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8일 금요일

당신의 말씀을 주시옵소서

저는 오늘날의 수많은 그리스도인을 소위 “떡” 성도라고 칭합니다. 그들은 오직 떡으로만 살며, 끊임없이 하나님께 그분의 신실하심을 입증해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들에게는 내면으로부터의 갈급함이 있는데, 무엇이 그것을 충족시킬지를 자신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초기 사역의 수년 동안 저 역시 “떡” 성도였습니다. 제게는 설명할 수 없는 필요에 근거한 깊은 갈급함이 있었습니다. 제게 새로운 교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때, 그것은 제게 주어졌습니다! 제게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믿었을 때, 그것도 제게 주어졌습니다! 제게 돌아선 무리가 필요했을 때, 그들도 제게 주어졌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다 좋은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랫동안 이러한 기도를 해왔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능력을 증거하소서! 제가 빚을 지었으니, 빚 갚을 돈을 보내주소서! 주여, 저를 축복하소서! 제 사역을 축복하소서! 제 기도에 응답하소서! 저로 하여금 당신이 모든 권능을 소유했음을 세상에 증명하게 하소서! 당신이 오늘도 동일하심을 증명하기 위해 병자들을 고쳐주소서!”

예수님께서 그러셨듯이, 그분의 뜻을 알며 행하는 것이 그들 삶에서의 유일한 목표이며, “하나님, 어디에 계십니까?”라고 묻는 대신 “하나님, 순종과 의존의 문제에 있어서 저는 어느 위치에 와 있습니까?”라고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을 하나님께서 발견하시는 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우리가 심판석 앞에 설 때, 우리가 얼마나 많은 치유를 했는지, 얼마나 많은 귀신을 쫓아냈는지, 얼마나 많은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었는지, 또는 얼마나 위대한 일들을 성취했는지에 의해 우리는 판결받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뜻에 얼마나 의존하고 순종했느냐에 따라 판결받을 것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는 하나님께 “명하는” 일에 매우 친숙해져 있습니다. 우리는 마귀와 귀신들에게 명령합니다. 우리는 견고한 진들이 무너지도록 명령합니다. 그 모두는 다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얼마나 자주 이렇게 부르짖는가를 생각해보십시오. “오, 하나님! 제게 명령하십시오!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말씀하십시오. 당신의 뜻을 어떻게 행해야 할지 제게 보여주옵시고,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에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옵소서.”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의 유일한 공급원, 유일한 희망이 되기를 원한다. 나는 너의 유일한 신뢰의 대상이 되기를 원한다.” 제 부르짖음은 이것입니다. “오 하나님, 당신이 제정을 주관해 주시옵시고, 단지 당신의 마음만을 제게 주시옵소서. 나의 건강, 가족, 그리고 제 필요들을 주관해 주시옵고, 단지 당신의 말씀만을 제게 주시옵소서.”

2014년 11월 27일 목요일

그분의 말씀을 행하며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명기 8:3)

신명기의 이 말씀은 너무도 강력해서, 예수님 자신도 광야에서 시험받으실 때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 사용하셨습니다. "사십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 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태복음 4:2-4)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자손들처럼, 예수님 역시 굶주리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완전히 의존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이끌려야만 했던 것보다 더 큰 굴욕이 과연 있을까요?

예수님은 한 인간으로서 그분이 당했던 이 굶주림의 위기와도 같은 고통에 의해 순종과 의존을 배웠습니다. 예수님께서 실제로 말씀하시는 것은 이것입니다.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은 나 자신을 기쁘게 하거나 내 육을 잘 보존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은 아버지의 완벽한 뜻을 행하기 위해서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간적 염려를 아버지 손에 맡기셨습니다. 달리 말하면,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나는 내 모든 삶과 모든 시간을, 그분의 완전한 뜻을 행하며 아버지께 순종하는 데에 드릴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분의 방법으로 나를 돌보아주실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배고픔은 사라질지어다!”라고 한마디의 창조적 말씀만 하시면 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또한 아버지께서 아무도 알지 못하는 양식을 그분께 주실 것도 알고 계셨으므로 먹을 것이나 마실 것, 또는 입을 옷이나 집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그보다도 그분은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했고, 아버지께서 다른 필요를 해결하시도록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취지로 매우 심오한 것을 말씀하시고 계셨습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그분의 말씀을 내게 지켜주실 것을 요구하러 온 것이 아니다. 나는 그분의 모든 말씀을 지키기 위해 온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향한 아버지 사랑의 증거를 보기 위해 기적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말씀 안에 안식했습니다. 그분의 부르짖음은 “하나님, 저를 향한 당신의 말씀을 지켜주소서!” 가 아니었고, 그보다는 “모든 일에서 저로 하여금 당신의 말씀을 행하게 하소서.” 였습니다.

2014년 11월 26일 수요일

완전한 의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곳은 골짜기에든지 산지에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너의 먹는 식물의 결핍함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신명기 8:7-14, 17)

주님은 여기서 이스라엘은 물론,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광야에서 그들이 감당해야 했던 시험의 목적은 의심할 여지 없이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신명기 8:16) 그분은 이스라엘에게 그들에게 곧 부어주실 모든 축복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가르치셔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셨던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우리를 시험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비록 이스라엘 자손이 보혈로 인치심 받고 구원받았으며, 하나님의 초자연적 인도하심을 받으며, 그분의 사랑과 기적의 권능을 베푸시는 대상이었지만, 그들에게는 한가지가 결핍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보혈은 당신의 죄를 가릴 수 있으나, 당신을 그분께 의존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기적은 사탄의 능력으로부터 당신을 구원할 수 있으나, 그것도 당신을 그분께 의존하게 하지 못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에 의해 인도받을 수 있지만, 여전히 주님께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자만감을 벗겨버리셔야만 하며, 우리의 독선, 영적 교만과 과시의 모든 잔재물을 말살시키셔야만 합니다. 그분의 위대한 영적 축복들을 상속받도록 운명지어진 모든 자에게 그분은 굴욕을 안겨주셔야만 하고, 또 그렇게 하십니다.

그분은 타르수스 출신의—자신감에 차 있고, 독선적이었으며, 성경 지식이 충만하며, 하나님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하고, 여호와를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울을 치셔서 눈이 멀게 하셨습니다! 사울은 세상 앞에서 치욕을 당해야 했고 어린아이처럼 이끌림 받아야 했으며,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까지 며칠이고 속절없이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는 완전히 의존해야만 하는 상황까지 되도록 굴욕을 당해야 했던 것입니다!

2014년 11월 25일 화요일

시험

그때 이스라엘 백성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였고 어머니였으며, 왕자였고 지도자들이었으나, 아무 데도 갈 곳이 없었습니다. 온갖 생필품을 실은 낙타도 없었습니다. 건과도, 건어물도, 빵도, 무화과도, 대추도, 건포도나 땅콩도 없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바로의 물품들이 휩쓸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을 실은 짐들이 홍해를 따라 떠내려갔습니다! 그들의 논리적 생각은 이러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집트를 떠날 날과 시간을 정확히 알고 계셨을 거야. 모세가 하나님과 대화했는데, 왜 우리에게 여섯 달쯤 먹을 식량을 가져오라고 하지 않았을까? 하다못해 이집트 신들도 그들의 군사들을 이보다 더 잘 대우하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에게 이 모든 금, 은, 보석들을 왜 빌려오라고 했을까? 이것은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아니야. 여기서는 이런 것들이 아무 가치도 없어!”

그곳에서는 풀잎 하나 보이지 않았을뿐더러, 사냥할 짐승도, 과실나무도, 물물교환할 이방인들도 없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이집트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하더라도, 홍해가 그들의 길을 가로막고 있었으므로 진퇴양난이었습니다! 설사 그들이 홍해를 돌아서 갈 수 있었다 해도, 그들이 당해야 했던 온갖 재앙으로 인해 분노로 가득한 이집트인들은, 그들의 모든 막대기와 돌로 이스라엘 백성의 귀환을 막았을 것입니다.

자, 이제 그들 앞에는 공허한 바람 소리만 들려오는 불길한 사막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울고 있었고 여자들은 어찌할 줄 몰라 손만 비비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들과 남편들은 모두 속수무책이었고 굴욕에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모세 주위로 몰려와 이렇게 불평했습니다.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데리고 나와, 이 전체 집회 무리를 굶주려 죽게 하는도다.” (출애굽기 16:3)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치욕이었고,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우리의 본보기가 되었으니, 이것은 그들이 탐한 것 같이 우리가 악한 것들을 탐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그것들은 세상의 끝을 만난 우리를 훈계하기 위해 기록되었느니라.” (고린도전서 10:6, 11)

하나님은 비참한 굴욕의 장소로 이스라엘을 데려가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시험은 그들이 강한 적군을 대적할 용기가 있느냐에 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싸워주실 것을 이미 서약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준비되지 않은 축복에 대한 시험이었는데, 그것은 좋은 집들, 술통에 가득한 포도주, 강물처럼 많은 우유, 풍부한 꿀, 밀과 가축—그리고 말할 나위 없이, 모든 종류의 영적 축복들이었습니다.

“그분께서 너를 낯추시며 주리게 하시고…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빵으로만 살지 아니하고 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명기 8:3)

2014년 11월 24일 월요일

믿음의 분량 by Gary Wilkerson

얼마만큼의 믿음의 분량을 우리가 받을 수 있는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성경은 명백히 말합니다.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요한복음‬ ‭2‬:‭1-3)

무언가 다 바닥난 적이 당신에게도 있었습니까? 반항하는 당신의 자녀를 향한 인내심입니까? 당신의 가정문제에 대한 희망입니까? 이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포도주가 다 떨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좀 해보렴.”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2:4) 마리아는 아들의 말을 듣고 “그래, 이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더해지지 않을 것이 천국으로부터 확실히 선포되었어.”라는 확답으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대신 그녀는 아들의 대답을 무시하고 전형적 유대인 어머니나 다른 엄마들처럼 행동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2:5)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저는 하나님의 주권을 매우 중히 여깁니다. 저는 그분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명하십니다. “나는 이것을 네게 맡긴다.” 이 구절에 따르면, 예수님은 마리아의 요청에 전혀 수긍하지 않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분은 확고한 신학적 이유까지 갖고 계셨습니다.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라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아직 그분 공식사역의 시작을 공표하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천국의 시간표를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즉시 일하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천국의 시간표가 움직였습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2:7-10) 이 포도주는 단지 “교체된” 포도주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최상급의 포도주였습니다!

기적이 일어났고, 그것은 심지어 마리아의 기대까지도 초월했습니다. 한편 이 사건은 전혀 다른 상황으로 전개되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녀가 예수님의 반응에 주춤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직은 적절한 시기가 아닐 거야.”라고 동의하며 그분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대신 그녀는 아직 저축도 하지 않은 천국은행으로부터 믿음을 인출하여 사용했던 것입니다.

2014년 11월 22일 토요일

그들은 실제 주인공입니다 by Claude Houde

새 신자들이 성경을 읽고 탐구하기 시작하면서 발견하는 가장 큰 충격은, 성경 속의 인물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인간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성경 말씀에는 꾸밈도 속임수도 성형도 없습니다. 말씀 안에는 헐리우드 시나리오도 없으며,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과장된” 완벽한 영웅도 없습니다.

매년 성경이 시대를 초월해서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인 이유 중 하나는, 그 안에서 발견되는 액션과 인물들이 매우 흥미롭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책으로서, 성경을 구성하는 66권의 책은 우리가 자신의 모습을 반영하게 되는 거울입니다. 구약의 인물들은 시간, 공간, 상황, 관습, 그리고 문화적 현실로부터 우리와 많은 차이가 있지만, 그들의 인간적 경험과 인성은 놀랍도록 우리와 흡사합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이 “실제 주인공”이라는 사실에 당신은 동의할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실제상황 TV 프로그램”의 궁극적 체험입니다! 각 장은 우리를 매료시키며, 신성과 연결된 인간적 삶이라는 극단 관람석의 앞줄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우리는 그들의 모험, 전투, 희망, 불신, 열정, 그리고 믿음에 충격받고 놀라며 “도전”받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그리고 너무도 확연히 우리의 삶과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성경 속의 삶의 이야기들은 우리를 웃게도, 울게도 합니다. 우리의 영은 그들이 실패할 때 깨지고, 그들이 실수할 때 부서지며, 그들의 모든 업적에 의해 승화됩니다.

성경 속의 남녀들은 살과 뼈를 가진 인간입니다. 그들은 꿈꾸고, 고통받고, 실수하고, 울며, 그들과 가장 친근했던 자들과 그들이 가장 신뢰했던 자들에게 배반당했으며 실망했습니다. 그들은 처절한 불신, 분노와 혼동, 그리고 순전한 고통으로, 하늘을 향해 그들의 주먹을 휘두릅니다. 그들은 상처받았고 피 흘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그분의 존재 자체를 의심합니다. 그리고 비극이 닥칠 때 그분을 향해 맹렬히 돌진합니다. 너무도 강하면서도 너무도 연약한 그들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며, 때로는 그들이 증오하며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을 결국은 하게 됩니다. 그들은 더 나은 세상, 정의의 세상, 그리고 “그들의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아름답고 고결한 세상을 꿈꿉니다.

성경은 정제되지 않은 다이아몬드로 가득한 보석상자입니다. 각 책과 각 장은 본질, 영원, 그리고 삶의 의미를 찾는 인간경험의 단면을 반영합니다. 당신은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을 발견할수 있고, 당신 자신을 찾을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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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클라우드 어드(Claude Houde) 목사님은 캐나다 몬트리올에 위치한 New Life Church의 담임목사이며, 세계 전역에 걸쳐 World Challenge에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s의 주된 강사입니다. 그의 지도력으로 New Life Church는 소수 인원으로 시작해서 개신교 교회로서는 성공하기 힘든 캐나다의 보수적인 지역에서, 지금은 교인 수가 3,500명이 넘는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2014년 11월 21일 금요일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마태복음 25:24-26, 29, 30). 이 게으르고 악한 종은 누구이며, 왜 그는 어두움에 내쫓김을 당했을까요?

첫쨰로, 그는 숨겨둔 죄에 사로잡힌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악한 종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악함을 나타냅니다. 비록 그는 열심으로 수확을 거두며 기쁨으로 일하는 무리의 종들과 함께 있었지만 그에게는 숨겨지고 밝히지 않은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의 주님을 안다고 하지만(“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마태복음 25:24) 그러나 그는 내려놓지 않은 숨겨놓은 죄 때문에 주님에 대한 변질된 시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한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이렇습니다. “주께서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십니다. 당신의 기대에 부응하는 일을 해낼 수가 없습니다!”

마음 안의 죄로 인하여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일은 내게 너무 힘들고 벅찬 일입니다!” 온전히 하나님 앞에 내려놓은 마음은 자유하며, 순종이 더 이상 짐스럽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 기쁨이 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편 126:5-6).

어떤 한 목회자는 저희 교회의 설교 테이프를 듣고는 그의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 누구도 저런 삶을 살 수는 없어요! 모든 사람은 실수를 합니다. 저들이 설교하는 것처럼 순결한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굳은 설교로 본 것입니다.

그는 왜 그렇게 말했을까요.

2014년 11월 20일 목요일

최전방에 서서

즐거이 헌신하는 사람들은 길에 있는 사자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게으른 크리스천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길에 사자가 있으니 내가 나가면 나는 죽을 것입니다.”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잠언 26:13).

길거리에 사자가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사자가 울부짖으며 삼킬 궁리를 합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주님의 사람들은 그 어떤 사자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뉴욕에 와서 목회를 시작하기 전에 마귀는 제 안에 두려움을 심으려고 했습니다. 저는 뉴욕시가 얼마나 더 악해질지 미리 보았습니다. 사탄은 말했습니다. “너는 뉴욕의 길거리에서 죽임을 당할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가 명령하셨습니다.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누가복음 14:21).

저는 조용한 나만의 공간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특권을 누리고 있기도 하지요. 오늘날 단순히 숨기 위하여 동산으로 들어가 버리는 크리스천의 수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사자들이 그들을 몰아내어 그들은 안전한 장소를 찾아 떠난 것입니다. 저는 이미 이러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던 상태였습니다. 권위있는 재건주의자인 게리 노스(Gary North)는 Government by Emergency(비상사태의 통치)라는 책에서 크리스천들에게 생필품과 총기를 비축해 놓고 소유물을 보호하기 위하여 숨을 준비를 하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그가 비축하도록 권장한 물품들에는 무정부 상태에 뇌물을 하기 위한 (그는 “물물교환”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술, 담배 등도 포함되었습니다.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 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요한계시록 6:16). 이렇듯 산과 바위에게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숨겨달라고 간청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태복음 16:25).

성령충만한 마지막 때의 교회는 숨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최전방에 서서 선한 싸움을 싸우며,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2014년 11월 19일 수요일

마지막 때의 추수

마지막 추수에 큰 수확물을 거두는 사람들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그들은 “추위에 밭을 경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갈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하리라도 얻지 못하리라”(잠언 20:4).

예수님께서는 밭이 바로 이 세상 즉 나라, 사람 그리고 민족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1958년에 뉴욕으로 왔을 때 교회, 사회 그리고 정부는 마약 중독자들 특히나 헤로인 중독자들은 모두 구제불능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자면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던 것입니다. “밭을 갈기엔 너무 춥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원하지 않고 있으며 그들을 움직이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게 명령하셨습니다. “가서 밭을 갈아라! 그들은 귀한 보석과 같은 풍부한 자원이니, 내가 그들을 통하여 큰 수확을 얻을 것이니라.”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큰 수확을 거두셨습니다.

남부지역부터 시작하여 수 만명의 불법체류자들이 몰려오면서 사람들은 모두 어쩔줄 몰라하며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뉴욕과 켈리포니아에는 전 세계에서 불법 체류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들을 부르셔서 어려움에 처한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밈과 동시에 그들의 마음의 밭을 갈을 기회로 삼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선교지를 바로 우리 앞에 놓아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한때 불법체류자이었던 젊은 목회자들이 그들의 고향 나라로 돌아가 선교하며 전도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단의 차가운 물결이 이 땅을 덮고 있습니다. 유대인들도 무슬림들도 모두 차갑게 변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소망없고 각박해지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게으르게 있지 말고 밖으로 나가 밭을 갈아라!” 그 어떤 사람들도 너무 차갑거나, 너무 각박하거나 너무 멀리 가버렸다고 여겨서는 안됩니다! 지금 바로 가서 밭을 갈으십시오!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면 작물을 수확할 수 있을것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의 때에 성령님께서는 모두를 정죄하실 것입니다.

제가 타임스퀘어 교회를 설립하기 전에 우리는 뉴욕이 너무 각박하고 악하며 소망이 없으며, 그 누구도 주일 저녁에 교회를 오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뉴욕은 너무 냉소적이며, 범죄가 만행하며 밤중에 집을 나와 타임스퀘어로 나오지 않을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사람들의 말대로라면 밭을 갈기엔 너무 추운 지역이었지요. 그러나 진리를 구하는 사람들로 꽉 찬 이 교회는, 사람들의 말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2014년 11월 18일 화요일

주의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니

시편 110편은 마지막때 사람들에 대한 직접적인 예언입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3절). 마틴루더 목사님은 이 시편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나라에 관한 영광스러운 예언이며 교회의 모든 일원들은 이 시편을 소중히 여겨야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에는 하나님 나라의 사람들이 “즐거이 헌신” 즉 자발적으로 자원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능력으로 거룩한 선지자, 목자들을 보내시어 나팔을 불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움직이시어 부르심에 대하여 응답하게 할 것입니다. 그들은 회개에 귀를 기울이고, 대적을 맞서기 위한 믿음을 다지기 위하여 모이기에 힘쓸 것입니다.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어둠의 권세를 물리치기 위하여 도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부르짖기 시작할 것이고 교회들을 깨우기 위하여 선지자들을 보내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치기 위하여 철병거로 공격하려는 시스라의 때에 하나님께서는 데보라를 사사로 세웠습니다. “야빈 왕은 철병거 구백 승이 있어서 이십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한 고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사사기 4:3).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데보라를 사사로 세우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이스라엘 민족 안에 일하셨던 것이고 나중에 데보라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두령이 그를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사사기 5:2). 하나님의 영이 백성들 안에 진실로 임하시면, 사람의 힘으로 백성들에게 권하고 약속하며 간청하며, 또는 협박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으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즐거이 헌신하게 됩니다. 저희 타임스퀘어 교회에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말씀으로 정결케 되고 하나님의 영이 수많은 사람들 안에 임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위하여 무엇이든 하겠다고 나서는 수 많은 자발적인 봉사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시편 110:3). 이 말씀은 거룩이 너무나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을 향한 예언입니다. 주의 권능에 날에 그들은 주의 일이 어려운 짐이나 해야하는 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무척 아름다운 일로 보게 될 것입니다! 듣기 어려운 말씀에 몸을 움츠리며 피하는 것이 아니라 다이아몬드를 깎고 반짝이게 하는 것처럼, 주의 영광의 빛이 더욱 빛날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이 말씀은 악한 때를 위하여 주신 언약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로 하여금 기쁨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할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2014년 11월 17일 월요일

천국의 자원 by Gary Wilkerson

“그날에 여호와가 예루살렘 거민을 보호하리니 그 중에 약한 자가 그 날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고 무리 앞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 같을 것이라”(스가랴 12:8).

스가랴 선지자는 지금까지의 역사를 한 구절로 요약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으로 인하여 연약한 우리 크리스천들이 다윗과 같이 강하게 될것이며 우리의 족속은 하나님 같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정말 기이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분명한 하나님께서 주신 예언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하여 우리에게 가능한 모든 자원을 미리 알려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특히나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천국의 자원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 삶에 부어주실것입니다.

이 시대의 교회들이 모두 이 진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몇몇의 크리스천들이 발언대에 섰을때에 침묵을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겠지요. “내가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가질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응답하겠지요. “주님, 저는 야망은 더더욱 없고 오직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제게 주시기를 원합니다.”

저 응답이 겸손하고 거룩하게 들릴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응답은 성령님을 만족시키는 응답이 아니라고 성경에서 말해줍니다. 성령님께서는 “소망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느냐? 대적하는 마귀가 너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더냐? 너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있지만, 나의 구원의 능력을 알았더라면 자유함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느냐? 주위를 둘러보아라. 너희가 하나님 나라로 만들어야 하는 나라들, 물리쳐야 하는 대적과 내쫓아야 하는 마귀들을 보고 맞설 준비를 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힘써 영적 은사를 구하라고 말합니다. 그 의미는 우리가 주님앞에 섰을때에 우리의 소원은 다음과 같아야 합니다. “주님, 저에게는 믿음의 은사가 있습니다. 제게 전도의 은사 또한 주셔서 다른 이들을 구원으로 인도하기를 원합니다.” 또는 “주님, 제게 말씀의 은사를 주셔서 소망없이 큰 고통을 견디고 있는 이웃에게 전할 생명의 말씀을 전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저의 아버지,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께서 제게 가르쳐주신 가장 큰 교훈은, “네가 원하는 만큼의 예수님을 너는 가질 수 있다”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전하고자 하는 단 한가지는 바로 성령님께 지나친 열심으로 구하십시오!

2014년 11월 15일 토요일

어린 양치기 소년 by Nicky Cruz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지명하셨을 때, 다윗은 아버지의 양들을 돌보는 어린 목동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사악함으로, 그의 왕위를 박탈하셨고, 대신 한 목동에 지나지 않았던 다윗을 찾도록 사무엘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이에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상 16:12-13)

그때 다윗의 기분이 어땠을지 상상해 보십시오. 자신이 어떻게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고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과연 그가 알고나 있었을까요? 그는 한낱 양치기 소년이었고, 언젠가 아버지의 산업을 물려받기 위해 자신을 준비시키고 있었을 것입니다. 양치기는 가장 미천한 직업이었습니다. 이새의 막내아들로서, 다윗은 양 떼를 돌보기 위해 날마다 들로 나가야 했습니다. 한편 그의 형들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들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친아버지조차 다윗 안에 숨겨진 위대함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두를 뒤바꾸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을 보셨고, 그를 위한 언약을 만들기 위해 개입하고 들어오셨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던 장엄하고도 영광스러운 미래였습니다.

그때 다윗은 들판에서 홀로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는 데에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수풀을 지나 달리고 주님 앞에서 노래하며, 아름다운 산야에서 찬양하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는 이른 아침 높은 바위에 올라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장엄한 일출을 바라보곤 했을 것입니다. 그는 매일 아침 북풍을 들이마시고 야외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그의 뼈를 강건하게 만들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과 처음 만났던 곳은 이곳 들판이었고, 그는 친구로서 그분과 대화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시가 그처럼 아름답고 감동스러운 것입니다. 그는 시편에서 그와 하나님만이 가졌던—들에서 함께 춤추고 양들을 보살피며, 사랑과 우정으로 무르익었던—지난날들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 (시편 19:1-2, 4-6)


목동 다윗은 하나님을 정열적으로 사랑했고, 하나님은 그것을 주목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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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니키 크루즈(Nicky Cruz)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전도사이자 저작가입니다. 그는 1958년 뉴욕에서 데이빗 윌커슨(David Wilkerson) 목사님을 만난 후, 폭력과 범죄의 삶으로부터 예수님께로 돌이켰습니다. 그의 극적 전환에 대한 이야기는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의 저서 “The Cross and the Switchblade (십자가와 칼)”에서 처음 알려졌으며, 그 후에 발간된 그의 베스트셀러 자서전 “Run, Baby, Run (달려라 니키)”에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2014년 11월 14일 금요일

하나님의 음성을 올바로 듣는 것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을 때, 사람들은 위임장 없이 그분을 위해 자기 임의대로 행하며 수고합니다. 저 또한 그랬던 적이 있습니다. 선한 일들을 행하고 도전을 감수하며, 저는 부당한 일군들을 대항해 맞서고 있다고 전적으로 믿었습니다. 곧 저는 수천 달러의 빚을 지게 되었고, 지치고 환멸을 느낀 나머지 언제 어디서나 도움을 구하며 울부짖었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에 의해 보내졌던 것이 아니었고,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기도로 태동한 것이 아니었으며 인간적 연민에 의한 것이었기에, 저는 상심했고 짓눌렸으며, 진정코 포기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더 이상은 아닙니다, 주님! 당신이 명하지 않으시면 한 발짝도 떼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의 음성이 들릴 때까지 이제는 한치도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 후 모든 필요한 자금은 하나님께서 지원하시므로 모두 충당되었습니다. 그것은 부담 없는 기쁨이었고 구걸이 필요없는 평안이었습니다. 오늘날 사역에서의 구걸은 하나님의 음성에 의해 보냄 받지 않은 사람들의 선행의 결과입니다. 그들 자신의 욕심이 하나님의 제안으로 잘못 판단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듣지 않고는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그분에게서 들은 그것들을 세상에 말하노라…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 아버지께서 내게 가르쳐 주신 대로 하니라.” (요한복음 8:26, 28)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이를 것과 말할 것을 친히 내게 명령으로 주셨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무엇을 말하든지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내가 말하노라.” (요한복음 12:49-50)

여기 하나님의 음성을 올바로 듣기 위한 네 가지 지침이 있습니다.
  1. 그분의 음성은 모든 죄와 욕정을 드러내며 언제나 당신을 예수님께로 인도합니다. 요한은 그분의 음성을 듣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분을 볼 때에 죽은 자같이 그분의 발 앞에 쓰러지니…” (요한계시록 1:17)
  2. 그분의 임재나 모습은 언제나 그분의 음성을 동반합니다. 당신은 그분 임재의 영광으로 압도당할 것이며 기쁨에 넘치게 될 것입니다.
  3. 그분의 음성은 당신에게 성경적 확신을 줄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그분 말씀 안에서 당신을 확증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면에서 성경과 일치해야만 합니다.
  4. 그분의 말씀이 무엇이든 그 정결함과 순전함에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2014년 11월 13일 목요일

그분 음성의 소리

그분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열망은, 그들이 그분 음성의 소리를 듣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요한복음 3:29)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은 이런 것이어야 합니다. “나는 그분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나는 홀로 서서 기다렸고, 그분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솔로몬의 아가서에서 우리는 마지막 날 혼인식 사랑의 이중주를 들을 수 있습니다. 신랑은 그와 함께 은밀히 숨기 위해 그의 신부를 부릅니다. "바위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아가서 2:14) 후에 그녀는 이렇게 응답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다오…" (아가서 5:2)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린 자들과 그분의 음성을 더이상 들을 수 없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하고 믿음으로 그분께 돌이킨다면, 그들에게 새롭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강퍅한 마음에도 희망이 있습니다— 당신이 변화를 원한다면요! 강퍅한 마음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행하신 일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차단함으로써 당신 스스로 초래한 일입니다. 여기 당신을 위한 언약이 있습니다. "그들이 그리로 가서, 그 가운데 모든 미운 물건과 가증한 것을 제하여 버릴지라.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에스겔 11:18-20)

그리고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에스겔 36:25-27)

2014년 11월 12일 수요일

그분 사랑의 팔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시편 6:6)

거인 골리앗을 죽였던 전사, “다윗이 만만을 무찔렀도다”라고 백성들이 칭송했던 용사, 그리고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며 그분을 신뢰하는 것에 대해 그토록 많은 시를 지었던 하나님의 사람도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시편 6:2) 다윗은 참혹한 죄를 짓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나의 우매한 연고로소이다.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픈 중에 다니나이다." (시편 38:4-6)

다윗은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것—마치 예기치 않았던 파도가 당신의 영혼을 휩쓰는 듯한, 죄로 짓눌린 느낌—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왜 또 그렇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마침내 당신은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하나님, 이것은 제게 너무도 힘듭니다! 제가 더이상 감당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상처받았고, 당신의 속은 죄로 인해 악취가 풍기고 있음을 압니다. 당신은 자신이 어리석었으며 현명하지 못했음을 압니다. 당신은 영적 타락을 느끼며 당신 마음속에서부터 너무도 역겨운 나머지 당신의 몸까지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당신의 실패와 패배는 실제로 당신을 절망과 두려움으로 “온종일 애통하게” 만듭니다. 당신은 근심하고 있고 기가 꺾였으며, 영혼 깊숙한 곳으로부터 혼란스럽습니다.

다윗은 그가 스스로 범한 죄의 자책감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단지 징계만 하고 계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고, 그보다는 사랑으로 시정되기를 원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분으로 나를 견책하지 마옵시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긍휼히 여기소서." (시편 6:1-2) 다윗의 울부짖음은 바로 이것입니다. “주여, 저의 어리석음과 저의 고질적 죄가 제게 이러한 고통을 가져왔습니다! 저는 당신이 저를 바로잡고 징계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제가 아직도 당신의 자녀임을 기억하십시오! 당신의 진노를 당신을 원치 않는 자들에게 쏟아부으세요. 제가 비록 죄를 지었지만 저는 아직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를 사랑으로 훈계하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만일 당신이 과거와 현재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화살을 당신 영혼에 느낀다면, 그리고 회개하는 심령과 함께 당신의 죄로부터 돌이키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그분께 사랑의 징벌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징계받을 것이지만, 마치 자상한 아버지가 사랑으로 자식의 엉덩이를 때리듯이, 큰 자비와 긍휼 안에서의 징계일 것입니다. 당신은 이교도들을 향한 것과 같은 그분의 큰 진노를 느끼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분의 회초리와 함께, 당신을 향해 펼쳐진 그분 사랑의 팔을 느낄 것입니다.

2014년 11월 11일 화요일

새롭게 되어야 할 때

성경 말씀은 그들의 모든 힘을 잃고 한계에 달했었던 위대한 하나님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져가기”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는데, 우리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대면해야 했던 세 가지, 즉 고통의 잔, 혼돈의 시간, 그리고 고립의 밤에 대해서 거론합니다.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남녀를 불구하고 이것을 거쳤습니다.

당신이 처해있는 현재의 고통은 자처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결혼하지 말라고 경고하셨던 남자와 결혼한 이유로 얼마나 많은 아내가 고통받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자녀가 그들 부모를 한계로 몰아가며 비참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너무도 많은 자가 그들 과거의 실수 때문에 에이즈나 다른 질병으로 인한 절망에 빠져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당신은 그러한 문제를 일으켰던 것들에게서 벗어나서 깨진 심령과 회개, 그리고 믿음으로 들어갈 때입니다. 이제는 성령의 새로운 힘의 부어주심을 받아 새로워지고 회복되어야 할 때입니다!

만일 당신의 마음이 경건한 슬픔을 느낀다면, 그리고 당신이 그분을 사랑한다면, 당신이 침체되었을 수도 있으나 그분은 당신이 실족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회개와 믿음의 여정을 걸으며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니, 저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뇨. 이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완전케 하시며 나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주께서 또 주의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고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나로 실족지 않게 하셨나이다... 대저 주께서 나로 전쟁케 하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 일어나 나를 치는 자로 내게 굴복케 하셨나이다.” (시편 18:28-36, 39)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기름부음 받은 자들에게 힘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는 저희의 힘이시요 그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산성이시로다.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저희의 목자가 되사 영원토록 드십소서." (시편 28:6-9)

당신이 부르짖으면 그분은 당신에게 그분의 능력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을 장려하여 강하게 하셨나이다... 내가 환난 중에 다닐찌라도 주께서 나를 소성케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시편 138:3, 7)

2014년 11월 10일 월요일

천국 은행 by Gary Wilkerson

최근에 저는 제 마음속에 있는 한 이미지를 떨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람들이 들어와 비즈니스를 행하는 천국 은행입니다. 이 은행은 언제나 열려있어서 우리가 저축도 할 수 있을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죄와 근심, 걱정 등 모든 문제를 창구 직원에게 맡길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수탁물은 하나님 은혜의 보좌로 상달됩니다.

우리는 또한 이 천국 은행으로부터 인출도 할 수 있습니다. 그 은행 창구에는 성령께서 좌정하셔서 무엇이든, 그리고 모든 천국의 자원을 풀어주실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창구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와 능력, 믿음, 그리고 희망의 저장고로부터 인출해 쓸수 있습니다.

제가 이 은행에 대해 생각할 때, 저는 교회에서 우리 중 다수가 많은 저축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의 인출도 하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는 은행 창구로 가서 아주 적은 액수를 구합니다. 우리는 겨우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저는 당신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약간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만일 당신이 제가 버틸 수 있을 만큼만 도와주신다면, 그 나머지는 제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제가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나머지를 해결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모든 불안과 고통, 죄와 상처 등 모든 것을 그분께 맡기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가 그분의 금고에서 그분의 무한한 자원을 꺼내쓰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이렇게 말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 저는 문제 해결을 위해 십불어치의 믿음을 구하는 것에 진력이 났습니다. 저는 수천 액면만큼의 당신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저는 단지 제 문제만을 해결하기보다는 이 땅에 당신의 영광이 세워지기를 보기 원합니다. 이제부터 제가 이 창구로 올 때, 저는 당신 성령의 더 위대한 부어주심을 구할 것입니다. 저는 더 많은 당신의 생명과 호흡, 그리고 제 안에서의 당신의 행하심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브리서 4:16)

2014년 11월 8일 토요일

꿰뚫는 메시지 by Jim Cymbala

사도들은 복음을 전할 때 절대 사람들을 능숙하게 다루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의사소통의 목적은 ‘근사하게’ 보이거나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죄를 지적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관통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일까? 우리가 어떻게 해야 주일에 더 많은 사람을 교회에 나오게 할 수 있을까?”와 같은 주제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그들 마음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러한 시도 자체가 그들에게는 생소한 것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을 성경적으로 그리스도께로 나아오도록 하는 대신, 우리는 “교회 성장”이라는 비성경적 관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성경은 숫자에 목표를 두라고 우리에게 말하지 않고, 대신 성령의 담대함으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하라고 촉구합니다. 그렇게 해야 하나님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일부 교회에서는 어떠한 예배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지를 계속해서 관찰하며, 그 외에도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메시지를 바꿀 수 있는 어떠한 허가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인기가 있든 없든, 또는 시대적으로 “앞서” 있든 아니든, 우리는 죄의 대가가 무엇인지, 그리고 예수님께서 죄를 회개하는 자들을 용서해 주신다는 사실을 신실하고 담대하게 선포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도 대형 교회를 세우라는 요청을 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성령의 기름 부음과 능력 아래서 그분이 사랑하는 영혼들에게 그분의 말씀을 선포하고, 오직 그분만이 가져올 수 있는 열매를 맺으며, 오직 그분의 일을 하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따라서 영광은 어느 교파나 지역 교회, 지역 목사, 또는 교회성장 상담가한테로 가지 않고 오직 그분께 드려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유일한 계획입니다. 그리고 그 외의 모든 것들은 신약성서의 가르침으로부터 탈선입니다.

오늘날 이 나라에는 이렇게 말하는 반권위적 영적 성향이 있습니다. “아무도 내게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할 자격이 없어. 감히 그럴 수 없지.”
교 회 설교단과 교회 상담에서도 우리는 너무도 빈번히 그러한 사고방식에 빠지게 되며 죄에 대한 진실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된 것은”(고린도전서 9:22)이라는 바울의 말씀에 계속 주목하지만, 바로 다음 구절의 말씀은 쉽게 간과해버립니다.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리라.” (24절) 항변하기 위해 우리 스타일을 약간 수정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주님 앞에서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지 않는 복음의 메시지는 절대 바뀔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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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짐 심발라(Jim Cymbala) 목사님은 뉴욕의 한 소외된 지역에 위치한 작고 허름한 건물에서 이십명도 채 못되는 성도들과 함께 브루클린 테버네클(Brooklyn Tabernacle)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는 브루클린 태생이며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 그리고 게리 윌커슨 목사님과 오랜 친분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세계 전역에 걸쳐 World Challenge에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의 주된 강사입니다.

2014년 11월 7일 금요일

성령님께서 주시는 수업

다윗은 왜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다윗이 성령님의 수업에 참여하고 있었기 떄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단련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연단하기 위해서는 어려움과 환난이 그를 강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사울이 없었다면 다윗은 시험받지 못하여 연단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사울은 의로운 방향으로 시작하였지만 곧이어 믿음이 시들해져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은 단 한번도 시험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시험을 견디고 견고한 집을 지을 수 있을만한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을 구하셨습니다.

단 한 순간도 성령님께서 다윗과 함께하지 않으셨던 적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보내셨을 수도 있고, 음성으로 다윗에게 말씀하셨을수도 있고, 천사장을 보내어 다윗을 어려움에서 구원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견디지 못하는 상태까지 어려움을 겪도로 허용하시어 결국에 그가 하나님을 완전히 의지할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다윗이 환난과 시험을 겪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믿음과 하나님에대한 전적인 신뢰에 대한 노래와 시를 성경속에서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현재 시글락 성의 다윗과 같은 상황에 놓여있거나 시글락 성으로 향하고 있는 상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무엘상 30장에 보면, 시글락 성을 불태우고 머물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로잡은 아말렉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윗은 심히 괴로워 하였고, 백성들은 각기 사로잡힌 가족들을 생각하며 다윗을 돌로 치자고하며 이 환난의 책임을 다윗에게 돌렸습니다.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사무엘상 30:6).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하며 질문하여(8절), 그는 잃어버린 모든 것을 다시 찾을 것이라는 확답을 얻었습니다. 19절에서는 결론적으로 : “그들의 탈취하였던 것 곧 무리의 자녀들이나 빼앗겼던 것의 대소를 물론하고 아무 것도 잃은 것이 없이 다윗이 도로 찾아왔고.”

다윗은 가족들과 그의 빼앗겼던 모든 것들을 모두 되찾았으나 더욱더 큰 무언가를 되찾았습니다. 그가 다시 되찾은 무언가는 바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믿음을 바탕으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용기 그리고 확신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새롭게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날에 다윗은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용기를 얻을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다윗은 더욱더 강건하여졌습니다.

2014년 11월 6일 목요일

의로운 일을 하고도 되는 일이 없을 때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슴에 품은 의인의 예로 성경에 나옵니다(밧세바와 우리야에게 지은 죄를 제외하고 말입니다.).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열왕기상 15:5). 사무엘이 그에 머리위에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은 순간부터,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사무엘상 16:13). “여호와꼐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그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꼐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여호와꼐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사울이 보고 알았고..”(사무엘상 18:12,14,28).

다윗이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많은 축복을 얻었고 동시에 다방면에서 어려움도 겪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기억하셔야 할 점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그와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골리앗 앞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두려움 없이 선 다윗을 생각해보십시요. 군중이 “만만을 친 다윗”이라고 외치며 그를 칭송하지만 다윗은 가장 친한 친구와 멀어지고 난 후에 두려움에 찼습니다. 그는 크게 우려한 나머지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미친 사람인 척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둘람 굴에 400명의 환난당한 모든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들과 함께 숨었습니다.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망하리니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경내에서 나를 수색하다가절망하리니 내가 그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사무엘상 27:1). 다윗은 두려움으로 인하여 마음이 많이 상한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름부우시고 감동을 주셨던 것이 큰 실책이라고 생각하며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 저와 함께 계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주님의 감동을 받은 종이 되지 못합니다. 모든 일이 제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의미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주님께서 제게 화나신 것이 분명합니다.” 혹시 여러분도 이렇게 생각하신 적 없으십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단 한 번도 다윗을 버리신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의 삶 속에서도 크게 감동을 주시고 함께 동행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리게 하시고 감동을 주신 날 부터 성령님은 우리 안에 오셔서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시험이 닥쳐올때, 여러분이 어려움에 처해있을때 하나님께 여러분의 위로자 되실 것입니다. 되는일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여러분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평강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2014년 11월 5일 수요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림

만약 당신이 성령님의 타이밍(때 또는 시기)을 믿지 못한다면 당신은 당신의 기도응답이 지연되는 이유를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타이밍을 믿지 않는 한 당신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의심될 것입니다. 요셉이 감옥에 갇혀 희망을 잃었을 때 고백하였습니다.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시편 105:19). 다음의 두 구절 사이에 놓인 고백이었습니다. 1)”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18절) 2)”왕이 사람을 보내어 저를 방석함이여 열방의 통치자가 저로 자유케 하였도다”(20절).

요셉이 겪은 기다림의 시험은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습니다. 요셉은 왕의 술 맡은 관원장 석방되고 관직으로 복귀한다는 것을 알게된 다음에 그에게 사정한 요셉의 한심한 부탁을 들어보십시오. “당신이 득의하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고하여 이 집에서 나를 건져내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치 아니하였나이다.”(창세기 40:14-15).

어떤 이들은 이 부분에서 요셉의 믿음이 어디에 보이냐고 물을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과 무척이나 가까운 교제를 하고 있었기에 꿈을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대화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왜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여 주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였을까요?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시험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설교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말씀으로 시험을 받을 때까지 그 말씀은 생명을 낳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도 말씀으로 극심한 시험을 받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수많은 기도를 응답하시는 것도 보았지만 오래간 응답되지 않은 자신의 기도를 바라보게 됩니다. 당신의 부르짖음과, 눈물, 인내는 모두 들어지지 않은것 같고 응답의 증거는 그 어디에도 보지 못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마지막 때에는 이러한 현상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렇게 환난과 시험이 닥쳐있을때 믿는 우리는 더욱더 열심으로 의심을 버리고 언약위에 바로 서서 믿음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의가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지도록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일하시기를 인내로 기다리는 것은 소수의 그리스도인들 뿐입니다. 어떤 이들은 응답 시기가 지연될수록 더 분노합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고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지 않는다고 생각해버립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 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엇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하박국 3:16-19).

2014년 11월 4일 화요일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때

“여호와의 노하신 매로 인하여 고난 당한 자는 내로다. 나를 이끌어 흑암에 행하고 광명에 행치 않게 하셨으며 … 나를 둘러 싸서 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나의 사슬을 무겁게 하셨으며 내가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나 내 기도를 물리치시며…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하였도다.”(예레미야애가 3:1-2, 7-8, 18).

소망을 잃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응답하지 않으신다고 말한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는 바로 예례미야 선지자 입니다. “주께서 구름으로 스스로 가리우사 기도로 상달치 못하게 하시고”(예레미야애가 3:44). 이 모습은 어려움이 닥쳐있을때 여러분과 저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닫았다고 느껴질 때 말입니다. 여러분은 예레미야와 같이 울부짖으셨습니까? “제가 어려움에 닥쳤습니다.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졌습니다.”

여러분, 예레미야가 계속 절망하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다윗처럼 예레미야는 결국에 소망과 승리를 얻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는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다시 상기하였습니다.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 이는 주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실것임이며 저가 비록 근심케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예레미야애가 3:21-26, 31-32).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악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곡성을 들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시편 6:8-9).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눈물을 보셨고, 울부짖음을 받아주셨고, 우리의 모든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여러분, 뜨거운 고난의 길을 떠나야 한다면, 하나님께서 바로 그곳에 당신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모든 것에는 목적이 있고, 모든 어려운 시험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은혜를 더해주십니다.

2014년 11월 3일 월요일

큰 구원 by Gary Wilkerson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찌니 혹 흘러 떠내려 갈까 염려하노라.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히브리서 2:1-3).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율법은 "견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간혹 이 말씀은 역설적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율법을 지킨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면 어떻게 견고한 권위를 가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선, 율법은 구원을 받기위한 방도가 아니라 우리에게 구원의 필요성을 의미합니다. 율법은 그 견고한 역할을 다 하였고 성경에서는 시대에 따라 인간이 율법을 완전히 지키지 못하고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위의 말씀에서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저자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큰 구원"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완성시키셨습니다. 이 어찌나 견고한 약속의 완성인지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자유케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새 언약의 은혜는 우리 삶 속에서 직접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안에서 능력을 더하여 주셔서 나의 힘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힘으로 말씀 따라 살 수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히브리서 2:4)

사람들은 왜 이러한 큰 구원의 선물을 놓고 그냥 지나치는것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노력과 힘써 일하는 행위로 율법에 반응하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영역에서도 우리의 노력과 노동을 구원과 연결시키기도 합니다. 이성적으로는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의 깊은 곳에서는 아직도 하나님의 축복과 구원을 받는 방법은 우리의 노력과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린시절부터 실패하더라도 법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학습합니다. 집안에서도 기본적인 법도가 있습니다. 방을 치우거나, 저녁 식탁을 정리하는것 등의 일은 보상과 처벌에 기반한 조건과 규칙입니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통제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방법이지요.

가정에서는 그 방법이 적절하겠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방법으로 통제를 받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보상과 처벌의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실패를 할 때에 우리는 자신의 행위를 돌아봅니다.

우 리의 행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결코 대신 할 수 없으며 우리의 노력으로는 거룩으로 다가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큰 구원에 감사함과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으로 나오는 우리 삶 속의 거룩한 행위는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입니다.

2014년 11월 1일 토요일

한 줌의 과자들 by Carter Conlon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렇게 할 자격이 없다고 여겨지는 초자연적 영역에서 걷도록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 마음속에 두려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드온에게 일어났던 일인데, 주님은 그에게 이렇게 지시하셨습니다. “바로 그 밤에 주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서 그 군대에게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주었느니라. 그러나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종 부라를 데리고 그 군대에게로 내려가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 그리하면 그 뒤에 네 손이 힘을 얻어서 그 군대에게로 내려가리라.” (사사기 7:9-11)

달리 말하면, “만일 네가 두려우면 적군의 진영으로 내려가라. 그러면 너는 그들이 하는 말을 들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살 특공임무’로 들어가기 위한 힘을 네게 공급해줄 것이다.”

“이에 기드온이 자기 종 부라와 함께 그 군대 안에 있던 무장한 사람들의 외곽으로 내려간즉… 기드온이 그곳에 이르즉, 보라, 어떤 사람이 자기 동료에게 꿈을 고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보라, 보리 빵 한 덩이가 미디안 군대 안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른 뒤에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뒤엎으매 그 장막이 쓰러지니라, 하니 그의 동료가 응답하여 이르되, 이것은 다름이 아니요…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군대를 그의 손에 넘겨주셨느니라, 하더라.” (사사기 7:11-14)

아마도 여러분은 주님께서 좀 더 특별한 방법으로 역사하실 것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미디언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요. “나는 천천만만의 천사들의 병거를 보았어! 그들은 분노했고, 우리 모두를 죽였어! 우리는 이곳을 떠나야 해!” 그보다도 그는 빵 한 덩어리가 언덕에서 굴러 내려오는 것을 보았고, 그것은 그들의 온 진영을 납작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들은 동료는 즉시 이렇게 결론지었습니다. “자, 이건 하나님의 칼이자 기드온의 칼임이 틀림없어! 그분이 온 군대를 기드온의 손에 붙이셨어!”

어떻게 적군이 그것을 알았을까요? 왜냐하면, 그들은 반복해서 그러한 공습을 받아왔었던 입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불과 몇몇 하나님의 사람들이 갑자기 일어나서 전진하기로 결심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들은 빵 한 덩어리가 언덕에서 굴러내려올 때는 어둠의 왕국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알았던 것입니다!

빵 한 덩어리가 과연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단지 한 줌의 과자들이 모여 하나가 되어 움직이기로 결심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우리의 자만과 우리의 인간적 논리를 굴복시켜야만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체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보여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버려야만합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 중 마지막 한 사람까지도 잔치에 초대받은 과자들입니다. 저는 그동안 아무것도 아니었고 지금도 아무것도 아니며, 언제나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제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것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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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카터 칸론(Carter Conlon) 목사님은 Times Square Church의 창립 목사이신 데이빗 윌커슨(David Wilkerson) 목사님의 초청으로 1994년에 Times Square Church의 부목사로 부임했으며, 그 후 2001년에 담임목사로 임명되었습니다. 강인하며 열정적인 지도자로서, 그는 세계 전역에 걸쳐 World Challenge에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의 주된 강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