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15일 월요일

그분의 식탁으로 나아옴

오래된 복음성가 하나가 나에게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식탁을 베푸셨네/그곳에서 하나님의 성도들이 먹는다네/그분은 택하신 백성을 초청 하신다네/와서 먹으라고.”

얼마나 흥겨운 전망입니까! 주님은 천상에서 그분을 따르는 자를 위하여 식탁을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눅22:29-30). 주님을 갈망한다는 것은 믿음으로 우리도 또한 이 식탁에 앉혀진다는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고전 5:8)라고 가르칠 때 그는 우리가 천상에서 주님과 함께 그분의 왕의 식탁에 자리를 배정받았다는 것을 우리가 명확히 이해하게 만들려는 뜻이 있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항상 오십시오. 당신의 자리가 비어 있다는 말을 하게하지 마십시오.”

슬픈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명절을 지킨다는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에 의해 들려져 천상의 장소에서 그분과 함께 앉음으로 우리에게 수여된 위엄과 영예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너무 바빠져서 그분의 식탁에 앉지 못합니다. 우리는 교제보다는 봉사를 통해 영적 기쁨을 끌어내려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점점 덜 알게 되는 주님을 위해 더욱더 많은 것을 행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그분의 일에 바쳐 누더기가 되도록 분주한 반면 명절은 거의 지키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이 그분의 종, 사역자, 목자들로부터 다른 모든 것보다 구하는 것은 자신의 식탁에서 나누는 교제입니다. 이 식탁은 영적으로 친밀해지는 장소며 매일 베풀어집니다. 명절을 지킨다는 것은 계속해서 양식, 힘, 지혜와 친교를 위해 그분께 나아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사건 이후 모든 영적 거인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식탁을 존중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광대함 가운데에서 자신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아직도 자신들이 그분과 그분의 생애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적다고 애통하며 죽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비전은 너무 왜소하고 지나치게 제한되어 있습니다. 이 악한 세대의 복잡하고 날로 늘어가는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광대함”의 복음이 필요합니다. 아시다시피 하나님은 단지 이세상의 문제를 풀어주시는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분의 광대함 속으로 삼켜버리십니다! 그리스도의 광대함에 대한 계시가 늘어나는 사람은 아무런 문제도, 마귀도, 지구상의 어떤 권력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그 모든 것보다 그리스도가 크시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가 그분이 얼마나 광대하신지, 경계가 없으시고, 측량할 수 없으며, 무한 하시고 거대하신지에 대한 계시를 갖고 있다면 우리는 인생의 문제들에 의해 결코 다시는 압도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본이 됩니다. 그는 그리스도에 대해 그처럼 날로 증가하는 계시를 갖기로 결단했습니다. 사실인즉, 그리스도에 대해 그가 소유했던 것 모두가 계시에 의해 왔습니다. 주님의 식탁에서 그는 배웠고 성령에 의해 진리임을 깨달았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바울은 개종한 후 삼년 후에야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만나 교제하였고 선교 여행을 계속하기 전 단지 15일 동안만 그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후에 그는 말했습니다.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엡3:3). 성령은 하나님의 깊고 은밀한 비밀들을 아시므로 바울은 지속적으로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엡3:8)을 이해하고 전파하는 은혜의 선물을 얻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주님은 진리의 말씀을 발견하기 위해 상반되는 목소리들을 걸러내는 데 만족하지 않는 신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분에 대한 계시를 갈망하기 원하십니다. 깊고 인격적인 친밀함, 그것은 모두 우리 자신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