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8일 금요일

성령의 늦은 비

스 가랴 12장 10절은 마지막 추수 전에 내릴, 약속된 늦은 비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마지막 비가 쏟아져 내릴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그 비가 마지막 대 추수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세기 초반에, “늦은 비 운동”이라고 불렸던 오순절파 운동이 캐나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운동은 약 사오십년간 지속되었으나 지금은 소수의 “늦은 비” 교회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이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그들이 성령의 마지막 위대한 부으심을 경험하고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많은 자가 “바로 이거야!”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운동은 소멸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비슷한 운동들이 생겼다가는 사라지곤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냐하면, 그들의 초점이 영혼 추수에 맞춰져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소위 성령운동이라고 불렸던 많은 운동도 빠르게 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운동들은 은사나 축복, 자기 개선, 행복 등에 초점을 둔, 인간 중심적인 운동이었기 때문입니다. 춤, 웃음, 외침, 또는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여기는 어떤 다른 초자연적 현상도, 그것이 길잃은 영혼이나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향한 애통한 심령을 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모두가 육적인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진실로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그것은 잃어버린 영혼과 죽어가는 세상을 돕고자 하는 간절함과 열망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추수와 잃어버린 영혼들을 함께 묶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수확하시는 주께 기도하여, 그분께서 그분의 수확 밭에 일꾼들을 보내실 것을 청하라." (마태복음 9:38)

어떠한 성령의 부으심도 그것이 진정한 것이라면, 예수님의 이 기도에 주된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던 소수의 부흥은 모두가 놀라운 영혼 추수의 결실로 축복받았던 부흥이었습니다. 잃어버린 영혼 구원의 놀라운 수확 없이는 진정한 부흥은 없는 것입니다!
요엘서 2장 28절의 결과로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상고해 보십시오. 오순절에는 3,000명이 하루 만에 구원받았으며, 그 후로도 영혼들의 수가 나날이 더해졌습니다. 그때 이 성도들은 길잃은 영혼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온 세상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그 영을 위로부터 우리에게 부어 주실 때까지라. 광야는 비옥한 들이 될 것이며, 비옥한 들은 삼림으로 여겨지리라” (이사야 32:15). 여기서 이사야가 뜻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그분은 추수의 열매를 맺으십니다. 그때는 수많은 영혼이 구원받게 됩니다!” 

2013년 6월 27일 목요일

마지막 추수

“내 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나의 계명들에 너희가 열심히 경청하고,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며 너희 마음을 다하고 너희 혼을 다해 그를 섬기면, 내가 그때를 맞추어 너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너희 땅에 내릴 것이니, 네가 네 곡식과 네 포도주와 네 기름을 거둘 것이요.” (신명기 11:13-14)

이스라엘에서 심고 거두는 시기는 우리 때와는 정반대입니다. 땅을 부드럽게 해주는 이른 비는 10월에 시작해서, 파종 시기 바로 전인 12월까지 내립니다. 늦은 비는 3월에 시작해서 추수 바로 전인 4월까지 내리며, 그러한 비는 수확을 무르익게 합니다.

이러한 두 가지 비는 항상 추수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주목해야 합니다. “네가 거둘 것이요..” (14절). 그리고 사랑하는 여러분, 만일 당신이 성령의 어떤 운행하심에 대해,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육적인 것인지 분별하기를 원한다면, 이 기준을 사용하십시오: 즉, '성령의 일은 항상 영혼 추수에 초점을 두고 있다!'

만일 당신이 소위 부흥이라는 명목 아래서 일어나는 어떤 종류의 초자연적 현상을 본다 하더라도, 그것이 영혼 추수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면, 그건 진정한 하나님의 운행하심이 아닙니다. 성령의 비는 항상 영혼들의 수확을 거두기 위해 내립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을 준비시키고 부드럽게 해서, 복음의 씨가 심겨질 수 있도록, 오순절 이른 비로 그분의 영을 부으셨습니다. 성령 충만한, 씨 뿌리는 자들은 그날 다락방으로부터 온 세상으로—예루살렘으로, 유다로, 사마리아로, 그리고 지구 맨 가장자리까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만들기 위해 파송되었습니다.

이제 교회는 거의 2,000년이라는 기간의 씨 뿌림과 성장을 보아 왔고, 마침내 추수의 때가 다가왔습니다! 현재까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모든 자는 첫 열매, 또는 이른 추수를 상징합니다. 한편 스가랴 선지자는 마지막 추수에 대해 예언했는데, 예수님께서 아직 오지 않으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스가랴 12:10 참조) 주님께서는 온 땅에서 거둘 그분의 최종적인, 엄청난 추수를 위해 인내하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오실 때까지 인내하라. 보라, 농부들이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받을 때까지 오래 참나니.” (야고보서 5:7)

2013년 6월 26일 수요일

우리는 보존되고 구출되었습니다

“주께서는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구해 내시고, 그의 하늘 나라에 이르기까지 나를 보호 하시리니, 영광이 그분께 영원 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디모데후서 4:18).

여기서 ‘preserve(보존하다)’라는 단어는 “방어하다, 보호하다, 지켜주다, 안전하게 하다, 울타리 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겁니다. ‘내가 너를 방어해주고, 보호해주고, 지켜주며 안전하게 해주고, 울타리를 쳐서, 마귀가 너를 건드리지 못하게 할 것이다. 내가 손수 너를 내 하늘의 왕국으로 들어가게 할 것이다.”

마귀가 얼마나 거짓말쟁이인지 이제 아시겠죠? 그가 당신을 칠 것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와중에서도 당신을 지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얼마 전에 저는 너무도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제가 일찍 일어나서는 기도하려고 성경을 가지고 거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갑자기 사탄이 제 마음속으로 침범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저를 향해 사악하고도 위협적인 저주를 하며 악을 써댔습니다. “너는 파멸될 것이다! 네가 일평생 하나님을 섬겼지만 다 헛된 일이야. 이제 네 말년에 내가 너를 쳐서 넘어뜨릴 것이다.”

저는 최근에 사탄이 넘어뜨린 모든 전도자를 제 눈앞에서 보았습니다. 마귀가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내가 그들 모두를 넘어뜨렸지. 그런데 그들도 너만큼 예수를 사랑했어. 네가 그들보다 뭐 그리 특출 나다고 생각하니? 너도 형편없이 거짓말하며 속이는 자야. 나는 너와 네 사역을 완전히 끝내버릴 거야!”

그것은 제 평생 느꼈던 경험 중 가장 치명적인 공격이었습니다. 전 너무도 압도당했습니다. 그 공격은 그야말로 제 숨을 멈추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주님의 성령이 제게 임했고, 저는 거룩한 분노 가운데 일어서서 사탄을 결박하고 제 면전에서 쫓아냈습니다.

“마귀야, 너는 속이는 자이고 모든 거짓의 아비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를 꾸짖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저를 구해냈습니다!

2013년 6월 25일 화요일

종말을 진심으로 고대하라

믿기 어렵겠지만, 베드로는 우리가 현 세상의 종말을 진심으로 고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당신은 “그건 좀 무서운 말씀이네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도는 우리가 이 악한 세대가 녹아 없어지기를 고대해야 한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열망하라. 그때는 하늘들이 불에 타서 녹아 버리고 우주의 구성요소들도 맹렬한 불에 녹아질 것이나” (베드로후서 3:12)

자, 이 말씀은 파멸이 왔을 때, “저것좀 봐, 모든 것이 불타고 있네!”라고 우리가 기뻐하며 외쳐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베드로의 말씀은 우리를 붙들어 주려는 의도입니다. 우리가 이 삶 가운데서 낙심될 때, 우리는 기뻐해야 합니다. “어쨌든 그 모든 것은 연기 속으로 사라져 버릴 테니까요!”

또한, 이 진리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일깨워”주려는 의도입니다. “그때 이 모든 것이 녹아지리니 너희가 모든 거룩한 행실과 경건에 있어 어떠한 사람들이 되어야겠느냐” (베드로후서 3:11)

엄청난 불이 다가오고 있고, 의로운 자들이 다스릴 환한 새 세상이 오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이러한 말씀을 읽을 때, 당신은 기뻐합니까? 그보다는 당신이 이렇게 외칠 겁니다. “오 하나님, 저는 당신의 말씀을 믿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이 죄로 저주받은 세상을 녹여내릴 당신의 거룩한 불을 보내실 것도 믿습니다. 그리고 새롭고 거룩한 세상이 오고 있는 것도 믿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모든 거룩한 대화와 경건함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베드로가 기록한 그 기준에 못 미치는 것 같아요. 솔직히 저는 택함 받지 못할 것 같아 두렵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제게 당신을 향한 영광스런 소식이 있답니다. 제가 한 치 의심의 여지도 없이 당신께 보여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도래하는 세상에 당신을 보존하기를 진정으로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마귀가 홍수처럼 당신께 몰려 올 때 당신을 지켜줄 그분의 생명을 공급하는 진리가 당신 마음속에 필요합니다.

여기에 주님께서 당신께 해주시기로 서약하신 것들이 있습니다.

“주께서 모든 악으로부터 너를 보호 하시리니 그가 너의 혼을 보호하시리라. 주께서 너의 나가고 들어옴을 지금부터 영원무궁토록 지키시리로다” (시편 121:7-8).

“주께서 공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들을 버리지 아니하시나니, 그들은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씨는 끊어지리로다.” (시편 37:28)

“그가 그의 성도들의 혼들을 보호하시며, 그가 그들을 악인의 손에서 구해 내시느리라.” (시편 97:10).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책망할 것이 없게 보존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분은 신실하시니 그가 또한 이것을 행하시리라.” (데살로니가전서 5:23-24) 

2013년 6월 24일 월요일

겉도는 믿음 by Gary Wilkerson

만일 당신이 오직 위로 받기만을 위해 교회를 다니면서, 겉도는 믿음에만 안주하려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원수로부터 그다지 많은 방해를 받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당신이 예수님을 위해 살기로 결심했다면, 즉, 고통 받는 자들과 잃어버린 양들, 그리고 그리스도의 지체를 위한 비전을 갖고 있다면, 사탄은 당신을 향해 그의 온 무기를 던질 것입니다. 당신 삶의 여정은 당신의 영혼을 떨리게 할 만큼 시련과 고난투성이일 것입니다.

사도행전 27장에 묘사된, 로마로 향하는 바울의 여정은, 우리가 사탄의 공격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잘 나타내줍니다. 바울을 실은 배가 그 항해의 중간쯤을 마쳤을 때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 항구가 겨울을 나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어찌하든지 베니게까지 가서 겨울을 나자고 권고하는 자가 더 많더라." (사도행전 27:12)

바울은 이 결정에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항해의 방향이 그들로 하여금 로마에 도착하지 못하게 해서가 아니라 성령께서 그를 경고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결정은 그때의 상황에 가장 적합한듯했습니다. 그 후, 그 배는 심각한 난관에 부딪혔고, 배에 타고 있던 모든 자들이 생명을 잃을 뻔 했습니다.

제가 이 사건을 예로 드는 이유는,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사역에서 원수의 저항에 부딪힐 때 "베니게까지 가서 겨울을 나자고" 결정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연히 우리 모두는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위한 끊임없는 사역으로부터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만들 휴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제가 의미하는 바는 다름이 아니고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당신 사역을 좀 쉽게 해봐. 좀 물러서서 천천히 하지 그래."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식으로 할 때, 곧 그들의 항로는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그들의 사역은 더 이상 그리스도의 사역이 아니라, 그보다는 우선 배를 보호하면서, 폭풍으로부터 피하려고 노선을 바꾼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그들에게 던져진 공격으로부터 후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도들은 그들도 모르는 새에 그들의 높은 부르심을 도적 당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눈에는 예사로운 것이 될 수가 없습니다. 만일 제가 로마 대신 베니게를 향해 항해한다면, 배에 탄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사명을 가지고 로마로 갈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 배는 잘 운행되도록 유지되고 보존되겠지만, 불행하게도 그 배가 가진 사명은 결코 성취되지 못할 것입니다.

안락과 쉼은 왕국의 핵심이 아닙니다. 왕국의 삶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은 더 이상 내게 속하지 않았어. 나는 값을 지불하고 구속된 바 되었어.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인도해주시며, 그 어떤 저항에 부딪힌다 해도 나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은혜를 공급해주시지."

2013년 6월 21일 금요일

천국은 은퇴 센터가 아닙니다

당신은 의아해하며 이렇게 질문할 것입니다. “주님, 제 직장이 왜 저를 이토록 속상하게 만드는 걸까요? 저는 왜 항상 소외감을 느껴야 하나요? 제가 뭔가 잘못됐나요?”

당신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신 겁니다! 그분은 이 죽어가는 세상을 당신이 지긋지긋하게 여기게 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는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일에 너무 연루될 수 없단다. 왜냐하면, 그 모두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지. 네 소망을 하늘에 두어라. 다가오고 있는 새 세상에 말이다.”

당신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얼마나 큰 낭비입니까? 저는 활력이 넘쳐 흐릅니다. 재능도 있고 좋은 아이디어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예리한 마음과 많은 것을 성취하려는 열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항상 억눌림과 좌절을 느낍니다. 정말이지 너무도 답답합니다.”

당신께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끝나고 당신을 조롱하던 친구들이 끊어졌을 때, 그들이 이루어놓은 것들이 녹아 없어지고, 그들의 경력도 사라져버리고, 그들의 재물이 잿더미가 되었을 때, 그때가 바로 당신의 일이 시작될 때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천국은 은퇴 센터가 아닙니다. 그보다도, 우리 영생의 처소는 위대한 일들이 끊임없이 전개되고 있는 곳이며, 새로운 비전과 놀라운 계획들로 가득한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은사와 재능, 그리고 당신의 모든 열망을 거기서 온전히 사용하실 겁니다. 그분은 당신께 주신 그 어떤 은사나 재능도 허비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히려 당신의 은사는 몇 배나 더 증가하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영원한 왕국에서 그분의 영광을 위해 당신을 사용하실 겁니다!
그 경험이 어떠할 것인지에 대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몇 가지 힌트를 주셨습니다.

“그의 주인이 와서 종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보리니, 그 종은 복이 있도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주인이 그를 그의 모든 재산을 다스리는 자로 세울 것이라.” (마태복음 24:46-47). 여기서 “ruler(다스리는 자)”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영원한 임명”을 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영원무궁토록 그분의 분깃을 다스리는 자들로 임명될 것입니다!

“그의 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잘하였도다. 선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것에 신실하였은즉 내가 너를 많은 것을 다스릴 치리자로 삼으리니..." (마태복음 25:21)
“그가 그에게 이르되, ‘잘하였다, 선한 종아. 네가 매우 작은 일에 신실하였은즉 열 도시를 다스릴 권세를 차지하라, 하니라. (누가복음 19:17)

영원한 임명은... 그분의 가산을 다스리고… 그분의 분깃을 다스리며… 도시들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그분의 왕국에서 통치하며 다스릴 것입니다. 왕과 제사장으로서 말입니다.

2013년 6월 20일 목요일

우리의 마음을 일깨웁시다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 내가 이 두 번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는 것은 이 편지들로 말미암아 너희로 생각나게 하여 너희의 순수한 생각을 일깨워 주려 함이니.” (베드로후서 3:1) 현 세상의 종말과 새 땅의 시작에 대한 베드로의 메시지는, 우리 마음속에서 희망을 불러일으켜 주고 우리가 이 세상을 의지하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때 이 모든 것이 녹아지리니” (베드로후서 3:11)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일깨우기” 위한 진리입니다.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들, 한평생 걸쳐 일해서 쌓아두고 즐기려 했던 모든 재물은 급작스런 불에 녹아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증권가의 모든 투자회사와 대기업체의 모든 건물, 모든 은행과 모든 컴퓨터 본부가 없어져 버린 장면을요! 국제연합(UN)본부는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주 정부와 연방 국회 의사당 건물도 흔적도 없이 불타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포트 녹스(Fort Knox: 연방 금괴 저장소가 있는 미국 캔터기 주 북부 루이즈빌 근처의 군용지)와 그곳의 모든 금도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제조 공장들, 고층 건물들, 교량들, 터널들, 그리고 비행기들과 기차들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타고 남은 재 조차 보지 못할 것입니다! 이 모두가 “불에 녹아서…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기술합니다. (10-11절).

여기서 dissolved(녹다)라는 단어가 헬라어로는 “풀어지고 해체되며 용해되다”라는 뜻입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세상만사를 해체시킬 것입니다! 그분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욕정이 추구하는 온갖 잡동사니로부터 분리시킨 다음, 그 모든 것을 극심한 불로 녹여 없앨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예수님께 헌신된 자라면, 왜 세상의 일터가 결코 당신을 온전히 수용치 않을 것인지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한 진리를 나누기 원합니다. 당신이 어떤 직장에서 일하든지, 은행이든, 학교든, 거리를 청소하든지를 막론하고, 아마도 당신은 거부와 냉소, 그리고 오해를 경험할 것입니다. 당신이 하는 일에 대해 조금밖에, 또는 거의 인정받지 못합니다. 당신은 핍박받고 조롱받으며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또한, 당신은 결코 “그들 중 한 남자” 혹은 “그들 중 한 여자”로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직장에서 결코 편안함이나 진정한 안정감을 맛보지 못합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이 모두가 주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랍니다! 그분은 당신이 일시적이며 사라져버릴 이 세상에 현혹되지 못하도록 그것을 허락하고 계십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안락한 세상에 너무도 편협 되어서 결국은 주님으로부터 등을 돌립니다. 번창하며 환영 받고 인정받는 것이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빼앗기 때문이지요.

2013년 6월 19일 수요일

주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주의 날이 왔을 때, 이러한 자들은 어느 누구도 거룩한 도시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과 가증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을 일삼는 자들과 마법사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요한계시록 21:8). 대신 그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호수에서 자기 몫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8)

뉴에이지(New Age) 파의 끔찍스런 속임수를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신세계 체제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전적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머지않아서 마침내는 평강을 누리게 될 것이며,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모든 죄의식과 두려움, 그리고 정죄는 사라질 것이며, 죄가 더 이상 그들을 성가시게 하지 않을 것이고, 처벌이나 질병, 또는 형벌의 염려 없이 동성연애와 간통을 자유롭게 탐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며 그들 자신을 위로합니다. “사람들을 거듭나게 하는 종교는 없애버리자! 사람들로 하여금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모든 정죄와 비난은 없애버리자! 우리는 우리 멋대로 살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 거야. 어느 누구도 우리를 방해하거나 비난할 수 없어. “오, 신세계 체제여!”

지옥이 울고 통곡하며 이를 가는 곳이 되리라는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습니다. 영원한 불의 용광로에서는 거짓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갑자기 저주받은 자들이 이렇게 울부짖을 것입니다. “나는 완전히 속았어! 내가 곧 도래할 것이라고 확신했던 뉴에이지는 다름 아닌 영원한 지옥이었네!” 그리고 그 현혹됨으로 인해 치러야 하는 형벌의 대가는 영원무궁토록 점점 더 심해질 것입니다.

미국에서 수많은 자가 주술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할리우드 중역들, 증권시장 거물들, 브로드웨이 배우들, 정계 지도자 등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뉴에이지의 가짜 복음을 포용하고 있습니다. 싸이엔톨로지(Scientology: L. Ron Hubbard가 제창한 정신 요법과 능력 개발의 방법으로 현재는 신흥 종교화되어 있음), 명상, 사탄숭배, 부두(마법 주술)교, 점성술 등 온갖 종류의 마귀적 종교들입니다. 그들은 눈이 멀었고 속았으며 거짓을 믿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새 세상과 그 세상이 어떨 것인지에 대한 진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의 세상은 불에 녹아 없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현 세상은 하나님께서 직접 행하실 불의 심판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실제로 주님께서는 하늘과 땅 전체를 정련시키기 위해 예비해놓으신 불을 풀어놓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밤의 도둑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들이 굉장한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우주의 구성 요소들이 맹렬한 불로 녹아 내리며, 땅과 그 안에 있는 일들이 타버릴 것이라.” (베드로후서 3:10)

2013년 6월 18일 화요일

새 왕국이 오고 있습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에 냉소자들이 나타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 왕국을 세우기 위해 재림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비웃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냉소자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디에 예수가 있습니까? 나는 그가 오고 있다는 어떤 근거도 보지 못하겠는데요. 모든 것이 처음부터 있던 대로 계속될 겁니다!”

만일 당신이, 예수님께서 이 땅을 불로 연단하시고 영원한 의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오고 계시다는 냉소자들을 설득하려 한다면, 그들은 당신을 정신병자라고 부를 것입니다. 많은 자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터무니없는 사상으로 여깁니다. 한편, 이 냉소자들은 눈썹 하나 깜빡하지도 않고 되돌아서서는, “신세계 체제”가 오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한 냉소자들은 지옥으로부터 거짓말을 가져왔습니다. 사탄은 항상 진짜가 오기 전에 위조품을 만들어 냅니다. 당연히 사탄은 왕이신 예수께서 곧 오신다는 사실, 그리고 그분의 새로운 왕국이 곧 도래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마귀는 자신의 자녀가 모든 거짓 희망을 품고 있으면서, 환상의 나라가 올 것이라는 홍보에 계속 속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마귀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뉴에이지(New Age)가 오고 있다는 마귀적 교리를 위조해 낸 것입니다!

가장 최근의 뉴에이지 모조품으로, Age of Aquarius (물병자리 시대: 자유, 평화, 우애의 시대로 믿는 점성술)이 처음 나타났습니다. 열한 번째 별자리가 소위 “신세계 체제”로 알려진 마지막 뉴에이지(New Age) 왕국으로 이동한다는 사설입니다.

뉴에이지(New Age)파는 이 신세계 체제가 이제 막 부상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대형 참사가 발발할 것을 예언하고, 그러한 혼돈 가운데에서 신세계 체제가 부상할 것을 예견하면서, 사랑과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사회를 꿈꾸며 세계 평화론을 도입합니다. 모든 질병은 치유될 것이며 온갖 전쟁이 그칠 거라고 말합니다. 빈곤도 더 이상 없을 거라고요. 그리고 실제로 존재하게 될 유일한 그리스도는, 세계적 박애 정신인 '그리스도 의식'일 뿐이라는 망상이지요. 자기 자신만을 사랑함이 최선이 될 것이며, 쾌락에 모든 중점을 둘 것입니다.

제게는 그러한 모든 뉴에이지(New Age)파의 냉소자들을 향한 안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미안하지만 당신들은 마귀에게 기만 당해 있습니다. 이 마지막 때에 마귀가 인류에게 밀어붙이고 있는 그따위 환상적인 세상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오, 저기 새 왕국이 오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세계 체제”나 뉴에이지(New Age)같은 세상은 결코 아니랍니다. 그보다는, 이 세상의 모든 열방이 우리 주님의 것이 될 것이고, 그분의 모든 대적은 그분의 발판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거룩한 왕국을 세우기 위해 다시 오실 것이며, 냉소자들은 그 거룩한 왕국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분의 약속에 따라, 의가 거하는 새 하늘들과 새 땅을 기다리는도다. (베드로후서 3:13)

2013년 6월 17일 월요일

바람이 반대로 분다 해도 by Gary Wilkerson

사도 바울이 로마로 항해했을 때는, 이미 그의 모든 사역을 마쳤을 때였습니다. 그는 사역을 통해 놀라운 일들을 성취했지만, 복음을 위해 그의 전 인생을 쏟아 붓고자 하는 불타는 열정은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도의 부르심을 받았고, 아시아 전역과 유럽의 일부 교회들을 관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법정과 왕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전도사이자 변론자였습니다. 바울은 성령의 인도 하심을 따른 사명을 감수하기 위해 그의 모든 것을 희생했습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결심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 가장 중심지에 전하고 싶어. 나는 로마에 가서 가이사에게 직접 설교하기로 결단했어!"

바울은 이 사역에 너무도 몰입되어서, 그것이 성취되는 것을 보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때 그는 감옥에 있었는데, 곧 석방될 기회가 있었으나 가이사 앞에 서는 특권을 얻기 위해 그 석방의 기회를 포기했고, 마침내는 가이사 앞에서 그의 소송을 상고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바울이 법정에서 졌다면 그의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복음을 전파한다는 한가지 신념만으로 그러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사도행전 25:1-12 참조)

로마로 가는 여정에서, 바울은 어떤 배에 타게 되었으나 곧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바람이 반대로 불매" (사도행전 27:4) 이것은 자연현상에 의한 난관이었으나, 바울은 그것을 단지 영적 걸림돌로 여겼을 겁니다. 실상은, 만일 당신이 복음을 위한 열정으로 당신의 얼굴을 부싯돌같이 굳힌다면, 온 지옥이 당신을 방해하려고 출동할 것입니다.

위 구절은 그 시점까지의 바울의 생애를 묘사하는 데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는 파선, 채찍질, 암살음모 등 수많은 환란을 견뎌야 했습니다. 바울이 그 모든 환란을 감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마음이 오로지 자신의 사명: 즉, 생존과 설교, 그리고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만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한가지 목표에만 고정되어 있다면 많은 고난을 감당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삶의 안위만을 고수한다면 어떤 고난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성경이 명백히 제시하고 있는 것은, 이 타락하고 죄가 만연한 세상을 향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해야 한다는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 복음의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함께 모여 예배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또한, 우리는 가난한 자들을 도우며 사역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으며, 우리가 행하는 이러한 모든 일은 어둠 속에 있는 세상을 그리스도의 빛으로 환히 비춰줄 것입니다. 결론을 내리자면, 우리의 말과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에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을 우리가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세상이 변화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2013년 6월 14일 금요일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십니다

오늘날의 성도들을 향한 중요한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이미 미래의 시간들을 설정해 놓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바로 그 시를 알고 계시고, 마지막 대 환란, 마지막 심판, 그리고 아마겟돈의 대전쟁도 그분의 시간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온 천지를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민족들은 통 속에 한 방울 물 같고, 또 저울의 작은 티끌같이 여겨지느니라. 보라, 그는 섬들을 아주 작은 것으로 여기는도다…그분 앞에 모든 민족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그 민족들이 그에게는 없는 것보다 못하게 여겨지며, 헛것으로 여겨지느니라” (이사야 40:15, 17)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계속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는 결코 종말이 오지 않을 것처럼 일해야 하며, 마치 내일이 세상 마지막 날인 듯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의 머리카락을 세고 계십니다. 여전히 떨어지는 참새도 세고 계시며, 아직 구하기도 전에 그들의 간구를 듣고 계시고, 그들이 부르기도 전에 응답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여전히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넘치게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왜 두려워해야 합니까? (마태복음 6:25-34 참조)

준비된 그리스도인들이여, 깨어나십시오! 모든 것이 통제하에 있으며,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구원하시며, 치유하시고, 세례를 베푸시며, 그분의 집을 정돈하고 계십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주님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우리 자신을 격려하고, 마지막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노래하고 기뻐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누군가 이렇게 물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 죄로 저주받은 세상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을 보며 제가 어떻게 기뻐할 수 있습니까?”

제 대답은 성경에 있는 대답과 같습니다. “모든 창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 받는 것을 우리가 아노니… 양자 되는 것… 구속을 기다리고 있느니라.” (로마서 8:22-23)

해산 중에 있는 여인이 고통으로 인해 비명을 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새로운 탄생이 일어나고 있음을 기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오고 있습니다. 사탄의 왕국은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습니다!”

2013년 6월 13일 목요일

모든 것은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습니다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두려움으로 기진하리니. (누가복음 21:26 참조). 지금은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조차도 물밀 듯이 몰려오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배가 가라앉을까 봐 두려워합니다. 인류는 안정된 삶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말이 무섭게 들립니까? 분명한 것은, 인간의 눈만 가지고 식별해보아도 모든 것이 허물어지고 있는듯하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은 보수파들조차 세상에서 종말론적 재앙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때입니다.

다가올 재난에 대한 계시와 함께, 모든 신실한 성도들을 위한 매우 특별한 소망의 메시지를 하나님께서 제게 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제가 보았던 모든 것들이 실제로 일어날 것인지 필사적으로 여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피신하려는 때에,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제한된 시간 내에 그들이 해야만 하는 모든 일을 감당해낼 수 있는지 보여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들의 가정과 자녀의 보안을 염려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그들이 모든 재난과 참사에 대한 보도에 대응하며 예비할 수 있을까요? 그들이 포기하고 물러나서는 이 한심한 세상을 마귀에게 넘겨서 그가 원하는 대로 가도록 내버려 둘까요? 모든 고지서 요금을 지급하고는 은행에 자금 좀 넣어두고, 더 좋은 날이 오기를 바라며 그저 흐름을 따라 살아야 할까요? 다가올 재난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을 거라고 희망하며, 시골에 농장이나 땅을 사서 도망가야 할까요? 그들의 의욕을 포기해버리고 두려움에 항복해야 하나요? 그들의 모든 꿈과 야망을 저버린 채 은둔자의 삶을 살아야 하나요?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께서 제게 하신 말씀을 들어보세요. 불과 다섯 단어 밖에 안되지만, 너무도 강력한 나머지 저를 영광스러운 새 희망과 믿음으로 소생시켰습니다. 그 짧은 다섯 단어는 바로 이것입니다: "God has everything under control. 모든 것은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통제 안에 있습니다! 당신과 저, 그리고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은 그분의 통제 아래 있습니다. 이 참담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분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룰 것입니다. (로마서 8:28)

앞날이 악하고 불길해 보였을 때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사망의 그늘진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참으로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며.” (시편 23:4) 오늘날 믿는 자들을 위한 메시지는, 우리의 미래가 주님의 통제 아래 있으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2013년 6월 12일 수요일

하나님의 비상 대책!

세상이 참으로 불안정해진다 해도 하나님의 자녀는 평강을 누릴 수 있으며, 넘쳐 흐르는 기쁨 가운데 거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는 가장 위급할 때에 우리를 특별히 보호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에 기근이 만연했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비상 대책을 마련해 놓지 않으셨습니까? 그분은 요셉을 미리 애굽에 보내셔서 그를 국무총리 자리에 올려놓으셨습니다. 요셉은 극심한 기근을 끝까지 견딜 수 있을 충분한 양의 곡물을 각 창고에 가득 채워놓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백성을 그 창고들로 걸어다닐 수 있는 가까운 거리로 옮겨서 그들을 배불리 먹였습니다.

엘리야를 위해서도 하나님께서 비상 대책을 마련해 놓지 않으셨습니까? 그때 그 나라는 경제 붕괴로 휘청거리고 있었고, 극심한 기근으로 인해 식량은 구경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사악한 왕은 엘리야의 목숨에 현상금까지 걸어놓았을 때였지요.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위해 준비해놓은 비상 대책을 실제로 행하셨습니다. 그분은 엘리야를 한적한 시냇가에 숨겨놓으시고는 한 마리 새가 날아다 주는 음식으로 그를 먹이셨습니다. 또한, 그분의 생존 대책 중 하나였던, 아무리 먹어도 줄어들지 않았던 그 신비로운 곡식 항아리 이야기도 우리가 잘 알고 있지요.

노아는 어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의 가족을 위해 얼마나 면밀 주도한 생존 대책을 갖고 계셨던지요! 그것은 바로, 온 세상을 멸종시킨 대홍수로부터 그와 그의 가족을 안전하게 떠오르게 한 방주였습니다.
그 리고 롯은요? 하나님께서는 저주받은 소돔 성으로부터 롯과 그의 자녀를 친히 구해내시기 위해 실제로 천사들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롯이 성 밖으로 무사히 나올 때까지 그분의 손길을 때지 않으셨습니다. 그때의 재난은 그가 직장을 잃은 것보다도, 경제가 붕괴한 것보다도, 정부가 몰락한 것보다도 훨씬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그 사회 전체가 진멸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롯은 무사히 구출되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비상 대책을 거듭해서 경험했습니다. 이 사도는 파선도 당했고, 강도에도 쫓겼으며, 감옥에도 갇혔고, 대역죄로도 판결받았으며, 암살도 당할뻔했으나, 그 모든 위기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위한 비상 대책을 항상 준비해놓고 계셨습니다.

2013년 6월 11일 화요일

절대적 권한

4년마다 미국은 소위 “지구 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직책”인 대통령 취임식을 거행합니다. 그의 서명은 곧 법입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통솔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권력은 예수님께서 당신과 제게 주신 능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창조자이시자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로 곧장 들어갈 수 있는 절대적 권한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로 인하여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가나니… 우리가 믿음의 온전한 확신 가운데서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가자.” (히브리서 10:19-22)

이 구절에서 “담대함”이라는 단어는 “확신을 가지고 숨김없이 행하는 것, 또는 대중의 관심을 확보해놓는 것”을 뜻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대중의 관심”은 마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즉, 우리가 지옥에 있는 모든 마귀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권세로, 하나님 임재 안으로 들어가서 그분과 대화할 수 있고, 그분으로부터 들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만나기 위해 기꺼이 내려오시는 특권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믿음의 확신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그분께 가까이 다가갑시다! 우리는 새 피나 염소 피, 또는 황소 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의 보혈로 나아가는 것이니까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피로 한 번 성소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느니라. 황소와 염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도 불결한 자들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함으로써 거룩하게 한다면,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하여 흠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죽은 행실에서 너희 양심을 정결케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히브리서 9:12-14)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그분께 나오는 자녀보다 더 하나님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이렇게 말하며 그분께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나는 주님 전에 거할 권리가 있어. 설령 내 마음이 나 자신을 정죄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내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알고 계시지.” (요한일서 3:20 참조)

2013년 6월 10일 월요일

주님은 진정코 이곳에 계십니다 by Gary Wilkerson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르노니." (고린도후서 3;18)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얼마나 놀라운 분이신가요?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주일에 내 집에 와서 내 영광으로 채워질 때, 그 영광은 다음날인 월요일부터 소멸되기 시작하지 않을 것이다. 그 다음 날 화요일에도 소멸되지 않을 것이라서, 그것을 얻기 위해 다음 주일을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내 영광은 언제나 네 안에 상주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소멸 되가는 것이 아니고 점점 증가되고 있다!"

이 메시지는 그리스도 몸의 한 특정 부분의 지체만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가장 연약한 자에서 가장 강한 자에 이르기까지, 또한 가장 어린 자에서 가장 연로한 자들을 막론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자에게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그분의 영광으로 우리를 채우신다는 하나님의 언약은 모든 성도에게 "예스와 아멘"입니다.
바울이 선언하듯이 그분의 현존하는 영광은 죄의 속박으로부터, 절망과 패배로부터, 그리고 진부함과 무관심으로부터 자유를 가져다 줍니다. (고린도후서 3:17) 우리는 그분의 영광에 의해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됩니다. 이러한 영광은 사람들로 하여금 담대한 갈망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달려가게 합니다.

이제는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모든 불순물을 없애야 할 때입니다. 당신 마음속에, 사람들이 당신께 끌리지 못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영광을 막는 요소가 있습니까? 당신은 반복되는 습관적 죄성 때문에 힘들어하고 계십니까? 비난, 쓴 뿌리 또는 용서 못함이 여전히 당신의 마음속에 있습니까?

그러한 것들은 지속될 필요가 없습니다. 마귀가 당신께 가져다 준 두려움의 장막이 이제 더는 효력이 없을 것입니다. 당신이 너무도 연약하다는 마귀의 거짓말은 당신께 아무런 능력을 발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영광이 약한 토기 그릇에 거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의 영광은 상처받은 자들과 환란 가운데 있는 자들을 밝게 비춰줍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는, 패배는 승리로, 육적 연약함은 천상의 능력으로 전환됩니다.

지금 여러분께 들려주시는 그분의 말씀을 믿으세요. "너는 패배한 삶을 계속할 필요가 없으며 간증 없는 삶을 살 필요가 없단다. 너를 몹시 놀라게 할 내 영광을 나타낼 것이기 때문이다. 낙망한 자들은 네 삶을 통해 내게로 나아오게 될 것이고, 그들이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주님은 진정코 이곳에 계십니다.'"

2013년 6월 5일 수요일

예수님부터 알아야 합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를 만난 후 (누가복음 17:11-19 참조), 아마 예수님과 사도들은 간단한 식사 후 그 마을로부터 멀리 떠나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 뒤에서 소란한 음성이 들렸고, 그들이 뒤돌아 보았을 때, 한 사람이 팔을 흔들면서 큰 소리로 부르며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제자 중 하나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사람은 아까 마을에 있었던 열 명의 문둥병자 중 한 사람이네요.” 그가 가까이 오면서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예수님께 영광을!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는 사마리아인 문둥병자였습니다! 그가 예수님 앞에 와서는 주님 발 앞에 엎드려 찬양과 감사를 터뜨렸습니다! 그의 가장 깊은 심령으로부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향한 경배가 쏟아져 나왔던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영광 받으소서!”

예수님께서는 그를 내려다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열 사람이 정결하게 되지 아니하였더냐? 그런데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누가복음 17:17). 주님은 이렇게 묻고 계셨던 겁니다. “왜 너 혼자 왔느냐? 내가 고쳐준 나머지 네 친구들은 다 어디 있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오늘도 여전히 하고 계신 질문입니다! 그분이 정결케 하시고 온전케 만들어준 많은 자 중, 오직 소수만이 주님께 돌아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모든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들은 고침 받은 아홉 문둥병자가 처했던 곳과 똑같은 장소에 있습니다. 즉, 종교의 영에 의해 삼켜진 채 교회 안에서 상실되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성경의 통계를 믿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에 기록된 이 사건의 통계가 정확하다면, 예수님으로부터 만짐을 받은 자들 중 구십 퍼센트가 생명이 없고 메마른 교회로 돌아간다는 것이 됩니다. 그들은 종교에 빠져서 결코 예수님께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 아홉 문둥병자는 절실히 그들의 삶을 되찾기를 원하며 가족에게로 돌아가고 싶었겠지요. 그리고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나는 내 자존심을 되찾고 싶어. 다시 회당으로 돌아가서 오실 메시아에 대해 더 공부해야겠어!”

당신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왜 잘못입니까? 한 남자가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가 아닌가요?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의 깊은 것을 묵상하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그리스도인들은 그 아홉 문둥병자가 그랬듯이 부지런히 일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더군다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제사장에게 곧장 가라고 하셨잖아요?”

예, 그 모두가 맞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께서 맨 먼저 예수님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 모든 것은 무의미하답니다!

2013년 6월 4일 화요일

기쁨의 함성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도중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를 지나시면서 한 이름없는 마을에 들어서시게 되었습니다. 그 마을 외곽에 열 명의 문둥병자가 끔찍한 불결함과 수치감 속에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문둥병자 중 아홉 명은 유대인들이었고, 한 사람은 사마리아인 이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같이 살기는커녕, 접촉조차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공통된 고난은 이 열 병자로 하여금 비참함 가운데 하나로 엮어지게 했습니다. 집 없이 버려진 채로, 그들은 마을 바깥 외딴곳에 진을 치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문둥병자들은 법적으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최소한 200-300 피트 정도 떨어져 있어야만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들 옆을 지나갈 때마다, 그들은 “불결하다, 불결하다!”고 외쳐야 했습니다. 이들은 구걸해서 얻어먹어야만 했고, 다른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음식을 먹었습니다. 아마 그들은 쓰레기 버려지는 장소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성경은 끔찍한 죄의 결과로 인해 심신이 약화되고 쇠약해진 채, 수치 가운데 사는 죄인들의 모습을 문둥병자로 표현합니다.

저는 이 열 명의 문둥병자들이 어떻게 예수님에 대해 들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한 떠돌이 문둥병자가 지나가면서, 예수님께서 다른 도시나 마을에서 문둥병자들에게 행하신 기적적인 치유에 대해 그들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어쨌든, 그들은 예수님께서 지나가실 것임을 알았기에 그분을 보려고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예수님과 사도들이 길에서 오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의 절단된 팔을 흔들기 시작했을지 매우 궁금합니다. 그들이 떨어져 나간 자신들의 수족을 보였을까요? 그들의 더러운 누더기 옷을 흔들었을까요?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주님의 시선을 끌었는지 모르지만, 예수님께서 말소리가 들리는 거리쯤 다가오셨을 때, 그들은 큰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예수여, 선생이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그들은 돈을 구하거나 죽은 후 천국 가는 것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비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간청하는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예수님, 당신이 그토록 측은한 눈길로 저희를 바라보시는데 어찌 자비를 베풀지 않으시겠어요? 저는 예수님께서 단 한 순간도 움츠리거나 돌아서지 않으셨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얼굴을 똑바로 보시며 깊은 연민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 주라.” (누가복음 17:14)


저는 생명, 건강 그리고 힘이 이 열 병자에게 즉시 흘러 들어 갔다고 믿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씩, 그들은 자신의 손을, 서로의 얼굴을 보았고, 각질 덮인 그들의 창백한 피부가 변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건강해 보이는 살이 그들의 팔다리에, 그들의 얼굴에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침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은 예수님이 당신에게 자비를 베풀었던 시간, 너무도 정결하고 진정 살아있다고 느꼈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당신은 그분의 정결케 하시는 능력으로 인해 외쳐보셨습니까? 당신 안에 샘솟는 새 생명을 느껴보셨습니까? 이 고침 받은 자들은 그 생명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당신은 이 고침 받은 무리에게 어떤 전율 같은 것이 흘러 넘쳤을 것을, 그리고 그들에게서 기쁨의 함성이 터져 나왔을 것을 확신해도 됩니다!

2013년 6월 3일 월요일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여 by Gary Wilkerson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할 수 있습니까? 구약의 많은 선배가 그 질문을 했고, 모세는 그것을 전심으로 구하며 외쳤습니다. 킹제임스 번역은 모세의 간절함을 가장 명확히 묘사합니다: “간청하오니 주의 영광을 내게 보여주소서.” (출애굽기 33:18) 이 “간청함”은 애원, 영혼의 신음, 그야말로 채워져야만 하는 필요에 대한 간절한 표현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간청을 기뻐하셨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 주시기로 동의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모세에게 바위 뒤에 숨어서 자신이 지나갈 때 얼른 보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조차도 그분 영광의 광채를 감당할 수 없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주 작게나마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의 광선은 그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모세가 시내 산에서 내려왔을 때 그 얼굴의 광채가 너무 강해서 베일로 얼굴을 가려야 했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는 것을 마쳤을 때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출애굽기 34:33, ESV) 모세가 그의 얼굴을 가렸을 때는 사람들에게 말한 후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에 대해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모세가... 점점 사라져가는 영광의 광채를 이스라엘 자손들이 보지 못하게 하려고 베일로 그 얼굴을 가렸더라.” (고린도후서 3:13) 가시적인 하나님의 영광이 실제로 소멸된다는 바울의 대담한 선언은,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영광을 말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찬란한 임재의 영광도 결국에는 소멸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소멸되지 않는 유형의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영속할 것은 영광이 훨씬 더 많으리라.” (3:11)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구현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의 얼굴에 수건을 가린 모세와 같지 않게, 우리가 그러한 소망을 가진 것을 담대하게 말하노니.” (3:12-13)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인해, 한편으로는 모세에게조차 가능하지 않았던 담대함이 우리에게 임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렇지만 주께로 돌아서면 그 수건은 벗겨지리라. 이제 그 영은 주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우리 모두는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보는 것같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는 똑같은 형상으로 변모 되느니라. 왜냐하면 이것은 영이신 주님으로부터 말미암음이니라.” (3:16-18)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소멸되지 않는 영광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담대함은 그리스도 자신의 성령에 의해 부여 받은 것이기에 모세에게 임했던 영광도 능가합니다. 그때 모세에게 임했던 주님의 영광은 출애굽 시대의 주님의 임재로 국한된 것이었으나 이제 그것과는 다릅니다. 예수님 덕분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은 쉼 없이 일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영광은 끊임없이 우리를 "한 영광에서 다음 단계의 영광으로" 승진시킵니다. 우리에게는 영구한, 불변의, 사라지지 않는 영광이 있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