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31일 화요일

믿음을 지킨다는 것

주님은 그들이 비록 모든 것을 잃은 고통 가운데 처해있다 하더라도, 믿음을 지킬 자들을 원하십니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히브리서 10:32, 34)

이것은 “빛을 받은 후에” 큰 환란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들의 소유물은 없어졌지만, 그들의 눈은 더 “영구한 산업”에 있었으므로, 믿음은 그들을 기쁘게 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이 땅의 모든 소유를 잃었다면, 당신의 신뢰를 저버리겠습니까?

바울은 좋을 때든 나쁠 때든 그의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의 생애 마지막 시간에도 그는 이렇게 단언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디모데후서 4:7)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사탄은 예루살렘, 다메섹, 아시아, 에베소, 안디옥, 그리고 고린도에서 나와 싸우기 위해 마귀들을 보냈다. 그러나 나는 믿음을 지켰다! 유대인들은 다섯 차례에 걸쳐 나를 서른 아홉 번씩의 매를 쳤다. 나는 감옥으로 여러 번 던져져서 세 번 몽둥이로 맞았고, 돌에 맞았으며, 심지어는 내 고향 사람에게 도적도 당했지만, 내 믿음을 굳게 지켰다!

“내가 때로는 고통으로, 배고픔으로, 목마름으로, 추위와 헐벗음으로, 모든 종류의 문제로 잔뜩 짐 지워져서 너무도 기진맥진해 있었지만, 그래도 믿음을 굳게 지켰다. 나는 환란과 혼동 가운데 있었고, 고난과 핍박을 당했다. 그러나 나는 절대 절망하지 않았고 넘어지지 않았으며, 내 믿음 안에서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이 말씀은 다가올 환란 날에 우리를 지켜줄 것입니다. “그는 흉한 소식을 두려워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시편 112: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란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시편 121:7-8)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시편 27: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시편 50:15)

2015년 3월 30일 월요일

예수님을 올바로 안다는 것 by Gary Wilkerson

지금 교회와 세상이 예수님을 올바로 알아야 하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예수님을 올바로 안다는 것”에 대한 제 말의 의미는, 사랑받기를 원하는 모든 갈망, 이해와 인정을 받고 싶어 하며, 가치와 의미, 그리고 목적을 갖고자 하는 모든 소망 등, 인간의 필요와 열망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근원을 뜻합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찾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우리 문화는 아메리카 우상적 유명세에 완전히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돈이나 근사한 외모, 또는 인기도에 의해 만족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로서, 우리의 가장 깊은 열망은 오직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충족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종종 교회 안에서 예수님을 우리 자신의 이미지로 축소하려 합니다. 우리 중 다수는 우익파 공화당 예수님, 또는 자유파 민주당 예수님 등, 우리에게 걸맞는 예수님을 원합니다. 우리는 흑인과 백인 그리고 황인 예수님을 원합니다.

제가 “진짜 예수님”을 말할 때는, 모든 인간의 배고픔과 갈증을 만족시켜주는 분을 의미합니다. 그분이 어떤 작은 개념으로 한정될 수 없는 이유는, 그리스도는 오직 그분의 충만하심으로 알려질 수 있다고 성경이 말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그분 충만하심에서 받았으매 은혜 위에 은혜로다.” (요한복음 1:16) 짧게 말하면, 우리가 그분을 온전히 알 때만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행할 수 있습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소멸해가는 믿음의 여정일 뿐입니다.

요한은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분께서 자기 백성에게 오시매 그분의 백성이 그분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으나…” (요한복음 1:11) 이것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거부한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얼마만큼의 주님을 무시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그것이 비합리적이라는 이유로 일부의 가르침만을 강조합니까? 우리는 그분의 충만하심 안에서 얼마나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까?

2015년 3월 27일 금요일

아버지의 사랑

신약성서에서는 징계(교육적인 꾸짖음)에 대하여 많이 언급되었습니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히브리서 12:5-7).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며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요한계시록 3:19).

바울은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전서 11:32)

구약성서에서도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징계에 대한 언급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잠언 3:11-12).

여러분께서 무언가 어려움이 닥쳐있고 힘든 일을 겪고 있다면, 그 이유는 실수도 아니고 혼자만 겪고 있는 재앙도 아닙니다. 모든 시험은 하나님의 구체적인 목적과 통치 아래 있습니다.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히브리서 12:10).

우리 삶에 이유는 모르며 알 수 없는 일들이 간혹 일어나듯이 징계는 무척 지독하고 쓰린 듯 보일 수 있습니다. 기쁜일은 아니지만, 그 이후에는 “의의 평강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징계를 통해서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열매를 맺습니다.

사탄은 욥에게 말한 것처럼 여러분에게도 말을 걸어올 것입니다. “의인은 고난을 받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이 너의 기도를 들었다면, 너를 구원하시지 않겠는가? 너를 사랑하고, 그의 약속이 진실이라면, 지금 당장 구원받아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너의 고난은 더 이상 지속 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너의 하나님은 어디 있는가? 너의 믿음의 대가가 이런 고난과 징계인가?”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을 버리지 마십시오! 사탄은 거짓말쟁이 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당신을 위하여 염려를 하고 계시기 때문에 당신의 삶에 고난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하나님과 더욱 더 닮기를 원한다고 기도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응답해주시기 위해 여러분께서 지나가야 하는 길을 더 잘 알고 있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파괴할 방법과 여러분을 구원할 방법을 모두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완벽한 하나님의 때가 찰 때까지 움직이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러분, 포기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은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습니다. 당신이 겪고 있는 고통, 오랫동안 지속된 질환, 모두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금 고난에서 바로 건져 주신다면 끝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을 가지긴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바울에게는 옆구리의 가시가 교만할 수 없게 그를 붙잡은 것처럼, 여러분에게도 삶의 가시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2015년 3월 26일 목요일

연단의 불

구약성서의 선지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들이 연단의 불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먼저 은같이 연단하며 금같이 시험할 것이라”(스가랴 13:9).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의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말라기 3:2-3).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이 불 같이 아니하냐”(예레미야 23:29). 그리고 예레미야는 말하였습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예레미야 20:9).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연단하는 뜨거운 숯 같은 말씀을 보내주시고 계십니다. 연단하기 위하여 온도를 올리고 계십니다. 연단된 전달자인 거룩한 선지자들을 계속 보내시는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그의 백성들을 연단하실 것입니다.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말라기 4:1).

은이나 금이 불로 정제될 때에 모든 불순물, 합금 그리고 불필요한 먼지 같이 작은 입자들은 모두 표면위로 떠오를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정제하시는 과정에 있을 때 공격할 것입니다. 모든 불순물들이 표면위로 떠오르고 숨겨진 죄악들이 불로써 자신과 분리가 될 때 마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표면에 놓인 것들이 무엇인지 보라. 먼지와 온갖 불순물이 있다. 연단하는 불의 말씀이 뜨거워 질수록 먼지는 더 나오기 마련이다. 너희는 정제자의 온갖 먼지와 죄악의 완전체다. 결코 승리하지 못할 것이다! 연단의 말씀아래 수년간 있었지만 먼지와 죄악 밖에 없지 않은가?”

여러분은 마귀에게 이렇게 응답하십시오. “내 옆에 계시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던가? 그 분은 나의 주인이고 나를 연단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는 불씨를 더욱 키워 나를 불 가운데 던지우신 분이시다. 그리고 그런 먼지와 불순물들은 표면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그 밑에는 금으로 가득 차 있다! 여과하듯 하나님의 때에 우리의 표면에 있는 모든 것을 제거하시고 때가 이를 때까지 정화하실 것이다. 그리고 때가 차면 정화된 나를 바라보시며 웃으실 것이다.

2015년 3월 25일 수요일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하나님께서는 믿음 안에서 우리가 그 어떤 공격을 받을지라도 맞서 싸울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주셨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히브리서 12:1).

이 세상에 넘어지고 무너진 사람들이 아닌 영광의 나라에 도달한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을 향하여 고개를 돌리십시오. 이 구절은 승리한 믿음의 성도들이 우리를 둘러싼 듯한 연상을 하게끔 합니다. 운동 경기장의 좌석에서 아직 경기를 치루고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응원을 하는 듯 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만 같습니다. “그 죄를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바로 나와 우리 모두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목숨을 걸고 믿음을 위해 싸웠고,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굳건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인내하면서 끝까지 달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몇몇의 목회자들이 넘어졌다고 생각해봅시다. 수 천명의 목회자들이 넘어졌다고 생각해봅시다. 여러분께서 믿는 그 사람들이 넘어졌다고 생각해봅시다! 그것은 마귀가 더욱더 힘을 얻는다는 뜻일까요? 그것은 소수의 사람들만 승리를 맛볼 수 있을 것이란 뜻일까요? 이런 생각이 들 때에, 흰옷을 입고 우리를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을 바라보십시오!

노아에게 물어보십시오. 믿음을 지키는 것이 과연 그것이 가치있는 일이었습니까? 노아는 이렇게 대답할 것 같습니다. “나의 세대는 모두 넘어지고 믿음을 잃어버렸습니다. 단 8명만이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120년의 폭력과 조롱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이 만연하는 죄악 가운데 견디고 지켜내었습니다. 여러분도, 당신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귀에게 말하십시오. “죄가 그렇게 강력하다면 모든 사람들이 가짜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허다한 증인들로 이루어진 군대는 과연 어디에서 나타난 것인가? 죄가 그렇게 강력하다면 그 수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자유함을 얻었는가? 손을 흔들며, 의의 왕관을 쓰고 승리한 증인들을 보라. 그들은 어떻게 견디었고 승리하였단 말인가?” “사탄아, 네가 그들의 가정을 빼앗고 못쓰게 만들어 버렸다. 너의 심복을 보내어 그들의 자녀들을 강에 버리게 만들었다. 너는 그들을 산산조각내고, 머리를 잘라내고, 복부를 검으로 찔렀다. 그들을 채찍질 하였으며, 폭행하였다. 그들의 목을 끊었지만 그들은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의 믿음이 승리하였다!”

2015년 3월 24일 화요일

믿음의 격렬한 전쟁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생사가 걸린 믿음의 격렬한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믿음의 사람들을 파괴하고 무너뜨리려고 작정하였고, 여러분의 믿음이 자라날수록 사탄의 공격 또한 강해질 것입니다.

믿음이 깨지거나 잃게 되면, 많은 사람들은 연약하여 져서 우상숭배와 사악한 행위에 참여하기 시작합니다. 바울은 어떤 이들이 믿음을 져버릴 것이라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는 디모데에게 선한 싸움을 싸우도록 권하였습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디모데전서 1:19).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디모데전서 4:1).

디모데와 바울은 사탄이 몇몇 성도들의 믿음을 파괴하기 위해 시도할 것이라고 교회에 경고하였습니다. “진리에 관하여는 저희가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디모데후서 2:18).

믿음 때문에 베드로 또한 사탄의 맹렬한 공격을 받았습니다. 베드로의 믿음은 지옥 전체를 격분하게 만들어 악마는 체를 걸러 내듯 그를 면밀히 조사하였습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누가복음 22:31-32).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진 크리스천은 마귀의 1순위 원수입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실현되고, 나라들을 정복하며, 의가 생성되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또한 맹수 사자의 입을 막게 하며, 지옥의 뜨거운 불이 꺼지고, 사망의 검으로부터 피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연약함으로 우리의 믿음은 강하여지고, 전투에서 더 용맹함과 담대함으로 원수 마귀의 군대를 맞서 싸워 물리칩니다.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은 죽은 자를 일으키기도 하며, 고문을 당하여도 하나님을 포기하거나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조롱과 폭력을 기쁘게 견뎌내며, 감옥에 갇히었을 때는 오히려 찬송을 부릅니다.

갖은 공격에도 떨어지지 않고 굳게 설 수 있는 사람은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2015년 3월 23일 월요일

새 피조물 by Gary Wilkerson

목회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상담 하면서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몹시 지친 표정과 말투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법도에 어긋나게 행동하고 하나님을 실망시켜드렸습니다. 나의 죄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끊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가 성령님으로 하여금 비둘기가 날아가듯이 멀어지게 만들고, 그들의 삶과 마음이 의로워 졌을 때 성령님께서 돌아오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을 그때,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가장 많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 때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십니다. 그 악한 순간에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고, 오직 은혜로 성령님으로 하여금 우리의 마음을 감동케 하여 믿음으로 돌아오기를 상기시켜 줍니다. 이러한 은혜는 우리의 노력이나 성과에 따른 교환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성령님은 우리의 죄를 알게 하시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회개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죄를 깨닫고 회개한 이 후에는 죄의 삯에 대하여 근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 어떤 마귀와 우리의 죄악된 본성 그리고 죄책감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여 주셨으며 우리는 그 은혜로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게 허락하셨습니다! 우리는 구원 받은 후에 죄를 지었더라도 다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과 성령님을 통하여 죄를 볼 수 있게 하시니, 하나님께 나와 애통하는 마음으로 회개할 때에 우리의 죄는 이미 씻겨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며,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를 짓는 순간에도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일하십니다.

당신은 이제 더 이상 사망의 법 아래 있지 않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자유함을 가졌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고,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이제 더 이상 이렇게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더 이상 할 수가 없어요.” 대신에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3). 은혜 안에서 씻김 받았고, 은혜 안에서 의롭다고 일컬어 지는 여러분은 자신의 힘이나 능력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할 수 있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로마서 8:3). 우리는 스스로를 의롭게 만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아들이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의롭게 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로마서 8:3-4).

근심하고 계십니까? 자신의 실패 때문에 실망하고 절망하고 계십니까? “내가 과연 진정한 자유함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삶이 진짜 통하긴 할까요?” 라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럴 때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미 자유함을 얻었단다.” 자, 여러분의 삶에 대하여 지금 하나님께서 하고 계시는 말씀의 실상입니다.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 하나님께서 나를 자유케 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마치 하나님께서 내게 자유함을 주지 않으셨다는 듯이 살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함을 내가 진리로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2015년 3월 21일 토요일

위선의 아픔 by Nicky Cruz

예수님이 그들의 구원주라고 주장하면서도, 그분 구원의 은혜를 전혀 경험하지 못했다는 듯이 사는 사람들을 저는 조금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회개하지 않은 채로, 그리고 뉘우침 없는 삶을 살면서도, 어떻게 하나님께 그들을 구원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면서도, 그들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잘 안다는 듯이 말할 수 있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은 사탄이 행하고자 하는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 왕국에 더 맣은 해를 끼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진리를 무시하려는 방안을 이미 모색하고 있는, 세상 원수의 가장 큰 아군입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로마서 12:2) 너무도 오랫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방식을 따랐습니다. 우리는 세상으로 하여금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도록 허용했을뿐만 아니라, 우리를 완전히 오염시키도록 허용했습니다. 우리가 자유롭게 되었다고 우리 자신을 확신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상으로 하여금 죄의 속박이 우리의 심령과 마음을 장악하도록 허용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심령과 마음에 변화를 가져다주시고, 우리를 새롭게 하시며, 우리의 사고와 삶과 행위를 변화시켜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그분으로 하여금 그렇게 하시도록 허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분을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안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속에 올바른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편 51:10)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자의 열망을 요약해줍니다. 날이면 날마다 예수님의 성품으로 변화되기 위해 새로운 심령과 마음을 구하고 정결한 삶을 간구하며, 더 큰 자비와 은혜, 그리고 순수하게 살기 위한 매 순간의 분투가 우리 매일의 삶과 기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바라볼 때, 우리의 이미지는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관점을 규정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우리 천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분의 선하심과 은혜를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결정할 것입니다. 우리는 잃어버리고 타락한 세상에서 하나님 왕국을 위한 대사들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행위는, 그것이 좋든 나쁘든, 하나님의 이미지에 그대로 반영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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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니키 크루즈(Nicky Cruz)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전도사이자 저작가입니다. 그는 1958년 뉴욕에서 데이빗 윌커슨(David Wilkerson) 목사님을 만난 후, 폭력과 범죄의 삶으로부터 예수님께로 돌이켰습니다. 그의 극적 전환에 대한 이야기는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의 저서 “The Cross and the Switchblade (십자가와 칼)”에서 처음 알려졌으며, 그 후에 발간된 그의 베스트셀러 자서전 “Run, Baby, Run (달려라 니키)”에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2015년 3월 20일 금요일

바빌론에 안주하지 마세요!

바빌론은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 탐욕과 이기의 상업 세계는 붕괴되고 있습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요한계시록 18:4)

우리는 바빌론을 영적으로 너무도 승화시킨 나머지, 단순하며 본질적인 진리를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은 요한계시록 18장에 언급되었는데, “사치스러운 삶”과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고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18:3 참조)

상인들이 부유해지는 것이 절대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바빌론은 탐욕의 영을 상징합니다. 그 영은 너무도 강력하고 너무도 악하며 영향력이 큰 나머지 이러한 속담까지 생겼습니다. “사람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정서의 끝줄 정산에 얼마나 액수가 적혀 있느냐는 것입니다!”

상인들은 그 공포의 날에 울 것입니다. 대참사로 불타고 있는 수많은 사람 때문이 아니고 그들의 현금 지급기가 없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월가(Wall Street)는 이 나라의 “탐욕의 수도”라고 불려 왔습니다. 그러나 이 영은 지역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전반적 사회를 휩쓸고 있으며, 심지어는 교회까지 침투했습니다!

성령께서는 이렇게 말쑴하십니다. “너희의 탐욕이 상인들을 더 부유해지지 않도록 하라. 낭비와 빚을 지는 것을 자제하라. 너희의 욕구를 제어하라. 이제 그만하면 충분하다! 바빌론 탐욕의 제분소에서 내려와라. 부유함과 더 많은 것들을 추구하는 정욕의 영을 떨쳐버리라! 탐욕의 영과 함께 거래하는 바빌론의 죄에 동참하지 마라.”

예수님께서 제가 그분과 함께 있기를 원하신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요! 그분이 이 땅을 떠나셨을 때부터, 그분은 제가 천국에 와서 그분을 만나기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한 사람을 위해 그토록 아름다운 준비를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한복음 14:2-3)

저는 그러한 사랑에 참으로 많은 힘을 얻습니다. 그분은 저희를 위해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 보답으로 저는 그분을 위해 준비하기를 갈망합니다!

2015년 3월 19일 목요일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성경은 말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요한일서 2:15)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누가복음 12:15)

우리의 소유물들은 우리를 이 세상에 얽매이게 합니다. 천국과 지옥이 전쟁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쇼핑을 합니다. 영원의 가치는 위기에 처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의 종말이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장난감을 갖고 놀기에만 분주합니다!

성경은 노아의 때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마태복음 24:38) 또한 롯의 때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누가복음 17:28)

그러한 일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노아 자신도 사고파는 일을 했음이 분명합니다. 결국, 그는 120년 동안 건축을 했으니까요! 그러나 여기에서 핵심은, 사람들이 심판이 내리는 마지막 날까지 그 모든 일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누구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으며, 듣지도 않았고, 준비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도 물질적 쾌락을 향한 속박의 영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저는 홍콩에 있는 한 선교사 친구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그의 작은 아파트에는 18명의 중국 학생들이 함께 거한다고 했습니다. 공산주의로부터 탈출한 이 학생들은 그들이 입고 있는 옷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은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들의 실례입니다. 그들이 자기 나라를 탈출한 이유는 서구의 물질문명을 원해서가 아닙니다. 그보다도 그들은 단순히 자유롭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싶어 했습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교회는 탈출하는 대신 그들의 텔레비전과 동영상, 그들의 편리와 “좋은 삶” 속으로 더욱 빠져들어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사람들의 모든 무익한 말에 대해 “그들이 심문을 받으리라”고 하셨던 뜻깊은 말씀이 제 영혼을 울립니다. (마태복음 12:36) 만일 우리가 모든 말에 주의해야 한다면, 우리가 무익하게 시간을 낭비하는 것과 쓸데없이 돈을 낭비하는 것에 대해서도 심문을 받지 않을까요?

우리는 모두 주님 앞에 서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우리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동기가 무엇인가? 왜 우리는 그토록 준비되지 못했나? 우리는 왜 이기적인가? 우리는 왜 이처럼 낭비가 심한걸까?”

2015년 3월 18일 수요일

최후의 전쟁터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12:12)

이 말씀들을 당신의 영으로 들어보십시오. 사탄은 그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땅으로 “내려”왔습니다. 이 지구는 최후의 전쟁터입니다! 그는 자기 세력을 준비시켰고, 그의 전략은 진행 중에 있습니다. 온 지옥은 하나의 거대한 마귀 활동의 연결망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탄의 주요 목표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입니다. 그것은 타락하고 변절된 이스라엘 민족도 아니고, 미적지근하며 자기만족에 빠진 교회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그리스도의 흠 없는 신부입니다! 그것은 값비싼 보혈로 구원받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거룩한 자들로 구성된 선택된 자들, 곧 진실된 교회입니다!

사탄은 불의한 자들을 너무도 철저히 기만할 것이며, 그들은 하나님의 가장 혹독한 심판 아래서도 회개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요한계시록 16:14) 그들은 지옥이 그들의 눈동자 속을 들여다본다 하더라도 주님께로 돌이키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철저히 기만당한 사람들만이, 소멸시키는 작열의 태양 아래서 하나님을 신성모독할 수 있습니다!

제 메시지 전체의 요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온 천국과 지옥이 경계 태세에 들어가 있고, 영적 영역의 모든 곳에서 최후의 시간을 위한 준비는 맹렬한 반면, 수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은 깊이 잠들어 있습니다! 이 마지막 대의 영적 태만과 혼미한 무관심은 천사들과 마귀들에게 미혹의 근원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이 극도의 고통을 겪는 동안 제자들은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별로 바뀐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잠들어 있고, 주님을 저버렸으며 도망갔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앞서 가서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시켰습니다. (누가복음 1:17) 사도 요한은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것 같은” 사람들로 구성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보았습니다. (요한계시록 21:2)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수정과도 같이 명료합니다. 우리는 준비되어야만 합니다!

2015년 3월 17일 화요일

천국의 침묵

우리는 마지막 준비의 때에 살고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 그리고 이 땅에서는, 인간역사의 최후를 준비하는 모든 창조물의 놀라운 일들이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만일 성령께서 우리 눈의 비늘을 떼셨다면, 우리 믿는 자들은 우리가 보는 것에 대해 기뻐하는 동시에 섬뜩해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외칠 것입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왜 모든 사람이 그처럼 단호하고 열정적으로 서두르고 있습니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란 말입니까?”

지금 천국은 다가올 것을 대비해서 불타고 있습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마지막 전투—모든 원수들이 우리 주님 발치 아래 항복하게 되는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주히 준비하고 계십니다!

만일 물리적 세계와 영적 세계를 분리하는 베일이 잠깐만이라도 들춰질 수 있다면, 우리가 얼마나 놀라운 장면을 볼 수 있을까요! 어느 곳을 보든지 우리는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볼 것입니다. 이러한 준비작업을 보는 것은 우리가 영원 속을 들여다볼 수 있을 때만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추측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마지막 준비에 대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드러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6장 1절은 어린양께서 인을 떼셨고, 그곳에 “천둥소리”가 들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다음에는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말씀이 뒤따릅니다.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요한계시록 8:1)

“거룩하다, 거룩하다!”라고 창화하는 천사의 소리도 없었으며 찬양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 전체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천국은 그야말로 거룩한 천둥소리로 진동했고, 그 후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셨습니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거룩한 성령은 침묵하셨습니다. 왜 침묵하셨을까요? 그리고 왜 반 시간 동안이라고 했을까요?

스가랴 선지자는 한 실마리를 제공해줍니다. “여호와께서 장차 유다를 취하여 거룩한 땅에서 자기 소유를 삼으시고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시리니, 무릇 혈기 있는 자들이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성소에서 일어나심이니라 하라, 하더라.” (스가랴 2:12-13)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유업을 주장하실 준비가 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준비되었습니다. 심판의 일곱 천사는, 나가서 땅을 치라는 명이 내려지기를 기다리며 그분 앞에 섰습니다. 태초부터 예정되었던 때가 마침내 도래했습니다.

이 성경 말씀에 사용된 단어들은 폭풍 전의 고요함, 거룩한 침묵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침묵은 인간의 마음으로 헤아리기에는 너무도 거룩하고 너무도 이해 불가한 것입니다. 우리는 최후심판 직전의 이 기간에 하나님과 그분의 천국이 왜 침묵하는지를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2015년 3월 16일 월요일

염려하지 마십시오 by Gary Wilkerson

제가 여러분께 단순한 질문 한 가지 하겠습니다. 당신은 자유로우십니까? 당신은 아마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물론이지요! 나는 예수님에 의해 구원받았고 거룩해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분을 위해 삽니다. 그것은 모든 믿는 자들의 증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다음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 매일의 삶이 당신이 방금 묘사한 그 영광스러운 자유를 반영합니까? 당신의 친구들과 당신의 배우자, 그리고 당신의 자녀들은 당신이 자유롭다고 말합니까? 아니면 당신은 항상 영적 변동의 굴곡을 타고 있다고 느끼는 수많은 그리스도인과 같습니까? 그리스도와의 동행이 언제나 오르락내리락하며 한순간은 영적인 듯 보이다가도 다음 순간에는 육적으로 변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업적에 대한 위대한 신학적 진리, 즉 우리를 위한 구원과 성화를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에게 있어서 이러한 “영적 진리들”은 다른 세상에나 존재합니다. 우리는 교회에 가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해주신 일들을 찬양하며 기뻐합니다. 그렇지만 그분 자유의 선물이 우리 매일의 삶에서 현실로 되어있습니까?

때로 우리는 사고와 행위의 순수함을 유지하기 위해 다들 고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동행에서 빈번히 실패할 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의문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정말로 자유롭게 하셨을까?” 그에 대한 당신의 대답이 만일 ‘아니요’라면, 그리고 당신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삶에서 침체되어 있다고 느낀다면, 당신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염려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당신이 자신의 구원에 대해 의문할 수도 있습니다. 친구들이여, 그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하다는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에 대한 첫번째 증거는 예수님에게서 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27, 33)

최근에 저는 무언가 매우 실제적인 것에 대해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제 나이였습니다! 제가 이십 대였을 때, 그 당시 오십 대였던 제 아버지를 바라보며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정말로 나이가 많으셔.” 그러나 제가 이제 그 오십 대에 이르렀고, 제 인생의 후반기를 훨씬 넘어섰습니다. 저는 질겁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 근심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을까요? “게리, 네가 그 시를 한 자나 더할 수 있겠느냐? 염려하지 마라.”

그리스도께서는 그와 똑같은 말씀을 영적 삶에 대해 조바심하는 우리 모두에게 주십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그분과의 동행에서 얼마나 실족했으며 얼마나 휘청거리고 있다 할지라도, 그분은 “너는 새로운 창조물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당신이 예수님을 따르기로 선택한 순간, 그분은 당신을 새롭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 당신이 너무 멀리 빗나갔다고 생각한다 할지라도, 예수님은 그와는 반대로 말씀하십니다. “근심하지 마라. 네가 나와 친교 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내가 공급했다.”

2015년 3월 14일 토요일

기도의 부흥 by Jim Cymbala

유창하고 능숙한 설교의 영향으로 부흥이 일어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만일 당신이 이전에 있었던 부흥회를 타이머로 쟀다면, 설교보다는 기도와 눈물, 그리고 회개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할애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입니다. 1857-59년에 있었던 “기도 부흥 모임”에서 실제로 설교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명백한 것은 이 기도 모임이 미국 역사상 그 어느 영적 각성보다도 더 많은 추수를 거두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당시 온 나라 인구는 삼천만 정도였는데, 미국 전역을 걸쳐 백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전환했다고 추정됩니다. 그 숫자는 오늘날의 인구에 비례했을 때, 구백만 명의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회개한 것과 비례합니다.

어떻게 그러한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 당시 이곳 뉴욕에는 제레미야 렌피어(Jeremiah Lanphier)라는 한 조용한 사업가가 있었는데, 그는 뉴욕시에 있는 한 네덜란드 개혁파 교회에서 수요일 정오 기도 모임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맨 첫주에는 여섯 명이 나왔고, 그 다음 주에는 스무 명, 그 다음주에는 사십 명이 나왔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날마다 기도 모임을 갖기로 했습니다.

에드윈 오어(J. Edwin Orr)는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그 모임에는 열광적인 모습도 광신적 성향도 없었으며, 단지 기도하는 사람들의 놀라운 움직임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모임에는 설교가 없었습니다. 대신, 누구든 자유롭게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넷째 주가 되자, 1857년의 대 공황이 닥쳤고 채권시장이 몰락했습니다. 그리고 은행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는데, 불과 한 달 이내에 무려 1,400개의 은행이 무너졌습니다.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진지하게 하나님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렌피어 교회의 정오 기도 모임은 세 그룹으로 나뉘어 각기 다른 방에서 모였습니다. 동쪽 브로드웨이 근처의 John Street 감리교회도 사람들로 넘쳤습니다. 곧 Chambers Street의 Burton’s 극장도 정오마다 3,000명의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곧 보스톤, 뉴헤이븐, 필라델피아, 워싱턴, 그리고 미국 남부 지역 도시들에서도 재현되었습니다. 바로 다음 봄에는 2,000명의 시카고 시민들이 기도하기 위해 날마다 메트로폴리탄 극장에 모였습니다. 그때 그 도시에 방금 도착한 21살의 한 젊은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이러한 모임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일하도록 부르심 받았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자기 모친에게 주일학교를 시작할 것이라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청년이 누구였는지 아십니까? 그는 다름 아닌 드와이트 라이언 무디(Dwight L. Moody)였습니다!

오늘날의 아메리카가 목회자나 기독교 서적, 성경 번역들, 그리고 훌륭한 교리적 성명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실제로 결여된 것은, 그분이 하늘 문을 여시고 그분의 권능을 보여주실 때까지 주님을 부르는 열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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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심발라(Jim Cymbala) 목사님은 뉴욕의 한 소외된 지역에 위치한 작고 허름한 건물에서 이십명도 채 못되는 성도들과 함께 브루클린 테버네클(Brooklyn Tabernacle)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는 브루클린 태생이며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 그리고 게리 윌커슨 목사님과 오랜 친분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세계 전역에 걸쳐 World Challenge에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의 주된 강사입니다. 

2015년 3월 13일 금요일

단 한발 짝의 걸음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구하고, 내 시간과 돈을 하나님의 일에 쓰고,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고 온전한 믿음으로 헌신하면서도 하나님의 명백한 명령에 불순종 할 수 있을까요?

솔로몬은 온 마음 다해 하나님의 지혜와 분별력을 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꿈 속에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열왕기상 3:5, 9).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경고도 주셨습니다.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열왕기상 3:14).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강력한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또 솔로몬은 아버지인 다윗왕이 전해주던 말씀과 더불어 아버지의 죄로 인한 최후의 심판 또한 지켜보았습니다. 그에게는 율법서, 데보라, 사무엘을 포함한 사사들과 나단 선지자를 곁에 두었습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이런 경고를 하였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찌라”(열왕기상 2:3).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지혜를 주셔서 솔로몬은 말씀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천여개의 노래와 삼천여개의 잠언을 남겼습니다. 잠언에서 그는 이상한 여인들의 악한 능력에 대한 주의를 언급하였습니다.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은 쑥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같이 날카로우며 그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 걸음은 음부로 나아가나니”(잠언 5:3-5). 솔로몬이 얼마나 말씀을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까? 그는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하는 설교자이기도 하였습니다. 


세계의 지도자들은 그를 찾아와 상의를 하였습니다. 그가 현명하고 분별력 있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그였지만, 그는 아직도 불순종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불순종으로 한 발짝을 내디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를 말씀을 듣고도 감동을 받지 못하며 정욕에 사로잡힌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는 작은 무분별함과 편리함을 이유로 바로의 딸을 아내로 삼았습니다. “솔로몬이 애굽 왕 바로로 더불어 인연을 맺어 그 딸을 취하고 데려다가 다윗 성에 두고”(열왕기상 3:1). 바로 그녀가 솔로몬이 잠언에서 주의를 주었던 이상한 여인 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를 지옥의 문으로 인도하였습니다. 바로의 딸은 우리를 이 세상 육신의 것들에 매달리게 하는 한 연결선으로 – 우리가 내려놓지 못한 단 하나의 죄 를 의미합니다. 그 단 하나의 타협은 항상 합리적으로 보일 것입니다!

2015년 3월 12일 목요일

마음들여 하는 일

기도와 겸손 그리고 죄를 미워하는 마음은 우리로 하여금 “마음 들여” 일하게 합니다.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락되고 고가 절반에 미쳤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역사하였음이니라”(느혜미야4:6). 진정한 거룩한 믿음의 부흥은 일꾼들을 생산합니다. 책들과 세미나 그리고 강좌들은 그렇지 못하나, 부흥은 반드시 일꾼들을 일으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 안에서 일하실때에 사탄은 항상 그를 방해하려는 음모를 꾸밉니다.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퇴락한 곳이 수보되어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하여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쳐서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느혜미야 4:7-8).

이스라엘의 원수된 자들은 매우 분노하여 방해하기 위하여 힘써 모략을 계획했습니다! 그들은 예상치 못할때에 은밀하게 우리 안에 침투합니다. “우리의 대적은 이르기를 저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저희 중에 달려들어가서 살륙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11절).

그들은 아군으로 가장하여 은밀하게 침입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갑작스런 공공연한 전방부로부터 공격을 실시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우호적인 체 하면서 접근하였습니다.

그들의 전술은 내부에서 계획 등을 고의적으로 파괴하고 방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적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이 우리가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 것입니다.”

사탄의 전략과 전술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습니다. 지금도 사탄은 “빛의 천사”들을 보내어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이루어지는 모임들에 침입하여 교리의 참된 의미를 파괴하고 믿는 이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들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보호장치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저희를 인하여 파숫군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느혜미야 4:9).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죄를 극심히 미워하는 마음과 진실로 상하고 깨진 마음, 열심으로 하는 기도 그리고 끊임없는 경계와 늘 깨어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마지막 때에 여러분께서 온전하게 허물없이 주님과 동행할 수 있도록 성령님으로 하여금 여러분의 마음을 완전하게, 깊이 살펴주시기를 구하십시오.

2015년 3월 11일 수요일

하나님께서 내 안에 일하고 계신다!

1986년도에 저는 뉴욕시의 타임스퀘어를 거닐며 이곳의 죄악 때문에 슬퍼하며 울었습니다. 텍사스에 있는 집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1년여 간을 애통하였습니다.그때 하나님께서는 제게 폐허가 된 그곳에서 일을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저는 절망스런 폐허를 직접 보았으나 성벽 재건의 희망을 갖게 될 때까지 제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폐허가 된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계십니까? 당신의 성벽에 수리되어야 하는 훼손된 부분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반석이신 예수님께 우리가 넘어져 깨지며 산산조각 나는 것은 사실 좋은 일입니다. 영광스런 예수님을 바라보면,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자신은 산산조각 날 것입니다. 심지어 여러분이 생각하는 재능, 능력 그리고 돈도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의미 없이 깨져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만 홀로 일어서 이 큰 이상을 볼때에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 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으나”(다니엘 10:8). 상하고 깨진 심령은 육체적 능력과 힘이 모두 산산조각난 상태입니다. 죄의 현실을 완전하게 깨달은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상한 심령은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깨닫고 일어서라 내가 네게 보내심을 받았느니라”(다니엘 10:11). 치유와 재건의 변화가 올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삶속의 폐허는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키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일하고 계십니다! 사탄은 나를 붙잡지 못할 것이고ㅡ 나는 절대로 절망하거나 낙담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죄가 나를 슬프게 하였지만 나는 회개하였습니다. 자, 지금은 깨어 일어나 성벽을 재건 할 때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거룩한 믿음입니다.

여러분께서 이 소망을 열정과 확신으로 붙잡을 때까지 그 슬픈 눈물을 넘어서지 못할 것입니다. 삶이 아무리 먼지 쌓이고 폐허가 된 자갈더미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위에 하나님께서 직접 쓰신 “작업 중”이라는 표지판이 있을 것입니다.

2015년 3월 10일 화요일

깨진 마음

한때 저는 제가 깨진 마음이 무엇인지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아픔을 충분히 겪었기 때문에 알고 있다고 생각하였으나, 성령님께서 내 마음 문을 여시고 그 말씀의 깊은 뜻을 다시금 깨닫게 하셨습니다.

마음이 상하고 깨졌다는 것은 울고, 슬픔에 가득차고 영혼이 상처 입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울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마음이 상한 자들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신음하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깨지고 상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진실로 깨지고 상한 마음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맡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을 마음에 채워주십니다. 병든자를 치유하는 것보다, 죽은 자를 일으키는 것보다 강력한 힘을 주십니다.

성령님께서 제 마음 속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절망의 때에 내가 너의 마음 안에 능력을 더하여 주고자, 하나님께서 보시는 상하고 깨진 마음이 어떤것인지 네게 보여주겠다.” 이러한 상하고 깨진 마음은 황폐된 것들을 복구하고 절망스러운 때에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과 존귀를 드릴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합니다.

또한 상하고 깨진 마음은 성벽과 관련되어 표현되기도 합니다. 무너지고, 폐허가 된 성벽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시편 51:17-18).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으로 상하고 깨진 마음을 빗대어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상하고 깨진 심령을 가진 한 인물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화하사 예루살렘을 위하여 행하게 하신 일을 내가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두어 사람과 함께 나갈쌔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 … 그 밤에 시내를 좇아 올라가서 성벽을 살펴본 후에 돌이켜 골짜기 문으로 들어와서 돌아왔으나”(느혜미야 2:12,15).

어두운 밤 중에 느혜미야는 “성벽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구절에서 shabar이라는 히브리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 단어는 “상한 심령”이 언급된 시편 51편 17절 말씀에서도 똑같이 사용되었습니다.

어떤이들은 느혜미야 1장 4절에서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라는 구절에서 마음이 상하였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가 울며 슬퍼한 것은 상하고 깨지는 마음을 가지는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느혜미야의 마음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폐허가 된 모습을 보았을 때 깨지고 상하였고, 그때에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게 됩니다.

2015년 3월 9일 월요일

끊임없는 영적 싸움 by Gary Wilkerson

우리는 왜 끊임없는 영적 싸움에 놓여져 있는 것일까요? 만화영화에서처럼, 한 어깨에는 마귀가 한 어깨에는 천사가 있어서 나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것 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영적 싸움에 놓여져 있으나 만화영화에서 같은 고민은 사실 아닙니다. 바울은 로마서에 우리에게 놓여진 진짜 딜레마에 대하서 언급하였습니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로마서 7: 14-15, 18).

바울은 얼버무리지 않고 직선적으로 그의 상태에 대하여 말합니다.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라고 말합니다. 자 그렇다면, 이것이 바울이 생각하는 크리스천의 모습이었을까요? 그는 “여러분의 삶은 갈등으로 가득차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후에 바울은 더 나아가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로마서 7:21-24).

수 많은 크리스천들은 이 구절에서 멈추고 이렇게 말합니다. “네. 제가 바로 그렇습니다. 나는 구원받았으나, 내 삶은 비참하기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실 수 없는 상태이고 나는 깨어있는 매 순간 죄의 유혹과 싸우면서 보냅니다.” 자 여기서 문제는, 이러한 크리스천들은 그리스도안에서 정체성을 찾지 못해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의 비참하고 악한 현실을 여과없이 표현하면서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죄로 가득차 있지만, 여기서 우리가 나올 방법은 없습니까? 나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구원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로마서 7:25, 8:1-2).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은 여러분 안에는 성령께서 주시는 생명의 법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새로운 법이시고, 지난 날의 육신의 법을 물리치셨습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죄와 사망의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여러분을 해방시켰습니다.

2015년 3월 7일 토요일

애굽의 굴욕을 몰아내며 by Carter Conlon

미국 교회는 교회를 감싸고 있는 사회에 의해 오랫동안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타락한 사회의 신학은 수많은 하나님 백성의 신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새로운 한 세대가 부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지쳤고 무능력함에 진력이 났으며, 예수님의 이름이 발아래 짓밟히는 것을 더이상 묵인할 수 없는 사람들의 무리입니다.

주님은 그분의 백성을 부르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만일 너희가 나의 죽음을 통해 너희에게 주는 그 생명을 상속받기를 원한다면, 너희는 죄로부터 떠나는 것을 선택해야만 한다. 너희는 이 타락한 사회의 일반적 관습을 행하는 것을 거부해야만 한다.” 지금은 또 다른 기적의 시간이며, 하나님께서는 그 일원으로 우리 각자를 초청하셨습니다. 우리는 약속의 땅으로 막 진입하려는 여호수아의 세대와 흡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애굽의 굴욕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명백히 승인될 때까지는 그곳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바로 그 이유로, 바울은 고린도 서신의 마지막에 이렇게 썼습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고린도후서 13:5) 여러분, 당신 자신을 점검하십시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간단합니다. 자신에게 이러한 질문을 해보십시오.

내가 승리 가운데 살고 있나? 내가 죄를 통제하고 있나? 아니면 죄가 나를 지배하고 있나? 나는 내 죄성의 습관을 정당화하기 위해 변론을 하고 있나?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죄사함을 위해, 그리고 죄가 더이상 그들을 지배하지 못할 것을 약속하시며 그분의 성령을 믿는 자들에게 주십니다. 그분은 이전의 것들은 문자 그대로 뿌리까지 잘렸다고 선포하십니다. 이전의 것들은 생명을 가진듯하지만 실제로는 죽었습니다. 이제 그것들을 대신하는 것은 새로운 능력, 새로운 승리, 새로운 희망, 그리고 새로운 미래입니다.

당신 자신을 향해 질문하십시오. 내 삶이 그리스도의 증언인가? 사람들이 내 안에 있는 소망의 이유에 대해 묻고 있나? 나를 위한 주님의 계획은 궁극적 선을 향한 내적 명철에 의해, 나를 예상된 곳, 즉 내 마음이 항상 갈망했던 장소로 향하고 있는가?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길을 걷기로 작정했다면, 그분은 당신이 필요한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당신은 생명을 발견할 것이며, 더욱 풍부히 얻게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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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카터 칸론(Carter Conlon) 목사님은 Times Square Church의 창립 목사이신 데이빗 윌커슨(David Wilkerson) 목사님의 초청으로 1994년에 Times Square Church의 부목사로 부임했으며, 그 후 2001년에 담임목사로 임명되었습니다. 강인하며 열정적인 지도자로서, 그는 세계 전역에 걸쳐 World Challenge에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의 주된 강사입니다.

2015년 3월 6일 금요일

신뢰하는 마음

최근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신뢰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게 보여주셨는데, 그것은 제가 이전에는 결코 보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우리 열조가 주께 의뢰하였고 의뢰하였으므로 저희를 건지셨나이다. 저희가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치 아니하였나이다.” (시편 22:4-5).

다윗은 누차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시편 11:1)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시편 25:2) 히브리어 어원으로 ‘신뢰’라는 단어는 “자신을 벼랑으로 떨어뜨리다”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뛰어내려!”라는 아버지의 음성을 들은 아이가 아버지 말에 안심하고 순종하여, 자신의 몸을 던져 아버지 팔에 맡기는 어린아이의 믿음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것이 신뢰의 일면입니다. 여러분 중 일부는 지금 불안에 떨며 그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예수님 팔 안으로 당신 자신을 내던지는 것 외에는 당신에게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 절박한 상황으로부터 스스로 사퇴해버렸는데, 그것은 현실적으로 체념이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신뢰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신뢰가 아니라 무감각입니다. 신뢰는 수동적 사퇴보다 훨씬 우월한 것입니다! 그것은 능동적 믿음입니다!

여러분 중 어느 분들은 우리 주님을 우주적 화재의 소방구조단으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사탄이 당신 집에 불을 붙였고, 당신은 지붕 위에 서서 “주님, 도와주세요! 저를 구해주세요!”라고 외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분 천사들과 함께 오셔서 큰 그물망을 들고 “뛰어내려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뛰어내렸고 집은 불타 무너졌으며, 당신은 “주님, 저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 다수는 이러한 구조 작업에서 우리의 신뢰를 제한하며 주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오셔서 제 모든 문제의 불을 꺼주시고, 제 모든 환란에서 저를 구해주실 것을 신뢰합니다. 제게 당신이 필요할 때 함께 해주실 것을 압니다.”

그러나 신뢰하는 마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모든 발걸음은 주님께서 명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제 사랑의 아버지입니다. 그분은 내가 모태에 있을 때부터 나의 모든 기관을 지으셨고 내 머리카락도 다 세고 계십니다. 나는 애지중지한 그분 눈의 사과이며, 그분은 나를 위한 영원한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모든 것을 통제하십니다!

2015년 3월 5일 목요일

그분 말씀으로 씻겨지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죄를 덮어주는 보혈은 원하지만 정결케 하는 보혈은 원치 않습니다! 구약의 성막 의식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어떠한 동행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예를 제시해줍니다.

성막에는 희생 제물 동물들이 죽임을 당하는 바깥 뜰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죄사함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 역시 정결케 하는 놋대야가 있었습니다. 어느 제사장도 씻지 않고는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고 교제할 수 없었습니다.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놋대야를 비켜 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놋대야는 말씀의 물에 씻겨짐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죄로 온통 범벅이 된 채로, 그리고 죄의 습관들이 그들 마음속 깊이 새겨진 채로, 성소로 돌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당당히 걸어 들어가 이렇게 호언장담합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었습니다.”

완전한 심령은 삶의 안정이나 죄사함 이상의 것들을 추구합니다! 그러한 심령은 그분과 교제하기 위해 그분의 임재를 구합니다! 주님과의 교제란 그분과 친밀한 유대감을 나누고, 그분의 얼굴을 구하며, 그분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지성소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러한 절차를 따라야 합니다. 죄사함 – 정결 – 헌신 – 교제.

그러나 많은 성도가 죄사함 외에는 아무것도 원치 않습니다. 그들은 영광에 다다르는 급행 티켓만을 원합니다! 그들은 고통도 원치 않고, 십자가도 원치 않으며, 정결도 원치 않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이렇게 외치기 시작합니다. “나는 보혈 아래에 있습니다. 나는 안전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이 말씀의 반절만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7) 그러나 이 말씀 전체를 읽어보십시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6-7)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요한복음 15:3)

우리는 이러한 설교 말씀을 듣습니다. “여러분은 검색받아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죄는 보혈로 덮였습니다! 죄를 드러내기 위한 그 모든 탐구작업은 비난과 죄의식을 가져다줄 뿐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23절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모든 교회가 알지어다.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그분은 교회라고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2015년 3월 4일 수요일

조명받기를 구하는 심령

한번은 제가 펜실베이니아에서 개최되었던 청소년 챌린지 컨퍼런스 (Teen Challenge Conference)를 마치고 뉴욕으로 먼 거리를 운전해 오는 도중이었는데, 주님께서 제 속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완전한 심령이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한다. 나는 그것을 네게 보여주어, 네가 그것을 추구하기를 원한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완전하며 순종적 자세로 그분 앞에서 행했던 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을 헌신하셨음을 제 영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주께서 마음을 다 살피시고…” (역대상 28:9) 완전한 마음은 다윗으로 하여금 이렇게 부르짖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시편 139:23-24)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 주는 마음을 살피며…” (예레미야 17:10) 이 구절은 히브리어 해석으로 “나는 깊이 타진한다”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2:10)

요한계시록 2장 24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죄의 깊숙한 곳으로 떨어지는 “사탄의 깊은 곳”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악이 영혼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며, 그것은 지옥까지 닿는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사악한 자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희는 죄악을 도모하며 이르기를 우리가 묘책을 찾았다 하나니, 각 사람의 속 뜻과 마음이 깊도다.” (시편 64:6) “대저 음녀는 깊은 구렁이요…” (잠언 23:27)

이 모든 구절은 주님의 거룩한 경고입니다. “너희는 악과 이렇게 타협하는 것이 얼마나 깊이 너희에게 악영향을 미치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너희를 사탄의 구덩이 아래로 끌어내린다. 그 구덩이는 신묘하며 바닥 없는, 깊디깊은 나락이다. 이 길은 곧장 지옥으로 가는 길이다.”

이 마지막 세대에 죄는 난해해지고 미묘해졌으며, 감각적이며 더욱 세밀해졌습니다. 그것은 예술, 문화, 그리고 교육으로 위장되어 찾아옵니다. 저는 지금 죄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더 강하며 더 깊은 뿌리를 취했습니다. 이제 우리 자녀들은 우리가 결코 행치 않았으며 알지도 못했던 심오한 죄를 대면하고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자기의 도모를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여! 그 일을 어두운 데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 (이사야 29:15) 완전한 마음이란, 성령으로 하여금 인간의 가장 깊숙한 심령을 탐색하고 모든 숨겨진 부분을 조명하며,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지 않은 모든 것들을 규명하고 파헤치며 드러내기를 구하는 마음입니다.

2015년 3월 3일 화요일

완전한 심령으로

완전한 심령으로 주님 앞에서 행한다는 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세기 17: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완전하라.” (신명기 18:13) 다윗은 이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그의 마음속에 이렇게 결심했습니다. “내가 완전한 길에 주의하오리니…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안에서 행하리이다.” (시편 101:2)

또한, 성경말씀은 솔로몬이 온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이르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왕의 마음이 그 부친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니… 솔로몬이 그 부친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좇음같이 좇지 아니하고…” (열왕기상 11:4-6)

신약에서도 우리는 완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태복음 5:48)

바울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골로새서 1:28) 같은 서신에서 그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4:12)

그리고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베드로전서 5:10)

완전함은 무죄하며 흠 없는 심령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동기와 마음의 중심을 보고 판단하십니다. (사무엘상 16:7) 다윗은 “그의 생전에” 하나님을 향한 완전한 마음을 지녔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을 자주 실망시켰습니다. 그의 인생은 간음과 저 악명높은 살인으로 영원히 낙인찍혔습니다.

완벽의 기본 정의는 완성과 성숙입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그에 대한 정의는 충직, 흠 없는, 결함 없는, 전적인 순종 등을 포함합니다. 그것은 이미 시작된 것을 완전한 행함으로 종결짖는 것을 의미입니다. 웨슬리는 그것을 “지속적 순종”이라고 칭합니다. 완전한 심령은 반응하는 심령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구애와 속삭임과 경고에 신속히, 그리고 확실히 응답합니다. 그러한 심령은 언제나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의 종이 듣고 있나이다. 길을 보여주시옵소서. 그러면 제가 그 길을 걷겠나이다.”

2015년 3월 2일 월요일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by Gary Wilkerson

우리 대부분은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고 인정할 것입니다. 바로 그 이유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분의 임재를 우리가 의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러한 우리의 딜레마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라디아서 5:16)

이 말씀은 매우 단순하게 들립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 바울의 충고를,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순종해야 하는 어려운 계명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악물며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오늘 성령 안에서 행할 거야.” 그리고 우리가 실수하게 되면, 우리는 “영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령 안에서 행하기 위해 더욱 노력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불현듯 다시 율법 아래에 거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미 성령 안에 거한다는 사실을 신뢰하는 대신, 육신의 능력에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갈라디아서 5:18) 달리 말하면, 항상 그분 은혜로의 통로를 당신에게 부여해주시는 하나님의 영이 당신 안에 거하면, 그분이 당신에게 능력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성령 안에서 행하라”고 했을때는 “율법 아래서가 아니고 은혜 안에서 행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우리에게 성령 안에서의 행함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5:22-23)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가 무엇을 행함으로서 이러한 결과가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넣어주신 의의 열매, 즉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그분 일의 결과입니다. 때로는 당신에게 사랑이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넣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희락과 평강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둘 다를 당신 내면 깊숙이 심어주셨습니다. 그분의 영은 날이면 날마다 매시간, 그분의 위대한 영광과 당신을 향한 축복을 위해 당신 안에서 일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