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22일 화요일

교회는 조롱의 영을 대면하고 있습니

엘리사는 잃어버린 젊은 세대와 함께 타락한 성읍, 벧엘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조롱당했습니다.

“엘리사가 거기에서 벧엘로 올라가는데 그가 길에서 올라갈 때에 어린아이들이 도시에서 나와 그를 조롱하여 그에게 이르되, 너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므로 엘리사가 돌이켜서 그들을 보고 주의 이름으로 그들을 저주하매, 숲에서 암곰 두 마리가 나와 그 아이들 가운데 마흔두 명을 찢었더라.” (열왕기하 2:23-24)

이 얼마나 처참한 광경인가요. 당신이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아이들이 곰에게 공격당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는 것은 참으로 냉혹한 일이야.” 그러나 이 구절에서의 “어린아이들”은 옳지 못한 번역입니다. 히브리어 원본에서는 이 구절을 “젊은이들”이라고 읽습니다.

엘리사는 자기가 조롱당했기 때문에 불끈 화가 나서 이기적인 마음으로 그들을 죽음으로 이끌었을까요? 아닙니다. 이 경건한 선지자는 성령의 능력과 권위하에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실은 그 조롱하는 젊은이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 소년들은 엘리야가 들리움 받아 승천했다는 사실에 대해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엘리사를 향해 “너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소리치며 조롱했을 때, 그들은 성령의 일을 조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성령의 거룩한 행사하심을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엘리사를 향한 그들의 행위는 무엇보다도 그분을 대적하는 조롱의 행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랫동안 벧엘의 타락한 교회에 대해 인내하고 계셨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타협의 제단에서 우상숭배 하기 위해 그곳에 모여들었고, 주님께서는 엘리야를 포함한 많은 선지자를 보내 경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더이상 그 성읍의 우상숭배와 사악함을 용납하실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이 사악한 장소에 성령의 권능을 갑절로 가진 자를 보내셔서 심판하셨던 것입니다. 벧엘에서 엘리사는 권능으로 움직였고, 그들의 죄에 대한 심판을 설교했습니다.

오늘날 너무도 많은 젊은 사역자들이, 벧엘의 타락한 교회가 그랬던 것과 똑같은 육적 방식들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나라에 맨 처음으로 반항과 관능을 선동했던 바로 그러한 음악을 하나님의 집으로 들여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 건물 안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유인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죄로 만연한 사회를 여론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배드리는 대신에 공연과 파티, 록 콘서트를 주최합니다. 그들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간단하며 순수한 복음으로 그들의 죄와 공허함을 대면하게끔 하기는커녕 젊은이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시도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엘리사가 직면했던 것과 똑같은 조롱의 영을 대면하고 있습니다.

2014년 7월 21일 월요일

내 입술을 열어주소서 by Gary Wilkerson

다윗은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주여, 내 입술을 열어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시편 51:13, 15)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불을 지피실 때, 그것은 우리를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주변의 지역사회와 더 나아가 전 세계를 향해,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한 열정으로 우리를 불타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불길이 우리 안에서 타오르는 것을 우리가 허용한다면,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교회 밖으로 복음을 갖고 나가게 만들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내 안에서 타오르는 이 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것을 단지 품고만 있는다면, 그 얼마나 슬픈 일일까!”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인격적으로 정결케 되었을 때, 그리고 그분의 생명이 우리 안에 거하기를 원하는 끊임없는 갈증으로 채워졌을 때, 그것은 우리의 열정을 단순히 억제할 수 없게 합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향해 그분의 찬양을 노래하게 만듭니다. 제가 아는 가장 훌륭한 예배자들 중 일부는 이렇게 외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 제 직장동료가 오늘 저와 함께 교회에 나와 당신의 놀라운 사랑을 체험할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불이 없다면, 우리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가 지극히 강렬하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늘의 불이 우리 머리 위에 임해 우리가 모두 경탄으로 쓰러진다 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는 오순절의 능력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부흥이 교회 안에만 한정되어 있다면, 그것은 부흥이 아닐 것입니다. 진정한 불이 타오르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 도시에 불을 붙이도록 우리를 움직일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이러해야만 합니다. “하나님, 만일 당신의 불씨로 저를 감동시킬 거라면, 저로 하여금 믿지 않는 자들에게 말하게 하옵소서. 당신의 사랑에 대해 그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제게 기름부음하여 주시옵고,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을 가지고 제가 세상으로 나가게 해 주시옵소서 .”

만일 성령의 불이 당신의 삶을 주도하고 있다면, 당신의 삶은 단지 불씨가 아니라 횃불이라는 사실을 당신이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014년 7월 19일 토요일

성령 충만하여 by Jim Cymbala

“그들이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사도행전 4:31)

찬양사역자 스티브 그린(Steve Green)이 저희 브루클린 테버네클 교회에 처음 방문했을 때, 찬양예배가 시작되기 바로 전 저와 부목사님들은 제 사무실에서 기도 모임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그날 다 같이 하나님께서 저희 가운데 임해 주시기를 한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기도 후 눈을 떴을 때 스티브는 뭔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물었습니다. “제가 방금 느꼈던 진동이 무엇이죠? 혹시 이 근처에 기찻길이 있나요? 아니면 그것은 정녕 성령의 진동이었습니까?”

저는 그에게 그 진동은 성령의 권능에 의한 것이 아니었고, 우리 건물 바로 아래로 지나다니는 지하철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초대교회에서 그들이 느꼈던 진동은 진정으로 성령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들 기도 모임에서 하나님의 권능은 신선하고 새로우며 더 깊은 감동으로 임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오순절에 성령으로 충만했었으나 (사도행전 2장 참조), 그들은 그곳에서 새로운 필요를 감지했고,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능력의 공급으로 그들을 만나주셨습니다.

우리 영적 능력의 저장고는 시간이 지나면서 소멸됩니다. 일상생활과 방해 요소들, 그리고 영적 전쟁도 그에 한몫합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서 바울이 언급했듯이, 우리는 “항상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복음주의자나 전통주의자, 근본주의자, 오순절파, 또는 카리스마파(권능주의, 또는 은사주의파)라고 부른다 할지라도, 우리 모두는 스스로 진정한 능력의 결핍을 인식해야 하며 새로운 성령의 재충전을 구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무기력함으로부터 일깨워줄 하나님의 신선한 바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더이상 신학적 논쟁의 후미에 숨어있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 시대는 너무도 어둡고 위태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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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짐 심발라(Jim Cymbala) 목사님은 뉴욕의 한 소외된 지역에 위치한 작고 허름한 건물에서 이십명도 채 못되는 성도들과 함께 브루클린 테버네클(Brooklyn Tabernacle)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는 브루클린 태생이며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 그리고 게리 윌커슨 목사님과 오랜 친분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세계 전역에 걸쳐 World Challenge에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의 주된 강사입니다.

2014년 7월 18일 금요일

여리고의 독이 든 물

하나님의 영감을 얻은 엘리사는 믿음으로 앞으로 나아갔고, 그의 첫 번째 여정지는 여리고 였습니다(열왕기하 2:15).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50명 생도들은 엘리사를 맞았을 때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것을 즉시 알아채고 이러게 말했습니다. “엘리야의 영감이 엘리사의 위에 머물렀다”(열왕기하 2:15). 가려져 있던 엘리사가 더 깊은 영적인 힘과 권위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게 드러났습니다.

생도들은 엘리사에게 “우리 주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2:19)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에 독이 있고, 그 물이 모든 것을 죽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그 50명의 생도들은 여리고에 죽음을 가져오는 이 독을 막는데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사야서에 의하면, 여기서 언급한 아름다운 터(plesant place)는 사역을 의미합니다.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사람이라.”(이사야 5:7). 그리고 여기서 언급된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뜻합니다.

여러분, 이해가 가시나요? 여리고의 독이 든 물은 지역에서 전해지는 오염된 설교를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하나님을 좇는 생도들은 그들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떄문에 그들의 설교는 더럽혀진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독으로 가득차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생명 없고, 육적인 설교는 사람들을 영적 죽음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여리고의 독, 해독제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물의 공급원을 정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사는 바로 공급원을 깨끗게 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지역의 물, 근원지에 소금을 던졌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물은 깨끗하게 되었고, 생명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엘리사가 이용한 소금은 복음의 정결함과 거룩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깨끗한 새 그릇은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케 되고 온전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준비된 사역자들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거룩하게 살며 순전하고 새로운 영감으로 말씀을 전하는 정결하고 온전한 그릇은 하나님의 전에 들어오는 악하고 오염된 물결을 막을 수 있습니다.

2014년 7월 17일 목요일

하나님의 영으로 힘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승천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명령하신 일은 엘리사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였으면 하는지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영감이 갑절이나 있기를 구하였을 때 엘리야는 어려운 일을 구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일이 과연 누구에게 어렵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하시기에 어렵다고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죽은 사람을 일으키고 하늘에서 땅으로 불을 내리친 사람 엘리야에게 어려운 일이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엘리사에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엘리야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신다는 의미의 영감이라는 것은,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엘리사가 구하고 얻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나님의 영을 사람에게 거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이루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고(Nevertheless, if thou see me when I am taken from thee, it shall be so unto thee; but if not, it shall not be so)”(열왕기하 2:10). 이 구절에서 “when(언제, 시간을 나타내는 표현 뒤에 쓰임)” 그리고 “am(있다, 존재하다)”이라는 단어는 원어인 히브리어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 표현으로 나중에 킹제임스 대역에 삽입된 표현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만약 내가 네게서 취하여 지는 것을 본다면”이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엘리야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가 만약 나와 함께한 과거의 기억들에 기댄채로 산다면 성령님께서 너의 안에 특별한 일을 하실 수 가 없단다. 내가 없어진 것을 알아야 한다. 엘리사야, 너에게 나는 필요가 없단다. 성령님을 통하여 내 안에서 일하신 하나님께 달려가거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실것이다.”

엘리사가 그의 선생인 엘리야가 천국 마차를 타고 회리바람으로 승천하신 것을 본 순간에 엘리사는 그의 세대에 해야 할 하나님의 일을 이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요르단 강의 물을 내리치고 난 후에 엘리야가 한 말은,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열왕기하 2:14) 이었습니다. 이 젊은 선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이 땅에서 나의 영적 아버지들은 죽고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어려운 상황에서 저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나를 통하여 다시 한번 일하여 주시옵소서. 저는 하나님의 영으로 더욱더 힘 입어야 하겠습니다.”

2014년 7월 16일 수요일

당신의 삶의 강물을 가르시고 싶어하시는 하나님

늙은 선지자 엘리야가 땅에서 마지막 날들을 생각하면서, 그는 벧엘과 여리고 지역을 방문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는 그의 제자인 엘리사와 함께 제가 생각하는 “교육용 여행”을 떠났습니다. 두 지역을 모두 방문한 이후에 요르단 강가에 도착하였습니다. 엘리야는 겉옷을 벗고 물을 내리 쳤습니다. 초자연적으로, 물은 갈라졌고, 두 사람은 강의 마른 땅을 밟고 건넜습니다.(열왕기하 2장 8절 참고)

엘리야는 왜 강을 가르는 기적적인 방법으로 강을 건넌 것 일까요? 요르단 강은 깊지 않지만 넓은 강이었습니다. 성경에서 그 강이 넘쳐흘렀다는 것에 대한 증거는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 곳에는 두 선지자가 건널 수 있게 수 시간 이내에 뗏목을 만들 수도 있는50명의 젊은 선지자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엘리야가 그의 제자에게 모세 그리고 여호수아 시대의 기적이 현대에도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엘리사에게 이런 도전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 “너의 사역을 시작할 때, 하나님은 기적의 하나님이시라고 설교 할 때에, 하나님께서 너에게 개인적으로 행하신 기적의 증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엘리사야, 나는 곧 사라질테지만, 네가 이 강을 혼자 건너 되돌아 갈 때에 우리가 함께 건넌 방법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하나님께서 너의 삶 안에서 기적을 행하실 것을 믿거라.”

오늘날 저를 포함한 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현대에도, 우리의 삶에도 기적을 행하실 것이라는 것을 믿지 못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사와 이적들을 읽고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를 위해 더 나은 것을 내가 계획하고 있단다. 너의 삶 속에서 기사와 이적을 일으키고 싶단다. 너의 가정, 결혼생활, 구원받지 못한 너의 가족, 친지들의 삶 속에서도 기적을 일으키고 싶단다. 너의 삶에서 너의 홍해를 만날 것이고, 너의 요단강을 만날 것이다. 그때 나는 그 물을 너를 위해 가르고 싶단다.”

2014년 7월 15일 화요일

하나님께서는 더 큰 일을 당신을 통해 하고자 하십니다

열왕기하서 2장에는 구약성서 중 가장 화려하고 극적인 구절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장에서 나이들어가는 선지자 엘리야와 그의 종 엘리사의 기적적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이땅에서 그의 사역은 끝이 났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이제 그는 요단강을 건너 하나님께서 그를 천국 마차를 태워 승천하게 할 특정한 장소로 이동하였어야 했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목적지에 도착하였을 때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물었습니다.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9절). 엘리사는 주저함 없이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9절).

처음에는 엘리야가 엘리사의 대답에 놀란듯 하였습니다. “가로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10절). 보지 못하고 집에 돌아가 실망하기에 이르지 않도록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조심스럽게 지켜보도록 지시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걷는 중에 홀연히 천국에서 마차가 나타나 그 둘을 갈라놓았습니다. 순식간에 엘리야는 마차를 타고 승천하였고, 엘리사는 그 모든 광경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리고 부르짖었습니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로 찢고”(12절).

엘리야는 사라졌지만 그의 겉옷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겉옷을 보았을 때 엘리사는 자신의 옷을 잡아 찢어버리고 엘리야의 겉옷을 주웠습니다. 그리고 엘리사가 요르단 강에 돌아왔을 때, 그는 그의 선생인 엘리야가 그리하였던 것처럼 엘리야의 옷으로 요단강 물을 내리쳤습니다. 그 즉시 물은 갈라졌고 엘리사는 마른 땅을 걸었습니다. 그렇게 이 젊은 선지자의 놀라운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장에서 나오는 사건들은 정말 놀랍고 굉장합니다. 이 구절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말씀이 무엇일까요? 저는 실수 없으신 하나님께서 중요한 교훈을 알아듣기 쉽고 아주 간단한 의미로 주시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어지는 모든 세대를 통하여 더 큰 일을 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새로운 세대는 개개인이 성령님을 경험하기를 그리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힘 입을 수 있도록 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2014년 7월 14일 월요일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by Gary Wilkerson

“주님 앞에서 나를 쫓아내지 마시며, 주님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편 51:11. 하나님은 어느 곳에나 계시지만 하나님의 나타내심과 임재하심은 그 밖에 다른 모든 것들을 말해 줄 능력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예배들의 시작을 성령님께서 오시기를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를 구하는 찬양으로 여는 것입니다. 시편 51편에서 다윗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필요합니다. 오늘 뿐 만이 아닌 내일도 필요합니다. 저는 제가 미적지근한 믿음으로 돌아가기 싫기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더 필요합니다. 하나님 제발 성령님을 제게서 거두지 말아주세요. 제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는 중에 나와 함께 하여 주세요.”

우리 모두 다윗이 어떤 마음으로 부르짖었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그리고 다른 이들과의 교제 중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 안에서 불꽃이 튀는 것처럼 상쾌하고 새로운 생명을 가져오는 경험과 함께 우리는 매일 매 순간 그러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하고자 구하며 부르짖습니다. 삶에서 우리에게 부담을 주는 직장, 가정 그리고 경제적 어려움 등은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주는 불꽃의 열기가 식기도합니다.

9월마다 하는 익스펙트(EXPECT) 컨퍼런스에서 저는 매년 반복적으로 이러한 시기를 보냅니다. 저는 하나님의 신실한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으며 감명을 받으며 무릎꿇고 기도를 하게끔 동기부여를 받습니다. 그러나 지난 9월 저는 이런 담대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 나의 열정을 유지시켜주시지 않는다면 아예 주시지도 마십시요.”

저는 오르락 내리락 하는 롤러코스터가 지겨웠고, 불꽃 같은 열정이 튀기지만 불씨가 지속되지 않는 상황 또 일주일정도 산 꼭대기에 있는 듯 하다가 그 다음에는 다시 힘들고 단조로운 하루로 돌아가는 반복되는 삶에 지쳐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하나님, 제 마음에 피우시는 열정과 믿음의 불꽃이 더욱 더 세고 깊게 커져갈 수 있도록 하여 주옵소서. 다윗이 구하였던 것처럼 제게도 충성된 영을 주시고, 제게 불꽃을 피우신다면 활활 타오르는 횃불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최근 몇 개월 동안 하나님께서는 제 안의 불꽃을 유지시켜 주셨습니다. 제가 사역 중에 있는 교회의 교인들은 기도로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제가 개개인을 대상으로 함께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충성된 영이 제 안에 있어 그 모든 개개인의 삶이 온 마음 다해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낮과 밤으로 중보하고 있습니다.

2014년 7월 12일 토요일

그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by Carter Conlon

성경은 한나가 그녀의 가장 절박한 시간에, 마침내 이러한 기도를 드렸다고 기록합니다.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사무엘상 1:11)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가 빠른 기도응답을 받을 때, 우리 인간성의 경향은 그 응답을 그냥 집으로 가져갑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신실하셨으며 어떻게 우리를 축복해주셨는지를 간증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축복을 받은 후 결국은 우리 자신을 위해 그것을 사용할 것입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우리가 한나처럼 절박한 상태에 이를 때까지 기다리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상태가 우리 마음속에서 그분의 영광을 위해 그 응답을 돌려드리기로 작정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한나는 그녀의 거룩한 절박함이, 그 나라가 직면하고 있던 위기에 대한 그분의 대책으로, 하나님께서 그분 백성 가운데서 나오게 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알았던 것은 그녀의 서원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완전히 타락했고 나라는 기울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토록 오랫동안 기도해왔던 그녀 마음속의 열망인 자기 아들을 성전에 맡기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지 상상해보십시오.

저는 한나가 어린 아들을 마지막으로 성전에 남겨두고 떠날 때 그녀의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말했는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한나, 당신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겁니까? 하나님께서 마침내 당신의 기도에 응답하셨고 이 아이를 주셨잖아요!” 그것은 바로 여러분과 제가 지속적으로 싸워야 하는 것들, 즉 그러한 여정의 길을 절대 걷지 않을 사람들의 충고와 거짓된 이유들과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한나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축복해주신 삶이 우리 자신을 위한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임을 아는 지각력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그분께서 주실 생명을 돌려드린다는 약속을 하며 주님께 처음으로 서원할 때 성전에서 무언가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사실상, 그것은 한나가 그녀의 안색에 더이상 슬픔이 없이 돌아가게 했던 이유였습니다. (사무엘상 1:18 참조)





저자 약력: 카터 칸론(Carter Conlon) 목사님은, Times Square Church의 창립 목사이신 데이빗 윌커슨(David Wilkerson) 목사님의 초청으로 1994년에 Times Square Church의 부목사로 부임했으며, 그 후 2001년에 담임목사로 임명되었습니다. 강인하며 열정적인 지도자로서, 그는 세계 전역에 걸쳐 World Challenge에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의 주된 강사입니다. 성경은 한나가 그녀의 가장 절박한 시간에, 마침내 이러한 기도를 드렸다고 기록합니다.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사무엘상 1:11)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가 빠른 기도응답을 받을 때, 우리 인간성의 경향은 그 응답을 그냥 집으로 가져갑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신실하셨으며 어떻게 우리를 축복해주셨는지를 간증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축복을 받은 후 결국은 우리 자신을 위해 그것을 사용할 것입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우리가 한나처럼 절박한 상태에 이를 때까지 기다리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상태가 우리 마음속에서 그분의 영광을 위해 그 응답을 돌려드리기로 작정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한나는 그녀의 거룩한 절박함이, 그 나라가 직면하고 있던 위기에 대한 그분의 대책으로, 하나님께서 그분 백성 가운데서 나오게 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알았던 것은 그녀의 서원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완전히 타락했고 나라는 기울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토록 오랫동안 기도해왔던 그녀 마음속의 열망인 자기 아들을 성전에 맡기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지 상상해보십시오.

저는 한나가 어린 아들을 마지막으로 성전에 남겨두고 떠날 때 그녀의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말했는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한나, 당신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겁니까? 하나님께서 마침내 당신의 기도에 응답하셨고 이 아이를 주셨잖아요!” 그것은 바로 여러분과 제가 지속적으로 싸워야 하는 것들, 즉 그러한 여정의 길을 절대 걷지 않을 사람들의 충고와 거짓된 이유들과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한나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축복해주신 삶이 우리 자신을 위한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임을 아는 지각력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그분께서 주실 생명을 돌려드린다는 약속을 하며 주님께 처음으로 서원할 때 성전에서 무언가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사실상, 그것은 한나가 그녀의 안색에 더이상 슬픔이 없이 돌아가게 했던 이유였습니다. (사무엘상 1:1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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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카터 칸론(Carter Conlon) 목사님은, Times Square Church의 창립 목사이신 데이빗 윌커슨(David Wilkerson) 목사님의 초청으로 1994년에 Times Square Church의 부목사로 부임했으며, 그 후 2001년에 담임목사로 임명되었습니다. 강인하며 열정적인 지도자로서, 그는 세계 전역에 걸쳐 World Challenge에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의 주된 강사입니다.

2014년 7월 11일 금요일

한계에 이르렀을 때

목회자들은 포기하고 있는 교구민들에 대한 그들의 아쉬움을 한탄하는 편지들을 제게 보냈습니다. “선하며 정직한 그리스도인들은 죄의식과 비난으로 너무도 압도당한 나머지 절망에 빠져있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기대에 합당치 못하게 살며 다시금 죄를 짓게 될 때, 결국은 포기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들의 한계에 이르러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숫자는 더욱 증가하고 있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감히 예수님을 향한 그들의 사랑을 포기하려는 생각까지도 합니다. 그러나 절망 속에 있는 그들은 무엇보다도 그들 자신을 포기하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일부 목회자들은 오직 긍정적인 메시지만을 전합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기도의 즉각적 응답을 얻으며 기적들을 받습니다. 모든 사람은 행복하게 잘 살며, 온 세상은 밝고 낙관적입니다. 저는 그러한 설교 듣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정말로 그렇게 좋은 모든 것들과 건강을 누리는 것을 제가 진정으로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무도 정직하며 신실한 수많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패배하며 포기하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태평하고 부유하며 성공적인, 항상 긍정적 사고의 그리스도인들의 종교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에 합당하게 살 수 없습니다. 그들의 세상은 이상적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비통함, 매시간마다의 위기, 그리고 가정 문제들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바울은 그들의 고난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힘에 겹도록 한량없이 눌려서 심지어 생명까지도 단념하고…” (고린도후서 1:8)

긍정적 사고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어떤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포”하는 것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해결책일까요? 여기 두 가지 절대적 진리는 제게 큰 위안과 도움을 주었습니다.
  •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그분은 오직 우리의 연약함으로부터 우리를 구해내기를 원하신다. 
  • 그분을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나의 믿음이다. 그분은 내가 그분을 신뢰하기를 원하신다. 
“오 나의 힘이 되시는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리이다. 주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의 구출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신뢰할 나의 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로다. 찬양 받기에 합당하신 주를 내가 부르리니, 이로써 내가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받으리로다.” (시편 18:1-3)

2014년 7월 10일 목요일

우리의 목자

우리의 위대한 목자는 시험과 고난, 아픔과 상처로 인해 잃어버려진 모든 양을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목자가 우리를 저버린다고 감히 비난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언제나 우리와 동행하시며 항상 우리를 지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현재 당신은 어떤 종류의 유혹이나 시험에 대항해서 승부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그 고투가 무엇이든 간에, 당신은 주님으로부터 달아나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했습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죄의 속박으로 넘겨지는 것을 거부하며,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취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은 지쳐있으며 완전히 속수무책의 극도에 달했습니다. 원수는 당신을 절망과 두려움, 그리고 거짓말에 휩싸이게 합니다.

당신의 시험은 그보다도 더욱 혼란스러우며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악화되어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 어떤 시험을 통과하고 있다 하더라도, 성령은 당신에게 여호와 로이 (즉, 주는 나의 목자)를 나타내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당신이 알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에게는 그분의 사랑을 당신의 마음속에 새기기를 원하시는 목자가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확신을 주십니다.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버리지 아니하리라.” (히브리서 13:5) 그리고 우리의 천부 여호와 로이, 우리의 목자이신 주님은 시편 23편에서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 이름을 알며 네가 겪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내게로 와서 내 은혜와 사랑 안에 안식하라. 모든 것을 스스로 파악하려 애쓰지 말고, 그저 너를 향한 내 사랑을 받아들이고 내 사랑의 팔에서 안식하라. 그렇다. 나는 만군의 주요, 존엄하고 거룩한 하나님이라. 나는 네가 나에 대한 이 모든 계시를 알기 원한다. 그러나 지금 내가 너로 하여금 알기 원하는 계시는 여호와 로이의 계시다. 나는 네가 너를 지키는 사랑의 목자로서의 나를 알기를 원한다. 그리고 나의 자비와 사랑 안에서 네 모든 시험을 통과할 수 있도록 너를 인도할 것임을 네가 신뢰하기를 바란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아노라. 아버지께서 나를 알듯이 내가 아버지를 아노니, 나는 양들을 위해 내 생명을 버리노라.” (요한복음 10:14-15)

2014년 7월 9일 수요일

“주께서 거기 계신다”

하나님의 진실된 교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당신이 여호와 삼마—히브리어로 “주께서 거기 계신다.” (에스겔 48:35)—의 이름으로 인식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서 반드시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주께서 이 사람과 함께하고 계심이 틀림없어. 내가 그를 볼 때마다 그로부터 주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어. 그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가 진실로 반영되어 있어.”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주님의 다감한 임재를 서로에게서 자주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시간을 기도모임, 성경공부, 구제사역, 구역모임 등의 좋은 종교적 활동들로 소요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활동은 매우 칭찬받을만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성도 중 많은 자가 기도 골방에서 기도와 말씀공부로 주님을 섬기는 시간을 거의 갖지 않습니다.

주님의 임재는 단순히 흉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개인의 삶이나 몸된 교회에 똑같이 적용되는 진실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서 말할 때는, 어떤 영적 기운이 신비롭게 어떤 사람을 감싸거나 교회 예배 중에 내려오는, 그러한 유형의 임재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믿음의 여정의 결과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한 성도의 삶에서 드러나거나 교회 전체에 드러나든 간에,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주목하게 만듭니다. 그들은 스스로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해왔어.” “이 교회는 그들의 설교 말씀을 진실로 믿는구나.”

여호와 삼마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단지 의로운 목회자만으로는 가능치 않습니다. 그러한 교회는 의로운, 그리고 하나님과 은밀히 교제하는 사람들을 요구합니다. 만일 한 방문자가 어떤 교회 예배에 참석한 후 “나는 그곳에서 예수님의 임재를 느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결코 설교말씀이나 찬양 때문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의로운 회중이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며, 주님의 영광이 그들 가운데 거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4장 13절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대제사장과 치리자들 앞으로 끌려갔던 사건에 대해 읽습니다. “이제 저들이 베드로와 요한의 담대함을 보고 그들이 학문 없는 무식한 사람들인 줄로 알았으므로 이상히 여기며, 또 그들이 전에 예수님과 함께 있던 줄도 알게 되고…”

2014년 7월 8일 화요일

탕자의 교훈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가 아직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그에게 입을 맞추매…, 아버지가 자기 종들에게 이르되,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가 그에게 입히고 그의 손에 반지를 끼우고 그의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여기로 끌어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누가복음 15:20-23)

저는 이 탕자가 집으로 돌아온 이유가 아버지와의 추억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이 젊은이는 자기 아버지의 성품을 잘 알고 있었고, 이전에 아버지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음이 분명합니다. 그는 만일 그가 돌아간다면 자신의 죄 때문에 책망받거나 비난받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 탕자의 아버지가 아들의 처량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를 어떻게 맞이했는지를 주목하십시오. 이 젊은이는 그의 아버지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빌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를 보자마자 달려와서 그를 포옹했기에 그는 제대로 자백할 기회도 없었습니다.

이 젊은이는 단지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아버지, 내가 하늘을 대적하여 죄를 짓고 아버지의 눈앞에서 죄를 지었사오니 더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릴 자격이 없나이다.” (누가복음 15:21) 그러나 아버지는 그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젊은이의 죄가 이미 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유일한 반응은 종들에게 이렇게 명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내 아들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그의 손에 반지를 끼워라. 우리는 축연을 할 것이니 잔치를 베풀라. 내 아들이 돌아왔으니 다 함께 즐거워하자!” 아버지는 아들의 마음을 이해했으며 그가 온전히 회개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아버지에게 죄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에 있었던 단 한 가지 관심사는 오직 사랑이었습니다. 그는 아들이 자백하기도 전에, 이미 그가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가 분명히 알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은 우리의 모든 죄를 훨씬 능가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함을…” (로마서 2:4)

2014년 7월 7일 월요일

불꽃 by Gary Wilkerson

불꽃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순식간 타오른 후 꺼집니다. 그러나 불꽃은 무언가의 시작을 위해 불을 지피는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면 불꽃은 음식을 만들기 위해 가스 그릴에 불을 지피는 데 필요합니다. 그러나 불꽃은 본질상으로 불은 아닙니다. 그것은 고기를 구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속에 의도하신 충만함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강렬한 은혜의 기름에 의해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불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다윗의 삶은 그 실례를 보여줍니다. 그는 사울과 똑같은 영적 체험을 했으며, 하나님의 손에 의해 만짐 받고 기름부음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받았던 불꽃은 불길로 번졌습니다. “사무엘이 기름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상 16:13) 여기서 “이날 이후로”라는 구절은 다윗과 사울의 삶에서의 차이를 나타내줍니다.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불꽃을 받은 후, 그것을 보존했으며 기뻐했고 불타오르게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결심했습니다. “나는 이 불꽃을 주님을 위해 타오르는 불길로 만들 것이다.”

하나님의 불꽃이 우리에게 임할 때, 그것은 우리를 위로해 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제하는 불을 지피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분의 거룩의 불은 우리에게 속하지 않은 것들로부터 우리를 정결케 하며, 죄의 찌꺼기를 태워 없애고 우리가 타협하는 것을 미워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또한 거룩해지고자 하는 열망을 우리 안에서 불러일으켜서, 다윗처럼 “주님, 저는 당신 앞에서 정결해지기를 원하며 올바른 영을 갖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하게 합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가 그것을 배타합니다. 신념은 변화를 유도할 수 있지만, 우리는 자신의 습성이나 갈망의 일부분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탄원합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고 주의 거룩한 영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기쁨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저로 하여금 당신께 순종케 해 주소서.” (시편 51:11-12)

이 구절에서 다윗이 순종에 대해 강조했음을 주목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불순종하고 자신의 의지를 따른 사역의 길로 갔을 수도 있었습니다. 사실상 그는 아시아에 복음을 전달하기 위해 안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령께서 그곳에 가는 것에 대해 금하셨음을 언급합니다. 바울은, 만일 그 일을 자기 임의대로 추진한다면 성령을 근심케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그가 여전히 구원받을 수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었지만, 그의 삶 속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소멸시킬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울 왕에게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가 계속 불순종할수록 그를 사용하시려는 성령의 능력은 점점 사라졌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사울은 더이상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으며 성령의 움직임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처음에 받은 불꽃이 정결케 하는 불로 지펴지는 것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2014년 7월 5일 토요일

날마다 새로운 아침 by Claude Houde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예레미야애가 3:22-23)

저는 일월 첫 달인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십일 기도와 금식으로 새해를 맞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수천 명 성도들과 세계 각처의 인터넷 성도들은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그들 나름대로 수십 가지가 넘는 우리 기도 모임에 동참하고 있으며, 각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새롭고 신선한 결심으로 새해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세계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이곳 퀘벡(Quebec)에서도 새해는 다짐과 결단의 때입니다. 우리 지방에는 신년 결단에 대한 놀라운 “민속행사”가 있습니다. 신문, 잡지, 라디오, 텔레비전 방송은 온갖 종류의 결단과 “새 출발” 명단을 발행하며 추천하고 있습니다. 그 한 예로, 수천 명의 사람이 살을 빼겠다는 결심을 하며 헬스클럽에 가입합니다. 저도 지난 이십여 년 동안을 정기적으로 운동해왔으며 일월만 되면 똑같은 현상이 반복되는 것을 보아왔는데, 그것은 새로운 부류의 운동선수들이 헬스클럽에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유명 브랜드 운동화와 운동복, 그리고 결심에 찬 눈빛으로 일 년 회원권을 지불할 수표를 손에 들고 나타납니다.

헬스클럽을 운영하는 제 친구가 한번은 이러한 사실을 제게 알려주었습니다. 매해 일월에는 그의 헬스클럽 장비와 면적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사람이 회원 가입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필연적이며 변치 않는 현상은, 일 년 회원비를 지불한 사람들의 80% 이상이 부활절이 되기도 전에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이랍니다. 그들은 자신들도 미처 알지도 못했던 신체 부위와 근육에 잠시 통증을 가한 다음, 건강에 해로운 음식과 그들의 절친한 친구 리모컨을 손에 들고 종일 텔레비전 앞에 앉아있게 만드는, 인생의 압제자에 굴복당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영적 세계에서 각 날은 새로운 시작의 기회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가장 본질은 그분의 자비가 매일 아침 새롭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의 전능하심, 그분의 선하심, 우리를 향한 그분의 열망과 성취, 그리고 그분 구원의 무한한 충만은 우리를 위해 날이면 날마다 온전히 새롭게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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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클라우드 어드(Claude Houde) 목사님은 캐나다 몬트리올에 위치한 New Life Church의 담임목사이며, 세계 전역에 걸쳐 World Challenge에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s의 주된 강사입니다. 그의 지도력으로, New Life Church는 소수 인원으로 시작해서 개신교 교회로서는 성공하기 힘든 캐나다의 보수적인 지역에서, 지금은 교인 수가 3,500명이 넘는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2014년 7월 4일 금요일

끝까지 견디십시오!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찐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누가복음 14:28-30)

예수님께서는 그의 많은 제자가 끝까지 버틸만한 조건을 갖추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돌아서고 끝까지 경주를 마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저는 믿는 이들의 가장 비참한 모습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를 완전히 따르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하고 제자로서 성장하여 예수님을 닮아간 다음에 멀어지는 것 말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기초를 먼저 세우고 시작하였지만 비용과 대가를 미리 예산하지 않아 일을 마치지 못한 것입니다.

경주를 끝까지 마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기쁜일인지요!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지혜 안에서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매일 그리고 매 순간마다 변화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이렇게 격려합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린도후서 3:18). 이들이 소망하는 것은 천국을 가는 것이 아니라 영광 중에 있는 그리스도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이 메시지를 읽은 사람 중 잠깐 멈추고 있거나 잠시 뒤로 한 발자국 가는 과정에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작은 한 걸음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빠르게 멀어지는 원인이 될 것입니다. 만약 이에 해당한다면, 회개 그리고 자기를 부정하고 순복하며 돌아오라고 부르시는 성령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시간은 매우 큰 요소입니다. 만약 그리스도를 붙잡고자 한다면 지금 바로 붙잡으시고 끝까지 견디십시오!

2014년 7월 3일 목요일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보내신 편지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잃어버린 이 세상에 그리스도를 나타내게 합니다.

“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고린도후서 4:1-2).

바울은 여기서 볼 수 있는 표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타낸다는 것은 “밝게 드러내 보이는”것으로 어떠한 것을 분명하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의미입니다. 단순히 말하자면, 바울은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고 이해하게 하는 소명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의 삶에서 그리스도 자체 그리고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그리스도를 나타낸다는 개념을 더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편지라고 말합니다.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고린도후서 3:2-3). 우리의 삶은 성령님이 쓰신 편지이고 잃어버린 이 세상에 보내 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지켜보는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읽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편지가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오직 성령님께서 일하셔야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순간 성령님은 예수님의 형상을 우리 안에 새기시고, 항상 그의 모습으로 우리를 만들어가고 있으십니다. 우리를 진실하고 정확하게 사람들의 양심에 박힐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성령님의 미션입니다.

2014년 7월 2일 수요일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사무엘상 9장에서 사울의 아버지는 도망간 당나귀를 찾도록 사울을 보냅니다. 사울은 사환 한 명을 데리고 낙담하고 포기할 마음을 가질 때까지 땅을 두루 다니며 찾았습니다. 그때 사환이 그에게 사무엘 선지자에 대하여 얘기해 주었습니다. 사환은 사무엘 선지자라면 나귀가 어디 있는지 알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나귀가 있는 방향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울을 천국의 영원한 목적을 위해 쓰시기 위해 선택하셨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보자마자 한 것은 연회를 열고 식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사무엘상 9:19).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싶으신 것도 이와 같습니다. 주님의 식탁에 앉아 섬기고,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함께 시간을 가지며 하나님의 마음을 듣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함께 성찬을 받을 수 있도록 염려하지 말라 라고 말하였습니다(사무엘상 9:20-25). 사무엘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지 말라. 그것은 이미 해결되었다. 지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해야 한다. 먼저 하나님의 마음과 그의 영원한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가야 한다.”

성찬을 받은 후에 사무엘은 친밀하게 얼굴을 맞대고 대화할 수 있도록 사울에게 사환을 밖으로 내보내라고 하였습니다.(사무엘상 9:27, 10:1)

하나님께서 이곳에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진실로 성령과 함께 동행하고 싶다면, 진실로 나의 영감을 구한다면 나로부터 어느 방향으로 갈지에 대한 질문 이상의 것을 소망해야 한다. 나의 임재 속에 거하며 나의 마음 나의 소망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가야 한다! 나는 너희 머리에 기름을 붓고 나의 나라를 위하여 쓰고 싶단다.”

사랑하는 여러분, 방향은 놓으시고 그 외 다른 모든 것들도 일단 내려놓으십시오!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가려지고 깊은 뜻을 가르쳐주실 수 있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머물며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마음을 보이시게 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성령님과 동행하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2014년 7월 1일 화요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하나님은 우리의…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God is . . . a very present help in trouble.)”( 시편 46장 1절)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현재(present),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은 과거에 환난 중 큰 도움이셨지만, 현재에도 우리의 어떤 어려움 중에서도 큰 도움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46:3).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피난처이시고 방패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 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God hath not given us the spirit of fear; but of power, and of love, and of a sound mind)”(디모제후서 1:7). 하나님께서는 온전히 신실하시고 그의 말씀은 완전한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시편 46:5). 우리의 몸은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전이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그 성중에 거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 마음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나는 옮겨지거나 흔들릴 수 없습니다! “이방이 훤화하며 왕국이 동하였더니 저가 소리를 발하시매 땅이 녹았도다”(46:6). 이방이 격노하고 이 세상 모든 왕국들이 흔들리고 옮겨질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악한 마귀의 공격을 모두 완전히 멸하실 것입니다.

“저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46:9). 하나님께서 원수를 대적할 우리의 군대입니다. “무릇 너를 치려고 제조된 기계가 날카롭지 못할 것이라 무릇 일어나 너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혀는 네게 정죄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요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의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이사야 54:17).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 찌어다”(46:10). 나는 주님이 하나님 이시라는 것을 앎으로 완전히 쉼을 얻을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이시고, 나의 구원자시고, 나의 피난처 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하나님의 임재 하심과 사랑 안에 둘러싸여 있고, 나는 굳건히 서 하나님의 영광을 붙잡을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 이시요 나의 요새 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 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 시요 나의 방패 시요 나의 구원의 뿔 이시요 나의 산성 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시편 18:2-3)

2014년 6월 30일 월요일

확신할 수 있는 믿음의 반석 by Gary Wilkerson

우리는 크나큰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직장, 경제 그리고 인간관계의 불확실성 등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심지어 믿음까지도 불안하게 느끼게 합니다. 이러한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확신할 수 있는 믿음의 반석은 하나님만이라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고자 하십니다.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은 흔들 릴 수 있지만 하나님은 변함없으십니다.

마가복음 5장에서는 혈루병 있는 여인을 치유하시고(막 5:25-34) , 회당 주권자의 딸을 고치시고(5:35-43) 고향으로 돌아가신 예수님은 완전히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구절은 언제나 저를 크게 놀라게 합니다.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저희의 믿지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마가복음 6:5).

이 구절은 제가 연구한 신학을 그저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립니다. 어떻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믿지 않음으로 인하여 아무 권능을 행하실 수 없을 수가 있습니까? 진실은, 예수님께서 그 지역에 전하는 메시지가 있었던 것입니다. “미안하지만 어떤 이들은 내가 치유해줄 수 있도록 지붕에 구멍을 뚫어 병든 사람들 내게 데려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너희는 내가 치유할 수 있다는 것 조차도 믿지 않고 있다.”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마가복음 6:6).

이것을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경고로 여겨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읽고 불신의 마음을 갖고 그저 떠나지 마십시오.

물론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하나님께서 선택적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기도 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부르짖고, 하나님의 중재를 믿음으로 간구하여도 하나님은 다른 방향으로 인도하시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버리고 절대로 소망하지 말고 절대로 간구하지 말고, 소원 없이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직도 예수님께서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예수님께서 하실 것이라고 믿으십니까? 그 어떤 시험을 겪더라도, 멀게 느껴질지라도 하나님은 늘 중재해 주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당신 안에 믿음을 불어 넣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2014년 6월 28일 토요일

우리는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by Jim Cymbala

저는 지금 우리가 위기에 처해있으며 깨어나야만 하는 절박한 시기에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소수의 예외는 있겠지만, 오늘날의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다를 바 없습니다. 실상 우리는 라오디게아적 사고로 체제화되어 있기 때문에 미지근함이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몇몇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교회는 “탁월”하다고 간주됩니다.

일세기 말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엄중한 말씀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보족한 것이 없다 하나...” (요한계시록 3:15-17) 달리 말하면, 그들은 그럴듯한 “긍정적 고백”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승리와 축복을 선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문제는 예수님께서는 전혀 감명받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이렇게 반응하셨습니다:

“그러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 (요한계시록 3:17, 19)

그것은 확실히 엄중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을 항상 엄중히 다루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히브리서 12:7)

라오디게아인들이 모든 언약을 선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성도들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하십시오. 그들은 찬송가를 부르며 주일마다 예배드리고, 신체적 이익을 누리면서 그들의 이교도 이웃들보다 그들 자신을 당연히 더 의롭게 여기는 그리스도 지체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내침을 받으려는 위기의 순간에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심각한 경종인지요!
그리스도의 지체에 문제가 발생할 때는 그때마다 강력한 조치가 요구됩니다. 우리는 단지 가만히 앉아서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는 권능 안에서 역동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연합되었으며 늘 기도했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 분투했으며, 그분을 영광스럽게 하는 결과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곧 첫번째 공격이 왔습니다. (사도행전 4:2-3 참조) 그들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그들은 재빨리 다음과 같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주제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 이시요…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낮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사도행전 4:24, 29-30)

이것이 바로 수세기를 통해 선지자들이 백성들에게 권고해왔던 것입니다: 공격을 받았을 때나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을 때,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그분은 당신을 도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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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심발라(Jim Cymbala) 목사님은 뉴욕의 한 소외된 지역에 위치한 작고 허름한 건물에서 이십명도 채 못되는 성도들과 함께 브루클린 테버네클(Brooklyn Tabernacle)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는 브루클린 태생이며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 그리고 게리 윌커슨 목사님과 오랜 친분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세계 전역에 걸쳐 World Challenge에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의 주된 강사입니다.

2014년 6월 27일 금요일

생수의 강

에스겔 47장에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다음과 같은 계시가 보여졌습니다. 가장 마지막 때가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온 인류 역사를 통튼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영광스럽게 될 것이며 더욱 승리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진정한 몸은 그 능력이나 영적 권위에 있어서 약화되거나 감소되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의 교회는 권능과 영광의 불꽃으로 전진할 것이며,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가장 충만한 예수님의 계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에스겔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 지역들의 물고기가 그것들의 종류대로 대해의 물고기같이 심히 많으리라.” (에스겔 47:10) 주님 임재의 차오르는 물속에서 헤엄칠 성도들의 지체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차오르는 물에 관한 에스겔의 환상은(에스겔 47:3-4) 증가하는 성령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대에는 그분의 백성 가운데서 증가하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을 것입니다.
이 강의 근본 토대는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이 이미지의 성취를 요한복음의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군사들 가운데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찌르니, 즉시로 거기서 피와 물이 나오더라.” (요한복음 19:34)

물이 계속 차오르는 것은 제자들에게 성령이 주어졌을 때의 오순절의 이미지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성령이 선물로 주어짐과 동시에, 그분이 그들 안에서 흘러나오는 생수의 강이 되어주신다는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강물은 온 세상으로 흘러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7:38-39 참조)

에스겔의 환상에 의하면, 그 생수의 강은 주님이 오시기 바로 직전 최고조에 달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선지자를 놀라운 계시로 데리고 가셨고 에스겔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가 나를 데리고 그 물들을 지나가는데…” (에스겔 47:3) 그리고 주님은 이 선지자를 더 깊은, 그리고 더 먼 강물로 계속 나아가게 했습니다. 결국에는 물이 너무 깊고 압도적이었다고 에스겔은 말합니다. “그것은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그 물들이 솟아올라 헤엄칠 물이 되고 건너지 못할 강이 되었더라.” (47:5)

주님께서 이 선지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셨을 때 그가 얼마나 놀라워했을지를 저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 물이 차오른 이 바다는 대체 무엇이냐? 이 강이 온전히 생명과 부활의 능력에 관한 것이라면, 그러한 영광 가운데서 헤엄칠, 그토록 축복된 자들은 과연 누구란 말이냐?” 에스겔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을 단지 상상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2014년 6월 26일 목요일

노래하고 외치며 찬양하세요!

성령으로 충만한 하나님의 종을 공격하면 할수록, 더 많은 찬양이 그 사람 안에서 올라온다는 사실을 사탄은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성도가 위기에 몰리면, 그는 노래하고 외치며 예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성령 충만한 하나님의 자녀를 문제와 골칫거리들로 얽매어 놓는다면, 그는 더욱 노래하고 외치며 찬양할 것입니다!

바울이 귀신들린 소녀에게서 귀신을 쫓아낸 직후에 사탄은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 16:16-18 참조) 그는 군중으로 하여금 바울과 실라를 향해 격분을 발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그들은 갑자기 끔찍한 곤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 도시의 행정관은 그들을 채찍질한 뒤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저는 채찍이 그들의 등을 칠 때마다 마귀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래, 너는 아직도 승리를 거두었다고 생각하니? 너는 내 마귀들을 쫓아내고 내 권능을 빼앗아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귀는 성령 안에서 걷는 하나님의 종을 채찍질하면 할수록 더 많은 찬양이 그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모르는듯합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매 죄수들이 그들의 말을 듣더니…” (사도행전 16:25)

만일 우리가 성령 안에서 걷는다면, 우리는 사탄의 모든 결박으로부터 초자연적 구원을 가져다주실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분이 지진을 일으키셔야 한다 해도요. 그것이 바로 바울을 위해 그분이 하신 일입니다.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감옥의 기초가 흔들리고 즉시 문들이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결박이 풀리더라.” (26절)

사탄은 당신이 경험했던 그 어떤 것보다도 더 혹독한 유혹이나 시험을 당신에게 가져오려고 할 것입니다. 그는 당신이 죄의식과 비난, 그리고 자기반성의 수렁에 빠지게 되기를 원합니다. 성도여러분, 당신은 성령 안에서 일어나서 당신의 상황과 결박으로부터 눈을 떼야만 합니다.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대신 노래와 찬양을 올려드리며 하나님을 신뢰하기 시작하세요. 그러면 그분이 당신의 구원을 이루실 것입니다.a

2014년 6월 25일 수요일

모험적 믿음

환란을 직면했을 때,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보다도 더 그분을 영예롭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시편 106편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 군대와 그 모든 병사가 홍해에 휩쓸려가는 놀라운 기적을 지켜보는 장면을 봅니다. “그들을 미워한 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며 원수의 손에서 그들을 구속하셨고, 물들로 그들의 원수들을 덮으시매 그들 가운데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도다. 그때에 그들이 그분의 말씀들을 믿고 그분을 찬양하는 노래들을 불렀도다.” (시편 106:10-12) 그 다음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께서 행하신 일들을 곧 잊어버리고…” (13절) 우리는 얼마나 빨리 과거의 축복과 기적을 잊어버리는지요.

우리는 과거의 경험에 따라 우리의 믿음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잘 잊어버립니다. 지난 경험들만 가지고는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힘을 공급받기에 충분치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 즉 날마다 하나님에게서 오는 새로운 말씀의 공급에 입각한 새로운 믿음이 필요합니다!

곤경에 처했을 때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러면 그분은 더 많은 은혜와 모든 충만함, 그리고 그분의 능력으로 당신을 신뢰할 것입니다.

아주 절박한 곤경에 빠졌을 때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모든 상황을 그분의 보살피는 손안에 맡겨놓는 모험적 믿음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깊은 바다에 그물을 던져놓고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겨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모험적 믿음은 그분을 참으로 기쁘시게 합니다.

믿음은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며, 곤경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입니다. 자, 그러므로 이제 그 자리에서 나와 모든 것을 그분께 위탁합시다.

하나님은 불같은 시험으로부터 우리를 건져내시기 위한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당신이 어떤 환란을 겪고 있다 해도, 하나님은 모든 곤경에 대처한, 인간의 마음으로는 결코 구상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그 한 예로,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직면했던 불같은 시험을 생각해봅시다. 그곳에는 빵도 없었으며 그 어떤 식량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위원회나 중보 기도회가 다음과 같은 발상을 해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내일 아침에 우리가 일어나면 천사들의 음식인 흰 과자 같으며 꿀맛 나는 만나가 땅 위에 덮여있는 것을 발견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출애굽기 16장 참조)

하나님께서는 이미 계획을 세워놓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경이로우며 불가사의한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도 계획을 갖고 계시며 우리는 그분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2014년 6월 24일 화요일

승리하는 삶

예수님께서는 갈보리에서 마귀의 모든 능력과 권세를 말살시키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승리의 부활을 하셨을 때, 그분은 무수한 포로의 무리를 사탄의 손아귀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보혈의 값으로 산 행렬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갈보리에서의 그리스도의 승리는 사망을 이긴 승리보다도 더 값진 것을 우리에게 안겨주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삶에서의 놀라운 전리품들, 즉 은혜, 자비, 평화, 용서, 능력, 믿음 등 승리의 삶을 이끄는 데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우리로 하여금 얻게 했습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우리를 통해 모든 곳에서 그분을 아는 냄새를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이제 감사하노라.” (고린도후서 2:14)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성전을 보존하기 위한 모든 필요를 공급해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집을 다스리는 아들로서 신실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기쁨을 끝까지 굳게 붙들면 우리가 그분의 집이니라.” (히브리서 3:6)

여기서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진리를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성령 안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자원을 공급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성전을 보존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며, 그것을 보존하기 위한 자원은 우리가 싸우는 전투의 전리품들로부터 직접 오는 것이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보존을 유지시키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분은 그분의 집으로 우리를 입양하셨고, 그분이 완전히 정결케 하신 이 집의 주춧돌로 서 계십니다. 마침내 그분은 우리가 지성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믿음으로, 온전히 세워진 완성된 성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절반 정도만 완성된 집을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이 성전을 좋은 상태의 성전으로 유지하기 위한 자원은 그리스도 자신의 영에서 발견될 수 있습니다. 그분은 모든 전리품의 담당자이십니다. 그러한 자원들은 우리가 필요를 인식하며 하나님과 연합할 때 방출됩니다. 그리고 그 연합은 우리가 전투할 때부터 시작됩니다. 

우리의 자원은 전투에 몰두해있는 동안 우리가 쟁취한 그리스도의 형상입니다. 그것은 원수와의 전쟁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과 믿음, 그리고 성품입니다.

2014년 6월 23일 월요일

부활의 능력 by Gary Wilkerson

“회장의 치리자의 집에서 어떤 이가 와서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하거늘…” (마가복음 5:35)

이 소식을 듣는 야이로의 마음은 마치 칼이 그를 내리치는 듯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는 방금 예수님께서 혈루병에 걸린 여인에게 그녀가 병으로부터 놓였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의 고통이 막 시작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 경건한 자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내 부족한 믿음이 내 딸을 죽였구나.”

이 구절에는 완전히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모든 자를 향한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당신이 아마도 치유받지 못했거나 당신의 결혼이 끝장났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자가 결국은 예수님께로 돌아오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때로는 비극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시는지 그야말로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믿음은 가장 갖기 어려운 유형의 믿음입니다. 모든 상황은 하나님께서 관여하시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때일수록 너무도 특별한 믿음을 찾고 계시는데 그것은 이렇게 말하는 믿음입니다. “맞아, 내 상황은 이미 모든 희망을 잃어버렸어. 그러나 예수님은 아직도 하실 수 있어.” 이러한 유형의 믿음은 아브라함에게 요구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주님께 순종해서 그의 아들 이삭을 죽이기 위해 칼을 들었을 때, 이삭은 이미 죽은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이 허상이 되어버린 듯한 바로 그 순간에 전능자께서 개입하셨습니다. (창세기 22장 참조)

예수님께서 야이로를 위해 개입하셨을 때가 바로 그러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분은 야이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마가복음 5:36) 저는 여기서 예수님께서 야이로가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말씀하신것 이상으로, 그의 믿음을 요구하고 계시다고 믿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창세에 말씀하셨듯이, 야이로에게 “믿음이 있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일 오늘 예수님께서 당신의 귀로 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신다면, 당신의 상황에 대해서도 그와 똑같이 말씀하시리라 믿습니다. “믿기만 하라!” 그분은 당신이 자신의 힘과 능력의 범주 바깥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며 당신 안에서 믿음을 만들어가고 계십니다. 그분은 당신께 이러한 예언의 말씀을 하십니다. “삶의 모든 영역은 더욱 악화되었고, 육신은 죽음의 문턱에 있을지언정, 네 결혼에 대해, 네 자녀에 대해, 네 육신의 질병에 대해, 네 재정에 대해, 네 사역에 대해 그저 믿기만 하라.”

우리는 야이로에 대한 나머지 이야기를 잘 압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렇게 떠들며 슬피 우느냐? 이 소녀는 죽지 않았고 잔다, 하시니” (마가복음 5:39) 당신의 상황도 가망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은 야이로의 딸을 죽음에서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와 똑같은 부활의 능력으로 당신의 상황에 개입하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2014년 6월 21일 토요일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by Carter Conlon

하나님께서는 그분 백성들의 마음속에 깊은 부르짖음이 태동할 때 어떻게 반응하실까요? 저는 그 해답을 사무엘상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절박감이 한 민족뿐만 아니라, 그분께로 백성을 돌이키기 위해 사용될 자들의 심령 속에서도 일어나도록 허용하십니다. 그 실례로 ‘한나’라는 이름의, 아이를 잉태치 못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주께서 그녀의 태를 닫으셨으므로 그녀의 대적 또한 그녀를 심히 자극하여 애타게 하였더라. 한나가 주의 집에 올라갈 때에 해마다 그가 그와 같이 하므로 브닌나가 그녀를 자극하니라. 그러므로 그녀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이에 그녀의 남편 엘가나가 그녀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우느냐?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의 마음이 괴로우냐? 내가 당신에게 열 명의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 이에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뒤에 한나가 일어나니라. 이제 제사장 엘리는 주의 성전 기둥 옆에 있던 의자에 앉았더라. 한나가 혼이 괴로운 가운데 주께 기도하고 심히 통곡하며…” (사무엘상 1:6-10)

여기서 우리는 한나가 거룩한 절박감 가운데 처해 있음을 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중 많은 자가 현재 처해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절박감은 하나님과 동떨어진 삶을 사는 세상적 절박감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상황이 그들을 압박하기 시작하며, 체념과 절망이 그들의 마음을 장악할 때 울부짖기 시작합니다. 한편 우리는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하나님 백성의 마음에도 깊은 울부짖음이 태동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한나가 마침내는 더이상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최고조의 절박감에 달해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저 또한 더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하는, 그와 같은 심정을 제 기도 시간에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순간은 로마서의 이 말씀과 일치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말로 할 수 없는 신음으로 친히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느니라.” (로마서 8:26)

하나님께서 불어넣어 주신 거룩한 절박감은 당신의 심령으로도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특정한 시간에 그 일이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 안에서 그리고 당신을 통해 무언가 이루기를 열망하신다는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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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카터 칸론(Carter Conlon) 목사님은, Times Square Church의 창립 목사이신 데이빗 윌커슨(David Wilkerson) 목사님의 초청으로 1994년에 Times Square Church의 부목사로 부임했으며, 그 후 2001년에 담임목사로 임명되었습니다. 강인하며 열정적인 지도자로서, 그는 세계 전역에 걸쳐 World Challenge에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의 주된 강사입니다.

2014년 6월 20일 금요일

여호와의 손이 나의 위에 있으므로

구약성서에서의 거룩한 하나님의 종들에 대하여 읽으면 제 마음이 뜨거워 집니다. 이 믿음의 종들은 하나님의 일에 대한 책임감과 열정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기사와 이적이 오늘날 크리스천들에게는 쉽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따라야 하는 본보기를 보여줍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데 사용하고자 하는 믿음과 성격,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도 그렇게 믿음과 특징을 소망하기를 원하십니다. 

에스라는 온 국가를 일깨워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에스라는 하나님의 손이 그의 위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나의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어.” (에스라 9:28). 다른 말로는 하나님께서 손을 뻗어 에스라를 감싸주시고 그를 변화시키셨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에는 수 백명의 서기관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사명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에스라를 다른 서기관들로부터 구별시켰을까요? 무엇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손을 그의 위에 있게 하시고 무너진 예루살렘의 재건을 하기 위한 오만 명의 사람들의 책임자로 에스라를 세우셨을까요?

말씀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에스라 7:10). 쉽게 말하자면 에스라는 의식적으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이 세상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고 순종하고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말씀을 배우는 학생이 될 것이고 내가 읽는 모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할 것입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손이 그의 머리에 있기 전에도 그는 말씀을 성실히 구하고 연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말씀이 그를 끊임없이 검진하도록 하였고 말씀으로 육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씻김 받았습니다. 에스라는 말씀을 갈구하였고 말씀으로 기뻐하였습니다. 에스라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모든 일을 거행하는데 있어서 늘 말씀이 그의 마음을 준비시키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에스라를 감동시키시고 손을 에스라의 위에 두신 이유입니다.

2014년 6월 19일 목요일

치유하는 약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은 쓰고 맛없는 약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 유년시절에 삼켜야 했던 피자마유처럼 그것은 치유하는 약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43-44).

여기서 예수님께서 율법을 반박하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율법 안에 침입한 육 적인 영에 대하여 역설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 당시에 유대인들은 유대인들만 사랑했습니다. 유대인은 이방인과 악수도, 옷자락이 스쳐서도 안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율법에서 가르치는 정신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 (잠언 25:21-22).

정부의 비도덕적인 행사를 미워할 수 있습니다. 동성애자, 낙태를 한 사람들, 그리스도를 경멸하는 사람들의 죄를 미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저 사람으로 사랑하도록 명령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인류를 위하여 죽으시고 사랑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만약 제가 어떤 사람의 신념보다 그 사람 자체를 미워한다면 저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본보기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저는 맨하튼의 5번가에서 있었던 동성애 퍼레이드를 목격한 적 있습니다. 이십오만 명의 동성애자들이 행진하였고 그 대부분은 반나체였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게이다”라는 피켓을 들고 있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행진 대열에서 벗어나 “하나님은 당신의 죄를 미워하십니다. 그러나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있는 크리스천을 공격하였습니다.

저는 뜨거운 분노를 느껴 얼굴이 새빨게 졌음을 느꼈습니다. 소돔에 내렸던 불이 그들에게도 임했으면 하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 또한 예수님을 부인한 사람들에게 불로 내쳐지기를 원했던 제자들 같았구나.”

원수를 사랑하십시오! 당신 앞에서 전투적으로 죄를 짓는 그들을 사랑하십시오! 당신을 저주하는 그들을 축복해 주십시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러니 사랑하십시오.

2014년 6월 18일 수요일

하나님 나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한 명 한 명의 마음에 지으신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은 전지전능하고 강력하게 다스리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복음 17:21).

하나님 나라, 즉 우리의 마음 속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온전히 다스리시며, 인도하시고 치유하시고 구원하시며 우리의 행동을 통치하십니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이사야서 9:7). 이 구절은 영원토록 지속될 그리스도의 통치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우리는 왕 되신 주님의 통치에 더욱 순복해야 합니다.

당신의 삶에서 매일 예수님의 통치가 증가되고 있다고 정직하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권위 아래 당신의 행동을 내려놓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천국에 계시면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권위로 통치하고 계시다면 이 땅, 나라의 통치는 어떻게 하고 계실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히브리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고 오늘날에는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브리서 1:1-2).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분명한 메시지입니다. 육으로 만들어진 하나님의 말씀이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하신 말씀을 상기시켜주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기록되고 보여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통치하십니다. 성경은 우리 통치자의 주권이고,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통치 받는 사람의 간증을 듣고 싶다면 시편 119편 11절을 보십시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2014년 6월 17일 화요일

참된 위로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그의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의 원수에게 더하리라.”(이사야서 66:13-14).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주의와 경고에 귀 기울이지 않으며 거부하는 고집 세고 완강한 학생을 선생이 얼마나 오래 견뎌줄 것 같습니까? 오래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사람들이 연상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이미지 – 즉 아이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대하여 언급하였습니다.

우리 교회의 한 어머니는 비교적 먼 거리에 위치한 교도소에 수감 중인 아들을 면회하기 위해 일주일 중 하루를 사용합니다. 수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교도소에 도착하여 잠깐 아들을 봅니다. 어머니는 칙칙한 색의 죄수복을 입은 아들의 눈에서 고통과 괴로움을 봅니다. 매번 아들을 방문할 때마다 그녀의 속은 점점 더 죽어갑니다. 그러나 그녀는 절대로 아들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녀의 아들이고 그녀는 아들을 사랑합니다!

이러한 사랑이 바로 성령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이렇게 위로하십니다. “주님께 당신의 전부를 드린다고 하였고 당신은 주님께사랑을 드렸고 예수님은 당신을 항상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나 또한 당신을 놓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 되었은 즉 나는 계속 하나님의 명령하신 일을 할 것입니다!”

성령님의 위로 말고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진실된 위로는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당신은 하나님과의 동행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당신을 밤중에 따뜻한 침대에 눕히듯이 완전한 평강을 채워 휴식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만이 당신의 고난과 애통 중에 참된 위로를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이러한 확신을 주실 것입니다. “이 위로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