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30일 월요일

확신할 수 있는 믿음의 반석 by Gary Wilkerson

우리는 크나큰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직장, 경제 그리고 인간관계의 불확실성 등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심지어 믿음까지도 불안하게 느끼게 합니다. 이러한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확신할 수 있는 믿음의 반석은 하나님만이라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고자 하십니다.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은 흔들 릴 수 있지만 하나님은 변함없으십니다.

마가복음 5장에서는 혈루병 있는 여인을 치유하시고(막 5:25-34) , 회당 주권자의 딸을 고치시고(5:35-43) 고향으로 돌아가신 예수님은 완전히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구절은 언제나 저를 크게 놀라게 합니다.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저희의 믿지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마가복음 6:5).

이 구절은 제가 연구한 신학을 그저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립니다. 어떻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믿지 않음으로 인하여 아무 권능을 행하실 수 없을 수가 있습니까? 진실은, 예수님께서 그 지역에 전하는 메시지가 있었던 것입니다. “미안하지만 어떤 이들은 내가 치유해줄 수 있도록 지붕에 구멍을 뚫어 병든 사람들 내게 데려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너희는 내가 치유할 수 있다는 것 조차도 믿지 않고 있다.”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마가복음 6:6).

이것을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경고로 여겨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읽고 불신의 마음을 갖고 그저 떠나지 마십시오.

물론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하나님께서 선택적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기도 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부르짖고, 하나님의 중재를 믿음으로 간구하여도 하나님은 다른 방향으로 인도하시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버리고 절대로 소망하지 말고 절대로 간구하지 말고, 소원 없이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직도 예수님께서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예수님께서 하실 것이라고 믿으십니까? 그 어떤 시험을 겪더라도, 멀게 느껴질지라도 하나님은 늘 중재해 주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당신 안에 믿음을 불어 넣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2014년 6월 28일 토요일

우리는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by Jim Cymbala

저는 지금 우리가 위기에 처해있으며 깨어나야만 하는 절박한 시기에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소수의 예외는 있겠지만, 오늘날의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다를 바 없습니다. 실상 우리는 라오디게아적 사고로 체제화되어 있기 때문에 미지근함이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몇몇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교회는 “탁월”하다고 간주됩니다.

일세기 말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엄중한 말씀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보족한 것이 없다 하나...” (요한계시록 3:15-17) 달리 말하면, 그들은 그럴듯한 “긍정적 고백”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승리와 축복을 선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문제는 예수님께서는 전혀 감명받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이렇게 반응하셨습니다:

“그러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 (요한계시록 3:17, 19)

그것은 확실히 엄중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을 항상 엄중히 다루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히브리서 12:7)

라오디게아인들이 모든 언약을 선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성도들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하십시오. 그들은 찬송가를 부르며 주일마다 예배드리고, 신체적 이익을 누리면서 그들의 이교도 이웃들보다 그들 자신을 당연히 더 의롭게 여기는 그리스도 지체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내침을 받으려는 위기의 순간에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심각한 경종인지요!
그리스도의 지체에 문제가 발생할 때는 그때마다 강력한 조치가 요구됩니다. 우리는 단지 가만히 앉아서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는 권능 안에서 역동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연합되었으며 늘 기도했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 분투했으며, 그분을 영광스럽게 하는 결과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곧 첫번째 공격이 왔습니다. (사도행전 4:2-3 참조) 그들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그들은 재빨리 다음과 같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주제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 이시요…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낮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사도행전 4:24, 29-30)

이것이 바로 수세기를 통해 선지자들이 백성들에게 권고해왔던 것입니다: 공격을 받았을 때나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을 때,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그분은 당신을 도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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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심발라(Jim Cymbala) 목사님은 뉴욕의 한 소외된 지역에 위치한 작고 허름한 건물에서 이십명도 채 못되는 성도들과 함께 브루클린 테버네클(Brooklyn Tabernacle)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는 브루클린 태생이며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 그리고 게리 윌커슨 목사님과 오랜 친분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세계 전역에 걸쳐 World Challenge에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의 주된 강사입니다.

2014년 6월 27일 금요일

생수의 강

에스겔 47장에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다음과 같은 계시가 보여졌습니다. 가장 마지막 때가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온 인류 역사를 통튼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영광스럽게 될 것이며 더욱 승리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진정한 몸은 그 능력이나 영적 권위에 있어서 약화되거나 감소되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의 교회는 권능과 영광의 불꽃으로 전진할 것이며,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가장 충만한 예수님의 계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에스겔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 지역들의 물고기가 그것들의 종류대로 대해의 물고기같이 심히 많으리라.” (에스겔 47:10) 주님 임재의 차오르는 물속에서 헤엄칠 성도들의 지체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차오르는 물에 관한 에스겔의 환상은(에스겔 47:3-4) 증가하는 성령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대에는 그분의 백성 가운데서 증가하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을 것입니다.
이 강의 근본 토대는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이 이미지의 성취를 요한복음의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군사들 가운데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찌르니, 즉시로 거기서 피와 물이 나오더라.” (요한복음 19:34)

물이 계속 차오르는 것은 제자들에게 성령이 주어졌을 때의 오순절의 이미지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성령이 선물로 주어짐과 동시에, 그분이 그들 안에서 흘러나오는 생수의 강이 되어주신다는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강물은 온 세상으로 흘러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7:38-39 참조)

에스겔의 환상에 의하면, 그 생수의 강은 주님이 오시기 바로 직전 최고조에 달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선지자를 놀라운 계시로 데리고 가셨고 에스겔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가 나를 데리고 그 물들을 지나가는데…” (에스겔 47:3) 그리고 주님은 이 선지자를 더 깊은, 그리고 더 먼 강물로 계속 나아가게 했습니다. 결국에는 물이 너무 깊고 압도적이었다고 에스겔은 말합니다. “그것은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그 물들이 솟아올라 헤엄칠 물이 되고 건너지 못할 강이 되었더라.” (47:5)

주님께서 이 선지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셨을 때 그가 얼마나 놀라워했을지를 저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 물이 차오른 이 바다는 대체 무엇이냐? 이 강이 온전히 생명과 부활의 능력에 관한 것이라면, 그러한 영광 가운데서 헤엄칠, 그토록 축복된 자들은 과연 누구란 말이냐?” 에스겔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을 단지 상상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2014년 6월 26일 목요일

노래하고 외치며 찬양하세요!

성령으로 충만한 하나님의 종을 공격하면 할수록, 더 많은 찬양이 그 사람 안에서 올라온다는 사실을 사탄은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성도가 위기에 몰리면, 그는 노래하고 외치며 예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성령 충만한 하나님의 자녀를 문제와 골칫거리들로 얽매어 놓는다면, 그는 더욱 노래하고 외치며 찬양할 것입니다!

바울이 귀신들린 소녀에게서 귀신을 쫓아낸 직후에 사탄은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 16:16-18 참조) 그는 군중으로 하여금 바울과 실라를 향해 격분을 발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그들은 갑자기 끔찍한 곤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 도시의 행정관은 그들을 채찍질한 뒤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저는 채찍이 그들의 등을 칠 때마다 마귀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래, 너는 아직도 승리를 거두었다고 생각하니? 너는 내 마귀들을 쫓아내고 내 권능을 빼앗아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귀는 성령 안에서 걷는 하나님의 종을 채찍질하면 할수록 더 많은 찬양이 그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모르는듯합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매 죄수들이 그들의 말을 듣더니…” (사도행전 16:25)

만일 우리가 성령 안에서 걷는다면, 우리는 사탄의 모든 결박으로부터 초자연적 구원을 가져다주실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분이 지진을 일으키셔야 한다 해도요. 그것이 바로 바울을 위해 그분이 하신 일입니다.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감옥의 기초가 흔들리고 즉시 문들이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결박이 풀리더라.” (26절)

사탄은 당신이 경험했던 그 어떤 것보다도 더 혹독한 유혹이나 시험을 당신에게 가져오려고 할 것입니다. 그는 당신이 죄의식과 비난, 그리고 자기반성의 수렁에 빠지게 되기를 원합니다. 성도여러분, 당신은 성령 안에서 일어나서 당신의 상황과 결박으로부터 눈을 떼야만 합니다.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대신 노래와 찬양을 올려드리며 하나님을 신뢰하기 시작하세요. 그러면 그분이 당신의 구원을 이루실 것입니다.a

2014년 6월 25일 수요일

모험적 믿음

환란을 직면했을 때,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보다도 더 그분을 영예롭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시편 106편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 군대와 그 모든 병사가 홍해에 휩쓸려가는 놀라운 기적을 지켜보는 장면을 봅니다. “그들을 미워한 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며 원수의 손에서 그들을 구속하셨고, 물들로 그들의 원수들을 덮으시매 그들 가운데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도다. 그때에 그들이 그분의 말씀들을 믿고 그분을 찬양하는 노래들을 불렀도다.” (시편 106:10-12) 그 다음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께서 행하신 일들을 곧 잊어버리고…” (13절) 우리는 얼마나 빨리 과거의 축복과 기적을 잊어버리는지요.

우리는 과거의 경험에 따라 우리의 믿음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잘 잊어버립니다. 지난 경험들만 가지고는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힘을 공급받기에 충분치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 즉 날마다 하나님에게서 오는 새로운 말씀의 공급에 입각한 새로운 믿음이 필요합니다!

곤경에 처했을 때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러면 그분은 더 많은 은혜와 모든 충만함, 그리고 그분의 능력으로 당신을 신뢰할 것입니다.

아주 절박한 곤경에 빠졌을 때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모든 상황을 그분의 보살피는 손안에 맡겨놓는 모험적 믿음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깊은 바다에 그물을 던져놓고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겨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모험적 믿음은 그분을 참으로 기쁘시게 합니다.

믿음은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며, 곤경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입니다. 자, 그러므로 이제 그 자리에서 나와 모든 것을 그분께 위탁합시다.

하나님은 불같은 시험으로부터 우리를 건져내시기 위한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당신이 어떤 환란을 겪고 있다 해도, 하나님은 모든 곤경에 대처한, 인간의 마음으로는 결코 구상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그 한 예로,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직면했던 불같은 시험을 생각해봅시다. 그곳에는 빵도 없었으며 그 어떤 식량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위원회나 중보 기도회가 다음과 같은 발상을 해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내일 아침에 우리가 일어나면 천사들의 음식인 흰 과자 같으며 꿀맛 나는 만나가 땅 위에 덮여있는 것을 발견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출애굽기 16장 참조)

하나님께서는 이미 계획을 세워놓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경이로우며 불가사의한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도 계획을 갖고 계시며 우리는 그분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2014년 6월 24일 화요일

승리하는 삶

예수님께서는 갈보리에서 마귀의 모든 능력과 권세를 말살시키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승리의 부활을 하셨을 때, 그분은 무수한 포로의 무리를 사탄의 손아귀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보혈의 값으로 산 행렬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갈보리에서의 그리스도의 승리는 사망을 이긴 승리보다도 더 값진 것을 우리에게 안겨주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삶에서의 놀라운 전리품들, 즉 은혜, 자비, 평화, 용서, 능력, 믿음 등 승리의 삶을 이끄는 데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우리로 하여금 얻게 했습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우리를 통해 모든 곳에서 그분을 아는 냄새를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이제 감사하노라.” (고린도후서 2:14)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성전을 보존하기 위한 모든 필요를 공급해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집을 다스리는 아들로서 신실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기쁨을 끝까지 굳게 붙들면 우리가 그분의 집이니라.” (히브리서 3:6)

여기서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진리를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성령 안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자원을 공급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성전을 보존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며, 그것을 보존하기 위한 자원은 우리가 싸우는 전투의 전리품들로부터 직접 오는 것이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보존을 유지시키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분은 그분의 집으로 우리를 입양하셨고, 그분이 완전히 정결케 하신 이 집의 주춧돌로 서 계십니다. 마침내 그분은 우리가 지성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믿음으로, 온전히 세워진 완성된 성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절반 정도만 완성된 집을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이 성전을 좋은 상태의 성전으로 유지하기 위한 자원은 그리스도 자신의 영에서 발견될 수 있습니다. 그분은 모든 전리품의 담당자이십니다. 그러한 자원들은 우리가 필요를 인식하며 하나님과 연합할 때 방출됩니다. 그리고 그 연합은 우리가 전투할 때부터 시작됩니다. 

우리의 자원은 전투에 몰두해있는 동안 우리가 쟁취한 그리스도의 형상입니다. 그것은 원수와의 전쟁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과 믿음, 그리고 성품입니다.

2014년 6월 23일 월요일

부활의 능력 by Gary Wilkerson

“회장의 치리자의 집에서 어떤 이가 와서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하거늘…” (마가복음 5:35)

이 소식을 듣는 야이로의 마음은 마치 칼이 그를 내리치는 듯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는 방금 예수님께서 혈루병에 걸린 여인에게 그녀가 병으로부터 놓였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의 고통이 막 시작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 경건한 자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내 부족한 믿음이 내 딸을 죽였구나.”

이 구절에는 완전히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모든 자를 향한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당신이 아마도 치유받지 못했거나 당신의 결혼이 끝장났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자가 결국은 예수님께로 돌아오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때로는 비극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시는지 그야말로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믿음은 가장 갖기 어려운 유형의 믿음입니다. 모든 상황은 하나님께서 관여하시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때일수록 너무도 특별한 믿음을 찾고 계시는데 그것은 이렇게 말하는 믿음입니다. “맞아, 내 상황은 이미 모든 희망을 잃어버렸어. 그러나 예수님은 아직도 하실 수 있어.” 이러한 유형의 믿음은 아브라함에게 요구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주님께 순종해서 그의 아들 이삭을 죽이기 위해 칼을 들었을 때, 이삭은 이미 죽은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이 허상이 되어버린 듯한 바로 그 순간에 전능자께서 개입하셨습니다. (창세기 22장 참조)

예수님께서 야이로를 위해 개입하셨을 때가 바로 그러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분은 야이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마가복음 5:36) 저는 여기서 예수님께서 야이로가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말씀하신것 이상으로, 그의 믿음을 요구하고 계시다고 믿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창세에 말씀하셨듯이, 야이로에게 “믿음이 있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일 오늘 예수님께서 당신의 귀로 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신다면, 당신의 상황에 대해서도 그와 똑같이 말씀하시리라 믿습니다. “믿기만 하라!” 그분은 당신이 자신의 힘과 능력의 범주 바깥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며 당신 안에서 믿음을 만들어가고 계십니다. 그분은 당신께 이러한 예언의 말씀을 하십니다. “삶의 모든 영역은 더욱 악화되었고, 육신은 죽음의 문턱에 있을지언정, 네 결혼에 대해, 네 자녀에 대해, 네 육신의 질병에 대해, 네 재정에 대해, 네 사역에 대해 그저 믿기만 하라.”

우리는 야이로에 대한 나머지 이야기를 잘 압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렇게 떠들며 슬피 우느냐? 이 소녀는 죽지 않았고 잔다, 하시니” (마가복음 5:39) 당신의 상황도 가망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은 야이로의 딸을 죽음에서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와 똑같은 부활의 능력으로 당신의 상황에 개입하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2014년 6월 21일 토요일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by Carter Conlon

하나님께서는 그분 백성들의 마음속에 깊은 부르짖음이 태동할 때 어떻게 반응하실까요? 저는 그 해답을 사무엘상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절박감이 한 민족뿐만 아니라, 그분께로 백성을 돌이키기 위해 사용될 자들의 심령 속에서도 일어나도록 허용하십니다. 그 실례로 ‘한나’라는 이름의, 아이를 잉태치 못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주께서 그녀의 태를 닫으셨으므로 그녀의 대적 또한 그녀를 심히 자극하여 애타게 하였더라. 한나가 주의 집에 올라갈 때에 해마다 그가 그와 같이 하므로 브닌나가 그녀를 자극하니라. 그러므로 그녀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이에 그녀의 남편 엘가나가 그녀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우느냐?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의 마음이 괴로우냐? 내가 당신에게 열 명의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 이에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뒤에 한나가 일어나니라. 이제 제사장 엘리는 주의 성전 기둥 옆에 있던 의자에 앉았더라. 한나가 혼이 괴로운 가운데 주께 기도하고 심히 통곡하며…” (사무엘상 1:6-10)

여기서 우리는 한나가 거룩한 절박감 가운데 처해 있음을 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중 많은 자가 현재 처해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절박감은 하나님과 동떨어진 삶을 사는 세상적 절박감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상황이 그들을 압박하기 시작하며, 체념과 절망이 그들의 마음을 장악할 때 울부짖기 시작합니다. 한편 우리는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하나님 백성의 마음에도 깊은 울부짖음이 태동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한나가 마침내는 더이상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최고조의 절박감에 달해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저 또한 더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하는, 그와 같은 심정을 제 기도 시간에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순간은 로마서의 이 말씀과 일치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말로 할 수 없는 신음으로 친히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느니라.” (로마서 8:26)

하나님께서 불어넣어 주신 거룩한 절박감은 당신의 심령으로도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특정한 시간에 그 일이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 안에서 그리고 당신을 통해 무언가 이루기를 열망하신다는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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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카터 칸론(Carter Conlon) 목사님은, Times Square Church의 창립 목사이신 데이빗 윌커슨(David Wilkerson) 목사님의 초청으로 1994년에 Times Square Church의 부목사로 부임했으며, 그 후 2001년에 담임목사로 임명되었습니다. 강인하며 열정적인 지도자로서, 그는 세계 전역에 걸쳐 World Challenge에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의 주된 강사입니다.

2014년 6월 20일 금요일

여호와의 손이 나의 위에 있으므로

구약성서에서의 거룩한 하나님의 종들에 대하여 읽으면 제 마음이 뜨거워 집니다. 이 믿음의 종들은 하나님의 일에 대한 책임감과 열정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기사와 이적이 오늘날 크리스천들에게는 쉽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따라야 하는 본보기를 보여줍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데 사용하고자 하는 믿음과 성격,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도 그렇게 믿음과 특징을 소망하기를 원하십니다. 

에스라는 온 국가를 일깨워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에스라는 하나님의 손이 그의 위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나의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어.” (에스라 9:28). 다른 말로는 하나님께서 손을 뻗어 에스라를 감싸주시고 그를 변화시키셨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에는 수 백명의 서기관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사명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에스라를 다른 서기관들로부터 구별시켰을까요? 무엇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손을 그의 위에 있게 하시고 무너진 예루살렘의 재건을 하기 위한 오만 명의 사람들의 책임자로 에스라를 세우셨을까요?

말씀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에스라 7:10). 쉽게 말하자면 에스라는 의식적으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이 세상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고 순종하고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말씀을 배우는 학생이 될 것이고 내가 읽는 모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할 것입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손이 그의 머리에 있기 전에도 그는 말씀을 성실히 구하고 연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말씀이 그를 끊임없이 검진하도록 하였고 말씀으로 육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씻김 받았습니다. 에스라는 말씀을 갈구하였고 말씀으로 기뻐하였습니다. 에스라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모든 일을 거행하는데 있어서 늘 말씀이 그의 마음을 준비시키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에스라를 감동시키시고 손을 에스라의 위에 두신 이유입니다.

2014년 6월 19일 목요일

치유하는 약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은 쓰고 맛없는 약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 유년시절에 삼켜야 했던 피자마유처럼 그것은 치유하는 약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43-44).

여기서 예수님께서 율법을 반박하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율법 안에 침입한 육 적인 영에 대하여 역설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 당시에 유대인들은 유대인들만 사랑했습니다. 유대인은 이방인과 악수도, 옷자락이 스쳐서도 안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율법에서 가르치는 정신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 (잠언 25:21-22).

정부의 비도덕적인 행사를 미워할 수 있습니다. 동성애자, 낙태를 한 사람들, 그리스도를 경멸하는 사람들의 죄를 미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저 사람으로 사랑하도록 명령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인류를 위하여 죽으시고 사랑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만약 제가 어떤 사람의 신념보다 그 사람 자체를 미워한다면 저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본보기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저는 맨하튼의 5번가에서 있었던 동성애 퍼레이드를 목격한 적 있습니다. 이십오만 명의 동성애자들이 행진하였고 그 대부분은 반나체였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게이다”라는 피켓을 들고 있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행진 대열에서 벗어나 “하나님은 당신의 죄를 미워하십니다. 그러나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있는 크리스천을 공격하였습니다.

저는 뜨거운 분노를 느껴 얼굴이 새빨게 졌음을 느꼈습니다. 소돔에 내렸던 불이 그들에게도 임했으면 하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 또한 예수님을 부인한 사람들에게 불로 내쳐지기를 원했던 제자들 같았구나.”

원수를 사랑하십시오! 당신 앞에서 전투적으로 죄를 짓는 그들을 사랑하십시오! 당신을 저주하는 그들을 축복해 주십시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러니 사랑하십시오.

2014년 6월 18일 수요일

하나님 나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한 명 한 명의 마음에 지으신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은 전지전능하고 강력하게 다스리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복음 17:21).

하나님 나라, 즉 우리의 마음 속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온전히 다스리시며, 인도하시고 치유하시고 구원하시며 우리의 행동을 통치하십니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이사야서 9:7). 이 구절은 영원토록 지속될 그리스도의 통치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우리는 왕 되신 주님의 통치에 더욱 순복해야 합니다.

당신의 삶에서 매일 예수님의 통치가 증가되고 있다고 정직하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권위 아래 당신의 행동을 내려놓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천국에 계시면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권위로 통치하고 계시다면 이 땅, 나라의 통치는 어떻게 하고 계실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히브리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고 오늘날에는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브리서 1:1-2).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분명한 메시지입니다. 육으로 만들어진 하나님의 말씀이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하신 말씀을 상기시켜주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기록되고 보여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통치하십니다. 성경은 우리 통치자의 주권이고,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통치 받는 사람의 간증을 듣고 싶다면 시편 119편 11절을 보십시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2014년 6월 17일 화요일

참된 위로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그의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의 원수에게 더하리라.”(이사야서 66:13-14).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주의와 경고에 귀 기울이지 않으며 거부하는 고집 세고 완강한 학생을 선생이 얼마나 오래 견뎌줄 것 같습니까? 오래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사람들이 연상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이미지 – 즉 아이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대하여 언급하였습니다.

우리 교회의 한 어머니는 비교적 먼 거리에 위치한 교도소에 수감 중인 아들을 면회하기 위해 일주일 중 하루를 사용합니다. 수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교도소에 도착하여 잠깐 아들을 봅니다. 어머니는 칙칙한 색의 죄수복을 입은 아들의 눈에서 고통과 괴로움을 봅니다. 매번 아들을 방문할 때마다 그녀의 속은 점점 더 죽어갑니다. 그러나 그녀는 절대로 아들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녀의 아들이고 그녀는 아들을 사랑합니다!

이러한 사랑이 바로 성령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이렇게 위로하십니다. “주님께 당신의 전부를 드린다고 하였고 당신은 주님께사랑을 드렸고 예수님은 당신을 항상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나 또한 당신을 놓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 되었은 즉 나는 계속 하나님의 명령하신 일을 할 것입니다!”

성령님의 위로 말고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진실된 위로는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당신은 하나님과의 동행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당신을 밤중에 따뜻한 침대에 눕히듯이 완전한 평강을 채워 휴식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만이 당신의 고난과 애통 중에 참된 위로를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이러한 확신을 주실 것입니다. “이 위로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입니다.”

2014년 6월 16일 월요일

구원을 받으리라 by Gary Wilkerson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마가복음 5:25-26)

이 여인의 절망적인 상황을 보면, 그녀의 건강상태는 좋지 않은 상태에서 더욱 악화되기만 하였습니다. 그녀는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마가복음 5:28)

그녀의 마음 안에는 크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믿음은 예수님께서 굳이 그녀에게 오시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강했습니다. 그녀는 그저 손을 내밀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28절에 보면 그녀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면 가능할 것이다.”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으리라”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확신했습니다. “내가 치유 받고 구원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믿음은 바위처럼 단단하였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바탕으로 하나님께 능치 못한 일이 없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신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 여인이 질환으로 인하여 겪었을 일들을 상상해 보십시오. 12년 동안 그녀의 상태는 약한 정도에서 더욱 허약해지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녀의 상황이 문제들은 점점 늘어나고 고지서는 쌓여가고 걱정도 함께 늘어가는 당신의 삶을 묘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의 기도가 응답되는 것을 보며 자신의 기도에는 귀를 기울어주시지 않는다고 생각되기도 하겠지요. 그러고 마음에서부터 부르짖을 것입니다. “주님, 얼마나 더 오래 견뎌야 하는 것입니까? 제가 왜 계속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들어주시라고 소망해야 하는 것입니까?”

저는 이 여인의 믿음이 정말 좋습니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치유 받지 못했고 결국에 확신 가득한 믿음으로 예수님께 손을 뻗었습니다. “내가 이 질환으로 죽거나 나의 구원이 오늘 올 것이다”하는 믿음으로 말입니다. 그녀의 믿음은 단순히 “예수님은 하실 수 있어!”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실 거야!”라는 굳건하고 확신에 찬 믿음이었습니다.

그녀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5:29-30).

이 구절을 또 다시 보면 예수님께서 이 여인의 치유와 구원을 시작하신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여인의 믿음이 치유의 시작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5:34). 그녀의 믿음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주님, 주께서 나의 필요를 잊으셨더라도 저는 주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일화는 우리도 “주님, 주께서 하실 것입니다.” 라고 확신하는 그녀와 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줍니다.

2014년 6월 14일 토요일

이것이 회개를 동반한 믿음입니다 by Claude Houde

예수님은 베드로가 그분 교회의 기둥이 될 것이며, 온 세대에 걸쳐 수많은 영혼의 추수를 가져오게 하는 역사적 사건인, 비유대인들(이방 민족)에게 하나님 왕국의 문을 가장 먼저 여는 자가 될 것이라는 비전을 갖고 계셨습니다. (사도행전 10장 참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한 사람의 실패자, 그리고 영적으로 “한물간 사람”으로 간주되었던 자의 단순한 메시지로 시작되어, 이천여년 후인 지금은 성도 수가 거의 십억이 되는 막강한 교회가 되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와 어깨를 견주었던 자들은 당신에게, 한때는 잠재력을 지녔던 그가 이제는 흔해빠지고 퇴색해버린 한심한 소담거리에 불과하며, 궁지에 몰렸을 때 형편없이 실패했던 “허풍쟁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믿음으로, 베드로가 하나님의 사람이 될 것이며 담대한 자로서 영원한 영향력을 끼칠 자라는 비전으로 불타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바로 회개를 동반한 믿음입니다! 그것은 이렇게 부르짖는 믿음입니다. “오 주님, 상황이나 배경, 비극과 실패들, 그리고 제 인간적 이해와 능력의 한계를 초월하는 믿음으로 볼 수 있도록 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가르쳐주십시오.”

전 세계를 통해 교회의 아름다움은 그 건물이나 건축양식, 또는 프로그램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21세기 교회의 영광과 가치는, 지금의 현실적 세상에서 실질적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은혜와 소망, 그리고 구원의 메시지에 대한 간증을 갖게 되는 성도들을 탄생시키는 데에 있으며, 한사람 두사람 회개를 동반한 믿음에 의해 변화된 자들의 간증에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분의 부르심과 그분의 목적을 향해, 저로 하여금 회개를 동반한 믿음으로 반응하게 하며, 하나님의 일에 제 인생을 헌신하게 만드는 동기였습니다.

수백만 남녀노소의 마음에는 그들 삶의 경험을 막론하고, 전통적 종교에서는 찾을 수 없으며 그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믿음을 통해 새로운 방향과 소망을 찾기 위한 가능성을 제시해주는 하나님을 찾고 꿈꾸는, 채울 수 없는 갈증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독자 여러분, 당신이 어디에 계시든지 상관없이 저와 함께 이 기도를 합시다. “주님, 저희 믿음을 증가시켜 주십시오! 저희는 운명론과 의례의식, 불신, 그리고 냉소주의를 버리기를 원합니다. 저희는 방향을 바꾸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면 당신은 오늘 당신 머리를 들게 하고 당신 얼굴의 눈물을 닦아주며, 당신께 이러한 말씀하시는 소망의 음성을 들을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마태복음 5:6)

회개를 동반한 믿음은 언제나 부활을 가져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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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클라우드 어드(Claude Houde) 목사님은 캐나다 몬트리올에 위치한 New Life Church의 담임목사이며, 세계 전역에 걸쳐 World Challenge에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s의 주된 강사입니다. 그의 지도력으로, New Life Church는 소수 인원으로 시작해서 개신교 교회로서는 성공하기 힘든 캐나다의 보수적인 지역에서, 지금은 교인 수가 3,500명이 넘는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2014년 6월 13일 금요일

하나님의 사랑으로 넘쳐흐르게 하라

아버지는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이것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수많은 성도가 하나님을 실망시키는 부분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와 실수에 대해 반복적으로 책망받을 준비는 되어 있어도, 성령으로 하여금 아버지의 사랑이 그들에게 넘쳐흐르게 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율법주의자는 죄의식 아래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결코 이해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성령으로 하여금 그 사랑을 그의 영혼에 가르치도록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타임스스퀘어 교회에서는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의로운 자는 책망받기를 좋아하는 자라고 가르쳤습니다. 그 의로운 자는, 성령께서 죄와 불신의 모든 숨겨진 영역을 드러내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왜냐하면, 죄에 대해 더 많이 다룰수록 우리가 더 행복해지며 더 자유로워진다는 이유 때문이지요.

저는 제 목회의 회보에 내보내는 메시지에 반응하는 다양한 태도를 봅니다. 제가 심판의 엄중한 메시지를 내보낼 때는, 압도적으로 찬성하는 반응을 받습니다. 반면 제가 예수님의 감미로운 사랑에 대한 글을 쓰면, “당신은 더이상 진리에 대해 설교하지 않는군요!”라는 편지를 받습니다. 그것은 마치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당신이 꾸짖지 않는다면, 당신이 말하는 것은 복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성도들은 그들 안에서의 성령의 위대한 사랑의 사역 안으로 결코 들어가본 적이 없습니다. 이 영역은 단지 느낌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성령 안에서 걷는 법을 배워야 하는 부분입니다! 성령 안에서 걷는다는 의미는, 당신을 위해 보내심 받은 그분이 당신 안에서 수행할 일을 하시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의미는 지금 이 시간 하나님의 사랑이 당신 마음속에 넘쳐흐르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로마서 5:5)

이사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이사야 66:13) 또한 이사야는 하나님의 완고한 백성을 향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가 오히려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행하였도다.” (이사야 57:17)

2014년 6월 12일 목요일

그리스도 안에서의 온전한 신뢰

제가 그리스도 안에서의 온전한 신뢰에 대해 말씀드릴 때는, 단지 그분의 구원 능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그분의 보존 능력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형상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우리를 보존하시며 우리에게 능력 주실 것임을 신뢰해야만 합니다.

당신 자신의 증언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한때는 당신이 사악한 행위들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되었습니다. 그분과 다시 화목하게 되기 위해서 당신이 어떤 선행을 했어야만 했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을 절대로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도 자신을 거룩하게 만들거나 보존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이 말씀을 신뢰하며, 그리스도의 거룩함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너희를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 같이 너희도 거룩할지니라.” (베드로전서 1:15)

“한때는 너희가 사악한 행위들로 인해 멀리 떨어져 너희 생각 속에서 원수가 되었으나, 이제는 그분께서 죽음을 통해 자기 육체의 몸으로 화해를 이루사 너희를 그분의 눈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드리려 하였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 안에 거하여…” (롤로새서 1:21-23)

이 구절을 주목하십시오. “만일 너희가 믿음 안에 거하여…”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믿음으로 살며 계속 나를 신뢰하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흠없는 거룩한 자로 드릴 것이다.”

거룩함에는 정도가 없습니다. 단지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숙의 정도가 있을 뿐입니다. 누군가의 “거룩함”을 동경하며 당신 자신을 그와 빗대어 측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 모두는 한 기준에 의해서만 측정됩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거룩하심입니다. 우리가 만일 그분 안에 거한다면, 그분의 거룩함은 똑같은 분량으로 우리의 것이 됩니다.

이제는 당신이 다른 성도를 바라보며 “아, 나도 저 사람처럼 거룩할 수 있다면…”하는 생각을 절대로 하면 안됩니다. 당신이 그 사람의 결단력이나 기도생활에 미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그 사람보다 더 자주 갈등하며 더 많은 실수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그 사람이 당신보다 더 환영받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은 누구와도 자신을 비교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눈으로는 당신보다 더 사랑받는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육신에 의존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렇게 선언하십시오.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나의 거룩함을 주장한다. 나는 그분 지체의 한 부분이고, 내 아버지는 나를 거룩하게 보신다. 왜냐하면, 나는 그분 안에 거하기 때문이다.”

2014년 6월 11일 수요일

고통의 부담

우리 모두에게는 다들 그 나름대로 고난이 있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은 자기 분량의 고통의 짐을 지고 있습니다.

당신이 깊은 고통 가운데 있을 때는, 어느 누구도 당신의 내적 두려움과 극도의 고통을 멈추게 할수 없습니다. 가장 절친한 친구조차도 당신이 겪는 고투나 당신에게 가해진 상처를 결코 헤아릴수 없습니다.

상심한 심령에 약이 있습니까? 깊은 내적 상처를 위한 치유가 있습니까? 깨져버린 마음 조각들이 다시 맞춰질수 있으며, 상처받은 심령이 이전보다도 더 강건해질수 있습니까? 예, 그것은 가능합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이며 하나님 자신은 거짓말쟁이가 될 것입니다. 절대 그럴리가 없지요!

하나님은 당신에게 고통 없는 인생을 약속해주지는 않으셨지만, 당신을 위한 “탈출구”는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고통을 견딜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연약함으로 휘청거릴때, 당신을 굳건히 설수 있게 하는 힘을 약속해주셨습니다.

우리의 자애로운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시험 외에는 너희가 어떤 시험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하나님은 신실하사 너희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시험당하는 것을 너희에게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또한 그 시험과 함께 피할 길을 내사 너희가 능히 그것을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13)

당신의 천부께서는 확고부동한 눈으로 당신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당신의 모든 움직임은 감시되고 있으며 모든 눈물은 병에 담겨지고 있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고통과 동감하시며 당신의 모든 아픔을 함께 느끼십니다. 그분은 고통으로 인해 당신의 마음이 악화되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당신이 눈물에 잠기는 것을 절대 허락하시지 않을뿐더러, 제때에 오셔서 당신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슬픔 대신 기쁨을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당신은 주님 안에서 당신의 심령을 즐겁게 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은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에게, 이제는 일어나서 불신을 초래하는 그 모든 두려움을 떨쳐버리라고 명하십니다.

“주의 눈은 의로운 자들 위에 머무르며, 그분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열려 있도다.” (시편 34:15)

2014년 6월 10일 화요일

오직 그리스도만 안다는 것

“이는 우리가 그분 안에서 살며 움직이며 존재하기 때문이라.” (사도행전 17:28)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토록 작은 범주 안에 거합니다. 그들의 존재 자체는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으로만 몰두 되어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을 알기 위해서는 성령에게서 오는 지속적 계시의 흐름이 있어야만 합니다. 만일 성령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며, 아버지의 깊고 은밀한 것들을 찾는, 솟구치는 생명수의 원천이라면, 그 흘러나오는 생명수의 원천은 지속적이며 끊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계시여야만 합니다. 그 계시는 주님을 섬기고자 하는 자들—조용히 믿음 안에 거하며, 성령께서 하나님의 마음을 드러내 주실 것을 신뢰하고 있는 모든 주님의 종들을 기다립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그분의 확실한 말씀, 즉 진실하며 살아있는 계시가 필요합니다. 사무엘에게는 하나님에게서 온 확실한 말씀이 있었고, 온 이스라엘은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그 땅의 모든 음성에 대해 언급했지만, 오직 자신의 음성만이 실현되었으며 그의 단 한마디의 말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명확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수많은 음성을 선별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도들은 그중 몇몇 음성만이 진리의 핵심임을 깨달으며, 홍수처럼 쏟아져나오는 수많은 음성을 부담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한 분만이 빛이십니다! 온 세상은 어둠 가운데 있고, 오직 그 빛만이 그 어둠을 밀쳐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빛에게 명령하사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사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주셨느니라.” (고린도후서 4:6)

당신이 지금 어둠 속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선한 행실들이 그 어둠을 물리치지 못할 것이며, 사회적 문제에 대한 우리의 설교도 그것을 관통할수 없습니다. 당신의 모든 개인적 경험도 소용없습니다. 제가 더 진지하게 말씀드리자면, 그리스도께서 비춰주시는 빛이 아니고는 흑암의 권세를 결박하는 것조차 소용없을 것입니다. 모든 어둠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반영된 하나님 영광의 빛에 의해서만 사라집니다! 기도 골방에 들어가 그리스도만을 탐구합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아는 다른 모든 성도와 함께 동일한 하나님을 섬기고 있으며 동일한 성령에 의해 가르침 받고 있습니다.

2014년 6월 9일 월요일

예수님께서 당신 가까이 계십니다 by Gary Wilkerson

당신은 당신의 무릎을 꿇게 만드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그것이 육신의 질병입니까? 제정 문제입니까? 아니면 곤경에 처한 결혼입니까? 당신의 시험이 너무도 끈질겨서 당신의 영혼이 낙심에 빠져있습니까?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그들의 한계를 초월한 극심한 상황에 부닥쳐 있고, 그 문제들은 가망 없는듯합니다. 그들의 모든 자원이 고갈되었어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을 믿으며 전진했으나, 그들의 상황은 가면 갈수록 악화되었습니다. 그들이 기도하면 할수록 하나님은 더 멀어지는것 같으며, 마침내 그들은 그분이 더이상 개의치 않으신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것이 당신을 묘사한다면, 저는 당신을 위로해드리고 싶습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당신 가까이 계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필요를 채워주기를 원하실 뿐 아니라 당신에게 믿음의 돌파구를 주고싶어 하십니다. 당신의 상황이 아무리 절박하다 하더라도, 그분은 당신의 영에 이 진리를 불어넣어 주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아직도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어.”

마가복음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는 네가지 종류의 불에 대해 말합니다. 첫번째는 우리에게 갑자기 닥치는 재앙입니다. 두번째는 우리의 시험이 오랫동안 끊임없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상태가 계속 악화되는 것이며, 네번째는 우리가 아예 믿음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야이로는 임박한 위기에 처했던 하나님을 경외하는 헌신적 성도였습니다. “회당의 치리자들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그분을 보고 그분 발 앞에 엎드려 그분께 크게 간청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어 누워 있사오니 원하건데 오셔서 내 딸에게 안수하사 그녀가 낮게 하소서. 그러면 내 딸이 살겠나이다, 하매” (마가복음 5:22-23)

야이로의 절박함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의 어린 딸은 거의 죽게 되었고, 치유자인 예수님께서 근방에 오셨음을 알았을때, 그는 “나는 그분을 믿으리라”고 작정했습니다. 그는 메시아에게 즉시 달려갔고, 그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기적을 베풀어주십사 간구했습니다. “주님, 당신이 아니면 제겐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의사들도 저를 도울수 없습니다. 당신이 저를 위해 꼭 기적을 행해주셔야만 합니다.”

윗 구절에서 야이로가 사용했던 표현에 주목하십시오. “그러면 내 딸이 살겠나이다.” (마가복음 5:23) 여기서 사용된 단어 “살겠나이다”는 그리스도의 권능에 대한 야이로의 믿음입니다. 그는 “예수님, 당신은 하실수 있습니다!”라고 선언하며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주님을 믿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딸에게 안수만 하면 그녀가 나을 것임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야이로의 나머지 이야기를 잘 압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렇게 떠들며 슬피 우느냐? 이 소녀는 죽지 않았고 잔다, 하시니” (마가복음 5:39)

당신의 상황은 가망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은 야이로의 딸을 죽음에서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와 똑같은 부활의 능력으로 당신의 상황에 개입하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2014년 6월 7일 토요일

주님의 선하심을 맛보고 알지어다 by Jim Cymbala

최근 삼십여년 동안에는 결혼생활에 대한 지침서가 지난 2,000여 년의 온 교회사를 통튼 기간보다도 더 많이 쓰여졌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에 얼마나 많은 결혼문제가 있는지에 대해 이 나라의 어떤 목회자에게라도 물어보십시오. 어떻게 해야 바람직한 결혼생활을 유지할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책과 비디오가 우리에게 산적해 있으나 여전히 많은 가정이 파탄하고 있습니다.

함께 기도하는 부부는 파탄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 주제를 너무 단순화시키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어떤 결혼이든 힘든 시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나를 부르면 내가 도우리라. 그저 내게 기회를 다오.” (시편 91:15 참조)

이 진리는 자녀양육에 있어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우리가 자녀양육에 대해, 그리고 자녀들과 어떻게 “소중한 시간”을 보낼수 있는지에 대한 많은 책자를 소유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젊은이들의 문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지식이나 방법론이 부족해서가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구하며 부르짖지 않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든 성도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브리서 4:16) 이 말씀은 “우리가 설교를 들으러 나아가자.”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나라에서 설교를 교회의 핵심으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가 절대 아닙니다. 자신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목자들은 성도들로 하여금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와 자비의 진정한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설교자와 찬양가들에게 어느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물으실 것입니다. “너는 ‘가장 중요한 일’, 즉 은혜의 보좌가 발견될수 있는 장소로 성도들을 데려왔느냐? 만일 네가 그들을 그저 흥겹게만 했다면, 단지 그들의 귀를 간지럽히며 감미로운 시간만을 제공했다면, 네게 화 있을지어다. 내가 은혜의 보좌에서 그들의 삶을 변화시킬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그분 축복의 경로로 삼으셨습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정확히 아시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를 위한 모든 지혜와 은혜, 그리고 능력의 상을 펼쳐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취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상으로 가서 주님의 선하심을 맛보고 아는 것입니다. 그 상으로 가는 것을 곧 ‘믿음의 기도’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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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짐 심발라(Jim Cymbala) 목사님은 뉴욕의 한 소외된 지역에 위치한 작고 허름한 건물에서 이십명도 채 못되는 성도들과 함께 브루클린 테버네클(Brooklyn Tabernacle)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는 브루클린 태생이며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 그리고 게리 윌커슨 목사님과 오랜 친분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세계 전역에 걸쳐 World Challenge에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의 주된 강사입니다.

2014년 6월 6일 금요일

가장 큰 위험

우리가 직면할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은 어려움 중에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귀신을 보는 것입니다. 가장 어두운 밤 중 그리고 태풍이 가장 셀 때 등 두려움이 절정에 이를 때 예수님은 태풍 중 구원자 되시고, 범람 속 통치자 되시는 예수님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주께서 홍수 위에 앉아 계시니, 정녕, 주께서 영원토록 왕으로 앉아계시는도다.”(시편 29:10)

마태복음 14장에서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태풍이 다가오는 바다로 가는 배에 타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재촉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른 말로는, 예수님께서 풍랑이 다가오는 물길로 가는 배에 제자들로 하여금 타도록 요구하신 것입니다. 배가 정말 재빠르게 움직이는 부표처럼 던져질 것으로 예상되었음에도 말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어디에 계셨습니까? 예수님은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산에서 제자들이 다가올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를 하고 계셨습니다.

나중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로 물위를 걸어 오셨습니다.(마태복음 14:25). 그러나 단 한 명의 제자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풍랑 중에 물위에서 예수님을 뵐 것이라고 예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거센 폭풍 중에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있기는 커녕 가까이 계실 것이라고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한 명의 제자라도 예수님을 알아보고 사태를 파악한 후에 이렇게 말했어야 합니다. “형제들아.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자. 예수님께서 이 임무를 수행하도록 보내셨고 우리는 그의 뜻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의인의 걸음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신다. 다시 보자. 우리의 주님께서 저기 계시다! 주께서 바로 여기 계시다! 우리는 단 한번도 그의 시야에서 사라진 적이 없다!”

여기서 배울 점은 단 한가지가 있습니다. 심오하고 신비스럽고 경천동지의 발견이 아닌 아주 간단한 교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삶의 모든 폭풍 속에서 그들의 주인으로 신뢰를 받고 싶어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시험을 받는 가장 어두운 시간에도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기쁨과 확신을 지키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아주 간단하지만 굉장히 중요한 교훈인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시더라. 아멘.

2014년 6월 5일 목요일

믿음의 요구

사도들이 주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늘려 주소서.”(누가복음 17:5)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의 요청을 이렇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너희 중에 누가 종이 밭을 갈거나 양을 치다가 들에서 돌아오면 ‘가서 앉아 먹으라.’고 말하겠느냐? 오히려 그에게 말하기를 ‘먹을 것을 준비하라.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띠를 두르고 내 시중을 들라. 이런 일을 한 후에야 먹고 마시라.’고 하지 않겠느냐? 명령한 대로 그가 행하였다고 해서 그 종에게 고맙다고 하겠느냐?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아니하노라. 그러므로 너희도 그와 같이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일을 하고 나서는 ‘우리는 무익한 종들이라.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이라.’고 말하라”고 하시더라.”(누가복음 17:7-8, 10).

예수님께서 우리의 주인되신 하나님의 종인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시중을 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주님께 과연 무슨 음식을 가져와야 한다는 것일까? 주님의 허기를 어떻게 만족시켜 드릴까?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성경은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나니”(히브리서 11:6).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 가장 맛있어 보이고 만족시켜드릴 수 있는 요리는 믿음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만족시키고 기쁘시게 하는 음식인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비유, 예시를 통하여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백부장이 예수님께 자신의 병든 종을 그저 말씀으로만 치유해달라고 요청 드렸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의 강렬한 믿음으로 마음껏 배고픔을 채우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놀라워하시며 따르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스라엘 중에서 이처럼 큰 믿음을 본 적이 없노니, 결코 없도다.’”(마태복음 8:10).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이방인이 과연 나의 영의 배고픔을 채워주고 있다. 이 사람의 믿음이 나에게 큰 영양가 있는 식사가 되었다.” 출혈의 문제로 병을 앓고 있는 한 여인은 예수님을 에워싼 큰 무리를 헤집고 나아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누가복음 8:43-48)예수님께서는 즉시 그녀의 믿음을 인식하셨고 그녀는 치유 받았습니다. 그 여인의 믿음이 예수님을 기쁘시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7장 8절에 솔직하게 하신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에게 말하기를 ‘먹을 것을 준비하라.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띠를 두르고 내 시중을 들라. 이런 일을 한 후에야 먹고 마시라.’고 하지 않겠느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네가 먼저 먹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다.” 다른 말로는, 우리는 우리의 흥미, 관심사, 필요대로 믿음을 채우기 보다는 우리의 믿음은 주님의 배고픔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2014년 6월 4일 수요일

하나님과의 동행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히브리서 11:5)

이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에녹은 성경도 찬송가도 선생님도 성령님도 없었습니다.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 분이 존재하시는 것과 그분이 자기를 열심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하는 분이심을 마땅히 믿어야 하느니라”(히브리서 11:6).

에녹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보상하신다는 것을 알았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상하시는 분이시고 우리의 신실한 믿음에 응당한 보상을 주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를 열심히 찾는 자들을 보상하실까요?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세가지 중요한 보상이 따라옵니다.
  1. 믿음의 첫번째 보상은 바로 우리 삶 속 하나님의 통치 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마귀에게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가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어, 그와 동행하며 교제한다면 하나님은 이 사람에게 사탄은 사실 그의 삶의 그 어떤 부분에도 사실적인 지배를 할 수가 없으며 온전히 그리스도 만이 그의 통치자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2. 믿음의 두번째 보상은 “참되고 정결한 빛”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동행할 때 우리는 빛, 방향, 분별력, 계시 등의 “지식”을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3. 믿음의 세번째 보상은 모든 대적들로부터의 보호입니다. “너를 대적하려고 만들어진 어떤 무기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요.”(이사야서 54:17). 원어 히브리어의 의미는 이렇게 번역될 수 있습니다. “어떤 계획도 그 어떤 파괴하기 위한 도구도, 그 어떤 악마의 무기도 너를 밀어내거나 짓밟지 못할것이다. 오히려 그러한 마귀의 궤계는 짓밟아 질것이다.”

2014년 6월 3일 화요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동행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창세기 5:24). “동행(walked)”이라는 단어의 원어 히브리어의 의미는 하나님과 팔짱을 끼고 걸었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끊임없이 하나님과 대화하며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가면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에녹은 365년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삶의 전부셨습니다. 그의 마지막 날까지 그는 죽음을 보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 11:5)

에녹은 악한 사회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는 황야에서 거룩을 위하여 은둔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삶의 짐과 문제들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삶에는 아내, 자녀, 의무 그리고 책임이 잇달아 있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없어졌더라.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셨음이라”(창세기 5:24).

히브리서의 구절에서 나온 것 처럼 창세기 5장 24절 말씀은 에녹의 옮겨짐을 이야기 하는것이며 그가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록합니다. 그러나 이는 그보다 더 깊은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구절의 “없어졌더라(he was not)”라는 부분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닌” 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영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에녹은 악한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고 이 세상에는 의미를 크게 두지 않았습니다. 바울처럼 그는 자신을 부인하며 매일 죽고 그의 영은 천국으로 옮겨졌습니다.

에녹이 이 땅에서 사는 동안 그는 그가 지어야 하는 모든 책임을 다하여 졌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은 모두 부정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옮기셨으므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그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는 증거를 지녔느니라”(히브리서 11:5).

과연 에녹의 어떤 부분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셨던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동행함으로써 생긴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 분이 존재하시는 것과 그 분이 자기를 열심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하는 분이심을 마땅히 믿어야 하느니라”(히브리서 11:6).
이 두 구절은 따로 분리해서 볼 수가 없는 두 구절입니다. 비록 히브리서 11장 6절을 더 자주 인용되어 쓰이고 5절은 그에 비해 듣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을 아울러서 역사 속 하나님과 가깝게 동행하였던 사람들은 깊은 믿음의 사람들이 되었다고 나옵니다. 만약 그리스도의 교회가 하나님과 매일 동행하며, 끊임없이 하나님과 교제한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 믿음의 사람들로 교회를 이룰 것입니다.

2014년 6월 2일 월요일

은혜의 요소 by Gary Wilkerson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에베소서 2:8-10)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하는 은혜의 네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1. 은혜는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은혜에 관련한 일에 우리는 낮아지고 약해지지 않는 한 도울 수가 없습니다.
2. 은혜는 우리에게 과분한 것이며 값이 없습니다. 우리 삶의 불의를 발견할 때에 우리는 보통 선한 일을 도모하면서 은혜를 재충전하려고 노력합니다. 아닙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은혜는 부분적으로도 아닌 완전히 값 없이 우리에게 부어 주십니다.
3. 은혜는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기도를 덜 한다고 해서 적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원리는 은혜와 맞지 않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악에 대한 경고도 하나님의 자애로운 은혜입니다.
4. 은혜는 끝도 바닥도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신실하셔서 우리에게 주신 언약을 꼭 지키실 것입니다. 영원토록 계속될 것이며, 절대로 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면서 우리는 아버지의 언약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전히 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언약은 더없이 깊고, 강하고 닿을 수 없을 만큼 넓습니다. 수 많은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영광스런 은혜를 부족하게 여기고 결국엔 삶이 두려움으로 지배당하고 맙니다. 실수를 하면 “이런, 하나님과의 약속을 내가 어겼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완전히 인간이 되셨어야 했던 이유도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언약을 완전히 이루셨고, 우리 또한 이러한 은혜를 누리도록 초대해 주십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는 완전히 씻김 받았고,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에 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완전히 이루신 일에 우리는 그 무엇으로도 더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완전합니다. 이 영광스러운 선물을 받고 그 은혜 안에 거하며 기쁨으로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