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능을 부여해주는 은혜 by Gary Wilkerson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삶에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도피하는 자녀나 갈등으로 가득한 결혼생활, 또는 지불할 돈은 없는데 쌓여만 가는 고지서들 등, 그 나름대로의 문제들을 갖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그러한 문제를 직면하고 있다면, 왜 다시금 행위로 돌아가려는 생각을 해야 합니까?

저는 행위가 은혜를 압도하는 노예적 사고방식보다 더 실제적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매일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데, 당신이 어떻게 문제들을 다루는지에 대해 직접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음란물에 중독된 한 젊은이가 그것으로부터 자유케 되기를 원한다고 가정합시다. 그도 역시 “행위”의 사고방식으로 치우치고 있습니다. 어느날 그는 이러한 성경말씀을 읽습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나이다.” (시편 119:9) 이 젊은이는, 만일 그가 성경 말씀을 더 읽으면 자유를 얻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구절을 읽게 됩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 그래서 그는 교회 기도 모임에 참석하여 자기를 위해 기도해달라는 요청을 합니다.

그가 시도한 이 모두는 좋은 일들이지만, 그는 자유함을 얻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행위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고방식은 그를 속박과 절망으로 더욱 빠져들게 할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공급하실 수 있는 것들을 믿음으로 받아야 하는데, 그것을 행위에 의존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세가 아닙니다.

같은 교회의 또 다른 젊은이도 그와 같은 외설물 중독에 빠져있다고 가정합시다. 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여, 저는 당신 외에는 아무 힘도 없다는 것과, 저의 무력함에 대해 너무도 잘 압니다. 그리고 당신이 제 희망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이 절망을 넘어서서, 제 안에서 일하실 당신을 신뢰하며 당신께 나아갑니다. 저는 이 죄를 극복하기 위해 단 한 가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것은 권능을 부여해주는 당신의 은혜입니다. 그것으로 하여금 지금 저를 다스리게 하소서. 그렇지 않으면 제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이 젊은이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의 은혜가 주워질 것입니다. 왜냐고요? 그 이유는 그가 이 단순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저지하는 모든 장벽을 무너뜨렸기 때문입니다.

이 두 예는 표면적으로는 많이 달라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영역에서는 구조적 변동이 일어났습니다. 그의 마음은 “나는 이것을 얻어야만 해”라고 말하는 옛적 속박의 언약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당신의 은혜가 내 모든 노력을 주도합니다.”라고 말하는 언약으로 전향합니다.

우리가 이 시점까지 왔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는 절대 할 수 없었던 것을 우리 삶 가운데서 행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권면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주워진 위대한 구원을 등한시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더욱 위대하시며, 모든 영역에서 여러분의 능력이 되시는 예수님과 그분의 은혜로 돌이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