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30일 목요일

모든 부모에게 주시는 소망의 말씀

만일 당신이 하나님 말씀의 권세로 당신의 자녀를 양육한다면, 그들이 성장한 후에도 그로부터 떠나지 않을 것을 성경은 명백히 말합니다. 그들이 잠깐, 아니면 오랫동안이라도 그것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것은 다시금 그들을 진리로 돌이킬 것입니다. “아이가 마땅히 가야 할 길로 아이를 훈련시키라. 그리하면 그가 늙어서도 그 길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언 22:6)

성경은 타락한 자녀를 두고 애통해 하는 모든 부모에게 희망의 말씀을 줍니다. 여기 모든 부모가 암송해야 하는 언약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자녀와 아직 당신의 보살핌 안에 있는 자녀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그러나, 오 나의 종 야곱아,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너를 만들고 모태에서부터 너를 지은 주 곧 너를 도울 자가 이같이 말하노라. 오 나의 종 야곱아, 내가 택한 여수룬아,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목마른 자에게 물을 부어 주며 마른 땅에 큰물들을 내고, 내 영을 네 씨에게, 내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풀 가운데 있는 것 같이 솟아나며, 수로 옆의 버드나무같이 솟아나리라.” (이사야 44:1-4)

이스라엘을 향한 이 언약의 말씀은 지금의 우리를 위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 위로의 말씀은 택함을 받은 자들 (1절 참조),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자를 뜻합니다.

주님은 1절과 2절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러한 말씀으로 시작하십니다. “나는 너를 지은 하나님이며 너의 아픔을 안다. 이제 내가 너를 도울 것이다. 너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이 구절에서 사용된 ‘여수룬’이라는 단어는 의로운 자를 뜻합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은 그분의 의로운 자들에게 이러한 언약, 즉 영광스럽고 구속력 있는 언약들을 맺으십니다. 그 언약은 바로 이것입니다.

  • 하나님은 우리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생수를 공급해주실 것입니다. “내가 목마른 자에게 물을 부어 주며 마른 땅에 큰물들을 내고…” (3절) 주님은 당신에게 갈증을 해소하는 그분의 말씀을 가져다주셨습니까? 그분이 당신의 건조기에 오셔서 그분의 성령으로 당신을 잠기게 했습니까? 당신은 그분 말씀의 청정수를 마시고 있습니까?
  • 내가 목마른 자에게 물을 부어 주며 마른 땅에 큰물들을 내고, 내 영을 네 씨에게, 내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풀 가운데 있는 것 같이 솟아나며, 수로 옆의 버드나무같이 솟아나리라.” (3-4절)

2015년 4월 29일 수요일

부흥의 시작

진정한 부흥의 시작은 경건한 성도들의 무리가 죄에 갖혀 있는 교회나 도시를 위해 주님의 부담을 감당할 때에 옵니다. 이 경건한 군단은, 그분의 백성을 모든 원수로부터 보호해줄 성벽과 성문을 재건하기 위해 금식하고 기도하며 주님께 간구합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되고 성문들이 세워졌을 때, 문지기들과 파수꾼들은 모든 집에 할당되었습니다. 무엇이 들어올 수 있는지 없는지를 분별하는 문지기가 없이는 성벽들과 성문들은 아무 소용 없습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성벽이 건축되매 내가 문짝을 달고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임명한 뒤에…” (느헤미야 7:1)

이 문지기들은 단순히 제사장들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유념하십시오. 그들은 음악가, 짐꾼 등, 사회 각계각층의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지시받았습니다. “해가 뜨거워지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들을 열지 말고, 그들이 서 있을 때에 문들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3절)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셨습니다. “내 집은 어떤 어둠도 허용될 수 없는 빛의 장소가 될 것이다. 이곳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과 모든 것들로 하여금 내 말씀의 빛이 비춰지는 열린 마음이 되게하라.”

저는 이 메시지를 읽고 계시는 타임스퀘어 교회의 장로들을 포함한 모든 장로께 말씀드립니다. 당신이 어느 목회자와의 친밀한 관계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에 눈이 가려지도록 절대 당신 자신을 허용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하나님에 의해, 그분 집의 문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리고 만일 누가 성경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복음을 당신의 교회로 가지고 들어온다면, 그가 옳지 않다는 것을 그 설교자에게 부드럽게 말해주어야 하는 것이 바로 당신의 의무입니다.

우리는 문지기로서 금식과 기도,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나타나는 자비로운 관심을 가지고, 겸손히 하나님 집의 문들을 지켜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루살렘 거주민들 중에서 파수꾼들을 임명하여, 각각 자기가 맡은 곳에서 파수를 보게 하고 각각 자기 집 맞은편을 지키게 하라.” (느헤미야 7:3) 느헤미야에 의하면, 파수꾼들은 단지 거룩한 도시의 성문들만이 아니라 모든 가정에서도 지정되어야 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모든 가정의 리더, 즉 부모들은 그들의 가정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들에 대해 책임져야 합니다.

2015년 4월 28일 화요일

재건의 시작

느헤미야서는 패망과 배교의 때에 교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생생히 보여줍니다. 느헤미야와 43,000명의 유대민족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했을 때, 그들은 예루살렘 성이 완전히 폐허가 되었음을 보았습니다. 성벽들은 무너져내렸고 성문들은 파괴되었으며, 거주민들은 그들의 적들로부터 아무런 보호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적의 무리는 이 도시를 제멋대로 약탈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향한 이스라엘의 타락과 불순종으로 인해 이 도시는 적의 완전한 통치로 넘겨졌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 땅이 우리의 죄로 인하여, 그들 (원수들)이 우리의 몸과 가축을 마음대로 지배하므로 우리가 큰 고난 중에 있사옵나이다.” (느헤미야 9:37)

여기서 예루살렘은 오늘날의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표상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처럼, 많은 그리스도인은 죄의 지배 아래 있고, 하나님 집에서의 불결함은 그리스도 지체 안에 고통과 속박을 가져왔고 독을 퍼뜨렸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났을까요? 성도들이 하나님 말씀 위에 섰을 때 세워졌던 방어 장벽인 진리의 벽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우리의 죄와 타협으로 인해 방어 성문은 파괴되었고, 그것은 수많은 그리스도인을 사탄의 공격 아래에 놓이게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회복 계획의 표상입니다. 이 선지자는, 진정한 부흥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둘러싸는 안전한 진리의 방어벽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느헤미야가 초자연적 부흥의 나타남을 외치며 성벽이 무너진 도시를 배회했을까요? 아닙니다. 느헤미야가 도착한 후에 나타난 유일한 현상은 백성들이 그들 손에 삽과 괭이를 들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고, 파괴된 성문을 복구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그 모든 것을 이끌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재건의 일은 느헤미야가 황폐한 하나님의 집에 대한 주님의 부담을 감당하려는 순간에 시작되었습니다. 느헤미야가 고통과 치욕을 당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보았을 때, 그는 무릎 꿇고 이렇게 울부짖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지고 성벽의 문들은 불탔나이다.” (느헤미야 1:3)

그리고 느헤미야는 무엇을 했습니까? 그는 이스라엘의 죄를 자백하고, 밤낮으로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는 앉아서 울고 여러 날 동안 애곡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고 기도하며...” (4절)

2015년 4월 25일 토요일

영혼들을 위해 by Claude Houde

우리는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고 희생하며 싸웁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는 영혼들을 위한 전투장을 포기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비밀리에 패배했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은 교회가 지체라고 말합니다. 만일 성도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성도가 그와 함께 고통을 나눕니다. 당신이 은밀한 죄를 숨기면,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무언가를 잃게 됩니다. 수많은 성도가 그런 식으로 입을 다물고 있으면, 교회는 무기력해지고 인정받지 못하게 됩니다. 아무도 당신을 보고 있지 않을 , 당신이 누구이며 당신이 무엇을 하는지가 당신의 미래를 결정할 것입니다

불과 파멸의 소돔의 왕에게 했던 아브라함의 말은, 비밀스러운 땅의 바뀔 없는 전쟁의 현실과 심각성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줍니다. 소돔 왕의 유혹에 아브라함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들어보십시오. 그것은 당신의 인생에 변혁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는 원수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게 속한 것은 무론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창세기 14:23)

저는 급진적이고 자유로우며 강력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양식, 영적 싸움의 특성을 분간하는 장소를 당신에게 제시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함이라.” (에베소서 6:12)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고린도후서 10:4)

많은 교회와 성도들은 그들이 영적 전쟁 치르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수많은 성도는 기이하며 신비로운 혼합된 소리와 함께 승리의 담대한 선포를 하며, 섞인 영들을 결박하고 견고한 진을 찾아내며, 악귀적 진영을 이름 짖거나 식별합니다. 모든 사람은 사탄이 얼마나 그들을 두려워하는지를 열광적으로 노래하며, 스스로 영적 장군들이라고 지칭하는 자들은 명령을 내리고, 새로운 전사들의 무리를 모을 있다는 확실한 부흥을 위해 최첨단의 전략과 계시를 제시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영혼들이 구원되고 그들의 삶이 바뀌며, 정결케 되고 변화되는 곳은 어디에 있습니까? 주목할만한 성장과 세례, 그리고 진정한 기도와 화합은 어디에 있습니까? 지혜와 놀라운 은총, 그리고 하나님으로 충만한 성도들의 삶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성령의 열매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시간을 따지지 않고 아무런 인정받음도 찾거나 구하지 않는 자비와 관용, 사역에의 희생적 헌신, 빈곤한 자들을 위한 긍휼 ,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헌신의 일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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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클라우드 어드(Claude Houde) 목사님은 캐나다 몬트리올에 위치한 New Life Church 담임목사이며, 세계 전역에 걸쳐 World Challenge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s 주된 강사입니다. 그의 지도력으로 New Life Church 소수 인원으로 시작해서 개신교 교회로서는 성공하기 힘든 캐나다의 보수적인 지역에서, 지금은 교인 수가 3,500명이 넘는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2015년 4월 24일 금요일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최근에, 어떤 재소자로부터 가슴 아픈 편지를 받았습니다.

“데이빗 목사님, 저는 성 중독 때문에 감옥에 와 있습니다. 제가 태어날 때부터 이렇진 않았지만, 이렇게 돼버렸습니다. 저는 3번 결혼을 했었고, 네 명의 자녀들이 있습니다. 제 진심은, 이 중독을 떨쳐내고 싶습니다. 마약을 끊는 것은 사실 별 문제 없이 해결하였지만 포르노그래피 중독은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을 진심으로 믿어 울며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도 이런 도착적인 행동에 대한 해결의 문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제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의 뜻과 의를 행하고 싶지만, 끊임없이 그 마음을 밀어내고 다시 정욕에 못 이겨 주저앉아 버립니다. 하나님께 거짓말도 해보았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하지만 저는 다시 주저앉고 죄로 돌아가 버립니다.

하나님을 지겹게 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그리고 교회에 가면 저는 제 이중성이 보입니다. 제가 좋은 조언을 해주어 저를 존경하는 형제들이 있지만, 저는 제 자신을 죄로부터 지키지도 못했습니다. 제가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고 목소리로 찬양을 하지만, 마음 한 켠으로는 몹시 불편하고 옳지 않다고 느낍니다. 그것은 아마도 제가 진정 옳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다른 결백한 사람을 불편하게 하기 전에 그저 지금 죽어 지옥에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싶고, 하나님의 사랑을 원합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제가 하는 행동을 혐오하면서 사랑하는 덫에 빠져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제가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이 청년에게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망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삶을 치유하고자 하십니다.”

당신의 삶에 관여하시는 하나님께 불가능이란 없다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귀의 모든 계략과 유혹을 멈추고 물리치실 수 있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을 붙잡으십시오! 여러분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킬 능력의 하나님을 온전히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악령에 사로잡힌 남자와 혈루병을 앓는 여인 그리고 야이로의 딸을 치유하시고 변화시키셨습니다(마가복음5장).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삶에도 치유와 변화를 주실 수 있으십니다.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해결하실 수 있으시고 불가능이 없으십니다.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가복음 10:27).

2015년 4월 23일 목요일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에 죽었다고 생각되는 것을 단 한마디로 복원하실 수 있으십니다. 여러분, 재정적인 문제로 청구서 납부를 하지 못하고 계십니까?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러한 문제에 놓여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세금납부시기가 다가왔고,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세금을 낼 만한 돈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물고기를 낚으라고 보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 잡은 물고기의 입에서 세금을 지불할 동전 한 잎을 발견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마태복음 17:27).

베드로는 머릿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물고기의 입에서 세금 납부할 돈이 나온다고? 내 눈으로 직접 봐야 믿겠네. 평생을 어부로 살아오며 물고기 입에서 미끼, 해초 같은 것은 많이 봐왔지만 동전이 들어있는 것은 본 적이 없었는데..” 하지만 베드로가 물고기를 낚아서 입을 연 순간 동전을 발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세금을 낼 만한 충분한 금액이었습니다.

성령님께서 이 이야기를 성경에 기록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왜 기적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일까요? 그저 헌금을 취하거나 제자들로 하여금 하루 일하게 하여 세금을 납부하지 않고 기적을 행하셨을까요?

저는 예수님께서 이 상황에서 마음이 감동하셔서, 그의 자녀들에게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하셨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재정적인 문제, 가정의 문제 그리고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해결하실 수 있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를 통하여 엘리야를 먹이신 하나님(열왕기상 17장)과, 몇개의 물고기와 빵으로 오천명(마가복음 6:34-44) 그리고 사천명(마가복음 8:1-9)을 먹이신 하나님이 동일하시다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려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 속에서 어떤 상황들은 기적으로만이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아시기에 그 어떤 상황에서도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진리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고 계십니다.

2015년 4월 22일 수요일

하나님께 너무 늦어버린 타이밍은 없습니다

마가복음 5장에서는 절박한 회당장인 야이로가 예수님께 죽어가는 딸을 치유해 달라고 간구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야이로는 죽어가는 딸이 있는 자신의 집으로 오셔서 딸에게 손을 얹어주시기를 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와 가기로 동의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혈루병을 앓고 있던 여인을 만나면서 잠시 멈추셨습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 혈루병을 치유받은 인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잠시 멈춰계신 동안에 야이로의 딸이 이미 죽었다는 비극적인 소식을 듣게 됩니다.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가로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마가복음 5:35).

야이로의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 찼습니다. “죽기 전에, 시간 안에 가기만 했었더라면…… 이제는 너무 늦어버렸구나. 내 딸은 이미 죽었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마가복음 5:36).

무리가 야이로의 집에 다가왔을 때, 그들은 야이로의 가족과 이웃들의 통곡과 슬픔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자 이제 이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육신의 모습을 한 그 어떤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가능케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계시는 와중에 사람들은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말로는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눈에 보이는 희망이 남아있을 때만 나를 도울 수 있는 것이구나. 모든 생명이 없어졌을 때는 하나님을 찾아도 소용이 없는 것이구나. 예수님마저도 이 상황을 돌이킬 수 없겠구나.”

오늘날 자신의 문제가 너무나 절망적이어서 하나님을 더 이상 찾지 않는 많은 크리스천들이 있습니다. 수 많은 크리스천들이 자신 삶의 어떤 것이 죽기 전 까지만 하나님을 믿습니다(‘야이로의 딸이 살아 있어야만 예수님이 살릴 수 있지’라고 믿는 한계 상황을 결정해 놓고 믿는 것). 저는 한 사람의 육체의 죽음뿐 만이 아니라 결혼, 인간관계, 꿈 그리고 믿지 않는 가족의 구원에 대한 죽음까지도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삶에서 고치거나, 변화 또는 치유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의 죽음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불신을 꾸짖으셨습니다. 야이로의 집에서 통곡하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39절). 다른 말로는, “이 상황이 너희의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너희는 소망이 모두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것을 복원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소녀의 방에 들어가셔서, 한 단어를 말씀하시고는, 소녀를 일으키셨습니다.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42절). 성령님께서 이 이야기를 마가복음에 왜 포함시키셨을까요? 성령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다시 생명을 불어넣으시고, 복원하시는데 있어서 너무 죽었거나 너무 늦은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바는 이것입니다. “네가 겪는 문제를 해결하고 생명으로의 복원을 위하여 나를 온전히 믿으렴. 내가 일을 하는데 너무 늦은 때는 없단다.”

2015년 4월 21일 화요일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갈망

앞으로 여러분은 인간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놀라운 말씀을 많이 듣게 될 것 입니다. 모두 거룩하고 달콤하게 들리겠지만 그것은 대부분이 성도들의 변하지 않고 인내하는 믿음을 잃게 하는 온갖 오류로 부패한 메시지일 것입니다. 그러한 말씀들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갈망 그리고 재림을 준비하는 절박한 마음은 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한 메시지들은 영광스런 진리의 말씀을 잘라버리고 육신적인 세상으로 마음을 돌려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그들은, 재림을 갈망하는 사람을 현실도피주의자로 취급할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만 오실 것이며 그리스도의 재림은 머리 속에만 특별히 나타나는 것이라는 메시지의 새 복음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뉴에이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님이 텔레비전을 통하여 온세계에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온 세계가 예수님의 재림을 동시다발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며, 그 장면을 텔레비전을 통하여 보면서, 마음 속으로 예수님이 재림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어필합니다.

오늘날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이 가라앉고 있는 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 세상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어떤 자들이 지배하고 있는 하나의 국제적인 단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결국에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세상속에서 혁신하고 통치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죽어가며 육신적인 것에 전적으로 매달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베드로후서 3:17).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재림을 미루고 계신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영적으로 눈이 멀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 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유다서 14-15절).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데살로니가전서 4:16-18). 이 말씀은 진리의 말씀으로, 현실도피의 메시지가 아닙니다. 위로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2015년 4월 20일 월요일

하나님의 충만한 영광과 은혜 by Gary Wilkerson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14). 영광은 그리스어로 “doxa” 라는 단어를 번역한 것입니다. “doxa”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해 수많은 교회에서 불려지는 독솔로지(The Doxology, 대영송)의 어원입니다.

요한은 “kavod”라는 히브리어를 사용하였고, 그 단어는 “doxa”로 번역되었습니다. 히브리어 “kavod”는 중요한, 실질적인, 강렬하다는 뜻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중요성, 의미 그리고 열정 등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가벼움, 이기주의에서 당신을 분리시켜 거룩하게 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 세상은 당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삶이라는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당신의 삶을 행복하게만 하는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삶을 의미 있게 변화시키고 참된 목적으로 인도하시는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섬긴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은 자신이 받을 것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삶입니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마태복음 4:8). 이 세상은 우리가 추구하는 명예, 지위 그리고 영향력 등의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 우리가 그러한 세상적인 것들을 추구하면 할수록 우리 삶에서 비춰지는 하나님의 참된 영광의 빛이 희미해질 것입니다.

세상에서 이루고 싶은 욕망과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자 하는 마음이 교회 안에 스며들어왔습니다. 간혹, 우리의 찬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진실된 찬송이기 보다는 보여지기 위한 감정적인 무대가 되기 일쑤입니다. 요한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언급하기도 전에 하나님의 영광을 강조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수많은 크리스천들은 은혜와 진리가 삶의 경주의 마침표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의 깊이를 무시한 채, 자신이 지정한 믿음의 삶의 한계에서 포기해버립니다. 그러나 크리스천 삶의 목적은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제 충분하고 내 삶은 완벽하니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깊이를 제한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를 자신의 생각으로 제한하지 말고, 완전한 은혜와 영광을 누리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2015년 4월 18일 토요일

그분 계획으로부터의 탈선 by Nicky Cruz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정해놓으신 경로를 우리가 탈선한다면, 그분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이 주제에 대해 많은 사람이 저와 논쟁할지도 모르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위해 준비해놓으신 구체적인 역할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독특한 은사와 재능, 그리고 열망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러한 은사와 상응하는 개별적 언약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예레미야 29:11) 하나님께는 그 어느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지으시기도 전부터 우리가 무엇을 성취해야 하는지를 알고 계십니다. 당신과 나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지음 받았고,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은 그 목적을 우리가 수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계획을 돌아서 갑니다. 그리고 우리는 죽을 때까지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와 동시에 인내하시며 그만큼 신실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앞에 정해놓으신 경로를 따라 우리가 날마다 걷는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더 나아질까요? 날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일하시도록 우리가 허용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우리가 축복해줄 수 있을까요? 우리가 만일 하나님에게 우리의 아젠다를 세우시도록 허용한다면, 우리의 삶과 사역이 얼마나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까요?

저는 하나님께서 왜 어린 성도였던 저를 택하셔서 전도부흥사로 만드셨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그분께서 저를 위해 세우신 계획이므로, 저는 최선을 다해서 그것을 수행합니다.
자,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준비해놓으신 계획을 수용했습니까? 당신은 당신의 인생을 위한 그분의 목적을 찾아냈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당신 자신을 준비시켰습니까? 아니면 당신은 당신 인생의 경로를 탈선하고 또 탈선하며 살고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자신 각자에게 물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려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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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니키 크루즈(Nicky Cruz)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전도사이자 저작가입니다. 그는 1958년 뉴욕에서 데이빗 윌커슨(David Wilkerson) 목사님을 만난 후, 폭력과 범죄의 삶으로부터 예수님께로 돌이켰습니다. 그의 극적 전환에 대한 이야기는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의 저서 “The Cross and the Switchblade (십자가와 칼)”에서 처음 알려졌으며, 그 후에 발간된 그의 베스트셀러 자서전 “Run, Baby, Run (달려라 니키)”에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2015년 4월 17일 금요일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예수께서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마가복음 9:25)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후, 그 소년은 죽은 것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그가 일어서니라.” (27절)

이 고침 받은 소년을 상상해 보십시오! 정결케 되고 자유롭게 된 이 소년은 그의 아버지께로 달려가 안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비의 마음은 기쁨으로 뛰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온전케 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성령께서는 마가로 하여금 이 이야기를 그의 복음서에 기록하게 하셨을까요? 저는 바로 그 순간부터 모든 부모가, 그들 자녀에게 불가능을 가능케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고 믿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나는 무엇이든지 그리고 누구든지 회복시킬 수 있다. 만일 네가 믿기만 한다면, 나를 통해서 모든 것들이 네게 가능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를 통해 수많은 성도가 그들의 자녀가 마귀의 세력 안에 있는 것 때문에 고뇌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목회에서도, 감옥에 갇혀 있는 아들을 방문하기 위해 북부 주로 버스를 타고 다니는 어머니의 고통을 봅니다. 그들은 두꺼운 유리창 이편에 앉아서, 한때는 부드러웠던 소년을 바라보아야 하는 아픔을 압니다. 그는 어떻게 하다가 마약에 빠지게 되었고, 그의 악습을 지속하기 위해 절도를 범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는 감옥에 갇혀 더욱 강퍅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그를 위해 수년간을 기도했으나, 지금은 희망을 잃고 있습니다. 이 어머니는 아들이 변화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습니다.

아마도 당신은 당신의 구원받지 못한 남편에게는 희망이 없으며, 그가 결코 예수님께로 나아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는 당신을 집에 홀로 두고 밤에 파티장에나 놀러나 다니는 당신의 아내가 변화되는 것을 포기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하나님께서 고치기에 너무 힘든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오늘날 이렇게 증언하는 많은 그리스도인을 압니다. “저는 제 배우자를 위해 오랜 세월을 기도해왔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제가 희망을 포기한 후, 하나님께서 돌파를 가져다 주셨습니다. 그분은 제게 소중한 사람을 구원해주시고 자유롭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절대 포기하면 안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까요!

2015년 4월 16일 목요일

그분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서는, 귀신 들린 아들을 가진 한 괴로워하는 아버지가 아들을 고침 받게 하기 위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데려왔습니다. 이 소년은 단지 문제가 있거나 반항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악한 영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악한 영들은 그의 모든 행동을 지배했습니다. 이 소년의 상태는 온 지역에 잘 알려졌었고, 다른 아이들의 부모들이 그를 보았을 때, 그들은 아마도 자기 아이들을 급히 집안으로 들여보냈을 것입니다.

이 불쌍한 소년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는 귀머거리인데다 말도 못했는데, 오직 목에서 나오는 이상한 소리를 낼 뿐이었습니다. 그는 마치 미친개처럼 입에서 거품을 토해 냈고 그의 몸은 바짝 말라 뼈만 앙상했으며, 그 끔찍한 고투로 인해 쇠잔해 있었습니다. 마귀들은 항상 그를 죽이려고 근처 강이나 호수, 또는 불 속으로 그를 던지려 했기에, 소년의 아버지는 계속 그를 붙들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저는 소년의 아버지가 아들을 구해내기 위해 몇 번이나 호수 속으로 뛰어들어갔어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온 시간을, 그의 아들이 자신을 죽이려는 것을 막는 일로 소모했을 것입니다. 그 소년의 상한 몸에 얼마나 많은 흉터와 불탄 자국이 있었을지 상상해보십시오. 어느 누구도 도울 수 없는 상태의 아들을 날마다 보는 것으로 그 아버지의 마음은 비통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이제 소년의 아버지가 아들을 데려가 제자들 앞에 섰을 때, 사탄이 소년 안에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입에 거품을 물고 몸을 뒤틀며 땅에 뒹굴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은 제자들이 그를 위해 기도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분명 오래 기도했을 것이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상황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곧 의심 많은 서기관이 몰려와 둘러싸며 이렇게 물었을 것입니다. “왜 저 소년이 고침 받지 못했느냐? 당신들의 주께는 이 문제가 너무 어려운가 봐? 이런 상황에서는 마귀가 더 강한가 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현장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을 때 그 소년의 아비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아들을 당신의 제자들에게 데려갔으나 그들이 제 아들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제 아들은 가망이 없는 경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응답하셨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마가복음 9:23) 그리스도께서는 그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마귀의 통제 아래 있는 것들만 제외하고는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느냐? 내가 말하노니, 어떤 문제나 어떤 불가능한 상황도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2015년 4월 15일 수요일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단순히,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라는 사실을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 삶 속에서 불가능을 가능케 해주시려고 열망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만 합니다. 성경은 그것을 명확히 해줍니다. 만일 우리가 그러한 그분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분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 의견으로는, 만일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의심한다면, 아무리 많은 카운슬링을 한다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크리스천 카운슬링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문제가 무엇이든, 하나님이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수 있다고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사람을 상담하는 일은 아무 소용없습니다.

문제가 있는 부부라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관계를 올바로 해주실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제 상담은 헛된 수고입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문제가 절대 가망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오랫동안 분노와 쓴 뿌리를 지닌 채 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불가능을 가능케 하실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만 합니다.

저는 그러한 부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좋습니다. 제가 상담해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먼저 여쭙겠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결혼을 온전케 하실 수 있다고 진실로 믿습니까? 당신의 문제가 얼마나 불가능해 보인다 할지라도, 그분이 당신들의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믿음을 당신은 갖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제가 제 배우자와 어떤 문제를 겪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깊이 상처받았습니다. 제 상처는 목사님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런 유형의 반응은 그들이 마귀의 거짓말을 받아들였다는 증거입니다. 마귀는 그들에게 그들의 상황에 희망이 없다고 확신시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분 자녀들 각자에게 명백히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누가복음 18:27)

이 나라 전역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결혼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제 사역 친구들마저 이혼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상황에 대해 제가 그들과 대화할 때, 저는 그들이 자신들의 결혼이 회복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불가능을 가능케 해 주실 수 있음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한, 우리는 하나님을 진실로 믿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2015년 4월 14일 화요일

주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던 창세기의 이야기를 여러분은 기억할 것입니다. 이 족장이 한낮에 그의 텐트 앞에 앉아있을 때, 갑자기 세 사람이 그의 앞에 나타나 나무 아래에 서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서둘러 그들을 맞았고, 음식을 준비했으며,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들이 대화하는 동안, 주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내 사라가 어디에 있는지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보라, 네 아내 사라에게 한 아들이 있으리라.” (창세기 18:10)

그때 사라는 텐트 안에서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녀는 아예 그 생각 자체에 웃었습니다. 그녀는 “그건 불가능해”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아이를 잉태할 수 있는 나이를 훨씬 넘어섰고, 아브라함 역시 아이를 생산하기에는 너무 연로했습니다.

그러나 사라의 웃음소리를 듣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사라가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정말로 아이를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13-14절)

제가 오늘 이 메시지를 쓰는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때에도 그분의 자녀들에게 그와 똑같은 질문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인생에서 어려운 상황을 대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은 이렇게 물으십니다. “너희는 내가 너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너희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느냐?”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누가복음 18:27) 당신은 주님이 하신 이 말씀을 믿습니까? 당신은 그분이 당신의 결혼과 가정에서, 그리고 당신의 직업과 미래에 불가능을 행하실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입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분께서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다는 것을 쉽게 권고합니다. 우리는 우리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는 것을 볼 때 이렇게 말합니다. “힘내고 하늘을 바라보렴! 주님은 하실 수 있어. 그분을 계속 신뢰해. 그분은 불가능의 하나님이셔.”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우리 자신은 그 진리를 믿습니까?

2015년 4월 13일 월요일

그분은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by Gary Wilkerson

요한과 그의 형제 야고보는 온 이스라엘이 추종하는 열정적 선지자 세례요한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고기잡이 사업에서 일하면서, 그저 닥치는 대로 살아갔던 이 형제들은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그들은 그 무엇으로부터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저도 한때는 “천둥의 아들들”을 알았습니다. 한때 ‘Victory Outreach’라는 좋은 사역이 있었는데, 이 사역은 좋지 않은 배경을 가진 많은 사람을 구제했고, 그들은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온 후에도 담대함을 잃어버리지 않은 채로 남아있을 성도들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그들이 폭력배의 삶으로부터 하나님의 군단으로, 즉 두려움 없이 그들 마음속에 있는 것을 서슴없이 말하며 담대히 설교하는, 하나님 군단의 삶을 시작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바로 그러한 자들이었습니다. 얼마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닌 후에도, 그들은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벌주기 위해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오기를 원했습니다. 수십년 후에 그의 복음서를 쓸 때, 요한은 자신 안에서 일어났던 변화에 대해 말했습니다. 이제 그는 자신을 과거의 거칠었던 청년이 아닌 “사랑받았던 제자”로 보았습니다. 그는 헬라어로, 예수님은 단지 머리의 지식에 한정된 진리가 아니라 심령의 변화를 위한 진리임을 강조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머리를 예수님에 대한 지식으로 채우고 있으나, 당신의 심령에는 변화가 없다고 느낍니까? 당신은 당신 안에 계시는 성령의 일에 의한 아무 변화가 없는 일상의 삶에 짜증이 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임재로 당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진정한 말씀은 단지 정보가 아닌, 당신 안에 거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모든 진리를 드러내며 밝혀주시는 진정한 빛이십니다. 타임스퀘어 교회 담임목사이신 카터 콘론(Carter Conlon) 목사님께서는, 그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교하셨던 한 집회에서 일어났던 일을 간증하셨습니다. 말씀을 전한 후 목사님이 어떤 사람 곁에 앉았는데, 그 남 성도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저는 당신의 설교 내용에 하나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카터 목사님이 그 이유에 대해 물었을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의 하나님은 절대로 제게 언성을 높이지 않을 것입니다.” 당황했지만, 카터 목사님은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째찍으로 상인들을 쫓아내셨던 성경 문구를 인용하셨습니다. 그 남 성도는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하셨지요. 그러나 지금의 예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카터 목사님이 잠시 생각하시고는 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형제님, 당신의 아버지가 당신을 키우면서 큰소리로 당신을 혼내곤 했습니까?” 그러자 그가 눈물을 머금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 제 아버지는 항상 제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카터 목사님은 그를 은혜와 진리로 위로하며, 부드럽게 권면해주었습니다. “나만의 하나님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당신만의 것이나 나만의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2015년 4월 11일 토요일

가르침의 한계 by Jim Cymbala

담대히 말하자면, 기독교는 단지 가르치기만 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설교자를 추종하는 성향이 만연해 있습니다. 강단에서 올바른 교리를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에게 필수적인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러한 인재가 없이는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분간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북미에 있는 대부분의 교회들은 예배 모임의 중심을, 사람들의 삶 속에서 행하시는 하나님 은혜의 보좌에 대해 중점을 두기보다는 설교에 초점을 둡니다.

예수님 공생애 시대에 유대인의 믿음은 율법을 가르치는 랍비들에 의해 통제되었습니다. 그들의 교리는 철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한다.” (요한복음 5:39-40) 그들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잘 알고 있었으나, 그분이 그들 앞에 서 계시듯 살아 역사하는 말씀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경 말씀 자체가 최종점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주시는 그리스도를 향하도록 하는 화살입니다.

애석하게도 랍비들은 그들 가운데 누가 있었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며칠 동안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을 향해 우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돌아보는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누가복음 19:44)

하나님에 관해 설명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매우 소수의 사람만이 그들 삶 속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임에서 하나님의 방문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펼치신 팔을 주의 깊게 찾고 있지 않습니다.

견고한 교리의 가르침은, 초자연을 향한 전주곡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감정과 남용을 적절한 상태에서 제어하는 지침 돌이자 한계선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율법은 죽이되 영은 생명을 주느니라.” (고린도후서 3:6) 고 말했습니다. 만일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서 기회를 주시지 않았다면, 만일 그분의 일이 환영받지 않았다면, 만일 그분께서 무엇을 하실지 우리가 두려워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죽음 외에는 아무것도 남기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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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짐 심발라(Jim Cymbala) 목사님은 뉴욕의 한 소외된 지역의 작고 허름한 건물에서, 이십 명도 채 못 되는 성도들과 함께 브루클린 테버네클(Brooklyn Tabernacle)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는 브루클린 태생이며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 그리고 게리 윌커슨 목사님과 오랜 친분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세계 전역에 걸쳐 World Challenge에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의 주된 강사입니다. 

2015년 4월 10일 금요일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권능의 하나님, 모든 능력과 권세에 뛰어나신 주께서 우리의 편에 서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전하고자 하던 메시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너희의 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를 원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저희가 내 생명을 엿보던 것과 같이 또 모여 숨어 내 종적을 살피나이다.”(시편 56:9).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시편 118:6-7).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두려움과 걱정에 대한 해결책으로 시편 124편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그 때에 저희의 노가 우리를 대하여 맹렬하여 우리를 산 채로 삼켰을 것이며

그때에 물이 우리를 엄몰하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잠갔을 것이며 그 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잠갔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 우리를 저희 이에 주어 씹히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 찌로다 우리 혼이 새가 사냥군의 올무에서 벗어남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어려움과 위기를 대처하고 견딜 수 있는 힘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그는 흉한 소식을 두려워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그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 아니할 것이라 그 대적의 받는 보응을 필경 보리로다”(시편 112:7-8).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 너는 창졸간의 두려움이나 악인의 멸망이 임할 때나 두려워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는 너의 의지할 자이시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잠언 3:24-26).


하나님을 온 마음 다해 믿으십시오. 두려움과 걱정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은 주인이신 하나님 안에서 온전히 평안하는 것입니다. 당신을 창조하신 주인 되신 하나님 안에서만 평안을 찾으십시오. 

2015년 4월 9일 목요일

완전히 믿는 것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마태복음 10:31-33).

여러 도시의 전도운동을 다니면서 저는 이 말씀을 자주 인용하였습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려놓기를 바라며 이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는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예수님, 나의 죄를 사하시고, 이제 예수님을 나의 주로 고백합니다” 사실은 이러한 참회의 고백은 수 많은 사람들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고백이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시편 31:19). 이 구절은 앞서 언급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이 고백은 온 세상이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시편 40:3).

우리는 “예수님을 위한 증인”이 되겠다고 말하면서 거리에서 설교하는 것, 전도 전단지를 나눠주는 것 그리고 친구들과 낯선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그들을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것 등을 생각합니다. 여러분, 사실 이러한 행위들은 그저 일부분 일 뿐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교리적 증거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과 창조에 대한 더 나은 입증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는 이들이 이 세상에서 참 그리스도인에게 보고자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 속에 온전히 거하는 모습입니다.

세상이 크리스천을 보며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결코 불평하지 않습니다! 저 사람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 조마조마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내일을 두려워하지도 걱정하지도 않습니다! 그의 믿음이 그를 항상 굳건하게 만듭니다!”

2015년 4월 8일 수요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생각하십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 내가 들어 말하고자 하나 주의 앞에 베풀 수도 없고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시편 40: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예레미야 29:11).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태중에 있을 때도, 태어난 순간에도 당신을 위해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시편 139:16).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을 생각하신 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 머리칼의 수, 뼈, 근육, 세포, 섬유까지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눈물을 알고 계십니다. 눈물을 모두 세어 간직하고 계십니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시편 56:8). 제 지각으로는 머리카락의 수와 흘린 눈물의 수 등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것을 완벽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생각해 본다면, 그 모든 슬픔, 기쁨 또는 회개의 눈물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고 깰 때 그리고 매 순간에 우리를 생각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발걸음에도 우리를 생각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을 알고 이해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그 의논을 아시고”(누가복음 5:22).

천국은 매우 지능적으로 훌륭한 천사, 세라빔, 케루빔 그리고 420명의 장로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목격하였고, 하나님의 모든 약속과 모든 관심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순간에 우리를 돌보신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온 천국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다는 징표로 하나님의 발 앞에 자신의 왕관을 내려놓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 그 이상을 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