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8일 금요일

부주의한 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마태복음 12:36-37)

우리는 우리의 말이 단순히 땅에 떨어져 죽거나 허공으로 사라지고 공허로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말은 계속 살고 죽지 않습니다!

당신이 말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단 한 친구에게 밖에 험담을 말하지 않았고 그는 나의 말을 다시 반복하지 않을것이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로 끝날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이나 제가 하는말 모든 단어 한마디 마다 다 기록되어 있고 영원토록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심판때에 그 모든것이 우리에게 반복되어 들려질것입니다.

저는 어떤친구와 함께 극심한 험담을 잠깐 나누다가 깊은 책망을 받은것을 기억합니다. 제가 한 말은 사실 이였습니다. 어떤 목사와 다루어야 했던 도덕적인일과 관련된 것이 였습니다. 대화중에 그의 이름이 나왔을때 저는 말했습니다. “그 사람을 믿지마세요. 저는 그에 대해 뭔가를 알고있습니다!”

제가 말을 하면서도 저는 정죄감을 느꼈습니다. 성령님께서 저에게 속삭이셨습니다. “거기서 그만 둬라. 아무도 그것을 알 필요가 없다. 더이상 그럴 이유가 없으니 더 이상 말하지 말아라. 사실일찌라도 그것을 반복하지 말라.”

제가 이미 말해버린것은 충분히 잘못된 것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러고나서 부덕한 자세한 사항을 불쑥 내뱉았습니다. 조용하게 있어야 했을터인데, 결국 성령으로 깊은 책망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조금후 친구에게 연락해서 말하길, “미안합니다. 그것은 험담이었습니다. 제가 그릇된 처신을 했읍니다. 그것을 부디 반복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에 대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하십시요.”

저의 죄가 예수님의 보혈로 덮혀졌습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죄를 지었다고 인정하고 제 안에 남아있는 율법적인 자존심을 성령님께서 노출 시키시도록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저를 겸손케하시고 치유하시게 하였습니다. 이제 누군가에 대하여 비난하는 말을 시작 할때마다 저는 성령이 크고 명확하게 “그만” 이라는 말씀을 듣고 순종합니다.

2011년 10월 26일 수요일

혀를 길들이라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야고보서3:6)

야고보의 서간의 구절에서 그는 믿는자의 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교회에게 그들이 혀로 인하여 파괴되기 전에 그들의 혀를 다스리라는 소명을 발부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이렇게 질문 할수있습니다. 혀를 길들이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것입니까? 정말 경솔한 혀가 큰 죄가 될 수 있습니까?

입이 가벼움은 우리의 종교를 완전히 헛되게 만들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영적 활동이 하나님의 눈에 쓸모 없게 될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야고보서 1:26)

야고보가 여기 “너희 가운데”라고 주목하게 하는것은 교회안의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마약 중독자나 노숙자들이 아닌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 경건하고 영적인듯 보이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적극적이지만 그들의 혀는 억제되지 않고 통제 불능 입니다. 야고보는 거록해 보이고, 친절하고 온유하고 사랑많아 보이는자들, 그러나 교회나 또 직장과 가족들 가운데서는 날카로운 혀를 가지고 항상 험담을 하고 기꺼이 듣는 자를 말합니다. 그들은 소곤 거리며 불평하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종교, 즉 그들이 보여주는 소위 영성은 헛되고 쓸모없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예수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내가 주님을 위해 한 모든 일, 모든 영적인 노력이 헛되었다고 발견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시기 원치 않습니다. “데이빗, 너는 나의 이름으로 큰 일을 행했다. 너는 배고푼 자들을 먹이고, 벌거 벗은 자를 입히고, 귀신을 쫓으며 마약 재활 센터와 알콜 중독자들을 위한 집을 설립했다. 그래, 너는 수많은 자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많은 자들을 나의 나라로 인도했다. 그러나 그 모든것이 헛되다. 너의 입에서 많은 용기를 북돋는 말이 나왔으나 또한 원한이 맺힌, 불친절하고 증오하며 질투하는 말들도 있었다. 내가 혀에 대해서한 경고를 너무 하찮게 여겼다.

당신이 짐작하길, “내가 무자비 하게 말 한것 때문에 나의 영성을 하감 하시면 하나님은 사랑이 많지 않으시다” 라고 할수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한번도 혀가 길들여 지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을 눈깜박하지 않고 험담하는 자들을 말하는 것 입니다. 여기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전 13:1-3)

2011년 10월 21일 금요일

거룩한 진리의 찌르는 화살

하나님의 언약의 어떤 약속을 우리것으로 삼기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안에 무슨 한 일을 이루셔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모든일 전에 선행되어야 하는 이일은 무었일까요? 예레미야는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영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렘32:40) 하나님의 언약의 선행 작업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우리 마음에 그분의 대한 경외함을 주는것입니다.

예레미아는 구약이 아닌 하나님의 신약의 제공하심을 말하는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신약의 사역이 어떻게 수행될것인지 확실히 알려주십니다. “마음에 경외함을 두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안수하거나 육체의 노력으로 거룩한 경외함을 만들수 없다고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 일이 우리에게 수행되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성령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구절을 통해 말하십니다. “나는 네 안에 놀라운일을 할것이다. 나는 나의 영을 보내어 너안에 거하고 네게 새로운 마음을 줄것이다. 그분는 모든 육의 행위를 사장시키도록 너에게 능력를 주고 죄악의 권세에서 완전한 자유로 인도할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분은 너로 하여금 내가 기뻐하는것을 의도하고 행하게 할것이다.”

“그러나 성령이 다른일을 수행하시기전에 꼭 네안에서 하셔야 할 일이있다. 그는 너에게 죄에 대하여 하나님을 진실로 경외하는 마음을 줄것이다. 그는 너가 나의 계명에서부터 떠나지않도록 나의 거룩함에 대한 깊은 경외감을 심어줄것이다. 그렇지않으면 너의 죄가 항상 너를 멀리 떠나가게 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성령은 우리가 죄를 보는 시각을 변경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계속 정욕을 하찮게 여길때 절대 자유함을 얻지못한다는걸 알고계십니다. 성령께서 어떻게 이역할을 하십니까? 죄를 의식하게하는 하나님의 말씀, 곧 거룩한 진리의 찌르는 화살을 사용하십니다.

2011년 10월 17일 월요일

교제로 부름 받음

사도 바울은 기록했습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고전 1:9)

이 구절 하나는 우리 삶에 모든 폭풍을 이길수있는 진실하나를 보여줍니다. 우리 주위의 모든것이 흔들릴때에 우리 마음을 동요치 않게 지켜주는 단순한 진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온세상을 사로잡는 두려움에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교제를 유지하는 소명을 응답함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배웁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1:9)

우리의 지성을 신뢰하라고 불림을 받지않았습니다. 우리는 육체나 사람이나 세상의 아무것도 신뢰하라고 불림받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마태11:28)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평화, 신뢰, 만족입니다. 저는 믿음으로 영광의 주님을 볼때 참 큰 만족을 체험했습니다. 나를 사랑하시고 그의 감미로운 임재하심으로 나를 부르시고 그분께서 모든것에 족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구걸하거나 애원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것 가운데 예수님을 바라볼수록 주님이 더욱 기뻐하시는것을 알수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그를 기쁘게 할수없기 때문입니다.

아쉽게도 예수를 사랑하는 많은 자들이 위기에 처했을때 걱정하며 조바심칩니다. 그들은 시험을 어떻게 탈출하거나 견딜수있는 방법을 알아 내려고 시간을 보냅니다. 그들은 주님이 “와서 더불어 먹으라”는 주님의 음성을 유념하지 않습니다. 저는 매일 기도로 한시간 정도의 시간을 보내는것을 말하는것이 아닙니다. 저는 하루종일 주님에게 초점을 맞추고 “쉬지않고 기도” (데살전5:17)하는것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간단하고 조용한 대화, 단지 그와 말하며 더욱 그와 친숙해져 위기때에 깜짝놀라서 기도의 방으로 급히 가거나 낯선사람같이 울부짖을 필요가 없게 되는것입니다.

그는 우리의 모든, 크고 작은 부르짖음을 들으십니다. 그의 신실함으로 항상 우리를 응답하실것입니다.

2011년 10월 14일 금요일

메마른 땅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홍해를 통과해 가는길에 “마른땅”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십니다. 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출14:16)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에게 “너희는 마른땅으로 지나갈것이다”라고 놀랍게도 네번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려고 할때 또 이 구절을 봅니다. 그들은 약속된 땅으로 들어갈때에 마른땅으로 요단강을 건너갑니다.

간단히 말해서 마른땅은 경로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다면 당신은 어디로 가고있습니다. 당신은 후퇴하거나 뒤로가고 있지않습니다. 당신의 마른땅은 주님의 계획, 당신 삶 가운데의 주님의 사역, 그의 행하실 기적입니다. 당신은 계시를 향해,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승리, 더욱 큰것을 향해 가고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증명하고있습니다. 바로와 그 군대들이 어디에서 전투를 패배했는지 유념하십시요. 하나님의 주신 마른 땅입니다. 마른땅은 바로 마귀가 당신을 쫓아오는 곳입니다. 그는 당신이 가장 약할때에 공격을 하기원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마른 땅에서 주님은 마귀의 권세와 권력으로 부터 “전차의 바퀴”를 제거해 주십니다.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쫓아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출 14:28)

하나님께서는 본질적으로 말하시는것입니다. “나는 네가 어떤 환상이나 음성이 아닌 믿음으로 계속 움직이길 원한다. 오랜 가뭄에 있는 가운데에 나의 음성을 듣지못하고 앞을 보지못하고 마른땅에 있을때 내가 너를 어디로 인도하고 있다는것을 확신하길 원한다.

주님은 우리의 마른땅을 새로운 신선한 물로 변화시켜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내가 자산에 강을 열며 골짜기 가운데 샘이 나게 하며 광야로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으로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이사야41:17-18)

친애하는 성도여러분, 지금 메마릅니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곧 너는 수확을 볼것이다. 마른땅이 있던곳에 생명이 샘이 너의 발앞에 솓아날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것을 창조한것이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마른땅에서 무엇을 할지 보아라.”

2011년 10월 11일 화요일

대재앙

어떤 과학자가 대재앙에 대하여 말하였습니다. “온 세상이 흔들렸다.” 또 다른자는 그것을 “세상 역사상 가장 최악의 자연 재해” 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몇 년전에 아시아 전체 해안을 엄습한 수중 지진을 말하는 것이였습니다. 수만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우리주변에 지속적으로 재앙을 보고있습니다.
무시무시한 사건이 일어날때면 저는 하나님 아버지께 한가지 질문을 가지고 갑니다. “주여, 이 모든것이 무엇에 대한것입니까? 이것은 단순히 설명할수없는 자연의 사고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야 할것이 있는것입니까?”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말할수없은 고통과 불행을 겪는것에 대해 한탄합니다. 괴로워하는 자들을 위해 진실로 기도합니다. 저희의 사역단체는 기독교 구호 기관을 통해 황폐된 지역에 교회 및 집들의 재건을 도우려 수천달러를 보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바,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상처받은자들의 아픔을 측은히 여기시고 또한 성령님께서 영향받은 나라에 있는 모든신자들에게 평안을 부어주십니다.

미국은 사려 깊고 너그러운 나라이며 기도하고 나우어 주고 도움이 필요한곳에 가는 많은 자들의 반응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저의 영혼 어느 깊은곳이 저를 괴롭힙니다. 재난의 규모가 이해가 되지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감각을 잃고 멍하게 된것 같습니다.

미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이 축복받는 소식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제어가 풀린 강력한 권능앞에 무릎꿇지 못하고 끔찍한 자연 재앙을 보고도 우리 스스로를 낮추지 못한다면 무엇이 하나님을 조롱하는 자들을 침묵하게 할것입니까? 우리는 이제 더이상 충격을 받지도 못하는 것입니까?

생각해 보십시요.

  • 정치적 올바름 (소위 political correctness) 을 위해 우리 사회에서 하나님을 추방
  • 온 세상의 세속주위와 물질주위에 위존
  • 교회는 세상 그 자체보다 더 세속화 되어감
  • 폭력과 무관심의 상승
  • 성경은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받지 않음
  • “흔들릴수있는 모든것이 흔들리는” 날
  • 사려깊은 사람들이 “누군가가 자연을 조작하고 있고 설명할수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직관을 가지고 있음
  • 한번이라도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은 조롱받지 않으실것이라는것을 생각없이 계속 움직여가는 사회

이런일들이 일어날때 우리는 하나님의 어떤 신성한 자비도 깨울수 없는 영적 무감각의 경계선을 넘은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시고 은혜로우시고 용서할 준비가 되어있으십니다. 주 예수님의 오시는 날이 다가올수록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을 통해 그의 사랑과 자비를 나타내시길 바랍니다.

2011년 10월 10일 월요일

누군가 알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시편 139:1).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그분은 나의 깊은 생각을 아십니다.

혀에 말이 하나도 없으나

하나님은 모두를 아십니다.

그분이 앞뒤를 둘러싸시고

나에게 안수하셨습니다.

지식이 너무 높아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흑암이 나를 두를 때에라도,

그분은 마음을 살피사

그것을 아십니다.

내안의 사악한 길을 보고 계십니다.

오직 그분의 지혜만이

나를 이해할 있습니다.

내가 그분께 부르짖는 날에

그분이 응답하시고 영혼의 힘으로

나를 강하게 하셨습니다.

흑암과 빛이 그분께는 동일합니다.

나의 흑암을 아시고

내게 빛을 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나를 아십니다.

2011년 10월 7일 금요일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묘사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호세아 11:3).

이 구절을 원어로 읽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이 절망가운데 있을 때 내가 그들에게 와 더럽고 험한 곳을 지나며 다정하게 양육했다. 내가 유모처럼 그들을 내 팔에 안았다!” 그러나 호세아 11장7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 백성이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My people are bent on backsliding from Me(KJV).” 여기서 bent 란 말은 “불안 가운데 버티다, 의심하며 버티다,”입니다.

이스라엘이 주님의 사랑과 다정함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여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은 그들에 대한 나의 사랑을 의심하고 있다. 그들은 진정으로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사랑을 확신하지 못한다!”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셨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우상숭배자들이었고, 타락한 자들이며 의심하는 자들이었으므로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지 않도록 스스로 자초하였다. 우리는 일부러 죄를 지었고 그분은 틀림없이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8절).

당신을 위로하고 치유하시는 그분의 말씀들을 들어 보십시오:

“내가 영원히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끊임없이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지은 그의 영과 혼이 내 앞에서 피곤할까 함이라”(이사야 57:16).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에게서 본 것이 진노가 전부라면 네 영혼은 너무도 압도당하여 피곤할 것이다.”

“그의 탐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내가 노하여 그를 쳤으며 또 내 얼굴을 가리고 노하였으나 그가 아직도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걸어가도다 내가 그의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그를 인도하며 그와 그를 슬퍼하는 자들에게 위로를 다시 얻게 하리라”(17-18절). 이 말씀이 하나님의 백성이 실패했을 때 하나님이 그들을 포기하신다는 말씀처럼 들립니까?

당신은 지금 깊은 물속을 지나가는 중일 수 있습니다. 꼭 유혹이나 시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해할 수 없이 당신에게 닥친 압도적인 사건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이해를 초월하는 온갖 풍파가 당신에게 밀려오고 있습니다. 당신의 가정에, 교회에, 직장에, 사방에서 몰려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와중에서 당신을 안고 나오시기 원하십니다. 당신이 영적으로 건강하도록 회복시키기 원하십니다! 당신의 모든 완고한 면모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이 지금 당장 당신이 믿을 수 있는 것의 전부라면 , 그분이 당신에게 자신을 당신의 천상의 유모로 봐주기를 요청하신다는 것이 당신이 지금 당장 믿을 수 있는 것 전부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2011년 10월 6일 목요일

소망, 기쁨과 평강으로 충만함

하나님의 평강이 당신의 삶을 통치하기 원한다면, 몇 가지를 그만두어야만 합니다.

  • 하나님이 모든 것을 어떻게 이루어 가실 지 생각해 내려는 것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 염려하고 안달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빌립보서 4:6).
  • 당신 생각에 당신에게는 이것이 맞는다고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을 그만두어야합니다
  •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치십시오!

크리스천들의 평강을 빼앗는 사탄의 가장 효율적인 함정 중 하나는 그들이 육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고 그들을 확신시키는 것입니다. 그는 항상 내게 이것을 불쑥 내밉니다!

때로 조용히 기도할 장소가 필요할 때 나는 차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갑니다. 푸른 들과 숲을 바라보며 그분의 임재를 누리며 주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 주님을 위해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듭니다!

나는 기도합니다. “주님, 나는 주님의 나라를 위해 별로 성취한 것이 없습니다. 내가 하는 것은 기도와 설교하기 위해 메시지를 받고 교회에 가서 전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온 세상이 지옥으로 가고 있는데 나는 당신을 위해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습니다!”

당신은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없습니까? 당신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지만 거룩하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나는 거룩하다고 느낀 적이 거의 없습니다. 나의 최상의 때, 성령의 기름 부으심 아래서 말씀을 전하고 있을 때조차도 그렇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하겠지요. “데이브 형제, 당신이요? 당신이 하나님을 위해 별로 하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구요?” 그렇습니다! 마귀가 와서 우리 모두가 보잘것없고, 이룬 것이 없다고 느끼게 만듭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끔찍한 생각에 굴복해서 우리의 평강을 잃어버립니다!

바울이 우리를 위해 드린 기도를 들어보십시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로마서 15:13).

그분의 선하심을 신뢰하십시오. 그분의 사랑과 자비를 믿으십시오. 당신 때문에 진노 하셨다거나 당신에게 화나셨다고 그분을 비난하지 마십시오. 그분의 평강이 당신의 마음과 삶 전체를 주장하게 하십시오!

2011년 10월 5일 수요일

그분의 평강의 선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6-7).

최근 이 구절을 다시 읽었을 때 이전에 전혀 몰랐던 어떤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고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나아가 응답해 주심에 감사하라고 가르쳐줍니다. 그러나 응답을 얻는데 대해서는 일체 말이 없습니다! 바울은 방향을 지시하는 말씀, 구원, 기적이나 치유를 받는 데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가 하나님의 평강을 선물로 받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요청과 간구에 대해 그분의 평강의 선물로 응답하십니다. “너희 구할 것을.......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6-7절).

다시 말해서 우리의 모든 기도와 심령의 부르짖음에 대한 하나님의 첫 번째 응답은 그분의 평강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들 전부가 공통적으로 이것을 갖고 있습니다. 자신의 은밀한 기도의 골방으로 들어가면서 얼마나 그들이 상심했던지 상관없이 그들은 그분의 평강으로 채워져 나옵니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의 통치 체제에 따르도록 스스로를 제한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의 심령을 준비시키고 사건들을 지휘하시며 이곳저곳에서 행하시지만 그분의 섭리가 당신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이룰 때 까지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네게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는 너의 필요, 즉 마음과 생각의 평강을 줄 것이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이 기도 가운데 주님과 레슬링을 합니다. 그분께 울며 눈물로 간구합니다. 천국 문들을 두드리고 모든 약속을 청구합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나고 몇 달이 지나면서 우리는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주님, 왜 응답해 주시지 않습니까? 무엇이 내 기도를 막고 있습니까? 내가 무엇을 했기에 당신을 슬프게 하고 불쾌하게 했습니까?”

사실은 하나님이 이미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모든 지각에 뛰어난 나의 평강이 있다! 내가 모든 것이 합력하여 너에게 선을 이루게 할 동안 이 평강을 받아 그것이 네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우리는 그분의 약속이 성령에 의해 이루어지기까지 하나님의 평강 안에서 지킴을 받을 것입니다!

그분의 평강을 붙들고 그것이 당신의 마음을 주장하고 통치하게 하십시오!

2011년 10월 4일 화요일

하나님의 평강이 주장하게 하십시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로새서 3:15).

이 한 구절은 엄청난 명령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의 몸 전체를 불러 그분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몸을 주장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모든 것의 주관자로서 좌정하여 우리 삶의 중재자가 될 것입니다. 이 부르심이 울려 퍼져야 할 때가 있다면 바로 혼란과 혼동의 때인 오늘날입니다!

주님은 왜 초대 교회에게 그분의 평강이 그들의 삶을 주장하도록 하라고 명령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그분이 다가올 일을 알고 계셨고 그들을 준비시키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단지 몇 년 내에 엄청난 혼란이 그들에게 닥칠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고문당하고 핍박을 받을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곤경에 직면하고, 집을 잃고 세상에 속한 모든 재물을 징발당하고 그들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께 호의를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악한 자들로부터 공격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경고하시며 준비시키고 계셨습니다. “너희는 내 평강 가운데 뿌리를 내려야만 할 것이다. 그것만이 앞으로 다가올 모든 엄청난 변화를 겪는 동안 너희를 지켜줄 것이다!”

“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립보서 4:9).

현재 거짓 평강이 많은 교회를 휩쓸고 있습니다. 이 평강은 앞으로 다가올 고난의 때에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이는 고집 세고 죄에 눈이 먼 크리스천들의 평강입니다! 모세는 이러한 신자들을 자기기만에 빠졌다는 의미로 “스스로 복 받은 자들”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우상숭배를 행하는 모든 사악하고 불순종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저주가 내릴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그들이 평강의 거짓된 의미로 자신들의 죄악 된 길을 회칠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저주의 말을 듣고도 심중에 스스로 복을 빌어 이르기를 내가 내 마음이 완악하여 젖은 것과 마른 것이 멸망할지라도 내게는 평안이 있으리라 할까 함이라”(신명기 29:19).

모세는 악에 대한 자신의 정욕을 만족시키기로 결심한 하나님의 자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계속 죄 가운데 있어도 괜찮고 여전히 구원받고 천국에 갈 것이라는 편안한 교리를 발견한 사람입니다. 그는 스스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고 그래도 내 마음에 평강을 잃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 또는 세상 열방에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지옥의 권세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분이 당신의 영혼 속에 심어놓으신 하나님의 평강을 뺏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들이 평강의 지배를 받도록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당신의 마음을 주장하게 하십시오.”

2011년 10월 3일 월요일

불신 치료법

참고 서적을 뒤져 불신 “치료”법에 대한 목록을 찾았습니다만 수많은 것들 중에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간단한 답을 구했고 그분이 내 마음에서 불신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두 가지 생각을 주셨습니다.

1. 모든 걱정, 두려움과 짐을 붙들어라. 그 모두를 예수님께 가져가서 그분의 어깨에 얹어 두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베드로전서 5:7).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당신에게 주는 하나님의 개인적인 초청장, 그분의 요청입니다. “나에게 올려놔라. 한 시라도 더 짊어지고 다니지 마라. 나는 너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신경을 쓰고 너를 위해 모두 감당할 만큼 광대 하단다!”

얼마 전에 극심하게 짓눌린 상황에 있던 사람이 전화를 걸어 나에게 격려의 말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날 너무도 많은 문제로 압도당해 있어 단 하나도 더 처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미안하지만 다른 때 전화해 주셔야겠어요. 지금은 과부하 상태입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절대로 스트레스로 인해 지치지 않습니다! 절대로 과부하 되시지 않습니다! 그분의 어깨는 그분의 모든 자녀들의 짐을 지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촉구하십니다. “나에게 모두 내려놔라!”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시편 55:22). 지금 당장 당신의 목록을 훑어 내려가십시오. “하나님, 당신께 이것을 드립니다. 이것도, 저것도. 이 짐, 이 고민, 저 관계, 저 문제를 당신께 드립니다.” 그리고 그분이 돌보신다는 것을 온전히 확신하십시오!

2.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대로 살기 시작하십시오.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살라는 주님의 도전을 받아들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태복음 4:4). 당신은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고 죽을 것이다!”

당신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우리의 영원한 구원에 대한 그분의 말씀을 신뢰할 수 있으면서 우리의 매일의 필요와 문제들에 대해서는 신뢰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가장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 그분을 믿을 수 있습니다. 도움과 인도, 죄를 이기는 능력에 대해서 믿는 것이 왜 우리에게 더 어려울까요?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유다서 24). 하나님이 이것을 당신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을 지키는 부담을 그분이 떠맡게 하십시오! 주님께 나아가 그분의 말씀에 도전하십시오! 당신의 인생을 말씀에 걸겠다고 그분께 말하십시오! 당신이 그분의 모든 말씀을 신뢰한다는 것을 보여 드리십시오 - 그리고 복을 받으십시오!

2011년 9월 30일 금요일

불신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차단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브리서 11:6).

세상의 모든 기도를 드린다 해도 당신이 기도에 믿음을 화합하지 않는 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삼일 동안, 삼주 동안 금식기도를 드린다 해도 믿음이 없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마음이 믿음에 닻을 내리고 있지 않는 한 당신이 기도드린 모든 시간, 모든 간구들, 당신이 “주님께 나아온” 모든 것들이 당신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야고보서 1:6-7).

하나님과 두 시간을 보내고도 그분이 당신에게 응답할 것을 전혀 믿지 않는다면 당신은 두 시간동안 하나님을 당황하게 만든 것입니다! 아마 당신은 기분이 좋았거나 거룩하게 느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당신은 시간을 낭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두 시간 동안 불신과 의심을 드린 것입니다.

나는 매일 기도하고 주님 앞에 자주 울기도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크리스천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무겁고 우울에 빠집니다. 그들의 삶은 항상 혼란 스럽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분이 약속을 이행하실 것이라는 것을 온전히 납득하지 않은 채 그분의 존전에 나아옴으로 주님을 당혹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마가복음 11:24).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1:22).

하나님의 백성 중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일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되었기 때문에 영적 걸인들처럼 삽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왜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도록 허락하셨는지 이해할 수 없을 때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까?”

그들의 혼동에 대해 인간적인 대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시초부터 종말을 알고 계시고 우리가 하늘나라에 갔을 때에야 왜 이러한 바람과 파도가 우리를 뒤흔들고 왜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허락하셨는지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가 대답해 주었고 나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알아야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이것이 전부라고 믿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이사야 49:15-16).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너는 나의 자녀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썼으니 나를 신뢰해라.”

2011년 9월 29일 목요일

불신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듭니다!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요한일서 5:10).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범한 모든 추한 죄의 목록을 생각해 보십시오. 불평, 원망, 우상숭배, 배은망덕, 반역, 호색. 하지만 이들 중 어느 것도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시게 만든 것은 그들의 불신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민수기 14:11).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그들을 위해 행한 모든 것을 거짓으로 만든다! 기적을 되풀이해서 베풀었고 반복해서 그들을 구원해 내었다. 어느 때에야 그들이 나를 신뢰하고 내 안에서 안식하겠느냐?”

잠시 멈춰서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베푸신 모든 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은 당신을 지키셨고 이런 저런 기도를 응답해 주셨습니다. 이런 위기 저런 위기에 당신을 만나주셨습니다. 시련을 통과하도록 인도하셨고 하늘로부터 만나를 내려 먹이셨고 기적과 다름없는 일들을 당신에게 행하셨습니다.

38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그분의 기적을 그들의 마음속에서 지워버렸습니다. 그들이 너무도 자주 불평과 불신에 빠져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12절). 그분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나를 신뢰하는 자리까지 절대로 이르지 못할 것이므로 나는 내 백성을 포기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요단강 이편에서 승승장구할 때, 모세가 엄숙하게 선언했습니다. “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올라가서 차지하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소리를 들으시고 노하사 맹세하여 이르시되 이 악한 세대 사람들 중에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신명기 1:21, 29-30, 32, 34-35).

하나님은 그분의 이름 위로 그분의 말씀을 높이십니다. 말씀하신 모든 말씀을 의도하시고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이런 모든 것들은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우리가 불신하며 행동하면 우리도 그분의 진노를 야기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읽고 설교단에서 선포되는 그분의 모든 약속을 듣습니다만 우리 자리로 가서는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해주셔만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그분이 당장 행하시는 것을 보지 못하므로 안달합니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이 우리의 영혼에 닻을 내리도록 허용하지 않을 때, 우리가 위대하고 소중한 약속들을 듣고 나서도 마치 버림 당한 듯 행동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2011년 9월 28일 수요일

모든 죄의 모체

나는 믿음이 있는 크리스천들이 행하는 죄들의 전체 목록을 열거할 수 있습니다만, 그중 어느 것도 내가 말하고 싶은 죄를 따라올 만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죄의 모체-다른 모든 죄를 낳는 죄-그것은 불신의 죄입니다!

나는 마음이 강퍅한 죄인의 불신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뢰한들, 영지주의자들과 무신론자들의 불신에 대해 하나님은 흠칫도 하시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진노하시도록 만드는 것은 자신을 그분의 이름으로 부르는 자들의 불신과 고뇌에 찬 의심들입니다! “나는 예수님에게 속했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마음속에 의심과 두려움과 불신을 품고 있는 그분의 자녀가 다른 어떤 것보다 그분을 가장 슬프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불신의 죄를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시는지요! 유다는 다음과 같은 말로 교회에게 경고했습니다.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유다서 5).

유다는 신자들에게 하나님이 불신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시는 지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그분의 구원받은 백성들 가운데 있는 불신에 대해 극도로 혐오하신다는 것을 너희에게 기억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백성을 구원해 내셨으나 그 후 믿지 않는 자들을 멸하셨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하나님이 그분의 교회에게 이 동일한 일을 기억하게 하려고 나를 부르셨다고 믿습니다!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고린도전서 10:11). 하나님은 더 이상 구약에서 그러하셨듯이 그분의 백성을 육체적으로 멸하시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오늘날 우리의 불신에 대한 그분의 심판은 영적인 것이며 엄중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불신은 오늘날도 과거와 다름없이 파괴적입니다. 우리가 소금 기둥으로 변하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목이 굳고 원한에 차 있습니다! 땅이 갈라져 우리를 삼키지는 않지만 고민, 스트레스와 가족 문제들이 우리를 삼킵니다. 불이 내려와 우리를 사르지는 않지만 우리의 영적 삶은 파괴되었습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죄의 모체인 죄를 범하고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불신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이 그 죄에 대해 윙크 정도 하시는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우리의 몸과 영혼을 인간에게 알려진 다른 모든 죄에 열어주는 바로 그 하나의 죄입니다.

2011년 9월 27일 화요일

지혜는 어디에?

“그러나 지혜는 어디서 얻으며 명철이 있는 곳은 어디인고 그 길을 사람이 알지 못하나니 사람 사는 땅에서는 찾을 수 없구나”(욥기 28:12-13)/p>

지혜,
어디서
누가 찾을 수 있으랴?
깊은 물이 이르기를 내 속에 있지 아니하다 하며
바다가 이르기를 나와 함께 있지 아니하다 하느니라
순금으로도 바꿀 수 없고
은을 달아도 그 값을 당하지 못하리니
귀한 청옥수나 남보석으로도
그 값을 당하지 못하겠고

진주와 벽옥으로도 비길 수 없나니
보석과 바꿀 수 없도다.
지혜의 값은 산호보다 귀하구나
그런즉 지혜는 어디서 오며
명철이 머무는 곳은 어디인고

하나님이 그 길을 아시며
있는 곳을 아시나니
이는 그가 온 천하를 살피시며
바람의 무게를 정하시며
사람에게 말씀하셨도다
“보라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
주를 경외함이
모든 지혜의 시작이로다.

지혜를 가진 자는
사랑가운데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죄를 버릴지니라.”

2011년 9월 26일 월요일

그분이 하늘의 창들을 열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의 기도에 넘치도록 응답하시기를 좋아하신다는 것을 증명하는 약속들로 가득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익숙한 약속들 중 하나는 에베소서 3장 20절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모두 잘 알고 있지만 우리 중에서 이것을 믿는 것처럼 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상상 조차 못할 만큼 우리에게 넘치게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보잘것없는 요청이 아니라 그분의 부요와 능력에 따라 우리에게 응답하기 원하십니다.

성경은 그분이 우리에게 풍성하게 응답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누가복음 6:38).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고린도전서 2:9-10).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베드로후서 1:4).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디모데전서 6:17).

하나님은 실제로 위대한 것들을 구하라고 우리에게 부탁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우리 왕”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하지만 우리 왕의 위대함에 걸맞는 큰 규모의 기도를 드립니까? 왕은 자신의 신하들을 돌볼 책임이 있고 그의 백성은 왕이 그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갖고 있으며 풍성하게 공급할 것이라고 믿으며 큰 규모로 요구함으로써 왕을 명예롭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은 하나님을 “왕”이라고 부르면서 그분이 자신의 백성 중 하나를 계속 궁핍하게 내버려 둔다고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의 보잘것없는 요청으로 하나님을 당황스럽게 만든 적이 있습니까?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라기 3:10).

2011년 9월 23일 금요일

완전한 승리

“암몬 자손이 또 요단을 건너서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과 싸우므로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사사기 10:9).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고치기 위해 암몬 자손을 쓰셨습니다(사사기 10:6-8 참조). 이제 그들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향해 행진해 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당황하고 낙심하여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 우리를 건져내옵소서”(사사기 10:15).

이 백성은 너무도 자신들의 죄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구해달라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하나님께 요청할 생각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가장 단순한 기도였습니다. “주님, 이번 한 번만 우리를 구원해 주십시오! 우리 원수에게 패하거나 침략당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그들은 한 번의 승리를 구했으나 하나님은 마음에 그 보다 더한 것을 생각하고 계셨고 그들의 기도를 강력하게 넘치게 응답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보호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우세하였습니다! 그들은 암몬 족속을 완벽히 진압했습니다!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매우 크게 무찌르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사사기 11:32-33).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암몬 족속을 무찌를 용기와 작전을주셨습니다! 그들은 그 때로부터 암몬족속을 진압하고 다시는 그들 때문에 고통당하지 않았습니다! 완전한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바로 오늘도 하나님은 이처럼 그분의 백성에게 넘치게 응답해주기 원하십니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이 전투에서 한 번만 이기게 해주세요.” 그러나 주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십니다. “내가 이기게 하겠고 더 많은 것들이 너를 위해 기다리고 있다. 나는 네 원수를 진압하기 원하지만 한 번에 한 번씩 승리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나는 네가 완전한 승리를 하기 원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분은 당신에게 단순히 승리하는 능력이 아니라 모든 원수를 진압하는 능력을 주기 원하십니다. 당신이 단순히 죄를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정복자보다 더 나은 것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단순히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 더 풍성한 생명을. 단순히 기쁨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이루 말할 수 없고 영광으로 가득 찬 기쁨을. 단순히 하루, 한 주일, 한 달 동안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전 평생 동안 해방되기를!

2011년 9월 22일 목요일

하나님은 기도에 넘치게 응답하십니다!

교회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십니다!”입니다. 하지만 이는 절반의 사실에 불과합니다. 온전한 사실은 “하나님은 기도에 넘치게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에게 예언했습니다. “너희는 타락했으나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이다”(호세아 14:1참조).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호세아 14:2).

이스라엘의 기도는 단순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구한 바는 그들의 죄를 제거하시고 은혜로 그들을 받아주소서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주여 긍휼히 여기소서!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당신의 은혜 안으로 다시 받아주소서.” 하나님은 그들을 정결케 하시고 은혜로 받아들이셨을 뿐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복들을 더하셨습니다!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그의 가지는 퍼지며 그의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의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그들은 곡식 같이 풍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호세아 14:4-7).

하늘의 이슬(14:5)은 주님의 임재입니다. 이제까지는 하나님이 은총을 거두셨기 때문에 기근이 있었고 모든 것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진정한 회개와 마음으로부터의 기도로 인해 하나님은 사방에서 생명이 솟아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용서받을 뿐 아니라 또한 부흥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가지가 퍼지며 번성할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구한 것은 자비와 용서 그리고 용납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늘의 창들을 여시고 그들이 감히 바라지도 못했던 복들을 그들에게 퍼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대규모로 넘치게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도 동일하게 행하셨습니다! 당신이 회개했을 때, 하나님께 당신이 구한 것은 정결한 마음, 용서와 평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얼마나 넘치게 당신에게 응답하셨는지 보십시오. 그분은 당신에게 예수로 굶주린 심령과 갈증을 주셨습니다! 당신을 맹렬히 격노한 마귀로부터 보호하셨고 당신의 영혼에 소망과 즐거움, 기쁨이 홍수처럼 밀려오게 하셨습니다!

당신은 다만 구원받고 정결케 되기를 구했으나 하나님은 당신에게 복위에 복을 부어주셨습니다! 당신에게 넘치게 응답하셨습니다!

2011년 9월 21일 수요일

야곱은 주님과 겨루었습니다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우리의 싸움 상대가 결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절대로 직장동료나, 이웃, 또는 아직 구원받지 못한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문제를 해결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당신이 그분 앞에서 올바르면 -그리스도의 피로 뿌림 받고 삶에서 죄를 짓지 않으며 기도에 승리하면-모든 지옥의 귀신들이 하나님이 행하기 원하시는 일에 흠집을 낼 수 없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이처럼 거룩한 힘을 갖기 원하십니다.

호세아는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유다[그의 백성]와 논쟁하시고”(호세아 12:2). 하나님이 그분의 교회와 논쟁하실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영적 게으름입니다! 우리는 기적들, 축복들, 구원을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바랍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 중 어느 누가 야곱처럼 밤새워 기도하고, 겨루고, 싸우며, 울며 하나님께 부르짖습니까? 누가 거룩함과 순결, 그리스도를 닮기 원해서 실마리가 보일 때 까지 기꺼이 하나님과 함께 홀로 떨어져 있으려고 합니까? 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매진하여 모든 습관과, 모든 정욕으로부터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하나님이 모든 결박을 깨뜨려 주실 때까지 하나님께 부르짖고, 싸우며 겨룹니까?

호세아는 이스라엘에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원하는 것은 번영과 안전이 전부이다! 너희는 확고한 태도를 취하려 하지 않는다.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원하는 것이 아니라 네 자신의 기쁨을 위해 살기 원한다!”

야곱은 태어나는 날부터 투사였습니다. 그는 힘에서 우세했고(창세기 25:26 참조) 당신과 나도 그래야만 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힘을 소유하고 있으나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골로새서 1:11).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에베소서 3:16).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이 우리가 그분을 진정으로 구하는 것을 보실 때 까지 하나님이 그분의 몸을 위해 예비하신 것을 결코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야고보서 5:1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므로 당신이 그분을 붙들기 원하십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 있으니 원한다면 와서 가져라!” 그분은 당신을 그분의 군대에 합당한 강한 군사로 만들기 원하십니다!

2011년 9월 20일 화요일

하나님은 내 편이시라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시편 57:2).

행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실족하지 않도록 나를 능히 구원하시고,
모든 재난을 통과하는 동안 나를 붙드시는.
내가 두려울 때 그를 신뢰할 것이라.
그가 내 영혼을 평강가운데
나를 치는 전쟁에서 구원하실 것이라.

내가 하나님을 부를 것이라
그러면 그가 나를 구하시리라.
그가 내 눈물을 병에 담으시며
내 모든 발자국에 주목하시리라.
내가 그에게 부르짖을 때
내 원수가 물러갈 것이라
하나님이 내 편이시므로.
내가 그에게 신뢰를 둘 것이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내 마음이 확정되었도다.
내가 노래하고 찬송하리라;
내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그가 나를 불과 홍수에서 건져
소망의 피난처로 인도하시리라.
그의 얼굴을 내게 비추시며
매일 은총을 베푸시리라.
그의 얼굴을 숨기지 않으시고
신속히 내 기도를 들으시리라.
결코 나를 혼돈에 두지 않으시리라
나를 구원하시리라 약속하셨으므로-
하나님이 내 편이시므로.

2011년 9월 19일 월요일

야곱이 위기에 빠졌습니다 - 또 다시!

야곱이 위기에 빠졌습니다 - 또 다시-이제 그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야곱이...이에............. 이르되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창세기 35:1-3).

벧엘은 우리가 곤궁할 때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이스라엘과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이것입니다. 야곱이 위험이나 문제에 처했을 때- 사태가 불길하고 소망이 없을 때- 그는 어디로 가야하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너는 내가 어디에서 너에게 말할 지, 어디서 네가 내 음성을 들을지 알고 있다. 벧엘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만났던 제단으로 가라. 내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너의 집에서 모든 우상숭배를 제거하라!”

야곱은 그의 아들들을 불러 모든 우상들을 가져오게 한 다음 상수리 나무아래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가족들을 벧엘로 인도하여 그곳에서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다시금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창세기 35:9-13 참조).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창세기 35:5). 사면 고을들이 이 작은 유대인 지파 야곱을 두려워하였습니다 - 하나님이 그들에게 두려움을 넣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여전히 벧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벧엘로 올라가라. 내가 너를 거기서 만날 것이다! 문제가 생기거나 곤궁에 처할 때마다 제단으로 달려가라! 부르짖고 나와 함께 홀로 떨어져 있어라!” 그분은 기도의 은밀한 골방에서 우리가 그분을 만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야곱은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확실한 말씀을 듣기 위해 어디로 가야하는 지 알았습니다. 그는 벧엘로- 제단으로 갔습니다! 은밀한 장소에서 하나님과 홀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고 믿습니다. 나는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우리가 무릎 꿇을 때 일어납니다. 이곳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시겠다고 말씀하신 곳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당신이 모든 환경에서 당신의 눈을 떼라고 부르십니다. 당신의 현재 상황으로 무엇이든 판단하지 마십시오. 한꺼번에 파악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두려움이 당신을 절망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기도가운데서 당신을 만나실 것입니다!

2011년 9월 16일 금요일

싸울 준비가 안됩

어떤 권투 트레이너가 자신이 담당한 선수를 외딴 훈련 캠프에 데리고 가서 전 훈련기간을 큰 시합에 대비해 그의 사기를 높이는 데 소비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링사이드에서 너와 함께 있을거야- 네 옆을 절대로 떠나지 않아. 여기 역대 위대한 선수들의 목록이 있으니 그들의 모든 동작을 연구해봐. 고된 연습으로 고생할 필요 없어. 네가 승자라고 내가 말했잖아, 그럼 된 거야! 링에 올라서서 상대편 괴물 선수를 어떻게 이길 수 있는 지 도표를 보여줄게!”

이런 트레이너가 있을까요? 너무나도 어리석지요! 좋은 트레이너는 어떻게 할까요? 그의 능력에 닿는 한 제일 훌륭한 권투선수를 찾아내어 그를 자신이 훈련하는 선수와 함께 링에 오르게 하여 둘이 힘껏 겨루게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얼마나 많은 크리스천들이 시험을 받거나 훈련받은 일도 없이 자신을 용사라고 부릅니까? 우리는 이 나라의 수많은 기도의 용사에 대해 너무도 많이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들 거의 대부분은 전투에 임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훈련을 받지 않았고 싸울 준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최근 나는 주님께 왜 그리도 많은 수의 진정한 크리스천들이 너무 짐스럽고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심한 고난이어야 합니까? 나는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계에 이르도록 시험을 당합니까?”

하나님은 사탄이 마지막 전투의 때에 놓여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지옥의 모든 권세를 이길 잘 훈련된 용사들이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그분은 그분의 남은 자들 가운데 신속한 작업을 하고 계십니다 - 이것은 위기 훈련이라 불립니다!

이 고난당하고 심한 시험을 받은 성도들은 그분의 종말 군대의 대장들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 안에 성령의 싸움을 부어주시고 하나님과 겨루었으므로 시험과 시련을 당한 용사들을 양성하고 계십니다. 그들이 고난을 당할수록, 시련이 극심할수록, 하나님은 더욱 위대한 일을 그들에게 하라고 맡기실 것입니다!

이러한 훈련은 육체적 훈련뿐만 아니라 영적 훈련을 요합니다. 야곱은 그의 전신을, 자신의 모든 인간적인 능력을 전투에 던졌습니다. 그의 안에 투쟁정신이 솟구쳤고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호세아 12:3).

이 구절은 기도로 승리하기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커다란 의미가 있습니다. 야곱이 “힘으로” 겨루어 이겼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종말의 시대에 이기려고 한다면, 당신의 전신과 모든 힘을 쏟아 부어야 할 것입니다!

2011년 9월 15일 목요일

싸우는 태세로

에서는 모태에서 먼저 나왔습니다 - 이 아기는 털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털이 많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의 쌍둥이, 야곱은 아직 태 안에 있으면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습니다. 에서가 발꿈치를 작은 손에 붙들린 채 세상에 나온 것을 보았을 때 산파가 얼마나 놀랐을까요!

“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호세아 12:3-4).

야곱에 대한 이 짧은 구절에서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과 어떻게 겨루어 이기는지 요약해 주었습니다.

호세아의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자신을 위해 하나님이 갖고 계신 모든 것에 대해 욕심을 내는 사람이 여기 있다!”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갈망하며 싸우는 태세로 태에서 나왔습니다! 이 아이에게는 어떤 경건한 본능이 있었습니다. 마치 그는 이렇게 말하는듯 하였습니다. “형이 하나님의 충만함을 원치 않는다면, 내가 원해. 길을 비켜 줘! 하나님의 축복에 관한 한 뒤지지 않을거야!”

장자 권과 야곱의 전 생애를 통해 그가 바라던 축복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축복을 상징합니다! 그렇지만 야곱이 추구하던 것은 아버지 재산에 대한 곱절의 몫도 아니요 땅에 대한 약속도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야곱은 더 이상의 것을 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메시아의 족보에 오를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적인 축복을 원했습니다. 단지 지파의 제사장 일 뿐 아니라 또한 남들을 축복할 수 있는 제사장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창세기 27장 전체를 통해 그리고 이삭이 야곱에게 손을 얹고 그를 축복할 때: “..............내게 축복하소서” (창세기 27:10) 이러한 제사장적 사역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손이 그에게 임하시는 높은 명예이며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바로 이 말세에 신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들의 삶을 영위하는 것, 집을 소유하고, 좋은 차를 타는 것만 염려하지 않는 백성을 일으키기 원하십니다. 그분은 스스로를 위해 소비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에 그분께 쓰임 받으려고 하나님의 축복에 욕심내는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2011년 9월 14일 수요일

새롭게 기름 붓는 능력

하나님은 당신이 마귀로부터 방어되도록 만들기 위해 당신에게 시련을 허락하십니다. 이것은 당신이 다시는 공격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꿋꿋이 견뎌낼 수 있도록 훈련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모두 당신이 더욱 위대한 봉사, 훌륭한 기름 부음 그리고 그분의 나라를 위해 지경을 넓혀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그분이 당신을 준비시키는 과정입니다.

더 나아가, 주님은 마귀의 궤계에 대항하여 당신을 강하게 하려고 하시는 중입니다. 그분은 마귀를 직면했었고, 마귀에 대항하여 강해졌으며 그의 계략을 알고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신자들의 일단을 양성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왜 이것을 겪고 있는 지 이해하면 네가 잃어버렸던 모든 터전을 되찾게 될 것이다. 네가 다시 통제하게 될 것이다 - 성령의 능력으로 인해!”

엘리야의 시련이 끝나게 되면 (열왕기 상 19장 참조) 그는 다시는 도망치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방향 감각이 생기고 그의 영은 자신감을 되찾았습니다. 아시다시피, 하나님은 왕들과, 지도자들과 선지자들을 세우기 위해 그를 여러 나라로 보내실 참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네 길을 돌이켜...가서....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열왕기상 19:15-16). 엘리야는 새롭게 기름 붓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다시금 그가 통제하게 된 것입니다!

“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19절). 엘리야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동굴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강물 같은 눈물을 흘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단순히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귀가 당신에게 행사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지배력은 두려움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믿음 안에서 두려움을 떨어버려야만 합니다! 이렇게 말해야만 합니다. “나는 침몰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나에게 새로운 기름부음을 주실 것이다 - 그분이 나를 사용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당신과 끝난 것이 아니라 그분이 더 나은 일을 위해 당신을 가르치시고 훈련하신다는 것을 믿습니까? 그분은 실망의 동굴 안에 있는 당신에게 말씀하기 원하십니다. 당신에게 무엇을 할 지, 어디로 갈 지 말씀하기 원하십니다 - 그리고 당신을 데리고 나오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절망에서 일어나 두려움과 우울의 속박을 떨어버리십시오! 당신의 동굴을 떠나십시오. 당신이 일어나 걸어 나오는 순간, 기름 부음이 흐름을 발견할 것입니다!

2011년 9월 13일 화요일

혁명의 언어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잠언 12:18).

혁명가들은
엄청나고 과장된 말을 합니다.
칼로 찌름 같이,
그들은 혀로 후려 칩니다
기존의 시대 조류를.
악인은 악을 파내고
입에는 타오르는 불,
끌 수 없는 지옥의 불이 있습니다.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말미암아 그물에 걸립니다.
입을 지키는 자는
자기 생명을 보전합니다.
그러나 입을 크게 벌리는 자는
파멸을 맞을 것입니다.
의인은 거짓 입술과
치료하지 못하는 입술을 미워합니다.
악인의 등불은 꺼지게 되고
그의 입술은 닫힐 것입니다;
악한 언어는
폐해지고
슬기로운 자의 혀는
안녕을 발할 것입니다.

2011년 9월 12일 월요일

정결하고 흠 없는 삶의 능력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흠 없이 살기로 작정할 때, 즉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식으로 살 때,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당신을 두려워하고 아울러 경멸하게 될 것입니다. 미온적이거나 타협하는 크리스천들은 당신의 삶으로 인해 틀림없이 불편해지고 불쾌하게 느낄 것입니다.

사무엘상에서 이것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다윗이 그의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 사울은 다윗이 크게 지혜롭게 행함을 보고 그를 두려워하였으나” (사무엘상 18:12-15).

다윗의 흠 없는 행동은 사울의 마음에 두려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울은 다윗의 주위에 있을 때마다 자기가 하나님의 은총과 사람들의 존경을 누렸던 시기를 기억했습니다. 그러나 불순종, 시기심, 자존심과 자기 의지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했던 모든 능력을 댓가로 지불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모든 존경도 빼앗겼습니다.

이제, 사울은 자신 보다 경험도 적고 아마 언변도 더 조리 있지 못하고 더 어리지만 거룩의 능력과 고결함이 배어나오는 사람을 직면해야 했습니다. 그는 마음이 순전하고 성령 충만했었으며 사울은 그를 두려워했습니다!

다윗을 두려워했던 사람이 이방 우상을 섬기던 사람이 아니었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렇지 않습니다. 사울은 성령의 능력을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한 때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았었고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용사였었습니다!

다윗은 단순히 정결한 삶을 살고 있었고 하나님은 은총을 그에게 퍼부으셨습니다!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니 그가 자기들 앞에 출입하기 때문이었더라” (사무엘상 18:16).

사울은 다윗 주변에 있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사울이 그를 자기 곁에서 떠나게 하고” (사무엘상 18:13). 애석하게도, 사울은 오늘날 타협하는 교회, 타협하고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상실한 크리스천들을 상징합니다. 그는 한 때 성령으로 충만했고 세례 받고 하나님을 위하여 열정이 불타올랐으나 자신들의 불순종, 자존심과 정욕으로 인해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 이전에 알았던 모든 것을 빼앗긴 신자의 유형입니다.

타협한 크리스천들에게 거룩하고 흠 없는 삶보다 더 두려운 것은 없습니다. 당신의 삶이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거룩함에 맞추어 질수록 당신은 타락한 신자들에게 더욱 더 혐오감을 줄 것입니다.

2011년 9월 9일 금요일

하나님의 은총가운데 살기

하나님은 흠 없는 신자에게 놀라운 은총을 약속하십니다.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잠언 3:1-4). 하나님은 만일 당신이 그분 앞에서 흠 없이 살기로 목표를 정하면 그분의 은총가운데 살고 그분을 기쁘시게 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또한 능력을 포함합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데살로니가전서 1:5). 그분의 은총은 당신의 모든 언행에 성령의 능력을 부여하십니다. 당신의 말은 성령의 능력을 지닐 것이므로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들 성령에 힘입은 말들이 위대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1:6).

바울의 말들이 왜 그토록 능력이 있고 효력이 있었습니까? 그의 말에 의하면 “그러므로 [우리가].......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7절). 바울의 설교나 그의 기도가 사람들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의 본받을 만한 삶이 그리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울 속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은총을 베풀 만큼 정결한 마음을 발견하셨습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은총은 또한 사람들 가운데서 존경을 받도록 만드셨습니다. 다윗의 기록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모든 신하보다 더 지혜롭게 행하매 이에 그의 이름이 심히 귀하게 되니라” (사무엘상 18:30).

다른 사람들 앞에서 거룩하게 삶으로써 예수님의 이름을 보존하는 사람은 그들 앞에서 귀한 이름을 얻게 될 것입니다 - 하나님 그분이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어떤 크리스천들은 말합니다. “나는 내 이름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지 상관없습니다. 나는 알려지지 않고 무명이기를 바랍니다. 주님만이 모든 영광을 받으십시오.” 이것은 겸손하게 들리지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잠언 22:1). 하나님은 의인에게 귀한 이름을 주셔서 그들이 그분을 더욱 넘치도록 영화롭게 하는 데 사용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2011년 9월 8일 목요일

흠 없는 삶이란?

사도 바울에 의하면 흠 없는 신자의 행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흠 없는 것은 어떤 종류의 거짓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데살로니가전서 2:3). 흠 없는 크리스천은 그의 심령 안에 어떤 거짓도 없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설교하고 한편 다른 삶을 사는 사기꾼이 아니다. 내 행위는 다 알려져 있다!”

2. 흠 없는 것은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만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권면은......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데살로니가전서 2:3).

여기서 바울이 강조하는 점은 육욕 또는 정욕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부정한 말은 한 마디로 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내 대화는 순결하고 깨끗한 마음에서 나온다.” 바울은 자신의 몸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육적인 열정이 그를 몰고 가지 않았고 정욕이나 음행의 영이 그의 마음을 차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자유인이었습니다!

더러운 농담을 하거나 성적인 암시를 하거나 추파를 던지는 눈을 가진 신도는 아직 마음의 정결함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앞에서 흠 없이 살려거든 정결한 귀와 정결한 마음과 정결한 혀를 가져야만 한다!”

3. 흠 없는 것은 잘못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에서 난 것이 아니요” (3절).

잘못이나 부정이 없는 크리스천은 지능적이거나 교활하거나 조작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는 감춰진 계획이 없고 전적으로 공개적이며 정직합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나는 너희를 조종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해 들이지 않았다. 또한 교활한 말을 사용하거나 너희의 감정을 조작하려하지 않았다. 나는 복음을 직선적으로 전했다!”

바울은 결코 말장난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도록 하려고 심리학을 사용하지도 않았습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2:7). 그러나 죄가 들어왔을 때 그는 하늘에서 치는 우렛소리로 꾸짖었습니다! 어느 누구의 승인을 구하거나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전심으로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5-6절).

바울은 하나님이 그를 주시하고 계시며 그의 동기를 체크하고 계신다는 것을 항상 마음에 두었습니다. “악은 어떤 모양” (데살로니가전서 5:22) 이라도 끊어버리고 마치 예수님이 한 시간 안에 오실 것처럼 살았습니다!

2011년 9월 7일 수요일

흠 없는 삶의 능력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데살로니가전서 2:10).

이것은 당신의 거룩함에 대해 하나님을 증인으로 부르는 강력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주저 없이 데살로니가에 있는 신자들에게 자랑했습니다. “나의 동역자들과 나는 너희와 하나님 앞에서 흠 없이 살았다. 우리의 행동은 의로웠고 정결했다. 하나님이 우리의 거룩한 행위에 대해 증인이시고 너희도 또한 증인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이 행한 것을 너희가 보았다!”

바울은 유능한 설교자였고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비결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살아있는 영혼, 모든 정사 앞에 담대히 서서 증거 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매일 거룩하신 하나님의 눈길 아래 살고 있다. 나는 그분의 거룩하신 눈이 나를 보시고 있는 것처럼 행한다. 그리고 너희는 모두 나의 흠 없는 삶의 증인들이다!”

이 사도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데 있어 그가 가졌던 동일한 능력을 모든 신자가 갖기를 바랐습니다. 그는 밤낮으로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이 세워지기를 기도했습니다.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데살로니가전서 3:13).

예수님께 나아왔던 부자 청년 지도자는 어렸을 때부터 바르게 행해왔고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과 존중을 받았습니다(마태복음 19:16-20 참조). 그러나 부족한 점이 있었고 바로 그 한 가지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의 모든 언행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동일한 목적이 작용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결코 흠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데살로니가후서 1:12).

이것이 바울이 흠 없는 삶을 살도록 만든 원동력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영광과 이름을 사모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이 기초위에 세워져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의 선함은 더러운 걸레와 같기 때문입니다! 흠 없는 삶을 특징짓는 것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존숭하고자 타오르는 갈망입니다.

2011년 9월 6일 화요일

두려움을 이기는 능력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시편 56:3).

나는 두렵습니다.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닥쳐옵니다;
죽음의 공포가 나를 덮쳤습니다.

두렵습니다
내 안에 선보다 악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의보다는 거짓이,
강함 대신 약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설익은 감람나무 같아서
열매가 없습니다.
오, 만일 내게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내가 나의 피난처로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리라.

두렵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던지시고
이 푸른 나무를 저주하실까봐,
그분이 열매를 찾으러 오셨으나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두렵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신뢰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그분은 나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나를 대적하는 자 많더니
나를 치는 전쟁에서
그가 내 생명을 구원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

그분이 내 눈물을 병에 담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편이십니다.
그분이 내 발이 실족치 않게 지키시며
그분 앞에서 행하게 하실 것입니다

산 자의 빛가운데서.

2011년 9월 5일 월요일

하나님은 왜 다윗의 기도를 응답하셨는가?

다윗은 우리에게 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응답하셨는지 말해줍니다. “나를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나를 구원하셨도다”(시편 18:19).

여기서 기뻐하시므로(delighted) 라는 말은 “좋아하다 또는 기뻐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나는 하나님께 즐거움을 드린다. 단순히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시기 때문에 나를 구원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러분, 그분은 또한 당신과 나도 기뻐하십니다!

알다시피, 주님을 신뢰하는 우리는 그분의 거룩한 시온, 그분의 거룩한 남은 자입니다. 남은 자라는 말은 간략하게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을 부르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나태한 기독교도로부터 부름 받아 온전히 예수님께 헌신한 자들입니다.

시온의 선택받은 자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다시는 너를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쀼ㄹ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이사야 62:3-4).

왜 하나님은 나를 구하러 오시며 그토록 기꺼이 나를 구원하실까요? 왜냐하면 그분이 나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분께 즐거움이며 그분은 나와 나누는 우정을 즐기십니다!

어떤 귀한 젊은이가 내게 말했습니다. “나는 한 번도 진정으로 주님께 인정받았다고 확신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합당하다고 느낀 적이 거의 없습니다-그저 자격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선행을 함으로써 그분의 노를 가라앉히려고 계속 시도하곤 합니다.”

너무도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렇게 느낍니다! 수년 간 나는 주님 안에서 확신을 가져본 적이 없는 오래된 크리스천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격이 없고, 깨끗지 않고,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이라는 것을 결코 믿지 못하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항상 무언가 그들 생애에서 이루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분야에서 실패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보려고 다른 영역에서 세 가지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래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당신이 예수님께 나올 때 당신은 그분께 어떤 것도 보상해 드릴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이 당신에게 모든 것을 보상해 주십니다. 그분이 바로 그런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말씀합니다.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요엘 2:25).

당신의 실패와 단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당신에게 보상해 주십니다!

2011년 9월 2일 금요일

하나님은 기꺼이 나를 도우러 오실까요?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기꺼이 신속하게 오실 것을 믿습니까?

이 부분에서 많은 크리스천들이 실패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갖고 계심을 압니다. 그분이 돌보시는 것을 인정합니다만 그들을 돕기 위해 기꺼이 신속하게 오시리라는 확신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부르짖음에 즉시 응답하지 않으실 때 그들은 스스로 안에서 장애물과 내부의 막힌 것들을 상상합니다. 주님이 기꺼이 그들을 돕기 위해 오실 수 없는 온갖 이유를 생각해 냅니다.

갈멜 산에서 엘리야는 이방신 바알이 그 자녀들을 방치해 둔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들이...........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이르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열왕기상 18:26).

“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더라” (열왕기상 18:27-29).

이 말들을 다시 들어보십시오. “아무 소리도 없고...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더라.”

우리는 바로 이처럼 하나님이 자녀를 방치한다고 비난합니다. 우리는 기도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나 그분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다고 믿지 않고 우리 마음대로 행동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존전에서 떠나고, 교회를 떠나고 골방에서 떠납니다-그분이 돌아보시기는 하는지 의아해 하며!

주님은 항상 도움을 청하는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응답하실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나는 다윗이 그분에 대해 한 말씀을 사랑합니다: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시편 86:5, 7).

다윗은 말했습니다. “내가 그분께 부르짖는 바로 그 순간 나의 하나님은 기꺼이 내게 응답하실 준비가 되어있다! 나는 멈춰서 내 문제들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로인해 슬퍼하거나 해결해 보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내 주님께 가서 ‘도와주십시오,’라고 부르짖는다.”

어린아이 같은 믿음으로 발하는 당신의 상한 심령의 부르짖음 -그것이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시는 것, 전부입니다.

2011년 9월 1일 목요일

하나님은 내가 겪고 있는 일을 아실까요- 돌아보고 계실까요?

하나님이 물으십니다. “너는 내가 지금 현재 네가 견뎌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안다고 진정으로 믿느냐?” 이글을 읽는 시점에 당신은 하나님께 당신을 위해 역사해 주실 것을 구하는 어떤 일을 겪고 있는 중일 수 있습니다. 당신의 문제꺼리는 성격 상 하나님의 응답을 요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마치 아버지가 어린 자녀를 대하듯 당신의 모든 행동을 지켜보신다고 믿습니까? 당신의 모든 생각을 그분이 해석하고 계신다고 진심으로 알고 있습니까? 그분이 모든 눈물을 병에 담고 모든 한숨을 듣고 계시며 당신 위를 감도시며 사랑하시고 당신을 돌보시며 일하고 계시는 것을 믿습니까?

성경은 그분이 바로 그렇게 일하신다고 묘사합니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시편 34:15, 17).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역대하 16:9).

당신은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완전하게 당신의 모든 생각, 슬픔, 고통, 시련, 경제적 부담, 가정의 문제를 아시며 당신이 그 모든 것을 통과해 나오도록 보살피기 원하신다는 것을 믿습니까?

시편기자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시편 103:13).

여기서 긍휼히 여긴다는 말의 히브리 단어는 “귀여워하다, 껴안다, 사랑하다, 동정심을 갖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은 주님이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품에 껴안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팔로 두르시고 뺨을 토닥이시고 당신을 안으십니다. 그분은 말씀합니다. “나는 너의 생각, 염려, 네가 직면하는 모든 전투를 알고 돌보고 있다!” 당신이 어떤 일을 겪고 있든지, 당신이 어떻게 느끼든지, 주님은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당신이 연약하다고 느끼는 바로 그 감정을 느끼십니다. 당신의 모든 동작 - 당신의 모든 언행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당신에게 진노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을 소중하게 여기시고 껴안으시며 사랑하시는 생각을 하고 계십니다. 당신이 어떤 식으로 느끼는지 아시며 돌아보십니다! 그분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 너는 큰 시련을 겪고 있는 중이다. 시험 당하며 까불림을 당하는 중이다. 그러나 너는 나의 자녀이고 나는 절대로 원수가 너를 함정에 빠뜨리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네가 통과해 나오도록 인도할 것이다!”

2011년 8월 31일 수요일

하나님은 내 모든 질문에 답이 있으신가요?

자신의 기도생활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원하는 신자는 누구나 이 질문을 해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을 갖고 계신가? 답을 찾기 위해 다른 곳으로 가야할까?”

이 질문은 물어 볼 필요조차 없는 것처럼 단순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크리스천들이 즉시 “네, 물론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내가 필요한 전부를 갖고 계신다고 믿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완전히 확신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에 관한 찬송을 부르고 설교합니다. 하지만 위기가 닥치고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는 듯 보일 때 우리는 그분이 우리가 필요한 것을 갖고 계신다고 실제로 믿지 않습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립보서 4:19). 주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기 위해 풍요로운 창고를 갖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곤경에 처한 여인은 왜 정의롭게 재판해주기를 요청하며 불의한 재판관을 번거롭게 했을까요? 그 사람만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권세와 권위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누구에게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누가복음 18:1-8 참조).

만일 우리에게 하나님만이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갖고 계신다는 내적 지식이 있었다면 우리는 절대로 헛되이 다른 공급원에게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은 정의롭고 거룩한 재판관이시고 우리가 직면하는 어떤 문제라도 해결하시는 모든 지혜와, 능력과 권위를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이 지속적으로 그들의 원천이요 공급자가 되실 것이므로 그들이 절대로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이스라엘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40년을 보내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다님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신명기 2:7).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에게는 부족함이나 결핍함이 없다. 나는 네가 필요한 모든 것을 갖고 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신명기 8:7-10, 12).

오늘날 주님은 우리를 약속의 땅, 즉 그리스도 안으로 인도해 들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거처이십니다. 그분은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나타나신 분입니다.

2011년 8월 30일 화요일

그분의 능력의 우렛소리

“보라 이런 것들은 그의 행사의 단편일 뿐이요 우리가 그에게서 들은 것도 속삭이는 소리일 뿐이니 그의 큰 능력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헤아리랴”(욥기 26:14).

사람은 능력이 필요합니다
능력이 없는 자를 돕기 위해,
힘없는 자들을 강하게 하기위해,
지혜 없는 자에게 조언하기 위해
사물의 진면목을 선포하기 위해
죽은 영들을 새롭게 하기 위해
지옥의 벗은 멸망을 가리기 위해.
하나님은 모든 능력이 있습니다.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시며
허공에
우주를 펼치시기 위해.
수면에 경계를 그으시며
빽빽한 구름으로 물을 싸십니다.
능력으로 바다를 가르시고
교만한 자를 치십니다.
그의 입김으로 하늘을 맑게 하십니다.
날렵한 뱀도 지으셨으나,
이것들은 그분의 능력을 일별한 것뿐입니다-
들은 것도 그분에 대한 단편일 뿐입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들에게 능력을 약속하셨습니다.
이후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 안에 우렛소리가 있을 것입니다-
불공평, 부도덕과 범죄에
대항하는 우렛소리
위선과 사소한 일에 대한 압제에
대항하는 우렛소리
물질주의와 증오에
대항하는 우렛소리
그러나 한결 더 깊이,
사랑
그것이 능력의 우렛소리입니다.

2011년 8월 29일 월요일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분의 손바닥에 새겨져 있습니다

다음은 내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의 하나입니다.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이사야 49“:13-16).

하나님은 내가 바로 그분의 손바닥에 새겨져 있다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어로 “새겨졌다(tattooed)”는 말은 제거할 수 없는, 지울 수 없는 이란 뜻입니다. 그분은 손을 내밀 때 마다 나를 기억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에게 확신을 주기 원합니다: 당신은 시련과 고난을 통과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당신은 주님 안에 있기를 소원하지만 현실은 거리가 멀지 모릅니다. 하지만 다른 어떤 것보다도 한 가지는 당신이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그분께 기쁨입니다!

나는 내 심령으로 확신과 지식을 가지고 당신에게 글을 씁니다. 비록 내가 아직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그분은 나를 그분의 남은 자 중 일부분으로 만드셨습니다. 전심으로 나는 내가 왕관, 그분의 손 안의 왕관이고, 그분의 영혼의 기쁨인 것을 믿습니다. 그분은 나에게 진노하지 않으십니다-나를 기뻐하십니다!

이 경이로운 약속을 들어 보십시오:

“내가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은 주께서 나의 고난을 보시고 환난 중에 있는 내 영혼을 아셨으며 나를 원수의 수중에 가두지 아니하셨고 내 발을 넓은 곳에 세우셨음이니이다...........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시편 31:7-8, 19).

하나님은 당신이 자유롭고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셨습니다. 당신의 상황을 보시고, 그분은 돌아보십니다. 당신이 그분을 부를 때 그분은 당신을 껴안고 그 순간 당신을 돕기 위해 나아오실 준비가 되어있으십니다.

2011년 8월 26일 금요일

무한 출입권

매 4년 마다 1월 달에 미국에서는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지위”라고 불리는 대통령이 취임합니다. 그의 서명은 곧 법입니다. 그는 세계에서 제일 막강한 군대를 통솔합니다. 그리고 단추만 하나 누르면 전 세계를 파멸로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당신과 나에게 주신 권세에 비교하면 그가 장악하고 있는 권력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 존전에 출입할 절대적 권리가 있습니다-뿐만 아니라 그분이 우리에게 오시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브리서 10:19-22).

이 출입권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야 유효하게 되었습니다. 성전의 휘장이 둘로 갈라진 그 순간에 발효한 것입니다. 이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의미는 인간은 들어갈 수 있고 하나님은 나오실 수 있어, 그분이 우리를 만나시게 된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담력이라는 말은 “터놓고 꾸밈없이 공표”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공표”는 마귀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옥에 있는 모든 귀신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나는 하나님 존전에 들어가 그분께 말씀드릴 수 있는 권리가 있고-그분도 나에게 말씀하신다!”

당신은 이런 권리, 즉 하나님이 기꺼이 나오셔서 당신을 만나시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믿습니까? 온전한 믿음으로 가득 찬 심령으로 그분께 더 가까이 가도록 합시다! 우리는 새나 염소 또는 소의 피를 의지하여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 예수의 피를 의지하여 나아갑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브리서 9:12-14).

자신의 자녀가 주뼛거리지 않고 담력을 가지고 자기에게 나아오는 것보다 더욱 하나님의 마음을 감격하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나는 이곳에 올 권리가 있다. 내 심령이 나를 정죄할 지라도 하나님은 내 심령보다 위대하시다!”(요한일서 3:20 참조)라고 말하며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2011년 8월 25일 목요일

하나님은 당신에게 말씀하시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마치 당신이 그분과 함께 앉아 식사하고 있는 것처럼 당신에게 말씀하기 원하십니다. 어떤 것이든 모든 문제에 대해 마음과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기 원하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오한계시록 3:20).

이 구절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자주 쓰입니다. 입구를 찾으며 죄인의 심령의 문 앞에 서 계신 예수님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 그리스도는 믿는 자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용을 보면 그리스도가 흰옷(의)이 입혀진 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불로 연단한 금을 사고, 그들의 눈에는 기름이 발라지고(계시를 받음), 사랑을 받으며 책망을 받고 징계를 당하는 자들입니다. (요한계시록 3:15-19 참조). 이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알기 원하는 회개하고 거룩한 백성들입니다!

이 구절에서 20절을 되풀이하여 읽을 때 세 단어가 계속 나를 향해 뛰어 나왔습니다. “문을 열어라! 문을 열어라!” 그러자 하나님의 영이 내 심령에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데이빗, 내가 들려지기를 원하는 만큼 네가 나의 말을 듣지 못하는 이유는 네 심령이 활짝 열고 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이 문은 헌신을 상징합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아직 온전히 이루지 못한 부분 입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기도합니다. “주님, 제가 필요한 것은 약간의 충고, 갈 바를 지시해 주는 몇 마디 말씀이 전부입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상기 시켜주는 것 말입니다. 내가 잘하는지 잘못하는 지만 알려주십시오. 내 앞서가시며 문들을 열어주십시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대답하십니다. “네가 나에게 원하는 것이 지시가 전부라면 나는 너에게 선지자를 보낼 수 있다. 네가 알고자 하는 것이 다만 어디로 가며 무엇을 해야 하는 가라면, 내가 어떤 사람을 보낼 수 있고 너는 그를 통해 모든 것을 여과시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너는 나를 놓치게 된다!”

예수님은 당신과 가까워지고 당신의 감정 깊은 곳, 문을 잠근 당신의 방을 원하십니다. 그분은 당신과 앉아 그분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모두 나누고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말씀하기 원하십니다. 계시록 3장은 이에 대한 멋진 묘사입니다. 사랑과 친밀함, 비밀을 나눔, 부드러운 음성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이 들어오실 때 그분은 양식과 떡을 가지고 오십니다-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을 가지고 오십니다. 당신이 그분을 먹을 때 온전히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2011년 8월 24일 수요일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에베소서 3:17-19).

여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라는 말은 “네 발아래 너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이해하는 깊고 튼튼한 기초를 쌓으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지식이 다른 모든 진리가 그 위에 쌓아올려져야 하는 기초적인 진리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함이 세워져야 할 기초입니다. 하나님을 거룩하게 경외하는 것은 당신이 사소한 잘못을 하다 들켰을 때 그분이 기다렸다는 듯 매를 들 것이라고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반역에 대한 그분의 거룩함을 두려워하는 것이며 빛보다 흑암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어떻게 행하시는 지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죄책감, 두려움과 정죄감 가운데 사는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천부께서는 우리의 죄와 연약함을 위해 죽게 하시려고 그분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당신에 대한 그러한 사랑을 온전히 알고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면 당신은 결코 안정되고 영원한 기초를 갖지 못할 것입니다!

“능히..............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comprehend, KJV)...”(에베소서 3:18-19). 헬라어로 comprehend 는 여기서 “열심히 파악하고 붙들다”라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사도 바울은 당신이 이 진리를 파악하여 당신의 크리스천 신앙생활의 기반이 되도록 하라고 합니다. 당신이 영적인 손을 내밀고 “나는 이 진리를 붙들 것이다!”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당신은 떨어버릴 수 없는 듯 보이는 유혹에 공격당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또는 절대로 기대치에 이르지 못하고 자격이 없다는 생각- 마귀가 당신을 넘어뜨려 하나님을 실망시키도록 만들 것이라는 두려움-을 지고 다닐 수도 있습니다.

오늘이 바로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눈뜨는 날입니다! 당신이 이 메시지를 읽을 때 무언가 당신의 심령 깊은 곳을 두드려 “데이브 형제여, 당신 말이 맞아요. 그게 나예요. 나는 그런 식으로 살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당신이 이 진리를 붙들기를, 그리하여 이 진리가 당신의 눈을 열고 그분과 함께 동행하는 매일의 여정에서 전혀 새로운 기쁨과 평강의 영역에 들어가도록 돕기를 기도합니다.

2011년 8월 23일 화요일

출구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곧은 길이 큰 물에있었으나 주의 발자취를 알 수 없었나이다”(시편77:19).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피할 길을 주시겠다고
유혹으로부터-
바다로 향하는 길,
큰 물속으로 난 통로.
나는 근심하여
심령이 상하였습니다.
피할 길?
바다 속으로?
깊고 큰 물속으로?
난 깊이 생각하고
부지런히 찾았습니다.
깊은 물이 나를 둘러싸고
시련의 바다에서 난 헤엄쳤습니다.
주님은 나를 버리셨나요?
더 이상 총애하지 않으시나요?
그분의 자비가 영원히 사라졌나요?
은혜 베푸시기를 잊으셨나요?
진노하셔서 나를 가두셨나요?
혼돈의 바다 가운데?
그러자, 난 기억했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백성을 양떼처럼 인도하셨던것을
모세의 손으로
큰 물 가운데로.
하나님이여 물들이 주를 보았나이다
물들이 주를 보고 두려워하며 깊음도 진동하였고
순종하여
물들이 갈라졌습니다.
나도 믿음으로 걸으렵니다
큰 물속으로,뒤에서 당신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계속 걷겠습니다.
기억할 것입니다,
어떻게 그가 바다를 갈라
물을 무더기 같이 서게 하셨는지.
난 지나갈 것입니다.
그들과 함께.

2011년 8월 22일 월요일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기

당신이 갈 바를 알기 원한다면 - 그분이 요청하시는 일을 행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마음을 동요하는 말씀, 고생스럽고 거부당하는 임무, 성령의 위로 외에는 아무 편안함도 보증되지 않는 믿음의 삶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그것이 바로 이사야에게 일어났던 일입니다! 이 선지자는 “주여 나를 보내소서.” 자원했고 하나님은 고생스럽고 어려운 임무에 파견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이사야 6:9-10).

이사야가 들었던 말씀은 듣기 좋은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가 미움 받고 인기 없도록 만들 말씀 이었습니다. 주님이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내가 하는 말을 듣기를 거부하는 자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라! 그들의 눈과 귀를 닫아라-그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일을 완수하라!”

당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알기 원한다면 그분이 말씀하시는 모든 것을 기꺼이 들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누가 갈꼬?” 묻기 전에는 절대로 “가라!”고 말씀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은 당신에게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기꺼이 무엇이든지 하며 또 기꺼이 내 방식대로 하겠느냐? 네 생명을 기꺼이 내려놓겠느냐?”라고 물으시며 오십니다.

수 년 전 나의 갈 바에 대해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뉴욕으로 돌아가라.” 그것은 내게 아주 심기가 불편한 말씀이었습니다. 나는 은퇴할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책을 저술하고 장소를 선정하여 설교할 계획이었습니다. 나는 생각했습니다. “주님, 나는 이미 그곳에서 내 인생의 황금기를 보냈습니다. 그만 하시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 합니다 하지만 편안하게 듣고자 합니다! 우리는 그것이 우리를 흔들기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분에게 순종할 것을 확신하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지시하시는 음성을 들려주시겠습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그 때에 들은 것에 먼저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배웠습니다.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아들 이삭을 희생 제물로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창세기 22:2 참조).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행동으로 옮겼고 그의 순종은 온 세상을 감동시키는 향기로운 흠향이 되었습니다.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창세기 22:18).

2011년 8월 19일 금요일

그분의 음성을 듣고 알기

베드로는 말세의 성도들에게 사탄이 그들을 두렵게 하려고 큰 음성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베드로전서 5:8).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입니다. 이 말세에 사탄이 자기의 능력을 수많은 길 잃은 영혼들에게 나타내고자 자기 음성을 알린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의 천부의 음성을 아는 것이 얼마나 더 중요하겠습니까? 사탄이 세상에 대고 울부짖을 때 주님이 무심하게 잠자코 계시리라 생각합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이사야가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장엄한 목소리를 듣게 하시며”(이사야 30:30).

아담과 하와의 때부터 하나님은 인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창세기 3:8). 아담의 말입니다.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두려워하여...”(창세기 3:10).

창세기로부터 신약의 끝까지, 하나님은 자신의 음성을 알리셨습니다. 선지서들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반복되어 나오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음성은 알려졌었고 이해되었습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선한 목자의 예를 들어 이것을 확인시켜주셨습니다.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요한복음 10:3-4).

아담은 자신의 죄에 대한 죄책감과 수치심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숨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 중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기 두려워하여 숨어버립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한다면 당신의 영혼을 정화하고 깨끗케 할 준비가 되어야만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한일서 1:9).

2011년 8월 18일 목요일

나는 네 하나님이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10).

아브라함,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너의 하나님이시라
너를 구원하고 굳세게 하시리라
너의 조상들에게 하셨듯이
너를 도우시고,
붙드시리라,
너를 지키시리니,
두려워 말라, 낙담하지 말라.
그분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아는 자들은
위업을 행하고 강해지리라.
그분이 네 원수와 보복하는 자들을 잠잠케 하시리라.
네 연약함 가운데
그분이 자신의 힘을 온전케 하시리라
그분의 손안에 모든 권세와 능력이 있으므로
네가 구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너머 넘치게 행하시리라.
그분이 네게 말씀하시니라,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
나는 네 하나님이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2011년 8월 17일 수요일

창고로 가십시오!

하나님의 창고로 가서 당신이 필요한 것을 취하는 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그분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가 당신이 모든 유혹과 시련을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모든은혜와 자비를 대량으로 구하십시오. 사탄은 당신이 죄의식을 느끼고, 두려워하고 정죄당하고 혼돈스럽게 만들 수 있는 백만 가지 방법이 있고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네 마음속에 쓸모없는 잡동사니가 들어있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래 전에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를 그쳤습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새카맣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내 아버지가 보시기에는 어린 양의 피로 덮여 있기 때문에 하얗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느끼든지 상관없습니다. 그저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분이 깨끗이 없던 일로 만드셨습니다!

2. 당신을 들어오라고 하신 것은 그분의 뜻이었던 것을 하나님께 상기시키십시오. 당신이 “아버지, 나는 당신이 소유하신 모든 것을 원합니다,”하며 주님께 가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내 것은 전부 네 것이다. 들어와 취하라!” 말씀하시며 당신을 초청했습니다.

3. 그분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받아들이십시오! 성경은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갖고 계신 모든 것은 믿음으로 획득할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당신은 다만 믿음으로 “주 예수님, 당신이 그것이 내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니 당신의 평강에 잠기게 하소서. 내 영혼을 위해 안식을 구합니다.” 당신의 노력으로 이룰 수 없습니다. 찬양이나 경배로 임하도록 할 수 없습니다.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에 뿌리를 내리고 기초를 둠으로 오는 것입니다. 어떤 느낌으로 온다기 보다는 그분 자신이 말씀하신 말씀 가운데 옵니다: “내 집에는 남아돌 만큼 양식이 넉넉하다!”

4.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당신의 모든 두려움, 죄의식과 정죄감을 망치로 쳐서 산산조각 내십시오! 이 모든 것을 거부하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마귀로 내게 와서 거짓말을 하게하라. 내 아버지께서 이미 다 알고 계신다. 그분이 나를 용서하시고 깨끗이 씻으셨다. 내게는 죄의식이나 정죄가 없다. 나는 자유롭다!”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이 이 진리를 붙들어 뿌리를 내리고 기초를 두도록 지금 성령께 도우심을 청하면 당신의 앞날은 이제껏 지내온 날들 가운데 가장 멋진 날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해도 됩니다. “주 예수님, 앞으로도 실수할 것을 알지만 승리를 얻고 그 안에서 살기위해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당신이 갖고 계시기 때문에 아무것도 나를 흔들지 못할 것입니다.”

그분의 창고로 와서 당신의 사랑하는 아버지가 주시는 당신 소유 전부를 청구하십시오!

2011년 8월 16일 화요일

걸인처럼 살기를 그치십시오

당신이 필요한 모든 것이 공급되어 있는데도걸인처럼 사는 것이 지겹습니까? 어쩌면 당신의초점이 잘못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당신은자신의 약점이나 유혹에 넘어간 일 그리고 과거의실패에 연연하는 경향이 있습니까? 자신의마음을 들여다보면 거기서 보이는 것들이 당신을낙심하게 만듭니까? 죄의식이 스며들도록내버려두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사탄이 와서 당신 마음에 있는 어떤 약점을지적할 때 마땅히 다음과 같이 대답할 권리가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이미 모든 것을 알고계시고 여전히 나를 사랑하신다! 승리를 얻고그것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그분이나에게 주셨다.”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때문이라”(요한일서 3:20). 그분은 당신에 대해모든 것을 아시며 “들어와 네가 필요한 모든 것을가져라. 창고가 열려있다!”고 말씀하실 만큼여전히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분의 창고 문은 활짝 열려있으며 그분의 부요는차서 넘쳐흐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재촉하고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브리서 4:16).

얼마나 오랜 동안 당신은 밖에 있었습니까?당신에게는 당신을 위해 예비한 엄

2011년 8월 15일 월요일

잔치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칫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아가서 2:4).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의 기쁨은 아들과 함께 연회석에 앉기 전까지는 완벽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이 용서받았으며 그의 죄가 씻어졌음을 알도록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어린 양을 먹으며 식탁에 앉아있어야만 했습니다!

당신이 만약 그 순간 창문으로 들여다보았다면 지금 막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진정한 계시를 접하게 된 젊은이를 보았을 것입니다. 그는 춤추고 있습니다! 음악이 흐르고 그는 웃으며 행복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미소 지으며 그로인해 즐거워합니다!(누가복음 15:25).

그는 두려움의 구름아래 있지 않습니다. 그는 “너는 곧장 돼지우리로 가게 될 것이다! 너는 이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하는 원수의 상투적인 거짓말에 귀 기울이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의 용서를 받아들였고 들어오라는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였으며 자신이 필요한 모든 것을 취하였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자기와 자기 형에게 속삭이는 말을 들었습니다.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앞으로 다시는 굶주릴 필요가 전혀 없다. 너는 절대로 외롭거나 거지가 되거나 나의 창고로부터 차단당할 일이 없다”(누가복음 15:31참조).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 하나님의 사랑의 충만, 바로 그 핵심이 있습니다! 우리의 흑암의 시기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옹하고 이끌어 들이실 뿐 아니라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아 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잔치를 베푸는 내 집에는 내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풍성한 진수성찬이 있다”(누가복음 15:22-24 참조).

오늘날 우리는 이보다 더 나은 약속이 있습니다.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에베소서 3:19-20).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약속이 여기 있습니다. “나는 너에게 넘치도록 풍성한 충만- 모든 위기에 대한 대비책, 네 전 생애에 걸친 기쁨-을 베풀어 준다. 너는 창고로 가서 그 모든 것을 청구해도 된다!”

2011년 8월 12일 금요일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무조건적인 사랑

탕자의 비유는 두 아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한 아들은 자기 자신의 자원들이 고갈된 지경에 이르렀고 다른 아들은 자기 아버지의 자원들을 청구하지 않았습니다. 이 비유는 또한 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그의 집에 있는 양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작은 아들이 그의 아버지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누가복음 15:12). 그가 받아 허비한 분깃은 자기 자신의 지분, 즉 그의 재주, 능력, 인생과 삶에서 부딪치는 모든 문제에 직면하여 그가 사용했던 모든 것을 나타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이지적이고 위트가 넘치고 든든한 배경이 있다. 세상으로 나가 혼자 잘 해낼 수 있다!”

작은 아들의 태도는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들의 모습을 묘사해 줍니다. 하지만 어려움이 닥치면 얼마나 빨리 우리 자신의 자원은 바닥나는지요! 얼마나 신속하게 우리 자신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소비해 버리는 지요! 우리는 얼마간 문제들에서 빠져 나올 길을 생각해 내기도하고 다소 시련들을 견뎌낼 내적 힘을 찾아내기도 합니다만 기근이 영혼을 공격하는 때가 오고 맙니다!

당신은 어느 길로 향해야 할지 알지 못한 채 당신 자신의 막바지에 도달합니다. 당신의 친구가 도울 수 없습니다. 당신은 고통당하며 당신 안에 의지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텅 빈 채 남겨집니다. 당신은 녹초가 되고 모든 투지를 잃습니다! 당신에게 남은 것은 두려움, 우울, 공허함, 무기력이 전부입니다.

당신은 아직도 텅 빈 가운데 뒹굴며 굶어 죽어가면서 마귀의 돼지우리 언저리를 맴돌고 있습니까? 그것이 바로 탕자에게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의 안에는 의지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자원들을 탕진했고 전적으로 자신을 의지했던 것이 그를 어디로 끌고 왔는지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가 제 정신이 들도록 만든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그가 자기 아버지의 집에 있는 모든 풍족한 양식을 기억했을 때였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충분히 많지 않은가!” 그래서 그는 돌아가 아버지의 풍족한 양식을 제 것으로 만들기로 작정했습니다!

이 비유에서 탕자가 그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 때문에 돌아왔음을 암시하는 말은 단 한 마디도 없습니다. 진실로 그는 회개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나는 아버지와 하나님을 거슬러 죄를 지었습니다. 아버지 집에 들어갈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외치며 무릎을 꿇었으나, 결코 “아버지, 아버지를 사랑하기에 돌아왔습니다!”라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계시된 바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는가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사실은 우리가 마음속으로 그분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조차도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