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24일 월요일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아버지는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바로 이점에서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을 실망시킵니다. 그들은 기꺼이 죄와 실패에 대해서는 거듭 거듭 가책을 받습니다. 하지만 성령이 아버지의 사랑을 그들에게 넘치게 부어주시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가책 하에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는 결코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또한 성령이 그 사랑을 그의 영혼에 역사하도록 허용하지 않습니다.

우리 타임 스퀘어 교회에서는 의로운 자,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는 책망을 사랑한다고 가르쳐왔습니다. 그는 성령이 그의 감추어진 죄와 불신의 영역을 드러내는 것을 환영하도록 배웠습니다. 왜냐하면 죄를 처리하면 처리할수록 더욱 행복하고 자유로워지기 때문입니다.

헌데, 나는 많은 크리스천에게서 “주님 나를 계속 심판해 주십시오. 책망하시고 꾸짖어 주십시오,”라는 태도를 감지합니다. 이것은 진정한 찔림과는 다른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의 뉴스레터의 메시지에 대한 반응에서 이런 태도를 많이 접합니다. 내가 천둥 치는 듯한 심판의 메시지를 쓸 때, 엄청나게 긍정적인 답신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감미로움과 사랑에 대하여 나누면, “당신은 더 이상 진리에 대해 설교하지 않는군요!”라는 편지를 받습니다. 이분들은 “당신이 꾸짖지 않으면 당신의 말은 더 이상 복음일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이 신자들은 성령의 위대한 사랑의 사역에 전혀 참여해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이 감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을 따라 행하기 위해서 꼭 배워야만 하는 영역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한다는 것은 성령으로 하여금 그분이 행하시도록 보내심을 받은 일을 하시게끔 허용한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지금 당장 그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당신의 마음에 넘치게 부으시도록 허락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5:5).

이사야는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위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사66:13). 이사야는 “아직도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걸어가”(사57:17)는 고집 센 하나님의 백성에게 쓴 것입니다.

말해보십시오. 조언을 듣기 거부하는 고집 세고 완고한 학생의 곁에 선생님은 얼마나 오래 있어줄까요?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사야 선지자는 인간들 중에 가장 숭고한 이미지 중에 하나인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들어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 대해 갖고 계신 사랑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어떤 어머니는 하루 종일 걸려 뉴욕주 북쪽에 위치한 감옥에 있는 아들을 방문하러 갑니다. 그녀는 단지 잠시 동안 아들을 보기 위해 몇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갑니다. 그 어머니는 흉한 죄수복을 입은 아들을 쳐다보고, 고통어린 그의 눈을 보면서 매번 갈 때 마다 마음속으로 조금씩 죽어 갈 것입니다. 하지만 결코 그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그녀의 아들입니다!

이 같은 사랑이 바로 하나님이 당신을 향해 갖고 계신 사랑이라는 것을 성령은 당신에게 알려주기 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너희는 언젠가 너희의 전부를 예수님께 드렸다고 말했다. 너희의 사랑을 그분께 드렸고 그분은 여전히 너희를 사랑하신다. 그리고 이제, 나도 너희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일을 하기위해 그분에 의해 보내심을 받았고 계속 일할 것이다!”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 외에 이 세상에는 진정한 위안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이 당신 안에 거하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분 한 분만이 어두운 밤, 따뜻한 침대에 당신을 누이시고 완전한 평강으로 당신의 마음을 채우실 수 있습니다. 그분만이 고통과 슬픔의 때에 진정으로 당신을 안위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이 위로는 단지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영구한 것이다!”라고 당신에게 확신 시켜 주실 분입니다. 아버지는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바로 이점에서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을 실망시킵니다. 그들은 기꺼이 죄와 실패에 대해서는 거듭 거듭 가책을 받습니다. 하지만 성령이 아버지의 사랑을 그들에게 넘치게 부어주시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가책 하에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는 결코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또한 성령이 그 사랑을 그의 영혼에 역사하도록 허용하지 않습니다.

우리 타임 스퀘어 교회에서는 의로운 자,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는 책망을 사랑한다고 가르쳐왔습니다. 그는 성령이 그의 감추어진 죄와 불신의 영역을 드러내는 것을 환영하도록 배웠습니다. 왜냐하면 죄를 처리하면 처리할수록 더욱 행복하고 자유로워지기 때문입니다.

헌데, 나는 많은 크리스천에게서 “주님 나를 계속 심판해 주십시오. 책망하시고 꾸짖어 주십시오,”라는 태도를 감지합니다. 이것은 진정한 찔림과는 다른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의 뉴스레터의 메시지에 대한 반응에서 이런 태도를 많이 접합니다. 내가 천둥 치는 듯한 심판의 메시지를 쓸 때, 엄청나게 긍정적인 답신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감미로움과 사랑에 대하여 나누면, “당신은 더 이상 진리에 대해 설교하지 않는군요!”라는 편지를 받습니다. 이분들은 “당신이 꾸짖지 않으면 당신의 말은 더 이상 복음일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이 신자들은 성령의 위대한 사랑의 사역에 전혀 참여해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이 감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을 따라 행하기 위해서 꼭 배워야만 하는 영역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한다는 것은 성령으로 하여금 그분이 행하시도록 보내심을 받은 일을 하시게끔 허용한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지금 당장 그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당신의 마음에 넘치게 부으시도록 허락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5:5).

이사야는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위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사66:13). 이사야는 “아직도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걸어가”(사57:17)는 고집 센 하나님의 백성에게 쓴 것입니다.

말해보십시오. 조언을 듣기 거부하는 고집 세고 완고한 학생의 곁에 선생님은 얼마나 오래 있어줄까요?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사야 선지자는 인간들 중에 가장 숭고한 이미지 중에 하나인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들어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 대해 갖고 계신 사랑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어떤 어머니는 하루 종일 걸려 뉴욕주 북쪽에 위치한 감옥에 있는 아들을 방문하러 갑니다. 그녀는 단지 잠시 동안 아들을 보기 위해 몇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갑니다. 그 어머니는 흉한 죄수복을 입은 아들을 쳐다보고, 고통어린 그의 눈을 보면서 매번 갈 때 마다 마음속으로 조금씩 죽어 갈 것입니다. 하지만 결코 그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그녀의 아들입니다!

이 같은 사랑이 바로 하나님이 당신을 향해 갖고 계신 사랑이라는 것을 성령은 당신에게 알려주기 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너희는 언젠가 너희의 전부를 예수님께 드렸다고 말했다. 너희의 사랑을 그분께 드렸고 그분은 여전히 너희를 사랑하신다. 그리고 이제, 나도 너희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일을 하기위해 그분에 의해 보내심을 받았고 계속 일할 것이다!”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 외에 이 세상에는 진정한 위안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이 당신 안에 거하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분 한 분만이 어두운 밤, 따뜻한 침대에 당신을 누이시고 완전한 평강으로 당신의 마음을 채우실 수 있습니다. 그분만이 고통과 슬픔의 때에 진정으로 당신을 안위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이 위로는 단지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영구한 것이다!”라고 당신에게 확신 시켜 주실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