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부흥

최근에 어떤 네 명의 십대 청소년들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지난해에 우리 교회에 오셔서 말씀을 전해주셨을 때, 우리 교회는 죽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넷은 기도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를 원했고, 회개하며 예수님을 위해 불타오르기를 원했습니다. 우리 모임은 열 명으로 불어났고, 사람들이 와서 구원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교회 집사님들과 목사님들을 우리 기도 모임에 초청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진정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진정한 부흥이란, 예수님을 향한 그러한 강렬한 사랑의 회복입니다. 그것은 그분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려는 새로운 열망과, “그분이 무엇을 말씀하시든, 나는 순종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태도에 의해 판정되는 것입니다. 사실상 부흥이란, 개인적으로 모든 죄를 자백하고 버리며, 오직 그리스도 임재의 통로가 되기를 열망하는 사람들에 의한 순종적 사랑으로의 귀환입니다. 부흥은 그러한 사람들 안에서 구현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영광과 임재를 그들 안에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생명이 언제나 그들을 통해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대형교회 목사들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꼭 와서 보셔야만 합니다. 수천의 사람들이 나오고 있어요. 우리 교회는 완전 만원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찬양은 참으로 근사합니다.” 저는 이러한 몇몇 교회들을 큰 기대를 하고 방문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형 모임에서 예수님의 실제적 임재를 감지하거나 경험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습니다. 회중이 진정한 회개를 하는 것을 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만일 한 선지자가 앞에 나가 이혼, 간음, 사통, 그리고 그러한 교회에서 들을 수 있는 악과 혼합된 음악에 대해 폭로했다면, 회중 절반이 걸어나갔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들은 즐기고 있었습니다! 한 교회의 어떤 사역자는 약 오십 명의 사람들을 기도실로 초청한 후 판매 광고를 했습니다. 그는 “기도 응답을 받기 위한 방편으로, 그 교회에 등록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그 교회에는 그분 임재의 수단이나 통로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찬양과 찬송이라고 일컫는 것은 단순히 소음에 불과했고, 저는 그 무리가 소리쳐 오락을 구할 때가 곧 올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진정한 임재가 없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오직 스릴만을 원합니다. 제가 이러한 모임에서 나오면서, 저는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계시지 않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알았습니다. 그들이 그분께 순종치 않는 삶을 사는 것이 명백하기에, 그들은 진리 안에서 그분을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그분을 사랑한다고는 말하지만, 그분께 순종치 않는 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나타내시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하리라.” (요한복음 1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