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큰 기쁨

탕자의 이야기는 많은이들에게 잘 알려져 있기에 자세한 줄거리는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말하고 싶은것은 이 이야기는 주로 잃어버린 아들에 대한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아버지의 큰 기쁨에 대한것입니다.

물론 탕자에 대한 비유는 돌아옴에 대해 말하고 (누가복음 15:11-31) 있지만 단지 아들이 집으로 결국 돌아오는것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무엇이 그 아들을 집에 머무르게 하는 가에 대한것입니다.은혜, 용서, 또 회복에 대한것입니다. 다시 읽어 보면 이야기가 아들이 돌아올때 끝나지 않는다는것을 볼수있습니다. 그것은 중요한점입니다.

아들을 집에 머물게 하는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버지가 아들을 기뻐한다는 것을 아는것입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풍류와 춤으로) 즐거워하더라.” (15장 24-25)

탕자의 아버지는 그를 절대 꾸짖지 않고 정죄하지 않으며 그의 가출에 대해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대신 큰 잔치를 벌리고 가족의 모든친구과 이웃을 초대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기를 갈망 하였었고 이제 그날이 온것입니다.

탕자는 처음에 항의하며 아버지께 “저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했지만 아버지는 그것을 무시하고 그의 어깨에 옷을 입히라고 하며 손가락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아버지의 소유한 모든것을 아들이 이용할수 있게된것입니다. 그곳에는 큰 기쁨, 풍류, 춤과 잔치가 있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사랑이 이 젊은이를 집으로 오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기쁨이 아들을 그곳에 머무르게 하였습니다. 탕자는 매일 일어나서 단지 자기의 아버지가 그가 집에 있음을 기뻐한다는 사실때문에 아버지와 계속 지낼수있을수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그와 함께 한다는 것으로 기뻐하였습니다. 또한 이 젊은이의 삶에서 자벌레들이 먹어 소산되었던 모든것이 회복이 되고 있었습니다. (요엘 2:25)

저는 탕자와 같은 예전에 중독자였던 많은 사람들을 알아왔습니다. 그들은 과거에 중독때문에 잃은것들에만 집착합니다. 잃어버린 배우자, 자녀, 사역. 그들은 주님의 훈계하심을 느낍니다. 그것이 고통스러울수 있지만 예수께서 이 비유를 통에 말씀하십니다. “나의 나라에서 손실되는 것은 없다. 너는 이것을 통해 더욱 강해질것이다. 이제 너는 집에 돌아왔고 나의 은혜가 너를 완전히 회복시켜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