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8일 목요일

경계를 건너는 것

룻기 1장에서 나오미, 오르바 그리고 룻은 모압과 유다의 경계지역에 도착하여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좇아 온전하신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선택할 것인가? 그들의 이름의 뜻에서 우리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오미의 이름은 은혜, 오르바의 이름은 고집센, 그리고 룻의 이름은 친구, 동료 라는 의미입니다.

나오미는 오르바와 룻의 약속을 시험하기 위해 대면을 합니다. 그들에게 유다로 간다는 것은 정이나 몇마디 말로는 표현 못하는 여러가지를 요구합니다. 그들은 보상이나 큰 뜻을 보장받지 못하지만 많은 것을 요구하는 유다로 시어머니와 함께 끝까지 동행하거나 다시 모압으로 돌아가는 두가지의 선택권이 있었습니다.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안락함과 번영과 성공에 대한 설교를 늘어놓기 보다는 고생과 가난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세상적인 성공이나 물질적인 부에 대한 보장은 없고 오직 믿음으로 걷는 길만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사실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친정으로 돌아가도록 권하고 있었습니다.(룻기 1:8-9 참조)

오르바와 룻은 이 얘기를 듣고 잠시 멈추었습니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룻기 1:9-10). 오르바의 이름에서 온 의미에서부터 우리는 그녀가 울며 통곡하며 어머니와 함께 가겠다고 강하게 말하였지만 그녀는 포기하고 우상숭배의 모압 땅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그녀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께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 처럼 보입니다.

저는 나오미가 오르바의 흔들리는 마음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나오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여운 아이구나! 완전하신 하나님을 원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이 세상의 쾌락에 더 마음이 있구나. 나와 함께 간다고 하여도 늘 후회하면서 슬퍼하겠지..”

그리하여 나오미는 “돌아가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오르바는 마음의 결정을 내립니다. “저는 모압으로 돌아가서 저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섦기겠습니다. 저는 일단 제 삶을 살아야 겠습니다. 저의 과거를 청산할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룻 1:14). 이 구절의 원어를 보면 문장의 마지막에, “돌아갔더라” 라고 더해져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몇몇 분들은 여러분의 형제자매들에게 입을 맞추고 작별인사를 하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속의 무언가 이를테면 예전의 세상적인 친구들 또는 옛 사랑들이 당신을 끌어당기고 있습니까? 

나 오미는 오르바에 대하여 이렇게 언급하였습니다. “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룻기 1:15). 이같이 어떠한 우상이 당신의 마음에 자리잡아 있습니까? 여러분의 과거 속에서 당신이 내려놓지 못하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2014년 12월 17일 수요일

기근의 끝

나오미는 유다 땅에 기근이 멈추고 하나님께서 양식과 축복을 더하여 주셨다함을 듣고 과거에 영혼을 채워주셨던 하나님의 축복을 기억해 냈습니다. 그리고는 거룩한 곳,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으로 가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녀는 모압과 그의 우상숭배, 죽음 등이 지겨워진 상태였습니다.

“그가 모압 지방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함을 들었으므로 이에 두 자부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하여 있던 곳을 떠나고 두 자부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행하다가”(룻기 1:6-7)

나오미의 며느리 오르바와 룻은 그들의 부모님과 친지,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하나님께서 그의 민족을 만나주시는 유다로 떠났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그의 민족을 다시 한번 만나주십니다! 다시한번 기근의 끝이 왔습니다! 우리 타임스퀘어 교회와 전 세계의 교회들에서는 진실된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하나님께서 그의 민족을 만나주실 때에는 “그들에게 양식을 주십니다.”

말씀의 마지막 기근이 있을때에,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날의 모압인, 육신적인 것, 나태, 냉담, 쾌락 그리고 성공으로 떠났을 때 거룩한 하나님의 민족 또한 견디어냈습니다. 그들은 자화자찬하는 텔레비전 방송용 설교자들과 하나님의 집을 휩쓴 추악한 음행 그리고 강대상 위의 어리석은 목회자 그리고 하나님을 떠난 크리스천들의 비웃음 등 모두를 인내를 갖고 견뎠습니다.

그들은 금식하며 기도하고 중보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그의 민족들을 만나주셨습니다. 타임스퀘어 교회가 왜 말씀에 굶주린 사람들로 가득차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거하신다는 소문이 났기 때문입니다!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고,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은 소문이 납니다. 기근은 이제 끝이 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국에서 양식을 보내주셨습니다. 여러분께서 만약 그 양식을 맛보지 못하였다면 지금 바로 모압을 떠나 하나님께서 그의 민족을 만나주시는 곳으로 달려가십시요!

그것이 바로 나오미와 그의 두 며느리가 한 것입니다. 그들이 모압으로부터 유다로 향한 것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결단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를 받았고, 하나님께서 그 땅의 민족을 만나주셨다는 소식에 마음이 끌렸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같은 방법으로 성령님께서 이끄시는 수 천명의 사람들이 얕고 가벼운 번영과 안락함을 추구하는 자기자신의 욕망을 위한 믿음과 세상속에서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온전한 믿음의 갈등 속에서도 진실함으로 그리스도에게 돌아 오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2014년 12월 16일 화요일

룻기

룻기는 하나님을 믿는 이방인 여자가 자신이 섬기는 주인의 마음을 얻은 놀라운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룻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주는 예언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영접할 때 룻이 보아스의 마음을 얻은것과 같은 과정을 겪어야하기 떄문입니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린도전서 10:11). 바울은 이렇게 성경 속의 이야기가 그저 역사적인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하였습니다.

룻기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룻기1:1).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이스라엘인 엘리멜렉, 그의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은 유다를 떠나 모압으로 이사하였습니다. 엘리멜렉은 그곳에서 죽었고, 나오미의 두아들은 오르바와 룻이라고 하는 모압여인을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모압에서 10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런데 모압은 악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우상숭배의 나라였습니다. 모압족속은 롯과 그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후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모압이라는 이름은 간음, 사통, 우상숭배를 의미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민족을 유혹하여 결국에 24,000명을 전염병으로 죽게 만든 것도 모압 족속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들이 모압 여자와 결혼하지 못하게 명령하였습니다. “너희는 저희와 서로 통하지 말며 저희도 너희와 서로 통하게 말라 저희가 정녕코 너희의 마음을 돌이켜 저희의 신들을 좇게 하리라”(열왕기상 11:2).

영 적인 시각으로 볼때에 하나님 말씀의 기근이 있을 때 똑 같은 일들이 발생합니다. 하나님의 민족들은 세상으로 향하고 우상숭배의 유혹에 넘어가고 세상적인 사람들과 혼합되게 됩니다. 이렇게 말씀의 기근은 그리스도인들의 내면의 욕구를 채우기 위하여 세상적인 것으로 향하게 만듭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점점 차가워지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진실한 영적인 양식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교회를 가지만 듣는 설교는 얕고 가볍습니다. 즉 적절한 영양소, 생명의 물이 없고 즐길만한 엔터테인먼트만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교회들에 불륜, 이혼, 세상적인 음악, 비성경적인 철학, 뉴에이지 가스펠이 급속히 퍼지고 있는 이유고, 우리 청년들은 마약을 사용하며 점점 성적으로 난잡해 지는 것있니다. 교회안에서 말씀의 기근은 믿는이들을 우상숭배의 장소인 모압으로 몰아가버렸습니다. 모압은 나오미의 아들이 일찍이 죽었듯이 청년들이 죽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