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으로 되돌아가는 것

이 사야 선지자는 그리스도께서 더듬거리는 혀를 고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33:19) 이 구절에서 “말을 더듬다”가 히브리어 단어로는 “결함이 있는 발언”을 뜻합니다. 그 의미는 능력도, 아무런 진실성도 없는 말을 하는 자의, 확신 없이 주저하는 말소리입니다.

이 주제에 대한 선지자의 단호한 말을 들어보십시오. “천한 자는 비열하게 말하고 그의 마음은 죄악을 행하며, 위선을 행하고” (이사야 32:6) 여기서 "비열"이 히브리 단어로는 “어리석음, 사악한 범행”을 뜻합니다. 그것은 “멍청이, 바보”를 뜻하는 'nabal'이라는 단어로부터 유래합니다.

이사야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사악하고 멍청한 자가 죄 가운데 빠져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 한다. 그의 말은 지극히 어리석은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주를 대적하고 주린 자의 혼을 텅 비게 하며, 목마른 자에게서 마실 것을 없애리라.” (6절) 그 자신이 범하는 실수가 결국은 사람들을 잘못 인도하게 됩니다.

저는 어떤 다른 것보다도 한가지 특별한 죄가 진리를 그처럼 노골적으로 왜곡하게 만든다고 확신합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날 많은 사역장에 만연해 있는 불신의 죄입니다.

하나님은 불신의 죄를 “이집트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도움을 구하러 이집트로 내려가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그러나 그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바라보지 아니하고 주를 찾지도 아니하는도다!” (이사야 31:1) “반역하는 자녀들에게 화가 있을지어다!…그들이 계획을 세우며, 내 영으로 말미암지 않은 덮개로 덮나니...이집트로 걸어 내려가며” (이사야 30:1-2)

이사야는 많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나라의 정책과 안전에 대한 조언을 청하러 그들의 말에 올라타고는 이집트로 질주하는 것을 보자 말문이 막혀 버렸습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주님을 찾거나 주님께 여쭐 시간이 없다고 선지자에게 말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행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이 모두를 반역이라 책망하셨고 그들에게 화가 임할 것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오늘날도 변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이집트로 내려가는” 사고방식에 대한 세미나와 집회에 참석하며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닙니다. 그들의 정보망은 잘 짜여져 있고, 전략적이며, 세상적 방법들을 도입하고, 새로운 영감의 조언을 받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들은 무엇이든 그들을 흥미롭게 하는 새로운 것들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며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뢰하는 신실한 종은, 이집트의 개념들을 구할 시간이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달려가는 유일한 장소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조언을 구하는 그의 기도골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