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20일 금요일

하나님의 인자하심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 하느냐.?” (롬2:4)

여기서 사도바울이 말하는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멸시 하느냐” 는 무슨뜻 일까요? 여기서 멸시란 “그가 생각하기에 불가능하다” 란 뜻입니다. 바꿔 말하면, 이 믿는 자는 이렇게 말한 것 입니다. “이런 은혜와 자비는 불가능하다. 난 도저히 이런 은혜와 자비를 헤아릴 수 없다.” 그의 신학과는 맞지않는 부분 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받아들이는 대신 거부했습니다.


마태 복음 18장 23-35절에 등장하는 배은망덕한 종은, 왜 왕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못했을 까요.? 이유는 단 하나- 그는 그의 죄에 대한 심각성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왕은 그 종에게 이미 말해주었습니다. “너에게 자유를 주노라. 더이상 죄책감도 갖지 말라. 너에게 필요한 일이나, 그 어떤 체벌과 책임도 없다. 네가 해야할 일은, 내가 너에게 보여준 선함과 관대함에 집중하는 것 뿐이다.”

비극적이게도,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다른 이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대신, 그는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그 종에게 일어난 일이 이것입니다. 그 종은 왕이 그에게 베푼 자비의 핵심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관대하심과 과분한 용서의 목적은 단 하나 - 우리를 회개의 자리로 나오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사도바울이 묻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회개의 자리로 이끌기 위해서 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까?”

이 말씀에서, 왕이 종을 용서한 이유가, 바로 회개 시키기 위해서란 것이 분명합니다. 왕은 자기를 믿는 종이, 스스로의 힘으로 무엇을 하기보단, 왕의 인자함 안에서 안식을 누리기 원했던 것 입니다. 이런 안식은 종에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 여유를 줄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종은 회개하는 대신, 왕의 인자하심을 의심하며 떠났습니다. 그리고 종은 대비책을 세웠습니다. 그는 왕의 자비를 멸시하며 다른 이들을 비판하고 판단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큰 고통속에 살고 있을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이 사람은 용서가 허락되는, 거룩한 곳을 떠났습니다. 그곳은, 그가 주님의 인자하심과 은혜를 경험한 곳 이었습니다. 그는 기쁨대신, 완전한 자유를 멸시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불가능하다 여기는, 믿는자들은, 사단의 거짓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는 영혼의 안식이 없습니다. 그의 생각은 늘 혼란속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는 늘 심판을 두려워하며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런 고문같은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싸움과 갈라짐이 이렇게 많은 건가요? 그래서 많은 목사들이 서로 싸우며, 더 많은 교단들이 서로간의 친목을 거부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