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31일 수요일

구원하시는 주님의 능력

앗수르 군인들이 예루살렘을 포위했습니다 그 시점에 히스기야 왕은 “ 우리는 이 번에 육신의 힘을 의지하지 않을 거야. 우리는 전적인 하나님의 방법으로 할 것이다!” 라고 결단했습니다.

왕은 자신을 낮추고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 그 때에 히스기야 왕이 그 말을 듣자, 자기 옷을 찢으며 굵은 베로 두르고 주의 전에 들어 가더라” (이사야 37:1). 히스기야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 주님, 전 제 믿음 외에는 당신께 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압니다. 산헤립과 싸울 힘이 저에겐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적에게 포위 당했습니다, 당신의 방법을 알려 주십시오!”

히스기야는 이사야가 하나님의 인도 하심에 대한 말씀을 가지고 있을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사절을 선지자에게 보냈습니다. 이 사람들은 이사야에게 “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3절) 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방법으로 모든 것을 행하려 하나 남아있는 힘이 없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말이었지요

이사야는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너희는 들은 말로 인하여 두려워 말라……내가 산헤립을 칼에 죽게 하리라” ( 6-7절). 하나님은 “ 지금 너희의 적은 그 누구라도 나의 적이다. 왜냐하면 너는 그 전쟁을 나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 누구든지 너를 대적하여 말하며 너에게 상처를 주고 너를 조롱한다면 그것은 바로 나에게 공격하고 있는 것이야. 내가 그 원수들을 사람이든, 마귀든지 내가 대신 싸워주마.”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한 살도 이리로 쏘지 못하며 방패를 가지고 성에 가까이 오지도 못하며 흉벽을 쌓고 치지도 못할 것이요” (33절).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 너의 주변의 모든 이들이 넘어지고 실패한다 하더라도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단다. 너는 나의 언약 안에서 함께 걷고 있고, 나는 너를 공격하는 모든 대적들을 내가 대신 싸운다고 약속 했거든.”

우리를 대적들로부터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얼마나 아름다운 말씀인지요! 적들은 우리에게 불 화살로 공격할 지라도 우리를 맞추지는 못할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엄청난 탐욕과 시험의 군대를 동원해서 우리를 요란하게 공격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결국 뒤돌아서 달아나 버릴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포 하셨습니다., “ 나는 자신의 칼을 내려 놓을 정도로 나를 믿는 나의 자녀들을 보호 할 것이다.”

2012년 10월 30일 화요일

이집트로 내려가는 자들에게 화로다

“도움을 청하러 이집트로 내려가는 자들에게 화로다. 말들을 의지하고 병거들을 의뢰하나니, 이는 그들이 많이 있음이라. 또 기병들을 의뢰하니, 이는 그들이 매우 강함이라. 그러나 그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바라보지 아니하며, 주를 찾지도 않는도다! (이사야 31:1)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 들에게 만일 그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적들과 싸우려고 시도 한다면 승리의 가능성은 없다고 경고 했습니다. 이사야 31장에 보면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 적과 싸우려 했을 때 헛됨에 대한 실상을 잘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오늘날 인간의 생각과 방법들을 의지해서 탐욕, 습관 그리고 끊임없이 붙어 다니는 죄를 물리치려 하는 우리들의 시도가 쓸데 없음을 보여주는 모형이자 그림자라고 생각합니다.

이사야가 이 경고의 글을 쓰고 있었을 때에 산헤립 왕과 앗수르 군대들은 이미 유다를 통과해서 행진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쳐들어 오면서 대부분의 도시들을 점령했고 이제 지금은 예루살렘을 장악할 계획이었습니다. 히브리어로 ‘산헤립’이란 ‘성공의’ 란 뜻이고 ‘앗수르’란 “ 증가하는 죄”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합하면 이 두 단어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해 거대한 승리를 가지는 악한 대적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앗수르는 우리를 향해 오는 모든 마귀적이며 탐욕적인 영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산헤립은 우리를 이겨서 절망으로 우리를 몰아 넣겠다고 확신하는 마귀 그 자신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 31장을 통하여 어떻게 마귀와 그 마귀 때들이 집중적이며 거대한 승리를 점점 더 해가면서 물밀듯한 시험들을 교회들에게 가져오고 있는 지를 보여주기 원하신다고 믿습니다.

이31 장은 또한 마지막 때에 어떻게 죄가 불어나는지에 대한 표본입니다. 성경은 사회가 점점 악해져 갈 것이며(디모데 후서 3:13절 참조), 교회들은 속임수와 마귀의 교리로 넘쳐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바로 지금 그것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고 믿습니다. 마귀 때들은, 우리의 문화를 감각적이며, 노출적인 그리고 모든 종류의 변태적인 것들로 넘쳐나게 하면서 모든 방송과 모든 모양의 과학기술에 잠입했습니다. 요한 계시록 12장 15절에 계시되었듯이 사탄은 “ 여자의 뒤에서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2012년 10월 27일 토요일

지금 여기에 새 언약이 있습니다 by Gary Wilkerson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0:12-14)

얼마나 놀라운 제사인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 언약이 천사들과 맺은 언약과는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아담과 맺은 언약, 즉 아담이 실패한 언약과 같지 않으며 또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실패했던 할례의 언약과도 같지 않습니다. 그것은 모세의 율법으로 맺은 언약과도 같지 않으며 대 제사장이 드리는 제사의 언약과도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이 그 분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맺은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더 좋은 언약이며 더 훌륭한 언약, 거룩한 언약인 것입니다. 그 언약은 우리 안에 새 생명, 새로운 창조를 주기 위해 오는 그리스도의 언약입니다. 그 분은 옛 것은 없애고 모든 것을 새롭게 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성과에 근거한 언약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호간의 활약 조건에 따라 하나님과 협력적 관계를 맺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그의 백성과 거래하는 것 또한 아닙니다. 그것은 즉 하나님이 조건을 제시하며 “나는 네가 그것들을 실행하면 내가 이것들을 행하겠다” 라고 말씀하시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대신 하나님께선 “네가 이러한 옛 언약들이 신물 나지 않느냐? 이제 실패로 인해 충분히 지치지 않았더냐?”라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보이려고 당신의 도덕성을 가지고 노력하느라 지치고 좌절하진 않았는지요? 마치 주님과 맺은 언약을 흥정하여 당신이 대등한 위치에 놓일 수 있는 양 당신을 주와 동등하게 여기는 일에 지치시지 않습니까?

성경은 하나님이 오래 전에 만드신 모든 언약은 한가지 목적, 즉 우리의 도덕적 기질의 무능력, 하나님과 대등한 입장에서 언약을 지키는 자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 참조). 그것은 신약의 때와 마찬가지로 율법을 통해서 하셨듯이, 우리로 하여금 다음과 같이 고백하게 합니다, “ 저는 제 힘으로는 혼자 할 수 없고 주님께 드릴 수도 없습니다. 주님과 저와 둘 사이의 언약 관계에서, 주님께서 제 언약의 몫도 취하심이 없이는, 즉 당신이 당신의 약속을 완성하고 저를 위한 약속을 이뤄주심이 없다면 저는 이 자리에 설 수가 없습니다.”

자 여기에 있는 새로운 언약인 것입니다!

2012년 10월 26일 금요일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능력

이사야선지자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는 능력을 새의 모습으로 비유했습니다. “새가 날개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넘어와서 구원하리라”(이사야 31장 5절). 이 구절의 히브리어 원어적인 의미는 이렇습니다. “어미새들이 그 새끼들 위에서 펄럭이듯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 나래를 예루살렘 위에 펼치셨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기를, “원수가 총공격해올 때 보호받기를 원한다면 내 날개 밑으로 숨으렴. 마치 어미 닭이 병아리들을 감추듯이 내가 안전하게 해줄께. 더이상 원수들때문에 떨면서 살 필요가 없단다!”

내가 하나 묻겠습니다. 현재 큰 전쟁이 있습니까? 상대도 안되게 너무 강력한 대적과 싸웁니까? 그렇다면 순수하게 신실하게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살아 남을 수 있겠습니까? 사탄마귀가 포효하는 사자처럼 유혹과 정욕을 부추기며 달려들고 좌우로 다 흩어지는데 과연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단순히 못쓰는 칼을 내려놓으라 하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대신 칼을 잡으실 터이니 맡기라 하십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싯점에 도달한 당신의 이런 고백을 그분이 듣고싶어하십니다. “주님, 이제 이 싸움이 더 이상 내것이 아닌 줄 알겠습니다. 수없이 실패했습니다. 이제 단순한 믿음으로 나아옵니다. 나를 좀 살려주세요. 하나님.”

주님의 권면입니다. “싸움이 치열할수록 내게 매달리거라. 전적으로 내가 너를 구원할 능력이 있고 능히 그렇게 할 내 뜻을 믿는 믿음에 네 승리가 달렸다. 대적에게 압도당할수록 내게와 네 맘을 쏟아놓아라. 전심으로 나를 찾아라 그러면 내가 대신 싸워줄 것이다.”

싸움은 절대로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항상 주님의 것입니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시 91편 4-5절).

2012년 10월 25일 목요일

내 힘이 아님

과거 이스라엘백성이 그러했던 것처럼 오늘날 많은 크리스챤들도 손쉽게 인간의 것으로 육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보려합니다. 기독교 서점에 가보면 책꽂이에 꽂혀있는 수많은 소위 셀프헬프에 관한 책들이 좋은 예입니다. 수만권의 이런 책들이 우리의 육신을 개선하며, 달래며, 다루는 확실한 방법들을 소개합니다. 정말로 어디를 둘러보아도 우리의 필요를 메꿀 육적인 대안들은 넘쳐납니다. 교회들 역시 안수기도 한방에 우리의 모든 영적인 필요가 채워질 것처럼 기름부음의 부흥회라며 약속을 남발합니다. 부흥사들도 즉각 귀신을 쫒고, 즉각 치유가 임하고, 즉각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다며 자랑합니다.

그런데 진실은, 이스라엘이 일찌기 도전받았던 것처럼 어려운 환경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든지 아니면 육적인 해법을 선택하든지 둘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뜻대로 한번 해보아라. 네 안을 깊숙히 들여다보고 책도 읽으면서 연구하고 작전을 새우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보아라. 그 어느 것도 잠간의 승리조차 줄 수 없을 것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면 할수록 더 분명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죄악을 벗어나기 위한 인간적인 모든 노력들은 결국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육적인 노력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겠다고 확신이 들 때까지 계속 더 혹독한 시련을 통과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인간적인 능력으로 힘센 대적들을 물리치려고 시도했을 때 하나님은 즉각 질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이사야 31장 3절). 성경의 하나님은 분명한 말씀으로 선포합니다. 모든 승리는 오직 하나님께 달린 것이라고. 오직 그분만이 대적의 수중에서 우리를 구출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경건한 심지와 견고한 도덕적 기반에다가 때묻지 않은 정신의 소유자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당신이 이땅에서는 가장 깨끗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이 가진 어떤 재능이나 은사로도 마귀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항상 실패하게 되어있습니다.

현재 견딜 수 없는 시련이 닥쳤다면 당신은 하나님이 스가랴선지자에게 하신 말씀을 배워야만 합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스가랴 4장 6절).

2012년 10월 24일 수요일

승리의 열쇠

새언약을 공부해보니까 이 영광스런 진리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다루시던 구약시절에 이미 돋보이게 계시되어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도바울이 말한바,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하신 그대로입니다(고린도전서 10장 11절). 하나님이 내게 마치 이렇게 묻고계심을 직감했습니다. “데이빗, 승리의 열쇠가 뭔지 알고싶지? 너 죄와 육신과 마귀를 이기고싶지? 원수들과 싸우는 법을 알고싶지?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과거에 어떻게 했었는지 거기 다 써있으니까 보고 배우면 돼. 너희들을 위해 미리 다 기록해 놓은 것이니까 거기서 경건생활하는 교훈을 얻도록 해. ”

죽음의 사자가 에집트 전역을 휩쓸고 지나갔던 유월절 그밤에 이스라엘 백성은 단 한명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남자건 여자건 아이들이건 그들은 모두 집 출입문 양쪽을 양의 피로 발랐던 덕분에 무사했고 편히 쉴 수 있었습니다(출애급기 12장). 이 밤에 안전하게 쉬는 모습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주님의 보혈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감싸주실 능력을 일찌기 그림으로 보여준 예표입니다. 크리스챤들로서 우리는 우리 마음의 문기둥에 그리스도의 보혈을 이미 뿌린 사실을 믿으며 신뢰하는 백성이어야 합니다.

이스라엘백성이 죽임 당한 양의 피에다가 신뢰를 두었을 때 놀라운 일들을 많이 이루었습니다. 죽음의 사자에서 보호받은 것 말고도 바로왕 밑에서 다스림을 받던 노예의 굴레를 벗어나 에집트를 탈출했습니다. 그외에도 이스라엘이 풀려나야할 다른 원수들이 많았습니다. 우리 역시, 오늘날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는 것은 단지 구원을 얻기 위한 것뿐이 아닙니다. 원수들이 틀어쥐고 있는 견고한 진들을 모두 격파하고 자유를 얻으려면 더욱 필요한 것이 보혈과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내 말에 혹시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구원받으셨다면, 즉 그리스도의 보혈의 보호속에 들어와 그분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대업만을 믿음으로서 구원을 얻으신 것이라면 절대 안심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내면에서 끊임없이 죄의 권세와 싸우느라 치솟는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고질적인 악습들은 어떻고요. 여러분들의 영혼을 대적하는 원수들을 싸움에서 물리칠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실상은, 비록 우리가 구원받아 그리스도의 보혈의 보호 아래 있다해도 하늘 세계에 속한 악한 정사와 사탄적인 권세와 귀신적인 진들과 씨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새언약에 의거하여 우리에게 허락된 마련된 권능을 우리가 주장해야하는데 이 권능은 오직 믿음으로만 우리에게 임합니다!

2012년 10월 23일 화요일

새사람

하나님이 우리와 맺은 새언약을 한마디 강력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그분이 자기 백성을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죄의 권세에서 영원히 구원할 것이라 하신 취소불능의 약속입니다.

이 새언약은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바치는 모든 육적인 노력들을 우스꽝스러운 무용지물이 되게 합니다. 우리가 죄를 극복하기 위한 육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쏟아붓는 결심, 능력 및 합리적인 사고 같은 모든 것들에 종지부를 찍게 합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뭔가 해야만 하는 부담을 벗겨서 하나님이 대신 맡아주시는 것입니다.

이 언약을 통해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에스겔 11장 19-20절).

새언약에 의하면, 쉽게 말해 “뭐든지 내가 할 수 있다”고 말하며 생각하던 내가 끝이 난 것입니다. “내 힘만으로 다 할 수 있어. 기도와 성경공부도 내가 한 번 했다 하면, 이 문제도 곰곰히 내가 깊이 생각해본다면, 내 인생인데 내가 왜 변화를 못일으키겠어”

하나님의 새언약은 뭐든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옛사람에게는 안녕을 고하고 이렇게 말하는 새사람을 소개합니다. “내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없어. 그렇지만 성령의 능력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내가 새언약을 연구한 결과 얻은 가장 중요한 소득은 여기에 바로 종말의 시대를 이기는 삶의 비결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워질수록 마귀는 우리가 일찌기 보지 못했던 악귀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향해 공격을 퍼부을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부터 이 일이 벌써 시작되고 있음을 봅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집안에 궤계를 써서 거짓말, 이단 사설, 귀신적인 가르침을 이미 침투시켰습니다. 슬프게도 분별력 없는 크리스챤들이 넙죽넙죽 잘 받아 삼킵니다. 목하 수많은 속임수와 이단이 교회를 휩쓸고 지나가는데, 내가 하나 묻겠습니다. 이런 시대를 믿는 자들이 과연 어떻게 해야 버틸 수 있을까요?

이 문제를 자기가 직접 감당한다고 주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두려워하지말라. 내가 이 문제를 내손으로 직접 처리할 것이다. 나의 새언약으로 큰 힘을 너희들에게 실어주어서 원수들의 총공세가 몰려와도 다 물리치게 해줄 것”이라고 거듭 안심시켜주십니다.

2012년 10월 22일 월요일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by Gary Wilkerson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도를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영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정녕히 나의 마음과 정신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예레미야 32장 38-41절)

초등학교 3학년 때 손을 들고 이렇게 물은 기억이 있습니까? “선생님, 저 화장실에 갈 수 있어요?”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물론 네가 갈 수 있지. 그렇지만 정확한 질문은, 저 화장실에 가도 되나요란다”

이 구절에서는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하나님이 엄히 말씀하는 서술문입니다. 그분은, “너희가 나와 맺은 언약을 깨면 안되겠기에 내가 내 법을 너희안에 담아두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여기 나오는 영원한 언약이라는 표현이 참 좋습니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한가지 나눠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하나님이 우리와 맺은 이 언약에 대한 이해와 그 실재를 즐기면서 동행하는 것에 관한 이 메세지입니다.

그런데 이 새언약이 과연 깨질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예레미야선지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었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규정하였고 바다를 격동시켜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내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내가 말하노라 이 규정이 내 앞에서 폐할찐대 이스라엘 자손도 내 앞에서 폐함을 입어 영영히 나라가 되지 못하리라”(예레미야 31장 35-36).

언제 새언약이 깨진다고요? 별들이 빛을 잃고 태양이 더 이상 있지 아니하며 사람이 지구 중심까지 들어가서 별들과 우주 전체를 측량하는 그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 새언약은 영원한 언약!”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012년 10월 19일 금요일

영혼의 추수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갈라디아서 3:5)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이 우리에게 하신 일을 측량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일한 것에 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은 것에 의해 계수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한량없는 성령을 소유하셨던 단 한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역사를 통해 보면 많은 남자, 여자들에게 놀라운 정도의 성령이 부어졌었습니다. 그러한 신도들은 잃어버려지고, 망가진 세상을 위해 울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항상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안에서 성령께서 우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부분은 이렇습니다.” 성령님 당신께서는 내 주위에서 죄책을 느끼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아십니다. 왜냐하면 당신께서 바로 그들에게 그것을 깨닫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는 고요한 밤에 흘려지는 모든 눈물을 보고 계시고 당신께서는 절망가운데 도와달라고 울부짖는 모든 이들을 알고 계십니다. 저는 당신의 도구입니다. 당신의 심중의 부담을 저에게 채우시고 당신께서 예비하신 사람들에게로 인도하소서!”

하나님은 단 한가지 이유 때문에 우리에게 능력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말씀으로 채워지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거리고 나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그 분은 우리가 성령님의 확실한 불을 가진, 관통하며 죄를 깨닫게 하는 말씀을 말 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의 영이 구원받지 못한 자들로 인해 무엇인가가 요동치고 있습니까? 당신은 당신 주위에 있는 자들 때문에 마음에 부담이 됩니까? 아니면 당신은 당신의 필요함에만 끊임없이 집중하고 있습니까?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그 분의 부담을 갖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그 분에게 쓰임 받을 것을 결코 기대할 수 없습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에게 있어 영생의 일은 머나먼 이국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 친구 그리고 직장동료들이 중심으로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구조건들은 마찬가지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당신은 주님께 그들이 죄를 깨닫게 역사해 주실 것과 때에 맞는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준비시켜달라고 구해야만 합니다.

금식과 기도가운데 당신을 인도해 달라고 구하십시오, 성령께서 죄를 깨닫게 하심으로 그 분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진 자들에게로 말입니다 그 다음엔 성령의 인도하심과 기적을 일으키실 능력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