 구절을 완전히 오역하고 있읍니다. 예수님께서는 절대로 오랜 시간 동안 늦춰질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속히 응답하기를 원하시지만 자신이 인내하셔야 할 “무언가를 기다리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즉, “네가 원하는 그것을 내가 품고 있을 것이다. 응답받기 위해서 네가 깨닫고 이해해야 하는 그때까지 기다릴것이다.

제가 과거에 기도하며 인내해야 했었던 것들을 회고해 볼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깨닫습니다. “네 간구에 대한 반영처럼 나도 네게 요구한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네 가슴 깊은 곳에 무엇이 있는지 깨닫게 해줄 것이다.”

저는 제 자신을 예수님의 발아래에 무릎꿇으며 다음과 같이 절규하게 만든 의심과 두려움, 불신등을 보아왔습니다: “오 주님, 저는 이제 더 이상 기도 응답에는 관심이 없읍니다. 단지 이러한 것들을 제안에서 제거해 주시옵소서. 주님을 의심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믿음의 여정에서 가장 힘든 때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지 않을것같아 보일때 우리는 포기하며 다른것으로 돌려버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굴복한다고 생각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이것은 결코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음이 분명해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가 아니랍니다. 예를 들어서, 당신 가족의 구원 문제와도 같은,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할때, 그분이 응답하실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고 기도할 모든 권리가 여러분에게 있는 것입니다.

2013년 1월 24일 목요일

당신은 시험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주님 앞에서 의롭게 살고 있는데 시험을 받고 있다면 안심 하십시오. 사실 그리스도와 깊이 동행할수록 당신의 시험은 더 강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해져서 용감하게 행동 하리라 …분별 있는 사람들 중 몇 사람이 넘어져 그들을 연단시키고 정화시키고 희게 만들어서 마지막 때까지 이르게 하리니, 이는 아직도 정해진 때가 있음이라” (다니엘서 11:32-35).

엄청난 시험의 때가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 위에 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험을 받는 자들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그들은 의로운 자들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위하여 용감하게 행동하는 자들이며 하나님과 동행하고 그리스도의 지혜를 가진 자들입니다.

바로 지금 당신은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 왜 내가 시험을 받고 있지? 어째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 난다는 말인가?”

당신의 학창시절이 기억나십니까? 학교에서 시험을 보면 당신이 배운 것을 실제로 얼마나 많이 배웠는지가 밝혀집니다. 하지만 바울은 어떤 다른 학교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그 곳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배우고” 그리고 “진리가 예수 안에 있으므로 그분께 배웁니다” (에베소서 4:20-21 참조). 당신이 예수께 속해 있다면 당신은 그분의 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졸업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신이 영광 가운데 있게 되기 전까지는 결코 졸업이 없을 것입니다.

제가 학교에 다닐 때에 저는 예고 없이 보는 시험인 “깜짝 쪽지 시험”을 싫어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느 때라도 시험 볼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그리고 이러한 시험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까지 계속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은 불 같은 시험을 통과 할 것이며 어린 양의 혼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와 닮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한 값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시험 받고 연단 받는 것에 대해 종종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나의 하나님이여, 나는 또한 주께서 마음을 연단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심을 아나이다” (역대상 29:17).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 하셨고 주께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아무것도 찾지 못 하시리니 나는 내 입이 범죄하지 아니 할 것을 작정하였나이다” (시편 17:3)

2013년 1월 23일 수요일

정해진 때에!

몇 년 전에 뉴욕 시티를 많이 걸어 다닌 후에 영적 육적으로 지치고 피곤해저서인지 단핵증(림프선이 붓는 감염 질환)이라는 병이 생겼습니다. 6주 동안을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고 제 목구멍 에서는 뭔가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무 것도 삼킬 수도 없었고 어떨 때는 호흡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몸무게가 115 이하로 급속히 줄어들었습니다. 저는 여행을 할 수도 없었으므로 사역에 필요한 모든 수입은 금새 바닥이 났고 ‘Teen Challenge’ 사역도 끝장이 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주님께 절망가운데 울부짖었던 어떤 밤을 기억합니다, “ 주님, 저 포기 할래요! ‘ Teen Challenge’ (청소년들을 위한 사역) 은 당신의 일입니다 저는 그저 당신만 믿겠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이 사역의 문을 닫고자 하신다 해도, 그것은 당신의 일이니까요. 그런데 하나님 제발 제 목구멍에서 이것 좀 제거해 주세요!” 한 시간 이내에 큰 호두만한 크기의 살덩어리를 토해내었습니다.

저는 하루 이틀 지나서 병원을 나왔고 곧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없을 때에도 ‘Teen Challenge’ 사역은 지탱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그것을 하셨는지 잘 모르겠지만 제가 아파있을 동안에 사역원들이 저를 바라보는 대신에 주님을 신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했던 일이었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의 문제들은 예측하지 못했던 사건들이 아닙니다. 당신이 어떤 문제들을 겪어가고 있던지, 얼마나 깊숙이 당신을 아프게 하고 있던지 간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목표가 있습니다.
당 신은 아마도 마귀가 와서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 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내가 처리하지요” 하겠지요. 그러나 아니요,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어떤 일을 어리석거나 부주의하게 했거나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당신이 회개했다면 주님은 악하게 하고자 한 모든 일을 선으로 바뀌게 해줄 것입니다.

과거의 실수에 집중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눈을 마귀에게서 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자벌레가 먹어버린 모든 날들을 회복시켜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음의 말씀으로 용기를 얻으시고 그 말씀이 당신의 생명과 소망이 되게 하십시오, “나의 하나님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분께서는 나를 잊어 버리지 않으셨다. 그 누구도 주님의 계획을 바꿀 수는 없다. 일들이 아무리 안 좋아 보이더라도 모든 것은 그분의 손 안에 있는 것이다!”

2013년 1월 22일 화요일

의로운 자나 불의한자 모두에게 비를 내리십니다

만일 제가 당신에게 크리스천은 도처에서 슬픔과 문제들, 실업 그리고 불황들을 보게 될 것이지만 그들 자신들은 건강과 부의 보호막 가운데 여전히 지낼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마태복음 5장 45절에 보면 하나님은 의로운 자나 불의한자 모두에게 비를 내리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욥은 거룩한 자였으나 그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욥을 그의 환란으로부터 구해 내신 것처럼 바로 그렇게 주님은 우리가 불 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를 구해 주실 것입니다.

기도하기 위해 다른 도시에서 모인 수 많은 사역자들의 동일한 고백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같이 깊은 시험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사탄은 경건한 자들을 결단 내기 위해서 깊은 슬픔과 아픔, 그리고 문제와 어려움을 가지고 홍수처럼 밀려 옵니다.”

욥을 괴롭혔던 사탄은 이제는 당신을 괴롭히는 자입니다. 사탄이 하나님 앞에 다시 서서 마지막 때의 교회를 향한 어마 어마한 참소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사탄은 하나님에게 이렇게 도전 했을 수도 있겠지요, “마지막 때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단 하나의 참된 교회도 갖지 못하셨네요. 흠 없는 신부도, 지혜로운 처녀들도 없고요. 사실 대부분이 잠들어 있네요. 저들 좀 보세요, 물질만능 주의와 자기 중심적이며 부와 편안한 생활을 움켜지고 있잖아요. 고난 받을 필요가 없고, 그들이 구하는 것은 다 그들의 것이 될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 좀 들어 보세요.

하나님 당신의 보호벽을 허무세요! 나로 하여금 그들을 시험하게 해 주세요. 당신에겐 남겨진 자가 아마 한 명도 없을 걸요. 내가 그들의 직장을 빼앗겠습니다. 내가 슬픔이 그들에게 스며들게 할 것입니다. 두려움과 허탈함의 영을 그들에게 퍼붓고 그들을 시험들로 홍수처럼 덮을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이 마지막 방자한 세대가 망하는 것을 보시게 될 겁니다. 이 교회에는 욥 같은 자들이 없습니다. 영적으로 쇠약한 자들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 땅과 바다에 사는 자들에게는 화 있으리라! 이는 마귀가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크게 분노하며 너희에게로 내려 갔음이라” (요한 계시록 12:12).

당신의 시험 가운데서, 어떤 분들은 벌써 욥의 절망적인 언어를 취했습니다. 당신의 심령이 이렇게 부르짖고 있습니다, “ 하나님 제가 뭘 잘못 했지요? 전 당신을 가장 사랑했고 거룩한 삶을 살았으며, 저의 마음은 순수하고 저의 영은 당신을 사모하고 있는데 어째서 제게 이런 재앙이 임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주님께 가까이 할수록 더 깊은 곤란 속으로 떨어지고 더 많은 슬픔이 몰려 옵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옥으로부터 우리에게 몰려온 모든 문제들의 홍수 속에서도 주님을 신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신도 알듯이 마귀는 하나님이 벽을 내리고 그것을 허락하시지 않는 한 당신을 건들지 못합니다.

2013년 1월 21일 월요일

지금이 그 세대일까요?

온 세상이 놀라고, 당혹스러워하며 혼란스러워 합니다. 가장 성스러워 보이는 크리스천조차도 모든 예언되었던 일들이 급속하게 눈앞에 펼쳐지는데 대해 의아해 할 것이 틀림 없습니다. 저는 이 지구상의 모든 믿는 자들이 저 또한 고민하고 있는 이 질문을 자신들에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인간 역사의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까? 라는 것이지요 저는 잘 모르겠지만 한가지는 확실합니다. 그것은 바로 급속도로 일어나고 있는 세상의 사건들을 우리가 보았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아무런 경고도 없이, 철의 장막이 무너졌습니다. 거의 하룻밤 사이에 동유 럽이 자유케 되었습니다. 순식간에 한때 미국을 위협했던 소련제국이 와해되고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위와 같은 모습으로 적 그리스도인 세계지도자가 급작스럽게 나타날게 될까요?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의 사건처럼 하나님께선 미국의 죄에 대한 그분의 인내를 끝을 내시게 될까요?

우리의 재정과 대출기관들의 놀라운 파산과 늘어가는 나라 빚, 질병과 전국적인 온역들은 지금 우리 나라가 신명기 28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괘도로 들어가고 있다고 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빛에 대항해 죄를 짓는 나라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 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그것이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 역사상 가장 큰 공황기의 초반을 겪고 있지 않은가요? 1930년대에 대 공황이 최악의 어려움으로 여겨 지고 있지만 많은 경제 학자들은 이것이 곧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우리를 느끼게 해줄 그런 위협의 직전까지 우리가 다달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용한 양식을 차단하기 시작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예루살렘과 유다의 죄가 가져왔던 그 황폐함을 하나님께선 우리에게도 가져오고 계시는 걸까요? 이사야 3장 1절에서 6절은 하나님께서 그 먹을 것을 차단하시자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일을 못하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온에 심판이 떨어지면, “ 사람을 쓰거나 짐승을 쓰는 일도 없었으며” (스가랴 8:1). 하나님께서 곧 미국을 심판하시어 셀 수 없는 실업자들이 생길 것인가요?

위험의 기운이 감돌고 있는 가운데 모든 상황들이 불안해 보입니다. 세상이 막다른 궤도에 있는 듯한 느낌 입니다. 민족간 전쟁, (Holy War)성스러운 전쟁이라는 전쟁의 회담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태까지는 예로 없었던 그런 과격한 최후의 전투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끔직한 일들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이 두려움으로 압도되어 낙망 할 것이라고 예수께서 예언하신 그 때가 바로 지금 이 시대인 것일까요? 예수님의 재림을 목도할 그 세대가 바로 우리인 것일까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이 세대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가리킨 그러한 때에 우리가 온 것일까요? 정말 우리의 때에 그 일이 일어날까요?

2013년 1월 18일 금요일

짐 내려 놓기

짐을 내려 놓는다는 일은 오직 성령만이 하실수 있는, 강한 결단력과 함께 영적인 수술 같은 것이 요구됩니다

느헤미야에서 이것에 대한 묘사를 볼수 있읍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신실하고 부지런하게 예수살렘의 성문을 재건했읍니다. 그러나 성문이 완성되자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일을 완전히 무시했읍니다. 매주마다 상품을 잔뜩 짊어진 동물들의 긴 행렬이 예루살렘 성문을 통과하며 시장을 들락날락 했읍니다.

느헤미야는 안식일에도 이러한 상행위가 여전히 행해지고 있는것을 보고 화가 났읍니다. (느헤미야 13:15). 그가 사람들에게 그들의 모든 수고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안식일을 기념하라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듣지 않았을때, 그헤미야는 이 문제를 더 강력히 호소했읍니다: “내가 유다의 귀인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17절). 그는 “내가 그들을 책망하고 가르치고 경고했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고 말하고 있읍니다.

마침내 느헤미야가 참다못해 색다른 방도을 취했읍니다: “안식일 전 예루살렘 성문이 어두워갈 때에 내가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에는 열지 말라 하고 나를 따르는 종자 몇을 성문마다 세워, 안식일에는 아무 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19절).

느헤미야가 성문에 감시 병들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짐진 자들조차 막을수 없었읍니다. 그들은 그들의 짐을 가진채 밤새 진을 치고 성문이 열리기를 기다렸읍니다 (20절 참고).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의 짐들은 얼른 뛰어들어올 기회를 기다리며 항상 당신의 마음 밖에서 진을 치고 있읍니다. 밤에는 그것들을 내려놓을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침이 되면 여전히 똑같은 걱정 근심들이 당신이 다시 들어주기를 기다리며 바로 그곳에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그 모든 짐가진 자들을 막으려고 어떻게 했읍니까? 그가 말하기를 “내가 그들에게 경계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밑에서 자느냐? 다시 이같이 하면 내가 잡으리라 하였더니 그후부터는 안식일에 그들이 다시 오지 아니하였느니라” (21절).

느헤미야는 그의 인내가 한계에 달했을때 강권적으로 협박을 취했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모든 짐을 우리 마음의 성문 밖에 두기위해서 해야할 일인 것입니다. 우리도 느헤미야처럼 우리의 영혼으로부터 외쳐야 할 것입니다. “이건 하나님의 방식이 아냐! 나는 안식의 날에 살고 있지만 내 영혼은 전혀 안식하지 못하고 있어. 나의 모든 걱정 근심은 시시때때로 나를 괴롭히고 있지.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짐들을 통치해야만 해!”

2013년 1월 17일 목요일

쉽게 성내지 아니하며

예수님이 당신 안에 거하시는 지에 대한 가장 명백한 증거는, 당신이 이러한 열매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판명됩니다: “사랑은… 쉽게 성내지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4-5).

헬라어로 “성내다”라는 뜻의 단어는 “paraxuno” 인데, 이 단어는 “산(화학성분)”이라는 뜻과 “빨리 또는 갑자기”라는 뜻의 어원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이를 종합해 볼때, 이 “성(화)낸다” 라는 문제는 아주 심각해집니다: 화가 돋구치면 이성을 잃고 당신에게 가까운 사람한테 마구 화를 내며 신랄한 비난조로 쏴댑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가 예수님안에 거한다면, 무조건 사랑해라. 그리하면 쉽게 성내게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너의 가장 큰 시험은 네 배우자나 자녀들 또는 친구들과 같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올 것이다.”

제가 당신께 묻겠습니다: 성미가 급하십니까? 얼마나 쉽게 화를 내시는지요? 그러나 당신이 주님안에 거하신다면 화가 날때 당신 안에서 한 목소리가 이렇게 외칠것입니다. “주님, 저를 도우소서! 성령님, 저를 진정시키소서!”

실은 불과 며칠 전에 제가 이 메시지를 썼는데요,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을 실습해야 하는 사건이 있었읍니다. 제 아내 그웬이 자신도 모르게 제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했거든요. 그녀가 나를 멸시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는데도 제게는 그렇게 여겨졌고 제 화를 돋구었읍니다. 저는 순식간에 바르르 화를 내며, 한마디 한마디마다 독설적이며 비난조로 쏘는 말들을 토해냈읍니다.

그웬은 자신이 의도하지도 않은 일인데도 불구하고 사과하려 했지만, 저는 듣지않고 제 공부를 하려고 들어가 버렸읍니다. 저는 어둠 속에 한시 간정도 앉아서 이렇게 불평했습니다: “주님, 그녀가 저의 민감한 부분을 쳤기 때문에 제가 그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기도하려 했지만 하늘은 마치 놋쇠마냥 무겁게 느껴졌읍니다. 다음날 아침, 제가 매일의 묵상을 하려고 성경을 꺼냈는데 우연히 고린도전서가 펼쳐지면서 제눈은 이 구절에 꽃혔읍니다: “사랑은… 쉽게 성내지 아니하며”

저는 불현듯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쉽게 성내었던 한 설교자의 얼굴을 보았읍니다! 제 마음은 너무 아팠고 저는 부르짖었읍니다. “오 주님, 바로 제 모습이었군요. 절 용서하시옵소서!”

저는 즉시 그웬을 제 방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녀가 좀 어리둥절하며 들어왔을때, 저는 이 구절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할수밖에 없었읍니다. “여보, 이 구절좀 읽어봐요. 바로 나를 묘사하고 있지않소? 그웬, 제발 날 용서해주구려!”

2013년 1월 16일 수요일

주님 오심에 대한 갈망

당신은 주님께서 오시기를 간절히 갈망하고 있습니까?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를 사모하고 계십니까?

“복된 소망과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며, 우리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디도서 2:13). “이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어 의로운 재판관이신 주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며 또 나뿐만 아니라 그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이라” (디모데 후서 4:8)

이세상은 우리의 집이 아닙니다. 그러나 당신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뿌리를 내렸다가, 혹은 그 뿌리들을 잡아 올렸다 하면서 예수님이 당신의 마음을 깨어있게 지켜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원수가 당신의 원수가 되고 있습니까? 당신은 하나님께 대항하는 자들과의 전쟁 중에 있습니까? 당신은 육신과 세상 그리고 마귀에 대항하는 하나님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우리의 원수를 사랑해야 하지만, 하나님을 미워하고, 그분의 은혜와 자비를 거부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며 더럽히는 하나님의 원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사람은 미워해서는 안되지만 그의 마음에 있는 죄와 그들을 다스리는 마귀의 세력은 미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있는 사악함은 미워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져버리는 습관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의 습관처럼 우리 자신들이 함께 모이는 것을 저버리지 말고 서로 권면하여 그날이 가까워 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서 10:25)

이 말씀에서 바로 그 다음 구절이 진리를 받은 후에 “고의적으로 죄를 짓는 것” 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0장 26절은 “ 이는 우리가 진리의 지식을 받고 나 후에도 고의적으로 죄를 지으면 더 이상 죄들을 위한 희생제가 남아 있지 아니하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역사적인 사실로 입증되었습니다. 즉 심판 날과 재앙 바로 전에 사람들이 가장 부주의 해지고 가장 태만해진다는 것입니다
당 신 자신이 부족하다고 판단이 되면 당신 심령으로부터 이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주님의 용서가 필요합니다. 주님, 저의 모든 죄를 고백합니다. 당신은 최우선으로 하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당신을 저의 생명, 저의 전부로 삼겠습니다!

2013년 1월 15일 화요일

주님 오심에 대한 갈망

당신은 주님께서 오시기를 간절히 갈망하고 있습니까?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를 사모하고 계십니까?

“복된 소망과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며, 우리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디도서 2:13). “이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어 의로운 재판관이신 주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며 또 나뿐만 아니라 그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이라” (디모데 후서 4:8)

이세상은 우리의 집이 아닙니다. 그러나 당신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뿌리를 내렸다가, 혹은 그 뿌리들을 잡아 올렸다 하면서 예수님이 당신의 마음을 깨어있게 지켜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원수가 당신의 원수가 되고 있습니까? 당신은 하나님께 대항하는 자들과의 전쟁 중에 있습니까? 당신은 육신과 세상 그리고 마귀에 대항하는 하나님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우리의 원수를 사랑해야 하지만, 하나님을 미워하고, 그분의 은혜와 자비를 거부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며 더럽히는 하나님의 원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사람은 미워해서는 안되지만 그의 마음에 있는 죄와 그들을 다스리는 마귀의 세력은 미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있는 사악함은 미워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져버리는 습관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의 습관처럼 우리 자신들이 함께 모이는 것을 저버리지 말고 서로 권면하여 그날이 가까워 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서 10:25)

이 말씀에서 바로 그 다음 구절이 진리를 받은 후에 “고의적으로 죄를 짓는 것” 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0장 26절은 “ 이는 우리가 진리의 지식을 받고 나 후에도 고의적으로 죄를 지으면 더 이상 죄들을 위한 희생제가 남아 있지 아니하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역사적인 사실로 입증되었습니다. 즉 심판 날과 재앙 바로 전에 사람들이 가장 부주의 해지고 가장 태만해진다는 것입니다.

당신 자신이 부족하다고 판단이 되면 당신 심령으로부터 이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주님의 용서가 필요합니다. 주님, 저의 모든 죄를 고백합니다. 당신은 최우선으로 하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당신을 저의 생명, 저의 전부로 삼겠습니다!

2013년 1월 14일 월요일

낙심 by Gary Wilkerson

낙심은 승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절대로 정지 시킬 수는 없습니다. 기드온은 그의 정예부대 삼백명만으로 십만의 대군을 대항해 싸워 겨우 일만 오천 명만의 적군을 남긴 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승리 후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찜이뇨? 하고 크게 다투는지라” (사사기 8:1).

기드온 자신의 나라사람들이 그의 지도력, 그의 결정, 그의 행동에 대한 동기들에 대해 의심을 하였습니다. 대게 가장 낙심케 만들고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는 갈등들은 전쟁터 같은 삶 가운데서가 아니라 종종 믿는 자들의 관계 안에서 일어납니다. 때때로 우리 자신의 형제 자매들이 우리를 비난하며 더 많은 트집거리를 찾아내려 하는 듯이 보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적들로부터 이러한 것들을 예상하지만 우리자신의 형제들이 우리를 맹렬하게 비난할 때 우리는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황하게 됩니다.

기드온는 낙심하거나 마음이 산만해 지지도. 그의 믿음이 약해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의심을 받았을 지라도 전쟁을 계속했고, 저는 그러한 그의 행함이 참 마음에 듭니다!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이제 행한 일이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 기드온은 그를 비난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나의 승리가 너의 승리에 비교가 되느냐?” 화가 나서 그들과 싸우는 대신에 기드온은 느혜미아와 동일하게 행동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쌓을 때 적들이 와서 “그런즉 너는 이제 오라. 함께 의논하자 ”고 했을 때 느헤미야가 그의 적들에게 대답하기를, “ 나는 하는 일이 너무 바빠서 얘기할 시간이 없다.” (느헤미야 6:1-9)라고 한 바로 이 상황과 같이 말입니다.

성경은 기드온과 삼백 명이 요단에 이르러 건너고 비록 피곤하나 따르며”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사기 8:4)기드온은 적과 싸우기 위해 전장으로 돌아가기를 선택하였습니다. 그는 강을 건너 요단 건너편으로 가서 하나님이 싸우라고 부르신 그 전쟁터로 갔습니다. 당신이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 사명을 감수할 때, 당신이 낙심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이 당신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인해 만류되지도 않을 때,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 일을 하는 것이 당신의 거룩한 뜻이 될 때 바로 그것이 당신의 승리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당신의 전쟁에 집중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사명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승리를 가져오실 것입니다!

2013년 1월 11일 금요일

무익한 종

“무익한 종”은 그의 재능을 묻어버리는 자입니다. 너무 게을러서 그의 삶과 시간을 하나님의 관심사에 쓰지 않고 하나님의 일에 있어 나태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는 종교적 겉치레만 갖추기 위해 일주일에 한번 하나님의 집을 찾는 바쁜 남녀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럭저럭 건성으로 그분께 봉사하는 자들을 가르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그렇다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환전상에게 맡겨서 내가 돌아왔을 때 내가 원금을 이자와 함께 받게 해야 했으리라…..너희는 이 쓸모 없는 종을 바깥 흑암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고 하더라” (마태복음 25:26-27, 30)

그 무익한 종의 기록이 담겨있는 책이 열리고 공개 되었을 때 어떤 흐느낌과 절규가 있을까요. 심판관께서는 그가 얼마큼의 시간과 노력을 돈 버는데 썼는지, 개인적 보장을 추구했는지, 은행계좌를 늘렸는지, 가족들을 애태우고 무시했는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져 버렸는지 세상에 보여줄 것입니다.

그 날 하나님은 그가 등한시한 모든 교회모임과 게으르고 자기 중심적인 행동에 대한 모든 기록을 들고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 종의 눈앞에는 집, 차, 가구, 보트, 옷, 보석, 유가증권등과 같이 그가 평생 축척해온 모든 것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심판자의 눈에서 나오는 섬광은 마치 수소 폭탄처럼 모든 것을 불사를 것입니다. 한 천사가 그 심판자 앞에 서게 되며 그의 손엔 먼지더미가 들려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 무익한 종에게 돌아서서 말씀하시기를, “ 이것이 너의 평생 과업에 대한 총계다. 나는 네가 필요해서 불렀지만 너는 나를 무시했다. 네가 나를 너의 인생에서 완전히 내몰아 버리는 순간까지 너는 내게 준 시간이 거의 없다. 너는 너의 인생을 한줌의 먼지를 위해 낭비했다. 너는 그 것이 마치 도가니 속의 풀처럼 모두 타버릴 것이라는 경고를 받았었다.

아.. 지금 하나님을 위한 시간이 없다는 자가 그날에 어떠한 후회를 할까요! 그는 의무적으로 그의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의무적으로 주일예배를 드립니다. 왜냐하면 그게 “미국식” 이랍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없습니다.

2013년 1월 10일 목요일

증인들

심판 날에 심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증인들을 부르실 것이고 그들은 당신에 대한 유리한 혹은 불리한 증언을 할 것입니다.
첫 번째 증인은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입니다,“ 그는 나를 거절하고 내 말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그를 심판하는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말 바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요한복음 12:48).

모든 설교나 들었던 복음성가, 모든 성경의 구절이나 읽었던 부분들이 입증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 내가 너에게 말했던 모든 말들이 그 날에 너를 심판할 것이다. 나의 말이 그 증인이 될 것이다!” 니느웨와 소돔 사람들과 시바의 여왕 같은 증인들이 일어 설 것입니다.

예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선포로 인해 회개하였기 때문이거니와, 보라, 요나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 심판 때에 남쪽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하리니…"(마태복음 12:41-42).

당신이 심판자 앞에 서고 당신의 책이 펼쳐 질 때, 대다수의 니느웨 사람들이 앞으로 걸어나올 것입니다. 두로와 시돈 사람들처럼 소돔과 고모라의 대재앙 속에서 죽어간 사람들이 앞으로 나올 것입니다. 이런 악인들이 둘러 모여서, 성경, 라디오, TV교사들, 증인들, 친구들과 가족과 같이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게끔 주어졌던 모든 기회들에 대한 목록을 듣고서는 의아해할 것입니다.

그들은 울부짖을 것입니다, “ 이 사람은 우리들이 받는 것보다 더 심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어떻게 그는 그렇게 많은 기회를 져버리고 또 그런 강력한 빛을 거부할 수 있었단 말입니까? 우리에게는 성경도 주어지지 않았고, 지속적으로 상기시켜주는 사람도 없었으며, 두번의 기회도 갖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주어지지 않았습니까!”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만약 소돔이 네가 들은 복음의 한 조각이라도 들었었다면 그들은 회개했었을 것이다: “ 너에게 행하였던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읍이 오늘까지 남아 있었으리라” (마태복음 11: 23).

설교자와 목사님들도 증인으로써 부름을 받을 것입니다. “ 왕국의 이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해 온 세상에 선포되리니……” (마태복음 24:14).

우리 목자들은 당신이 하나님의 집에 출석했었다고 증언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그 복음의 증인이 외치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당신이 들은 모든 진리에 관해 모든 자를 심판하시는 자 앞에서 확언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당신에게 유리하게 적용되든 혹은 불리하게 적용되든 지간에 말입니다.

2013년 1월 9일 수요일

생명책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의 모든 열정과 동기를 기록 하셨습니다---모든 생각들, 모든 말과 모든 행동까지도 말입니다. 기독교인들의 동기도 생명책인 “기념의 책” 에 들어있고 심판 날에 예수님이 이 책에 있는 모든 일들을 상기할 것입니다.

그때에 주를 두려워한 자들이 종종 서로 말하니 주께서 … 그것을 들으셨으며, 주를 두려워 하는 자들을 위하여 한 기념의 책이 그의 앞에 기록되어 있느니라…만군의 주가 말 하노니, 내가 나의 보석들을 만드는 그 날에 그들이 나의 것이 되리라. 내가 그들을 아껴 두리니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자기 아들을 아낌 같이 하리라” (말라기 3:16-17)

만약 당신이 전심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의 피에 의해 씻음 받았다면 당신의 이름은 그 기념의 책에 쓰여 있을 것입니다. 이 메세지는 결코 두려움을 주고자 함이 아닙니다. 사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세우신 모든 계획들을 보게 됨으로써 당신의 마음에 커다란 기쁨을 안겨주게 될 것입니다!

수많은 책들 가운데 한 권의 “책”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기를 모든 생명들은 각자의 이 땅에서의 평생에 대한 기록을 담은 책을 각자 갖고 있다고 기록합니다..

“또 내가 큰 백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니 그의 면전에서 땅과 하늘이 사라졌고…또 내가 죽은 자들을 보니 작은 자나 큰 자나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으며 또 다른 책도 펴져 있는데 그것은 생명 책이라. 죽은 자들은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그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더라. 바다도 그 안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 주니 그들이 각자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으며” (요한계시록 20:11-13).

악하고 불 경건한 자들은 모든 것을 심판하시는 자 앞에서 그 책들에 쓰여진 모든 것들에 따라 하나 하나씩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기를 모든 사람은 그날에 부활한 몸을 갖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 죄인은 “멸하기에 합당한” 몸을 갖게 될 것입니다(로마서 9장 22절). 그러나 그 경건한 자들은 주님 같은 새로운 몸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이 끝나면, 그 어린양은 그의 보좌에서 일어나서 그의 양떼들을 영원한 영생의 낙원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2013년 1월 8일 화요일

충직한 종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가장 신실한 종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바울의 신실함 이면에는 세가지 중요한 동기들이 있었는데, 그것들은 희망, 사랑, 그리고 경외감이었습니다.
바 울은 영생에 대한 축복된 희망을 가졌었는데 그것이 그가 신실할 수 있도록 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예수님에 대한 큰 사랑을 가졌습니다. 고린도 후서5장 14절에서 그가 말하기를, “ 이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기 때문이라.” 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울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신실함은 또한 다른 어떤 것에 의해 동기부여가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가 세상의 심판자 앞에 서있을 심판 날에 대한 경외적 두려움입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단지 처음의 두 가지 동기만 지닐 뿐입니다. 사실상 모든 믿는 자들은 영생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진심으로 말합니다, “ 나는 내가 전심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다가오는 심판 날에 대한 진리는 진지하고 거룩한 신자들을 배출하기에 안성맞춤인 것입니다. 그 진리를 마음에서 몰아낸 자들은 대개 차갑고, 경솔하고 방관적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머지 않아 모든 살았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심판 받기 위해 심판의 자리에 모이게 될 것입니다: “ 우리가 반드시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나리니……” (고린도후서 5:10). “그러므로 이와 같이 우리 각 사람이 자신에 관하여 하나님께 회계 보고를 하리라” (로마서 14:12).

지금 바로 이순간에도, 천군 천사들은 땅 끝으로부터 악인과 의인을 다 모아 들이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받들 준비가 되 있습니다: “인자가 그의 천사들을 앞서 보낼 것이라 그러면 그들이 실족하게 하는 모든 것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그의 왕국에서 가려내어 모으리라” (마태복음 13:41).

모든 시대의 부유하고 유명하고 권세 있는 자들이 그 분 앞에 불려와 서게 될 것입니다. “땅의 왕들과 위대한 자들과 부자들과 대장들과 힘 있는 자들과……토굴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어서 산들과 바위 들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분의 얼굴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숨기라 이는 그분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감히 설수 있으리요?” 하더라. (요한계시록6: 15-17)

2013년 1월 7일 월요일

능력의 복음 by Gary Wilkerson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전도에 그치는 것이 아닌 성화의 복음입니다. 우리를 지켜주시는 능력은 우리를 구원해주신 동일한 능력으로 우리를 두려움과 근심에서 꺼내 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전쟁의 무기에 대해 배울 필요가 있고 성숙하게 자라나기를 시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이 모든 것을 말하는 데는 저에게 당신을 향한 좋은 소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심오하면서도 영광스러우며 원동력이 있는 성령의 사역이 우리를 위해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믿음의 기초 위에 굳건히 서있는 믿는 자들의 심령 안으로 들어오실 때 그들은 성숙하게 자라납니다. 자유케 하는 능력이 그들 안으로 들어가 심령 내부를 고치며 외부로부터 문을 닫습니다. 저는 느헤미야를 좋아하는데 그는 성령의 모형으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는 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경계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 밑에서 자느냐? 다시 이같이 하면 내가 잡으리라” (느헤미야 13:21)

저는 저의 인생의 문에 서계신 예수님을 마음 속에 그려 봅니다! 사탄이 나를 뒤흔들려고 올 때, 예수님은 나와 대적의 사이에 서서 말씀하십니다, “ 내가 다시 한번 경고하노니 뒤로 물러서라! 너는 주소를 잘못 찾아왔다. 너는 네가 끝낼 수 없는 일을 시작 했다. 너는 너보다 큰 이를 상대하고 있는 것이다.”

저는 저의 삶의 벽에 임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상상합니다. 저의 안은 깨끗하게 되어 있지만 바깥에 잠복해 있는 것들이 “ 너는 깨끗한 것을 계속 지킬 수 없다” 고 외치는 소리들을 저는 듣습니다.

그러나 나의 삶의 벽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예수를 모시고 있기에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 사탄아 너는 네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어린양의 피로 덮여서 깨끗하고 성화되었으며 거룩하게 된 나의 아들 과 딸들에게 무슨 볼 일이 있다는 것이냐? 네가 누구길래 이러한 사악한 것들을 말하냐?”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로마서 8:37).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그분 안에서 승리하도록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2013년 1월 4일 금요일

특정한 때를 위한 특정한 약속

모든 크리스천들은 주님에 대한 일반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의 몸에 적용되는 단 몇 가지 약속들을 붙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지요:

“내가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히브리서 13:5)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주 하나님은 태양이시요, 방패시니 주께서 은혜와 영광을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들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 하시리이다.” (시편 84:11)

아주 널리 알려진 이러한 약속들은 수 세기 동안에 전세계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엄청난 위로와 축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일반적인 약속들 외에도 하나님은 특별한 때, 힘든 때를 위해 특정한 약속들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알아야 하며 우리가 그분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때 그것들을 함께 가지고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은혜를 입었던 청교도인들은 주님의 모든 약속은 거룩한 주장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크리스천들은 보편적인 믿음만을 가지고서 주님 앞에 나와서는 안 된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당신의 힘든 때에 자비와 은혜를 받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오라고 말씀 하실 때에, 당신이 왜 주님 앞에 나왔는지 정확히 알 지도 못한 채 대강 나가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그저, “ 좋아요 주님, 당신은 제 마음을 알고 계시죠. 당신 보시기에 적당한 것은 무엇이든 주세요.” 라고 말해서도 안됩니다.

듣기에는 그럴듯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 특정한 때를 위한 특정한 약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이 약속들을 마음을 다해 붙잡음으로써 그 분과 의논하며 확신 가운데 강하게 설수 있게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완전한 위로와, 절대 확신을 가지고, 어떤 것에도 의심이 없이 그분의 보좌 앞에 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유가 아마도 당신이 그분과 특정함이 없는 보편적인 믿음을 그 분께 드리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겁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 너희는 와서 강력한 주장을 내어 놓으라(이사야 41:21 참조). 왜 내가 너를 위해 이것을 해야만 하지? 왜 내가 너를 축복해야 하느냐? 주님은 물론 그 이유를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당신 또한 그 이유를 알기를 원하신답니다!

2013년 1월 3일 목요일

내가 너희에게 갚아 주리라

“메뚜기가 먹었던 연수를 내가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요엘 2:25). 이 말씀을 NASV 성경에 보면 “ …먹힌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주리니” 라고 써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인지요! 우리는 우리가주님을 따르지 않았을 때의 잃어버린 세월들을 되찾아 주님께 보상해 드리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 아니다! 너는 허비된 단 한 시간도 나에게 갚을 수가 없단다. 지금 내 앞에서 의롭게 살고 너의 죄로부터 돌아서거라, 그러면 그것이 너의 것이었든지, 너의 가족의 것들이었든지, 혹은 나의 것이었든지 간에 모든 잃어버린 것들을 내가 만회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회개한 죄인들에게 주님은 선포하십니다, “ 두려워 말라…즐거워하고 기뻐하라. 이는 주께서 큰 일을 행하실 것임이라” (요엘 2:21). 당신은 당신이 허비한 세월로 인해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으로부터 악한 군대를 제거하실 것이며 그래서 당신은 먹고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결코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엘 2:19-20, 26-27 참조)

당신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분은 당신을 위해 그분의 나라에서 만족스러운 삶, 기쁨, 그리고 쓰임을 계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 죄가 들어오고, 당신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방해를 받았습니다. 그 삼키는 자들이 들어와 수많은 세월을 허비시키고 잃어 버리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달력 마져도요! 주님은 메뚜기가 왔던 날로 돌아가셔서, 모든 허비된 해들을 지워버리시고 당신이 회개한 순간부터 다시 계수하십니다. 당신이 놓쳤던 모든 축복들이 복원되었습니다. 죽어서 영원히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모든 기쁨, 평안, 계시, 그리고 섬김의 가능성들이 사실은 주님에 의해 보존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옥에서, 그곳에 떨어진 사람들은 그들이 가질 수 있었던 삶에 대한 환영에 시달릴 수도 있겠지요. 어떤 이들은 자기들이 잃어버린 것들을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회개한 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회복될 것입니다. 그들은 “ 아. 내가 기회를 놓쳤어.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이런 모습으로) 될 수 있었는데...하나님은 나를 위해 너무 많은 걸 준비하셨는데 그것을 내가 날려 버렸어.”라는 말을 결코 다시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고 말고요! 하나님께서는 이루어지지 못했던 모든 축복을 복구시키실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일찍이 우리가 놓쳤던, 그 분 안에 있는 모든 축복과 기쁨을 우리에게 부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부어주시는 것만으로 그 모든 것의 복원을 그치지 않습니다. 그 부어주심이 차고 넘쳐 흐르게 하십니다! “타작 마당들은 밀로 가득 차고 독들은 포도주와 기름으로 넘쳐나리라” (요엘 2:24)

회개에는 그러한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벌레가 망쳐놓은 모든 것들을 우리에게 돌려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부활시키십니다!

2013년 1월 2일 수요일

오늘날 많은 자들이 고통 중에 있습니다

저의 가족과 저만이 힘든 환란을 겪으며 또 견디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는 압니다. 저는 경건한 크리스천들로부터 여태껏 겪지 못했던 엄청난 시험을 지나고 있다는 가슴이 미어지는 많은 편지들을 받습니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암에 걸린 적이 없었습니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혼으로 인해 상처를 입고 그들의 집을 버려두고 결혼생활을 포기한 적도 없었고, 재정적인 문제들로 억압 받은 적도 없었고요. 또한 이 많은 사람들이 혼란, 아픔, 그리고 깊은 상처와 시련의 시간을 보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사랑하시는 자녀들이 제련하는 불 속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 의인이 고난이 많다” 라는 말씀이 사실이지만 “ 주께서 그 모든 고난으로부터 그를 구해 내시는도다” (시편 34:19)라는 말씀도 역시 사실입니다.

저는 “ 하나님, 당신께서는 우리가 힘들 때에 도움을 얻기 위해 자비를 구하러 당신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자비를 간절히 필요로 합니다” 라고 기도를 해오고 있습니다.
이 러한 시련의 때에 주님으로부터 오는 긍휼이 없다면 우리들에게는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마귀가 홍수처럼 밀려오는 때에 우리는 믿는 자로써 무엇을 합니까? 어째서 그리스도께 그처럼 깊이 헌신하는 자들이 이러한 흔치 않은 시험을 견디어야 하는 걸까요?

제가 모든 대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저는 의로운 자들이 고난을 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한 이 메시지를 읽고 있는 많은 경건한 자들이 아파하며 왜 그렇게 많은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지 의아해 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또한 당신이 지성소에 들어갔을 때, 당신은 성소 밖에 있는 자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시험을 발견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요즘 일상 뉴스들은 공포와 폭력으로 꽉 차있지만, 단 한 순간도 이런 것들이 당신이 믿고 있는, 즉 황폐함과 혼동 가운데에서도 영광스러운 교회가 일어날 것이라는 비전을 흩트려놓고 통제하게 하지 마십시오.

머리 되신 예수님을 붙들고 있는 거룩하고, 용서받은, 안식가운데 있는 지체들이 점점 뚜렷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 승리의 지체들은 예리하고 명확한 견해를 가지고 사탄의 힘을 위협하며 나올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지체들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영광스러워질 것이며, 이 불 경건한 세상은 그것을 좌우할 수 도 없고 그 목적을 바꿀 수 없습니다!

2013년 1월 1일 화요일

세속의 모든 것들은 흔들리게 되 있습니다

저는 꿈에서 한 군대가 대열이 흩어질 것을 거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악하고 잔인한 폭력 가운데서 그들은 동요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찬양과 예배가 있는 생명수 안으로 들어가서 완전한 평강과 안식을 가지고 그 강의 다른 쪽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이해를 초월하는 평안을 얻은, 주님으로부터 구속함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온유한 자들은 땅을 유업으로 받을 것이요, 화평의 풍요함으로 기뻐하리로다” (시편 37:11).
요엘은 강한 자들로 이루어진 한 군대를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각기 자기의 길로 행군할 것이나 그들은 그 대열을 흩뜨리지 아니하리라” (요엘 2:7).

하나님의 백성들은 두려움으로 인해 흩뜨려지거나 도망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린양의 귀한 보혈 아래서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모든 폭력과 사람들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있는 그리스도의 지체는 최상의 건강 가운데 있으며 나날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세속적인 모든 것들이 흔들리고, 세상의 정부들이 통제불능 상태로 돌아갈 때에도 그리스도의 참 된 교회는 견고하며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엄청난 폭력과 잠재된 파괴의 세력들이 인간의 평강과 안전을 빼앗아 갔지만 바로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백성들에게 최고의 안식과 안전함을 가져다 주시고 있습니다. 평안과 안전을 위한 불 경건한 자들의 부르짖음은 허공을 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은 지금 놀라운 평강과 완전한 안보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 분 안에서 안식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시편기자인 다윗과 같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대적하여 일어났을 때 우리 편에 계신 분이 주가 아니셨더라면, 그들의 진노가 우리를 향하여 타오를 때 그들이 우리를 산 채로 삼켰을 것이며, 그 때에 물들이 우리를 덮치고 시내가 우리의 혼 위로 넘쳐 흘렀을 것이요, 그때에 급류가 우리의 혼 위로 넘쳐 흘렀으리이다. 우리를 그들의 이에 먹이로 내어 주지 아니하신 주를 송축할지어다. 새가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남 같이 우리의 혼이 벗어났으니 올무가 끊어지고 우리가 벗어났도다. 우리의 도움은 하늘과 땅을 지신 주의 이름에 있도다” (시편 12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