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14일 토요일

기도의 부흥 by Jim Cymbala

유창하고 능숙한 설교의 영향으로 부흥이 일어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만일 당신이 이전에 있었던 부흥회를 타이머로 쟀다면, 설교보다는 기도와 눈물, 그리고 회개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할애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입니다. 1857-59년에 있었던 “기도 부흥 모임”에서 실제로 설교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명백한 것은 이 기도 모임이 미국 역사상 그 어느 영적 각성보다도 더 많은 추수를 거두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당시 온 나라 인구는 삼천만 정도였는데, 미국 전역을 걸쳐 백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전환했다고 추정됩니다. 그 숫자는 오늘날의 인구에 비례했을 때, 구백만 명의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회개한 것과 비례합니다.

어떻게 그러한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 당시 이곳 뉴욕에는 제레미야 렌피어(Jeremiah Lanphier)라는 한 조용한 사업가가 있었는데, 그는 뉴욕시에 있는 한 네덜란드 개혁파 교회에서 수요일 정오 기도 모임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맨 첫주에는 여섯 명이 나왔고, 그 다음 주에는 스무 명, 그 다음주에는 사십 명이 나왔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날마다 기도 모임을 갖기로 했습니다.

에드윈 오어(J. Edwin Orr)는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그 모임에는 열광적인 모습도 광신적 성향도 없었으며, 단지 기도하는 사람들의 놀라운 움직임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모임에는 설교가 없었습니다. 대신, 누구든 자유롭게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넷째 주가 되자, 1857년의 대 공황이 닥쳤고 채권시장이 몰락했습니다. 그리고 은행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는데, 불과 한 달 이내에 무려 1,400개의 은행이 무너졌습니다.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진지하게 하나님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렌피어 교회의 정오 기도 모임은 세 그룹으로 나뉘어 각기 다른 방에서 모였습니다. 동쪽 브로드웨이 근처의 John Street 감리교회도 사람들로 넘쳤습니다. 곧 Chambers Street의 Burton’s 극장도 정오마다 3,000명의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곧 보스톤, 뉴헤이븐, 필라델피아, 워싱턴, 그리고 미국 남부 지역 도시들에서도 재현되었습니다. 바로 다음 봄에는 2,000명의 시카고 시민들이 기도하기 위해 날마다 메트로폴리탄 극장에 모였습니다. 그때 그 도시에 방금 도착한 21살의 한 젊은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이러한 모임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일하도록 부르심 받았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자기 모친에게 주일학교를 시작할 것이라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청년이 누구였는지 아십니까? 그는 다름 아닌 드와이트 라이언 무디(Dwight L. Moody)였습니다!

오늘날의 아메리카가 목회자나 기독교 서적, 성경 번역들, 그리고 훌륭한 교리적 성명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실제로 결여된 것은, 그분이 하늘 문을 여시고 그분의 권능을 보여주실 때까지 주님을 부르는 열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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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심발라(Jim Cymbala) 목사님은 뉴욕의 한 소외된 지역에 위치한 작고 허름한 건물에서 이십명도 채 못되는 성도들과 함께 브루클린 테버네클(Brooklyn Tabernacle)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는 브루클린 태생이며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 그리고 게리 윌커슨 목사님과 오랜 친분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세계 전역에 걸쳐 World Challenge에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의 주된 강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