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29일 목요일

부활의 능력과 생명으로 사는 것

피로한 순간에 예수님께서는 우물가에서 잠시 멈추어 휴식을 취하였습니다. 그곳에는 도움이 필요한 잃어버린 여인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편안하게 예수님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요한복음 4:32). 이것이 바로 부활의 능력과 생명으로 살 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에너지입니다!

저는 제가 자주 수명이 다된 자동차 배터리같다고 느낍니다. 여러분께서 자동차의 라이트를 끄는 것을 잊는다면 그다음날 차는 죽은 기계에서 나는 땡그랑 울리는 소음을 낼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못박히셨다가 3일만에 부활하신 예수님과 동행하셨던 성령님이 오늘날 우리와도 함께 하시지만, 저는 오늘날의 믿는이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로마서 8:11).

끊임없이 생명을 불어 넣어주시는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이 성경에 정말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 안에 거하시며 특별한 에너지를 주셔서 우리의 육신에 힘을 더하여 주십니다.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골로새서 2:13).

여러분은 성령으로 충만하십니까? 그렇다면, 믿음으로 새 생명과 새 힘을 얻으십시요!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찌어다. …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편 103:2,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디도서 3:5-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하심과 성령님의 거하심과 동행에 하나님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적용하셔서 부활의 능력과 새 생명으로 사는 삶을 사십시요.

2015년 1월 28일 수요일

성령으로 힘입어

우리의 믿음은 사망과 그 어떤 환난에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를 넘어서야 합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사망한 모든 것에 대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망한 것이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그 아무리 절망적이고 헤쳐나갈 희망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포기하여서는 안됩니다.

회당장의 딸을 살리신 이야기(마가복음 5:21-43)를 참고해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의 능력을 알리고자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그 방안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저희를 많이 경계하시고”(마가복음 5:43).

변함없는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친밀한 교제가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여부는 오직 하나님과 당신만이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깜짝 놀라게 할것이고, 설레게 할 것이고,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리스도 임재의 위대함은 한 강력한 구절로 간단히 요약됩니다 :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요한복음 1:4). 예수님은 그때도 지금도 영원토록 생명을 빛 같이 비추실 것입니다. 그에게는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르지 않는 샘물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되셨고, 수 많은 군중이 그에게 몰려 들더라도 지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단 한번도 성급하게 움직이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잠시 쉬기 위하여 제자들을 모았을 때, 그들은 호수 저편의 조용한 공간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러나 군중들은 그곳에까지 모여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 한번도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또 문제의 집단이 말도 안되는 불평과 질문들을 들고 찾아왔구나. 도대체 언제까지 따라올런지?” 대신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성령에 힘입어 그들을 섬겼습니다. 예수님 또한 고생스런 하루도 있었고, 밤새 기도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러고도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들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며 함께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2015년 1월 27일 화요일

믿음의 편에서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던 시대에 회당장의 집에서 아주 안 좋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회당장의 딸이 죽었을 때 집 안에는 혼돈, 의심, 두려움 그리고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훤화함과 사람들의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들어가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저희가 비웃더라 예수께서 저희를 다 내어 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마가복음 38-40).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부터 제가 여러분의 삶에 왜 그렇게 많은 소란과 슬픔이 있는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는 것과 예수님께서 죽음에서도 살리실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있고, 이미 엎어진 물이고, 예수님은 너무 늦게 오시고, 예수님이라도 돌이킬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아직도 우리 안에, 개개인의 삶 속에서 일하시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것이고, 불신으로 인하여 여러분은 미리 포기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자, 우리 모두는 위의 말씀에서 언급된 비웃은 사람들과 같은 죄가 있습니다. 우리 또한 어려움 중에 하나님을 찾고, 너무 늦기 전에 응답하시고 중재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리고나서 응답이 우리가 생각하는 타이밍에 오지 않으면 바로 슬프게 통곡하기 시작합니다. 마귀가 승리하였다는 것을 인정한 것처럼 그의 권세 앞에 두려워 떨기 시작합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패배하시고 마귀가 승리한 것 처럼 말입니다.

간혹 우리 삶의 어려움과 환란들은 안좋은 상태에서 최악의 상태까지 다다릅니다. 그럴때면 우리는 보통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끝났군. 너무 늦었어. 그 어떤 이유이든 간에 하나님께서는 이 상황에서 나를 구원하시지 않으실 것이야.”

희망을 잃었다고 생각했을때에는 그저 섬기고, 사랑하고 찬양하는 것 만으로는 완전하지 못합니다. 모든 소망을 잃었을 때 가장 지켜야 하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은 어디있습니까? 마치 당신은 절대로 직장을 얻을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아니면 사방에서 온갖 어려움이 자신에게 닥쳐올때에,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을 때 말입니다.

만약, 어려움에 놓인 당신에게 지금 바로 예수님께서 나타나시면 우리에게서 기대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리고 당신은 예수님 앞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시겠습니까? 아직도 슬퍼하실것입니까? 당신의 마음은 아직도 혼란 상태에 있을까요? 저는 여러분께서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을 드렸으면 합니다. “주님, 절망적으로 보이고, 더 이상 소망이 없어 보입니다. 저는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회당장의 집에 있을때와 제 앞에 계신 지금 모두 같으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이십니다. 사망에서 생명을 가져다 주실 수 있고, 이 절망과 어려움에서 나를 치료하실 수 있는 주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