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31일 금요일

경배의 원천

모세는 이스라엘에 대한 완전한 소망을 가지지 못했지만 그 와중에 하나님을 경배하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가져온 금상을 숨기며 죄를 짓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 그들을 용서해달라고 설득했음에도 이렇게 생각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감춰왔던 정욕과 수근거림을 얼마나 참으시겠는가? 하나님의 인내심의 끝은 없겠는가?”

여기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할 모세의 간청은 이스라엘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보다 더욱 연민 어린 감정으로부터 오는 것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민족을 파멸시키려는 의도는 전혀 없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약속하신 언약을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이것은 모세를 위한 “자비 시험(Mercy Test)”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에게 이렇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사람들에게 나를 어떻게 나타낼 것인가? 심판하는 보복의 하나님으로만 볼 것인가? 아니다. 나는 자비롭고, 인내하며, 나의 민족을 용서할 준비가 늘 되어있다.”

이것이 바로 나타내신 계시입니다. 이 계시는 모세의 마음을 평안케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계속 경배를 하며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이신 영광을 더 찾고 인정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내하시며 우리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이 어찌 큰 영광인지! 얼마나 진실된 평안 그리고 소망인지 모릅니다.”

모세는 즉시 기도했습니다. “이르되 주여 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 원하건대 주는 우리와 동행하옵소서 이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니이다 우리의 악과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주의 기업으로 삼으소서” 출애굽기 34장 9절

이 구절은 하나님 영광의 나타내심이 경배의 필수요소라는 것을 틀림없이 증명합니다.

하나님 영광의 나타내심이 우리 모두의 경배의 원천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이렇게 증거해야 합니다. “주님, 저는 주께서 거룩하신 공의의 하나님이라는 것과 죄를 눈감아 주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영광 또한 보았습니다. 주께서는 나를 파멸시키고자 하시지 않으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내가 난관에 부딪혔을 때 나를 정죄하기 보다는 사랑으로 인내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보이십니다. 저는 거절 받기 마땅합니다. 저는 자주 넘어졌고 완전히 내리침 받기에 마땅합니다. 그러나 나에게 자비, 인자하신 하나님의 그의 영광을 내게 보이십니다.”

2014년 1월 30일 목요일

하나님의 영광을 보라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그의 영광을 보게함으로써 그의 시각(관점)을 변화시키고자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 말씀이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이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변화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 형상의 정확한 표본입니다. 주께서 육신을 입으셨을 때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 은혜 선하심 그리고 용서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본질과 성품으로 예수님을 입히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의 나타내심은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우리를 변화시키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목적과 결과를 매우 잘 이해하였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개혁을 가져온다고 보았습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린도후서 3장 18절

바울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자비, 은혜, 오래참음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때에 성령님께서는 지속적으로 당신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에 대해 더 보여주실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점점 커지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더욱 강력하게 말합니다.”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너희로 알게하시기를 구하노라”에베소서 1장 17-18절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것은 이렇습니다. “모세는 내 영광을 깨달았다. 너희도 이같이 깨닫기를 원한다. 내가 누구인지 너희에게 보여주기 위해 성령을 통하여 너희 눈을 뜨게 하겠다. 나는 그저 화와 심판의 하나님의 아니다. 나의 본질은 사랑이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에배소서 3장 17-19절

2014년 1월 29일 수요일

모세는 경배하였습니다

모세가 선하시고 사랑과 자비로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때, 그는 속히 무릎을 꿇고 경배하였습니다. “모세가 급히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출애굽기 34장 8절)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성품은 모세를 벅차오르게 했습니다. 그의 자녀들 뿐 아니라 완고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자비롭고, 으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영광의 계시에 크게 감동을 받아 바위 틈에서 뛰어나와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성경에서 모세가 경배하는 모습을 처음 언급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이전에 모세는 하나님과 대면하며 이스라엘을 위하여 애통하며 간절히 기도하고 중보했습니다. 모세는 홍해를 건너고 승리한 편에 서서 찬양하고 마라의 쓴 물 앞에서 부르짖었습니다. 또한 Rephidim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물을 제공하지 않은 이유로 모세를 돌로 쳐 죽이려고 할 때의 모세는 필사적으로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경배하며”라는 표현은 이곳에서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저는 이 한 구절이 이 시대의 교회들에 대해 많은 것을 얘기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경배를 드리지 않고도 열심으로 기도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열정적이고 성실한 기도 중보자임에도 경배자가 아닐 수도 있는것입니다. 진실된 경배 없이도 구원받지 못한 자녀들을 위해 그리고 온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거룩하고 온화한 삶을 살며 하나님의 마음을 구할 수 있습니다.

굳이 제가 경배에 대한 여러 정의를 내리지 않더라도 다양한 경배를 위한 테크닉에 대한 책자가 시중에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간단히 이것만 언급하고자 합니다. 경배는 학습할 수 있는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나타내심과 놀라운 사랑에 감동받아 우러나는 행위인 것입니다.

경배는 감사하는 마음의 반응입니다. 오래 전 죄의 값으로 소멸되었어야 할 우리가 “나는 아직도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씀하시며 강력하게 영광을 나타내신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시고 사랑해주신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부터 모세는 죄악된 이스라엘의 구원과 앞길을 인도해주시기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적적인 구원, 능력 또는 지혜를 구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의 계시를 경이로워하고 경배하였습니다.

2014년 1월 28일 화요일

하나님 영광의 계시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따르는 진정한 그리스도인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열심으로 구하고 찾는 이에게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계시는 다가오는 이 악한 시대를 위해 그리스도인들을 준비시킬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계시가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사도행전 20장 32절)라고 말합니다.

몇몇의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하나님의 영광은 육체적, 물리적 징후가 아닙니다. 당신을 압도하는 무아지경의 감정이나 초자연적 아우라 또는 갑자기 치솟는 아름다운 빛이 아닙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나타내심입니다.

우리가 “주님,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라고 기도할 때에 우리의 의미는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 내게 보이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이셨을 때는, 바로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한 모세는 이 진리를 입증해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누구인지 완전하게 나타내시지 않으시고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모세를 보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저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애굽기 3장 14절). 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가 누구인지 설명은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이유로 모세가 이렇게 부르짖었다고 생각합니다.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출애굽기 33장 18절). 모세는 끊임없이 스스로 있는 자가 누구인지, 그의 본질과 성격은 무엇인지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응답하셨습니다. 먼저 그는 모세로 하여금 바위 틈에 숨도록 지시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천둥도, 번개도, 지진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기 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은 아주 간단하게 나타났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 손 삼 사대까지 보응하리라”(출애굽기 34장 6-7절)

2014년 1월 24일 금요일

그다음에는 주님이 오실 것입니다!

지금은 유혹과 타협의 열기가 전 세대보다 몇 배나 더 극심한 때입니다. 예를 들면, 사탄은 우리 세대의 모든 전자기술을 탐욕과 관능, 욕정과 유혹으로 부패시키며 조작했습니다. 우리는 왜 지금 그러한 백열 용광로의 유혹을 직면하고 있는 걸까요? 어찌하여 욕정과 섹스가 모든 상상할수 있는 상품을 팔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을까요? 왜 인터넷에는 수백 개의 포르노 웹사이트가 있는 걸까요? 대체 누가 그토록 쇄도하는 불결함의 타겟이란 말입니까?

그것은 이미 유혹당한 속된 세상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사탄의 타겟은 그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보다도 그는, 승리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낚아채기 위해 대중매체를 조작했습니다. 그는 복음의 증거를 미약화하고 파괴하기를 원합니다.

지금 이 시간 용광로는 수많은 성도의 삶에서 일곱 배나 더 가열되고 있습니다. 사탄은 그들의 가정과 일터에서, 그리고 그들의 관계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극심한 상황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한때는 신실했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포기하며 믿음을 버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도움을 청하기 위해 더이상 기도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의 시험은 내가 견뎌내기에 너무도 극심해!”

다니엘 3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마귀의 술수를, 바빌론 전 민족을 향해 그분의 증거를 드러내시기 위한 기회로 바꾸셨습니다. 그 세 명의 젊은이들이 절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들을 구해내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확한 나타나심을 바빌론에 증거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빌론 왕은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우리가 세 사람을 결박하여 불 한가운데로 던지지 아니하였느냐?... 보라, 내가 보니 결박이 풀린 네 사람이 불 한가운데서 걷고 있는데 그들이 아무 해도 입지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하나님의 아들과 같도다.” (다니엘 3:24-25)

왕은 재빨리 그의 첫번째 우상숭배 칙령을 무효화시키고 새로운 칙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칙령을 내리노니, 무슨 일이든 잘못 말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대적하는 모든 백성과 민족과 언어는 여러 조각으로 쪼개고 그들의 집을 거름더미로 삼을지니라. 이는 이런 식으로 능히 사람을 건져낼 다른 신이 없기 때문이니라.” (29절)

사랑하는 여러분, 이 모든 사건은 단지 세 사람, 즉 믿음으로 그들의 생명을 기꺼이 내려놓을수 있었던, 하나님을 사랑하는 의로운 자들의 증언으로 인해 가능했던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의 삶은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그리고 그 외의 모든 영역에서도 더욱 악화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지역의 구별되었고 경건한 남녀 성도들에게 이미 그분의 손을 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복음은 그들의 증언에 의해 전파될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주님이 오실 것입니다!

2014년 1월 23일 목요일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갈망하다

만일 당신에게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향한 배고픔과 목마름이 있다면, 사탄은 당신에게 전면적으로 전쟁을 선포할 것입니다. 그가 당신의 헌신이 진실하다는 증거를 볼때, 즉, 당신의 성실한 기도생활과 자아 부인을 볼때, 그는 당신의 증언을 말살시키려고 지옥의 모든 무기를 사용하려 할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당신의 증언은 변절과 파멸을 향한 하나님의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니엘서의 불타는 용광로에 관한 모든 것입니다. 사탄은 바빌론에 남아있는 하나님의 유일한 증언을 말살시키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웠던 것입니다. 하나님 복음의 진리의 살아있는 증거를 모두 말살하기 위한 책략은, 백열의 뜨거운 용광로에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다니엘 3장 참조)

세 명의 경건한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바빌론의 고위 정부 요직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 젊은이들은 그들이 전했던 복음의 가시적 증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빌론의 육감적 생활방식으로부터 그들 자신을 구별시켰으며, 대신 그들의 삶을 기도로 헌신했습니다. 이 세 사람이 선지자나 제사장은 아니었지만, 우상 숭배적 대중 가운데서도 청결한 마음을 지키며 하나님께 충실했던 평신도들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사탄을 격분케 했고, 그는 사악한 바빌론 왕의 마음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왕은 금으로 만든 거대한 형상을 세워놓고, 국가 공식 신으로 선포해놓고는 경배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런 후 왕은 이 새로운 종교를 소개하기 위해 바빌론 통치하에 있는 온 지방의 모든 관료와 치리자들을 소환했습니다. 그 종교 의식의 음악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누구든지 이 새로운 신을 향해 경배해야만 되었습니다.

사탄은 또한 왕으로 하여금 커다란 용광로를 만들어놓고, 백열의 뜨거운 불길이 모든 자들에게 보이게 했습니다. 왜 사탄은 이 일을 행했을까요? 당연히 그는 이 새로운 칙령을 거역할 자가 바빌론의 어떤 총독이나 재판관, 또는 보안관중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유혹하거나 위협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사실 그들 모두는 어안이 벙벙한채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그래, 누가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싶어하겠어? 우리는 잘 지내고 있잖아. 우리에게는 풍요로움과 음식물, 그리고 좋은 삶이 있어. 더군다나 이 새로운 종교는 어렵지 않아.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할 자가 어디 있겠어?”

그렇다면, 이 불타는 용광로는 대체 무엇이었단 말입니까? 그것은 전적으로 사탄의 작품이었습니다. 그 세명의 젊은이들을 죽이기 위해 그가 조작해낸 교묘한 책략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바빌론에 유일하게 남아있었던 하나님의 증인을 죽이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그 세명의 젊은이들은 왕의 명령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께서 맹렬히 불타는 용광로에서 능히 우리를 건져 내시겠고, 또한 그분께서 왕의 손에서 우리를 건져 내시리이다.” (다니엘 3:17)

2014년 1월 22일 수요일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선지자 에스겔 시대의 이스라엘은 음란과 교만으로 가득했습니다. 남자들은 이웃 유부녀들과 간통했으며, 심지어 그들 며느리까지 더럽혔습니다. 한때 거룩했던 선지자들은 타락해졌고 거룩과 신성모독을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정부 지도자들은 탐욕스러운 늑대처럼 변해서 부정한 이득을 노리며 백성을 피 흘리게 하고, 거짓을 말하며 빈곤자들을 약탈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망각했고, 하나님은 지극히 연약해지고 세속적이며 무력해진 나라를 속된 세상의 웃음거리로 만드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를 이교도들에게 치욕거리가 되게 하며, 모든 나라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노라.” (에스겔 22:4)

이 얼마나 냉혹한 기소장인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셨습니다. “너희는 거룩한 것들을 매우 경시했고, 너희 자신을 완전히 욕정에 넘겨주었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의 증인을 없앨 것이다!”

그때 에스겔은 연로했고, 그 현장에서 은퇴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상황을 어떻게 다루셨을까요? 그분은 에스겔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땅을 위해 내 앞에서 울타리를 세우며, 무너진 곳에 서서 나로 하여금 그것을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들 가운데서 찾았으나 아무도 찾지 못하였노라.” (30절)
상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운명은 하나님께서 신뢰할수 있는 의로운 한 사람을 찾을수 있느냐에 달려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에스겔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들 가운데 찾았으나 아무도 찾지 못하였노라. 그러므로 내가 내 격노를 그들 위에 부었노라.” (30-31절)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이리저리 예루살렘 거리를 뛰어다니며, 이제 보고 알며 그곳의 넓은 곳에서 찾아보라. 만일 너희가 공의를 집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사람을 찾을수 있거나, 혹은 거기에 그런 자가 있다면 내가 예루살렘을 용서하리라.” (예레미야 5:1) 그분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내가 만일 그 사이에 설 자를 단 한 사람이라도 찾을수 있다면 나라 전체를 용서할 것이다.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은, 내 뜻에 전적으로 순종할수 있는 한 영혼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 교회가 세상에 나아가기 위한 더 많은 계시와 현대적 방법을 구하는 여러 부르짖음을 듣습니다. 그리고 기이하며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실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오랜 사역 동안 저는 그러한 프로그램들이 나왔다가 사라지곤 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십자가는 완전히 무시한채 전적으로 육적 채움에만 의존합니다. 그러한 프로그램들이 끌어들였던 군중은 세상과 그 욕정으로부터 분리시키는 복음에는 전혀 노출되지 못한채 공허하고 허무한 삶을 삽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모두가 어리석은 시도에 지나지 않는 것을 보며, 그러한 프로그램에 냉소를 던집니다.

2014년 1월 21일 화요일

하나님은 한 사람을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느헤미야 선지자 시대의 예루살렘 성벽은 그야말로 황폐했고, 도시는 말 그대로 돌무더기였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아무런 증거도 남기지 않은채 완전히 타락해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을 에워싸고 있는 사악한 세력은 그들이 할수 있는한 모든 것을 조롱하며 그들을 혹독하게 핍박했습니다.

그러한 멸망의 때에 과연 하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을까요? 그들을 도우려고 잘 훈련된 군단을 보내주셨을까요? 아니면 그들의 강력한 적수를 강타할수 있는 왕실 근위병을 보내셨나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하나님은 느헤미야라는 한 사람을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느헤미야는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짐을 품고 있는 자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황폐함으로 인해 비탄에 빠져서 그의 모든 시간을 기도와 금식, 그리고 애통함으로 보냈습니다. 그는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탐구하며, 예언을 붙들고 성령안에서 움직였습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왕 술 관원으로 섬기고 있었지만, 주위의 부정함으로부터 자신을 구별시켰습니다. 이스라엘에 상주하고 있었던 모든 음란과 부도덕, 그리고 사악함 속에서도 그는 주님과의 거룩한 동행을 유지했습니다. 그 결과로, 그의 가르침을 들었던 모든 자들의 영혼은 정결해졌습니다.

곧 거룩한 부흥이 온 땅을 휩쓸었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또 백성과 성문들과 성벽을 정결하게 하니라.” (느헤미야 12:30) 하나님의 성전 또한 모든 육적인 요소가 제거되며 정결케 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일꾼들을 성전으로 들여보내며 그들에게 이렇게 지시했습니다. “나는 여기 있는 모든 불결한 것들을 제거하기를 원한다. 무엇이든 우상 숭배적이거나 음란한 것들은 남겨놓지 말아라.” (느헤미야 13:8-9 참조)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참된 부흥입니다! 그것은 당신 내면의 불결하며 성화되지 못한 모든 영역을 말끔히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어두운 구석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타협하는 자들을 떨게 하며, 경외심을 다시금 성전으로 불러들일수 있는 영적 권능을 느헤미야는 어디서 얻었을까요? 그 나라의 왕이 그것을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주교가 준 것이 아닙니다. 그가 성서 학교에서 배운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도 느헤미야는 눈물과 상한 심령,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를 갈망하는 무릎 꿇은 기도로 그 권능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신실한 중보 기도자였기 때문에, 온 나라의 죄를 자백할수 있었습니다. “이제 주의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내가 이제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 앞에서 밤낮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죄들을 자백하오니… 나와 내 아버지 집이 죄를 지었나이다. 우리가 주를 매우 악하게 대하였으며,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명령과 법규와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느헤미야 1:6-7)

2014년 1월 20일 월요일

믿음의 행위 by Gary Wilkerson

사도 베드로는 감옥에서 기적적으로 탈옥하자마자 (사도행전 12:7-11 참조) 그를 위해 중보해왔던 성도들에게 그 기사를 알리기 위해 기도의 집으로 갔습니다. 베드로가 문을 두드렸을때, 그들은 여전히 그곳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 형제를 위한 그들의 기도가 얼마나 효력이 있었는지 상상도 못했습니다. 실제로 성경은 그들의 기도가 ‘간절’했다고 말합니다. 그 의미는 그들이 포기하지 않으며 하나님께 매달렸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간절한 기도가 바로 그리스도께서 그분 교회에게 요구하시는 기도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구, 그리고 한 도시 전체가 구원받는 것을 보고자 하는 그들의 갈망은 집요하며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흥미로운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 성도들이 그들의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한 여자아이가 베드로가 대문밖에 서 있다고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기뻐하며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저희가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계집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저희가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12:14-15) 그들은 헤롯이 그를 이미 죽였다고 분명히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일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단 한마디의 말씀으로 불가능한 일을 행하시며, 그분의 백성을 구원하실때 그들이 실제로 자유로워집니다. 그러나 당신이 어떤 문제로 고투하는 동안, 당신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발견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처음 몇개의 문은 열어주시지만, 마지막 문은 당신이 믿음으로 열도록 남겨두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베드로를 위해 초자연적으로 문을 열어주셨지만, 그 마지막 것은 인간의 믿음과 행위가 요구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왜 그렇게 하실까요? 그분은 우리의 가장 절실한 기도 가운데서도, 작은 불신의 씨가 여전히 우리 마음 한구석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그분 권능의 주권자시지만, 그분의 신부가 구원의 역사에 참여하기를 원하십니다. 온 역사를 통한 하나님의 진정한 역사하심은 사람들로 하여금 일어나서는 이렇게 말하도록 요구했습니다. “저는 거기에 속하기를 원합니다. 제가 연약하고 미약할지는 몰라도, 하나님은 믿음으로 행하는 자들을 존중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그 모든 것은 기도로 시작됩니다. 열렬하며 능력 있는 기도는 철문을 부수고 포로된 자들을 자유롭게 하게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베드로 사건이 그것을 분명히 말해줍니다. 그와 동시에 이 사건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우리가 만일 그 마지막 문을 믿음으로 열지 않는다면 일부 포로들이 여전히 밖에 남아있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절실한 기도의 마지막 한 부분이 남아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믿음에 찬 행위입니다.

2014년 1월 18일 토요일

활력징후를 체크하자 by Jim Cymbala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생명줄이자 삶의 원천입니다. 기도 없이는 숨을 안 쉬는 아기를 안고 예쁜 옷을 입히는 것과 같습니다. 프릴이 달린 예쁜 옷은 고사하고 – 아이의 활력징후(Vital signs)를 먼저 안정시켜야 합니다. 혼수 상태의 사람에게 지시를 하고 말을 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오늘날 교회에서 전해지는 가르침이 제한된 결과만을 가져옵니다. 설교는 생명의 길로 인도할 때에만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청중이 영적 혼수상태에 있다면 우리가 가르치는 것이 무난하고 정통적이라고 생각 할 수 있지만 영적인 삶은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교회들과 목사님들은 불편할지언정 이렇게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생활 없이는 우리는 새로운 언약 안의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이러한 정죄함은 우리를 당혹하게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 가는 길의 돌파구를 어떻게 찾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사도행전 2장 42절 말씀을 묵상하면 -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 정상적인 교회에 대한 증거는 바로 기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과 나의 교회가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교회의 종교적 정통성이나 교인의 수를 가지고 자랑하면 안될 것입니다.

제 아내 캐롤과 저는 우리 교회 Brooklyn Tabernacle 에서 애통하는 심령과 하나님을 찾는 기도가 시들해지면 만 명의 교인이 출석하더라도 우리는 교회로서 큰 문제에 처했음을알 것이라고 서로에게 얘기했습니다.

기도모임에서 저는 수도 없이 교회를 가득 채우는 기도와 중보의 소리를 듣습니다 모임이 마칠 시간에 다가갈수록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들, 취업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 그리고 최근 주신 기도응답에 대한 감사기도를 들으며 저는 생각합니다. “이 삶에서 가장 천국 같은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다. 고위인사에 의해 백악관에 초대되었더라도 하나님을 구하는 기도모임에서 경험하는 이러한 평강과 깊은 기쁨은 주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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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 Cymbala는 뉴욕의 비교적 어렵고 거친 지역에서 20명 이하의 교인과 함께 오래된 건물에서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브루클린 출신으로, 그는 David Wilkerson 과 Gary Wilkerson의 오랜 친구이고, World Challenge에서 주최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에 자주 초빙되는 강사입니다

2014년 1월 17일 금요일

주님께서 예비하신 사람

이스라엘 민족은 타락과 하나님에 대한 배신이 만연하여 어려움에 처해있는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에 버궤는 이스라엘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엘리 대제사장은 게으르고 현실에 안주하였으며, 아들들로 하여금 사제직에서의 타락과 방탕함을 허용하였습니다. 이러한 지도층 밑에서, 성전안에서도 불륜과 간음이 만연하였습니다. 그러나 엘리제사장은 그의 안락한 삶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그들을 막기위해 그 무엇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이 떠났다는 의미의 “Ichabod”이란 단어를 모든 종교계에 쓰신적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마귀의 세력이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엄청난 권세를 힘입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은 자리를 잃고 있으며 회복될 가능성이 희박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자리를 위해 예비하신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린 사무엘이었습니다. 그의 주위의 모든 제사장들이 간음과 탐욕의 생활을 할때에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더욱더 깊어질 수록 성령님께서는 그에게 예언을 주셨습니다.그는 하나님의 능력의 살아있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사무엘상 3장의 말씀에 의하면, 사무엘이 자라면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 의미는 그가 하나님의 능력과 권위로 지속적으로 말씀을 선포하였다는 뜻입니다. 그에게 있는 하나님의 권위 때문에 40년 동안 그 어떤 주변 국가들도 이스라엘을 향해 대적할 수 없었습니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 사무엘상 3장 19-21절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국가를 향해 증거가 될 한 사람을 들어 쓰셨습니다. 하나님은 군대나 사람의 단체나 그 어떤 새로운 것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거룩한 방법에 완전히 충성된 단 한명의 의인이 필요했습니다.

2014년 1월 16일 목요일

한 사람을 통해 이루신 하나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겪은 역경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민족이 널리 퍼져버린 배신으로 파멸위기에 처해있었습니다. 마귀는 정치적인 세상권세를 이용하여 이스라엘에 반하는 법을 만들고 이스라엘을 박해함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정복하기 직전에 있었습니다. 원수 마귀는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이 세상의 복음의 증거를 조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이스라엘 역사 중 암흑의 시기였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스라엘인들은 낙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육신의 쾌락과 애굽의 음행으로 타락하기 시작하였고 우상숭배와 간음은 만연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상황은 희망은 없고 민족의 믿음은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강해지는 음부의 권세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어떠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 주변 국가를 그의 막대기 삼아 애굽을 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애굽인들 사이의 내전을 일으키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복수의 사자를 보내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런일을 전혀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완전히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 계획은 한명의 사람, 모세를 들어 쓰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공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억압 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심판하시는도다 그의 행위를 모세에게, 그의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시편 103편 6-8절

모세는 기도하며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애굽의 쾌락, 안락함의 유혹을 거절하고 성령의 완전한 인도하심을 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계획 또는 야망이 없었습니다. 그는 그의 모든 인간적 능력을 버리고 스스로 있는자이신 하나님께 그의 모든 공급과 자원이을 맡겼습니다. 그러고 그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직접 본 체험 후 거룩한 땅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민족이 원수에게 굴복될 것 처럼 보이는 역사 속 가장 암흑의 시기에서 하나님의 증인이 될 사람을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이 한 사람은 하나의 나라를 붕괴시킴과 동시에 다른 하나의 나라를 세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통해 이 모든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2014년 1월 15일 수요일

민족의 마음을 그리스도께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 장8절.

교회의 수적 성장을 위해 전세계를 누비며 교회 성장 전략을 알아보려는남녀노소 수많은 목회자들이 저를 놀랍고 당혹스럽게 합니다. 오늘날 많은 설교자들이 세미나, 컨벤션 그리고 “think-tank(싱크탱크 또는 두뇌집단 : 기관, 기업 또는 정부에서 다방면의 연구를 위해 그룹된 전문가 집단으로 주로 기술적, 사회적 문제를 다룸)”에 참석합니다. 그곳에서는 젊은 목회 전문가들이 도표와 여론조사 등으로 더 큰 교회를 세우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또 어떤 목회자들은 “부흥회”에 모여 교인들에게 성령세례 받는 새로운 방법들을 터득하고자 합니다.

현재 선교 단체들은 그 어느때보다 많은 수의 일꾼들을 파송합니다. 그들의 모집 구호는 이렇습니다. “선교지에 더 많은 인력과 수재가 필요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예수께 인도하는데 있어서 더욱더 자격요건에 합당한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파송받은 수 많은 선교사들이 겨우 몇년 안에 고국으로 돌아옵니다. 그들은 타지에서 과로하고, 낙심하고 또 악한 영에 의해 혼돈하게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그들이 설교한 복음과 그들의 삶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주인되신 주님을 직접 체험하고 아는 지식이 없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은혜를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라와 민족의 마음을 움직이는 구원을 위해서는 새러운 아이디어와 전략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예수께서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서 주인되시지 않는다면 우리의 모든 계획은 헛될 뿐입니다.

그 어떤 시대때 보다 음부의 악한 영이 강하게 돌진해오고 있습니다. 이땅에는 무법과 나라간의 갈등과 전쟁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성도들을 향해 마지막 전쟁을 일으키고자 하는 마귀가 악한 영의 무리를 풀어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항상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감찰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끔찍한 역병과 같은 약물중독과 유산의 대학살에 크게 놀라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혼돈과 타락의 이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어떠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배신에 점점 커가는 악한 영의 세력에 대한 해독제로 무엇을 제시하고 계신걸까요? 이러한 파멸의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반응하실까요?

하나님의 응답은 언제나와 같은 응답일 것입니다. 우리를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의 승리를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의 진실된 증거가 될 변화되고 열정적인 남은 의인들을 일으켜 세우십니다. 오늘날에도 이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적그리스도의 활동에 거룩하고 예수의 능력으로 승리한 하나님의 나라와 주권에 전적으로 순복하는 지체들을 세우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2014년 1월 14일 화요일

사실의 증거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태복음 24장 14절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 인들은 예수의 재림의 때를 이 시대의 흐름과 징표로 판단하려고 합니다. 앞서 언급된 구절에서 예수님께서 명백하게 말씀하셨음에도 사람들은 이 시대의 구체적으로 일어난 사건, 예를 들면 이스라엘로 귀환한 유대인들을 보고 그것이 바로 재림의 징표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고 증거될 때에 끝이 올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여기에서 사용하신 “증언(witness)”이라는 단어는 “간증(testimony)” 이라고 쓰이는 그리스어와 통용됩니다. 문자 그대로 하면 “사실의 증거”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저 복음을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증거와 증인이 되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전파하는 복음은 그의 실제의 증거가 되는 생명이 뒷받침 되었을 때만이 효과적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수천개의 복음주의 교회가 있는 미국은 확고하고 열정적인 복음을 위한 증인이 많을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교회들이 그리스도의 진정한 복음을 이 세상과 타협하였고, 심지어 수많은 복음주의 교회들에서도 그리스도를 주인 삼은 삶의 간증이 있는 교인들은 매우 적습니다. 그러한 간증이 없는 그들은 그 지역과 이 나라를 향한 진정한 증거가 아닙니다.

물론 예외도 있습니다. 거대한 교회를 짓고자 계획하시던 어느 침례교 목사님이 계십니다. 목사님의 교회의 규모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고 목사님은 교회성장운동에 관한 공부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 목사님의 부인께서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기도하고 주를 구하고자 하여, 머지 않아 목사님도 부인과 같이 하나님을 구하며 기도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목사님은 지체없이 거대한 교회를 향한 꿈을 버리고, 그가 설교하는 복음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최근 그의 설교중에 그는 교회 앞에 큰 화면을 설치하였습니다. 그는 교회를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교회의 죄악에 관하여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보게 될 것입니다!”
목사님은 그렇게 죄를를 연달아 화면에 올렸습니다. 간음, 불륜, 술 중독, 약물 남용, 포르노그래피 등. 그러고는 이렇게 설교를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교회를 짓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것을 하기 이전에 그리스도 생명의 성전인 우리의 삶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복음 안에 숨쉬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날 그 교회에서는 성령의 강력한 역사하심이 있고, 사실의 증거와 간증이 있는 복음을 듣기 때문에 사람들은 줄지어 주 앞에 모여 삶을 바로 잡고자 합니다.

2014년 1월 13일 월요일

영적 감옥 by Gary Wilkerson

영적 감옥은 마귀가 우리를 감금하기 위해 사용하고 또는 우리 자신이 우리를 갇히게 하기도 합니다. 베드로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는 이러한 영적 감옥에서 자유함을 받는 방법을 주십니다.

사도행전 12장에서 베드로는 헤롯왕에 의해 감금됩니다. 예루살렘에서 수천명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아 헤롯은 위협을 느꼈던 것입니다. 물론 언제나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일을 하실 때 원수되는 마귀는 격분합니다.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일이라” 사도행전 12장 3절.

헤롯왕은 교회의 가장 성스러운 절기인 부활절에 가장 담대한 신자를 처형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을 두려움에 떨게하여 말문을 막게하려는 자신의 의도를 피력하고자 하였습니다.

헤롯은 군대를 보내어 베드로를 억류하고 감시하도록 하였습니다.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사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12장 4절) “백성앞에 끌어내고자” 라는 구절에서의 헤롯왕의 의도는 공개적으로 베드로를 처형하려는 것입니다.

구절에서 “잡으매”라는 부분은 그저 잡는다는 의미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힘보다 크나큰 힘을 말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저 세상 권세에 의해 체포된 것이 아니라 악신에 사로잡혀 세상 권세에 힘입은 사람의 영적 감옥에 감금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도 이러한 영적 감옥에 대하여 잘 알고 계십니까? 당신이 지금 현재 감금되어 있을수도 있겠습니다. 당신의 기도는 “주님, 저는 수 천 번 기도를 했지만 아무것도 변하는 것이 없습니다. 저는 언제쯤 자유 할까요?” 라고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읽을 그 다음 구절은 모든 것을 변화시킵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So Peter was kept in prison, but earnest prayer for him was made to God by the church”(12장 5절) “But(그러나)” 이라는 단순한 단어가 모든 이야기를 완전히 변화시킵니다. “사자와 같이 으르렁거리는 원수 마귀가 역사하고 있다. 그러나 유다의 사자 또한 역사하신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고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자 하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 구절에서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하는 장면이 정말 좋습니다. 겸손히 기도하는 형제 자매들의 모임이 그려집니다. 수많은 크리스천들처럼 그들의 삶에서는 작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의 기도에게는 가장 두꺼운 감옥의 벽도 맞서지 못했습니다.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숫군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12장 6-7절

베드로가 주위를 살펴보니 그의 쇠사슬은 벗겨지고 감시하던 군사들의 눈은 멀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의 하는 것이 참인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12장 9절
이 다음 구절이 이 모든 구절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성으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절로 열리는지라 나와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12장 10절

2014년 1월 10일 금요일

믿음에 굳게 서서

누가복음은 귀신들린 아들을 예수님께 데려왔던 한 아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아비에게 아들을 데려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들을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 그가 올 때에도 마귀가 그를 거꾸러뜨리고 쥐어뜯으매…” (누가복음 9:41-42) 여기서 ‘쥐어뜯다’라는 단어는 난폭하게 경련을 일으키며 격렬히 흔들어 댄다는 뜻입니다.

그 아들은 그리스도께로 왔고 곧 자유롭게 되려는 찰나였으며, 어둠의 왕국으로부터 나와 빛의 왕국으로 옮겨졌습니다. 마귀는 또 하나의 희생자를 잃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분노를 일으키며 마지막으로 그 아들을 땅바닥에 내던지며 난폭하게 격동했던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그 아들을 구원하시기 전에 그를 죽이고 그의 영혼을 가져가려 했습니다.

사탄은 지금도 당신에게 그와 같은 일을 하려고 합니다. 당신이 그리스도께로 향하는 순간, 그는 마지막으로 맹렬한 공격을 시도할 것입니다. 그는 당신 눈앞에 가장 현란한 유혹을 펼쳐놓을 것입니다. 그는 당신이 죄와 정욕으로부터 절대 자유로울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거짓말로 당신을 넘어뜨리려 할 것입니다. 그는 당신이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으며, 언제나 그에게 속해있다고 당신을 설득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당신이 예수님께 다가가는 순간 마귀는 아무 힘도 없게 됩니다. 그리스도께로 향하는 자는 어느 누구도 그가 막을수 없습니다! 그는 그 귀신들린 아들이 예수님한테 가는 것을 막을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셔야 했던 일은 단 한마디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부정한 영을 꾸짖으시고 그 아이를 낫게 하사, 그의 아버지에게 도로 넘겨주시니라.” (42절)

야고보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에게서 도망하리라.” (야고보서 4:7) 그렇다면 당신이 마귀를 어떻게 대적해야 할까요? 당신은 그것을 단지 믿음만 가지고도 할수 있습니다! 그저 단순하게 예수님께로 다가가서, 그분이 당신을 사탄의 손아귀로부터 건져주실 것을 신뢰하세요. “믿음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 (베드로전서 5:9)

당신은 오늘 자유롭게 될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탄에게 이렇게 말할수 있습니다. “내가 이 메시지를 다 읽고난 후 나는 자유로운 자가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모든 정욕과 사악한 열정으로부터 구해주실 것이다. 그 모든 불경건함은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당신 앞에 힘든 시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영광스럽고 찬란한 빛이 당신께 더욱 밝게 비춰질 것입니다!

2014년 1월 9일 목요일

예수님께서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므로 너희 아비의 욕망들을 행하려 하느니라.” (요한복음 8:44)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한테서 그들이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종교적 군중을 향해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들이 겉으로는 깨끗해 보였지만, 속은 탐심과 욕정, 그리도 우상숭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죄의 질병’이라고 불리는 질병이 있는데 그것은 마귀의 자녀를 치는 병입니다. 그들이 더 깊은 죄악으로 떨어질수록 이 질병은 더욱 심해집니다. 죄가 갑자기 그 재미를 잃어버리고, 그것이 지루해지며 더이상 성취감을 주지 못할때, 이 질병은 절정에 달합니다.

이 ‘죄의 질병’은 한 유명한 텔레비전 배우를 자살로 몰고 갔습니다. 당시 그 배우는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연속극의 주연이었고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몇몇 영화의 주연 계약서에 서명했으며 매우 아름다운 여배우와 데이트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명성과 부, 그리고 건강한 육체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곧 그의 생명 없는 시체가 싸구려 포르노 호텔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명백히도, 어떤 세상의 쾌락도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의 삶은 공허해지고 무의미해졌으며, 급기야는 자살로 그 모든 것을 끝냈던 것입니다. 그의 죽음은 ‘죄의 질병’의 결과였습니다!

만일 당신의 삶을 아직도 예수님께 드리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는 마귀가 당신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그는 당신의 삶을 지배하며 통치해왔습니다. 그러나 아마 사탄은 지금 당신께 변화가 오고 있음을 보며, 당신에 대한 그의 주권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갑자기 당신은 죄의 단맛을 잃어버렸습니다. 당신은 자주 다녔던 악한 장소에 더이상 가지 않고 파티를 하려고 조급해하지도 않습니다. 돈은 더이상 당신을 만족시키지 못할뿐더러 섹스나 재물도 당신을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당신의 마음은 점점 더 공허해지기만 합니다.

이제 당신은 이 메시지를 읽고 있습니다. 아마도 당신은 성경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누가 당신을 권고해서가 아니라, 당신 안에서 무언가 당신으로 하여금 그것을 들어 펼치도록 만듭니다.
사랑하는 자여, 지금 예수님께서는 당신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시고 마귀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한가지 있는데, 그것은 당신이 그 문을 그리스도를 향해 여는 것입니다!

2014년 1월 8일 수요일

마귀의 거짓말을 제압하세요

마귀는 지독한 시험들을 가지고 우리에게 달려들지만, 우리는 그를 두려워하면 안됩니다.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설교자들중 한분인 존 녹스(John Knox)는 우리가 어떻게 마귀의 거짓말을 제압할수 있는지의 훌륭한 실례입니다. 그의 경탄할 만한 설교는 왕들과 여왕들을 떨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끝까지 타협하지 않으며, 자기가 설교했던 복음을 실천하는 의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녹스가 그의 말년에 위독하게 되었을때 사탄은 또 하나의 시한부를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녹스는 아마도 사도 바울만큼이나 지옥을 격앙케 했을 것입니다. 그때 마귀는 그의 짧은 여생을 노려, 그가 두려움과 불신을 가지고 영원으로 들어가도록 계획했습니다.

녹스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온 생에 걸쳐서 저는 사탄으로부터 시험과 공격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가 겪는 시험은 가장 큰 두려움으로 나를 공격했습니다. 그는 저를 집어삼키려 작정했고 저를 끝장내려고 했습니다. 전에는 그가 제 눈앞에 저의 모든 죄를 나열하곤 했습니다. 그는 이 세상의 유혹들로 나를 함정에 빠뜨리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그러한 공격들을 파쇄해주셨습니다. 이제 그는 다른 방법으로 나를 공격했습니다. 이 교활한 마귀는, 내가 사역에 충실함으로써 천국을 얻었다고 나를 설득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녹스는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구원이 주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얼마나 많은 선행을 했다 하더라도,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로 말미암아 구원받을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진술하며, 그것에 대해 그의 온 인생을 설교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탄은, 녹스가 자신의 믿음 안에서 실수하게 함으로써 이 설교자를 저주하려 했습니다!

죽기 바로 직전에 녹스는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성경 말씀으로 이 불화살을 꺾으며 그 불을 꺼버릴수 있도록 능력 주신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존재하며, 내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가 내 안에 있도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는 승리를 얻었다. 이 짧은 시간에 저 유혹자가 또다시 나를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나는 곧 이 필멸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신성한 불멸로 바꿀 것이다!”
존 녹스의 증언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는 성경 말씀으로 사탄을 대항했고 주님께서는 그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의 집으로 갔습니다!

2014년 1월 7일 화요일

새 힘을 주시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그분 왕국을 위한 새로운 과제로 발을 들여놓은 자가 있다면 누구든 막론하고 그에게 물어보십시오. 사탄이 고난의 화살을 계속 던지며 분노와 함께 그에게 다가왔다고 그가 당신께 말해줄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그리스도의 삶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자마자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왔고, 하늘로부터 그분을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선포하시는 음성이 들리기가 무섭게 사탄은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삼켜버리고, 그분이 사역을 못하게 방해하기 위해서는 일할 시간이 사십일 주야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4장 참조)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믿음의 반석이라고 선포하자마자 사탄은 제자들을 까부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를 불신과 반역으로 몰고 갔습니다. (누가복음 22:21 참조) 사탄은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이 실현되기 전에 베드로의 삶에서 재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유혹은 결국 실패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지옥과도 같은 공격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사역의 부르심을 받았을때, 그러한 일이 제게도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기도로 많은 시간을 보낸후, 저는 제 사역이 세계 전역의 목회자들께 말씀을 전하는 사역으로 확장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감지했습니다. (제가 타임스퀘어 교회의 사역이나, 여러분께 이러한 글을 쓰는 일을 멈추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가끔 그 사역이 추가로 더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후 저는 프랑스, 루마니아, 폴란드, 그리고 발칸에서 주최되는 목회자들의 모임에서 말씀을 전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 여행을 계획하자마자 사탄이 들어와 방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 제 건강은 최고로 좋았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제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불과 몇시간 만에 저는 너무도 약해졌고, 거의 걸을 수도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저는 속에서 무엇이 찌르는듯한 심한 통증을 느꼈고, 제 복부에는 곧 반점들이 돋아나기 시작했습니다.

한 의사 친구는 제가 대상포진에 걸렸다고 말했는데, 이 질병은 어린 시절에 앓았던 수두의 잔재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귀가 비웃으며 이렇게 말하는듯했습니다. “그래, 네가 이제 새로운 사역을 맡았구나, 그렇지? 천만의 말씀, 그렇게는 안될거야!”

그러나 그 사역을 위해 여행하는 동안 몇주 이내에 그 모든 욕창은 사라졌습니다. 주님께서는 저를 일으켜 세우셨고 제게 새 힘을 주셨습니다. 그 모든 것은 지옥에서부터 침략해오는 전투였던 것입니다! 제 오랜 사역의 여정은 항상 이런 식이었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새 사역의 부르심을 받을때마다 언제나 마귀의 공격이 뒤따랐습니다.

2014년 1월 6일 월요일

구덩이에 던져지다! by Gary Wilkerson

창세기 37장부터는 요셉의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이 이야기는 “경찰관들”이라는 한 텔레비전 드라마의 에피소드처럼 읽힙니다. 요셉의 한 형은 강간범이었고, 그의 다른 형들은 그를 죽이려 했다가 결국에는 노예로 팔았습니다. 그의 친부 야곱조차도 요셉이 형들에 의해 고통당하는 것에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그의 가족의 불찰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당신을 묘사합니까? 당신이 집을 떠난지 꽤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당신 가족의 문제로 인해 심적 고통을 품고 계십니까? 아니면 당신의 문제는, 다른 사람들의 고의적 죄가 당신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일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요셉 상사의 아내가 그를 유혹했던 사건이 바로 그 실례입니다. 요셉이 그녀를 거부했을 때, 그녀는 앙심을 품고 그에 대해 거짓말을 했고, 그 결과로 그는 또 다른 구덩이에 던져졌는데, 이번에는 사형수 감옥이었습니다.
요셉이 그 모든 구덩이로 떨어졌을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 왕국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일을 가속화 하셨음을 성경은 명백히 말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요셉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습니다. “나는 모든 시험을 충실하게, 기꺼이 감당해낼 자를 원한다. 그리하여 내가 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그를 전략적으로 배치할 수 있도록 말이다. 나는 그 일에 요셉을 선택했다.”

요셉 인생의 놀라운 경로를 생각해 보십시오. 불과 몇년만에 세계의 가장 막강한 제국에서 서열 두번째의 통치자가 되었던 한 십대의 목동이 여기 있었습니다. 그것은 저로 하여금 이렇게 기도하게 만듭니다. “하나님, 제 안위한 삶으로부터 저를 끌어내 주시옵소서. 저는 제 삶에서 당신 목적들의 성취를 위한 당신의 역사하심을 보기를 원합니다.”

당신은 다음과 같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주님, 저는 당신이 가라 하시는 곳으로 어디든 기꺼이 가겠습니다.” 저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종류의 믿음을 갈망하고 있음을 압니다. 그들은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주님, 저는 이것이 다가 아님을 압니다. 저는 이 지구상에서 그저 공간만 차지하는 존재로 남아있기를 원치 않습니다. 제가 당신의 왕국에 공헌할수 있도록 당신이 제 안에서 일하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향한 우리의 포부가 크면 클수록, 우리의 구덩이 또한 클 것입니다. 당신은 그분의 영광이 반영될수 있을 만큼의 하나님과의 연합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연합으로 인해 당신의 한계를 거의 초월하는 시험을 받을 준비를 하십시오. 진실을 말하자면, 믿음은 거의 모든 경우에 우리를 곤경의 구덩이로 밀어 넣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사용하기를 원하신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들로 하여금 구덩이로 들어갈 준비를 해야만 할 것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세기 50:20)

2014년 1월 3일 금요일

마귀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당신은 최근에 열심히 기도하겠다는 새로운 다짐을 하였을지도 모릅니다. 또는 마음과 몸을 정결케 하고 하나님께 산 제사를 드리겠다는 기도를 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기도를 하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건성한 믿음이 아닌 나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헌신과 약속은 마귀를 그 무엇보다 더 심하게 격앙케 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바쳐진 삶이 세상의 어두움에 크나큰 위협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그 누구든지 하나님을 온 마음 다해 찾는다면 하나님을 만날 것이고, 기도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국에 승리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기도를 간구하는 시간과 그의 응답이 이루어 지는 시간 사이의 기간이 존재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것이 바로 마귀가 일할 수 있는 짧은 시간입니다! 그는 끈질기게 부르짖은 과부가 응답을 받기 전까지 어느 기간 동안 기도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의 응답도 완벽한 시기에 올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동안, 마귀는 우리를 끊임없이 짓밟고 삼키려고 합니다.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님, 모든 것을 모두 주님께 드립니다!”라는 기도로 부르짖을 때마다 받아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정결함, 순복 그리고 갈급함은 한번의 감정적 절규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께서는 지속된 결단과 주를 갈망하는 마음을 돌이키지 않을 것이라는 어떠한 증거가 보이기 전까지는 응답하시지 않으십니다.

마귀는 이것 또한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를 지켜보며,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진정한 헌신과 제사가 없을 때를 인식하고 우리가 진정으로 주를 따르지 않을 때 우리를 놓고 시간낭비를 하지 않습니다. 그는 우리의 연약함과 죄악에 그저 우리를 두고 떠나버립니다.

그러나 우리 안의 진정한 헌신과 제사, 죄에서 자유함을 갈망할 때 그리고 모든 어리석음을 예수를 위하여 내려놓는 모습을 볼 때에 마귀는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우리가 마귀의 수중에서 영광으로 걸어가며, 믿음 따라 승리의 삶을 살기까지 마귀에게는 짧은 시간만이 있음을 마귀는 알고 있습니다. 그때는 바로 마귀가 지옥으로부터 보낼 수 있는 가능한 모든 공격을 가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에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무기력함에서 벗어 나아가라. 산 제사로 주님께 너의 몸을 드리고, 마귀는 그가 소유한 모든 능력으로 너의 삶에 시험을 할 것이니 그런 시험을 대비하기 위하여 너는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으라!
마귀는 당신의 연약함과 약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유혹과 시험의 홍수로 당신을 끌고 갈 것입니다. 마귀는 당신의 승리가 코앞에 놓여져 있으며, 그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기에 필사적으로 공격할 것입니다.

2014년 1월 2일 목요일

얼마 남지 않은 때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요한계시록 12장 12절)

이 요한계시록의 구절에서는 마귀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전면적인 전쟁을 선포하였습니다. 또한 이 구절에서 마귀가 그의 일을 마치기 위한 기한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마귀가 끊임없이 우리를 파괴시키려고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대적할 마귀의 계략과 계획을 가능한 많이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고린도후서 2장 11절)

베드로도 우리에게 이러한 경고를 줍니다. “근신하라 깨어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베드로전서 5장 8절) 이는 마귀가 우주 같은 허공을 맴돈다는 뜻이 아니고, 악령에 사로잡힌 영혼에게 명령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마귀에 승리하셨을 때에 마귀는 땅으로 내리침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세계는 지금 그리고 이곳에 제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9절)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생각하는 대로 사탄은 전능한 힘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에 승리하셨을 때에 모든 권세에서 박탈되었고, 사탄은 사람의 마음을 읽는 전지한 능력이 없습니다. 사탄은 편재하지 못합니다. 그 의미는 동시에 여러 장소에 있을 수 없으며 한 번에 한 장소에만 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세상의 정사와 권세를 가진 어두움의 주권자들이 사탄의 지시에 따라 정보를 제공해줍니다. 그들은 당신이 기도할 때 듣고 그리고 하나님께 순종할 때 봅니다. 그리고 당신의 기도와 순종이 사탄을 격앙케 합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2절에 의하면 마귀는 그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주께서 재림하시기까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마귀가 자신의 일을 성취하는데 필요한 연속적으로 제한된 단기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제한된 시간인 것입니다. 바로 구원받아 승리의 삶을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맞서야 하는 얼마 남지 않은 짧은 시간들입니다.

2014년 1월 1일 수요일

우리는 누구를 믿는가?

어느 신실한 크리스천이 제게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믿어야 하는 것입니까? 수년간 저는 말세가 다가왔다고 주장하시는 많은 목사님들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계속 그들의 주장은 일치하지 않았고 이제 저는 그들이 그저 책을 판매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어떤 저자들은 진실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세가 다가왔다고 말씀하셨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누구를 믿어야 하는 것입니까?”

때때로 저는 이러한 일이 있을 때면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파왔습니다. 저는 목청껏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오 주님. 저는 심판의 날이 가까워졌다는 설교를 수년간 해왔습니다. 저는 책을 쓰며, 설교를 통해 다가올 경제 위기에 대한 경고를 하였으나 정 반대의 일들만 일어났습니다. 저는 미국이 번영하고 즐겁게 그 길을 나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 나라는 1주에 5000명이 넘는 아기들을 죽이고 있고 사람들은 아주 추잡스러운 죄의 나락으로 쓸려 내려가며, 하나님을 모든 기관과 단체에서 밀어내버리고 있습니다. 주님, 이것이 언제까지입니까?”

하나님께 수년간 신실한 믿음으로 현 세대에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예언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예레미야처럼 저 또한 하나님께 혼란과 좌절감을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것 같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 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 거리가 됨이니이다” (예레미야 20장 7-8절)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경고를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그의 예언은 근거 없는 말처럼 들렸지만 그는 예언을 계속 하였습니다. 저는 예레미야가 느꼈던 그러한 불타는 영혼의 열정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저는 여느때보다 더 미국이 극심한 불황을 겪을 것이라는 큰 확신이 듭니다. 주식시장이 얼마나 크게 상승하였다가 다시 놀랍게 회복되든지 상관없이 미국은 아직도 강력한 추락 직전에 놓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국가 미국의 오만함으로 하나님께서는 등을 돌리셨고 그의 심판날이 다가온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백성을 그 어떤 환난에서도 보호하시고 축복하신다고 하셨던 말씀을 통한 언약을 지키신 신실하신 하나님께 저는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하는 자녀들은 두려워하거나 근심, 염려 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일이 거룩하신 아버지의 통치권 안에 있습니다. 비록 나의 국가인 미국에 다가오는 주님의 심판이 보이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주신 언약을 알기에 기뻐합니다.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시편 9장 8-1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