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26일 금요일

부활, 여기에서 그리고 지금

저는 자신의 교회를 그만 둔 한 목사님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분은 깊은 죄에 빠졌었고, 자신의 부인과 자녀들은 그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의 삶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죽음을 바라보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깊은 수렁에 빠진 이 순간 그는 무릎을 꿇고 쓰러져 도움을 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상한 마음을 가진, 절망에 빠진 자에게 오셔서 그 안에 새 생명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그후 곧, 그 목사님의 부인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워요. 우리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오늘날 이 목사님은 우리의 마약 재활 센터들 중 한 곳에서 일하십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서 3절까지를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이것이 당신의 경험을 묘사하는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주님을 알기 전, 당신은 당신 자신의 일에 빠져 있었습니다. 당신은 세대의영에 사로잡혀 모든 죄와 쾌락을 일삼아 왔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나중으로 미룰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선행과기부가 당신을 구원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당신께 찾아와 주셨습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에베소서 2:4-6).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전부 새 생명을 얻는 것에 관한 말이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최후의 부활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무엇을 행하시는가를 묘사한 것 입니다 — 여기서 그리고 지금 일어나는 부활 말입니다!

2017년 5월 25일 목요일

오직 예수님께서 생명을 제공하신다

하나님께서 "죄의 삯은 사망이요"(로마서 6:23)라고 말씀하실 때 하나님은 진심이십니다. 
로마서 8장을 전체적으로 보면 , 바울은 죄의 파괴적인 실재를 요약해 놓았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당신이 육을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정욕에 이끌리어 감각만을 의존하여 살면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몸은 죄 때문에 죽은 상태가 됩니다.”
간단히 말하면, 죽음이란 생명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께서 생명을 제공하십니다. 그분은 선언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생명이니" (요한복음 11:25).
불신자들은 생명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추구하는 모든 것은 죽음으로 이끕니다. 
이것이 바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술과 기분 전환용 마약을 이용하는 이유 입니다. 취하는 것은 더 이상 그들에게 파티가 아닙니다. 그것은 죄에 의해 생긴 고통, 즉 실재적인 공허함에 의해 생긴 고통에 대해 감각이 없게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에베소서 4:18-19).
바울이 묘사하는 상황이 얼마나 끔찍합니까!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쾌락의 세계에 너무나 빠져 버리게 되어서 느낌 조차 없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이나 생명의 감각에 무감각해진 것입니다. 자비로우신 주님께서는 모든 무감각해진 영혼들에게다가가십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들의 상태와 비교합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에베소서 4:20-23).
바울은 자신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합니다: "여러분은 부활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변화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새 생명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아, 이것이 얼마나 큰 소망입니까!

2017년 5월 24일 수요일

그분은 신실하게 구해내신다

한번은 바울이 다이아나 여신을 경배하는 도시인 에베소에서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에베소의 은세공인들은 작은 다이아나 여신의 모형을팔며 거액을 벌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 현장에 왔을 때 그는 이렇게 설교하였습니다. "당신들의 신은 가짜입니다. 진실한 신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아들은 죄 안에서 죽어있는 자들이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살아 계셨다가 돌아가셨습니다. "
격분한 직공들과 이러한 영업하는 자들은 그들의 생계가 위태로워진 것을 알게 되었고 군중들을 부추겨 바울을 붙잡았으며 죽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9:24-31 참고). 
바울은 자신이 죽을 거라 확신하였고 죽음의 문턱에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소망까지 끊어지고" (고린도후서 1:8, 저자의 이탤릭체). 그는 이런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의지하게 하심이라" (1:9, 저자의 이탤릭체). 
여러분, 바울이 경험한 것처럼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 바닥을 친 적이 있으십니까? 살 소망 까지 끊어질 정도로 낮은 바닥을 쳐서 힘을 쓸래야 쓸 수 없던 적이 있으십니까? 바울이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라고 했을 때, 그는 사형 선고를 직면했다는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현장에 개입하셔서 그를 구해내셨습니다. 기적을 경험한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이렇게 썼습니다: "저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무덤에서 꺼내 주셨습니다. 저는 제 눈 앞에서 죽음을 보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부활시켜 주셨습니다!"
바울은 본질적으로 이렇게 증언한 것 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큰 죽음으로부터 구해내셨습니다 — 그분은 저를 계속 구해내고 계십니다 — 그리고 그분은 이후에도 저를 신실하게 구해내실 것입니다."

2017년 5월 23일 화요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부활 생명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이후 성령님께서는 예수님께서 누워 계셨던 무덤에 들어가셨고 그분을 일으키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부활절에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일어나셔서 그분의 원수를 이기시고 지금성도들과 함께 영원히 통치하고 계시다는 노래를 부르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의 능력을 통해 우리가 부활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이루어 질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모두가 눈 깜짝할 사이에 변화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5:52 참고). 성령님께서는 이 땅에서 우리를 썩지 아니할 몸으로 일으키시고 친히 주님의 임재 안에 두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자신의 서신에서 말하는 부활의 능력, 즉 죽은 자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오늘날 여전히 죽은 자를 일으키신다는 것을 여러분께 알려드리려 합니다.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죽어있는 자들에게 주시는 부활 생명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생명을 주는 능력을 에베소 교인들에게 보내는 자신의 편지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에베소서 2:1-6).

2017년 5월 22일 월요일

예수님께서 옛습관을 훼방하길 원하신다 - Gary Wilkerson

두려움에 묶여 있는 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발을 내딛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두려움에  해결책을가지고 계십니다. 초막절에 그분께서 일어나셔서선언하셨습니다. "이 생수의 강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는 이 물이 그를 생명으로 채울 것이다. 그것은 그의 안에서 강처럼 흐를것이며 이로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선하심을 나타낼 것이다" 요한복음 7:37-38 참고). 
우리의 두려웠던 마음이 되살아나면 우리 안에 들어오는 한가지는 담대함 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3). 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구절을 귀중한 약속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이상입니다 - 그것은 실재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 담대함을 일으켜 낼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것을 제공하시기 때문입니다. 실재로 그분께서 우리 안에 담대함이 넘치게 하십니다. 
이 변화는 두가지 방식으로 일어납니다: (1) 환경적으로 되살리심, 그리고 (2) 우리 내면에서의 되살리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환경을 되살리실 때, 그분께서는 옛 습관을 바꾸십니다. 두가지 흔한 분야인 재정과 결혼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약 당신이 재정적 문제에 빠져 있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유익하지 않은 소비습관을 드러나게 하시고 그것을 바꾸도록 책망하심으로서 당신을 되살리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재정관련 상담을 받도록 인도하셔서 그러한 상담을 통해 이러한 습관을 바꾸고 지혜로운 청지기가 될 수 있게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결혼생활에서 나타나는 당신의 단단하고 사랑스럽지 않은 방식에 갇히게 하는 옛습관을 훼방하길 원하실 수도 있습니다. 너무나도 많은 커플들이 서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항상 이래," 혹은, "너는 5년 전에도 이렇게 행동했어," 혹은, "너는 절대 안 바뀌는구나." 어느 커플에게든 중요한 질문은 이렇습니다. " 어떻게 내가 내 배우자에 대한 최선을 믿을 수 있고 동시에 우리의 문제들을 현실적으로 다룰 수 있을까?" 그것은 되살림 버튼으로 시작 됩니다. 하룻밤 사이에 해결되는 관계문제는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부지런한 은혜가 나날이 요구됩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필요할 때마다 풍족한 은혜로 우리를 되살리실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다. 

2017년 5월 20일 토요일

원수를 정면으로 대면하기 - Nicky Cruz

다윗 왕의 가장 많이 인용되면서도 가장 많이 오해받는 시편 중 한 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편 23:4). 저는 다윗이 하나님께 이 악을 제하여 달라고 구한 것이라고 생각치 않습니다. 그는 싸움에 더 임하기를 구하고 원수를 정면으로대면하게 되도록 구한 것 이었습니다. 그는 사단으로부터 숨는게 아니라 사단과 전쟁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믿음 안에서의 형제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목적과 하늘의 상급을 기억하라고격려할 때, 그는 그들에게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데살로니가전서 4:18)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실제로 이렇게 말한 것이었습니다. "악한 자를 대적하여 서로 앞으로 갈 수 있게 해 주어라."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그분의 죽음 후에 보혜사가 오실 것을 약속하셨을 때, 이것은 전쟁 선포였습니다. 성령께서 영적 전쟁의 최전방 쪽으로 가도록 그들을 격려하시고 능력을 주시려는 것 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께서 역사하시는 매우 실재적이면서도 너무나 자주놓치고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관점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영께서 이 땅에서 충만한 영광으로 역사하시는 것을 보고 싶으시다면, 선과 악 사이의 전쟁, 즉 인간의 영혼을 위한 전투가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는 전투의 최전방에 가보시길 바랍니다. 만약 여러분이 사단의 분노를 느끼고 싶으시다면, 사단의 근거지에서 그가 노예 삼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 보시고 예수님에 대해 얘기해보십시오. 당신을 두렵게 하고 조롱하려고그가 그의 흉악한 얼굴을 들어 올리는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백성 중 한명이 은혜의 손전등을 들고 사단의 어둡고 습한 지하감옥 속으로 들어가는것 처럼 사단을 화나게 혹은 초조하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이때 사단은 어느때 보다도 치열하게 싸우고 또한 이때 성령님께서 가장 강하게 빛을 발하십니다. 
닉키 크루즈는 국제적으로 알려진 전도자이며 여러 저서를 집필한 작가이다. 그는 1958년 도시뉴욕에서 데이빗 윌커슨을 만난 후 폭력을 마다 않던 삶과 범죄로부터 돌이키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다. 그의 극적인 회심 이야기는 데이빗 윌커슨의 저서 "십자가와 칼"에서 처음으로알려졌었고 나중에는 본인의 베스트셀러 저서인 "주님 향해 뛰어라"에서 전해졌습니다. 

2017년 5월 19일 금요일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알기


비극적이게도 종교적인 관점에서 세상은 수세기 동안 나뉘어져 왔습니다. 수 세대를 거쳐 내려가 보면, 심각한 분열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서로를 맞서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형제는 형제를 맞서고, 자매는 자매를 맞서고, 모든 교단들이 망해버렸습니다. 
진실로 저는 저의 형제를 예수님을 경배하며 옆에 같이 나란히 서 있을 때만 정직하게 사랑합니다. 저는 제가 그리스도의 보좌 앞에 담대히 서서 저의 형제에 대해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 때 저의 형제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저는 예수님께서 제게 보여주신 사랑과 같은 그런 사랑을 그에 대하여 제가 가질 때 저의 형제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용서해주신 것처럼 용서할 때 그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자신의 신앙을 버린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며 그들의 회복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할 때 그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길 때 일어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제가 여러분께 애원합니다: 모든 쓴 뿌리와 다툼과 무례함을 내려놓으십시오. 당신의 인생과 집에서 하나님의 복을 저해하지 마십시오. 당신에게 주어진 그분의 새 계명에 순종하시고, 그분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한복음 13:35). 잃어버린 자들이 하나님의 순종적이고 기쁨에 찬 그리고 희생적인 백성들, 즉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알 것입니다. 아멘!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빌립보서 2:3).

2017년 5월 18일 목요일

예시된 설교들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이 사례로 예시된 설교들이 필요합니다. 강력한 개인적 사례들 말입니다. 
요한복음 17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저자의 이탤릭체).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마지막 시간에 조차 잃어버린 바 된 인류에 대하여 생각이 간절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잃어버린 군중들을 얻어낼 구체적인 방향성을 그분의 교회에게 제시하셨습니다. 이 주제에 대한 그분의 마지막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가 되어라! 세상이 나를 믿을  있도록 모든 다툼과 분열을 피하라."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너무 단순하게 들리는데? 그게 정말 교회가 닫힌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다가갈 방법이란말이야? 단순히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진실로 미움을 대적할 초자연적인 능력을 제공한단 말이야?"
대답은 예, 예, 예 입니다! 그렇고 말고요! 예수님에 의하면 하나님의 강력한 사랑은 무엇보다도 그분의 백성들 가운데서 서로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에 의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바로 지금, 교회를 대적하는 사단의 주요 전략 중 하나는 분열과 다툼을 심는 것 입니다. 제가 전세계적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를 들여다 보면 어디서나 귀신 떼들이 교회 담 안에 임무를 가지고 들어와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목적은 서로를 향한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을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마귀의 전략은 교묘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각기 다른 인종끼리 그리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끼리 싸움을 일으킵니다. 특히인종 간의 다툼 같은 경우 텔레비전과 다른 미디어를 통해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수십년이 지났어도 그러한 인종적 혐오가 분출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만 현재 하나님의 집의 담을 침투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타임스퀘어 교회가 피부 색깔이나 부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사이에 구분을 두지 않고 성장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 교회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은 동일한 존경과 환영의 사랑으로 대우를 받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수년간 누려왔습니다. 저는 이에 대한 부분적인 이유가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였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2017년 5월 17일 수요일

잃어버린 세대의 주목을 끌기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바로 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너희 중 몇몇은 거부당하고, 몇몇은 감옥에 들어가고, 몇몇은 죽임을 당할 것이다. 또한 너희 모두 핍박을 받을 것이다” (요한복음 16:2 참고). 엄청난 배웅 메시지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동시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어떻게 그분께서 떠나신 후에 그들의 세대에 다가가야  지에 대한 방향을 알려주셨습니다. 이 방향은 전도의 방법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을 이전에 말씀하셨고, 그들이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의 권능이 필요하다는 것이 명백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새 계명을 지키면,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누구인지 알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너희가 어떠함을 정확하게 알 것이다. 그들이 너희를 미워하고 너희를 광신자라 부르고 너희를 출교할 일도 있겠지만, 그들은 너희가나의 것 임을 알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내가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34, 저자의 이탤릭체). 이 계명은 선택이 아닙니다. 이 계명은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그리고이것이 모든 복음전도의 노력의 시작점이 되어야 합니다. 
보십시오. 성경은 우리가 가난한 자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며, 교회는 항상 그 역할을 신실하게 감당할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선행을 행함으로써 대담하게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짙은 어둠”을 뚫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주신 이새 계명을 붙들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제자인 알리라” (13:35, 저자의 이탤릭체).
예수님에 의하면, 오직 이러한 사랑만이 — 동료 신자들을 향한 사랑만이 — 잃어버린 세대의 주목을 얻을 것입니다. 이 사랑은 예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보여주시는 자신을 부인하는 희생적인 사랑과 같은 종류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그리스도 안의 친족을 향한 사랑은 말로만 성취될 수 없고, 행함으로 성취 되어야 합니다.

2017년 5월 15일 월요일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 Gary Wilkerson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있을 때 그들은 목마름에 의해 고통을 당하였고 모세와 논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네가 왜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었느냐?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냐?’ 그러자 모세는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제가 이 사람들에게 어찌하여야 합니까? 그들은 저를 돌로 쳐 죽이려고 합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백성 앞을 지나라.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고, 이스라엘 장로들을 불러서 너와 함께 가게 하라.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출애굽기 17:3-6, NLT를 역자가 번역한 것임)
이 장면에 대한 세부 사항은 – 그리고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에 대한 세부 사항은 –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다시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잃어버린 바 였을 때 그리고 정처없이 떠돌아 다녔을 때 우리의 허물을 위해 치신 바 되신 반석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우리를 살아가게 하시는 생수이십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우리의 조상들에게 오래전에 광야에서 일어난 이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들은 그들과 함께 여행한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고,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 이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0:1, 4, NLT를 역자가 번역한 것임).
광야에서의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불평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행하시는가를 나타냅니다: 그분은 그들의 징벌을 떠맡으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내가 그들을 위해 정죄 받을 것이다; 내가 채찍질 당할 것이다; 내가 그들의 자리에서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이다– 그들이 풍성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 이 모든 것을 할 것 이다.” 어떤 그리스도 인들은 쓴뿌리를 붙잡음으로서 이 놀라운 선물을 잃습니다. 바울은 나아가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셔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일은우리에게 경고로서 일어났습니다” (10:5-6). 
우리의 삶은 쓴뿌리로 인하여 시들거나, 아니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아름다운 은혜를 통해 소생 될 수 있습니다 – 우리의 선택인 것입니다.

2017년 5월 13일 토요일

무엇이 문제입니까? - Jim Cymbala

오늘날의 기독교에서 가장 큰 유혹은 우리의 메시지를 다수의 사람들이 듣도록 감칠 맛나게 만듬 으로서 우리가 불의 속성을 잃는 것 입니다.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누가복음 3:16).
우리는 사탕과 오락물로 가득 찬 예배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지 않을 것이며 예수님께서 영광 받으시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성령님의 불같은 역사 없이는 하나님께 올 수 없습니다.
저는 수년 전에 사역에 처음 들어 섰을 때 하나님을 만났던 한 개인적 경험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입니다. 저는 화요일 저녁 예배 전에 혼자 기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교회는 한 작고 허름한 건물에 위치해 있었고, 저는 이 밤의 기도 모임에 교인들이 열 명도 채 안 올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시기에 저는 하나님께 더 많은 사람이 교회로 오게 해달라고, 그리고 교인들이 더 큰 열정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기도 할 때, 성령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그분은 제 중심으로 직접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주된 문제는 사람들이 적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적 미성숙이다. 바뀌어야 할 사람은 바로 너다. 너는 사람들에 대한 긍휼이 부족하고 너는 내가 네게 바라는 데로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너는 너의 불안정 가운데 단순히 한 모임을 이끌어 가려고 하는 것 뿐이다.”
불에 대하여 말하는 것! 찔림에 대하여 말하는 것! 이런 말씀을 듣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결국 하나님을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교회의 모든 사람들의 문제들을 제가 해결할 수 있도록 구하러 온 것 이였는데, 그분의 불이 저의 문제를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삶에서 역사하실 때, 그분은 표면적 변명을 버리게 하시고 우리가 하기 좋아하는 비난의 화살을 주고 받는 일을 그만두게 하십니다. 불은 거짓을 태워버리고 진리로 우리를 이끕니다. 
짐 심발라 목사님은 이십 명도 채 안되는 교인들과 뉴욕의 한 소외된 지역의 한 조그맣고 허름한 건물에서 브루클린 테버네클(Brooklyn Tabernacle)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브루클린 토박이인 그는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 그리고 개리 윌커슨 목사님과 오랜 친분을 갖고 있습니다.

2017년 5월 12일 금요일

주님은 그의 백성의 구원자이시다

저는 구약을 읽을 때, 다윗의 모범에 제 믿음이 큰 격려를 얻습니다. 저는 그가 매우 위험한 때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 했던 그의 결심으로부터 경외심을 느낍니다. 
전투에 한번 나간 후, 다윗과 그의 군대는 그들의 마을이 아말렉 사람들에게 습격 당하였을 때, 사흘을 걸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사나운 적군은 다윗과 그의 군대 동료들의 가족들을 납치하였고 그 마을을 전부 다 태워버렸습니다. 
그들이 돌아온 이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사무엘상 30:3)
저는 이 힘센 사람들이 어리둥절하며 혼란에 빠져 걸어다니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고통중에 부르짖으며 말입니다: "어떻게 이런일이 있을수가 있지? 왜 하나님께서 이러한 일을 허락하시는가?"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30:4, 저자의 이탤릭체)
다윗의 삶에서 이 장면은 재앙이 닥칠 때 울부짖어야 할 때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누가봐도 조그마한 재앙이 아니었기에 말입니다. 다윗의 힘센 자들은 단순히 집이나 가축이나 농작물을 잃어 버려서 울부짖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그런 것을 잃어버려서 였다면 그들은 빠른 시간 내에 극복 하였을 것 입니다. 오히려 그들이 사랑하는 아내들과 자녀들이 처한 위협이 그들 자신의 혼을 찌른 것 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장면 이후는다윗에게 더욱 더 처참 했을 수도 있습니다: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다” (30:6)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중 가장 경건한 사람 조차도 끔찍한 위기가 닥칠 때, 가슴의 떨림과갑작스러운 두려움의 급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때에 깊은 염려의 순간을 가지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모든 지치고 걱정하는 자들이 이 말을 듣기를원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담대하라, 주께서 그분의 백성의 구원자 이시기 때문이다.”

2017년 5월 11일 목요일

그분의 초자연적인 불

이사야는 부르짖었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고 우리는 모두 주의 백성입니다! 당신 자신을 나타내시고 우리를 한번 더 만져 주소서 (이사야서 64:8-9 참고)
몇 세기 후, 같은 울부짖음이 다른 남은 자들 – 예루살렘에서 한 빌린 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 – 에게서 들려왔습니다. 그 때는 이사야의 시대와 매우 비슷한 시기였습니다. 이 때는 이스라엘 전 나라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성전에 몰려오는 큰 종교의식을 하는 때였습니다. 크고 화려한 행사가 있었고, 유대교 회당은 종교적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시늉만 할 뿐 의식 절차를 따라하기 바빴습니다.
당신은 의아해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이 세대는 세례 요한의 불같은 설교를 들은 세대였습니다. 예수님 – 육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 – 께서 그들 가운데 걸으시고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바라본 세대 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생명이 없었고, 메말랐으며, 공허 하였습니다. 
예수님 자신은 이 매우 종교적인 사람들을 보고 우셨었습니다. 그분은 외치셨습니다. "너희는 경건의 모양이 있고 자선을 베푼다. 그러나 너희의 내면은 죽어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를 보고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 귀신들을 내쫓으시며 귀신의 결박으로 인해 수년 동안 고통 받던 사람들을 자유케 해 주셨을 때 그 사람들은 감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막판에, 그들은 그분을 거절함으로서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은혜로부터 돌아섰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120명의  제자들에게 예언하셨습니다. “나는 모든 육체에 나의 영을 비 내리듯 부을 것이다.” 이를 위해 그분께서 그들을 준비시키시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내가 올 때까지 거기서 머물러라”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 그분의 메세지는 본질적으로 이것이었습니다. “너희가 함께 모이면, 너희 회중에 불이 떨어질 것이고 너희의 마음은 녹을 것이다. 나의 초자연적인 불은 모든 산을 없애버릴 것이다. 너의이웃들에게, 너의 동족 유대인들에게, 그리고 모든 나라들 가운데 말이다. 한 시간 안에 수천 명이 구원을 받으며 굳은 마음과 불신은 녹아내릴 것이다. 나의 이름을 언급하기만 하면 다수의 사람들이 책망을 받고 확신을 얻을 것이다.

2017년 5월 10일 수요일

힘을 얻기

이사야는 그의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크나 큰 심판이 나라 위에 떨어지고 있었는데 그는 갑절의 평안을 가지고 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이사야가 살던 아주 위험한 시대에 자신이 가졌던 그 똑같은 놀라운 관점이 우리에게도주어져 있습니다. 이 쉼의 약속은 "심지가 주께 있는 모든 자"(이사야서 26:3 참고)에게적용됩니다. 
이사야가 자신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압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가큰 평온을 누렸다고 밝힙니다. 여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국가들에 심판이 떨어지기 직전에, 이사야는 하나님과 기도를 통해 지속적인 교감을 유지하였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주의 이름을 위하여 또 주를 기억하려고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이사야서 26:8). 이사야는 벌써 "쉬지않고 기도하고" 있었기에 무엇이든지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저는 당신께 여쭤야만 하겠습니다: 폭풍이 몰아치면 당신은 이사야처럼 주님께 기도하러 가실 것 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힘을 얻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심지는 절대 주권을 가지신 당신의 하늘의 아버지의 사랑에 초점이 맞추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그분의 능력을 당신에게 계속적으로 나타내시고 당신이 끝까지해낼 것이라고 당신을 격려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지시로 우리를 안심시켜 줍니다: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빌립보서 4:8, 저자의 이탤릭체)
다시 말해 이렇습니다: "당신은 모든 주의할 점들을 들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밝히 나타내는 것과 그분의 관리인들(watchmen)이 말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끝으로, 예수님과 그분의 선하심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2017년 5월 9일 화요일

신뢰하는 자들

사도 바울은 우리의 때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디모데후서 3:1, 13). 주택자금 대출회사들이 가난한 사람들과 교육 받지 못한 사람들과 실업자들을 서브브라임 대출(비우량 주택 담보 대출)로 유혹하고 속인1990년대를 생각해 보십시오. 부지불식간에 이 일을 겪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갚을 수 없는 대출금을 계약하도록 꾀인 바 되었고, 돈을 지불하는 날이 오자 집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명성있는 은행들은속임 때문에 망했지만, 그 은행의 간부들은 수십억의 고액 퇴직금으로 보석금을 내어 석방되었습니다.
저는 값비싼 파티를 거침없이 열어 춤추고 술을 마신 한 간부에 대해 읽었습니다. 그 간부는 자신의 회사가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빤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와 다른 사람들은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곧 잃을것을 알면서도 미친듯이 춤췄습니다. 이것은 스바냐 1:9 예언의 명백한 성취입니다: “[그들이] 그 날에 [가난한 자들의] 문턱을 뛰어넘어서… 자기 주인의 집에 채운 자들을 내가 벌하리라.”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하나님께서 그러한 광기, 즉 자신의 이름을 조롱하는 행동을 참으실 거라고 생각하였습니까? 이 일에 대한 최종적인 발언은 주님이 하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날에 [그들을] 내가 벌하리라” (1:9). 간단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내가 그들이 수치를 당하게 할 것이다”
“그들의 칼은 오히려 그들의 양심을 찌르고 그들의 활[부]은 부러지리로다” (시편 37:15). 제가 이 글을 쓰고있는 지금도, 두명의 억만장자들이 자신들의 부가 하룻밤 사이에 사라졌다고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고 있습니다.
주님은 불경건한 자들의 악을 갚으시는 동일한 시간에 그분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상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시편 37:3)

2017년 5월 8일 월요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소유 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을 때부터 그래왔고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증언은 이것입니다: “나는 한때 잃어버린 바 되었으나, 이제는 찾은 바 되었다. 나는 내 삶을 계속해서 그분께 굴복시켜 드린다.”
요한복음 7장에 보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하였기 때문에 그분께서 갈릴리 바깥으로 다니시지 않으셨음에 대해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웠고,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낼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유대로 가길 원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8절)
그러나 예수님의 생애 중 이상한 일이 이 장면에서 벌어집니다. 바로 다음 구절에 보면,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에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은밀히 가시니라” (7:10). 왜 예수님께서 가시지 않으신다고 하시고 – 그런 후에 가기로 결정 하셨을까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분명 아버지로부터 들으신 것 입니다. 일단 자신의 형제들에게, “내 때가 아직 아니다” 라고 하시고 그러신 후, 하루 안에, 혹은 한시간 안에, 혹은 몇 초 후에, 아버지께서 그분께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이 그 때다. 그 시기다. 가라!”
저는 하나님의 방식에 굴복하기 보다는 삶에서 종종 제 자신이 결정을 내리길 원하는 제 모습을 봅니다. 우리는 그분께 의존하고, 그분이 가리키시는 방향을 따르고, 삶의 중요한 결정에 있어서 그분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우리의 삶이 병목처럼 좁아지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수년간 나는 나의 아내에게 이렇게 말해왔습니다, "가끔 나는 하나님께 이 일에 대해 확인을 받지 않았으면 해요." 실재로 나는 자신이 원하는 직업에 지원하는 사람들이나, 우연으로 다른 집에 살고 싶어서 집을 구매하여 바로 이사하는 사람들을 부러워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제가 이런 생각들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치 않습니다. 하나님께 귀 기울이고 그분의 뜻과 그분이 가리키시는 방향으로 우리의 삶을 굴복시키는 것은 희생이 따르지만 돌아오는 유익은 셀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그분의 마음에 맞추는 것은 우리를 모든 일에 있어서 강하게 해줍니다.

2017년 5월 6일 토요일

아무것도 당신을 붙잡지 못하게 하십시오 - Carter Conlon

당신이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기로 선택하면, 당신을 뒤에서 붙잡을 수 있던 능력을 가졌던 모든 것은 당신을 놓아 주어야만 합니다. 좋은 소식이지요!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리브가가 당신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를 당신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 (창세기 24:50-51)
라반과 브두엘은 리브가를 붙잡던, 그녀의 삶에 있던 예전 권한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한 것은 이게 전부였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왔기에 이런 말도 저런 말도 할 수가 없다.” 다시 말해서, 아무런 지옥의 권세도, 아무런 부족함도, 아무런 과거 경험도, 당신의 삶에 선포되었던 아무런 말도 하나님께서 당신을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신 모든 존재적 부르심이 이루어지는 데 있어 막을 수 없다는 것 입니다. 모든 감옥 문은 열려야만 합니다; 모든 결박은 당신을 놓아 주어야만 합니다. 당신이 해야하는 일은 오직 일어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한가지 약속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 살기로 선택할 때 엄청난 삶을 살게 될 것 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을 온전히 따르기로 결단하면, 어려운 나날들이 있을 것 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당신의 여정 끝에 다다르면, 당신은 그 여정 중 하루도 다른 날과 바꾸길 원치 않을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리스도의 이름에 영광을 가져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리브가처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기로 결단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이 선택하여서, 순결한 길을 걷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필요에 응해 주는 것이며, 아버지의 관대하심을 아는 것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에 대해 말해주는 것 입니다. 그래서 당신 앞에 보내져 서 계신 사자이신 성령님께서 오늘 당신께 물으십니다, “네가 나의 주인의 아들에 걸맞는 신부가 되겠느냐?”
카터 콘론 목사는 타임 스퀘어 교회 설립자 데이빗 윌커슨 목사의 초청을 받아 1994년에 타임 스퀘어 교회의 목회자 부서에 합류하셨고, 2001년에 수석목사의 직분에 선임되셨습니다.

2017년 5월 5일 금요일

약속에 근거하여 살아가는 것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명기 8:2-3)
저는 이 말을 하루종일 반복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할 수 없다면 – 만약 성경이 진실로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 아니라면 – 그렇다면 인생은 무의미한 것 입니다. 지구 상에 소망이란 존재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 신명기의 말씀을 받았을 때, 그들에게 광야의 상황은 매우  겁낼 만한 상태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목마름과 배고픔의 고통을 경험하게 허락하신 것 이었고, 바로 주님의 그 입에서 우리는 지금 이러한 말을 듣습니다: “나는 너를 낮추었고 네가 배고픔과 목마름으로 고통받는 것을 허락하였다.” 왜 그랬을까? 왜냐하면 오직 나는 네가 나를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려 하였기 때문이다. 너는 나의 약속들에 근거하여 살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이 굶어 죽거나 갈증으로 죽게 내버려 두려 하신 것이 아니셨습니다. 그분은 그분이 무엇을 하여야 그들을 구출해 낼 수 있을지 정확히 아셨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구출할 계획 또한 갖고 계십니다.
오, 우리가 얼마나 성령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의 시련 가운데 우리를 위로하시기 위해 필요한지 모릅니다. 그분의 임재와 그분의 인도하심과 그분의 날마다 부어주시는 힘 없이는 우리 중 아무도 해낼 수 없습니다. 인간적 의지로는 우리가 이 길을 가는데 인내해야 하는 하루하루의 시련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 위에 우리를 내어 놓고 성령님께서 그 말씀이 우리에게 생명이 되게 해주실 것을 신뢰하여야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시편 33:6, 9)

2017년 5월 4일 목요일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

소망을 향한 길에는 고통과 슬픔과 통증이 있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독실하고 다정하고 선하든간에, 만약 그리스도께서 당신 안에 계신다면, 당신은 그분의 고통에 참여하는 자가 될 것 입니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베드로전서 4:13, 저자의 이탤릭체). 베드로는 분명하게 말합니다: "환난 중에 기뻐하라." 그리고 바울은 이러한 비슷한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로마서 5:2).
환난 중에 기뻐하라고? 이것은 실재로 성경에 있는 말 중 어려운, 아니 가장 어려운 말 중 하나 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로마서 5:3, 저자의 이탤릭체). 바울은 우리가 환난에도 불구하고 소리 지르는 것 이나부르짖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설명하고 있는 것은 환난 중에 단순히 그리스도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적나라한 인간적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희망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길을내실 것이다." 
어떠한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소망의 길은 단순히 이렇다: 나의 소망은 '너희 안에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골로새서 1:27) 라는 구절에 있다." 정말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면, 그분은 우리를 바울이 설명한 길로 인도하실 것 입니다. 아십니까?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소망이 신학적 문장을 뛰어넘는 소망이 되길 원하십니다. 그것은 견고한 확신이며, 확실한 기초 위에 지어진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요컨대, 우리의 소망은"우리안에서 행하시는 우리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2017년 5월 3일 수요일

거룩을 향한 계획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음을 확인하여 줍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로마서 5:10-11)
우리의 마음이 우리를 정죄할 지라도, 우리는 요한으로부터 듣습니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한일서 2:1). 제가 예수님 자신의 생애에서 나온 이것에 대한 예를 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시기 바로 전 날, 그분께서는 그의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그는 이 불완전한 사람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요한복음 13:10). 당신은 의아해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 제자들이 깨끗하다고 말씀하신 것일까?” 이 현장에서 어느 구경꾼이든 예수님의 이런 말씀에 놀랐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말씀을 나누신 열한 명의 사람들은 벌써 교만과 불신과 이기심과 야망과 탐욕과 불일치와 복수심을 보인 자들 이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께서 그들에 대해 이러한 말씀을 하신 이유는 그분께서 그들을 선택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분께서 그들을 거룩을 향한 길 가운데 놓아두신 것 이었습니다. 전적으로 은혜로 인한 일 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절대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계셨습니다. 게다가, 그분께서는 그들이 들어갈 부서짐과 참회의 시기를 미리 예측하셨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이 제자들이 저지른 모든 죄를 열거하시라고 부탁드렸다고 칩시다. 여러분과 제가 일생에서 어떤 한 시기에 같은 죄들을 지었을 것이라고 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위한 답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로마서 5:1)

2017년 5월 2일 화요일

소망이 넘치게 하시길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로마서 15:13, 저자에 의한 이탤릭체)
바울에 의하면 소망이란 주제에 들어서면, 성령님의 일하심이 꼭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바울이 우리를 위해 기도한 것처럼 소망이 넘칠까요? 어떻게 소망 안에서 기뻐할까요?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그것에 대한 전적인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까? 물론, 소망의 씨앗이 구원 받을 때 심겨지지만, 우리가 예수님과 동행하며 나아갈 때 소망이 더욱 커져가야만 합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우리가 가진 소망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히브리서6:19) 라고 쓰여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소망으로의 길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올바른 위치에 서 있다는 사실에 대한 전적인 확신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평화로운 관계를 갖고 있다는 확신에 대해 말하는 것 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렇게 선언함으로써 그러한 확신을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로마서 5:1) 
한 교회의 오래된 유명한 찬송가에서 에드워드 모트는 이렇게 썼습니다, “나의 소망은 예수님의 보혈과 예수님의 의 라는 기반 위에 세워졌다.” 참으로 이것은 평화입니다: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분께서 나를 의롭게 여기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 말입니다. 그분은 내가 완벽하지 않아도 나를 그렇게 여기십니다. 그리고 내가 행한 어떤 선행 때문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의 의가 내게 수여된 것입니다.
사실,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이 용납된 것에 대해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을 때 까지 여러분은 안정된 평안,즉 진정한 소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 용납은 당신의 육이 당신에게 고소하는 것에 기반을 두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당신을 보시는 것에만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2017년 5월 1일 월요일

누구든지 목마르다면 - Gary Wilkerson

사역 초기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에 대해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마지막 날, 명절의 끝날, 예수께서 서서 군중에 외쳐 이르시되” (요한복음 7:37, NLT, 저자 강조)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선언하신 것이 아니셨습니다 —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일어서서 선언하시기를 명절의 가장 큰 날까지 기다리신 후 하셨습니다: “[그분께서] 군중에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오라! 나를 믿는 자는 와서 마시라! 성경에 이름과 같이, “생수의 강이 그의 마음으로부터 흐르리라”” (7:37-38).
이것은 신학적 발표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긍휼의 행동이었습니다. 생명을 잃은 종교는 하나님의 백성을 때려눕혔습니다. 생명을 잃은 종교는 그들의 생기를 되찾게 해주었어야 정상인데, 아무런 생명을 전해주지 못했던 것 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선언하신 것 입니다, “나는 너의 찬물을 담은 컵이며, 이것은 생기를 되찾게 해주는 샘이고, 흐르기를 절대 멈추지 않는다. 너는 나로부터 마심으로써 너의 생명이 계속적으로 새로워짐을 얻게 하여라.
이 놀라운 원천으로부터 마시기 위해 필요한 자격이란 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장하신다. “나를 믿는자는 누구든지 와서 마시라! (7:38).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생수의 강이 흐를 것 이라고 하실 때, 그분은 우리의 삶이 그분의 심플한 만지심을 통해 어떤 모습을 갖추게 될지 보여주시는 것 입니다. 이 만지심은 다른 어떤 것에 비할 바 되지 않을 정도로 생기를 되찾게 해주며, 하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가장 성장이 저해되고, 자포자기한, 따분해 하는 영혼을 새롭게 합니다. 그분의 영이 우리를 채우시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풍성한 생명과 은혜와 자비와 사랑이 넘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친구여. 그의 생명의 흐르심은 모든것을 완전하게 변화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