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모하는 폭포수 같은 성령강림

우리 교회는 기도에 많은 시간을 씁니다. 최근 우리는 하루 24시간씩 30일간 이어서 기도하는 특별연쇄기도를 마쳤습니다. 그러면 정확하게 무엇을 위해 기도했습니까? 우리가 바라본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교회에서 자라나던 나의 어린 시절, 주로 많이 듣던 아버지와 할아버지 말씀은 항상 곧 임박할 대부흥이었습니다. 캠프부흥회 같은 데에서 부흥강사들이 주로 하는 말은 “부흥이 오고있습니다. 곧 하나님 나라로 많은 무리를 몰아서 거두어들일 것입니다.”

이 모든 부흥에 관한 이야기의 중심은 기본적으로 단 한 가지 생각입니다. “우리가 길거리로 나가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여기 남아서 기도하면 성령께서 사람들을 불러모으신다”는 것입니다.

부흥을 정의하면 이렇습니다: “시체가 되어버릴 위험성에서 깨어나거나 부활하는 것” 다시 말해 죽은 교회를 깨우며 다시 살게 하는 것이며 소생술로 일으키듯 한 결과 경건치 못한 사람들까지 마음이 내켜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현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가 기사회생하지 않으면 안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커다란 부흥을 위해 기도해야만 하는 상황은 참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있는 동안에도 우리 나라에서는 참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도시들은 불타기 직전인데 국민들은 섹스와 쾌락과 스포츠 우상이나 실컷 즐기고 있습니다. 결혼한 가정 둘 중 하나 꼴로 이혼으로 끝납니다. 우리는 젊은 세대를 몽땅 냉소주의, 강퍅함, 환멸 같은 것들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이 폭력으로 학대받고 배고파 우는 소리는 점점 천둥소리같이 우리네 도시에서 울려퍼집니다. 일자리가 없어 절망한 나머지 일거리를 찾아 헤매는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수백명씩 거리에 넘쳐납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과연 무엇을 해야할까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만약 나서서 인간의 필요를 채운다면-세상을 불쌍히 여기라는 성경의 명령에 순종하여 남의 필요을 위해 자신을 내어줄 줄 안다면-우리가 물댄 동산처럼 된다고 하십니다.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이사야서 58장 5-12절).

하나님은 세상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 마음에 우리 모두 하나 되기를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