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8일 금요일

부주의한 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마태복음 12:36-37)

우리는 우리의 말이 단순히 땅에 떨어져 죽거나 허공으로 사라지고 공허로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말은 계속 살고 죽지 않습니다!

당신이 말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단 한 친구에게 밖에 험담을 말하지 않았고 그는 나의 말을 다시 반복하지 않을것이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로 끝날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이나 제가 하는말 모든 단어 한마디 마다 다 기록되어 있고 영원토록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심판때에 그 모든것이 우리에게 반복되어 들려질것입니다.

저는 어떤친구와 함께 극심한 험담을 잠깐 나누다가 깊은 책망을 받은것을 기억합니다. 제가 한 말은 사실 이였습니다. 어떤 목사와 다루어야 했던 도덕적인일과 관련된 것이 였습니다. 대화중에 그의 이름이 나왔을때 저는 말했습니다. “그 사람을 믿지마세요. 저는 그에 대해 뭔가를 알고있습니다!”

제가 말을 하면서도 저는 정죄감을 느꼈습니다. 성령님께서 저에게 속삭이셨습니다. “거기서 그만 둬라. 아무도 그것을 알 필요가 없다. 더이상 그럴 이유가 없으니 더 이상 말하지 말아라. 사실일찌라도 그것을 반복하지 말라.”

제가 이미 말해버린것은 충분히 잘못된 것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러고나서 부덕한 자세한 사항을 불쑥 내뱉았습니다. 조용하게 있어야 했을터인데, 결국 성령으로 깊은 책망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조금후 친구에게 연락해서 말하길, “미안합니다. 그것은 험담이었습니다. 제가 그릇된 처신을 했읍니다. 그것을 부디 반복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에 대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하십시요.”

저의 죄가 예수님의 보혈로 덮혀졌습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죄를 지었다고 인정하고 제 안에 남아있는 율법적인 자존심을 성령님께서 노출 시키시도록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저를 겸손케하시고 치유하시게 하였습니다. 이제 누군가에 대하여 비난하는 말을 시작 할때마다 저는 성령이 크고 명확하게 “그만” 이라는 말씀을 듣고 순종합니다.

2011년 10월 26일 수요일

혀를 길들이라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야고보서3:6)

야고보의 서간의 구절에서 그는 믿는자의 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교회에게 그들이 혀로 인하여 파괴되기 전에 그들의 혀를 다스리라는 소명을 발부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이렇게 질문 할수있습니다. 혀를 길들이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것입니까? 정말 경솔한 혀가 큰 죄가 될 수 있습니까?

입이 가벼움은 우리의 종교를 완전히 헛되게 만들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영적 활동이 하나님의 눈에 쓸모 없게 될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야고보서 1:26)

야고보가 여기 “너희 가운데”라고 주목하게 하는것은 교회안의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마약 중독자나 노숙자들이 아닌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 경건하고 영적인듯 보이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적극적이지만 그들의 혀는 억제되지 않고 통제 불능 입니다. 야고보는 거록해 보이고, 친절하고 온유하고 사랑많아 보이는자들, 그러나 교회나 또 직장과 가족들 가운데서는 날카로운 혀를 가지고 항상 험담을 하고 기꺼이 듣는 자를 말합니다. 그들은 소곤 거리며 불평하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종교, 즉 그들이 보여주는 소위 영성은 헛되고 쓸모없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예수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내가 주님을 위해 한 모든 일, 모든 영적인 노력이 헛되었다고 발견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시기 원치 않습니다. “데이빗, 너는 나의 이름으로 큰 일을 행했다. 너는 배고푼 자들을 먹이고, 벌거 벗은 자를 입히고, 귀신을 쫓으며 마약 재활 센터와 알콜 중독자들을 위한 집을 설립했다. 그래, 너는 수많은 자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많은 자들을 나의 나라로 인도했다. 그러나 그 모든것이 헛되다. 너의 입에서 많은 용기를 북돋는 말이 나왔으나 또한 원한이 맺힌, 불친절하고 증오하며 질투하는 말들도 있었다. 내가 혀에 대해서한 경고를 너무 하찮게 여겼다.

당신이 짐작하길, “내가 무자비 하게 말 한것 때문에 나의 영성을 하감 하시면 하나님은 사랑이 많지 않으시다” 라고 할수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한번도 혀가 길들여 지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을 눈깜박하지 않고 험담하는 자들을 말하는 것 입니다. 여기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전 13:1-3)

2011년 10월 21일 금요일

거룩한 진리의 찌르는 화살

하나님의 언약의 어떤 약속을 우리것으로 삼기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안에 무슨 한 일을 이루셔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모든일 전에 선행되어야 하는 이일은 무었일까요? 예레미야는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영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렘32:40) 하나님의 언약의 선행 작업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우리 마음에 그분의 대한 경외함을 주는것입니다.

예레미아는 구약이 아닌 하나님의 신약의 제공하심을 말하는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신약의 사역이 어떻게 수행될것인지 확실히 알려주십니다. “마음에 경외함을 두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안수하거나 육체의 노력으로 거룩한 경외함을 만들수 없다고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 일이 우리에게 수행되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성령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구절을 통해 말하십니다. “나는 네 안에 놀라운일을 할것이다. 나는 나의 영을 보내어 너안에 거하고 네게 새로운 마음을 줄것이다. 그분는 모든 육의 행위를 사장시키도록 너에게 능력를 주고 죄악의 권세에서 완전한 자유로 인도할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분은 너로 하여금 내가 기뻐하는것을 의도하고 행하게 할것이다.”

“그러나 성령이 다른일을 수행하시기전에 꼭 네안에서 하셔야 할 일이있다. 그는 너에게 죄에 대하여 하나님을 진실로 경외하는 마음을 줄것이다. 그는 너가 나의 계명에서부터 떠나지않도록 나의 거룩함에 대한 깊은 경외감을 심어줄것이다. 그렇지않으면 너의 죄가 항상 너를 멀리 떠나가게 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성령은 우리가 죄를 보는 시각을 변경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계속 정욕을 하찮게 여길때 절대 자유함을 얻지못한다는걸 알고계십니다. 성령께서 어떻게 이역할을 하십니까? 죄를 의식하게하는 하나님의 말씀, 곧 거룩한 진리의 찌르는 화살을 사용하십니다.

2011년 10월 17일 월요일

교제로 부름 받음

사도 바울은 기록했습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고전 1:9)

이 구절 하나는 우리 삶에 모든 폭풍을 이길수있는 진실하나를 보여줍니다. 우리 주위의 모든것이 흔들릴때에 우리 마음을 동요치 않게 지켜주는 단순한 진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온세상을 사로잡는 두려움에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교제를 유지하는 소명을 응답함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배웁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1:9)

우리의 지성을 신뢰하라고 불림을 받지않았습니다. 우리는 육체나 사람이나 세상의 아무것도 신뢰하라고 불림받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마태11:28)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평화, 신뢰, 만족입니다. 저는 믿음으로 영광의 주님을 볼때 참 큰 만족을 체험했습니다. 나를 사랑하시고 그의 감미로운 임재하심으로 나를 부르시고 그분께서 모든것에 족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구걸하거나 애원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것 가운데 예수님을 바라볼수록 주님이 더욱 기뻐하시는것을 알수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그를 기쁘게 할수없기 때문입니다.

아쉽게도 예수를 사랑하는 많은 자들이 위기에 처했을때 걱정하며 조바심칩니다. 그들은 시험을 어떻게 탈출하거나 견딜수있는 방법을 알아 내려고 시간을 보냅니다. 그들은 주님이 “와서 더불어 먹으라”는 주님의 음성을 유념하지 않습니다. 저는 매일 기도로 한시간 정도의 시간을 보내는것을 말하는것이 아닙니다. 저는 하루종일 주님에게 초점을 맞추고 “쉬지않고 기도” (데살전5:17)하는것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간단하고 조용한 대화, 단지 그와 말하며 더욱 그와 친숙해져 위기때에 깜짝놀라서 기도의 방으로 급히 가거나 낯선사람같이 울부짖을 필요가 없게 되는것입니다.

그는 우리의 모든, 크고 작은 부르짖음을 들으십니다. 그의 신실함으로 항상 우리를 응답하실것입니다.

2011년 10월 14일 금요일

메마른 땅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홍해를 통과해 가는길에 “마른땅”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십니다. 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출14:16)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에게 “너희는 마른땅으로 지나갈것이다”라고 놀랍게도 네번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려고 할때 또 이 구절을 봅니다. 그들은 약속된 땅으로 들어갈때에 마른땅으로 요단강을 건너갑니다.

간단히 말해서 마른땅은 경로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다면 당신은 어디로 가고있습니다. 당신은 후퇴하거나 뒤로가고 있지않습니다. 당신의 마른땅은 주님의 계획, 당신 삶 가운데의 주님의 사역, 그의 행하실 기적입니다. 당신은 계시를 향해,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승리, 더욱 큰것을 향해 가고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증명하고있습니다. 바로와 그 군대들이 어디에서 전투를 패배했는지 유념하십시요. 하나님의 주신 마른 땅입니다. 마른땅은 바로 마귀가 당신을 쫓아오는 곳입니다. 그는 당신이 가장 약할때에 공격을 하기원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마른 땅에서 주님은 마귀의 권세와 권력으로 부터 “전차의 바퀴”를 제거해 주십니다.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쫓아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출 14:28)

하나님께서는 본질적으로 말하시는것입니다. “나는 네가 어떤 환상이나 음성이 아닌 믿음으로 계속 움직이길 원한다. 오랜 가뭄에 있는 가운데에 나의 음성을 듣지못하고 앞을 보지못하고 마른땅에 있을때 내가 너를 어디로 인도하고 있다는것을 확신하길 원한다.

주님은 우리의 마른땅을 새로운 신선한 물로 변화시켜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내가 자산에 강을 열며 골짜기 가운데 샘이 나게 하며 광야로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으로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이사야41:17-18)

친애하는 성도여러분, 지금 메마릅니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곧 너는 수확을 볼것이다. 마른땅이 있던곳에 생명이 샘이 너의 발앞에 솓아날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것을 창조한것이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마른땅에서 무엇을 할지 보아라.”

2011년 10월 11일 화요일

대재앙

어떤 과학자가 대재앙에 대하여 말하였습니다. “온 세상이 흔들렸다.” 또 다른자는 그것을 “세상 역사상 가장 최악의 자연 재해” 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몇 년전에 아시아 전체 해안을 엄습한 수중 지진을 말하는 것이였습니다. 수만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우리주변에 지속적으로 재앙을 보고있습니다.
무시무시한 사건이 일어날때면 저는 하나님 아버지께 한가지 질문을 가지고 갑니다. “주여, 이 모든것이 무엇에 대한것입니까? 이것은 단순히 설명할수없는 자연의 사고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야 할것이 있는것입니까?”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말할수없은 고통과 불행을 겪는것에 대해 한탄합니다. 괴로워하는 자들을 위해 진실로 기도합니다. 저희의 사역단체는 기독교 구호 기관을 통해 황폐된 지역에 교회 및 집들의 재건을 도우려 수천달러를 보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바,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상처받은자들의 아픔을 측은히 여기시고 또한 성령님께서 영향받은 나라에 있는 모든신자들에게 평안을 부어주십니다.

미국은 사려 깊고 너그러운 나라이며 기도하고 나우어 주고 도움이 필요한곳에 가는 많은 자들의 반응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저의 영혼 어느 깊은곳이 저를 괴롭힙니다. 재난의 규모가 이해가 되지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감각을 잃고 멍하게 된것 같습니다.

미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이 축복받는 소식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제어가 풀린 강력한 권능앞에 무릎꿇지 못하고 끔찍한 자연 재앙을 보고도 우리 스스로를 낮추지 못한다면 무엇이 하나님을 조롱하는 자들을 침묵하게 할것입니까? 우리는 이제 더이상 충격을 받지도 못하는 것입니까?

생각해 보십시요.

  • 정치적 올바름 (소위 political correctness) 을 위해 우리 사회에서 하나님을 추방
  • 온 세상의 세속주위와 물질주위에 위존
  • 교회는 세상 그 자체보다 더 세속화 되어감
  • 폭력과 무관심의 상승
  • 성경은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받지 않음
  • “흔들릴수있는 모든것이 흔들리는” 날
  • 사려깊은 사람들이 “누군가가 자연을 조작하고 있고 설명할수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직관을 가지고 있음
  • 한번이라도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은 조롱받지 않으실것이라는것을 생각없이 계속 움직여가는 사회

이런일들이 일어날때 우리는 하나님의 어떤 신성한 자비도 깨울수 없는 영적 무감각의 경계선을 넘은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시고 은혜로우시고 용서할 준비가 되어있으십니다. 주 예수님의 오시는 날이 다가올수록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을 통해 그의 사랑과 자비를 나타내시길 바랍니다.

2011년 10월 10일 월요일

누군가 알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시편 139:1).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그분은 나의 깊은 생각을 아십니다.

혀에 말이 하나도 없으나

하나님은 모두를 아십니다.

그분이 앞뒤를 둘러싸시고

나에게 안수하셨습니다.

지식이 너무 높아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흑암이 나를 두를 때에라도,

그분은 마음을 살피사

그것을 아십니다.

내안의 사악한 길을 보고 계십니다.

오직 그분의 지혜만이

나를 이해할 있습니다.

내가 그분께 부르짖는 날에

그분이 응답하시고 영혼의 힘으로

나를 강하게 하셨습니다.

흑암과 빛이 그분께는 동일합니다.

나의 흑암을 아시고

내게 빛을 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나를 아십니다.

2011년 10월 7일 금요일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묘사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호세아 11:3).

이 구절을 원어로 읽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이 절망가운데 있을 때 내가 그들에게 와 더럽고 험한 곳을 지나며 다정하게 양육했다. 내가 유모처럼 그들을 내 팔에 안았다!” 그러나 호세아 11장7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 백성이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My people are bent on backsliding from Me(KJV).” 여기서 bent 란 말은 “불안 가운데 버티다, 의심하며 버티다,”입니다.

이스라엘이 주님의 사랑과 다정함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여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은 그들에 대한 나의 사랑을 의심하고 있다. 그들은 진정으로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사랑을 확신하지 못한다!”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셨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우상숭배자들이었고, 타락한 자들이며 의심하는 자들이었으므로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지 않도록 스스로 자초하였다. 우리는 일부러 죄를 지었고 그분은 틀림없이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8절).

당신을 위로하고 치유하시는 그분의 말씀들을 들어 보십시오:

“내가 영원히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끊임없이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지은 그의 영과 혼이 내 앞에서 피곤할까 함이라”(이사야 57:16).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에게서 본 것이 진노가 전부라면 네 영혼은 너무도 압도당하여 피곤할 것이다.”

“그의 탐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내가 노하여 그를 쳤으며 또 내 얼굴을 가리고 노하였으나 그가 아직도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걸어가도다 내가 그의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그를 인도하며 그와 그를 슬퍼하는 자들에게 위로를 다시 얻게 하리라”(17-18절). 이 말씀이 하나님의 백성이 실패했을 때 하나님이 그들을 포기하신다는 말씀처럼 들립니까?

당신은 지금 깊은 물속을 지나가는 중일 수 있습니다. 꼭 유혹이나 시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해할 수 없이 당신에게 닥친 압도적인 사건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이해를 초월하는 온갖 풍파가 당신에게 밀려오고 있습니다. 당신의 가정에, 교회에, 직장에, 사방에서 몰려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와중에서 당신을 안고 나오시기 원하십니다. 당신이 영적으로 건강하도록 회복시키기 원하십니다! 당신의 모든 완고한 면모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이 지금 당장 당신이 믿을 수 있는 것의 전부라면 , 그분이 당신에게 자신을 당신의 천상의 유모로 봐주기를 요청하신다는 것이 당신이 지금 당장 믿을 수 있는 것 전부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2011년 10월 6일 목요일

소망, 기쁨과 평강으로 충만함

하나님의 평강이 당신의 삶을 통치하기 원한다면, 몇 가지를 그만두어야만 합니다.

  • 하나님이 모든 것을 어떻게 이루어 가실 지 생각해 내려는 것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 염려하고 안달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빌립보서 4:6).
  • 당신 생각에 당신에게는 이것이 맞는다고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을 그만두어야합니다
  •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치십시오!

크리스천들의 평강을 빼앗는 사탄의 가장 효율적인 함정 중 하나는 그들이 육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고 그들을 확신시키는 것입니다. 그는 항상 내게 이것을 불쑥 내밉니다!

때로 조용히 기도할 장소가 필요할 때 나는 차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갑니다. 푸른 들과 숲을 바라보며 그분의 임재를 누리며 주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 주님을 위해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듭니다!

나는 기도합니다. “주님, 나는 주님의 나라를 위해 별로 성취한 것이 없습니다. 내가 하는 것은 기도와 설교하기 위해 메시지를 받고 교회에 가서 전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온 세상이 지옥으로 가고 있는데 나는 당신을 위해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습니다!”

당신은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없습니까? 당신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지만 거룩하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나는 거룩하다고 느낀 적이 거의 없습니다. 나의 최상의 때, 성령의 기름 부으심 아래서 말씀을 전하고 있을 때조차도 그렇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하겠지요. “데이브 형제, 당신이요? 당신이 하나님을 위해 별로 하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구요?” 그렇습니다! 마귀가 와서 우리 모두가 보잘것없고, 이룬 것이 없다고 느끼게 만듭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끔찍한 생각에 굴복해서 우리의 평강을 잃어버립니다!

바울이 우리를 위해 드린 기도를 들어보십시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로마서 15:13).

그분의 선하심을 신뢰하십시오. 그분의 사랑과 자비를 믿으십시오. 당신 때문에 진노 하셨다거나 당신에게 화나셨다고 그분을 비난하지 마십시오. 그분의 평강이 당신의 마음과 삶 전체를 주장하게 하십시오!

2011년 10월 5일 수요일

그분의 평강의 선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6-7).

최근 이 구절을 다시 읽었을 때 이전에 전혀 몰랐던 어떤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고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나아가 응답해 주심에 감사하라고 가르쳐줍니다. 그러나 응답을 얻는데 대해서는 일체 말이 없습니다! 바울은 방향을 지시하는 말씀, 구원, 기적이나 치유를 받는 데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가 하나님의 평강을 선물로 받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요청과 간구에 대해 그분의 평강의 선물로 응답하십니다. “너희 구할 것을.......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6-7절).

다시 말해서 우리의 모든 기도와 심령의 부르짖음에 대한 하나님의 첫 번째 응답은 그분의 평강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들 전부가 공통적으로 이것을 갖고 있습니다. 자신의 은밀한 기도의 골방으로 들어가면서 얼마나 그들이 상심했던지 상관없이 그들은 그분의 평강으로 채워져 나옵니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의 통치 체제에 따르도록 스스로를 제한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의 심령을 준비시키고 사건들을 지휘하시며 이곳저곳에서 행하시지만 그분의 섭리가 당신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이룰 때 까지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네게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는 너의 필요, 즉 마음과 생각의 평강을 줄 것이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이 기도 가운데 주님과 레슬링을 합니다. 그분께 울며 눈물로 간구합니다. 천국 문들을 두드리고 모든 약속을 청구합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나고 몇 달이 지나면서 우리는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주님, 왜 응답해 주시지 않습니까? 무엇이 내 기도를 막고 있습니까? 내가 무엇을 했기에 당신을 슬프게 하고 불쾌하게 했습니까?”

사실은 하나님이 이미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모든 지각에 뛰어난 나의 평강이 있다! 내가 모든 것이 합력하여 너에게 선을 이루게 할 동안 이 평강을 받아 그것이 네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우리는 그분의 약속이 성령에 의해 이루어지기까지 하나님의 평강 안에서 지킴을 받을 것입니다!

그분의 평강을 붙들고 그것이 당신의 마음을 주장하고 통치하게 하십시오!

2011년 10월 4일 화요일

하나님의 평강이 주장하게 하십시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로새서 3:15).

이 한 구절은 엄청난 명령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의 몸 전체를 불러 그분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몸을 주장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모든 것의 주관자로서 좌정하여 우리 삶의 중재자가 될 것입니다. 이 부르심이 울려 퍼져야 할 때가 있다면 바로 혼란과 혼동의 때인 오늘날입니다!

주님은 왜 초대 교회에게 그분의 평강이 그들의 삶을 주장하도록 하라고 명령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그분이 다가올 일을 알고 계셨고 그들을 준비시키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단지 몇 년 내에 엄청난 혼란이 그들에게 닥칠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고문당하고 핍박을 받을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곤경에 직면하고, 집을 잃고 세상에 속한 모든 재물을 징발당하고 그들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께 호의를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악한 자들로부터 공격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경고하시며 준비시키고 계셨습니다. “너희는 내 평강 가운데 뿌리를 내려야만 할 것이다. 그것만이 앞으로 다가올 모든 엄청난 변화를 겪는 동안 너희를 지켜줄 것이다!”

“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립보서 4:9).

현재 거짓 평강이 많은 교회를 휩쓸고 있습니다. 이 평강은 앞으로 다가올 고난의 때에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이는 고집 세고 죄에 눈이 먼 크리스천들의 평강입니다! 모세는 이러한 신자들을 자기기만에 빠졌다는 의미로 “스스로 복 받은 자들”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우상숭배를 행하는 모든 사악하고 불순종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저주가 내릴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그들이 평강의 거짓된 의미로 자신들의 죄악 된 길을 회칠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저주의 말을 듣고도 심중에 스스로 복을 빌어 이르기를 내가 내 마음이 완악하여 젖은 것과 마른 것이 멸망할지라도 내게는 평안이 있으리라 할까 함이라”(신명기 29:19).

모세는 악에 대한 자신의 정욕을 만족시키기로 결심한 하나님의 자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계속 죄 가운데 있어도 괜찮고 여전히 구원받고 천국에 갈 것이라는 편안한 교리를 발견한 사람입니다. 그는 스스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고 그래도 내 마음에 평강을 잃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 또는 세상 열방에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지옥의 권세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분이 당신의 영혼 속에 심어놓으신 하나님의 평강을 뺏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들이 평강의 지배를 받도록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당신의 마음을 주장하게 하십시오.”

2011년 10월 3일 월요일

불신 치료법

참고 서적을 뒤져 불신 “치료”법에 대한 목록을 찾았습니다만 수많은 것들 중에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간단한 답을 구했고 그분이 내 마음에서 불신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두 가지 생각을 주셨습니다.

1. 모든 걱정, 두려움과 짐을 붙들어라. 그 모두를 예수님께 가져가서 그분의 어깨에 얹어 두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베드로전서 5:7).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당신에게 주는 하나님의 개인적인 초청장, 그분의 요청입니다. “나에게 올려놔라. 한 시라도 더 짊어지고 다니지 마라. 나는 너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신경을 쓰고 너를 위해 모두 감당할 만큼 광대 하단다!”

얼마 전에 극심하게 짓눌린 상황에 있던 사람이 전화를 걸어 나에게 격려의 말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날 너무도 많은 문제로 압도당해 있어 단 하나도 더 처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미안하지만 다른 때 전화해 주셔야겠어요. 지금은 과부하 상태입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절대로 스트레스로 인해 지치지 않습니다! 절대로 과부하 되시지 않습니다! 그분의 어깨는 그분의 모든 자녀들의 짐을 지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촉구하십니다. “나에게 모두 내려놔라!”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시편 55:22). 지금 당장 당신의 목록을 훑어 내려가십시오. “하나님, 당신께 이것을 드립니다. 이것도, 저것도. 이 짐, 이 고민, 저 관계, 저 문제를 당신께 드립니다.” 그리고 그분이 돌보신다는 것을 온전히 확신하십시오!

2.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대로 살기 시작하십시오.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살라는 주님의 도전을 받아들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태복음 4:4). 당신은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고 죽을 것이다!”

당신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우리의 영원한 구원에 대한 그분의 말씀을 신뢰할 수 있으면서 우리의 매일의 필요와 문제들에 대해서는 신뢰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가장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 그분을 믿을 수 있습니다. 도움과 인도, 죄를 이기는 능력에 대해서 믿는 것이 왜 우리에게 더 어려울까요?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유다서 24). 하나님이 이것을 당신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을 지키는 부담을 그분이 떠맡게 하십시오! 주님께 나아가 그분의 말씀에 도전하십시오! 당신의 인생을 말씀에 걸겠다고 그분께 말하십시오! 당신이 그분의 모든 말씀을 신뢰한다는 것을 보여 드리십시오 - 그리고 복을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