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31일 화요일

새 언약의 축복

하나님의 영이 사울왕을 떠난 이후 그의 불순종은 그를 마귀의 영향을 받게 하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악한 영이 사울을 괴롭혔고, 그는 점쟁이에게 자문을 구하였습니다.

아마도 당신은 사울의 인생을 볼때에, “사울이 한 일들을 보면 그렇게 못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은 왜 그렇게 사울에게 혹독하셨을까?” 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진리의 말씀이라고 다시 한번 말하고 계십니다. “나에게 순종이 어떤 의미인지 알려주는 것이다. 나는 성의 없는 반쪽 짜리 순종이 아닌 너의 완전한 마음과 사랑을 원한다.”

만약 사울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흐릿하고 불분명하였더라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기회를 한번 더 주셨어야지 하면서 합리화 시켰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에게 하신 하나님의 지시는 분명하였고, 하나님의 명령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과 명령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하신 것은 구약시대의 율법의 근거하여 일어난 일이지 않습니까. 현재 우리는 은혜의 날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불순종할 때 사울에게 하셨듯이 우리에게 혹독하게 대하시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은혜의 약속; 신약에 나온 하나님의 말씀은 이러합니다. :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로마서 2장 6-11절
구약에서의 사울과 새 언약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차이점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히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고자 하는 진실한 마음이 있다면, 성령님께서 그 명령을 지키는데 필요한 모든 능력과 힘을 더해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새 언약의 큰 축복인 것입니다.

2013년 12월 30일 월요일

구덩이에서 끌어올리시는 주님 by Gary Wilkerson

제가 십대시절에, 여름에는 텍사스 동부에 있는 목장에서 일을 거들어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목장의 관리자 Jimmie(지미)는 크고 건장하였고, 시력이 좋지 않았지만 모든 일을 처리하는 방법을 알았습니다. 예를 들면, 그는 제게 풀을 깎고 건초를 끄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루는 우물을 파기 위해 6피트(1.8미터)되는 구덩이를 삽질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동안 물을 마시며 쉬는 동안 지미가 구덩이의 위치를 잘못 보고 그 곳을 향해 발을 디뎠습니다. 제 입은 물로 가득 차 있어서 그에게 주의를 주기 전에 그는 구덩이에 빠져버렸습니다. 저는 그가 깊은 구덩이에 빠져 사지에 골절이라도 입었을까봐 두려워 그를 돕기 위해 재빨리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구덩이를 바라보았을 때 지미는 이미 자연스럽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구덩이에서 기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지미의 인생을 그러했습니다. 그는 시력뿐 만 아니라 청력마저도 잃어가고 있었기에 그의 발 앞에는 매일 수 많은 구덩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가 빠진 모든 구덩이에서 기어 올라와 그저 앞으로 계속 나아갔습니다. 그는 제게 그리스도의 지체에게 주는 믿음의 사례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인생에서 빠지는 구덩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의 시각으로 그러한 구덩이를 직면하도록 말씀하십니다.

현재 당신이 그러한 구덩이에 빠져 꼼짝 못하고 있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어려운 인간관계, 재정난, 오래 앓은 질병일 수도 있겠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한때 그리스도와 가깝게 동행하던 그때가 먼 꿈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현재 당신이 빠져있는 그 구덩이를 통하여 능력의 말씀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구덩이의 종류 중 하나는 우리 자신 스스로가 만드는 것입니다. 지난 죄악된 습관이나 불건전한 생활패턴으로 돌아가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족한 삶에서 점점 멀어지고 방황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종류의 구덩이에 있느냐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의 자비로우신 주께서 그 모든 종류의 구덩이에서 나와 그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마태복음 12장 11절) 예수님께서는 “네가 자신의 구덩이를 만들었더라도 상관 없다. 세상의 법도 내가 너를 그곳에서 끌어올리는 데 막을 수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2013년 12월 27일 금요일

하나님은 당신이 그분의 말씀을 믿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겪어야 했던 고충을 생각할 때 당신은 이렇게 말하고 싶어할 것입니다. “하나님,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시는 건 아닙니까? 그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고, 또 당연히 그럴만한 상황이지요. 그들의 절실한 필요 때문에 울부짖었다고 해서, 당신을 시험한다고 어떻게 단정 지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이 백성들은 잘 먹여져 왔고 잘 가르침 받아왔으며, 이사와 기적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영적 초보자가 아니었고, 돌보아주는 목자가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증거의, 가시적 구름 기둥의 보호가 날마다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밤 하늘에는 불기둥의 광채가 그들에게 위안을 주고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그들은 하늘로부터 어김없이 땅으로 내려진 만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의 믿음을 쌓는 데에 필요했던 모든 것을 제공해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을 때에는 사소한 말씀을 하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이는 나를 기쁘게 할 수 없다. 너희는 내가 누구인지, 내가 항상 믿음에 상주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진실로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잘 먹여져 왔고 잘 훈련받아온 나의 자녀가 나를 신뢰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마땅하다!”

그렇다면 당신이 겪고 있는 시험은 무엇입니까? 그 고난의 시간에 하나님은 당신에게서 무엇을 원하실까요? 그분은 당신이 그분의 말씀, 즉 그분의 약속을 믿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의 그 고투에서 그분이 당신과 함께하고 계심을 당신이 전적으로 신뢰하기를 원하십니다. 온 지옥이 당신을 향해 진격해온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분의 임재는 당신의 공포와 눈물 가운데에서 당신을 절대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을 대적하는 어떤 마귀의 화살도, 어떤 막강한 침략도 당신을 파괴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천부께서는 이미 구원의 계획을 준비해놓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맹신적으로 그분을 붙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분은 당신이 모든 강렬한 시험을 대면하며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이것을 다 이해는 못해도, 주님이 나를 저버리지 않으실 것을 알아. 나는 그분이 나와 끝까지 함께하실 것을 신뢰하고 있어!”

당신의 투쟁은, 주님이 능력과 사랑으로 당신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으며, 그분을 완전히 신뢰할 때야 끝날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처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눈을 감으셨다는 모든 생각은 버리세요. 그것은 그분을 시험하는 것이며, 그분의 신실하심을 증명하라고 그분을 선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미 수차례에 걸쳐 입증해 주셨습니다!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시험 외에는 너희가 어떤 시험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하나님은 신실하사 너희가 감당할 수 있는것 이상으로 시험 당하는 것을 너희에게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또한 그 시험과 함께 피할 길을 내사 너희가 능히 그것을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13)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는 쓰러지고 있지 않다. 이 모든 과정 동안 내가 너와 함께한다! 네가 만일 내 얼굴을 구하며 나를 신뢰한다면, 나는 끝까지 너를 도울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항상 너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2013년 12월 26일 목요일

시험의 장소

“내가 므리바의 물들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 (시편 81:7)

우리는 우리 속마음을 정말 모릅니다. (예레미야 17:9 참조) 우리가 아무리 오랫동안 주님과 동행했다 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기도했다 하더라도, 또는 얼마나 많은 성경 지식을 습득했다 할지라도 상관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믿음이 아닌 것을 우리 안에서 보신다면, 그리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부어주실 것에 대해 신뢰하지 못한 영역에서, 그분은 우리를 므리바(시험/검증의 장소)로 데려갈 것입니다. 그분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에 우리가 처하게 할 것이며, 우리는 혹독한 시험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형제자매를 당신이 사랑하고 있다고 분명히 믿고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내게 주셨다.”고 당신이 증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당신이 한 영역에서 문제를 갖고 있음을 알고 계십니다. 당신은 누군가 당신의 사랑이나 친절을 모독할 때마다 분통을 터뜨립니다. 그럴 때마다 당신은 떨쳐버릴 수 없는 상처와 깊은 분노를 갖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당신은 그 사람을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그러한 위선을 어떻게 다루실까요? 그분은 당신을 시험의 장소로 데리고 가셔서, 한 비굴하면서도 고약한 성도를 당신 면전에 두실 것입니다! 갑자기 당신은 이렇게 기도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주님, 저 사람을 제 인생에 왜 들여오셨나요? 그는 제 육신의 가시입니다! 저는 당신을 신실하게 섬기려 노력해왔으나 그 대가로 받는 것은 이러한 모욕뿐이군요!”

주님은 당신을 므리바에 두고 계십니다! 그분은 당신 안에서 무언가를 완성하려 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당신이 그 상황에서 일어나서 이렇게 외칠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고 계심을 알아. 내 삶의 걸음은 그분에 의해 정해졌고, 내 모든 상처와 분노를 해결하는 과정을 도우실 거야!”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므리바로 데려가셨지만,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그분은 당신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인내하십시오! 주님은 믿음을 찾고 계시며, 당신의 마음이 어떤지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필요를 어떻게 충족시킬지 아십니다. 그분은 오직 당신이 그분을 신뢰하기만을 원하십니다!

2013년 12월 25일 수요일

하나님께서 듣기 원하시는 것!

인간은 먹지 않고도 몇 주를 견딜 수 있으나, 물 없이는 며칠밖에 견딜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르비딤에 왔을 때, 그곳에서는 마실 물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출애굽기 17) 얼마 되지 않아 아이들은 울기 시작했고, 가족들은 점점 갈증으로 지치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절박한 상황이었지요.

모세는 주님의 뜻을 알고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도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혹독하게 시험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그들 자신을 그분의 보호 안으로 완전히 맡기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믿음으로 일어나서는 “하나님은 전능하시다!”라고 말하기를 그분은 갈망하셨던 것입니다. 그다음에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가 그곳의 이름을 맛사와 므리바라 하였으니, 그 까닭은 이스라엘 자손의 다툼 때문이요, 또한 그들이 주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가, 아니 계신가? 하였기 때문이더라.” (출애굽기 17:7)

“맛사”와 “므리바”라는 단어의 뜻은 둘 다 같은 의미이며, “고난과 시험의 장소”라는 뜻입니다. 모세는 진영 사이를 뛰어다니며 이렇게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맛사, 즉 시험에 불과하다! 이게 끝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셨으니 잘 버티어라! 주님께서는 믿음을 찾고 계시고, 우리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으시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을 신뢰하기만을 원하신다!”

비참하게도,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을 신뢰하지 않았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의 막대기를 손에 들고 호렙으로 가서 그곳의 반석을 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모세가 그 반석을 쳤을 때, 이스라엘 백성의 갈증을 해소할 물이 솟구쳐 흘렀습니다. 그들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분의 백성과 함께하고 계심을 다시 한 번 확증해 주셨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을 어떻게 시험했습니까? 그 시험은 모세를 향한 그들의 분노였을까요? 그들의 불평이었을까요? 아니면 그들의 우상 숭배적 간음이었을까요? 이러한 것들 중 어느 것도 문제의 핵심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하나님을 시험했는지는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이 주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가, 아니 계신가? 하였더라.”

하나님께서는 그 물을 내내 저장해 놓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의 갈증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부터 그 물을 공급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분이 열망했던 것은, 그분의 특별하고도 선택된 백성이 그들을 향한 그분의 사랑을 인식하며, 자신들을 그분의 신실한 팔에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또다시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시험하셨는데, 이번에는 그들에게 배고픔을 허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모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 네 하나님께서… 너를 낮추시며 주리게 하시고… 네 마음을 알고자 하심이라.” (신명기 8:2-3)

여기 또 하나의 믿음의 시험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공복을 움켜쥐고 하나님께서 빵을 보내주시기를 기다려야 했을까요? 그들이 서로의 믿음을 부추겨야 했을까요? 하나님께서 듣기를 원하셨던 것은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우리를 위해 홍해를 열어주셨고, 마라의 쓴 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우리를 먹여주실 것을 신뢰합니다. 살든지 죽든지 우리는 당신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듣기 원하셨던 전부입니다!

2013년 12월 24일 화요일

그분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당신의 마음을 예수님께 드릴 때, 당신은 큰 전투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사탄이 당신의 삶을 지배했을 때 당신으로부터 빼앗아 갔던 전리품을 다시 쟁취함으로써, 지옥의 권능은 패배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당신이 아직도 영적 승리와 자유를 만끽하고 있을 때 두 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두 왕은 창세기 (14:17-24)에서 아브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두 왕과 같은 왕들입니다.

아브람은 어떤 인간이 경험했던 것보다도 더 강한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의 발치에는 부와 재물, 그리고 명성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결정에 대해 숙고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소돔 왕의 제안에 대한 그의 반응은 빠르고 명백한 “NO”였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왜냐하면, 아브람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자신의 명성보다는 하나님의 명예를 보존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는 소돔 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사람들과 재물, 이 모든 것을 당신께 돌려주노라. 왜냐하면, 이 모두가 내 주님께 속해있기 때문이라. 그분께서 만일 나를 부유하게 하려고 작정하셨다면 그렇게 하시리라. 그러나 네가 나를 부자로 만들었다고 자랑하는 것을 나는 원치 않노라.”

아브람은 대체 어디에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그렇게 분리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며, 재물의 축복을 제안하는 사탄의 유혹을 그토록 노골적으로 거절할 수 있는 독립성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요?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신선한 계시가 그의 힘의 원천이었다고 명백히 기록합니다. 멜기세덱은 하나님 성품의 놀라운 계시로 아브람의 시야를 열었습니다. “멜기세덱이 아브람을 축복하여 이르되…, 네 원수들을 네 손에 넘겨주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 (창세기 14:19-20)

이 구절에는 El Elyon 이라는 여호와의 이름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 문자적 의미는 “하늘과 땅의 창조자이자 주권자이신 가장 높으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멜기세덱은 아브람에게 이렇게 선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너의 주님은 단지 다른 모든 신 위에 계시는 하나님뿐만이 아니라 전 우주의 창조주시다. 그 안에 있는 모든 부유함, 가축, 소유물들이 다 그분께 속해있다. 그분은 네가 보는 주위의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시다.”

2013년 12월 23일 월요일

성령 안에서의 삶 by Gary Wilkerson

때로는 이렇게 의문하는 사람이 저 혼자가 아니길 바랍니다. “그분께서 주신 의로움의 선물을 내가 실제로 행하고 있나?” 갈라디아서 5장 1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성경 말씀의 어떤 구절이든 은혜의 렌즈를 통해서도, 또는 율법의 렌즈를 통해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제가 갈라디아서 5장 16절을 읽을 때, 때로는 “내가 이 말씀대로 해볼 거야!”라는 “행위적” 사고방식에 빠져서는 저 자신에게 이렇게 다짐하곤 합니다. “좋아, 나는 오늘 이 말씀대로 살아볼 거야. 나는 성령 안에서 행할 거야!” 그러나 저는 곧 불안해지며, 갑자기 성령 안에 전혀 거하고 있지 않은 저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서 그 다음 구절은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말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은 렌즈를 통해 읽습니다. “내가 육신에 거할 때도 있지만, 성령에 거할 때도 있어. 그러나 내가 성령에 거한다 할지라도, 곧 화를 내게 되는 상황으로 바뀌면 다시 육신으로 되돌아가곤 하지!”

갈라디아서 5: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당신은 성령 안에 거합니까? 예수님께서 당신 마음속에 들어오셨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그분이 당신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까? “네 마음이 정말 의로운지 내가 점검해볼 것이다. 그런 후에 성령께서 와주시기를 나중에 초청하자꾸나.”

아닙니다! 그분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성령께서 당신 안에 거하시지 않으면 당신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성령 안에서 행하라.”고 말씀하실 때는 “영적으로 되도록 노력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하나님의 영이 네 안에 거하신다. 그러니 성령으로 행하라!”는 뜻입니다. 그분의 의로움은 당신께 이미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안에서 이미 시작한 일을 따라오라. 네 삶에 이미 주어진 것들을 실천에 옮겨라. 그리고 염려와 걱정을 멈추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하라.”

당신 자신이 너무 많이 육에 거하고 있는건 아닌가하는 의문을 갖지 마세요. 당신은 이렇게 요청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제가 더욱 영적이 되도록 도와주시겠어요?” 아닙니다. 당신은 이미 영적이십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당신 안에 거하십니다! 하나님의 호흡이신 성령께서 당신 안에 거하고 계시며 당신은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2013년 12월 21일 토요일

주께서 만져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by Carter Conlon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에 자신을 부인한 자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고 저주하며 고개를 저으며 멸시하고, 예수님의 옷으로 내기를 할 때 예수님은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 이니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세대에 나를 미워하는 그 영혼을 사랑하도록 부르신 사명을 감당하게하는 힘은 바로 이 완전한 사랑에서 나옵니다.

반면에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완전하게 되지 못한사람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만져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나무로만 보였던 맹인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맹인)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이나이다 하거늘.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것을 밝히 보는지라” 마가복은 8장 23-25절

이 맹인은 부분적인 시력밖에 없었던 것 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이 보시는 대로 다른 이들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 없으면 그들의 겉모습과 태도로 판단하고 내치게 됩니다. 하지만 그 맹인이 주께서 다시 한번 안수해주시기를 원했을 때에 그의 눈을 들게 하셨고, 바로 명료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고자 간절히 원한다면 – 교회에서의 나와 교회 밖에서의 내가 다른것이 지겹고, “하나님, 나의 무기력함은 이제 그만이면 됐습니다. 제가 정신 나갔다고 말하는 사람이나 나를 조롱하는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신경쓰지 않겠습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로 설 수 있게 하는 힘을 내게 주시옵소서!”라는 외침을 마음에 품고 있다면 – 당신을 위한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맹인을 다시 안수해 주신것 처럼, 하나님께서 당신을 다시 한번 만져주고 싶어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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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ter Conlon 목사님은 타임스퀘어 교회( Times Square Church)를 세우신 David Wilkerson 목사님의 초청으로 1994년 부터 섬기시고, 2001년에 담임목사님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강하고 자애로우신 리더이고, World Challenge 를 통해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에서 자주 오시는 초빙강사입니다.

2013년 12월 20일 금요일

기쁜 마음

결혼생활에서 신경을 자극하는 행동중의 하나는 침묵 요법입니다. 어느 젊은 아내가 제게 남편이 “정신차리도록 설득”해달라는 요청을 하였습니다. “그가 하는 것이라고는”그녀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뜻이 맞지 않을 때 그냥 닫아버리는 것입니다. 저와 싸우지도 않고 그냥 자리를 떠나버립니다. 그리고 나서 조금 침착을 되찾아 집으로 그가 돌아왔을 때는 제가 그와 화해를 하려고 해도 냉담한 반응뿐입니다. 그는 수일 동안 말 한마디 안 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것이 너무 싫습니다! 저는 차라리 그가 소리를 지르거나 심지어 때리기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침묵요법은 더 이상 못 견디겠습니다.”

당신의 남편이나 아내에게 “나를 혼자 있게 놔둬요. 말하기 싫어요. 나 지금 힘든 상황에 있으니 나 혼자 해결하도록 놔두세요. 지금 누구랑도 같이 있기 싫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몹시 잘못된 언행입니다. 그것은 그저 어리석을 뿐 아니라 진심으로 상대방을 깎아 내리는 것입니다. 결혼생활에 있어서 위기 때마다 서로와 나누고 서로를 돕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라는 말입니까?

저는 모든 변명을 들어보았습니다. “제 몸이 좋지 않아서” “저는 이미 안 좋은 하루를 보냈습니다.” “신경이 예민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명들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차단할 도덕적 권리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늘 열어두십시오.

“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잠언 25장 28절

만약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라면, 굳건한 결혼관계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결혼생활에서 기쁨을 잃는다면 나약해지게 됩니다. 행복한 가정을 보여주시면 제가 기쁨이 넘치는 부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더 이상 함께 웃거나 놀지 않는다면 그들은 더 이상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실된 사랑에는 행복하고 어린아이 같은 면이 존재합니다. 결론적으로는 우리의 결혼생활에서는 수많은 냉철한 남편들과 슬픈 아내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물론 질병, 예기치 못한 어려움, 재정적 문제, 오해, 고통 그리고 심지어 죽음의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삶은 계속되는 것이고, 수 많은 부부들이 삶을 거의 즐기지 않는 것이 유감스러울 뿐입니다. 그들은 계속 언젠가는 행복하고 만족함을 얻을 것이라는 소망을 합니다. 인생은 빠르게 지나가고 난 후 그들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근심에 찬 얼굴의 주름들일 뿐 일 것입니다.

사양하겠습니다! 저는 됐습니다! 지금이 미래입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자이시고, 모든 것은 그의 통치권 안에 있습니다. 애통하는 때가 있지만 기뻐해야 하는 때도 있습니다. 선한 것이 악한 것보다 큽니다. 그러니 위를 바라보고 살면 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잠언 17장 22절F

2013년 12월 19일 목요일

진짜 러브스토리

러브스토리 라는 1970년도의 영화에서는 유명해진 한 대사가 있습니다. “사랑이란 결코 미안하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에요” 영화 대사로는 괜찮지만 현실에서는 지옥 구덩이에서 나온 거짓말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의하면, 사랑은 “미안하다”라고 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몹시 화난 한 남편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젯밤 제 아내를 떠났습니다. 그녀는 항상 옳고 나는 항상 틀렸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다시는 제 아내가 저를 좌지우지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이번엔 제가 옳은 것임을 확신하고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아내가 제게 손과 무릎으로 기어오며 잘못을 인정할 때까지 떠나 있을 것입니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을 배우는 것과 동시에 부부들은 “당신을 용서합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죄사함을 받는 것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들을 용서하기 나름이라고 주의를 주셨습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1장 25-26절)

당신의 남편이나 아내가 당신을 배신하였습니까? 불륜으로 인해 상처를 입으셨습니까? 우연치 않게 비밀스러운 외도를 알게 되셨습니까? 진정한 회개가 있었습니까? 당신은 용서하고 잊어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당신이 절대로 잊을 수는 없더라도, 반드시 용서를 해야 합니다. 당신이 사는 동안, 당신의 남편이나 아내가 다른 사람의 품 안에 있는 상상에 시달릴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늘 아프고, 그 일로 한탄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또는 그녀가 믿음 안에서 애통하고, 당신에게 용서받고 화해하기 위한 노력이 보여진다면 당신은 반드시 용서를 해야 합니다. 게다가 당신은 용서 한 이후에 과거를 다시 들추어내서는 안됩니다. 수천 쌍의 부부들이 온전히 죄에 대한 믿음 안의 애통과 그리스도를 닮은 용서로 부정(不貞)을 극복해내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지속적으로 지난 못난 과거를 꺼내 든다면 당신의 결혼생활은 위태로워 질것입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잠언 19장 11절

2013년 12월 18일 수요일

응답되지 않은 기도

어느 10대 소녀가 제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2년전에 제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최고의 부모님이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제 부모님이 그렇게 끔찍한 방법으로 죽임을 당하도록 허용하셨는지 생각하며 지난 2년동안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보호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더 이상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낙심케 하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냥 제가 주님께 화가 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어느 젊은 부부는 주님께 10년 가까이 원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아름다운 5살 난 딸이 뇌종양으로 진단받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을 한 이후로 분노와 원망이 가득 차 버렸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교회에 출석하며 모든 진행에 참여를 하지만 더 이상은 기도의 효력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거나 거짓말쟁이 또는 신실하지 않은 아버지라고 부르기엔 두렵지만, 그들은 결코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녀를 앗아간”것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거의 모든 크리스천들은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에 응답되지 않은 기도라는 문제를 직면하게 됩니다. 기도가 수주 그리고 수개월 많으면 수년(數年) 간 응답이 되지 않는 경우를 말합니다. 예상치 못한 질고 또는 비극적인 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경우를 말합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들에 사람들의 믿음이 불안정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흔들리는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못한다고 말씀에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산이 스케줄에 맞게 움직이지 않을 때 원한을 품는 경향이 있음을 이해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서있을 때 용서하지 못한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아무것도 구하지 말도록 주의를 주었습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저는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자 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품은 원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서 이 산이 없어지도록 또는 죄의 사함을 구하지 말라. 모두 꺼내 털어놓고, 성령의 용서함이 전해지도록. 신실하신 너의 아버지께 부르짖으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셨고, 응답하실 것이고, 공급하실 것이다.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께 이러한 의심이 자라나게 한 것에 대한 용서를 구하라.”

2013년 12월 17일 화요일

예수님과 용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세상에서 가장 하기 어려운 일은 용서입니다. 교회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용서, 용납 그리고 치유에 대해 언급을 하지만 진실한 용서와 용납은 상당히 드뭅니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가 평화를 중재하고 쓰러진 자를 일으켜 세우며 늘 용서하고 용납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가장 깊은 믿음의 영적인 사람조차도 용서를 하지 않음으로 형제 자매들을 상처 입히기도 합니다.

심지어 믿음 안의 최고의 크리스천들도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하기가 어렵습니다. 두 명의 좋은 크리스천 친구 사이가 틀어진다면, 평생 남을 원한을 품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거의 대부분은 인정하지 않고, 그들의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친절한 전화통화, 좋은 말 그리고 “언제 한번 놀러 오세요”라는 초대로 은폐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같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나는 그저 그 사람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만 방해하지 말아주세요. 그 사람은 그의 길을 가고 나는 내 길을 갈 테니”라고 쉽게 말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우리가 용서 못하는 사람을 무시하곤 합니다.

또한 가장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은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 채로 사랑만 일방적으로 준 것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친구를 위해 희생을 했지만, 오히려 비난을 받거나 상대방이 당연시 여기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내 일이 아니지만 도움을 주기 위해 해주었던 일이 감사하지 않는 마음과 이기적인 마음만 돌려받은 것입니다. 당신의 순수한 의도와 당신의 좋은 행동이 자기 중심적인 행동이라는 오해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을 한번이라도 용서한 적 있습니까?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웃어주고, 거리를 두고 인사를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다시는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안 해줄 것”이라는 마음의 결심을 합니다.

다음은 우리를 속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용서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실패와 거짓말을 용서하기를 가장 불안해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속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만큼 우리를 극도로 화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또 어떻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선한 의도라고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우리가 잘못을 했다고 말할 때 그를 용서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상대방이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솔직한 자세로 바라보기보다는 우리 행동을 합리화시키곤 합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마태복음 6장 11-12절)

2013년 12월 16일 월요일

날마다 by Gary Wilkerson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태복음 6:25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삶에 대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먹을 음식, 입을 의복과 같은 사소한 것을 걱정 하기 쉽습니다. 27절에서는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걱정하지 마라! 걱정을 함으로 삶에 더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불안으로부터 자유케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릴 수 있는 자유함에 대한 영광스러운 계시로 우리를 불러주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3절) 예수님께서는, 이미 우리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시고, 하나님을 갈망하면서 우리의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리스도께서는 갈급함과 간절함으로 그를 찾는 자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더해주십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만나고 피값으로 구원받고, 정함(깨끗하게 된것, 죄를 씻겨주신것)받았을 때 우리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주님께서 의를 피값으로 사주셨으나 내가 하나님을 실망시켜드리면 다시 가져가버리실거야”라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너희의 의를 위하여 걱정하지 말라”라고 하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정죄하시고, 하나님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와 죄악성보다 위대하십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요한일서 4:4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한 결과는 밤중에 평안하게 누워 쉴 수 있게 하는 평화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정결케 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단 한번만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매일의 삶 속에서 일하십니다. 당신과 동행하며 당신의 삶의 모든 면에서 돌봐주십니다.

2013년 12월 14일 토요일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나니 by Claude Houde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대 교회의 표상인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셨습니다. 그분은 교회에 주셨던, 시대를 초월하는 이 경고의 말씀을 지금도 여러분과 제게 하고 계십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요한계시록 3:16)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가요! 현대 교회가 자행하고 있는 이 범죄, 상상할 수 없는 죄는 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 무엇보다도 우리의 믿음과 신뢰, 그리고 우리의 순종을 원하는 전능자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17 & 20)

너무도 자주, 문맥상의 의미가 완전히 무시된 채 인용되며 적용되는 이 성경 구절의 의미는, 잃어버린 세상으로 “예수님이 들어오셔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무관심이라는 침대에 태만하게 누운 채, 그들 자신과 그들의 소유에 대해 만족스러워하고 있는 현세대의 성도들을 향한 직접적이고 단호한 부르심입니다. 이 세대는, 불타는 믿음 없이는 그분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영적 계시에, 참담할 정도로 눈이 멀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속적 사회에서 따온 방법론, 그리고 최첨단 체재의 전환과 전략을 신뢰하고 있는, 너무도 자족 자만에 빠져있는 교회의 문밖에 실제로, 그리고 극적으로 서 계십니다. 그분은 이렇게 부르짖으십니다. “나로 하여금 들어가게 하라! 회개하라! 너희에게 결코 생명수를 줄 수 없는 그 깨진 물탱크로부터 돌아서라! 나는 신뢰와 확신으로 내 언약만을 붙들 자들을 부르고 있다. 내가 갈망하는 자들은, 그들의 믿음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며, 믿지 못할 것을 믿으며, 불가능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다!

근사한 예배가 있을 수 있습니다. 환상적인 찬양 프로그램과 아름다운 교회 건물들, 수많은 참석자와 감동적인 가르침,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교회와 사회 프로그램, 심지어 기독교적 용어와 성경 인용 등 그 모든 것들이 있다 해도, 믿음 없이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신실한 성도가 단순하고 진실된, 열정적인 믿음으로 그분께 나아갈 때, 놀랍고도 신성한 개입으로 산을 움직이시며, 천국의 모든 광대한 자원들을 기꺼이 풀어놓으실 것입니다.

담대함을 요구하는 불타는 믿음은, 여전히 하늘 문을 열며, 그분의 마음과 손을 움직이게 하고, 놀랍고도 무궁무진하며, 불가해하고 기적적이며 초자연적 자원들을 향한 무제한적 통로를 우리에게 제공해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믿음을 원한다! 믿음은 나를 감동하게 한다! 믿음은 나의 권능을 보게 할 것이며, 나의 은혜를 얻게 할 것이다!” 몬트리올에서 목회를 하면서, 저는 주일 아침에 수천의 사람들이 모여 현대의 기적과 사건들, 그리고 간증들이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이 세상에 보고되는 것과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신다는 증거를 보는 것을 너무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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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Claude Houde는 캐나다 몬트리올에 위치한 New Life Church의 담임 목사이며, 세계 전역에 걸쳐 World Challenge에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s의 주된 강사입니다. 그의 지도력으로, New Life Church는 소수 인원으로 시작해서 개신교 교회로서는 성공하기 힘든 캐나다의 어려운 지역에서, 지금은 교인 수가 3,500명이 넘는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2013년 12월 13일 금요일

하나님을 시험한다는 것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의 죄에 대해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들이 자기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니…” (시편 78:18) 이 구절의 히브리어 의미는, 이스라엘 민족은 “인내의 한도를 넘어서 시험받았다.”는 뜻입니다. 이 의미는 그들이 자신들을 위해 공급할 아무런 인간적 방법도 남아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이 시험의 장소에 왔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저버리셨고, 침묵하며 숨으셨다고 믿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이것은 하나님을 시험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그분이 선택하신 축복받은 자들이 시험의 불 속에 놓여지고, 그들의 마음이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까지 그들의 환란이 극심해져 갈 때 일어납니다. 마침내 그들은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주님, 어디에 계십니까? 제 구원은 어디에 있나요? 왜 이 상황을 돕지 않으십니까? 저와 함께 계십니까, 아니 계십니까?”

구원받지 않은 자가 주님을 시험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삶의 어떤 영역에서도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행운 아니면 불운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오직 주님께 가장 가까운 자들, 즉 그분의 능력을 보았으며, 그분의 은혜와 자비를 맛보았고, 믿음의 여정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만이 그분을 시험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의로운 세례 요한조차도 하나님을 시험하게끔 할만한 고난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그가 감옥에 앉아 있었을 때, 그의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 그도 의심했음이 틀림없습니다. 한편, 예수님께서 행하고 계셨던 모든 놀라운 일들, 즉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기적을 행하시며, 한때는 자기를 따랐던 무리가 그분께로 몰려가는 일들이 그의 귀에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는 홀로 감옥에 앉아, 처형당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흥하시기 위해서는 자기가 쇠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생각이 그의 마음을 스쳤음이 분명합니다. “쇠하는 것은 좋아. 그런데 죽음이라니? 만일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이시라면 내가 왜 죽어야 한단 말인가? 만일 그분이 사람들에게 이 모든 기사를 행하고 계신다면, 왜 그분께서는 나를 구해내지 못하는 것일까? 주님, 이 모든 것을 감당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그때는 그리스도께서 아직 죽음의 쏘는 것을 제거하지 않으셨음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보내신 마지막 말씀은 너무도 의미심장합니다. “누구든지 나로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할 자는 복이 있도다.” (마태복음 11:6) 그리스도께서는 이 경건한 종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요한, 나로 인해 실족하지 마라. 나는 오직 아버지로부터 보고 듣는 것만 행한다는 것을 너는 안다. 그분은 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계시며 신뢰받기에 합당하시다. 만일 그분께서 나로 네게 가서 너를 석방시키기를 원하신다면, 내가 그곳에 즉시로 갈 것임을 너는 알고 있다. 네가 어떤 결과를 맞는다 해도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것을 확신해도 된다. 그리고 그것은 너를 위한 영원한 영광을 의미한다!”

“요한, 너는 마지막 시험을 통과하고 있다. 의심이 네 믿음을 훔쳐가지 못하게 하라. 그 대신, 너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과 신실하심에 안식하라. 너는 심판받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와 반대로, 너는 그분 눈에 대단한 영광이란다. 절대 요동치 말아라!”

저는 요한이 잘 감당해냈다고 믿습니다. 끝내는 헤롯왕에 의해 그의 목이 잘렸을 때, 그는 믿음과 존귀의 영광으로 가득한 집으로 갔습니다!

2013년 12월 12일 목요일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속마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속마음이 어땠는지 알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것을 모두 드러내기 위해 그들을 시험의 장소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분은 폭풍이 곧 그들을 뒤덮을 것임을 잘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열두 제자에게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제자들은 자기들이 그들 선생의 신실한 추종자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방금 예수님이 물고기 몇 마리와 빵 몇 덩이로 수천 명의 사람을 먹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배를 타면서, 이제는 예수님을 절대로 의심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당신 목사님의 삶에서 일어나는 기적의 권능을 보는 것과 당신 자신의 삶에서 그것을 경험하는 것의 차이는 현저합니다. 이제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파도가 더 거세지면서, 제자들의 시험의 때가 다가왔습니다. 곧 배는 물로 찼고, 제자들은 최선을 다해 물을 퍼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곧 배가 가라앉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들 시험의 때에 이 제자들의 마음속에 무엇이 떠올랐는지 들어보십시오. “주님, 우리가 모두 죽게 되었는데도 상관치 않으십니까? 우리는 침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우리를 도와주세요. 당신은 하나님이 아니신가요? 우리가 어찌 되든 상관없습니까?”

예수님의 수제자들은 그분을 시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실로,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에게 했던 말과 거의 똑같은 말을 예수님께 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주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가, 아니 계신가? 하였더라.” (출애굽기 17:7)

한편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바람과 파도가 잠잠하도록 그 이전부터 명령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권능은 항상 그분께 임해 있었습니다. 그러는 대신 그분은, 그야말로 제자들이 죽음을 직면하는 상황에서 시험받도록 내버려두셨던 것입니다.

“그분의 제자들이 바다로 내려가서, 배에 올라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제 날이 어두웠고 예수님께서는 아직 그들에게 오지 아니하셨더라. 큰 바람이 불어 바다가 출렁이더라…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라. 이에 그들이 그분을 반가이 배로 받아들였고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뭍에 이르렀더라.” (요한복음 6:16-21)

2013년 12월 11일 수요일

고난과 시험의 장소

많은 성도가 고난과 시험의 장소에 도달하곤 합니다. 주님께서는 때로 우리를 인생의 쓰디쓴 물이 있는 마라와 같은 곳으로 데려갑니다. (출애굽기 15:22-23 참조)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 끊임없이 떠오르는 의혹들, 그리고 심각한 불신을 대면하게 됩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렇게 항의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를 우상 숭배하며 간음했던 저 이스라엘 민족과 비교하면 안 됩니다! 당신은 제가 그들과 같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가여운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 자신이 어떠했는지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시험의 때가 닥칠 때까지 그들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저는 오늘날의 하나님의 백성도 그와 마찬가지라고 믿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마음은 모든 것보다 거짓되고 극도로 사악하니, 누가 그것을 알 수 있으리요?” (예레미야 17:9)

이 백성은 시내 산에서 주님의 계명을 들은 후 그분 전에서 떨었던 자들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때 그들은 서슴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행하겠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모든 계명에 순종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 자신이 말한 모든 것을 진지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으로 가득했으며, 그분을 영예롭게 받드는 일에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있었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들은 영적으로 파산했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목자이자 지도자인 모세의 체험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믿음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그들로부터 불러내셨을 때, 그들은 채 사십일도 되기 전에 타락해버렸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에게도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질 때면, 그들은 전심으로 그 말씀에 순종할 것을 기꺼이 맹세합니다. 그러나 실상 그들은 다른 사람의 체험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태잎이나 세미나에서 가르치는 것들과 그들 목사님의 계시로 삽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그리스도와 그들 자신과의 아무런 깊은 체험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누구한테서도 하나님의 진정한 계시를 얻을 수 없습니다. 어떤 설교자가 당신의 마음을 자극하며 당신께 영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성경적 교훈을 발휘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예수님과 당신만의 고유의 체험을 가질 때까지, 그리고 그분과 동행하는 삶의 역사를 펼쳐나가기 전까지는 그분을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이 살아있는 체험이 될 때까지, 그분의 말씀은 당신 마음속에서 계속 일할 것입니다.

2013년 12월 10일 화요일

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십니까?

바울이 고린도전서 10:8-10에서 묘사했던, “하루 만에 죽었던 수천 명”의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뱀들에게 멸망당했던 수많은 자와 “파멸시키는 자에게 멸망당했던” 자들은 또 누구였습니까? 그들은 모압인도, 가나안 사람도, 블레셋 족속도 아니었으며,
이스라엘 주변의 이교도들도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 즉 믿는 성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광야에서 놀라운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초자연적 권능에 의해 영적 양식을 공급받았으며, 바울이 언급했듯이,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바위로부터 영적 음료를 마셨습니다. 그들은 좋은 가르침을 받았으며 잘 보호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 다수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로 소멸되었으며 뱀들에게 멸망당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5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너무도 화나게 한 나머지 그분이 그들을 광야에서 “쓰러뜨렸다”고 말합니다. 이 단어의 히브리어 의미는 “그들을 그분의 손에서 내던졌고, 많은 먼지와도 같이 그들을 땅에 흩트렸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과연 무슨 뜻일까요? 주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신 뜻은 이렇습니다. “나는 너희로부터 이것을 용납할 수 없다. 만일 너희가 순진무구했다면, 또 너희가 잘 훈련받지 못했으며, 내 손에서 영적 양식을 받아보지 못했거나 내 영광의 증거를 보지 못했다면, 내가 너희를 용서했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에게 많은 축복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욕정과 우상을 선택했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너희를 흩어버릴 것이며 내 손에서 완전히 던져버릴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요? 왜 주님께서는 엄청난 호의를 받았던 자신의 백성을 그토록 혹독하게 다루셨을까요? 바울은 9절에서 매우 분명하게 그들이 그리스도를 시험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들과 같이 그리스도를 시험하지 말자.”

“우리가 주님을 시험하지 말자”고 했을 때 바울이 뜻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의 기적을 경험한 직후에 벌어졌던 출애굽기 17장의 한 사건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 흰색의 작은 과자는 그들이 생존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영양분을 함유하고 있었습니다. 이 “작고 둥그런 과자”는 날마다 그들이 거하는 땅에 떨어져 내렸습니다. 이 백성이 그러한 초자연적 음식을 먹을 자격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단지 그분의 은혜로 그들에게 만나를 먹이셨던 것이고, 그들의 일은 그것을 모아 담는 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곧 그들에게 물이 필요했습니다. 그들은 ‘마라’라고 불리는 곳에 도착했는데 그곳의 물은 마시기에 너무 썼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들은 또 다른 시험을 대면해야하는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 백성은 곧 그들의 지도자 모세를 향해, 그들을 멸망시키려고 광야로 이끌어낸 냉혹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며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7절에서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우리는 듣습니다. “그들이 주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가, 아니 계신가? 하였더라.”

2013년 12월 9일 월요일

당신은 자유롭게 되셨습니까? by Gary Wilkerson

제가 여러분께 아주 단순한 것 같지만 중요한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당신은 자유롭게 되셨습니까? 처음에는 그 질문에 ‘예’라고 아주 쉽게 대답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우리 다수는 어떤 형태의 공상적이며 환상적인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되었고 씻김 받았으며, 구속되었고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순수하고 정결하게 씻겨졌으며,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는 영계 어딘가의 비현실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곳에서 하나님을 위해 살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에서의 우리 존재 자체와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는 우리 인생에 대해 “내가 정말 자유롭게 되었나?”라는 의혹을 품기 시작합니다. 우리 대부분은 하나님께 간구하며 날마다 그분께 탄원합니다. “주님, 저를 자유롭게 해 주시옵소서! 저를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시고, 죄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며, 이 고질적 습관과 중독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시옵소서.”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를 구해달라고 끊임없이 요청합니다.

그러나 진실은, 만일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면, 그리고 어린양의 피로 씻김 받고 그분의 존귀한 보혈에 의해 정결해졌다면, 당신은 그분 안에서 이미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승리를 거둔 새 창조물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고린도후서 5:17-18)

이제는 여러분이 절망과 죄책감에 빠진 채 제단 앞으로 나와서 이렇게 간청하고 애원하며 부르짖을 필요가 없습니다. “오, 하나님, 저를 자유롭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제발 저를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아닙니다. 그분은 이미 당신을 변화시키셨으며 새롭게 만드셨습니다. 그분은 이미 당신의 불의를 해결하셨고 당신 안에 그분의 의를 심어놓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로서 여러분은 그분께 당신을 의롭게 만들어달라고 강요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분을 만났다면, 그분은 이미 당신을 의롭게 만들었고 온전케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이 얼마나 좋은 소식인지요!

2013년 12월 7일 토요일

새로운 시작 by Jim Cymbala

약 백여 년 전에, 영국의 위대한 목회자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은 그의 설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의 영성은 그들의 기도 모임에 의해 매우 정확히 평가될 수 있습니다.”

브루클린 테버네클(Brooklyn Tabernacle) 교회에서 시작된 화요일 밤 기도 모임 첫날에는 열다섯 명에서 열여섯 명 정도의 성도들이 참석했습니다. 저는 아무런 기도제목이나 계획 없이, 그저 앞에 나가서 성도들의 노래와 찬양을 인도했습니다. 그런 후 찬양은 기도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로 엮어주시는 것 같았으며, 새로운 연합과 사랑이 감도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고, 기도들의 응답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교회를 도울 수 있는 재능과 능력을 갖춘 새로운 성도들이 합류하기 시작했고, 미처 구원받지 못한 친척들, 그리고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이 기도 모임을, 영적 고통에 처해있는 자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성령의 응급실”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시간은 계속되었고, 저는 성도들에게 계속 기도하도록 격려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유창한 기도 소리를 듣기 위해 그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절박했습니다. 우리는 수평으로 서로에게 집중하기보다는, 수직으로 하나님께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때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주님을 향해 다 함께 부르짖으며, 통성으로 같이 기도했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때로는 모두 손을 잡고 둥글게 서서 기도했고, 또 다른 때에는 각양의 성도들이 그들의 고충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기도 모임의 형식은—우리의 온 존재로 부르짖으며 전능자를 감동시키는, 그 핵심에 비하면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우리 교회의 초기 시절에는, 사람들이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며 성령 충만을 받았고,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되찾았으며, 그들의 일터에 대해, 그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건물에 대해, 그리고 그들 가족 모임 등에 대해 터놓고 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새 성도들을 데려왔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희 교회는 하양선을 그려본 적이 없습니다. 그분의 은혜로, 성도들 가운데 당파가 일어나서 교회가 분열된 적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계속 보내주셨고, 우리는 그들이 우리 교회를 어떻게 알고 왔는지도 모를 때가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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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짐 심발라(Jim Cymbala) 목사님은 뉴욕의 한 소외된 지역에 위치한 작고 허름한 건물에서 이십 명도 채 못 되는 성도와 함께 브루클린 테버네클(Brooklyn Tabernacle)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는 브루클린 태생이며,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 그리고 게리 윌커슨 목사님과 오랜 친분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세계 전역에 걸쳐 World Challenge에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의 주된 강사입니다.

2013년 12월 6일 금요일

거짓된 평강

오늘날 미국은 마귀의 거짓말로 인한 유혹에 놓여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하고자 하는 것은 정치적인 것 과는 무관하며 오직 영적 진리와 관련이 있음을 더 이상을 언급하기 전에 미리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사실은, 미국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져버리고, 성경적 진리를 전혀 존중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 안에 속임을 주님께서 허용 하신 것입니다.

미국을 덮고 있는 마귀의 속임수는 거짓된 평강입니다. 그것은 바로 결과에 대한 두려움 없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지 해도 된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 속임수의 선을 넘은 것이고 이제는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바울은 로마서 1장에 이러한 주의 심판에 대해 말합니다. 그는 한때 성경의 진리를 믿었으나 나중에 부정한 길로 가는 자들에 대해 말합니다. 요약하면, 하나님의 말씀도 원함과 동시에 자신의 정욕까지 원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들을 타락한 사람들에게 넘겨주신 것입니다. 그들은 거짓을 믿고 싶었던 것이고, 그러기에 하나님은 강한 망상이 그들에게 들이닥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미국의 현재 상태를 말합니다. 최근 우리의 대통령들은 온 국민들에게 “나는 이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고, 나중에 그가 직접 언급한 죄를 저지른 것이 낱낱이 밝혀졌습니다. 오늘날 80퍼센트의 미국인들은 그의 이러한 죄와 그의 삶에 대하여 눈감아 버리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언된대로, 진리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미국인들은 술취한 뱃사람들처럼 주식시장에서 도박을 하고 번창합니다. 게다가 조사에 의하면 65퍼센트의 대학생들은 속임수로 컨닝을 하면서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사람들이 그냥 넘어가니깐 내가 하는 일은 다 괜찮을 것이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하나님의 법을 가볍게 여깁니다.

우리는 끊임 없이 우리 나라의 수도에서 거짓말, 은폐 그리고 교묘한 조작들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놓여진 강한 망상은 단순히 워싱턴 DC로부터의 부도덕적 상태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마귀의 속이는 힘은 그러한 배신, 타락, 부패보다 더 넓고 크게 작용합니다. 그의 크나 큰 속임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해 지옥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3-4절에 바울은 우리에게 주의를 줍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바울이 말하는 속임당한 이 무리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들은 바로 속임당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편지를 쓴것입니다. 이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받으며 진리를 알았지만 자신의 정욕과 자신의 죄를 위안할 이단을 찾은 것입니다.

2013년 12월 5일 목요일

불법의 비밀 (죄의 미스터리)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에, 그는 “주의 날(the day of the Lord)” 이라는 미래의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바울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언급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다음의 두 상황이 있을 때까지 이루어 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1. 엄청난 배신. 하나님을 알던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알고 있던 복음의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될것. 
  2. 적그리스도 또는 죄인이 드러나게 될 것. 
“배신”은 이미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의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한 오늘날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냉담해졌습니다. 그 점을 염두에 두면, 저는 바울의 두 번째 포인트인 주의 날이 “적 그리스도가 드러날 때”까지 오지 않는다는 점에 초점을 두고자 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적그리스도가 이세상을 지배하고 우리가 그의 정체성을 알게 될 때까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는 금방이라도 재림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예수님께서는 생각하지 않은 때에 오실 것이라고 직접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사용한 “드러나다(revealed)”라는 단어에서 그의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어로는 “아무것도 덮여있지 않은” 이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바울이 “예수님께서는 적그리스도의 모든 계획과 의도가 노출되어 교회가 인식할 때까지 다시 오시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그리스도의 계획은 말씀에서 이미 노출되어 있습니다.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The mystery of iniquity doth already work)” (데살로니가후서 2장 7절) 그는 심지어 지금도 적그리스도에게 미스터리(mysterious)한 형태의 죄가 들어오기 시작할 것입니다. 강력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더욱 강해지고 죄악의 영이 진리를 잃어버린 인류에 놓여지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법의 비밀(mystery of iniquity ; [직역] 죄의 미스터리)”은 또 하나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조용한 개시(silent initiation)” 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의 어원에서 나옵니다. 바울은 적그리스도 숭배로의 비밀스러운 시작-즉 치밀하고, 악한 영향력-을 의미합니다.

현재, 이 같은 비밀스러운 영이 강한 유혹으로 수많은 대중을 적그리스도를 받아드리도록 준비시키고 있습니다. 수천이 매일같이 조용하고 비밀스럽게 그의 궤계에 세뇌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악마는 멀지 않은 미래에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더욱 빠르게 커질 수 있도록 매우 빠르고 효과적으로 역사하고 있습니다.

2013년 12월 4일 수요일

생명을 내게 주소서!

사도바울이 영적으로 가장 성숙했던 시기의 그를 만나봤으면 좋았겠습니다. 그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을 것입니다.

“형제, 끊임없이 내리막길로 압박을 당하지 않았는가? 당신을 쓰러지지 않게 포기하지 않게 하였던 그것이 무엇인가? ”

저는 사도바울이 이렇게 대답했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억누름을 당하였지만 그 어떤 정신적 고통과 괴로움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제가 “하지만 당신은 많은 시험들로 인해 종종 혼란스럽지 않았습니까?” 라고 말하면,

그는 이렇게 대답을 하였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나는 단 한번도 절망으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 누구보다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나를 시종일관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은 질병과 곤경으로 자주 치이기도 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도 나를 파괴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오늘날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8-9절 말씀으로 전세계에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7절에서는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그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사실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고린도후서 4장 12절) 사도바울은 간단명료하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음으로 이끄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생명이 다른 이들에게 전해지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 안에 온전히 사망이 역사하면,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간증을 듣는 모두 안에 생명을 낳게 될 것입니다.”

재정적 문제에 직면 했을 때, 육체적 고통에 시달릴 때, 당신의 이름과 명예가 실추될 때, 모든 눈이 당신에게 향해있을 때 기억하십시오. 당신의 직장동료들, 가족들, 그리스도 안의 형제 자매들 그리고 심지어 낯선 사람들까지도 당신의 반응을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 시기에 당신에게서 무엇이 흘러 나는지? 그들은 믿음, 신뢰, 내려놓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보이겠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절망하고 소곤거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보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다른 이들에게 흐르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하기 위하여 여러분 안에 사망이 역사하도록 허용하십시오.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아버지, 저는 주님께서 저로 인한 화로 이러한 어려움이 닥쳤다고 생각하지 않고, 단지 제 영혼에 무엇을 심고자 하심 임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일해주시고, 사망으로 역사하시고, 그 사망을 통해 생명을 내게 주소서”

2013년 12월 3일 화요일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초기에 고난의 시간을 견디어 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우리들처럼, 그는 적당히 주를 믿으면 모든 곤경으로부터 안전히 보호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바울이 처음으로 감옥에 갇히었을 때 구원을 위해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주여, 이 감옥의 문을 열어주시고, 복음을 위해 나를 구원하여 주소서!” 또한 그가 첫 조난사고로 인해서 그의 신앙은 극심한 시험을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처음 매 맞음을 당 할 때는 아마도 그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했을 것입니다. : “주여 나를 안전히 지키신다고 약속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왜 이런 끔찍한 시험을 견뎌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의 상황은 모두 점점 악화되기만 했습니다. 말씀에서는 사도바울이 여러 곤경에서 고통이 경감되었다는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그의 두번 째 난파사고에서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장 28절) “만약 이것이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타내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라면 이대로가 좋습니다. 물에 가라앉던지 수용을 하던지, 내 삶과 생명은 주의 손에 있습니다” 라고 고백했을 것 같습니다.

세 번째 난파사고 때는, “천사들이여, 지옥의 악한 마귀들아, 나의 형제들 그리고 죄인들아, 나를 보아라. 나는 다시 한번 어둡고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지만, 죽음이 나를 사로잡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다 이루지 못하였다고 하셨고, 나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주님께 내가 왜 이러한 시험을 받는지 이유를 묻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에서도 나중에는 결국 모든 영광이 하나님께 돌아갈 것임을 안다. 그래서 내 믿음이 정금과 같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리라”
간단히 말해서, 우리의 죽음은 대개 우리 개인적인 어려움의 끝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완전히 의지하지 않으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황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는 우리에게 이러한 고백을 듣고 싶어합니다. “예수님, 주께서 나를 구원하시지 않으시면 내게 소망은 없습니다. 주님께 온전히 나의 모든 믿음을 드립니다.”

2013년 12월 2일 월요일

너는 일어나 시르밧으로 가라 by Gary Wilkerson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에게 땅에 기근이 올 것이라는 예언을 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러한 사역은 그리 인기가 높아지게 될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엘리야는 하나님께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안전히 보호하시고 그릿시냇가로 보내셨습니다. 실제로 그곳이 그리 아름다웠을지는 알수 없지만, 그릿은 시냇가의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후에 시냇가는 말라버렸습니다.(열왕기상 17:3-7) 누구나 먹지않고 몇일간을 버틸수 있겠지만, 물 없이는 짧은 기간에도 생명유지가 어렵게 됩니다. 우리는 엘리야 또한 물이 말라버렸으니 근심을 하는 모습을 상상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시길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8-9절). 엘리야는 아주 작은 공급에도 가난한 과부에게 자신을 보내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였습니다.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10절)

엘리야는 그녀에게 물 한 병과 빵 한 조각을 부탁하였습니다.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12절)

과부는 그에게 자신의 마음의 상처로부터 반응하였습니다. 그녀와 아들은 굶주리고 있을 때 엘리야는 찾아와 “당신이 나를 먹이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과부는 자신이 가진 것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이건 불 가능해!” 그리고 그녀는 엘리야 선지자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12절)

엘리야의 반응은 약간 이상했습니다 :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13절)

그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그것은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이 여자와 그의 아들을 버리지 않으실 것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엘리야는 과부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다른 이들에게 자신이 가진 작은 것을 나누어 주었을 때 자기 자신이 축복받을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더 나누고 내려놓을수록 하나님께서 과부가 가진 것을 더욱 크게 하시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14-16절)

하나님께 순종을 하면 천국 문이 열리는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복을 부어주시고 싶어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