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9일 금요일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바를 그대로 행하십니다

당신은 우리 죄를 부드럽게 드러내는 강력한 설교를 경청하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그 말씀이 당신의 죄를 깨닫도록 허용합니까? 아니면 그것에 대한 애통함 없이 다시금 그 죄로 돌아갑니까?

만일 당신이 애통함 없이 계속해서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훈계하시는 성령의 경고를 거부한다면, 당신은 적그리스도의 이단으로 소집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당신을 은밀하게 그의 “비밀스러운 죄”로 들여놓으며, 기적을 행하는 유망한 적그리스도가 도래할 때, 당신은 그의 거짓말에 휩쓸리게 될 것이고 망상에 내어준바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순종하는 것과 사랑하기를 거부하는, 타협하는 성도들에게 바울이 무엇을 말하는지 들어보십시오: “이것은 진리를 믿지 아니하고 불의를 기뻐한 그들 모두가 정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데살로니가후서 2:12)

다음은 하나님의 진리를 믿지 아니하고 행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불길한 결과들입니다:
  1. 죄의 속임수에 의해 마음이 강퍅해진다. 
  2. 죄의 형벌에 대한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사탄은 강퍅해진 마음을 조종하여 죄를 정당화시킨다. 
  3. 성도는 죄의 대가가 없으며 심판의 날도 없을 것이라는 거짓말에 눈이 멀게 되며, 그로 인해 그의 육적 쾌락으로부터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될 것이다. 
  4. 성도는 마귀 교리의 미끼로 전락해서, 악은 선이며 선은 악이라는 사고를 갖게 될 것이다. 
  5. 결국, 그는 그리스도와 그의 진리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나가서 누가 적그리스도인지도 분간할 수 없게 되며, 결국에는 그를 하나님으로 경배하고 섬기게 된다. 
  6. 심판의 날에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중 누구도 이렇게 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십자가의 권능을 통해 우리의 모든 망상을 없애주시고, 우리가 죄를 이기고 승리하도록 도우신다는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분께서 요청하시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죄를 향해 전쟁을 선포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 습관과 결탁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것과 동행하는 것을 거부한다. 아버지, 당신의 성령으로 저를 구원하소서.” 그분께서 이 기도를 들으실 때 그분은 하늘로부터 성령의 권능과 영광을 보내주실 것이고 마귀는 실패할 것입니다!

그분 말씀의 위대한 경외심을 당신에게 심어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그분께 성경 말씀을 잘 읽을 수 있도록 단련 받게끔 도와달라고 요청하십시오. 그리고 성경 말씀을 읽고 그것을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바를 그대로 행하신다는 사실을 믿도록 도와달라고 성령께 요청하십시요!

2013년 11월 28일 목요일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주시는 말씀

성경 전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히 알게 하십니다. 우리는 사울 왕의 생애에서 한 좋은 예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사울에게 명백하고도 구체적인 지시를 하셨습니다: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진멸하고 남기지 말며, 남자와 여자와 어린아이와 젖먹이와 소와 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사무엘상 15:3)

사울이 주님께서 내린 이 명령에 순종했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울이 아말렉 족속을 치고… 아말렉 족속의 왕 아각을 산 채로 잡으며… 그러나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또 양과 소와 살진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과 어린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그것들을 진멸하려 하지 아니하고...” (7~9절)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아주 확실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전쟁터로 나간 후, 주님 명령의 일부만 순종했습니다. 모든 자와 모든 것을 진멸하는 대신, 그는 아각 왕을 살려주었고 전리품까지 가져왔습니다.

사무엘은 이로 인해 비탄에 빠졌습니다. 그는 사울에게 말했습니다. “주께서 왕을 보내 이동하게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가서 죄인인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되 그들이 소멸되기까지 그들과 싸우라, 하셨나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왕이 주의 음성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노략물에만 날아가 주의 눈앞에서 악한 일을 행하였나이까?” (18~19절)

이 시점에서 성경은 우리에게 통탄할 만큼 냉혹한 말을 합니다. “그때에 주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사울을 왕으로 삼은 것으로 인해 슬퍼하노니, 그가 나를 따르는 것에서 돌이켜 내 명령을 수행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라.” (10~11절)

이 말씀이 당신의 삶을 묘사합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께 분명히 나쁜 습관을 해결하라고 말씀하셨으나 여전히 그것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으면서, 그것을 제거해버리는 것을 거부하고 있습니까? 그분의 영은 지금 이 시간에도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죄가 우리의 교류를 방해하며, 우리 사이에 끼어있다. 네가 그것을 계속하는 한, 나는 더이상 너를 축복할 수 없다. 내 자녀야, 내 영이 너를 도울수 있음을 신뢰해다오.”

사물엘은 사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역하는 것은 마술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불법과 우상 숭배와 같나이다. 왕이 주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그분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23절) 하나님께서는 그의 불순종 때문에 사울을 거부하셨던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가 말씀하신 바는 그대로 행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를 향한 너의 순종에 대해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건성으로 하는 순종이 아닌, 네 온 마음으로 하는 순종을 원한다!”

2013년 11월 27일 수요일

죄와 결탁하다

사악한 자들은 항상 진리가 “결핍”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경멸하고 짓밟으며, 하찮게 여기며 조롱합니다. 최근에 저는 이것에 대한 실례를 뉴욕 포스트지에서 보았는데, 한 기자가 “이제 과학은 믿음을 대치했다.”라고 자신 있게 선포했습니다.

바울이 항상 크게 우려했던 자들은, 진리의 길을 알며, 그리스도 안에서의 그들의 믿음을 고백하면서도 계속해서 죄와 결탁하는 자들입니다. 바울은 불의 가운데서도 진리를 추구하려는 자들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이러한 까닭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수치스런 애정에 내주셨으니…” (로마서 1:25-26)

어떤 자들은 그들의 불순한 쾌락에 속박되어서는, 평강을 얻기 위해 거짓 선생들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정죄 받을 이단 교리들을 몰래 들여와… 많은 사람이 그들의 악독한 길들을 따를 터인즉, 그들로 인해 진리의 길이 비방을 받을 것이요…” (베드로후서 2:1-2)

배교와 적그리스도에 관한 바울의 모든 메시지는, 매우 세속적인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것입니다. 그것은 로마의 우상숭배자들이나 그리스의 이교도들, 또는 알려지지 않은 곳의 이방 족속들을 향한 메시지가 아닙니다. 바울의 이 메시지는 교회를 향한 매우 중요한 것으로서,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직접 읽히도록 기록된 것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바울은 진리를 사랑하고 탐구하며, 진리를 연구하며, 진리에 순종하도록 하나님의 백성을 모든 곳으로부터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본질적으로 이렇게 썼습니다. “진리가 너희 등불이 되게 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지 마라. 성령께 그것을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 그리고 그것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요청해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속임수에 빠지게 될 것이고 마침내는 거짓을 믿게 될 것이다. 사탄은 적그리스도의 이단으로 너희가 발을 들여놓게 할 것이다!”

만일 당신이 이것을 믿지 않는다면, 단순히 성경 말씀을 회상하십시오. 예수님 재림 직전에는 사탄이 너무도 강력한 유혹을 홍수처럼 몰고 와서는, 가능하다면 선택된 자들까지도 속이려 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예수님과 동행했던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이전에는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유혹을 맞게 될 것입니다. 가장 강인한 믿음의 성도조차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하도록 유혹받게 될 것이며, 그분의 거룩한 말씀을 불신하게 될 것입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대언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들과 이적들을 보여, 할 수만 있으면 바로 그 선택받은 자들을 속이리라.” (마태복음 24:24)

2013년 11월 26일 화요일

무법의 영

“불법의 신비가 이미 일하고 있으나…” (데살로니가후서 2:7)

이 구절에서 사도 바울이 사용한 단어 ‘불법’의 헬라어 의미는 문자 그대로 “무법”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신비는 무법 중 하나인데, 그것은 많은 자가 법의 제재를 무시하고 살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무법은 단지 인간의 규율을 향한 반역을 뜻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행정 당국을 거슬리는 행위나 도적질, 또는 강간이나 살인 등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법의 신비는 그보다 더 깊은 의미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에 대한 단호한 부정이자,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거부하는 것이며, 성경 말씀의 규율에 반역하는 것입니다!

이 무법의 영은 오늘날 우리 국가에 만연합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하나님을 추방해버리려는 법률을 제정하려는 저변 세력이며, 사탄이 이브에게 “하나님은 좋은 분이시기 때문에 네가 불순종한다 해도 벌하지 않으실 거야. 너는 네 욕구대로 그 과일을 먹을 수 있고, 그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될 거야!”라는 많은 말로 그녀를 속이기 위해 사용했던, 똑같은 영입니다.

지금도 사탄은 그와 같은 거짓말을 사용해 많은 성도에게 죗값을 치르지 않고 그들의 죄를 추구할 수 있다고 믿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왜곡하며, 그것을 무법의 메시지로 변질시키려는 악귀적 술책입니다. 비참하게도 많은 미지근한 그리스도인들이 그 무법의 영에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바울은 적그리스도가 권력을 잡고 일어날 것인데, 그 이유는 사람들이 그들의 죄로 인해 눈멀게 되고 기만당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권능과 표적들과 거짓 이적들과 불의의 모든 속임수와 함께 멸망하는 자들에게로 오는 것이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데살로니가후서 2:9-10)

사탄은 “하나님은 죄를 벌하지 않으신다!”고 이브를 속였듯이,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교묘하고도 강력한 거짓말을 믿게 함으로써 그들을 기만할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속임수가 “불의의 모든 속임수와 함께 멸망하는 자들에게로 오는 것이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10절) 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이런 까닭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강한 미혹을 보내사, 그들이 거짓말을 믿게 하시리니…” (11절)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거나, 그분의 말씀을 존중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은 강한 미혹으로 인해 무너질 것이다. 처음에는 그들이 자신들의 죄를 간과하고 그것을 정당화시킬 것이다. 그러나 곧 그들은 그것을 합리화시켜줄 은혜의 메시지를 열심히 찾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뜻으로부터 완전히 빗나간 은혜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분의 은혜는 절대로 죄에 대한 허가로 이끌지 않는다. 그분의 은혜는 언제나 우리를 회개로 이끈다.

2013년 11월 25일 월요일

카우보이 부츠 by Gary Wilkerson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고린도후서 9:6)

몇 년 전에 저는 뉴욕 타임스퀘어 교회의 부목사로 섬긴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제가 텍사스에 살았었는데, 그때 텍사스 정품 카우보이 부츠 한 켤레를 샀고 그것은 아주 좋은 부츠였습니다! 한 노숙자가 제 사무실로 들어왔을 때 저는 그 부츠를 신고 있었습니다. 그는 떠돌며 히치하이크로 대륙을 횡단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데, 그의 태도는 매우 불순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대체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군. 당신네 교회들은 다 똑같아. 당신들은 교회건물 사는데 돈만 낭비하는데다가, 목사들은 좋은 차를 몰며 잘살고 있지.”

그리고 그는 저를 내려다보며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 참 멋쟁이구먼. 당신은 그렇게 좋은 카우보이 부츠를 신고 있는데, 나는 다 떨어지고 오래된 캔버스 신발을 신고 있어.”

“이 부츠 맘에 들어요?” 하고 제가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두 번 다시 생각할 필요도 없이, 저는 부츠를 벗어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날 저는 신발을 신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약 육 개월 후, 북 캐롤라이나 그린즈버러에서 목회를 하는 한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게리, 자네가 믿지 못할 일이 생겼네. 지금 여기 내 사무실에 어떤 사람이 앉아있는데, 육 개월 전 자네가 그에게 카우보이 부츠를 줬다고 하네. 그는 자네와 그 교회를 잊을 수 없다고 해. 그는 육 개월 동안 히치하이크를 하며 떠돌아다녔는데, 그가 걸을 때마다 그 부츠를 바라보며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는군.”

그는 제 친구의 교회로 걸어 들어가서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있잖아요, 뉴욕의 어떤 목사가 이 카우보이 부츠를 나한테 줬어요. 내가 타임스퀘어 교회라는 곳에 갔었는데, 거기서 그는 부목사들 중 한 분이었어요.”

제 친구 스티브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그 사람 이름이 게리입니까?”

“예, 맞아요. 그분 이름이 게리였어요.”

제 친구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지난 육 개월 동안 성령께서 당신과 함께하셨네요. 이제 당신의 삶을 그리스도께 드릴 준비가 되셨습니까?”

그가 대답했습니다. “제가 여기 온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제 삶을 예수님께 드리기 위해 이 교회에 왔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권면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이 기근 속에 사는 것처럼 느껴진다 해도 기회를 찾으시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결혼생활에 기근이 왔습니까? 당신의 배우자를 섬기고 사랑하며 축복할 기회를 찾으십시오. 당신 자녀와의 사이에 기근에 있습니까? 분열과 갈등을 겪고 계십니까? 주님의 뜻에 따라 당신의 가정을 사랑하고 섬기며 잘 정돈할 기회를 찾으십시오.
재정 문제로 어려우십니까? 기근 중에서도 주위를 돌아보며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십시오. 그러면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당신 삶에 많은 축복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2013년 11월 23일 토요일

두려움 쫓아내기 by Carter Conlon

사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우리의 타락한 죄성으로부터 그 원천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탄이 천국에서 더이상 예배자의 위치에 서지 못했을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찬양받기를 원했습니다. 그의 마음에 깃든 그 욕망은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만들어 놓으신 영역 밖에서 그가 사고하도록 유도했습니다. 그가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에게 왔을 때—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살며 독립적으로 사고하려는 욕망,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하는—그의 타락한 본성을, 자신 다음으로 인간의 마음속에 심어놓았습니다.

이제 그렇게 인간의 마음속에 심겨진 죄성을 시작으로, 다음 단계는 경배받기를 갈망하는 원초적 욕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타락한 인간은 서로에게 인정받기를 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판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왜 우리의 온 정체성이 갑자기, 우리의 성공과 실패의 여부를 판단하는 다른 사람들의 견해에 좌지우지하게 되었단 말입니까? 실제로, 이렇게 칭송받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많은 사람을 박수갈채와 명성의 영역 안에서 살 수 있는 산업으로 치닫게 했습니다. 그들의 명성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들이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더라도,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에 중독되어, 그렇게 살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고 맙니다.

어느 날 우리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우리가 이전에 알았던 사람이 우리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면 그 얼마나 큰 비극일지 상상해 보십시오. “당신은 진리를 알고 있었어요. 당신은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잖아요!! 내가 무례하게 반응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왜 내게 그걸 말해주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내가 여기 오게 될 거라는 사실과 내 자녀도 이곳에 오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왜 내게 말해주지 않았나요?”

슬프게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변명은 이것 하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호감보다는 당신의 호감을 더 원했어요. 나는 당신이 나를 좋아하기를 원했어요. 나는 당신이 나를 향해 비웃는 것을 원치 않았어요. 그리고 나는 당신으로부터 칭찬받기를 원했어요.” 우리가 하나님의 칭찬보다 인간의 칭찬을 선호하는 것이 얼마나 큰 비극인지요!

사도 바울에 의하면, 사람을 두려워하는 올가미로부터 탈출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인 것을 알며,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1:7 참조)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사람들의 칭찬이나 비평에 의해 얽매이는 것으로부터 피할 능력을 주실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에는 결코 두려움이 없고, 완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요한일서 4:18) 하나님의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낼 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에게로 돌아가서, 우리를 향한 그들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그들을 돕게 만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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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카터 칸론(Carter Conlon) 목사님은, Times Square Church의 창립 목사이신 데이빗 윌커슨(David Wilkerson) 목사님의 초청으로 1994년에 Times Square Church의 부목사로 부임했으며, 그 후 2001년도에는 담임목사로 임명되었습니다. 강인하며 열정적인 지도자로서, 그는 세계 전역에 걸쳐 World Challenge에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의 주된 강사입니다.

2013년 11월 22일 금요일

그리스도 생명의 나타나심을 방해하는 것들

만일 당신의 걸림돌이 야망이라면, 하나님께서는 당신께 엄청난 기회의 문을 열어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 인생에서 가장 크고 야심적인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그것에 발을 들여놓고 이렇게 생각하도록 허락하실 겁니다. “바로 이거야! 마침내 나는 큰 돌파를 얻은 거야.”

그리고 주님은 그 전체가 실패로 끝나는 것을 허락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이렇게 울부짖으며 당신의 망가진 꿈 가운데 서게 될 것입니다. “주님, 저는 이 프로젝트가 당신의 뜻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당신의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당신께 그것에 대해 신실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저를 여기까지 데려오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토록 처참한 실패를 허락하실 수 있습니까?”

당신 프로젝트의 실패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당신 안에서 나타나심을 방해하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당신의 걸림돌은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받는 놀라운 계시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어찌하여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그처럼 신선한 계시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어느 날 당신은, 전에는 결코 알지 못했던 심오한 교리의 새 진리의 계시가 열리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확신은 계속 증가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모든 새로운 계시를 주님과의 동행에서 지속적으로 적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특별한 이유 없이 갑자기, 당신의 영혼은 메마름으로 시달리게 됩니다. 그리고 당신의 기쁨과 확신은 곧 나약함과 무용의 감정으로 무너져내립니다. 설명할 수 없는 절망감이 당신의 영혼을 채우며, 하루하루 사는 것이 힘들어집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그토록 생생했던 성경 말씀은 이제 그 생명을 잃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계시를 받는 것은 고사하고, 당신이 다시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당신의 지적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메마름은 당신의 모든 육적 확신에 대한 당신의 죽음을 재촉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로 인해 기쁨을 얻기보다는, 당신에게 주어진 계시 안에서 영광을 찾으려는 당신의 육적 성향에 대한 죽음입니다.

사실 계시는 교만을 잉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를 준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분은 바울이, 그가 받은 엄청난 계시들을 자랑으로 여기는 것을 제재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충실한 종이 모든 것들로부터 겸허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죽음의 상황들”을 감수해야 하는 이 모든 과정이 혹독하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것은 예수님과의 동행에서 우리가 겪어야 하는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입니다. 그러나 죽음이 그 맡은 일을 끝내도록 우리가 허용한다면, 그리스도 자신의 부활 생명이 우리에게서 자유롭게 흘러나올 것입니다. 반면, 우리가 그 죽음의 일을 저항한다면, 그리스도의 생명을 결코 소유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2013년 11월 21일 목요일

예수의 생명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께서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정하신 자같이 마지막에 두셨나니, 우리가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고린도전서 4:9)

간단히 말하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충만한 경건한 성도가 죽음의 상황으로 이끌릴 때는, 그것이 더이상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세 가지로 구별되는 요원들, 즉 천사들과 마귀들과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때로는 당신이 그 투쟁에서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한 어두운 장소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로 인한 비밀스러운 전투에 대해서는 모르고 계십니다. 한편, 그 세 영역의 요원들은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당신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마귀들이 당신을 주시하고 있고, 천사들이 당신을 주시하고 있으며, 사람들이 당신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궁금해합니다. “이 하나님의 종이 어떻게 그 시험에 반응할까?”

그렇다면, 그토록 경이로운 시험은 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우리는 왜 이러한 죽음을 통과해야만 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원하시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우리 천부께서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나타나심을 방해하는, 우리의 미처 성화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걸림돌, 우리의 두려움, 우리의 야망, 우리의 욕망 등—예수님의 온전한 비춰지심을 방해하는 모든 것들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 마음의 이러한 장애물들을 제거하기 위해 우리가 “죽음의 상황들”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십니다.

만일 당신의 걸림돌이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라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두려움으로 마비시킬 수 있는 사람을 당신의 삶 속으로 들여올 것입니다. 그 사람의 모든 말과 행동은, 당신이 견딜 수 없을 때까지 당신의 두려움을 가중시킬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두려움이 하나님의 성도들에게 육체적 통증까지 발생시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그들 삶을 “힘들게 하는 사람”으로 인해 실제로 그들의 숨통이 막혀서, 급기야는 호흡장애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남녀를 당신 삶에 허락하실까요? 왜냐하면, 당신의 자비로운 아버지께서는 당신을 죽음에 넘기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당신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갖고 있는 사람에 대한 그 두려움은, 네 안에 있는 소중한 그리스도의 생명의 흐름을 막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생명을 맺을 수가 없단다. 네 안에 있는 이 두려움은 끝을 보아야만 한다. 그래서 너는 그것으로부터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분을 향한 당신의 부르짖음은 이러할 것입니다. “주님, 제발 이것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실 겁니다. “아니다, 나는 죽음이 그 맡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둘 것이다. 예수의 생명이 네 안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내가 이 모든 것을 허락했단다!”

2013년 11월 20일 수요일

매일 죽음으로 넘겨지다

경 건했던 사도 바울은 성령과 계시로 충만했습니다. 그는 열정적으로 기도했고 매일 예수님과 친교하며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는 핍박과 중상, 멸시와 매도를 당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험담거리였고, 그의 성품은 모욕당했으며, 그의 이름은 비난의 대상이었습니다.

바울은 너무도 자주, 그리고 너무도 많은 고난을 겪었기 때문에, 그의 영적 제자들조차 그가 왜 그토록 끊임없는 곤경과 박해를 당해야 했는지 의아해했습니다. 그들이 바울을 볼 때마다 그의 얼굴은 멍들어 있었고, 그의 뼈는 부러져 있었으며, 그의 몸은 상처로 가득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바울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여기 권능으로 가득하며 신실한,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는 자가 있었으나, 그가 가는 곳마다 매도와 모독이 뒤따랐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보로’라는 한 친구만이 그에게 남아있으며 그가 “나의 사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였다.”고 말했습니다. (디모데후서 1:16) 바울은 이 친구에 대해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그는 나의 투옥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게 비밀스러운 죄가 있다고 생각하는 다른 자들과는 달리, 그는 나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또한, 바울은 “결박 중에 있는 나를 불쌍히 여겼다.”는 성도들로 인해 위로를 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 (히브리서 10:34)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나의 고충을 아는 자들이다.” 그들은 바울이 시험을 당할 때 그와 함께했던 자들이며, 그들은 “비방과 고난으로 말미암아 구경거리가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취급받는 자들과 사귀는 자들이 되었으니…” (33절) 이러한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고난의 동역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당했던 일들을 그들도 당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깊은 영성을 가진 한 사역자를 아는데, 그는 수년에 걸쳐 다른 성도들로부터 악한 공격과 핍박을 받아왔습니다. 제가 그를 볼 때마다, 그는 제게 그의 문제들에 대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는 그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였으나 시간이 지나도 그의 시련은 그치지 않았고, 저는 그것이 귀찮게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저는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저는 당신이 항상 왜 그리도 시달려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군요. 당신은 제가 알고 있는 목회자 중에서도 가장 경건한 분입니다. 당신은 주님과 친밀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계속해서 그분의 말씀을 공부하십니다. 그런데 왜 주님은 당신이 그토록 계속되는 곤경을 겪어야 하는 삶을 허락하실까요?”

그러나 그 경건한 사역자가 매일 죽음의 상황에 넘겨졌야 했던 이유는, 그가 부활생명으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저는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강력하게 사용하기를 원하셨고, 그래서 그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계속 그를 죽음으로 넘기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 안에서 구현되는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형상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남아있기를 원치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바울을 파멸시키려고 작정했었던 이유는, 그리스도의 위대한 나타나심이 그의 삶에서 밝게 빛춰지게 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2013년 11월 19일 화요일

죽음에 넘겨지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살아있는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하여 항상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님의 생명 또한 우리의 죽을 육체 안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11)

사도 바울이 “살아있는 우리”라고 말할 때, 그는 요한계시록 1장 18절 예수님의 말씀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나는 살아있는 자라.”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신뢰하며 그들 안에 거하시는 그분의 생명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우리도 또한 죽음으로 넘겨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께서 자기 독생자를 죽음으로 넘기셨듯이, 그분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자들도 죽음에 넘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의 손을 잡고 죽음의 문턱으로 데리고 가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죽음아, 여기 이 아이도 데려가렴. 얘를 네가 원하는 대로 하려무나!” 그리고 이 시점에서의 하나님의 손은 더이상 보호자의 손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손은 우리를 죽음으로 밀어 넣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시는지 의아해 할 것입니다. 그분은 자기 독생자를 죽음에 넘기신 똑같은 이유로 그렇게 하십니다. 그분은 사망이나 고통, 그리고 슬픔이 더이상 우리를 삼켜버리거나 파멸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즉 그분 자신의 생명을 우리 안에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죽음에 넘기는 일이 모험이 아니었듯이, 우리에게 그렇게 하시는 것도 모험이 아님을 그분은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를 위한 승리의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자기 독생자를 위해 승리를 계획하셨듯이요. 그러나 이 승리는 오직 죽음을 통과해야만 우리 안에서 성취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너희가 만일 너희 안에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을 갖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너희 매일의 삶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이 사도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이것은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토록 주를 위해 죽임을 당하며 도살당할 양같이 여겨졌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8:36) 이 구절의 헬라어 의미는 이렇습니다. “날마다 우리는 죽음으로 넘겨졌다.” 간단히 말해서,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음의 현실을 직면한다.”

여기서 반드시 이해하셔야 할 부분은, 바울이 말하고 있는 죽음은 육체적 죽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동행에서 우리가 날마다 감당해야 하는 죽음을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가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린도전서 15:31)고 증언했을 때 그는 환난, 고충, 핍박, 위험등 온갖 종류의 고난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본질적으로 말하고 있는 의미는 이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우리 안에 갖고 있는 우리는, 죽음에서 또 다른 죽음으로 끊임없이 넘겨지고 있다. 날마다 새로운 시험이 우리에게 던져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아들의 생명을 우리 안에 갖고 있다!” 

2013년 11월 18일 월요일

복의 근원으로 받은 축복 by Gary Wilkerson

하나님은 당신에게 복 주시고 은혜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가정과 영적 삶을 풍요롭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당신이 축복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당신이 지혜와 분별력을 갖추고 올바른 선택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신중히 다루어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를 축복해서라기보다는, 그러한 축복으로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에 대해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중 많은 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지만, 우리는 그것을 이기적으로 사용합니다.

누가복음 12:16-19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느 축복받은 자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나님은 관대하셔서 그분 자녀들에게 축복 부어주기를 원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그 부자는 많은 축복을 받았으나, 말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축복이 옳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축복받은 자가 “심중에 생각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바로 그것이 문제의 시발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해주실 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 우리가 받은 축복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기 시작할때, 대부분 이기심이 따라옵니다. 이 구절의 말씀을 자세히 보십시오: “그가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그런데 이것이 누구의 곡물(축복)이란 말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이 부자의 마음은 이기적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인관계, 재능등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 선물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기심이 자신의 정체성 안으로 침투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우리는 하나님 축복에 대한 설교를 들을 때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그분의 축복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너무도 중요합니다. 우리의 안위와 쾌락을 위한 완벽한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해 축복을 쌓아놓아야 할까요? 아니면 주위를 돌아보며 불우한 자들을 도와야 할까요? 우리는 창세부터, 인류를 향한 하나님 축복의 언약으로 축복받았습니다—복의 근원이 되기 위해 복을 받은 것입니다! 

2013년 11월 16일 토요일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by Claude Houde

저는 현대 기독교에서 가장 치명적 것중 하나가 불신이라고 확신합니다. 불신은 우리를 영적으로 잠들게 하고 천천히, 그리고 냉혹하게, 오랜 기간동안 끈질기게 결박해서는, 끝내 우리가 용납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용납하게 만듭니다.

지금 하나님의 왕국은 전 세계적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적 부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동안, 북아메리카와 유럽의 복음주의적 교회들 중 90퍼센트가 넘는 교회에서는 눈에 뜨일만한 성장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과거의 영적 각성을 돌이켜보는 데에 머물러있거나, 최근에 유행처럼 들려오고 있는 놀랍고 즉각적인 돌파의 언약에 필사적으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제 말을 이해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아프리카, 중국, 한국, 라틴 아메리카, 그리고 이전에 철의 장막에 가려져 있었던 나라들에서 일어났던 부흥은 기쁨과 찬사로 우리 마음을 뿌듯하게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지난날에 하셨던 일들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저는 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허용할 수 없는 것을 허용하도록 만든 제 믿음의 저조함에 대해 회개하고 바로잡아야만 합니다. 세계 전역을 통해, 바로 우리 눈앞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혼구원을 위한 부흥의 새 장이 기록되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영적 매마름 속에서 산다는 것과 그토록 끔찍한 상례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의 이해나 명철을 초월할 만큼 심각하고도 치명적인 것이 바로 불신입니다. 패륜, 타락, 우상숭배와 악귀적 종교의식으로 가득한 세상에 둘려싸여 있었을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굳건히 서 계셨고 요동치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울게 만들었던 것은 다름 아닌 불신이었습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그분을 상심케 했습니다. 복음서에 기록되어있듯이,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사랑했던 자들과 대화하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굳은 마음과 그분에 대한 신뢰를 부인하는 모습을 보고 우셨습니다. (요한복음 11:33-35 참조) 그분은 그분 권능의 언약과 부활에 대한 믿음을 그들이 거부했을 때 우셨던 것입니다. 그처럼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영적으로 무관심하며 나태한 우리의 태도로 인해 울고 계시며, 수치스러운 허위 종교적 “교리들”과 의식들이 합리화되고 구축되고 있는 실상으로 인해 울고 계시고, 참된 권능과 초자연적 열매를 회피하는 우리의 삶을 정당화시키도록 만드는 그럴듯한 논리들로 인해 울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그리고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께는 편파가 없으십니다. (히브리서 13:8, 사도행전 10:34-35 참조) 그분은 불변하시고, 전능하시며, 절대적으로 의로우십니다. 그리고 세계 전역에서 그토록 장엄하게, 초자연적으로 행하고 계시는 일을 당신의 삶, 당신의 도시, 당신의 교회에서도 똑같은 열심과 갈망으로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분 권능의 무한한 위대함과 우리 사이에는 불신의 장벽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부르짖지 않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 우리의 믿음을 증가시켜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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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Claude Houde는 몬트리올에 위치한 New Life Church의 담임목사이며, 세계 전역에 걸쳐 World Challenge에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s의 주된 강사입니다. 그의 지도력으로, New Life Church는 소수 인원으로 시작해서 개신교 교회로서는 성공하기 힘든 캐나다의 어려운 지역에서, 지금은 교인 수가 3,500명이 넘는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2013년 11월 15일 금요일

부활의 생명

예 수님께서 무덤에 고요히 누워계셨을 때, 사탄과 그의 무리는 기뻐 어찌할 줄 몰랐습니다.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승리를 거두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 동안, 하나님께서 예정해 놓으신 계획—부활의 생명을 위한 계획은 빈틈없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성령을 사망의 음부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보내 주셨고, 성령께서는 그곳에서 예수의 몸을 사망으로부터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우리의 신성한 구세주는 두꺼운 돌을 통과하고 무덤에서 걸어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이 증언을 갖고 나오셨습니다:

“나는 살아 있는 자라. 전에 죽었으나, 보라. 내가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노라. 아멘. 또한 내가 지옥과 사망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노라.” (요한계시록 1:18)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의미는 이렇습니다. “내가 바로 영생을 가진 자다! 내가 한때는 죽었으나, 지금은 살아있고 영원토록 살 것이다. 나는 생명과 사망의 열쇠를 내 손에 쥐고 있다!”

예수님께서 사망의 음부에서 걸어 나오시는 순간, 그분은 부활과 생명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만을 위해 그 일을 행한 것이 아니라, 그날 이후로는 누구든 그분을 믿는 자들 모두를 위해 행하셨습니다. 그분은 사망의 권세를 완전히 초월한 부활 생명을 우리에게 가져다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더이상 죽음을 두려워한다든지 그것을 대적으로 볼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것을 완전히 정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일으키셨으니…” (사도행전 2:24)

당신이 예수님을 당신의 구주로 영접했다면, 그분은 부활 생명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당신 안에 거하십니다. 그분을 무덤에서 살려내신 바로 그 부활의 능력이, 당신 또한 지켜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고린도후서 13:5)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것, 사탄이 절대 파괴할 수 없는 강력한 생명의 권능을 당신 존재 안에 갖고 있습니다.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곧 하늘과 땅에 있는 온 가족에게 이름을 주신 분께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분께서 자신의 영광의 풍성함에 따라 자신의 영을 통해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며…” (에베소서 3:14-16) 

2013년 11월 14일 목요일

사망으로 넘겨지심

오 순절에 사도 베드로는 예루살렘 군중을 향해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그분(나사렛 예수)께서 하나님의 정하신 계획과 미리 아심을 통하여 넘겨지매, 너희가 그분을 붙잡아 사악한 손으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나…” (사도행전 2:22-23)

베드로가 그렇게 말한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한 헬라어 사전에서는 그의 말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계획에 의해 원수들에게 넘겨져 사망에 주어진 바 되었다.”

이 얼마나 이상하고도 이해할 수 없는, 그토록 자비로운 천부께서 행하신 일이란 말인가요?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을 고의로 죽음에 넘기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예수님을 그의 가장 사악한 원수의 손에 의도적으로 넘기고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여기 내 아들이 있으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그런 후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의 사악한 원수들이 그를 죽이는 것을 내버려두고 보기만 하셨습니다.

대체 이것은 어떻게 예정된 계획이었을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사망으로 넘기셨을까요? 베드로는 그에 대한 답을 다음 구절에서 말해줍니다: “이는 사망이 그분을 붙들 수 없었기 때문이라.” (사도행전 2:24)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사망의 음부에 영구히 붙들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생명의 권능에 의해 부활하셔서, 사망을 이기고 영광스러운 승리자로서 무덤에서 나올 것임을 아셨기에, 자기 아들을 사망으로 넘기는 것은 전혀 모험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그러한 말씀을 전했던 시간대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갈보리 사건이 있기까지, 사망은 인간에게 너무도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마귀의 통치와 주권하에 속한 것이었으며,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대적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망의 권세가 파쇄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고, 그 때문에 자기 아들을 사망으로 넘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분께서 죽음을 통해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 (히브리서 2:14) 하나님께서는 사탄의 사망 권세를 단번에 파쇄하고, 사망의 결박을 없애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결박을 삼켜버리기 위해 예수님을 사망의 음부로 내려보내셨던 것입니다. 

2013년 11월 13일 수요일

그분의 말씀을 믿으세요

만 일 당신이 정말로 하기 싫어하는 그 일을 계속하면서, 끊임없이 연약함과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다면, 그리고 왜 연거푸 넘어지는지 의아해하고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언약들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방패이자 그의 보상이 되어주실 것과 그의 모든 원수를 물리쳐 주실 거라는 약속, 또한 그처럼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주실 거라는—그를 위해서 심지어 기적까지도 행해주셔야 하는—많은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러한 언약을 믿었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칭찬하셨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의 힘으로 영적 원수들과 싸우는 일을 포기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들은 무엇이든 이루어주실 것을 우리가 마음으로 믿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우리도 우리 의의 시작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영을 보내시어 우리 영혼에 거하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도우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권능이며, 그 권능은 모든 악귀적 세력을 향해 전쟁을 선포합니다: “성령은 육신을 대적하나니…” (갈라디아서 5:17)

성령께서는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마귀야, 이제 여기는 내가 거하는 성전이다. 너는 더이상 여기서 통치할 수 없으며 내 자녀를 대적해서 싸울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너는 나를 대항하고 있는 것이고, 나는 너의 술책을 무너뜨릴것이며 모든 상황에서 너와 싸울 것이다. 이 자녀는 이제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다!”

성령 안에서의 삶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단순히 믿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6절) 간단히 말하면, “성령을 신뢰하라! 네 행사를 맡아주신다는 그분의 약속을 신뢰하고, 너를 위해 싸우실 거라는 그분 언약의 권능에 거하라!”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정신적 고뇌에 대한 확실한 해결책인, 철통과도 같은 굳센 언약입니다.

“그때에 내가 정결한 물을 너희 위에 뿌려 너희를 정결하게 하되, 너희의 모든 더러움과 너희의 모든 우상으로부터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라. 또 내가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고 새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 살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너희에게 살로 된 마음을 주리라. 또 내가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하여금 내 법규 안에서 걷게 하리니, 너희가 내 법도를 지켜 행하리라.” (에스겔 36:25-27)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이제 아시겠습니까? 그분의 영이 당신 안에서 모든 일을 행하십니다! 그분은 당신을 정결케 하고 새 마음을 주신 다음, 당신을 순종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당신이 감당해야 할 역할은, 그저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그분께서 약속을 지켜주실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당신의 모든 문제와 당신의 미래, 그리고 당신의 삶과 당신의 죄를, 전능하신 하나님 손에 맡겨드리고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2013년 11월 12일 화요일

당신의 지극히 큰 보상

오 늘날 세계적 추세는, 많은 사람이 왜 그토록 당혹해하며 불안해하는지를 파악하려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노력은 혼란스러운 논쟁거리밖에 되지 못합니다. 사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라면 잠재적인 물질적 상실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보다도 그는 영적 영역에서의 문제들로 인해 고뇌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겪는 당혹함과 고충에 대한 실제적 원인을 알고 있었으며, 그 주제에 대해 로마서 7장에서 다루었습니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인정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행하지 아니하고, 내가 미워하는 것을 내가 행하기 때문이라… 이는 내가 원하는 선은 내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내가 원치 아니하는 악을, 곧 그것을 내가 행하기 때문이라.” (로마서 7:15, 19)

이 사도가 말하고 있는 뜻은 이렇습니다. “내가 절대 원치 않는 일을 결국은 하게 된다. 반면, 하나님께 순종하며 내가 진실로 하고자 하는 일은, 내 힘으로 성취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여기서 바울은 수많은 신실한 성도들을 향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고뇌하는 이유는, 그들이 죄를 이길 수 없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들은 주님 앞에서 거룩하고 정결하게 살며 올바르게 행하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방해하며, 너무도 쉽게 그들을 유혹하는 죄를 미워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으로 되돌아갑니다!

그들은 고뇌하고 갈등하며 지친 나머지, 끝내는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아, 나는 얼마나 한심한 자인가! 나는 더이상 이걸 하고 싶지 않아. 그러나 이것을 저항하기에는 내가 너무 약한것 같아! 나는 어찌도 이렇게 연약하단 말인가? 그리고 얼마나 오랫동안 이 고투를 계속해야 한단 말인가? 내 온 인생을 고백과 회개로, 눈물이 강물이 되도록 울며 세월을 보내다가, 결국은 내 죄로 되돌아가게 되는 걸까?”

아브라함도 그가 처해있는 딜레마에서 어떤 해결책도 찾지 못했을 때 주님께 비슷한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나는 네 방패요, 네가 받을 지극히 큰 보상이니라.” (창세기 15:1)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뜻은 이러합니다. “아브라함, 나는 나 자신을 네게 줄 것이며 그것이 전부다. 내가 너의 방패이자 매우 큰 보상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네가 살아있는 동안 절대 어떤 원수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단다. 내가 너의 하나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13년 11월 11일 월요일

당신은 축복받았습니다 by Gary Wilkerson

네(이삭의) 자손으로 인하여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창세기 26:4-5)

‘순종’은 이 구절에서 핵심 단어인데, 그것은 순종이 축복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믿음의 한 걸음을 내딛고 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이것은 너무 어렵습니다. 제가 이것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믿음 안으로 들어가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순종하겠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할 때, 당신을 향해 하늘 문이 열릴 것입니다. 은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행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권능을 부여해줍니다.

우리는 주님을 경배하며 그분의 계명에 순종하는, 구별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대체로 불순종은, 그분께서 우리의 삶에서 이루고자 하는 일에 대한 은혜와 축복, 그리고 그것의 성취를 우리에게서 빼앗아갑니다.

하나님께서 당신께 무엇을 말씀하시든 그것에 순종하십시오. 만일 그분께서 주라고 하시면 주십시오. 만일 그분께서 가라고 하시면 가십시오. 만일 그분께서 머무르라고 하시면 머무십시오. 당신이 원하는 대로 살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사십시오. 그러면 축복이 당신께로, 당신 머리 위로, 당신 주위로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무엇이든 당신이 손대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축복받게 될 것입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12절) 이삭이 씨를 뿌린 후 엄청난 수확을 거두었다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국 경제에 대해 불안해하거나 속상해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직장이나 당신 가정의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않으십니다. 왜냐고요? 그분은 그분 영광의 풍성함에 따라 당신의 온갖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모든 능력과 모든 자원과 모든 힘을 천국에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당신을 축복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그분의 마음입니다. 당신에게 있는 것들을 걷어가기 위해 당신이 실수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신경질적이며 구식의 하나님에 대한 관념은 없애버리십시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순종할수 있도록 권능을 부어주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당신을 축복해주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2013년 11월 8일 금요일

우리를 위한 주님의 계획

우 리를 위한 주님의 계획은 언제나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대적해 오는 어떤 권세도 네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나는 언제나 네 보호자가 되어줄 것이다. 네가 만일 내가 맹세한 언약들을 단순히 신뢰하고, 믿음으로 너 자신을 나의 보호 안으로 맡기면, 나는 너의 전능한 하나님이 될 것이다. 나는 너의 모든 원수를 물리쳐서 네 발 앞에 던져줄 것이다. 너는 정복자 이상의 승리를 맛볼 것이며 아무런 두려움 없이 평안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당신께 묻겠습니다: 당신은 고요한 영과 평화로운 마음으로 두려움 없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우리 대부분은 우리 시간의 작은 부분도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평강의 문을 들락날락하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안식으로 온전히 들어가지 않습니다.

만일 당신이 고질적 죄로 인해 불안해하고 곤혹스러워하며 괴로워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화나 계시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분은 당신을 훈계하거나 심판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와는 반대로, 그분의 전능하신 능력을 당신에게 불어넣어 주시기를 갈망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모든 언약 안에서 본질적으로 똑같은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내가 그들의 모든 원수로부터 구원해줄 것임을 신뢰할 백성을 찾고 있다.” “내가 너희와 맺은 언약을 잊지 말고 다른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며, 오직 주 너희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라. 그가 너희를 너희 모든 원수의 손에서 건져 내리라.” (열왕기하 17:38-39)

구약에서 그러한 원수들은 블레셋 족속, 모압 족속, 헷 족속, 여부스 족속, 가나안 족속 등의 이방 민족이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사악한 권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파멸시키고는 다시 속박의 권세안로 데려가려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원수는 악령의 권세, 육신의 정욕, 사악한 욕망과도 같은 영적 영역에서 존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신약성서를 통해서도 그분의 백성을 향한 자신의 언약을 반복하십니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나의 아들, 나의 딸이 될 것이다. 사실상, 너는 지금부터 영원토록 나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와 맺은 언약을 기억하라. 너는 나 외에는 어떤 사람이나 어떤 권세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악령의 괴롭힘, 끈질긴 욕정, 떨쳐버릴 수 없는 습관, 고질적 죄 모두를 포함에서, 네 모든 원수의 손에서 너를 구해낼 것이다.” (히브리서 8:10 참조) 

2013년 11월 7일 목요일

아브라함의 씨

우리 마음을 힘들게 하는 모든 것에 대한 승리는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오래전에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게 해주신 언약 안에 포장되어 있습니다.

“우리 원수들과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려 하심이요, 또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긍휼을 이루시고, 자신의 거룩한 언약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자신이 맹세하신 그 맹세를 기억하려 하심이며, 또한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우리를 건져 내사 우리가 평생토록 자신 앞에서 거룩함과 의로움으로 두려움 없이 자신을 섬기도록 허락하려 하심이라.” (누가복음 1:71-75)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게 해주신 하나님의 언약은 맑은 수정과도 같이 명백합니다. 그분은 우리 매일의 삶을 근심 없이 평안하게, 그리고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도록 모든 원수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언약은 지금 생존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그리스도를 믿음에 의해 구주로 받아들인 모든 사람은 “아브라함의 씨”입니다. “육체의 아이들인 자들, 즉 이들이 하나님의 아이들이 아니요, 오직 약속의 아이들이 그 씨로 여겨지느니라.” (로마서 9:8) “그런즉 너희는 믿음에 속한 자들, 곧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갈라디아서 3:7)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 언약의 계약상 권리를 주장할수 있을까요? 아브라함도 그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때 주님께 비슷한 질문을 했습니다. 그는 주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무엇을 내게 주려고 하시나이까? 나에게는 아이가 없나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네 방패요, 네가 받을 지극히 큰 보상이니라.” (창세기 15:1)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뜻은 이러합니다. “아브라함, 나는 나 자신을 네게 줄 것이다. 그것이 전부다. 나는 너의 보호자이며 매우 큰 보상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네가 살아있는 동안 절대 어떤 원수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단다. 내가 너의 하나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새 언약 안에서 다음과 같은 영광스러운 약속을 우리에게 해 주십니다.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한 백성이 되리라.” (히브리서 8:10) 우리는 창조의 시작으로부터 성경 전체를 통해, 그야말로 놀라운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간구를 듣습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기를 원한다!” 

2013년 11월 6일 수요일

경건한 근심

그것이 비록 가장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주님을 대적하는 우리의 죄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근심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영적 상태를 확실히 파악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일부 성도들은 단지 “큰 죄들”로 간주되는 그들의 죄, 즉 간음, 마약 남용, 음주, 욕설 등에 대해서만 한탄합니다. 그러나 진실로 영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눈에는 어떤 죄도 작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자신이 험담할 때마다, 음담패설을 할 때마다, 오래가는 악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마다 애통해합니다. 그는 이러한 것들이 그의 심령 가장 깊은곳에서 튀어나온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은 그렇게 “사소한 것들”로부터 당신 자신을 변호하며 그것에 대해 전부 잊고서는 하나님께 불순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렇게 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절대 성숙해질 수 없습니다. 당신의 의로움은 당신의 신성한 구주를 근심케 하는 그 어느 것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자세에 의해 측정됩니다.

얼마 전, 저는 아내에게 매우 반-그리스도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제 말은 전혀 합당치 않은 것이었고, 저는 곧장 죄책감으로 무너졌습니다. 저는 제가 아내를 부당히 취급했다는 것을 알았고 그녀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녀를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예수님과 상반되는 것을 감히 할 수 있었을까? 요즘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주님께 가까웠어. 그리고 지난해에는 가장 많이 기도했지. 그런데도 내 심령으로부터 그토록 저속한 말이 튀어나오는 걸 보면, 나 자신이 참으로 악함이 틀림없어.”

그 순간 원수마귀가 제게 속삭였습니다. “그까짓 작은 실수는 별것 아냐. 그건 아주 사소한 것에 불과해.” 그러나 성령께서 그 마귀의 음성을 공박하기 위해 즉시 제 마음속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며 저를 안심시키셨습니다. “데이빗, 네가 이 죄에 대해 근심하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네 안에서 일하고 있다는 증거란다. 나의 사랑과 상반되는 가장 작은 죄에 대해서조차 네가 더 한탄할수록, 너는 승리에 더 가까워진단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을 우리에게 보내신 이유는, 우리 육신의 갈망, 그리고 정욕을 대항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만일 당신이 죄를 범했을 때 근심하지도 않으며, 죄의식이나 슬픔, 또는 후회 없이 당신이 지은 죄를 잊어버릴 수 있다면, 영적 전쟁을 하시는 성령께서 당신 안에 거하고 계시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이제 내가 기뻐함은 너희가 근심하였기 때문이 아니요, 오히려 너희가 근심하므로 회개에 이르렀기 때문이라. 너희가 하나님께 속한 방법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고린도후서 7:9)

만일 당신이 가장 가벼운 죄에 대해서도 죄의식을 갖는다면, 당신은 확실한 승리 가까이 있습니다. 진정한 회개로 이끄는 경건한 슬픔을 당신 심령에 일으킴으로써, 그분은 전투에서 승리하고 계십니다. 

2013년 11월 5일 화요일

불안해하지 말라

불 안한 마음은 계속되는 불만족으로 인해 고통받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그것은 눌려있고 심란하며 산만한 마음, 그리고 현재 상황은 물론 미래와 과거에 대해서도 초조해하는 마음입니다. 제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과거의 어느 세대보다도 지금, 많은 사람의 마음이 불안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많은 자들이 믿지 않는 대중과 다름없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그 증거를 우리 목회로 날라오는 편지에서 봅니다. 수많은 성도가 염려와 낙심으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충으로부터 다소나마 자유를 얻으려는 희망을 품고 교회에 가지만, 예배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다시 불안감에 휩싸이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재난으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이 불안해질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또… 표적들이 있고 땅에는 민족들의 고난과 혼란이 있으며 바다와 파도가 울부짖으리로다. 땅에 임하는 그 일들을 내다보는 것으로 인해, 두려움으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이 그들을 기진하게 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라.” (누가복음 21:25-26)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임하게 될 참사들이 너무도 두려워서, 실제로 사람들이 심장마비로 쓰러져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몇 년 전, 연세가 구십이 넘은 한 목회자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그는 대공황을 통해 미국에 심판이 내려졌던 1920년대의 부도덕함에 대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마차로부터 시작해서 우주선까지, 그리고 잡음 나는 라디오부터 인터넷까지, 정보통신의 변천을 보아왔습니다. 짧게 말하자면, 그는 모든 것을 다 보았던 것입니다.

그는 오늘날 이 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는 사악함은 그가 이전에 목격했던 어느 것보다도 그를 비통하게 한다고 썼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그러한 일들이 너무도 신속히 전개되고, 타락의 정도는 이해를 초월하기 때문에 그 모두를 수용하기가 매우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이 모든 상황 가운데서도 위안의 말씀을 주십니다. 그분은 이렇게 명하십니다. “…주의하여 불안해하지 마라. 이 모든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마태복음 24:6) 그분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경고하고 있는 이러한 험한 것들로 인해 절대 불안해하지 마라!” 

2013년 11월 4일 월요일

새로운 장 by Gary Wilkerson

사 도행전에는 28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수세기에 걸쳐 하나님께서는 수천수만의 그분의 제자들을 통해 또 하나의 장을 기록해 오셨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빌립이나 다비다, 또는 디모데가 아닙니다. 오늘날 그들은 제니, 지미, 그리고 조나단과 같은 이름을 가졌습니다.

붉은색 머리를 가진 제니는 호주에서 왔는데 콜로라도 스프링에 있는 우리 교회에 참석합니다. 그녀는 우리가 이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는 가장 쾌활한 웃음소리를 가졌는데, 무엇보다도 복음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지닌 성도입니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만나는 자마다 그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날마다 경험합니다.

그리고 지미라는 이름을 가진 예수님 제자가 있는데, 그는 수십 년 동안 저와 함께 사역하고 있습니다. 지미처럼 전도하는 자는 그리 흔치 않습니다. 최근에 그가 어떤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며 “제가 당신 댁에서 성경공부 모임을 인도할게요.”라고 제안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그 주변으로부터 많은 사람이 그 집에 와서 구원받았습니다. 지미는 다른 동네에 가서 같은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곳으로 옮겨 가서는 그렇게 전도하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초자연적으로 영혼을 움직이는 성령의 능력을 믿는 한 열성적 그리스도인 덕택에, 성경공부 모임이 도시 전역에 우후죽순처럼 생겼던 것입니다.

조나단은 종신 선교 사역자들과 더불어 기도하는 우리 교회 성도이며, 열세 살밖에 되지 않은 예수님 제자입니다. 그의 기도는 어른들로 하여금 무릎 꿇도록 만드는데, 상하고 통회한 심령의 목소리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조나단은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해 주시기를 열망하며, 그의 영적 갈망은 거의 전염적일 정도로 강렬합니다.

이처럼 제가 묘사하고 있는 예수님 제자들은 21세기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초대교회의 능력을 부여받은 자들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과 저 역시 하나님 일을 행할 수 있도록 성령에 의해 부르심 받았습니다. 저는 교회의 많은 성도가 이제는 하나님 말씀을 단지 듣기만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때라고 믿습니다. 물론 성경공부와 기도 모임도 다 좋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그분의 영광에 대해 아는 것도 중요한 만큼, 그분처럼 우리가 사역할 수 있도록 그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게 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통해 그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저와 함께 이렇게 기도하시기를 제안합니다. “주님, 당신의 말씀을 잘 배우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배운만큼 당신의 말씀을 잘 행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 오늘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이곳에 임하게 하소서! 아멘.” 

2013년 11월 1일 금요일

세상과 맺은 아합의 계약

한 번은 아합이 엘리야의 책망을 듣고 실제로 회개했던 적이 있습니다. “주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아합이 내 앞에서 겸손히 행하는 것을 네가 보느냐?” (열왕기상 21:28-29) 나중에 아합이 그 사건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회개? 맞아. 하나님의 그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의 책망을 듣고 그랬던 적이 있었지.” 그러나 아합에게 그것은 단 한 번의 경험이었을 뿐, 매일의 실습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그가 이미 세상의 친구이자 형제가 되어버렸다는 데에 있습니다. 여기서 ‘형제’의 의미는 “친밀함, 나와 같은 자, 내가 존경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저주하신 것과 계약을 맺었던 것입니다. 아합은 진리를 사랑한다고 주장했으나,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는 질책받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오직 진리만을 듣기 원합니다. 그러니 솔직하게 진실 그대로 설교해주세요!” 그러나 그들의 속마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무 비관적이고 너무 완고해. 더는 이것을 견딜 수 없어.”

아합은 그가 거짓말하는 영에 의해 끌려다니고 있다는 끔찍한 사실에 눈이 멀어 있었습니다. 이 거짓 영은 가짜 선지자 시드기야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이 자기에게 임했다고 과시하게 했습니다. (열왕기상 21:24 참조) 그로인해 아합은 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으며, 전쟁으로부터 승리해서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이세벨 교리에 묶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백 퍼센트 옳다고 확신합니다. 그들은 속임수를 보지 못합니다. 아합은 “그 사백 명의 대언자들은 가짜야.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듣지 않았어.”라고 생각하며 전쟁터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그는 전적으로 확신에 차서는, 완전히 속고 완전히 미혹된 채 나갔던 것입니다.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왜 속임수에 빠졌을까요? “보라, 너희가 유익을 끼치지 못하는 거짓말을 신뢰하는도다. 너희가 도둑질하고 살인하며 간음하고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고,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라 걸으면서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집에 들어와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이 모든 가증한 것을 행하려고 우리가 구출 받았나이다, 하려느냐?” (예레미야 7:8-10)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은 상습적 죄에 붙들려 있으며, 마음속에 비밀스런 우상을 갖고 있습니다. 죄를 정당화시키며 세상과 결연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집에 와서 이렇게 과시합니다. “나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거짓말하는 영에게 문을 열어놓는 초청장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