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29일 수요일

광야에 홀로 있는 것

오늘날 안타깝게도 많은 사역자가 생명 없는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 말씀은 죄를 일깨워주거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울부짖음에 대답을 주지 못합니다. 이것은 완전한 범죄 행위입니다. 굶주림이 큰 이 시대에 텅 빈 철학을 쏟아 내는 것은 듣는 이들에게 더 큰 상실감만 초래합니다

세례 요한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요 3:29). 그리스어 그대로 번역하면 “그 안에 거하고 함께하는 신랑의 친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신랑의 음성을 듣고 있고, 그것이 나의 가장 큰 기쁨이 되었다. 그 소리는 나의 영혼을 만족하게 한다. 어떻게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가? 그의 곁에 서 있고 그의 마음을 말하는 음성을 들음으로써이다."

‘요한이 어떻게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을까?’라고 궁금해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예수님과 사도 요한이 직접 얼굴을 맞대고 만난 적은 그리스도의 세례 때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짧은 몇 마디 말을 나눈 것에 불과합니다.

요한이 예수님이 하신 것 같이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배운 것은 광야에서 혼자 있을 때였습니다. 어린 나이에서부터 세례 요한은 자신을 광야에 고립시켰습니다. 맛있는 음식, 편안한 잠자리나 좋은 옷으로 이 세상의 즐거움을 찾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나 조언자, 책이 없었습니다. 그 고립된 시간 동안 요한은 주님과 교제했습니다. 그 모든 시간 동안, 그는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의 작고 고요한 목소리를 듣는 법을 배웠습니다. 세상에 육으로 오시기 전부터 그리스도는 요한에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요한은 주님과의 지속적인 교류안에 거함으로써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배웠습니다. 이것이 그가 회개의 메세지를 받고, 어린 양이 오심을 깨닫고, 주님은 흥하고 자신은 쇠하여야 하는 필요성을 느낀 것도 다 같은 방법을 통해서였습니다. 요한은 이 모든 것들을 주님에게서부터 배웠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은 그의 기쁨이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이러한 교류를 한다면, 주님은 우리 삶의 자세한 부분 하나하나까지 알려주시고 인도해주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