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9일 금요일

그분의 손에 당신의 이름을 쓰셨습니다

기도할 때 우리에게는 얼마나 놀라운 권위가 주어졌는지요. 정확히 어떻게 우리는 이 권위를 사용합니까? 그리스도 그분의 이름을 통하여 사용합니다. 예수님께 우리의 믿음을 두었을 때 그분은 우리에게 자신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나는 그리스도의 것이며, 나는 그분 안에 있으며, 나는 그분과 하나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예수님은 우리의 이름을 취하셨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그분은 자신의 손바닥에 그 이름을 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서 그분의 영광스러운 이름하에 등록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라는 구절이 단지 비인격적인 공식이 아니라는 이유를 아셨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은 문자 그대로 예수님과 함께 가지고 있는 우리의 지위입니다. 그리고 그 지위를 아버지께서 인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 말씀하십니다. “그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요16:26-27).

여기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명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때마다 너희의 요청은 마치 내가 구하는 것과 똑같은 능력과 효과가 아버지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기도는 마치 아버지 보좌 앞에서 예수님 자신이 말씀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병자에게 안수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은 마치 예수님이 병자에게 안수하여 치유하는 것처럼 우리를 보십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받기 위하여.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아버지, 나는 가서 열매를 맺기 위하여 그리스도안에서 택함 받은 자로 당신 앞에 섰습니다. 이제 나의 기쁨이 충만하기 위하여 풍성하게 구합니다.”

나는 많은 크리스천들이 “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했지만 내 기도는 응답받지 못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이 믿는 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청구하려했다. 하지만 내게는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기도에 대해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와 우리의 연합을 더럽히는 어떤 죄를 허용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것들은 장해물이 되어 그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복을 가로막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죄를 버릴 때까지 그분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또는 하나님의 일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나 냉담한 태도 때문에 막히기도 합니다. 아마도 우리가 그리스도의 능력으로부터 우리를 단절시키는 의심에 눌려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야고보는 경고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야고보1:6-7).

야고보는 분명히 말합니다. “흔들리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못할 것이다.” 야고보가 사용한 흔들리다라는 단어는 “결정하지 않은”이란 뜻입니다. 사실은 이러한 사람들이 요청을 할 때 그들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나에게 응답하시면,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이 기도만 응답해 주시면 당신께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그러나 응답해 주시지 않으면, 나는 내 방식대로 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뇌물을 받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을 아시며 언제 우리가 그분의 아들에 대하여 헌신을 결단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아십니다. 전적으로 그분께 맡기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스도안에 있는 능력을 유보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