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30일 금요일

모든 일에서 모든 것이 넉넉하여

왜 수많은 성도가 마치 그들이 더이상 나아가지 못할 것과 같은 연약함, 그리고 절망과 공허의 감정을 경험하는 걸까요? 그 이유는 성령께서 바울에게 주셨던 계시—그것을 믿음으로 주장하는 자들이 취할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마련해놓으신 모든 공급의 계시가 그들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바울이 묘사하는 풍요로운 종의 모습—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넘치도록 소유한 종의 모습과 일치합니까?

저는 미국의 유명한 여전도사 캐서린 쿨만(Kathryn Kuhlman)과 함께 수년간 사역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펜실바니아주의 피츠버그(Pittsburgh, PA)와 오하이오주의 영즈타운(Youngstown, OH)에서 개최되었던 그녀의 부흥집회에서 그야말로 있는 힘을 다해 연설했습니다. 집회는 오전 시간과 저녁 시간에 걸쳐 계속되었고, 주로 집회 끝 무렵이면 저는 완전히 탈진 상태가 되곤 했습니다. 어느날 밤 쿨만 여사는 구웬과 제게 뭘 좀 먹으러 함께 나가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너무 피곤해요. 호텔로 돌아가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녀는 저를 의아스러운 듯 바라보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데이빗, 당신은 오늘 밤 성령의 기름부음 안에서 설교했습니까?”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럼요. 당신도 아시겠지만, 제게는 분명 기름부음이 있었어요. 앞 제단이 사람들로 가득했잖아요!”

쿨만 여사는 차분한 목소리로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무언가를 놓치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성령의 능력 안에서 사역했다면, 당신은 집회를 시작했을 때보다 집회 끝에 더 힘찬 모습이어야 해요. 왜냐하면, 그분은 살리시는 영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육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어요. 성령으로 그 자유를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 이후로 저는 그 진리를 제 사역에서 입증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것은 너희가 항상 모든 일에서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선한 일을 풍성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9:8) 이 구절에서 ‘풍성히(abound)’라는 단어는 “계속 증가하는: 시작보다 끝에 더 많이 가진”이라는 뜻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전투가 가열될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증가한다는 뜻입니다! 연약함이 당신에게 임할 때, 그분의 힘은—만일 당신이 그것을 믿는다면—그보다 더욱 강력히 당신에게 임할 것입니다.

2014년 5월 29일 목요일

그분은 오직 당신의 믿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집이나 자동차, 가구, 저축등 당신의 소유물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오직 당신의 믿음, 즉 그분 말씀 안에서의 당신의 강한 신념입니다. 아마도 그것은 다른 성도들, 즉 당신보다 더 영적인듯 보이는 사람들에게 결핍된 하나의 실체일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보다 더 영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을 바라볼수 있으나, 실제로 그 사람은 의롭게 보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을 바라보며 “의로운 자가 바로 여기 있도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왜냐고요? 그 이유는 당신이 스스로 의롭게 되는 것에 대한 당신의 무력함을 시인했고, 그분의 의를 당신에게 주실 것에 대해 주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이 의롭게 되었던 것과 같은 근거로, 하나님의 눈에 우리가 의롭다 여김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그것을 그(아브라함)에게 의로 인정하셨느니라. 그것을 그에게 의로 인정하셨다고 기록된 것은 이제 그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우리가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분을 믿을진대 그것을 의로 인정받을 우리도 위한 것이니라.” (로마서 4:22-24)

당신이 이렇게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부활시키신 하나님 안에서의 믿음이 있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여기 당신을 향한 몇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은 주님께서 곤경에 처한 당신의 가정을 회복시킬수 있다고 믿습니까? 당신은 영적으로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당신의 친족에게 그분이 생명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까? 당신을 쇠약하게 만드는 악습의 구덩이로부터 그분이 당신을 건져낼 수 있다고 믿습니까? 그분이 당신의 저주스러운 과거를 말끔히 지워버리고, 지난 모든 헛된 세월을 돌이켜주실 수 있다고 믿습니까?

모든 것이 절망적으로 보일 때—당신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황일 때, 당신 앞에 어떤 자원도 어떤 희망도 없을 때—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필요를 아시며, 여호와 이레, 즉 준비하시는 하나님이 되어주실 수 있음을 믿습니까? 당신은 그분께서 당신에게 하신 약속들을 반드시 지켜주실 것이며, 만일 그분 말씀중 하나라도 땅에 떨어진다면 하늘이 녹아내리며 우주가 무너질 거라고 믿습니까?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와 거기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움이 돋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그것이 씨 뿌리는 자에게 씨를 주고 먹는 자에게 빵을 주게 하는 것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내 말도 그러하여 그것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내가 기뻐하는 것을 이루며 내가 그 말을 보내어 이루게 하려는 일에서 형통하리라.” (이사야 55:10-11)

2014년 5월 28일 수요일

믿음은 반드시 말씀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분 백성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으며, 그들의 환란 가운데서도 그분을 신뢰하지 않을 것에 대해 염려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가장 큰 죄악은 그분이 약속하신 것을 행하시리라는 사실을 믿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간음이나 우상숭배, 마약, 알코올 남용, 그리고 그 외의 어떤 육신의 죄보다도 그분의 마음을 더 상하게 합니다.

그분의 말씀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주께서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은 시험들에서 건질줄 아시고…” (베드로후서 2:9) “하나님은 신실하사 너희가 감당할 수 있는것 이상으로 시험당하는 것을 너희에게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또한 그 시험과 함께 피할 길을 내사 너희가 능히 그것을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13)

이 구절들의 말씀은 진리 아니면 거짓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들이 진리라면, 우리는 그 위에 서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게 말할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주님, 만일 제가 여기 서서 죽어야 한다면, 그렇다면 믿음 안에서 죽게 해 주십시오. 저는 당신이 저와 함께 해주실 것을 신뢰합니다. 죽든 살든 저는 당신의 것입니다.”

모든 지옥의 풍랑과 파도가 당신께 몰려오게 하십시오. 그 모든 것들이 당신에게 오도록 하십시오. 우리 주님은 능히 하실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당신을 어떻게 구원하실지를 아십니다.

그분은 여러분과 제가 그분과의 동행에서 기쁨과 평강, 그리고 승리와 안식이 있도록 의도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어두운 세대에 올 것들에 대항해 설 수 있는 남녀들—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요동치 않고 평강으로 설 종들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그러한 신뢰의 장소로 들어와서는 다시는 절대로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분의 권능과 능력 안에서 진실로 안식하기를 열망하십니다. 그분은 모든 함정과 시험, 그리고 유혹으로부터 어떻게 당신을 구원하실지를 아십니다. 만일 당신이 그분을 신뢰한다면요!

“오직 그분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방벽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나의 영광이 하나님 안에 있나니, 곧 내 힘의 반석과 내 피난처가 하나님 안에 있도다. 백성들아, 너희는 언제나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 앞에 너희 마음을 쏟아 놓으라.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피난처시로다.” (시편 62:6-8)

2014년 5월 27일 화요일

주님의 눈은 그분의 자녀들에게 고정되어 있습니다

지금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뒤흔드는” 사건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일까요?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시야는 그분의 자녀들을 주시하고 계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보라, 주의 눈은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들, 곧 그분의 긍휼에 소망을 두는 자들 위에 있나니…” (시편 33:18)

우리 주님은 이 지구상에 있는 각 생명체의 모든 움직임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초점은 무엇보다도 그분 자녀들의 보안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분은 그분 영적 지체의 각 구성원의 고통과 필요에 그분의 눈을 고정하십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를 상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분이 관심을 두고 계십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입증하기 위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몸은 죽여도 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혼과 몸을 능히 지옥에서 멸하시는 분을 두려워하라.” (마태복음 10:28) 큰 세계적 전쟁들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주된 초점은 저 압제자들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분의 초점은 그분 자녀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음 구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참새 두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그중의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마태복음 10:29) 그리스도의 공생애 시대에 참새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기였고 그 가격은 매우 저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작은 생명체 하나라도 아버지께서 알지 못하고 땅에 떨어지는 일은 없다.”

이 구절에서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떨어지다”라는 단어는 새 한마리의 죽음 이상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아람어로 “땅을 조명하다”라는 뜻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여기서 “떨어지다”의 의미는 한마리 작은 새의 모든 미세한 움직임을 나타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네 아버지의 눈은 참새가 죽을때 뿐만 아니라 땅에서의 모든 움직임도 보고 계시다. 참새가 나는 것을 배울 때에는 둥지로부터 떨어져 내려 땅에서 깡쭝 깡쭝 뛰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그 모든 세밀한 고투를 보시며 그 생명의 모든 세부사항에 관심을 두고 계시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중하니라.” (마태복음 10:31) 실상은 그분이 이렇게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너희 머리털까지도 다 세셨나니…” (10:30) 간단히 말하면, 모든 별을 만드시고 그 숫자를 아시는 분, 로마제국의 모든 행사를 감시하시고 모든 은하계의 괘도를 지키시는 분, 바로 그분의 눈이 당신을 주시하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께서 이렇게 물으십니다. “그러할진대, 그분께 너희가 그보다 더 소중하지 않겠느냐?”

2014년 5월 26일 월요일

당신은 축복의 근원이 되기 위해 축복받았습니다 by Gary Wilkerson

“또 (예수님께서)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누가복음 12:16)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들에게 풍성한 선물을 주기 원하시는 관대하시며 자비로운 아버지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께 이와는 대조적인 것을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이 비유 이야기는 잘못된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1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부자가)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축복하기 시작하셨고 당신은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하지?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러한 사고의 흐름은 당신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며, 주로 사리사욕으로 향하게 합니다. 창세기 26장에서 우리는 이삭에 대해 읽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이 어리석은 부자와는 대조적으로, 이삭은 그의 재산을 어떻게 해야 할지 주님께 현명하게 여쭈었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임의대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성령의 분별력을 잃게 됩니다. 우리가 욕망을 따라 생각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릇된 길로 향하게 됩니다. 바로 그것이 이 부자에게 일어났던 일입니다. 다음 구절의 표현을 보십시오. “그가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누가복음 12:17)

그것이 누구의 곡식이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그러나 이 부자는 이기적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이 선물, 그의 모든 재능과 관계들을 자기 자신만을 위한 혜택과 이득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 것처럼 보기 시작했고, 그러한 사고는 그의 존재성 안으로까지 침투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누가복음 12:18-19)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가르침에서 간혹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축복하기를 원하신다는 데에만 중점을 두지, 하나님께서 축복하기를 원하시는 이유에 중점을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나만을 위한 것일까요? 그러한 재물을 나 자신을 위해서만 쌓아두어야 할까요?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항상 원했던, 세상으로부터 나를 완벽하게 보호해주는 작은 대피처를 만들기 위한 수단일까요?

당신은 축복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맨 처음 맺으신 축복의 언약으로, 당신은 축복의 근원이 되기 위해 축복받았습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은 축복의 근원이 되기 위해 축복받았습니다!

2014년 5월 24일 토요일

거룩한 절박함 by Carter Conlon

지금 여러분과 저는 그야말로 “거룩한 절박함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급속히 타락해져 가고 있으며 끔찍한 범죄들이 너무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모든 것에 아예 둔감해지고 있습니다. 비정상이 정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악이 선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세상을 둘러보며 아마 이렇게 의아해할 것입니다. “이러한 때의 시간에 내가 어떻게 적응해야 하나? 하나님께서는 내 인생을 통해 무엇을 하실수 있을까? 그리고 만일 그분이 무언가를 하실 거라면, 대체 그분 말씀을 따라 드려지는 내 기도가 왜 아직도 응답되지 않는 것일까?”

그러한 질문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역사상 한 나라에 절망적 때가 임했었던 또 하나의 예를 살펴봅시다. 사무엘상에서는 명백한 말씀이나 비전이 없었던 시절에 대해 말합니다. 하나님을 대변해야 했었던 제사장들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타락했습니다. (사무엘상 2:22-24, 3:1 참조) 하나님의 성품과 뜻, 그리고 그분의 마음은 백성들로부터 숨겨졌고, 백성들의 마음속에는 응답될수 없는 질문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되가고 있는 걸까?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그때의 상황은 하나님의 임재, 즉 우리가 역사를 통해 알았던 그분의 능력과 공급이 갑자기 사라져버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때와 매우 흡사했습니다. 하나님의 원수들이 이제는 우리가 기도할때 훼방하며, 우리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칠지를 강요하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왜곡시키며 우세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처절한 부르짖음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시편 107편은 역사상 일어났던, 바로 그 거룩한 절박함의 시절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떠돌며 굶주리고 실신하며 포로가 되었던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의 진리를 어리석게 취급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지금 우리의 때와 마찬가지로, 일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하는 절박함의 바로 그 시간이었습니다. 이 세대에 부르짖음이 오고 있습니다. 이 외침은 육신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수도 있으나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외침입니다. 그것은 마치 그분이 모세에게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던 때와 같습니다. “내가 백성들을 부르짖음을 들었고, 내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왔도다.” (출애굽기 3:7-8 참조) 달리 말하면, “내가 그들 절망의 신음 소리를 들었다”는 뜻입니다. 오늘 주님은 그들의 꿈이 산산조각이 난 자들의 부르짖음과, 자녀들이 타락해버린 부모들의 부르짖음, 그리고 “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하고 의문하는 자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계십니다.

“내가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코 보았으며…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었도다.” (출애굽기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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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카터 칸론(Carter Conlon) 목사님은, Times Square Church의 창립 목사이신 데이빗 윌커슨(David Wilkerson) 목사님의 초청으로 1994년에 Times Square Church의 부목사로 부임했으며, 그 후 2001년에 담임목사로 임명되었습니다. 강인하며 열정적인 지도자로서, 그는 세계 전역에 걸쳐 World Challenge에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의 주된 강사입니다.

2014년 5월 23일 금요일

당신은 성령님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의 충성된 군사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영접한 것 그 이상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바울의 시대에 어떤 성도들은 성령의 존재조차 몰랐습니다.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사도행전 19:2). 이 성도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받았지만,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는지에 대한 사실은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우리가 성령의 능력과 일하심으로 구원을 받는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구원받음에 더불어 성령으로 충만되는 성령으로 세례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성령으로 세례 받을 때까지 그들을 파송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부활의 산 증인이었고 순결한 마음과 믿음으로 고통 받는 자들을 치유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위해 죽기로 결심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더 필요했던 것일까요?

분명히 더 필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사도행전 1:8).

진정으로 성령님이 임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이 이 것이 당신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능력 없이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위치에 이르러야 합니다.

하루의 매 시간, 온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이 약속을 읽어봤거나 관한 설교를 들어봤을 것입니다. 그들은 기도 중에 부르짖었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사도행전 2:17-18)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누가복음 11:13)

2014년 5월 22일 목요일

폭풍우 속 영혼의 닻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히브리서 6:19)

이 구절에서 언급된 영혼의 닻은 소망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육적인 세상의 소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언약을 의미합니다. 성서적인 소망은 긍정적인 미래나 개인의 소원을 의미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확신에서 오는 기대를 의미합니다. 과거에 우리 영혼의 닻이 되어 인도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미래에도 하나님께서 영혼의 닻이 되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이 소망 자체가 현재 우리에게 다가오는 태풍에서 우리의 닻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히브리서 6:12)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 – 그리스도안에 있는 모두에게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노력과 의심을 끝내시기 위하여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브리서 6:18)

우리의 소망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시겠다고 약속하셨고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을 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 안에 있는 당신에게도 약속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이 어려운 시대에 우리는 큰 안위를 필요로 합니다.

소망에 관한 모든 설교가 전해진 이후에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모두 내려놓고 순종하며,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평안을 찾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흔들림 없이 그의 약속하심을 그의 말씀을, 믿을 의지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히브리서 10:35-36).

2014년 5월 21일 수요일

하나님의 자비

사도행전 9장에서는 다소 사람 사울 이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그는 가장 종교적인 사람으로 알려진 사람이었고, 다메섹으로 여행 중에 있었습니다. 그는 왜 이 여행을 하고 있었을까요?

사울은 예수님을 향하여 극심한 증오감을 갖고 있었고, 유대인들의 지역이 아닌 타지의 그리스도의 교회까지도 마음 먹고 핍박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도들을 파괴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사도행전 9:1-2).

이 후에 역사상 가장 위대한 크리스천 전도사가 된 이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어떠하였을까요? 갑자기 눈부시게 밝은 빛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그를 둘러 비추었습니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사도행전9:3-4). 사울은 나중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사도행전 23:1)

이 눈부신 빛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사울을 정죄하기 위함이었습니까? 죄책감과 정죄함을 느끼게 함이었습니까? 그를 파괴하기 위함이었습니까? 그에게 저주와 심판을 내리기 위함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죄악이 용서받았고 모든 허물이 덮어졌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며 눈부신 빛에 둘러싸여 바닥에 엎드린 사울을 상상해 보십시오. 교회를 핍박하는 길에 있는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죄에 대한 맹렬한 비난을 받기 보다는 아주 놀라운 음성을 들었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사도행전 9:5). 예수님께서는 박해하고 위협하는 사울의 악한 행위에 대한 한마디의 언급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바로 사울이 박해한 예수님이 그의 가장 위대한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보이신 자비와 은혜에 지금 감사하십시오.

2014년 5월 19일 월요일

나의 유산 by Gary Wilkerson

이삭의 아들 야곱은 그의 인생의 많은 시간을 하나님과 씨름을 하였습니다. 심지어 그의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에도, 그의 쌍둥이 형인 에서가 먼저 나오려고 하여 야곱은 에서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바로 첫번째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는 축복을 위해서 힘써 씨름하였습니다.(창세기 25:24-26 참고)

야곱이 그의 형 에서 에게 죽으로 장자의 명분을 사고(창세기 25:29-34), 그의 아버지 이삭을 속여 장자인 에서의 축복을 받았습니다(창세기 27:27-29). 야곱은 언제나 내면적으로 공허하고 축복받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미 갖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여 평생을 힘을 다하여 축복을 얻기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과 끊임없이 씨름을 하였습니다. 그는 반복적으로 “하나님, 나를 축복해주세요! 나의 유산을 내가 갖게 해주세요.”라고 구하였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 씨름을 한다는 것은 이미 우리에게 주신 진정한 복을 잊게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평온을 찾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갖고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 제 상황이 어떻든 간에 하나님을 믿을 것입니다.”

성경 속에서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을 한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천사가 내려와 야곱과 밤새 씨름을 하였습니다. 성경에서는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고 대면하여 보았으나 생명이 보전되었다고 하였습니다.(창세기 32:23-30)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야곱아, 내려놓으렴. 이 씨름은 끝났단다. 너는 평생을 축복 받기 위하여 힘을 썼지만 네가 모르는 것은 내가 이미 너에게 축복을 하였다는 사실이다. 내가 너에게 나의 유산을 이미 주었단다. 나의 사랑, 은혜 그리고 능력까지. 네가 나의 영광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내가 이미 주었기 때문에 힘써서 얻으려고 씨름하지 않아도 된다. 믿음으로 받고 순종하면서 신앙의 길을 나와 함께 걷자. 너의 아버지 그리고 아브라함이 한것처럼 나를 믿음으로 따라오렴. 그러면 너를 위한 나의 축복을 볼 수 있게 될것이다.” 마침내 야곱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적인 삶을 풍요롭게 하고 사랑을 주고 싶어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순결한 분별력으로 축복의 길로 인도하는 지혜로운 결정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기억하십시요.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축복하고 싶어하십니다!

2014년 5월 17일 토요일

승리를 위한 변화 by Claude Houde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으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하라.” (누가복음 22:31-32)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한 예언적 성찰에 집중하셨을때, 그분은 섬뜩한 장면을 보셨습니다. 그분은 베드로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그분의 이름을 부인하며 신성 모독하는 모습을 예견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베드로가 슬피 울며 모든 것을 내던지고 휘청거리며 그의 어선으로 되돌아가는 장면을 내다보시며, 곧 시행될 사탄의 함정과 의도를 감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깊은 체념과 절망에 빠져 과거의 고기잡이 그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를 청구하였으나, 내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도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머물러 있는 사악하며 어둡고 파멸적인, 암울한 징조를 보셨습니다. 그분은 무엇이 우리를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시며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 우리 존재의 맨 처음이자 마지막 장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실수나 비밀, 그리고 실패에 대해 절대 놀라거나 실망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에 대해 아무것도 “발견”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아시며 완전한 사랑이시고, 우리와 우리의 미래에 대해 절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때로는 “자신의 아기”를 향한 맹목적 사랑 때문에 눈이 멀어 모든 분별력과 객관성을 잃어버리는 다정다감한 “엄마”와도 같이, 예수님은 그렇게 순진하지 않으십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예수님은 베드로의 생애에서 최악의 위기를 명확히 예견할수 있는 신성하며 구원적인 수용력을 갖고 계십니다. 반면 그를 위해 기도하시며, 그로부터 채 오십일도 되지 않은 오순절에 소란스럽게 들떠있는 군중 가운데에 서서 그야말로 교회가 탄생하게 만든 연설을 하는 베드로를, 그분께 임한 성령에 의해 초자연적으로 보셨습니다! (“네가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하라.”)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통곡이 예배로, 거부가 구원으로, 무력함이 믿음으로, 신성모독이 축복으로, 파멸이 부활로, 그리고 거의 죽음이 권위와 숙명이 되는 승리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미리 보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도 그러한 시각으로 보고 계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과거가 어떠했는지를, 또는 당신이 지금 어떤지를 개의치 않으십니다. 그분은 당신이 믿음으로 그분 안에서 무엇이 될수 있는지를 보십니다. 그분은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무엇이 당신을 위해 마련되어 있는지를 아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그러한 차원의 믿음을 통해 다른 사람들은 물론 우리 자신을 보는 것에 대해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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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클라우드 어드(Claude Houde) 목사님은 캐나다 몬트리올에 위치한 New Life Church의 담임목사이며, 세계 전역에 걸쳐 World Challenge에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s의 주된 강사입니다. 그의 지도력으로, New Life Church는 소수 인원으로 시작해서 개신교 교회로서는 성공하기 힘든 캐나다의 보수적인 지역에서, 지금은 교인 수가 3,500명이 넘는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2014년 5월 16일 금요일

성령으로 충만해지다!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성령은 성도들에게 매우 특이한 방법으로 임했습니다. 성령이 충만히 임했을 때, 사람들은 새 방언으로 그분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순절에 그분은 강하고 급한 바람과 함께 오셨습니다. 불이 임했습니다! 성령이 오시자 모든 것이 진동했습니다. “그들이 기도하기를 마치매 그들이 함께 모인 곳이 흔들리더니, 그들이 다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니라.” (사도행전 4:31) 

세례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으로 나는 너희에게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더 능력있는 분이 오시나니,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노라.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님으로 침례를 주시고 불로 침례를 주시리니…” (누가복음 3: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그것을 아주 명백히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오실 때, 그분은 당신을 성령과 불로 세례주기를 원하십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향해 뜨겁게 타오르는 강렬한 사랑의 불을 가져옵니다. 왜 수많은 성도가 전적으로 순복하지 않으며 온전한 확신이 없는 채, 한순간은 뜨겁다가도 곧 식어지는 걸까요? 그들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들에게 성령으로 세례 주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일까요?

“그분(성령)께서 오셔서 죄에 대하여 세상을 꾸짖으시리라.” (요한복음 16:8) 성령께서 그분의 합당한 자리를 그들 안에서 차지하시도록 미처 초대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한 성도들에게 확신이 없는 걸까요? 그분은 하나님의 다림줄입니다. 무엇이든 그리스도에게 부합하지 않는 것은 그분이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응하도록 우리를 책망하시며 권능을 부여해주십니다! 그분은 이 주제에 있어서 진정으로 우리의 위로자가 되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의 죄를 책망하시며 우리가 그것을 버릴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위로입니다!

성령은 그것이 무엇이든 당신이 어리석은 일을 하도록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사람들이 당신을 술 취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당신에게 임할 수도 있습니다. 그분은 많은 교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그분이 때로는 무척 소란스럽거나 너무도 감정적이며, 또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을 듯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2014년 5월 15일 목요일

너무나 작은 것에 만족하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고 싶어 하시는 것들은 너무도 많습니다. 그분의 열망은 “내가 너희를 위해 하늘의 창들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쏟아 붓되 그것을 받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라기 3:10) 그분은 가득한 창고 안에 서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축복의 하나님이다. 그러나 아주 적은 숫자의 사람들만이 나의 축복을 받을 것이다. 그들이 나로 하여금 그들의 하나님이 되도록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미 행하시고 이미 주신 모든 것에 대해 그분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많다고 생각하는 것에 만족하면 안됩니다!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 앉아 하나님의 임재로 축복받는 것에 만족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모든 것을 흡수하는 “만족한 스펀지”밖에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이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그들에게 기름 부어주시기를 너무도 원하실 때, 그들은 하나님을 그들의 삶에서 제한합니다.

제자들이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보고 경탄했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너희를 통해 훨씬 더 놀라운 일들을 행하실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제자들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기적을 보고 우리 여생 동안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며 그분을 우리의 하나님이 되도록 해드린다면, 우리는 그분께 훨씬 더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 지역과 주, 그리고 정부기관의 경건치 못한 지도자들을 폐할 것을 믿으며, 우리는 믿음으로 천국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불의한 체제들과 권력들을 파쇄할 것입니다! 
  •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우리의 도시를 포화시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리라 믿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를 겨냥하고 있는 모든 무기를 대적해 믿음으로 맞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과 교회에 임해있는 마귀의 요새를 무너뜨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비전은 무한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왕국을 위한 더 엄청난 일들을 이루실 것에 대해 하나님을 신뢰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 안에서 일하는 권능에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 이상으로 심히 넘치도록 능히 행하실 분에게, 곧 그분에게 영광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교회 안에서 모든 시대에 걸쳐 끝없는 세상까지 있기를 원하노라.” (에베소서 3:30-21)

2014년 5월 14일 수요일

그분의 음성을 알아듣는다는 것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요한복음 10:27)

하나님을 진실로 아는 사람들은 다른 모든 것보다도 그분의 음성을 알아듣는 법을 배웠습니다. 당신이 이전에는 결코 보거나 듣지 못했던 것들을 당신에게 말씀하시기 위해, 그분이 당신과 대화하기를 열망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당신이 전적으로 확신하기를 그분은 원하십니다.

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음의 세 가지가 요구된다고 믿습니다:
  1. 하나님이 당신과 대화하기를 원하신다는 확고부동한 신념. 당신은 이것에 대해 온전한 확신과 신뢰를 갖고 있어야만 합니다. 사실 그분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당신이 그분의 뜻을 행할수 있도록 그분의 음성을 알아듣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하시는 말씀은 절대 성경 말씀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2. 하나님께만 드려지는 소중한 시간과 고요함. 당신은 외부의 음성을 완전히 차단하고 오직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질 의향이 있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온종일 말씀하신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제 삶에서 무언가 중요한 일을 이루시려 했을 때에는, 제가 그분 음성 외의 모든 다른 음성을 차단한 후에야 그분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3. 믿음으로 구함. 하나님께서 그분의 완전한 뜻을 우리가 이해할수 있도록, 그분의 마음을 우리에게 전달하실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진실로 믿지 않는한, 우리는 그분에게서 아무것도 (그분의 음성을 알아듣는 것을 포함해서) 얻을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장난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원수가 당신을 속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실 겁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는 평강이 뒤따르며, 사탄은 그 평강을 위조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문을 통해 들어가는 자는 양들의 목자니라. 문지기는 그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들을 이름으로 불러 그것들을 밖으로 인도하느니라. 그가 자기 양들을 내놓은 뒤에 그들 앞에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알므로 그를 따라오되, 낯선 자들의 음성은 알지 못하므로 낯선 자를 따르려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그에게서 도망하니느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0:2-5)

2014년 5월 13일 화요일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십시오

“주의 위엄의 영광스런 존귀와 주의 놀라운 일들을 내가 말하리이다. 사람들은 주의 두려운 행적들의 권능을 말할 것이요, 나는 주의 위대하심을 밝히 보이리이다. 그들이 주의 큰 선하심을 기념하는 말을 풍성히 내며 주의 의로우심을 노래하리이다.” (시편 145:5-7) 이 구절에서 사용된 ‘놀라운’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그분의 행하심이 너무도 위대해서 경탄과 경외를 불러일으킨다는 뜻입니다.

그분의 모든 위대하심을 찬양해야 한다는 말씀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특별히 그분의 선하심을 찬양하도록 우리는 부름 받았습니다.

시편 기자가 아버지의 선하심을 기억하며 수많은 찬양을 끊임없이 불렀다는 사실에 주목하십시오. 참으로 아름다운 미사여구로, 마치 분수에서 물이 솟구쳐 오르듯이 찬양하는 일이 다윗에게는 예사였습니다.

시편 107장 8-9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오, 사람들이 주의 선하심과, 사람들의 자녀들에게 행하신 그분의 놀라운 일들로 인하여 그분을 찬양하기 원하노라! 그분께서 사모하는 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혼을 선하심으로 채워 주시는도다.”

그분의 선하신 행적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 진실함은 제 심금을 울렸고, 저도 다윗처럼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선하심을 기념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선하심, 즉 우리의 고통과 불행을 불쌍히 여기셔서 자비를 베풀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마음껏 표현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출애굽기 34장 6절을 인용했습니다. “주께서 그 앞으로 지나가시며 선포하시되, 주로다. 긍휼이 많고 은혜롭고 오래 참고 선함과 진리가 풍성한 주 하나님이로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난날을 돌아보며 주님이 당신을 얼마나 환대하셨는지를 상기하세요. 당신을 여기까지 데려오시며 절대 실패하지 않으신 그분의 긍휼에 대해 묵상해보세요. 저는 모든 일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무척 기쁩니다. 특별히 그분의 자비하심—지난날의 자비뿐만 아니라 제가 날마다 보는 자비, 그리고 현재 제 주위에서 볼 수 있는 그분의 선하심에 대해 더욱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긍휼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주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시편 23:6)

2014년 5월 12일 월요일

당신은 축복받았습니다 by Gary Wilkerson

“그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창세기 26:1) 자, 만일 당신이 농부이며 당신의 전 생계가 농작물에 달려있다면, 당신은 땅에 흉년이 들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고사하고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라는 말은 더욱 듣고 싶은 말이 아닐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삭이 직면했던 문제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미 흉년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이제 두번째 흉년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는 첫번째 흉년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기억하며 마음에 근심이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매우 흥미로운 것을 말합니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 (창세기 26:1-5)

이곳 5절에서의 핵심 단어는 “순종하고”입니다. 아브라함은 주님께 순종했으며 이삭 또한 그랬습니다. 사실 여기서 이삭은 하나님께 영광스럽게 순종했습니다. 제가 순종에 대해서 할수 있는 한 명백하고 간단하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순종할 때의 결과는 그분의 축복입니다. 여러분은 은혜로 구원받았고, 하나님으로부터 순종하는 백성이 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고 주님께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하나님, 이것은 어렵습니다. 제가 이것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순종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늘 문이 여러분을 향해 열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께 무엇을 하라 말씀하든 그분께 순종하십시오. 만일 그분이 주라 하시면 주십시오. 만일 그분이 가라 하시면 가십시오. 당신이 원하는 대로 살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사십시오. 그러면 축복이 당신에게로 오는 것을, 당신 위에 부어지는 것을, 그리고 당신 주위로부터 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14년 5월 10일 토요일

교회 생활에 대한 지침 by Jim Cymbala

교회 생활에 대한 가장 명백한 지침은 바울이 제자 디모데에게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권고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권면하노니 무엇보다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중보와 감사를 드리되…” (디모데전서 2:1)

계속해서 바울은 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그것이 바로 크리스천 교회의 특징입니다. 


요 한계시록은 이십사 장로가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절할 때 각 장로가 금 대접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 금 대접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아십니까? 그리스도께 그토록 향기로운 이 향은 대체 무엇일까요? “이 향은 성도들의 기도들이라.” (요한계시록 5:8)

상상해보십시오. 여러분과 제가 무릎 꿇거나 서서 또는 앉아서, 하나님께 우리 마음을 진실로 열고 기도할 때, 그리고 우리가 그분께 드리는 기도가 너무도 소중해서 그것을 보물처럼 보관하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여러분 인근 지역의 어느 교회가, 기도는 너무도 중요하고 그것이 예수님께서 교회에 대해 정의하신 핵심이라고 말하며, 매주 하루를 정해놓고 교회의 모든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도에 집중하는 교회를 아십니까?

제 경우를 보면 이렇습니다. 제게는 우리 교회 화요 기도 모임이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제가 화요일을 두번씩이나 연이어 빠져야 하는 출장은 반드시 피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만일 그로 인해 강사 초청장을 수락할수 없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왜 다른 장소에 있기를 선호하겠습니까?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모든 언약이 들어 있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태복음 7:7)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예레미야 29:13)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야고보서 4:2)

자, 이제 당신이 이렇게 말할 때도 되지 않았나요? “알았으니 그 정도만 하세요! 이제 우리도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하면 들어주신다고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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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짐 심발라(Jim Cymbala) 목사님은 뉴욕의 한 소외된 지역에 위치한 작고 허름한 건물에서 이십명도 채 못되는 성도들과 함께 브루클린 테버네클(Brooklyn Tabernacle)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는 브루클린 태생이며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 그리고 게리 윌커슨 목사님과 오랜 친분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세계 전역에 걸쳐 World Challenge에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의 주된 강사입니다.

2014년 5월 9일 금요일

하나님께서 당신을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목회자로서 하는 가장 큰 걱정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 어떻게 심한 고통과 고난을 견디고 있는 성도들을 어떻게 위로하고 소망을 전하면 되겠습니까? 제게 그들의 의심과 두려움을 없앨만한 말씀을 주시옵소서. 애통하는 자의 눈물을 마르게 하고, 소망을 잃은 자의 입에 새 노래를 갖게 할만한 진리를 내게 주옵소서.”

제게 성도들을 향해 주시는 성령님의 말씀은 아주 간단명료합니다. “말씀으로 돌아가 언약의 말씀에 바로 서야 한다. 바로 너의 의심을 뿌리쳐야 한다.”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으로부터 옵니다.

최근 저는 이러한 아름다운 말씀을 현실화 시킨 내용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어떤 어머니에게서 온 편지였습니다. “제 16살 난 딸은 근육, 인대 그리고 관절의 퇴행성 질환이 있어 하루 24시간 동안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녀는 발레리나였고, 맨하탄에 있는 줄리어드 학교에 갈 날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꿈은 이 질환을 알게 되면서 무너져버렸습니다. 의사가 통증의 정도가 1에서 10이라고 치면, 그녀는 14라고 할 정도였고, 통증을 진정시키기 위해 필요한 진통제의 양은 그녀의 신장을 모두 망가트릴 양이었기 때문에 약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영혼과 육신이 쉼없이 떨리는 이 모든 상황을 직면한 가운데 이 모녀는 그들의 소망을 오직 하나님의 말씀안에 두고, 하나님께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도의 평강을 주셨다고 간증합니다.

마귀가 당신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을 무시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하고 있지 않다고 결론짓고 싶은 마음이 들고 있습니까? 당신의 믿음을 거의 포기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시는 말씀에 소망을 두십시요.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히브리서 13:5)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시편 9:9-10)

2014년 5월 8일 목요일

아름다운 복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그를 영접하시고 순금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셨나이다”(시편 21:3).

다윗이 쓴 이 구절을 처음 읽으면 조금 혼돈이 됩니다. 여기서 “영접(prevent)”이라는 단어는 보통 축복이 아니라 방해에 관련되어 쓰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적인 번역은 이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주께서 다윗에게 선한 축복을 방해하시고 저지하였습니다.”

성경적 의미로 “영접(prevent)”이라는 단어는 완전히 다름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예상하고, 앞서 행하고, 예견하고 미리 수행하고 시일이 이르기 전에 빚을 갚는 것”을 뜻합니다. 더 나아가,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서 어떤 즐거운 일에 대한 것을 시사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러한 기쁨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먼저 예상하시고 앞서 이루신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잠깐 언급합니다.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이사야 65:24).

이 구절은 우릴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로 하여금 연상할 수 있도록 묘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복 주시고자 간절히 바라며 그의 자비하심과 선하심을 우리 삶에 드러내고 이루시기를 원하시며, 정말 우리가 우리의 소망과 필요를 구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 안에 일하십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는 큰 기쁨이 됩니다.

바로 이것이 다윗이 시편 21편에 말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구하기도 전에 자애하심으로 복을 내게 넘치게 주십니다. 그리고 제가 구하려고 생각하기도 전에 먼저 권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하여 행하신 놀라운 영적인 일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다윗의 기도의 응답, 이겨낼 수 있는 힘, 대적을 물리친 승리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의미합니다. 다윗이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기도로 필요를 구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모두 이루어 주셨습니다. 한번은 다윗이 자신의 마음을 모두 하나님 앞에 내려놓았을 때 그는 하나님께서 이미 대적에 승리할 수 있는 자원을 준비해놓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승리는 그가 전쟁터에 나가기도 전에 이미 확실한 것이었습니다.

2014년 5월 7일 수요일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바울은 변화가 가능하기 위해서 바뀌어야 할 첫 번째 변화를 이렇게 언급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고린도후서 3:12-16)

이 구절에서 바울은, 유대인 뿐 아니라 모든 이방 족속들 즉 모두에게 해당하는 원리를 제시하고 있지만,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인정하지 못하는 완고한 유대인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적 진리에 대하여 보지 못하는 완고함에 대하여 말합니다. 14절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But their minds were blinded)”

여기서 여러분이 아셔야 할 부분은 바울의 편지를 받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바울의 가름침을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신실하게 모세의 율법, 예언서 그리고 다윗의 시편들을 공부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성히 여기고, 가르치고 자유롭게 삶에 적용하였씁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는 아직도 수건(베일)이 가려져 있었습니다.

영적인 수건(베일)은 유대인, 무슬림 그리고 그 이외의 수많은 사람들의 눈을 가려 예수님에 대한 진리로부터 시야를 어둡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 수많은 믿는 성도들의 눈을 가려 보지 못하게 하는 수건(베일)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백한 경고를 말씀으로부터 읽고 능력있는 설교를 듣고도 변화가 없는 성도들을 말합니다. 사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하는 행동들을 듣고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의 시야를 가리는 수건이 제거되기 이전에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고린도후서 3:16). 그리스어 “turn(돌아가면)”의 의미는 “방향을 정반대로 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약해 보자면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선택한 그 길의 방향은 당신을 공허함, 피폐 그리고 절망으로 가져왔다는 것을 인정하셔야 합니다.”

만약 당신의 삶이 어떠한 혼란을 겪고 있다면, 즉 무언가가 크게 잘못되었다던가 상황이 점점 악화되어가고 있다면, 당신은 방향을 바꾸어야 된다는 것을 알게될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수도 있겠지요. “바로 내 남편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가 변화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는 “내 상사가 모두 잘못되었습니다. 그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실수와 죄를 쉽고 분명하게 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변화에 대한 필요에 대해서는 눈이 어둡기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 바로 접니다. 바로 제가 변화되어야 할 사람입니다. 아버지, 제발 저의 잘못을 제게 보여주세요.”

2014년 5월 6일 화요일

대적하고 새 힘을 얻으십시오

만약 어떤 크리스천에게 마귀와 싸우는 방법을 물으면 그는 야고보서 4장 7절을 인용할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야고보서 4:7)

기도 중에 있을 때 당신은 마귀의 어떠한 수단과 방법에도 맞설 면역력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부르짖고,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으로 힘을 얻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요한계시록 12:14). 저는 여기서 사도 요한이 언급한 독수리의 두 날개는 하나님의 말씀인 구약과 신약 성서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4장 6절에서 양육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디모데전서 4:6). 바울은 여기서 바울은 말씀으로 교육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을 때 사탄은 물러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사탄이 진리에 노출이 되어 정죄되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에서는 말씀을 믿은 사람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히브리서 11:33) 라고 언급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섬으로써 지옥에서의 권세를 물리 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자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머리를 땅에 묻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히 채우면, 하나님께서 독수리 날개 같은 그의 품 안에 당신을 감싸시어 안고 유혹의 강물을 넘어갈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이사야 40:31 )

2014년 5월 5일 월요일

놀라운 은혜 by Gary Wilkerson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은혜는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성경 속 “은혜(Grace)” 라는 단어는 “기도” 라는 단어 만큼 자주 언급되었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은혜를 믿죠.”라고 쉽게 말합니다. 또 어메이징 그레이스(놀라운 은혜)라는 찬송을 부르며, 모두 놀라운 은혜에 동의한다며 “은혜”라는 단어에 초점을 둡니다.

그러나 은혜는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을 의미합니다. 왜 우리의 심령이 경배와 찬양에 열정이 식고 은혜만으로 더 이상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은혜를 최소한으로 받아드리고, 그저 일반적이고 평범하고 스스로 만족할만한 것 즈음에서 그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변화시키시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는 선물, 즉 값없이 주신 이러한 엄청난 은혜에 대해 말하는데 많은 분들께서는 “은혜요.. 네, 그렇지만!”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발은 율법주의에 다른 한발은 은혜에 담그고 있는 것이라면, 은혜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자신 힘으로 하려고 하는 자신의 덫에 빠진 것입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갈라디아서 3:1-3

우리는 자주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 십자가에서 보이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그 은혜로 나는 씻김 받았고, 새롭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니 이제 내 스스로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바로 우리 스스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간혹 스스로 할 수 없다 라고 말하는 은혜를 불쾌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지금 구원받고 자유함을 얻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율법과 하나님의 명령을 나는 스스로 지킬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2014년 5월 3일 토요일

필수 성분 by Carter Conlon

예수님께서 견뎌내셔야 했던 모든 것들, 즉 경멸과 매 맞음, 모의재판, 그분과 동행했던 자들로부터의 배반, 심지어는 사막에서 먹였던 자들로부터의 거부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또한, 십자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일을 파쇄하기 위해 사탄이 보냈던 적의 광포와 폭력을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가 십자가의 승리를 위한 필수 성분을 제공해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원수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피 흘림이 없은즉 (죄의) 사면이 없느니라.”고 기록합니다. (히브리서 9:22) 하나님의 일을 반대하는 자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거기에는 폭력이 있어야만 했으며 십자가가 있어야만 했고 죽음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고린도전서 2장 8절에서 읽듯이, 만일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알았다면 영광의 주님을 절대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아름다운 문’이라 불리는 성전 앞에서 앉은뱅이의 손을 잡아 일으켰던 사건을 상기해보십시오. 그는 수많은 종교적 지도자들이 그를 무시하고 지나다니는 장소에서 동안 오랜 세월을 구걸했던 자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의 이름으로 그를 일으켜 세웠을 때까지는 아무도 그의 무기력함에 대해 개의치 않았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를 기적적으로 치유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대적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우리 삶의 필수 성분이며 우리의 밥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종교지도자 공청회에 두번씩이나 불려가서 위협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협박의 결과가 무엇이었겠습니까? “사도들이 풀려나매 자기 동료들에게 가서 수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자기들에게 말한 것을 다 전하니, 그들이 그것을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목소리를 높여 이르되, 주여, 주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것들 안의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이시요…” (사도행전 4:23-24)

여기서 우리는 적이 기도 모임에 불을 붙혔음을 알수 있습니다! 위협하는 자들에게 머리를 굽히는 대신, 제자들은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여, 이제 그들의 위협을 보시고 또 주의 종들이 전적으로 담대히 주의 말씀을 말하게 하시며 주의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고 또 표적들과 이적들이 주의 거룩한 아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허락하옵소서, 하더라.” (사도행전 4:29-30) 이 모든 환란이 그들에게 임했던 이유는 그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 전으로 나아가서, 그들에게 더 강한 담대함과 더 많은 권능, 그리고 더 많은 치유를 주십사 간청했던 것입니다!

2014년 5월 2일 금요일

사자 울음소리가 들려올 때면

제가 젊은 목사였을 때 저는 영적 전쟁에 대해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승리 가운데 걷는 사람은 누구든 마귀를 대항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제게 있어서 그것은 단순히 그를 저항하면 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으르렁거리며 전력으로 제 연약함을 향해 덤벼드는 사자를 곧 발견했고, 그와 싸우기에는 제가 너무도 무력함을 느꼈습니다.

매우 자주, 저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그와 같은 일을 행하고 있는 마귀를 봅니다. 저는 순수한 마음을 지녔으며 은혜 안에서 걷고 있는 수많은 경건한 주의 종들이 혼동과 절망의 악귀적 공략들로 압도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위해 오랜 세월 동안 열심히 수고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어느날 갑자기 사탄이 그들 마음속에 비난의 생각들을 넣어줍니다. 하룻밤 새에 그들은 예고치 않은 유혹들과 탐욕, 그리고 절망감 등 끔찍한 문제들로 휩싸입니다. 그들의 시험은 너무도 심각하고 기이하며 불가사의해서 이 성도들은 대체 그것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것에 대한 단 하나의 해명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들의 문제들은 악귀적 공습입니다. 매번 저는 급속히 성장해가는 성도들에게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그들이 영적 성장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사탄은 그들의 여로에 이전의 유혹을 집어넣습니다. 그것은 옛 정욕일 수도 있고 오래전에 그들이 극복했다고 생각했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수년간을 승리 안에서 살아왔던 그들에게, 다시금 그들을 끔찍한 속박으로 되돌릴 수 있는 탐닉의 위기가 닥쳐왔고, 지금은 위태로운 외줄 타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들이닥치는 위기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성도가 지금 그와 같이 휩쓸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핍박, 신체적 공격, 정신적 괴롭힘, 지옥에서 나온 불같은 유혹, 원수처럼 등을 돌리는 친구들로 쇄도 당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극도의 절망으로 휩쓸어가기 위한 마지막 대의 총력전 공격을 겨냥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탄의 힘을 어떻게 저지할 수 있을까요? 요한계시록 12장에서 요한은 우리에게 답을 줍니다. “그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의 증언의 말로 그를 이기었으며…” (11절) 당신에게 사자 울음소리가 들려올 때면, 위기가 물밀듯 닥쳐오며 압도당했을 때는 단순히 지성소로 달려가십시오. 믿음으로 하나님 보좌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왜냐하면, 어린 양께서 그분의 보혈을 통해 당신을 위한 길을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새롭고 살아 있는 길로 지성소에 들어갈 담대함을 얻었는데, 이 길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휘장 곧 자기의 육체를 통해 거룩히 구분하신 것이니라.” (히브리서 10:19-20)

2014년 5월 1일 목요일

그는 하나님의 아들을 패배시킬 수 없었습니다

“하늘에 큰 이적이 나타나니라. 한 여자가 해로 옷 입고 있는데 그녀의 발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녀의 머리 위에는 열두 별의 관이 있더라. 그녀가 아이를 배어 해산의 고통을 겪는 중에 울부짖으며 출산하려고 진통을 겪더라.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나타나니라. 보라,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큰 붉은 용이 있는데 그의 머리들 위에 일곱 개의 관이 있으며 그의 꼬리가 하늘의 별들 중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내던지더라. 용이 막 해산하려고 하는 그 여자 앞에 서서 여자의 아이가 태어나면 곧 삼키고자 하더라.” (요한계시록 12:1-4)

사탄은 구약의 남은 자들로부터 한 놀라운 교회가 탄생하기 직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영광스러운 몸일 것이며, 마귀는 이제 그의 영토인 지구에서 싸움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다시 한번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이 구절은 사탄이 마리아의 태내에 있는 아기를 죽일 수 없었음을 알았기에 그리스도가 태어나자마자 그를 죽이려고 작정했음을 암시합니다. 그는 베들레헴 주위의 모든 사악한 세력을 모으고 거짓의 영을 보내 서기관들과 제사장들, 그리고 바리세인들을 눈멀게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영이 헤롯 왕에게 들어가서 그를 포섭했습니다. 만일 사탄이 직접 그리스도를 죽일 수 없었다면, 그를 대신해서 그렇게 해줄 사람을 대기시켜 놓았겠지요.

그러나 하늘 천사들 주님의 군단이 그 아기를 지키고 있었고, 사탄은 그 아기에게 손을 댈 수 없었습니다. 이제 마귀는 그리스도를 삼키기 위해 삼십년을 더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의 다음 기회는, 성령께서 그분을 메시아로 선포하신 후 예수님께서 막 사역을 시작하시려는 찰나에 왔습니다. 그때 사탄은 그리스도를 유혹하기 위해 그분을 광야로 데려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번 전투에서도 그를 패배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이 연약해진 그분을 섬기도록 천사들을 보내주셨고, 그분의 아들을 다시 한번 보호해 주셨습니다.

마귀는 그리스도를 삼켜버릴 마지막 시도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십자가의 처형으로 예수님을 죽여 무덤으로 던지기 위해 그의 세력을 움직여 작전을 세웠습니다. 그는 군중을 선동시키기 위해 사악한 영들을 내보냈고, 그들은 제사장들과 병사들, 정치 지도자들과 거짓 증인들의 몸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침내 사탄은 그의 권능을 발휘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그는 총력전을 벌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나머지 이야기를 잘 아십니다. 부활의 날은 사탄에게 가장 부끄러운 패배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을 때, 그분은 마귀의 손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나셨습니다. “그녀의 아이가 채여 올라가 하나님께 이르고 그분의 왕좌에 이르더라.” (요한계시록 12:5) 사탄이 또 잃었기에 온 지옥은 흔들렸습니다. 그가 모든 능력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절대 패배시킬 수 없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