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30일 수요일

사탄에게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마세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이 세상의 통치자가 오기 때문이니라. 그는 내 안에서 아무것도 취하지 못하느니라.” (요한복음 14:30) 그분은 본질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사탄이 내게 온다 하더라도, 그는 발 디딜 곳을 찾지 못할 것이다. 나는 전적으로 내 아버지의 권한하에 있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복된 삶을 사는 성도라면 누구의 몸이나 영도 사탄이 침범할 수 없습니다. 그가 발 디딜 틈을 얻으려면 작은 한 부분이라도 허용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판 값의 일부분”을 감추고 있는 사람한테서만 가능합니다. 그에 대한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사도행전 5장에서, 아나니야와 삽비라 부부가 그들의 땅을 판 돈의 일부를 예루살렘의 초대 교회에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베드로의 발 앞에 그 돈을 놓았을 때 이 사도는 당혹스러워하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찌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님께 거짓말을 하고 땅값의 얼마를 감추었느냐?” (사도행전 5:3) 베드로가 이 말을 하자마자 아나니야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고, 그의 아내 또한 곧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해 교회가 무엇을 배우기를 원하셨을까요? 저는 이것이 아나니야와 삽비라가 소유했던 물리적 땅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그들 마음 중심의 내적 영역에 대한 문제라고 믿습니다.

이 부부는 그들이 하나님께 95퍼센트만 순종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남은 한 작은 부분에 불순종한다 해도 안전하리라 믿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의 가르침을 들었으나 그들이 진리로 알고 있었던 것에 대항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이렇게 설득시켰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면서 이 한 가지는 포기하지 않아도 돼.” 그것은 성령께 거짓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감추었던 일부의 돈은 금전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그들 마음속에 들어있는 한 조각의 탐욕이었습니다. 그 한 조각은 사탄에게 요새를 마련해주기에 충분했으며, 그들이 갖고 있었던 하나의 완고한 불순종으로 그들은 원수가 그들의 마음을 차지하도록 허용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또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바울이 경고했던 이유입니다. (에베소서 4:27) 아나니야와 삽비라의 교훈은 명백합니다. 삶을 극복하는데에 따르는 대가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더 이상의 어둠이나 숨겨진 욕정, 또는 반항 없이 우리의 삶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사탄에게 한치의 공백도 허용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와 요새를 세우기에 필요한 모든 것입니다.

2014년 4월 29일 화요일

작은 발판

야고보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며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이 아니요, 땅에 속한 것으로 관능적이며 마귀에게 속한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거기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느니라.” (야고보서 3:14-16)

여기서 야고보가 말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주목하십시오. 13절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지식을 갖추고 지혜로운 자가 누구냐?”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위대한 영적 지혜와 명철을 갖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너희 가정에 쓴 뿌리가 있고 너희 마음에 분쟁이 있으며 너희 일터에 질투가 있다면, 너희가 영적이라고는 아예 생각지도 말라. 너희는 거짓 망상에 사로잡혀있는 것이다.”

야고보가 분쟁과 쓴 뿌리에 대해 언급할 때, 그는 말다툼하는 것과 트집 잡기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모든 것이 사악하고 관능적인 악의 소행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짧게 말하면, 쓴 뿌리를 붙들고 있는 사람은 누구든 분쟁을 초래합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그러한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마귀의 소유물이 되도록 내어준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은 그들의 쓴 뿌리를 사탄의 전유물로 만든 사람들을 아십니까?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외적 사람은 그들 내면에 품고 있었던 어둠을 바깥으로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그들의 몸은 쇠약해지기 시작하고, 병들고 움츠러들며 정신적 불균형으로 고통당합니다. 마귀에게 그러한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그는 극도의 파멸을 향해 일합니다.

자, 그러니 당신의 원한을 계속 붙들어 보시죠. 당신의 쓴 뿌리도 잘 간직하세요. 마음속의 분노를 계속 불러일으키세요. 만일 당신이 그렇게 한다면, 당신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전적으로 반역하는 것이고, 사탄에게 당신 자신을 내어주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영적으로 눈멀게 될 것이며 마음은 더욱 강퍅해질 것입니다.

한편, 만일 당신이 영적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한다면, 당신이 얼마나 심한 상처를 입었다 할지라도, 용서를 통한 자비와 평강의 지혜를 보이게 될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여행하는 동안, 저는 사탄이 얼마나 작은 틈새를 타고 들어와 악귀적 발판으로 삼는지의 강력한 실례를 보았습니다. 제가 올리브 산에서 성지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 저는 이슬람교도의 Dome of the Rock 사원이 자리 잡고 있는 땅을 보았습니다.

그 작은 땅은 아마 한 에이커의 일부분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어쨌든 사탄은 그것에 손을 대 자신을 위한 사원을 세웠고, 성경에서 언급했듯이 이제는 성소를 훼파하는 가증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마귀는 한때 하나님께서 선택했던 백성 이스라엘의 중심부에 그의 권능을 주목시키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그가 하나의 작은 발판이라도 취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에게 가장 작은 발판 하나라도 주어졌을 때 그가 행하는 일에 대한 생생한 실화입니다.

2014년 4월 28일 월요일

저도 같이 가렵니다 by Gary Wilkerson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디모데전서 1:3) 그러나 그의 멘토를 너무도 존경했던 디모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도 같이 가렵니다.”

저는 디모데가 왜 바울과 같이 가기를 원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가 바울을 존경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가 에베소에서 좀 실망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때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그들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었고, 독선적인 삶을 살며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애썼습니다. 독선적으로 된다는 것은 대게 기만당했음을 의미하며, 탐욕스러워지고 자기 멋대로 야심만만해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때는 마게도냐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도 기근이 있었으며 교회들은 극도의 빈곤을 겪고 있었습니다. 마게도냐의 교회가 그러한 분투를 하고 있을 때에 에베소의 경기는 여전히 좋았으며 많은 물자를 소유하고 있었으나, 그것을 자기들을 위해서만 갖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에베소인들)이 교만해지지 않도록 주의를 시키고, 부유함의 불확실성에 소망을 두지 않도록 하라.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디모데전서 6:17-18)

다른 번역은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에게 명하여 너그러운 자들이 되게 하라.” 그런데 왜 바울은 다소 터무니없는듯한 말을 했을까요? 사람들에게 너그러우라고 명하는 것과 단지 자신들을 위해서만 쓰지 말고 하나님의 풍요한 선물을 나눠주라고 명하는 것은 좀 어색한듯합니다. 바울은 왜 그들에게 주라고 명했을까요?

바울이 디모데로 하여금 에베소 사람들을 향해 베풀 것을 “명하라”고 했을 때는, 그들로 하여금 단지 나눠주게끔 하려는 것만이 아니고, 그들의 삶에 은혜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에베소 교회에는 없는 것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실 마게도냐 교회는 현실적으로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으나 믿을 수 없을 만큼 관대했습니다. 그들은 단지 나눠주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한도에 훨씬 넘치게 주었습니다. (고린도후서 8:1-3 참조) 우리는 마게도냐 사람들이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했다”고 읽습니다. (고린도후서 8:4)

마게도냐 교회는 은혜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은혜 안에서 살고 있었고, 디모데는 그것을 직접 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2014년 4월 26일 토요일

당신의 과거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by Claude Houde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끝이 없으며 무궁무진하고 헤아릴 수 없으며 무한합니다. 날이면 날마다 그분의 언약과 그분의 능력, 그리고 그분의 용서로 새벽 동이 틉니다. 매일 새 아침은 새로운 시작과 가능성의 아름다움을 알리며 생명과 부활, 그리고 “함께 새롭게 시작하자”는 말씀으로 가득하고, 우리 마음 판에 그분의 비전과 희망의 계획을 새기는 것을 허락하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 자비의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가 위태롭게 빠지고 있는 운명론과 체념의 유사로부터 너희를 구출해낼 것이다. 나는 너희가 경험하고 실행하며 의사소통하게 될 신선한 소망과 확신을 줄 것이다. 너희의 부활한 마음의 풍요로움으로부터 너희 입은 다시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누가복음 6:45 참조) 나는 너희가 단순하며 즐겁게 나눌 비전을 줄 것이며 그것은 너희 주위 사람들을 변화시킬 것이다. 나는 너희 가슴판에 나의 계획, 즉 너희 장래의 소망, 너희 자녀들, 너희의 가정, 너희의 학업 또는 경력, 그리고 내 안에 있는 너희의 개별적 결실의 초자연적 개화를 새기기를 원한다.”

하나님은 더 나아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의 모든 영역에서 너희를 위해 준비해놓은 수많은 선한 일들의 지식과 명철을 너희에게 불어넣어 줄 비전을 갖고 있다. 거기에는 지연과 극복하기 힘든 전쟁과 싸움이 있을 것이지만, 내 아들과 딸들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만일 약속이 지연되면, 기다리는 과정 동안 약속을 향한 믿음으로 신뢰하라. 내 백성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이 세상 어디에 있든지, 그리고 당신의 경험과 간증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 메시지는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당신의 과거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이사야 43: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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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클라우드 어드(Claude Houde) 목사님은 캐나다 몬트리올에 위치한 New Life Church의 담임목사이며, 세계 전역에 걸쳐 World Challenge에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s의 주된 강사입니다. 그의 지도력으로, New Life Church는 소수 인원으로 시작해서 개신교 교회로서는 성공하기 힘든 캐나다의 어려운 지역에서, 지금은 교인 수가 3,500명이 넘는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2014년 4월 25일 금요일

능력 있는 하나님의 음성

사탄이 그리스도의 교회에 맞서 일하는 방법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핵심은 “반란(rebellion)”이라는 단어로부터 옵니다. 쉽게 말해, “반란(rebellion)”이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대한 저항이라는 뜻입니다. 루시퍼가 하나님에 맞서 전쟁을 선포하였을 때 그는 주권자에 대한 반란과 저항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도 여러분도 이해하고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과 해와 달과 별들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삶을 지으시고 지속적으로 생명을 낳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의 말씀으로 세상 왕들을 무너뜨리기도 하시고 나라를 일으키시기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축복하시고, 구원하시고, 심판하시고 파괴시키십니다.(시편 29:3-9 참고)

사탄의 목표는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저항하고 반란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에게 반란이라는 생각을 심어 하나님을 의심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만 내 뜻대로 행동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이 인류를 멸망하게 했습니다.

사탄은 택하신 나라인 이스라엘에게도 심은 반란의 씨앗으로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들의 조상들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들의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이 하나님께 충성하지 아니하는 세대와 같이 되지 아니하게 하려 하심이로다”(시편 78:8).

“그러나 너희가 올라가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신명기 1:26)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하나님께서 정확하고 분명하게 여기의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셨지만 그 모두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귀에게 유혹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당신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도록 유혹할 것입니다. 사탄은 노골적이고 뻔한 유혹으로는 당신이 넘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주 미묘하고 감지하기 힘든 방법으로 생각 속으로 침투하여 당신의 삶을 고난과 시험, 분쟁 등으로 덮칠 것입니다. 그리고 사탄은 바울의 사역을 방해하였던 것과 같이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을 막으려고 할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탄의 미묘한 유혹에 먹잇감이 되었습니다. 시편에서는 그러한 성도들에 대하여 이렇게 언급하였습니다.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시편 107:10-11)

2014년 4월 24일 목요일

변함없는 믿음의 싸움

만약 당신이 그리스도의 교회의 성도라면 미친 악마를 대할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받아들이기도 생각하기도 싫겠지만, 전심으로 예수를 따르고자 한다면 사탄이 당신을 파괴하기 위해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당신의 삶에 수많은 문제와 어려움을 몰아오게 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경고를 줍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베드로전서 4:7). 다른 말로는 바울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때가 아닙니다. 영분별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생과 사의 문제입니다.”

왜 이렇게 심각하게 바라보는 것일까요? 말세가 다가오고 우리의 대적은 압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사자처럼 풀에 숨어 공격하기 위한 기회를 기다리며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집어삼키려고 하고 그리스도 안의 믿음을 완전히 파괴하고자 합니다.

어떤 크리스천들은 악마에 대하여 논하지도 말아야 하며 그저 무시하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악마의 존재에 대하여도 의문을 제기합니다. 예로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악마도 지옥도 천국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영혼의 대적은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몇몇의 명백하고 널리 알려진 인물이 있습니다. 그들은 루시퍼, 사탄, 마귀, 속이는자, 방해자, 사악한 자, 강탈자, 사기꾼, 세상 신, 어두움의 지배자, 옛뱀으로 묘사됩니다.

악마에 대한 이러한 단호한 묘사들은 악마의 실재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말씀으로부터 악마가 실제로 큰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심지어 지금도 이 땅에서, 나라와 도시, 교회와 가정, 그리고 개개인의 삶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를 향한 그의 싸움의 방법과 전략에 대하여 모르고 있으면 안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베드로전서 5:8-9)

2014년 4월 23일 수요일

숨김없는 삶을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이 펴놓은 책처럼 숨김없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의 음흉함, 기만 그리고 사기 등의 숨겨진 죄를 모두 없애고자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님께서는 우리 안의 그리스도에 반하는 모든 것을 찾아 제거하려고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정으로 변화를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내려놓을 수 있게 됩니다.

상담, 자구계획 그리고 관계개선 등은 모두 하나님께서 일하시며 변화시키시기 전에는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은닉해 놓은 죄를 모두 내려놓기 전까지는 모든 계획들을 잠시 제쳐두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변화시키는 성령님에게 전적으로 순복 한다면 당신이 변화하였다고 다른 사람에게 설득시키려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당신이 진리의 말씀으로 살면, 성령님께서 당신 주위의 사람들의 마음에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고린도후서 4:2)

여기서 천거(commending)한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인정”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그 누구에게 자신이 변화하였다고 감명을 주려고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양심에 대하여 ‘이 사람은 나의 축복과 인정을 받았다’라고 말씀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말로도 성령님께서 당신 안에 주신 내적 증거는 논박할 수 없습니다. 사실은, 당신 안의 변화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거나 자신을 향한 질책으로 받아들여지게 될 것입니다. 당신 안에서 발하는 그리스도의 영이 그들 자신의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당신 안의 변화로 다른 이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관계뿐 아니라 가정 안의 영적 권위의 회복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다른 이들과 상황의 변화해야 된다는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께서 당신 안에 일하시는 변화로 힘을 얻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주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통치권 안에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뜻에 나를 내려놓을 것입니다. 내 안에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주세요.”

지금이 바로 당신의 보든 상황들을 하나님의 손에 내려놓을 때입니다. 당신의 위기에서 나오려고 하는 노력마저도 내려놓으십시오. 대신에 하나님께서 당신 안에 일하셔서 주시는 변화와 그의 승리에 초점을 맞추고 진리의 말씀 안에 머무르십시오. 부지런히 하나님을 찾고 성령님을 믿으십시오. 당신의 마음에서 지속적으로 울부짖으십시오. “하나님, 나를 변화시켜주세요.”

2014년 4월 22일 화요일

주님, 나를 변화시켜 주세요!

저는 크리스천 상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수많은 사람들이 상담으로 삶, 결혼과 가정의 치유를 기대합니다. 정말로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상담이 주요 사역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대부분의 큰 규모의 교회들에서는 적어도 한 명의 전임 상담가가 있고 타임스퀘어 교회에서도 수많은 상담가들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차례, 수개월 상담을 받아도 전혀 해결되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목회자 또는 상담가가 진리의 말씀을 한 구절 한 구절씩 짚어주더라도 결과적으로 해결은 얻지 못합니다. 이렇게 말해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문제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실제를 보이셨음에도 그들의 죄를 버리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상담은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베일이 이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죄와 변화의 필요를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목회를 시작했을 때부터 저는 수없이 가정불화를 보았고, 이러한 싸움은 영적 중재 없이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저는 증거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상대방이 변화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한편에서는 제게 이렇게 말합니다. “왜 그는 그렇게 고집스러운 거죠? 정말 지독합니다. 그가 변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다른 한편에서 비슷한 주장을 듣게 됩니다. “그녀는 어쩜 그렇게 무정할 수가 있습니까? 제가 최선을 다하는 것을 알면서도 제게 이렇게 대할 수가 있습니까?”

늘 다름 사람의 잘못이고, 변화해야 할 사람은 상대방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얼마나 많은 상담을 받더라도 “하나님, 나를 변화시켜 주세요”라는 기도가 매일의 진실된 기도가 아닌 이상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변화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수많은 시간을 이런 기도를 하며 보냅니다. “하나님, 나의 직장 동료, 가족의 어려움과 내 삶의 상황을 변화시켜주세요.” 그러나 다음의 중요한 기도는 좀처럼 하지 않습니다. “주님, 나를 변화시켜주세요. 실제 문제는 내 배우자, 형제 그리고 친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제가 바로 하나님 앞에서 변화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 12:2)

2014년 4월 21일 월요일

미약한 시작 by Gary Wilkerson

미약한 시작은 결국에 지역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제 아버지,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이 타임스퀘어에 교회를 개척했을 때, 번화가인 42번가는 어두움으로 가득 찬 상태이었습니다. 몇 걸음 마다 마약거래상 또는 매춘부 또는 포르노 극장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제 아버지는 그 어떤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는 늘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게 금요 저녁 기도모임 인도를 맡겨주셨습니다.

첫 모임에서는 20-30여명이 모였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 도시를 변화시켜 달라고 울부짖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모임은 800여명이 모일만큼 성장했습니다. 42번가를 위하여 애통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고 거리로 나가 열심으로 소책자를 나눴습니다.

머지않아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거리의 마약중독자들과 매춘부들이 줄기 시작하였습니다. 포르노 극장들도 하나 둘씩 문을 닫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침내, 어느 개발회사에서 잇따라 건물들을 사들였습니다. 오늘날 타임스퀘어의 주요 사업체는 “월트 디즈니 사”이고, 42번가는 이제 맨하탄의 가장 건전한 지역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변화가 분명 하나님께 믿음으로 구한 사람들의 기도로부터 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간증의 첫 번째 결과는 나의 믿음을 세워주시는 것이고 두 번째는 바로 다른 이들의 믿음을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파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고린도후서 10:8). 바울은 본질적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통해 놀라운 일을 하셨을 뿐 아니라 나의 삶을 통하여 일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믿음도 세워 더 큰일을 하고자 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전염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으로 다른 이들의 믿음도 바로 되어 담대함으로 주의 일을 감당해내게 됩니다.

바울의 마지막 자랑은 아주 흥미롭습니다. “내가 부득불 자랑할 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11:30). 그의 요점은 이것입니다 : 우리의 간증은 절대로 우리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자랑은 늘 “하나님 없이는 저는 안됩니다. 저는 힘있는 거인이 아니라 저는 목자입니다. 저는 방벽을 쌓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 그저 잔을 드리는 사람일 뿐입니다. 저는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 애굽의 사막을 배회하는 목자일 뿐입니다.”

우리의 간증은 절대로 우리 자신의 힘, 열심 또는 노력으로부터 갖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자신의 열심과 노력에 의지할 경우 우리의 간증은 힘을 잃을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자신의 무능력함을 인정할수록 하나님의 능력이 임할 것입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고린도후서 12:9)

2014년 4월 19일 토요일

곤경에 빠졌을 때 기도하라! by Jim Cymbala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시작하셨을 때는, 누군가가 설교하고 있었을 때가 아니라 성도들이 기도하고 있었을 때였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사도행전의 첫 두 장에서, 제자들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그곳에 그저 앉아있는 동안… 예배하며, 하나님과 친교하며, 그분으로 하여금 그들을 빚게 하며, 그들의 영을 정화시키며, 오직 성령께서만 하실 수 있는 그들 마음의 시술을 허용했을 때… 교회가 탄생했던 것입니다. 그때 성령이 물 붙듯 부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 모임을 통해 탄생시킨 교회, 그러나 그 기도 모임이 거의 소멸된 오늘날의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미국의 종교 지도자들이 공립학교에 기도가 있어야 한다고 말할 때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저 혼자일까요? 많은 우리들의 교회에서조차 그 정도의 기도도 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당신은 이 특별한 주제에 대해, 우리 교회들이 먼저 그것을 실천할 때까지 겸손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저는 로마 황제들이 그들의 학교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법을 두지 않았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초기 기도교인들은 칼리굴라나 클라우디우스, 또는 네로가 했던 일에 대해 개의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일개 황제가 하나님을 제지할 수 있었겠습니까? 사실상,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하며 그분의 이름을 불렀을 때 지옥의 마귀들이 어떻게 전진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신약에서 베드로나 요한이 그들의 손을 맞부비며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아이고, 우리가 어떡해야 하나? 칼리굴라는 양성연애자야… 그는 자기의 경마를 로마 상원의원으로 임명하기를 원해… 이 얼마나 한심한 지도자의 모습이란 말인가! 우리가 이 터무니없는 일에 어떻게 반응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 교회의 미약한 기도의 현실로부터 얼렁뚱땅 넘어가거나 주제를 바꾸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사도행전 4장에서, 사도들이 부당하게 체포되고 수감당하며 협박당했을때, 그들은 그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았으며 정치적 영향력에 호소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은 기도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러자 그곳은 곧 성령의 권능으로 진동했습니다. (사도행전 4:23-31)

사도들은 다음과 같은 본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곤경에 빠졌을 때 기도하라. 두려울 때 기도하라. 도전받았을 때 기도하라. 핍박받았을 때 기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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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심발라(Jim Cymbala) 목사님은 뉴욕의 한 소외된 지역에 위치한 작고 허름한 건물에서 이십명도 채 못되는 성도들과 함께 브루클린 테버네클(Brooklyn Tabernacle)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는 브루클린 태생이며,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 그리고 게리 윌커슨 목사님과 오랜 친분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세계 전역에 걸쳐 World Challenge에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의 주된 강사입니다.

2014년 4월 18일 금요일

그분이 우리 눈을 뜨이게 하십니다

성령은 우리가 시험의 과정을 통과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로우실 것임을 우리가 더욱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받아 이 사역을 맡았은즉 낙심하지 아니하며…” (고린도후서 4:1)

그러면 우리가 성령으로부터 받게 되는 자비로운 사역은 무엇일까요? 그분은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깊은 자비로 우리 눈을 뜨이게 하십니다. 그분은, 주님은 우리 편이시며 우리를 위해 일하신다는 깊은 명철을 우리 안에 심어주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신실하게 우리가 실족하지 않도록 보호하시는지, 우리가 겪는 모든 것들을 얼마나 긍휼히 여기시는지, 우리의 질고를 느끼시며 얼마나 가슴 아파하시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지금 당신은 학대받고 있으며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마귀는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당신을 홀로 남겨두셨으므로 당신이 고통 받아 마땅하고, 모든 것은 끝났으며 전혀 희망이 없다고 믿게 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것들은 모두 지옥에서 나온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그분에 대한 왜곡된 개념을 없애기를 무엇보다도 원하십니다. 그분은 당신을 너무도 사랑하시며 그분의 모든 자비를 당신께 부어주실 때를 이미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다윗은 그가 처했던 상황에 너무도 압도되어 처절히 울부짖었습니다. “내 마음이 얻어맞아 풀같이 시들었으므로 내가 빵 먹는 것도 잊고 있나이다… 내가 깨어 있으니 지붕 위의 한 마리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 내 원수들이 종일토록 나를 모욕하고… 내가 마실 것에 눈물을 섞었사오니… 내 날들은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시편 102:4, 7-9, 11) 그는 신음하며 이렇게 고백했던 것입니다. “나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참담한 상태에 처해있다.”

그러나 그때가 바로 하나님께서 다윗을 구원하시려는 찰나였고, 주님은 자비와 도움, 그리고 안식을 가지고 신속히 움직이셨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에게 긍휼을 베푸시리니, 그녀에게 호의를 베푸실 때 곧 참으로 정하신 때가 이르렀나이다.” (시편 102:13)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그의 가장 참담한 시간에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었다.” 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를 구원하시려 작정하셨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그분의 은총을 베푸시기 위한 때를 정해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때는 주로 우리 시험의 최악의 시간에 찾아옵니다. 그 때가 바로 우리 자신의 분투를 멈출 때입니다. 그 대신 이렇게 시인하는 것입니다. “주님, 저는 할 수 없습니다. 모두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당신께 모든 것을 맡겨드립니다.”

2014년 4월 17일 목요일

가리지 않은 얼굴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우리는 다 가리지 않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바라보며…” (고린도후서 3:18) 여기서 사용된 “가리지 않은 얼굴”이라는 단어의 기원은 놀라운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 내면에 감춰진 모든 것들로부터 구원이 이루어질 수 있게끔, 하나님께서 그것을 드러내도록 완전히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리지 않은 얼굴’은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그렇게 해주세요, 주님. 제 안에 어떤 사악함이 있는지 점검해 주십시오. 제게 당신의 말씀을 거역하는 부분이 있다면 보여주십시오. 당신과 닮지 않은 모든 것들로부터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제 모든 교만과 야망들, 그리고 제 이기적 지성과 동기들을 제거해 주십시오. 저는 그러한 상태로부터 스스로 벗어날 수 없음을 압니다. 성령님, 당신의 능력과 지혜가 제게 필요합니다. 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든 생각을 내려놓습니다.”

많은 성도에게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지난 삶을 그들 자신의 수단과 지혜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것들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에 대한 통제를 포기해야만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수년 전에 주님께서는 이 영역에서 제 교만을 깨뜨리셔야만 했습니다. 지금 저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제가 실수할 때마다 얼른 제 잘못을 시인합니다. 저는 늘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는 종종 어리석은 일들을 저지릅니다. 저는 참으로 한심한 실수를 범하며 저 자신을 끔찍한 상황에 몰아넣곤 합니다. 주님, 원컨데 그것들을 해결해 주시옵소서.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오직 당신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뜻을 구할 때 우리의 문제를 기꺼이 해결해주십니다.

위 구절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유리는 거울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거울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은 그 자체로 우리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비춰줍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진리의 거울로 가서 네 삶을 비춰보아라. 네가 잘못된 경로에 있으며 변화되기를 원한다고 주님께 말씀드려라. 그분의 성령께, 너를 겸손하게 만들어주십사,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열어달라고 간구하라. 사람들의 충고와 너 자신의 생각들과 고안을 다 버려라. 대신, 온전한 신뢰를 바탕으로 성령께 돌이켜라. 그분이 네게 하시는 말씀을 믿어라.”

만일 당신이 성령께만 전적으로 의지하고자 한다면, 다른 모든 도움으로부터 돌아서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당신의 눈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또한, 그분은 당신 삶으로 성령을 보내주실 것이고, 당신은 바로 그 순간부터 변화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2014년 4월 16일 수요일

성령의 일

변화는 전적으로 성령의 일입니다. “하물며 영의 직무에는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고린도후서 3:8)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절대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만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형상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들었습니다. “주님께로 돌이키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 눈의 베일을 벗겨주신다.” 그것은 순전히 성령의 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이렇게 읽었습니다. “이제 주께서는 그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거기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17절) 여기서의 “자유함”은 “더이상 노예가 아닌, 책임이 사면된, 자유로우며 속박에서 벗어난” 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우리 눈이 뜨여짐과 함께 오는 자유함을 묘사합니다. 우리는 홀연히 새로운 빛 가운데서 보게 됩니다. 오직 성령만이 우리가 이전에 보아왔던 오랜 방식을 깨뜨리고, 되돌이켜 참된 길로 나아가게 할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돌이킴은 하나님의 영을 온전히 신뢰함을 뜻합니다. 또한 그 의미는, 모든 비성경적인 상담과 자기 생각, 그리고 모든 계획으로부터 돌이켜서 오로지 성령 한 분만이 당신을 이끌고 인도하도록 그분을 부르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와 같은 돌이킴을 경험했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서 그의 이름이 아직 사울이었을 때,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처벌하기 위해 말을 타고 다마스커스로 향하는 잘못된 노선에 있었습니다. 그의 눈에 얼마나 끔찍한 베일이 드리워져 있었는지요! 그때 사울은 그가 성도들을 체포해서 감옥에 던져넣는 일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었다고 실제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것을 차단하고 그에게 인생의 위기를 주셨습니다.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이 사울을 만나셨을 때, 그분은 빛으로 그를 치셨고, 그 빛은 너무도 강렬해서 그를 실제로 눈멀게 했습니다. 사울은 눈먼 채로 다마스커스의 한 집으로 가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람 아나니야가 올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아나니야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올 때 길에서 네게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사 네가 시력을 받게 하시고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하셨느니라, 하매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고 그가 곧 시력을 받으니라.” (사도행전 9:17-18)

사울은 그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모든 것을 성령께 굴복시켰습니다. 그리고 그의 눈의 베일이 즉시 벗겨졌습니다.

2014년 4월 12일 토요일

힘의 근원 by Carter Conlon

오늘 당신을 대적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당신의 상속권 안에서 굳게 서십시오. 그것은 당신이 젊었을 때 당신 삶에 던져진 한마디 말일 수도 있습니다. “넌 멍청이야! 넌 아무것도 되지 못할 거야. 내가 너를 떠나는 이유는 너와 함께 있을 가치가 없기 때문이야.” 누가 무슨 말을 했든, 아니면 당신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반대편의 성향이 어떻든, 그 모든 것은 단지 이 놀라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들어가려는 경계선에서 당신을 멈추게 하려는 의도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땅의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양식이니라.” (민수기 14:9 참조) 달리 말하면, 적이 우리를 지탱시킬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양육하며 먹일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일반 사람들의 생각과는 반대입니다. 우리는 적이 우리보다 우월하며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그들 눈에는 우리가 마치 메뚜기와도 같은 하찮은 존재로 느껴지게 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위협하며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적이 어떻게 우리를 먹인다는 말일까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에서 사역하실 때 제자들이 그분께서 잡수실 음식을 구하러 갔던 일을 기억합니까? 그들이 돌아와서는 예수님께 음식을 드시도록 권고했으나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요한복음 4:32) 예수님 말씀의 본질은 바로 이것입니다. “내게는 너희가 미처 알지 못하는 힘의 근원이 있다. 너희는 그것을 맛보지 못했다. 너희는 그것이 무엇인지, 또는 그것이 어떻게 너희를 양육시킬지 알지 못한다.” 그러자 제자들은 서로를 향해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하, 누가 그분께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봐?”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끝마치는 것이니라.” (34절) 달리 말하면, “이것이 나의 양식이다. 이것이 바로 내 생명의 음식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로 대치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대면하며, 그것을 하나님의 권능으로 정복하는 것이다.”

그에 이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말하기를, 아직 넉 달이 남아 있고 그 뒤에 수확할 때가 이른다, 하지 아니하느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들을 보라. 그것들이 이미 희게 되어 수확하게 되었도다!” (35절) 저는 그리스도인들이 추수가 다가오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즉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그 엄청난 때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잘 들어라. 너희 눈을 크게 떠라. 추수 때는 벌써 임박했다. 이미 추수할 때가 이르렀다!”

“거두는 자가 삯을 받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것은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다 함께 기뻐하려 함이라.” (36절) 추수하러 나가는 자들은 보상을 받을 것이며, 그 보상은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능력입니다. 그것은 이렇게 말하는 자들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주님, 제 삶의 주권을 당신께 드립니다. 제가 어떤 강적을 대면해야 한다더라도 저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원합니다. 바로 그것이 제가 참 양식을 찾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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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카터 칸론(Carter Conlon) 목사님은, Times Square Church의 창립 목사이신 데이빗 윌커슨(David Wilkerson) 목사님의 초청으로 1994년에 Times Square Church의 부목사로 부임했으며, 그 후 2001년에 담임목사로 임명되었습니다. 강인하며 열정적인 지도자로서, 그는 세계 전역에 걸쳐 World Challenge에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의 주된 강사입니다.

2014년 4월 11일 금요일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음성

하나님께서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히브리서 12:26) 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내가 시내산에서 이 땅을 진동하였다. 그러나 이 말세에 말할 때에는 육적 세계뿐 아니라 영적 세계까지 진동 할 것이다. 현재의 상황들은 모두 흔들릴 것이고, 지금과 같이 그대로인 것은 없을 것이다. 종교적이라고 불리 우는 모든 것도 그것이 그리스도의 교회일지언정 성자가 천국에서 말할 때에 모든 것이 흔들릴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민족에게 그의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들은 책망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를 하였습니다. “무릇 그가 내 이름으로 고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거시요”(신명기 18:19)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불순종에 대한 책망을 물을 것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거역한 사람들은 파멸에 이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시들어지고 무정하게 되고, 기쁨이나 평안 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히브리서 12:25)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심판은 국가든 개인이든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예수님의 음성이 모든 기관과 지도자들 그리고 경제를 흔들며 온 나라를 흔들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바람에게는 “땅 위에 불도록”, 구름에게는 “비를 멈추고”, 경제에는 “모든 탐욕이 심판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이렇게 명령하고 계십니다. “감옥, 정부, 금융제도, 학교, 군사, 법정과 입법부 그리고 이 땅 위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 이외의 그 어떤 기반이 남지 않을 때까지 진동 할 것이다.”

마귀가 이 모든 것을 흔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온 세계는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음성으로 진동하고 있습니다. 능력으로 부활하신 영광의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진동하도록 말씀하고 계십니다.

2014년 4월 10일 목요일

하나님께서는 명확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분명하고 또렷하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음성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들리고 이 땅 전체에 들려집니다.

“너희의 이른 곳은 만질만한 불 붙는 산과 흑운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 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이는 짐승이라도 산에 이르거든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을 저희가 견디지 못함이라.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이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으나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인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또 한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히브리서 12:18-27)

이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들리십니까?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말씀하셨을 때, 사람들은 이렇게 응답하였습니다. “우리에게 더 이상 하늘에서 말씀하시지 마시고, 사람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여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모세는 예언하였습니다. “너희가 구한대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들어 쓰실 것입니다. 인간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전할 것입니다.”

약속하신 선지자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는 인간의 모습을 한, 육신을 입은 하나님이었습니다. 육신을 입고 인간으로서 이 땅에서 사역을 하셨고, 수 많은 증인들이 그가 육신의 모습으로 천국에 올라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성도, 영혼, 지체의 공동체, 즉 교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었기 때문에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이었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말세에 하나님께서는 천국에서 우리에게 다시 한번,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흔들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2014년 4월 9일 수요일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

최근 어떤 사람이 저희 사역에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도대체 누가 저를 당신의 발송 리스트에 추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이름을 당장 삭제해 주십시오. 당신들의 우울한 가스펠과 죄에 대한 비난을 더 이상 못 견디겠습니다.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고, 심지어 당신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심판과 죽음에 대한 당신의 메시지는 정말 더 이상 못 참겠습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응답하였습니다.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 하는 자식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이라 그들이 예언자에게 이르기를 예언하지 말라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너희는 정로를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로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도다”(이사야 30:9-11)

이 구절에서 “부드러운”이라는 의미는, “듣기 좋은, 아첨”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민족은, 짧게 말해, “안 좋은 것들은 이제 그만 말하고, 우리가 어떻게 번영할 것인지 우리 앞에 얼마나 좋고 위대한 일들이 벌어질 것인지에 대해 말해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떠날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숨기는 성도는 거룩하고 죄를 밝히는 말씀은 절대로 듣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늘 성령님의 진리의 음성으로부터 도망 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죄에 대해 관대하고 부드러운 말과 듣기 좋은 예언을 하는 설교자에게 달려 갈 것입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하신 듣기 어려운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요?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라 나 외에는 위하는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신명기 5:6-9)

이는 정결하고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이는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장막으로 달려가 자신들이 만든 우상의 형상들을 부숴버리게끔 했어야 하는 강력한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울부짖었습니다. “더 이상의 번개, 불, 지진은 못 견디겠습니다. 더 이상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도 그만.. 우리와 닮은 설교자를 주시고, 그가 우리에게 말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하면 우리가 듣고 순종하겠습니다.”

2014년 4월 8일 화요일

더 부드러운 메시지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출애굽기 20:20)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리라”(신명기 5:33)
모 세가 한 말을 다른 말로 간단히 요약하면 이러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화가 나 있으신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나님 임재하심의 이유는 하나님의 당신을 향한 분노가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당신의 삶 속에 임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강한 무기가 되고, 당신의 매일이 승리하는 삶이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의 구절에서는 성경에서 가장 기묘한 논리의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영광과 위엄을 우리에게 보이시매 불 가운데에서 나오는 음성을 우리가 들었고, 하나님이 사람과 말씀하시되 그 사람이 생존하는 것을 오늘 우리가 보았나이다. 이제 우리가 죽을 까닭이 무엇이니이까 이 큰 불이 우리를 삼킬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다시 들으면 죽을 것이라. 육신을 가진 자로서 우리처럼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불 가운데에서 발함을 듣고 생존한 자가 누구니이까”(신명기 5:24-26). 그들은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불 가운데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죽어야 합니까? 이 세상 수 많은 사람들 중에서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살고 있는 사람인데 말입니다.”

그 이후에 하나님께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힌트를 주셨습니다. “다만 그들이 항상 이 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29절)

그들은 입술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이사야 29:13)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이 만든 금 신상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결국에 직접 들은 하나님의 음성마저 무시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우리는 좀 더 부드러운 메시지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는 죽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을 때, 그들은 옳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자신의 죄를 드러내며 영혼을 만지시는 성령님의 지시 앞에 섰을 때에 우리는 진정 죽게 될 것입니다.

2014년 4월 7일 월요일

능력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 by Gary Wilkerson

다윗은 단 한번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목자가 되라고 하셨고 저는 좋은 목자였습니다. 양을 지키기 위해 사자와 곰을 싸워 이겨 한 마리의 양도 잃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자랑은 오직 이것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무엘상 17:37)

바벨론 왕의 술 관원이던 느혜미야의 자랑도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하나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도성을 재건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의 거리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조롱 받을 때에 가슴속에서 불같이 뜨거움이 느껴졌고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하는데 힘썼습니다.

모세의 간증은 “나는 바로 왕의 궁전에서 살고 많은 권력을 가졌습니다.”가 아니라 그의 자랑은 “하나님께서 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통하여 내게 말씀하셨고, 바로에게 직언하였습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리고 그의 자랑은 홍해에서 하신 하나님의 기적이었습니다. “홍해에서 애굽의 군대가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신약에 나오는 신자들도 같은 자랑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과부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그 자체로 좋은 간증을 가지고 있는 스데반 집사의 자랑 역시 믿지 않는 관중에게 복음을 선포했을 때 있습니다. 그의 영감 있고 능력 있는 설교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기 때문에, 관중은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 스데반의 간증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그의 첫 번째 간증은 교회의 첫 번째 순교자였다는 것이고, 또 그의 희생은 유대교 열성당원인 사울에게 미친 영향입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생각을 한번쯤은 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에서 좀 더 의미 있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도대체 언제쯤이 세대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것인가?”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중재가 필요한 일을 겪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교회에 더 자주 가야겠습니다”라고 하기 보다는 “나의 삶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하나님을 더욱 신뢰해야 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배우자와의 관계와 가정을 지키시고 나의 동료들에게 선한 영향력이 미칠 수 있도록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자랑할 만한 간증을 주실 것입니다.”

죄책감을 갖게 하기 위한 메시지가 아닙니다. 두려움과 의심으로 눌린 열정을 다시 일으키기 위함입니다. 어떤 분들은 믿음을 너무 오래간 저버린 나머지 자랑할만한 간증은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다르게 말씀하십니다.

2014년 4월 5일 토요일

믿음은 단지 가르쳐지는 것만이 아니고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by Claude Houde

제가 여러분께, 당신 자신을 향한 계시를 믿음으로 받아보라고 도전하고자 합니다. 당신이 청소년이든 자녀를 가진 부모든 학생이나 가정주부, 또는 경력의 첫걸음을 내딛는 젊은이든, 당신의 믿음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친구나 부모님, 또는 자녀나 교회 성도 등 누구를 막론하고, 사랑과 기도와 용서, 회개와 섬김, 그리고 무언가 아름답고 고결한 일을 함으로써 그들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믿음 없이는 승리하는 사람들을 만들어내기가 불가능하다는 비전으로 심장이 뛰는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찾고 계시다는 음성을, 당신의 영으로 하여금 듣게 하십시오.

믿음은 단지 가르쳐지는 것만이 아니고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진실을 말하자면, 그리고 영적 실제는, 내 자녀가 그들을 위해 남겨놓을 아비인 나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 걸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저소득 주거단지에서 성장했던 제 어린 시절의 간단한 이야기로 그것을 설명해드리기 원합니다.

  • 그날도 예외 없이 아버지께서 동네 술집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계셨을 때는 어느 추운 겨울밤이었습니다. 그 날은 금요일이었고, 아버지는 방금 그의 주급을 현찰로 바꿔오는 길이었습니다. 매주 어김없이 주급을 술로 탕진해버리는 것은 예사였기에, 그날도 아버지는 주급으로 술을 마셔버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 정신 나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은 아버지로 하여금 다른 모든 것들을 순식간에 잊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자식들을 먹여야 하고 방세를 내야 하며 난방비를 지불해야 한다는 현실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아내에게 맹세하고 또 맹세했던 약속들은, 그를 이 혐오스러운 습관의 노예로 만든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게 만드는 무모하고도 고질적인, 모든 것을 질식시키는 술에 대한 갈증으로 매번 사라져버렸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을 증오했지만, 그의 내면으로부터 들려오는 이러한 음성에 항상 굴복했습니다. “이건 나 자신만의 일이고, 나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고 있지 않아. 이것은 내 선택이야. 그저 술 몇 잔 마시는 것 뿐인데 뭘!” 그런데 갑자기, 추운 겨울밤의 적막을 깨고 어떤 소리가 그에게 들려왔습니다. 그 소리는 눈을 밟는 부드러운 발자국 소리였습니다. 그가 돌아보았을 때의 광경은 그의 심장을 멈추게 하는, 마치 쇠뭉치가 배를 치는 것과 같은 충격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눈 위에 남겨진 아빠의 발자국 위를 안간힘을 다해 한 발짝 두 발짝 작은 발로 따라 내딛는 그의 어린 아들이었습니다. 아이는 아버지의 발자국을 따라 걷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각자는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이끌고 있습니다. 어떤 청소년들은 거짓말하고 타인을 비난하며 속이는 것과 비평하는 것을 배우고 교만해져서는, 항상 쉬운 길만을 찾습니다. 반면 우리의 아들과 딸들은 사랑하며 기도하며 일하고 예배하며 섬기고 용서하며 믿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배울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말하며 사람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피부색보다는 그들의 성품으로 사람들을 분별하며, 정직하고, 어른들을 공경하며, 가난한 자들의 친구가 되는 것을 우리한테서 보고 배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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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클라우드 어드(Claude Houde) 목사님은 캐나다 몬트리올에 위치한 New Life Church의 담임목사이며, 세계 전역에 걸쳐 World Challenge에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s의 주된 강사입니다. 그의 지도력으로, New Life Church는 소수 인원으로 시작해서 개신교 교회로서는 성공하기 힘든 캐나다의 어려운 지역에서, 지금은 교인 수가 3,500명이 넘는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2014년 4월 4일 금요일

감춰진 죄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진을 치고 있었을 때, 그들은 갑자기 짙은 구름과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그렇게 경탄스러운 현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주께서 이 말씀들을 산에서 불 가운데서, 구름 가운데서, 흑암 가운데서 큰 음성으로 너희의 온 집회에 말씀하신 뒤에…” (신명기 5:22)

이 모든 현상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죽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마침내 그 음성은 잠잠해졌고 번개는 멈추었으며, 곧 해가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주위를 둘러보며 다들 그대로 살아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실제 음성을 듣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이 놀라운 현상이 일어난 후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족장들은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당신은 이 회의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찬양의 모임이었을 거라고 상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회의는 그러한 경탄의 모임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터무니없게도, 장로들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체험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장엄한 음성을 듣는 것을 더이상 원치 않습니다. 만일 그분이 우리에게 이런 식으로 다시 한번 말씀하신다면, 우리는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사람의 음성을 통해 듣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반응이었습니다. 대체 누가 그토록 놀라운 하나님 영광의 나타나심에 그런 식으로 반응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제가 그 이유를 말씀드릴까요?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속에는 감춰진 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은밀한 우상 숭배자들이었습니다.

믿을수 없게도, 이 백성은 이집트에서 가져온 작은 금신상을 여전히 지니고 있었습니다. 사도 스데반은 이러한 우상들이 “너희가 경배하려고 만든 형상들” (사도행전 7:43) 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인들이 경배했던 거대한 금송아지들을 본떠 이 우상들을 새겨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 금신상을 향해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당신은 이집트로부터 우리를 구원했습니다. 당신이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광야에서, 그들은 이 끔찍한 우상숭배를 포기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스데반은 이 백성을 “광야에 있던 교회” (38절) 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그들에게 실제 음성으로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이 여전히 과거의 우상숭배적 이집트에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는 그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그에게 순종하려 하지 아니하고… 마음속으로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 (39절)

여러분은 하나님의 음성이 이 백성을 왜 두려움으로 떨게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새겨 만든 무생명의 조각우상이 아닌, 거룩하신 하나님 권능의 임재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영은 그들의 영혼을 꿰뚫었고,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것입니다.

2014년 4월 3일 목요일

기도의 동역자들

한 목회자의 아내가 우리 사역 전화 응답기에 애처로운 음성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그녀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데이브 형제님, 수천의 목회자 아내들이 그들의 고통을 감추기 위해 은밀히 술을 마십니다. 제가 바로 그중 한사람입니다. 저는 아픔을 무마시키기 위해 술을 마십니다.” 다른 목회자들의 아내들은 그들의 실패하는 결혼에 대해, 또는 그들 남편의 포르노 중독에 대해 편지를 보내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지금 기도로 돕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러한 분들입니다. 제가 목회자들과 그들의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기도의 도움이 절실함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중보기도가 효과적이라는 것을 직접 배워 알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은 사도 베드로가 감옥에 갇혀 있었을 때 “교회는 그를 위하여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하더라.”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기적적으로 구출해내셨습니다!

바울은 단지 기도의 동역자들의 중보를 구했을 뿐만이 아니라, 그 자신 또한 동역자였습니다. 그는 그것이 복음 전도자로서 그의 부르심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서신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모든 성도들과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너희를 기억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너희 모두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항상 기뻐하며 간구함은…, 너희가 내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라.” (빌립보서 1:1, 3, 4, 7)

당신은 그들의 결혼이 파탄 가운데에 있는 형제나 자매를 아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그것에 대해 무엇을 하십니까?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 그 부부가 결별할 것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에 대해 말합니까? 아니면 당신은 주님께 그들의 이름을 올려드리며 열심히 기도합니까?

당신은 기도의 동역자로서의 사역을 원합니까? 만일 당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알지 못한다면, 모든 그리스도인의 결혼과 모든 하나님의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십시오. 당신의 기도는 길지 않아도 됩니다. 단순히 간구를 드린 후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도를 들으셨음을 신뢰하십시오.

이것은 제가 아파 누워있었을 때 있었던 일을 설명해줍니다. 제 손자들 중 하나가 방으로 들어와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제가 기도해 드릴게요.” 저의 어린 조력자는 그의 손을 제 이마에 얹고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예수님, 할아버지를 싹 낮게 해주세요.” 저는 미소를 짓고 손자에게 고맙다고 말했으나 손자는 저를 계속 바라보았습니다. 마침내 그가 말했습니다. “이제 다 나았어요. 일어나세요!” 그래서 저는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 나았습니다! 그의 믿음의 기도가 저를 온전케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도들이 그들의 형제자매들을 돕기 위해 어린아이와도 같은 믿음으로 부지런히 그분을 구할 때,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2014년 4월 2일 수요일

환란 가운데서 바울은 중대한 교훈을 배웠습니다

바울이 그의 고충을 통해 배웠던 가장 의미심장한 교훈은, 그가 결국은 주님과 그분의 언약으로 돌이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더이상 자신의 육신이나 능력, 또는 의지력을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우리 속에 죽음의 선고를 받았으니, 이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신뢰하지 아니하고 죽은 자들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1:9)

바울의 시험은 그를 인내의 한계로 데려갔습니다. 그는 흑암의 세력을 대항해 싸울 아무런 힘이 자신에게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래서 자신의 육신에 사망선고를 내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기적적으로 구출해 주셨습니다. “그분께서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건지고 계시며 또 여전히 건지시리니 우리는 그분을 신뢰하리라.” (10절)

바울이 어떻게 구출될 수 있었을까요? 거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첫째, 그는 기도의 용사였으며, 두 번째는 그가 주님 안에서 대단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그분의 언약들을 반드시 지켜주실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이 나를 지금까지 구해주셨듯이, 그분은 지금도 이 시험에서 나를 구해주시기 위해 일하고 계신다. 지금부터 죽는 그 날까지, 나는 그분의 구원 능력 안에서 살게 될 것이다.”

바울처럼 우리도 환란의 때를 견디도록 허용되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적 능력에 의존하는 것에 대해 우리가 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떤 육적 노력으로도 원수를 패배시킬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우리가 압도당하고 무력해지며 연약해지는 것을 허락하십니다.

우리의 삶을 바울의 삶과 비교할 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도록 유도될 수 있습니다. “나는 이 사도가 체험했던 것과 같은 구원의 경험은 절대 못할거야. 그는 성경 말씀을 통달한 사람이었고, 주님으로부터 예수님과 복음, 그리고 새 언약에 대해 엄청난 계시를 받았던 자야.”

“그리고 바울은 성령의 권능과 실증을 갖고 사역했지. 그는 단독으로 도시들과 나라들을 흔들었던 자야. 심지어는 돌에 맞았어도, 군중 폭행과 세 번의 파선으로도 마귀는 그를 죽일 수 없었고, 하나님은 그를 통해 죽은 자를 살려내기까지 하셨어. 이 사도는 역사상 가장 기름부음 받은 종들 중 한사람이지. 그는 영적으로 모든 것을 소유했던 자야.”

그러나 바울에 의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 사도는 그가 무사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중대한 요인은, 무엇보다도 기도 조력자들의 강력한 중보 덕분이라고 명백히 말합니다. “너희도 우리를 위해 기도로 함께 도울지니” (11절)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실 것을 확신한다. 그리고 너희는 그것이 실현되도록 기도로 돕고 있다.”

2014년 4월 1일 화요일

돕는 자들”의 기도를 통해 구출되다

“형제들아, 아시아에서 우리에게 닥친 고난에 대하여 너희가 모르기를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라. 우리가 힘에 겹도록 한량없이 눌려서 심지어 생명까지도 단념하고…” (고린도후서 1:8) 이 구절에서 쓰인 ‘눌려서’라는 단어가 헬라어로는 “무겁게 짐 지워진, 통탄할 만큼 짓눌린”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당했던 고난이 너무도 극심해서 거의 눌려 죽을뻔했다. 나는 그것이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너무도 힘들어서 그의 생명까지 단념했다고 바울이 말했을 때는, 그가 실제로 참담한 형편에 처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다른 구절들에서는 그의 고난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다루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가 손에 붙었던 독사를 대수롭지 않게 떨쳐버렸던 사건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는 세 번이나 파선했었으나, 그저 지나가는 말로 무엇을 설명하기 위해 언급했을 뿐입니다. 그는 매 맞았고 강탈당했으며, 돌에 맞았었고 감옥에도 갇혔었지만, 그 모든 환란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절대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만큼은 바울이 완전 탈진 상태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가 견뎌낸 이 “곤란”이 정신적 고뇌였다고 믿습니다. 바울의 고뇌가 무엇이었는지 우리가 확실히 알지는 못하지만, 고린도후서 7장 5절은 우리에게 힌트를 줍니다. “우리가 마케도니아에 이르렀을 때에 우리 육체에 안식이 없었으며, 우리가 사방에서 고난을 당하여 밖에는 싸움이 있었고 안에는 두려움이 있었노라.”

저는 바울이 그가 섬기고 있었던 양들로 인한 고통을 말하고 있었다고 믿습니다. 고린도에서는 거짓 선생들이 폭동을 일으켰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에게서 등을 돌리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그의 양들이 자신의 메시지를 거부하며, 그들을 진심으로 위하지 않는 자들을 따르게 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에 있는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에 대한 좋은 소식을 가지고 디도가 도착했을 때 그는 위로받았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디도를 오게 하사 우리를 위로하시되, 그를 오게 한 것뿐만 아니라 그가 너희 안에서 위로받을 때 얻은 그 안위로 위로하셨나니, 그가 너희의 간절한 소망과 애곡과 나를 향한 너희의 뜨거운 마음을 우리에게 고하였으므로 내가 더욱 기뻐하였느니라.” (6-7절)

저는 이와 비슷한 고뇌를 제 삶에서도 경험했습니다. 제가 사랑했었고 도와주었던 사람들의 말이 제 등을 찌르는 칼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다윗과 함께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의 입의 말들은 버터보다 미끄러우나 그의 마음속에는 전쟁이 있으며, 그의 말들은 기름보다 부드러우나 실상은 꺼낸 칼이었도다.” (시편 55:21) 그토록 힘들었을 때에 제게 가장 절실히 필요했던 것은 “돕는 자들의 기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