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30일 월요일

아버지의 약속 by Gary Wilkerson

사 도행전 1장부터 6장까지는 역사상 가장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일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강력한 설교, 대 회심, 기적적 치유 등 그야말로 놀라운 사건의 연속으로 가득했습니다. 그 모든 사건은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신성한 언약의 성취였습니다.

부활하시기 전,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약속"을 받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4:49)

그 언약은 성령강림절, 즉, 이스라엘 절기인 "초실절"부터 성취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 십자가의 고난의 첫 열매를 마침내 세상이 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계획하고 계셨는지 상상도 못했습니다. 아마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정말 대단해!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곧 회복시키신다는 의미야. 그분은 우리를 로마제국의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하실 것이고 우리는 다시 그분의 백성이 될 거야."

예수님으로부터 그와 같은 언약의 말씀을 들었다면, 오늘의 교회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때, 우리 교회는 부흥의 물결이 넘쳐 흐를 거야. 성령께서는 다른 도시에서도 움직이실 것이고, 사람들은 그 부흥을 조금이라도 맛보기 위해 전 지역으로부터 몰려들 거야. 우리는 전례 없는 축복을 받게 될 거야!"

우리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기쁨과 위안을 가져다 주기 위해 성전을 채우시기를 원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는, 믿는 우리만을 위한 영광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너희가 하늘로부터 능력을 받으려면, 내 교회 성도라야만 하고, 성경공부 하는 자들이어야만 하며, 기도 모임 참석자들이어야만 한다." 대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교회 벽을 넘어 가장 척박한 세상 끝까지 이르러야만 합니다. 사도행전에서 펼쳐지는 사건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베드로가 일어나 모인 군중을 향해 설교했을 때 삼천 영혼이 구원받았습니다. 그 후,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 전역을 두루 다니며 증언했을 때, 기적적 치유와 구원은 물론, 표적과 기사가 따랐습니다.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만일 성령의 역사가 사도행전 6장에서 멈추었다면, 하나님의 모든 능력이 열두제자의 손에 남겨졌을 것입니다. 그보다는 시공간의 변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영은 더 이상 소수의 선택된 자들을 통해서만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이름을 부르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권능을 부어줄 것이다." 

2013년 9월 27일 금요일

하나님 임재 보존하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가운데 거하시는 그분 임재에 대한 비밀을 알려주셨는데, 그것은 역대하 15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전장 14장에서 아사 왕은 유다 군대로 하여금 에디오피아 백만 군사를 물리치게 하는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한편 아사 왕은 그 대적을 물리친 것은 하나님의 임재였다고 증언했습니다.

“아사가 주 그의 하나님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여, 그들의 수가 많든지 그들에게 힘이 없든지, 주께서 도와주시는 데는 아무것도 아니니이다. 오 주여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를 도우소서. 이는 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주의 이름으로 이 무리를 대적하러 감이니이다… 이에 주께서 아사와 유대 앞에서 에디오피아인들을 치셨으니...” (역대하 14:11-12)

아사와 그의 군대가 승리의 행렬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아사랴라고 불리는 선지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전하기 위해 성문에서 그들을 맞았습니다. “아사야... 너희는 내게 들으라. 너희가 그분과 함께하는 한 주께서 너희와 함께하실 것이고, 너희가 그분을 찾으면 너희를 만나 주실 것이나, 만일 너희가 그분을 버리면 그분께서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은 참 하나님도 없이.... 그러나 고난에 처한 그들이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께로 돌이켜 그분을 찾으니 그분께서 그들을 만나 주셨느니라.” (15:2-4)

당신 삶에 하나님의 임재를 받고 보존할 수 있는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아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어떤 제약도 없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사, 네가 어떻게 이 승리를 얻었는지 절대 잊지 말아라. 네가 곤경에 처했을 때 너는 전심으로 나를 구했고, 나는 내 임재를 네게 보내주었다. 네 원수를 궁지에 몰리게 만든 것은 바로 내 임재였다!”

그때 아사랴 선지자는 아사 왕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정권을 잡기 전에 이 나라가 어떠했는지 기억합니까? 온 나라는 율법도, 지침도, 의로운 가르침도 없는 천방지축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것을 행하며, 자기들 멋대로 살았습니다!”

이것은 어려운 신학이 아닙니다. 단순히 그분께 구하기만 한다면, 누구든 지속적 주님의 임재를 소유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너를 만나주실 것이라.” (역대하 15:2) 여기서 '만나주다'가 히브리어 단어로 'matsa'인데, “가능케 하고 축복하기 위해 오시는 그분의 임재”라는 뜻입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 구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구하라. 그리하면 그분께서 그분의 임재로 네게 올 것이다. 참으로, 그분의 임재는 네 삶으로부터 발산되는 전능하신 힘이 될 것이다!”

2013년 9월 26일 목요일

하나님께서 위대한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이는 내가 주 너의 하나님이요… 그러므로 내가 너를 사랑하였노라… 두려워 말라. 이는 내가 너와 함께 있음이라.” (이사야 43:3-5)

아브라함, 여호수아,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었던 모든 구약의 사건은, 우리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도록 우리를 격려하며 권면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분의 임재하심이 그들을 위해 행하신 일들을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반면, 우리 또한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 즉, 기회를 제공하시고, 장애물을 없애주시며, 마음을 감동시키고, 우리를 담대하게 만들어주시며 우리 삶을 인도하셨던, 놀라운 간증거리를 갖고 있습니다.
저는 제 삶의 증거로 그것을 경험했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요. “당신은 그런척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임재가 저 자신도 모르게 저와 함께 계셨습니다!

우리가 뉴욕에 타임스퀘어 교회를 시작했을 때, 그리스도의 임재는 우리가 행했던 모든 일에 나타났습니다. 저는 그때 교회로 사용할 극장건물을 찾기 위해 한 유명한 브로드웨이 프로듀서 사무실로 걸어 들어갔던 일을 기억합니다. 그의 비서와 직원들은 저를 비웃었습니다. 하찮은 목사인 저를 그가 만나준다는 것은 당치도 않을 것임이, 그들의 언어와 태도에 확연히 배어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쫓겨날지도 모를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 프로듀서가 자기 사무실에서 나와 저를 보더니, 자기 사무실로 저를 초청해 들였습니다!

몇 주가 지나면서, 그 프로듀서와 저는 친해졌습니다. 그는 가끔 책상 너머로 저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목사님과 왜 이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제 일정은 완전히 꽉 차있거든요.” 그러나 제가 그의 사무실로 걸어 들어갈 때마다, 그의 비서는 다른 모든 방문자를 제치고 저를 그의 방으로 들여보내며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어서 들어가세요. 목사님, 그가 목사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마침내 이 프로듀서는 그의 대표적 극장건물을 타임스퀘어 교회가 사용할 수 있도록 팔았습니다. 매매서류에 서명하면서도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왜 이 일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건물을 우리에게 팔도록 그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임재셨습니다. 그 일이 성사되고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서, 그와 그의 변호사는 그 건물을 다시 사겠다고 간청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그렇게 움직이시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우리 옆 건물 주인은 그 건물을 우리에게 부속 성전으로 파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제 친구가 되었고, 결국은 그 건물을 우리에게 팔았습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제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저 위에 계시는 누군가가 당신을 위해 일하고 있네요!”

그것이 하나님 임재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도 그렇게 증언할 수 있습니다. “저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서 위대한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2013년 9월 25일 수요일

주님 임재의 축복

하나님의 임재가 가져다주는 축복이 주님을 따르는 자들의 삶에 임했던, 구약의 실례들을 상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 아브라함 삶에서의 하나님 임재가 너무도 뚜렷해서, 주위 이교도들조차도 그들의 삶과 아브라함 삶의 차이를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일러 말하기를, “네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창세기 21:22) 그 이교도 왕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네게는 뭔가 다른 것이 있다. 네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서 너를 인도하시고 지키시며 축복해주시는구나!”
  •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그분의 임재가 그와 함께할 때에는, 어떤 원수도 그를 대적하지 못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네 평생에 네 앞에 설 자가 아무도 없으리라. 내가 모세와 함께하였던 것과 같이, 내가 너와도 함께하리니, 내가 너를 단념하지 아니하고 버리지 아니하리라. 강하고 담대하라.” (여호수아 1:5-6)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하시면, 우리는 강하고 담대할 수 있으며, 그 어떤 원수도 우리를 해칠 수 없습니다!
  •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너 힘센 용사여… 너는 너의 이 힘으로 가서 이스라엘을 구하라.” (사사기 6:12, 14) 이 구절에서 “너의 힘”이라는 표현은 12절의 이 말씀을 가리킵니다.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아시겠습니까? “기드온, 네게는 너무도 강력한 힘이 있어서 그 힘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힘은 곧 나의 임재란다!” 성경은 기드온을 겁쟁이라고 밝혔는데도, 왜 하나님께서는 그를 “힘센 용사”라고 불렀을까요?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주님의 임재가 함께 거할 때 평범한 자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기드온에게 증명해주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온 백성이 그에게 등을 돌리며 그의 예언을 거부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이 너를 대적하여 싸울 것이나 그들은 너를 이기지 못하리니,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하고 너를 구해낼 것임이라.” (예레미야 15:20)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예레미야, 온 나라가 너를 대적한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임재가 너와 함께 한다는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담대하라!”
  •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사랑하는 이들과 맺는 특별한 언약을 이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들을 통과할 때도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며, 네가 강들을 통과할 때에도 물이 너를 덮치지 못할 것이라. 네가 불 속을 통과해서 걸을 때에도 타지 않을 것이며, 불꽃이 네 위에서 타지 못할 것이라. 이는 내가 주 너의 하나님이요... 내가 너를 사랑하였노라... 두려워 말라. 이는 내가 너와 함께 있음이라.” (이사야 43:1-5)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너와 함께 거하는 내 임재로 인해, 어떤 홍수나 불도 통과한다 해도 너는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네가 단지 살아남는 것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너는 그 모든 것을 통해 축복받고 은총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 임재가 너와 함께 하기 때문이란다!”

2013년 9월 24일 화요일

능력 받는 삶

성경은 하나님의 임재가, 그분의 자녀들로 하여금 그분을 위해 살 수 있는 능력을 어떻게 공급하는지에 대한 수많은 예를 보여줍니다. 그 중 가장 좋은 실례를 모세의 삶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그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 임재 없이 무언가를 시도한다는 자체가 헛된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그가 주님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했을 때, 그는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만일 주의 임재가 나와 함께 가지 않으면, 우리를 여기에서 올려 보내지 마소서.” (출애굽기 33:15)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주님, 만일 당신의 임재가 저와 함께하지 않으신다면, 저는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가까이 계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다면 단 한 걸음도 떼지 않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다른 모든 민족으로부터 구별시키는 것은, 바로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라는 것을 모세는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과 우리를 구별시키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를 이끄시고 인도하시며,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해 그분의 뜻을 이루어가시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모세는 다른 민족이 어떻게 인도함을 받았는지, 어떻게 그들의 정책을 세웠는지, 어떻게 그들의 나라를 다스렸으며 그들의 군대를 통솔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단 한 가지 원리에 의해 움직인다. 이 황무지에서 전쟁하며 생존할 수 있도록 인도받고 통치받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임재를 우리와 함께 거하시게 하는 것이다!"

"주님의 임재가 우리 가운데 거하시면, 아무도 우리를 해칠 수 없다. 그러나 그분 없이는, 우리는 무력하며 무가치하다. 세상 모든 민족이 그들의 막강한 군사력과 철병거, 잘 훈련된 군병들, 그리고 최첨단 무기에 의존하게 하라. 우리는 우리 하나님 임재의 현존하심만을 신뢰할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의 담대한 발언에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내 임재가 너와 함께 가며, 내가 너에게 쉼을 주리라.” (출애굽기 33:14) 그 얼마나 놀라운 약속인가요! 여기서 히브리어로 "쉼(rest)"은 “편안한, 고요한 안식”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네가 어떤 원수나 시험을 만난다 해도, 너는 항상 내 안에서 고요한 안식을 얻을 수 있단다!”

이것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만일 어떤 교회에 하나님 임재의 나타나심이 있다면, 그곳에는 어떤 소란이나 법석도, 어떤 수고나 분투도 없을 것입니다. 예배 의식은 단 세곡의 찬송과 헌금시간, 그리고 짧은 설교로 서둘러 진행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그 예배에는 차분한 평강과 고요한 안식이 있을 것이며, 그 교회 문을 들어서는 모든 사람이 그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2013년 9월 23일 월요일

진정한 자유로의 부르심 by Gary Wilkerson

"여호와께 구속된 자들이 돌아와서 노래하며 시온으로 들어와서, 그 머리 위에 영영한 기쁨을 쓰고 즐거움과 기쁨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라." (이사야 51:11)

생명—기쁨—소멸된 자기 의—희락—담대함—자유... 이러한 단어들에 당신 마음이 끌립니까? 이런 종류의 기쁨을 만끽하며 그리스도를 섬긴다는 것을 당신은 상상이나 할 수 있는지요? 어떻게 하면 그처럼 강력한 기쁨을 소유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의로운 일을 행함으로써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자신을 의롭게 만드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분투하며, 하나님께 우리가 가진 모든 것과 우리 자신의 전부를 신실하게 드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 의는 여전히 더러운 넝마 정도밖에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이사야 64:6)

진정한 자유는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분의 의가 우리의 것이 되면, 우리는 분투함으로부터 자유롭게 됩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분의 영이, 죄와 죄의식의 법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동시에 모든 것을 새롭게 변화시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서 8:2)

바로 그 자유가 우리에게 필요한 전부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향한 그분 부르심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기 위한 자유를 의미합니다. 그것을 취할 때만이 우리가 진정한 해방감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만들지 않은 담대함을 갖게 됩니다. 죽음으로 몰고 가는, 구속적인 율법주의 대신 은혜가 우리를 다스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쟁취하신 자유와 기쁨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분의 의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의미는, 무언가를 행한다기보다는 그분의 은혜를 포용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책임과 의무를 경시하라는 뜻이 아니고, 그보다는 그분 은혜의 휘장 안으로 들어가야만 진정한 책임을 부여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가 그분의 이름으로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을 것입니다!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나니..." (갈라디아서 5:13)

2013년 9월 20일 금요일

어떤 상황에서도 평강을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영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건전한 생각의 영이라.” (디모데후서 1:7)

현재의 불경기가 깊고 오래가는 경제 공황의 수렁으로 진전될까요? 그토록 많은 목회자와 경제 전문가들이 경고해왔던 경제적 재난이 바로 이것일까요? 아니면 그저 상습적으로 한 번씩 지나가는 단기 변동일까요?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지구 상에서 단 한 사람도 아는 자가 없습니다. 경제 전문가들은 너무도 상충되는 보도를 하고 있으며, 일명 “선지자”라고 불리는 자들은 온갖 종류의 혼동스러운 경고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수백 명의 근심 어린 그리스도인들이 제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것은 플로리다 전 지역이 쓰나미로 잠길 것이라는 예언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예상되었던 그 날짜에 “휴가”라는 명목으로 플로리다를 빠져나갔습니다. 그 예언이 맞을 경우를 대비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플로리다는 아직도 버젓이 존재합니다!

누구도 하나님께서 언제, 어떻게, 또는 어디서 심판을 내릴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 시간과 때는 모두 그분 손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예언하는 데에 있어서 특정한 날짜나 이름, 또는 지명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특별히 저를 다루셨고, 제가 그것에 불순종할 때에는 진실한 예언이 아닌 인간적 예측이 나오게 되는 결과를 자처했습니다. 모든 진실한 예언은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반드시 희망과 위로를 주는 것이어야만 합니다.

당신은 어디에 사십니까? 지진대 안에, 아니면 단층선 가까이요? 당신은 갈수록 불안정해지며 무질서하게 개발만 되어가는 교외에 살고 계십니까? 비축해 놓은 식량이 없습니까? 인플레이션에 대처할 금이나 주화도 없습니까? 경제 붕괴가 올 경우의 비상 대책이 아무것도 없습니까? 당신이 직장을 잃게 되면 먹고살 것이 없습니까? 주위 사람들이 그들이 준비해 놓은 미래 계획을 과시할 때 당신은 소외감을 느낍니까?

공포에 떨지 마십시오! 당신이 우리 주님 보호하심의 언약을 믿는다면 당신은 모든 필요를 소유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에게는 생존에 대한 철통과도 같은 굳은 계약이 있습니다. 제가 예수님의 말씀을 더욱 읽을수록, 주님께서 모든 상황 가운데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시리라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뢰를 우리로부터 요구하심을 더욱 절실히 믿게 됩니다.

제가 드리는 권면은, 잠자코 계시면서 성경 말씀과 상반되는 경고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혼란의 창시자가 아니라, 화평의 창시자이심이라.” (고린도전서 14:33)

“너는 갑작스러운 두려움이나 악인의 멸망이 닥칠 때 두려워하지 말지니, 이는 주께서 너의 신뢰가 되시어 네 발이 넘어지지 않게 지켜 주실 것임이라." (잠언 3:25-26) 

2013년 9월 19일 목요일

엘리야의 영과 능력

구 약은 말라기의 이 놀라운 예언으로 끝을 맺습니다. “보라, 내가 주의 크고 무서운 날이 오기 전에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들의 마음을 자식들에게로, 자식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들에게로 돌이켜, 내가 와서 땅을 저주로 치지 않게 하리라.” (말라기 4:5-6)

이 예언은 세례 요한의 사역에서 놀랍게 성취되었습니다. 한 천사가 스가랴에게 나타나 그의 아들 요한이 이스라엘의 많은 백성을 주님께로 돌이키게 할 것이며, “엘리야의 영과 능력을 가지고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들의 마음을 자식들에게로, 불순종한 자들을 의인들의 지혜로 돌아오게 하며, 주를 위하여 마련해 놓은 백성들을 예비시키리라”고 예언했습니다. (누가복음 1:17)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에 대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너희가 그 사실을 받을 의향만 있다면, 오기로 약속된 엘리야가 바로 그 사람이니라.” (마태복음 11:14)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15절) 저는 예수님께서, 예언 그대로 엘리야의 영과 능력으로 오는 요한의 영적 중요성에 대해 제자들이 깨닫기를 원하셨다고 믿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죽었다가 살아난 엘리야라는 것을 단호히 부인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그에게 “네가 엘리야냐?”고 노골적으로 물었을 때, 요한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아니라… 나는 선지자 이사야가 말한 것처럼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음성이라.” (요한복음 1:21-2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영적 눈과 귀를 가진 자만이 세례 요한의 사역과 엘리야 선지자의 사역이 같은 형태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요한은 엘리야가 그랬던 것처럼, 거룩의 곧고 좁은 길로 갈 수 있도록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해 보내진 의를 부르짖는 사자였습니다.

엘리야에게 임했던 것과 같은, 두려워할 줄 모르는 영과 능력의 기름부음을 받은 요한은, 불순종과 탐욕, 그리고 쾌락을 추구하는 유대인들의 죄에 대해 큰 목소리로 규탄했습니다. 곧 오실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준비시키기 위해 이 용감한 진리의 사자가 불현듯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 광야의 선지자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도록 보내심 받았고, 그것이 바로 가장 진실된 의미의 회개입니다. 요한은 사람들에게, 죄를 공공연히 자백하며, 회개와 회복, 정결한 마음, 공의, 그리고 거룩의 실제적 삶을 살아야 함을 외쳤습니다.

저는 말라기 선지자가, 구약의 다른 선지자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재림 바로 전에 등장하게 되는 거룩한 자들의 군단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엘리야와 세례 요한에게 임했던 동일한 영과 권능으로 사역하게 될 것입니다.

이 마지막 때에 나타나는 믿음의 군단은 이사야의 이 예언에 주목할 것입니다.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고 네 목소리를 나팔소리 같이 높여서 내 백성에게 그들의 범죄를, 야곱의 집에게 그들의 죄들을 보여주라.” (이사야 58:1) 

2013년 9월 18일 수요일

나로 주를 알게 하시고

하 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혹독한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너와 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온 백성은 여기를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말하기를 ‘네 씨에게 내가 그것을 주리라’고 한 땅으로 올라가라…. 나는 네 가운데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목이 곧은 백성이라, 혹 내가 도중에서 너를 진멸할까 함이라, 하시니라.” (출애굽기 33:1-3)

하나님의 백성은 탐욕과 우상숭배로 인해 완전히 통제 불능이었습니다. (출애굽기 32:35) 황금은 그들의 신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춤추고 놀며 그들의 욕정대로 따르기를 원했습니다. 오직 레위 자손들만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위해 서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그들을 떠나셨다는 참혹한 계시의 말씀이 따랐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진멸하지 않도록 떠나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그들의 유업을 주장하기 위해 움직이도록 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지요. “내가 약속한 것을 너희에게 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속한 모든 권리와 그분의 보호 하심을 그들이 주장할 수는 있었지만, 그분의 임재는 주장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언약으로 얻은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종교적 행위를 추구하며, 원수를 대항하는 천사의 도움을 자랑하면서도, 거룩함과 경탄이 없으며, 확연한 그리스도의 임재를 상실한 슬픈 광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올라가라고 명하시면서도, 그들과 함께 가지 않으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더 참담한 일이 있을까요? (출애굽기 33:3)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이라, 내가 잠깐이라도 너희 가운데 있게 되면 너희를 진멸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33:5 참조)

모세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보다 더 위대한 것을 원했습니다. 그는 주님의 임재를 알고 경험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를 지명하여 알며 또한 너는 내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느니라’ 하셨사온즉. 그러므로 이제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가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으면, 이제 주의 길을 내게 보이시어 나로 주를 알게 하시고..” (출애굽기 33:12-13)

이 귀한 하나님의 종이 그 세대의 죄를 알고 있었던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의 얼굴에 그처럼 놀라운 영광의 광채가 있었던 것도 놀랄 일이 아닙니다. 그는 오직 주님을 알기만을 원했습니다. 그가 원했던 유일한 열망은 주님의 임재에 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같은 마음이었으며 그의 심장 또한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오, 나로 주를 알게 하시옵소서!” (빌립보서 3:10 참조) 

2013년 9월 17일 화요일

정결의 부흥

성 경의 모든 선지자는 마지막 때를 예견했으며, 하나님 말씀에 대한 놀라운 명철을 갖게 되는 구별되고 거룩한 자들이 모여질 것을 예언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미래의 일들에 대해 들었지만 “깨닫지 못했습니다.” (다니엘 12:8) 그러나 그는 정결하게 씻겨져 나오며, 시험과 연단을 통과한 남은 자들에게 명철이 임하는 때가 도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들에 대한 지혜와 분별이 뛰어난 마지막 때의 군단이 나오는 것을 본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정결하게 되고 희게 되고 단련을 받을 터이나, 사악한 자들은 사악하게 행하리니 사악한 자들 중에서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지혜로운 자들은 깨달으리라." (다니엘 12:10)

이사야는 타락한 이스라엘의 영적 무지에 대해 이렇게 한탄했습니다. “그들이 환상에서 잘못을 범하며, 재판에서 걸려 넘어지나니...” (이사야 28:7) 한때는 그들에게 있었던 작은 분별력조차 그들의 탐욕으로 인해 훼손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도래할 그 날에 대해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 날에 귀먹은 자들이 그 책의 말씀들을 듣고, 눈먼 자들의 눈이 어둡고 캄캄한 데서 보며... 그들이 내 이름을 거룩히 구별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영으로 잘못하던 자들도 깨닫게 되고, 불평하던 자들도 교훈을 배우리라.” (이사야 29:18, 23-24)

저는 많은 설교자가 부르짖고 있는 마지막 때의 부흥은 곧 정결의 부흥일 거라고 믿습니다. 만일 성령의 일이 죄에 대해, 의에 대해 그리고 심판에 대해, 세상을 다루는 것이라면, 위대한 성령의 부어주심이 올 때는 분명 죄의 깨달음이 강력한 물결처럼 일어날 것이며, 그때에는 경솔하고 방종한 교회가 흔들리며 그들의 죄가 노출될 것입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표적과 기사를 추구하며 성공과 번영을 가르치는 자들에게 몰려드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향한 굶주림으로 불타오르는 “광야의 백성들”을 불러내고 계십니다.

바로 지금 영광스러운 군단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하셨고, 그들은 모든 위선과 수치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몰입되었고, 그분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지를 그들 스스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정의로운 옷을 입고,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복했으며, 홀로 걷기로 작정하고는, 언제든 그분께 온전히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뜻을 듣고 이해하는 데에 그들 자신을 헌신했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눈으로 보기 시작했고, 만물의 종말이 임박했다는 명철을 갖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들에게 주님의 말씀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곧 오십니다! 회개하십시오. 주님의 날이 임박했습니다! 더러운 온갖 죄를 버리고 하늘의 것에 마음을 두십시오! 인간적 기업과 야망에 참여하지 마십시오.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만나기 위해 나아가십시오.” 그들의 외침은 더욱 크고 명확하게 선포되고 있습니다! 

2013년 9월 16일 월요일

부어져 내리는 은혜 by Gary Wilkerson

그 리스도 안에서의 우리의 삶은 은혜로 시작해서, 은혜로 지속되어, 은혜로 끝을 맺을 것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에베소서 2:8-9)

이 진리를 우리가 깨닫게 되면, 우리의 삶은 속박 대신 자유로, 낙심 대신 기쁨으로, 두려움 대신 즐거움으로 대치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임재 안에 거하는 시간이 의무라기보다는 기쁜 선물과도 같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더 이상 그분의 종이 아니고 친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 중 단 하나도 우리의 의무를 무효화시키는 것은 없습니다. 물론 자명종을 맞춰놓고 일어나서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은혜의 기름부으심 없이 하려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리고 은혜 없이 성경을 읽는다는 것 또한 위험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계시와 권능 대신 비평과 두려움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무력함이 드러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이지요. 그렇지 않고서는 절대 우리가 그분의 능력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당신의 책임그룹을 포기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또한, 당신의 헌신된 기도생활과 성경공부 모임을 포기하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단지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당신 삶에 충만히 역사하는 데에 걸림돌만 되지 않는 거라면, 그 좋은 규칙들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중 일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아무도 다시는 기도하지 않을 것이며, 아무도 목적 달성을 위해 자신을 정련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기름 부음이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당신의 제안을 따른다면, 누구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저 주님 보좌로부터 우리를 향해 은혜가 부어져 내린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그것이 우리로부터 그분을 향해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은혜는 세상을 우리의 삶과 증거로 끌어당기게 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 그분의 은혜가 우리에게 부어져 내리는 것을 사람들이 볼 때, 그들은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의 승리가 우리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 당신 삶이 그렇게 되도록 하세요! 

2013년 9월 13일 금요일

그분은 모든 상황을 보고 계십니다

수 많은 그리스도인이 육체적 아픔이나 심적 고통, 또는 재정적 난관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힘든 문제들을 맞으며 매일 아침잠에서 깨어납니다. 그 중 많은 자가 그러한 문제들로 인해 너무도 괴로워하며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을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차. 더 이상 이런 문제들과 싸울 힘이 내겐 없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 사역팀은 극도로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는 성도들로부터 매일 많은 편지를 받습니다. 한 경건한 여성도가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저는 결혼한 지 35년이 넘었고, 지금은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 가정은 불륜에 빠진 제 남편으로 인해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그는 성령 충만한 자였고 주님으로부터 쓰임을 받아왔으나, 지금은 인생 느지막에 육욕으로 가득한 한심한 바람둥이가 되었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그는 제게 있는 모든 사랑을 쫓아내 버렸고, 지금 저는 너무도 불행합니다. 더 이상은 제가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요.”

우리 천부께서는 우리 삶의 모든 상황을 보고 계시며, 우리의 모든 시련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성경 말씀을 통해 반복해서 우리에게 명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우리는 문제가 우리를 짓밟고 파멸시킬 거라고 믿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의 방패이시기 때문입니다.

“오 이스라엘아, 너는 행복하도다. 오 주에 의해 구원받은 백성이여, 누가 너와 같으리오, 그분은 네 도움의 방패시며 네 위엄의 칼이시로다! 네 원수들이 네게 거짓말쟁이로 드러날 것이요, 너는 그들의 높은 곳들을 밟으리라.” (신명기 33:29)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너를 저버렸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나는 네게 화도 나지 않았고, 네 원수를 혼자 대항해 싸우라고 너를 떠난 것도 아니다. 그건 모두 사탄의 거짓말이다!”

어떤 위기를 직면하든, 어떤 엄청난 고난이 눈앞에 있든, 우리의 승리는 확정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기는 자들보다 더 나으니라.” (로마서 8:37)

이 말씀은 우리가 가만히 앉아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원수들을 물리쳐 주시기를 기대하라는 뜻일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승리를 선포하셨어도, 우리가 해야 할 몫은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원수와 싸우기 위해 창을 들어야만 합니다. 여기서 한가지 다른 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신다는 약속을 믿으며 우리가 싸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린도전서 15:57)

성령께서는 우리 믿음에 반응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부를 때, 그분은 육신의 행위를 부끄럽게 만드는 초자연적 능력을 갖고 우리에게 오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몫은 먼저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대적해 오는 악의 세력을 막아주실 것을 믿으며 전진하는 것입니다. 

2013년 9월 12일 목요일

무한한 공급

사 도 바울은 하나님께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주님, 이 육신의 가시로부터 저를 구원해 주시옵소서!”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충분하도다.” (고린도후서 12:9)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아, 너는 이 가시와 함께 살아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네 고통 가운데 필요한 모든 은혜를 공급해 줄 것이다. 너를 위한 나의 공급은 무한하단다!”

주님께서는 우리 환경에 필요한 그 어떤 해결책보다도, 그분의 은혜가 더 강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기를 원하십니다. 왜일까요? 그분의 은혜는 그분이 누군가에 대한 온전한 계시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거룩 안에서 자비와 긍휼의 은혜로 온전히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천부께서는 우리의 모든 고통을 낱낱이 보고 계시며,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놀라운 약속을 해주십니다.
  • “그러나 의인들의 구원은 주께 있으니, 그는 고난의 때에 그들의 힘이시라.” (시편 37:39) 
  • “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기를, 주는 나를 돕는 분이시니, 사람이 내게 무엇을 하든지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라.” (히브리서 13:5-6) 
  •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네 하나님이라. 내가 너를 강건하게 하리라. 정녕, 내가 너를 도우리라. 정녕, 내가 내 의의 오른손으로 너를 높이리라.” (이사야 41:10) 
  • “보라, 네게 노했던 모든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하리라. 그들은 하찮은 것같이 될 것이요, 너와 싸우는 자들은 망하리라. 네가 너와 싸우는 그들을 찾을 것이나 그들을 만나지 못하리라. 너를 대적하여 전쟁하는 그들은 하찮은 것같이 될 것이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되리라." (이사야 41:11-12) 
  • "이는 나 주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말하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라.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이 물을 구하는데, 물이 없어서 그들의 혀가 갈증으로 덮이면 나 주가 그들을 들을 것이며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 41:13, 17) 
당신에게 어떤 상황이나 위험이 닥친다 해도, 또는 당신이 어떤 재난을 만난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모두 극복해낼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해도, 그분의 은혜와 성령의 위로하심은 충만합니다! 

2013년 9월 11일 수요일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그 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로 남겨 두지 아니하고” (요한복음 14:18) 여기서 사용된 단어 comfortless가 헬라어로는 “유족, 아버지가 없는”이라는 의미의 ‘고아들'을 뜻합니다.

그렇게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그 후에 느꼈던 감정을 당신도 때로는 느낄 것입니다. 당신은 완전히 홀로 되었고, 하나님께서도 당신을 위해 아무것도 안 하고 계신다는 감정 말입니다. 당신은 그분이 돌보신다는 아무런 증거도 보지 못하고 있으며, 사탄은 하나님의 영이 당신을 오랫동안 떠나버렸다고 거짓말합니다.

당신이 잊어서는 안 되는 한 가지 놀라운 기적은, 그분을 따르는 모든 성도에게 주신 예수님의 언약입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로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를 위해 값을 치렀으며 너는 나의 것이다!”

당신이 어떤 고난을 겪고 있든, 당신의 천부께서는 당신을 버린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보신 적이 없을뿐더러 절대 그렇게 하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의 영원하시며 결코 깨질 수 없는 언약의 말씀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시온이 말하기를, ‘주께서 나를 버리셨고, 내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느니라. 여인이 자기의 젖 먹는 아이를 잊을 수 있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동정하지 않겠느냐? 정녕, 그들은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으니 너의 성벽이 계속해서 내 앞에 있느니라.” (이사야 49:14-16)

이 구절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네 삶의 보호를 위한 모든 필요는 항상 내 눈앞에 있다. 내 초자연적 성벽으로 너를 감싸 안전하게 지키는 것에 대해 내가 무관심한 적이 단 한 순간도 없단다. 내 보호의 성벽은 항상 너를 둘러싸고 있다!”

저는 자녀를 버리고 떠난 어머니들에 대해 알고 있는데, 그 중에는 목사 아내들도 있었습니다. 한 목사님이 저희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저는 25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제 아내가 인터넷을 통해 어떤 남자를 만나 저를 떠났습니다. 그녀는 우리 아이들과 저를 내버려둔 채 그냥 떠나버렸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고 그녀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원하고 있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너무도 깊은 상처를 받아 괴로움으로 잠도 잘 수 없습니다. 제가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 참으로 막막합니다.”

그분을 향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사랑하는 아내가 너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너를 감싸고 있는 내 성벽은 언제나 견고하단다!”

그분은 우리를 고아로 남겨두지 않으실 겁니다!

2013년 9월 10일 화요일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셨음을 기억하세요

모 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명했습니다. “너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주 너의 하나님께서 파라오와 온 이집트에 하신 일을 잘 기억할 것이며,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너를 인도하여 내실 때 네 눈으로 보았던 큰 시험들과 표적들과 이적들과 능하신 손과 펴신 팔을 기억하라. 주 너의 하나님께서는 네가 두려워하는 모든 민족에게도 그렇게 하실 것이니라.” (신명기 7:18-19)

이 얼마나 강력한 메시지인지요!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상기시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너희가 어떤 원수를 대적해야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승리를 약속하셨다. 그분은 바로 왕으로부터 너희 조상을 구원하신 하나님이시며, 지금도 너희를 위해 그처럼 행하실 것이다!”

“너는 네가 이집트 땅에서 나왔던 날을 평생 동안 기억할 것이니라.” (신명기 16:3) “너는 네가 이집트 땅에서 노예였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들을 지켜 행할지니라.” (12절)

백성을 향한 모세의 외침은 이러했습니다. “과거를 기억하라! 만일 너희가 이곳 광야에서 고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너희가 이집트에서 겪었던 모든 환란을 생각하라. 너희 모두 노예살이 인생이 어떠했는지 잊지 마라. 그리고 그 모든 환란으로부터 너희를 구출해내기 위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을 기억하라.

이사야 선지자 또한 두려움으로 가득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저버리셨다고 생각했지만, 이사야는 그들에게 확신을 주었습니다:

“네가 누구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들을 놓으신 주, 곧 너를 만든 이를 잊어버리고 마치 압제자가 멸하려고 준비해 둔 것처럼 압제자의 분노 때문에 날마다 계속해서 두려워하느냐? 압제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 (이사야 51:12-13)

하나님께서는 이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너희가 두려워하는 이유는 내가 누구인지 너희가 잊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당면한 문제만 바라보며, 내 권능의 손이 여전히 너희 삶에 임해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 삶에 베풀어주신 기적들에 대해 기억하는 것조차 힘들어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내 인생은 길고도 힘겨운 악몽과도 같아. 그리고 내가 경험해본 적도 없는 하나님의 기적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 경험이 믿음을 유발시킬 수는 있지만, 그것이 우리 믿음의 기초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은 항상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이미 이루어놓으신 업적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의 그분의 승리를 기억해야 하며 믿음으로 그것을 견고히 붙들어야 합니다. 오직 주님만이 그분의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의 권능을 입혀주십니다. 

2013년 9월 9일 월요일

하나님 은혜로 말미암은 순종 by Gary Wilkerson

하 나님께서 기도에 대해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살펴봅시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이사야 55:6) 성경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로마서 3:11)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데도 찾지 않는다고 기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기준으로 보는 완벽과 그 완벽에 도달하기에는 우리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계속해서 깨닫게 해 주십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우리가 바리새인처럼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는 오랫동안 기도합니다. 그들은 거룩한 행위처럼 보이는 규율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겉으로는 정결해 보이나, 속은 더럽고 부패했다고 책망하십니다. "너희 바리새인들은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 속은 탐욕과 사악함으로 가득하도다." (누가복음 11:39)

하나님께서는 우리 스스로 결코 성취할 수 없는 소중한 일들을 우리 안에서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바울은 이것에 대해 짧은 문구로 설명했습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누가 너희를 꾀더냐?...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갈라디아서 3:1-3)

우리가 행하는 순종의 일들이 하나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 아닐 때, 우리는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외관상으로는 우리가 성취하고 있는 듯한 일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다가도, 실패하게 되면 거의 자포자기 상태까지 가서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짐은 너무 무거워. 나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정확하게도, 그것이 바로 핵심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너무도 무거운 짐이라는 사실이 맞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마태복음 11:28-30) 

2013년 9월 6일 금요일

가만히 있을지어다

당신은 끊임없이 괴롭히는 욕정이나 습성으로 인한 고뇌로 매일 잠에서 깨어납니까? 당신은 “이 끔찍한 것이 아직도 내 안에 살아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고통 가운데 살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당신 마음속에 남아있는 죄에 대해 모두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당신이 얼마나 그것을 혐오하고 있으며 그것으로 인해 애통하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당신이 이 말씀을 듣기를 원하십니다. “주는 나의 힘이시오, 나의 방패시라.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받았도다.” (시편 28:7)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악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시편 23:4) 만일 사탄이 다윗을 두렵게만 할 수 있었다면 그가 승리를 얻는데 문제가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마귀는 당신을 대항해서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당신이 절대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애통해하며 고통받고 있는 모든 성도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너희가 겪는 모든 고난을 내가 잘 알고 있단다. 그리고 나는 사탄이 너를 파멸시키려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제가 무엇을 해야 하나요? 어떻게 해야 이 모든 환란 가운데 주님의 평강과 안식을 얻을 수가 있습니까?"

그에 대한 답은 모세와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들 앞에는 바다가 있었고, 그들 뒤에서는 적이 따라오는 진퇴양난의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명하셨습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주께서 오늘 너희에게 보여 주실 주의 구원을 보라…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애굽기 14:13-14)

이 마지막 절에서 “너의 평강을 붙들지어다. (가만히 있을지어다.)”는 과연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모든 걱정근심과 스스로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을 내려놓고, 당신을 위해 길을 열어주실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또한 이스라엘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라.” (15절) 고 말씀하셨듯이, 당신을 향한 인도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여호수아 역시 막강한 적들을 대면해야 했습니다. 그는 훈련되지 않고 지쳐있는 그의 군단과 밤새도록 기브온으로 행진해야만 했고, 거기서 그들은 어마어마한 군대를 만났습니다. 여호수아가 전쟁터를 내려다보았을 때, 그가 본 것은 강력한 전차들과 잘 훈련된 보병들로 꽉 차있는 골짜기였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때 주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들을 두려워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그들 중에는 너를 당할 자가 없으리라’ 하신지라.” (여호수아 10:8)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가 전쟁터로 나가기도 전에 승리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승리는 이미 너희 것이다! 이 적군 중 단 한 병사도 살아남을 자가 없을 것이다. 자, 나가 싸우라. 내가 너희에게 약속해준 승리를 갖고 말이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메시지입니다! 승리는 이미 우리에게 쥐어져 있습니다. 

2013년 9월 5일 목요일

약속으로 말미암은 상속자들

“너 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신명기 7:18)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그들”은 약속의 땅에서 그들이 대면해야 했던 강력하며 잘 무장된 이방 족속들을 상징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의“그들”은 우리가 삶 가운데서 직면해야 하는 모든 문제와 곤경, 그리고 압도적인 어려움을 말합니다.

왜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까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어떤 설명도 필요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전능하시며 충만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마귀의 견고한 진을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끊임없이 우리 삶에 던져지는 모든 올가미, 시험, 그리고 유혹에 대해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에게 명하십니다. “그 어느 것도 두려워하지 말라!”

아브라함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채, 막강한 왕들에 둘러싸여 이국 땅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들려진 하나님의 첫 번째 말씀은 이것이었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세기 15:1)

이 마지막 구절의 뜻은 이러합니다. “내가 너를 둘러싼 성벽이 되어 줄 것이고, 너의 보호자, 너의 변호인이 될 것이다.” 짧게 말하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네가 어려움은 겪게 될 것이지만, 내가 그 모든 것들로부터 너를 보호할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응답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주를 믿으니,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더라.” (6절)

이 똑같은 말씀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도 주어졌습니다. 이삭 또한 그를 미워하고 괴롭히며, 그들의 땅에서 그를 쫓아내기 원하는 필리스티아인들에게 둘러싸인 채, 적대적인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성경은 이삭이 물의 공급원인 우물을 팔 때마다, 필리스티아인들이 그것을 다시 채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필리스티아인들이 막고 흙으로 채웠더라.” (26:15)

이삭은 가는 곳마다 같은 곤란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는 한 우물을 “다툼”이라는 뜻의 “에섹”이라고 부르기까지 했습니다. (26:20 참조) 분명 이삭은 그의 삶에서 오직 다툼만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는 분명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내가 어떻게 항상 내 가족을 먹이며 내 가축에게 물을 마시울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필리스티아인들이 아무 때나 우리를 약탈할 수도 있는데, 내 자녀를 어떻게 두려움 없이, 그리고 아무 문제 없이 키울 수 있을까? 하나님, 왜 저를 이곳에 두셨나요? 제가 어떻게 생존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 의심의 구름이 이삭을 덮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들려주셨던 똑같은 말씀을 그에게 들려주셨습니다.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 두려워 말라. 네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며 너에게 복을 주고 네 씨를 번성케 하리라.” (24절)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녀이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게 주셨던 똑같은 언약을 우리에게도 주십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너희는 아브라함의 씨요, 약속에 따른 상속자들이니라.” (갈라디아서 3:29) 

2013년 9월 4일 수요일

주를 바라보십시오

마귀는 성도들로 하여금 그들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하게 하는 속임수를 갖고 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르짖음을 듣지 않으시며 우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방관하신다고 우리가 믿기를 원합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 교회 안에서의 가장 큰 비극은, 지극히 소수의 성도만이 기도의 능력과 영향력에 대해 믿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성모독을 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지만, 지금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로부터 이러한 불평의 소리가 들려 옵니다. “저는 기도하지만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열심히 기도했으나 어떤 결과도 얻지 못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단지 상황이 호전되고 있다는 실마리라도 보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바뀐 것 없이 상황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만 합니까?” 그들은 더 이상 기도 골방을 찾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도로부터 잉태되었던 그들의 간구가 보좌에서 무산되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한편, 어떤 성도들은 오직 다니엘이나 다윗, 그리고 엘리야와 같은 특별한 기름 부으심 받은 자들만이 그들의 기도를 하나님께 상달 되게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많은 하나님의 성도들이 이러한 생각들로 갈등하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듣고 계신다면, 내가 열심히 기도하는데도 왜 기도응답의 증거가 그토록 미약할까?” 아주 오랫동안 기도해왔으나 아직 응답 받지 못한 특정 기도제목이 있습니까? 많은 해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기다리며 희망은 품고 있지만, 아직도 응답의 확신이 없으십니까?

욥이 그랬듯이, 우리의 필요와 간구에 대해 무심하시며 상관치 않으신다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내가 주께 부르짖으나, 주께서는 내게 듣지 아니하시며, 내가 일어서도 유념치 아니하시는도다.” (욥기 30:20)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욥의 믿음은 자신의 고난으로 인해 오염되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잊으셨다고 비난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욥을 호되게 꾸짖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기도가 왜 무산되었는지의 원인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정확히 진단해보아야 할 때입니다. 실은 우리 자신의 행위에 책임이 있었는데도, 하나님을 책망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를 바라고 그분의 길의 지키라. 그리하면 그분께서 너를 높여 땅을 상속받게 하실 것이요.” (시편 37:34) 

2013년 9월 3일 화요일

경솔히 다룰 문제가 아닙니다!

유 다 왕 여호사밧은 사악한 이스라엘 왕 아합과 함께 있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한 선지자를 보내시어 그에게 강력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그를 맞이하러 나가 여호사밧 왕에게 말하기를, ‘왕께서 불경건한 자들을 도와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함이 마땅하나이까? 그러므로 진노가 주께로부터 왕에게 임하나이다.’” (역대하 19:2)

하나님께서는 여호사밧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네가 얼마나 위험한 일을 하고 있으며, 그 일에 얼마나 끔찍한 결과가 따를지 너는 모르고 있다. 너는 나를 대적하는 자와 친분 맺는 일을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합은 나의 원수, 즉 우상숭배자인데, 너는 그와 친구가 되었다. 너는 그의 악한 말을 청종했고 그의 불결함에 합류했다. 그런데도 여호사밧, 너는 그 어느 것에도 저항하지 않았구나. 나는 이 일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이 시점에서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나는 아합이 사악한 자였다는 것은 잘 알고 있어. 그러나 내 친구들을 생각해볼 때, 그들을 하나님의 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말도 안 돼." 그러나 여러분, 성경에 있는 이 구절들을 상고해 보십시오:

•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누가복음 11:23) 당신 친구는 매사에 주님 편을 택합니까?
• “거역함은 마법 하는 죄와 같고.” (사무엘상 15:23) 당신 친구의 행사가 반역으로 가득합니까?
• “의인을 저주하는 자는… 주께 가증하니라.” (잠언 17:15) 당신 친구는 경건한 자들을 험담합니까?

이것은 경솔히 다룰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 친구들은 하나님께 중대한 관심사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위에는 심각한 결과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네 입을 악에게 주고 네 혀는 속임수를 발하는도다. 네가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비방하는도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너희여, 이것을 잘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잘게 찢으리니.” (시편 50:19-22)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돌이켜 주를 찾고, 온 유다에 금식을 선포하니라.” (역대하 20:3) 왕은 자신을 낮추고 회개했습니다. “여호사밧이 그의 머리를 땅에 대고 절하고, 온 유대와 예루살렘 거민도 주 앞에 엎드려 주를 경배하였으며.” (18절)

하나님께서는 모압 족속과의 전투에서 유다에게 전적인 승리를 안겨주심으로써 여호사밧의 통회함에 응답하셨습니다. 마침내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리하여 여호사밧의 나라가 평온해졌으니, 이는 그의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변의 안식을 주셨음이라.” (30절) 

2013년 9월 2일 월요일

내게로 오라 by Gary Wilkerson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 예수님께서는 단지 우리를 초청하는 데에 그치지 않으시고, 그분께 나아오라고 요구하며 명하고 계십니다. 오직 그분만이 우리 영혼에 필요한 쉼을 공급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 자신의 힘으로 "그분께 나아가는" 일이 가능할까요?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며." (요한복음 6:44)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왜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명하실까요?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꼭 필요한,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사명이 주워졌을 때, 우리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주님!" 하고 대답하며 의기양양하게 나아가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시작하기도 전에 문제가 잠재해 있는 것입니다. 사실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어떤 명령이 주어질 때는 우리의 무력함도 함께 드러내집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향한 그분의 뜻과 계명을 밝히실 때에도, 우리 자신의 힘만 가지고는 그것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해주십니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께서는 실행하기 불가능한 모든 명령을 주실 때 언약도 함께 주십니다. 그분은 먼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며."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그를 마지막 날에 내가 일으키리라." (요한복음 6:44)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분께 이끄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부활의 생명으로 살려내실 것입니다. 그분의 능력은 우리가 그분과의 새로운 언약 안에 거하는 것을 가능케 해줍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부활의 생명을 가질 능력이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그분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이처럼, 우리를 구원하는 은혜의 능력은, 우리를 또한 은혜로 보존합니다. "진리를 행하는 자는 빛으로 나아오나니, 이것은 자기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나타내려 함이라." (요한복음 3:21) 저는 이 구절 마지막 부분의 킹제임스 번역을 너무도 좋아합니다. "이것은 자기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나타내려 함이라." 그 의미는 "하나님 안에서 이미 해결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일을 빚어가고 계십니다! 모든 명령에 언약이 따르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의 무능함이 드러내질 때, 그 모든 것을 우리 안에서 성취하기 위한 그분의 능력과 의지를 드러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