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23일 화요일

은혜의 법 아래

탕자에게는 사도 바울이 “마음이 새롭게 됨”이라고 불렀던 것이 필요했습니다. 나는 탕자의 비유에서 이 구절을 읽기 좋아합니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눅15:22-23).

탕자는 비난을 받아야한다는 마음이 있었고 이것은 사탄이 넣어준 마음이었습니다. 오늘날도 같은 일들이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일어납니다. 우리 아버지는 사랑하는 팔로 우리를 껴안으시며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한데 우리는 그분의 사랑의 표현을 신뢰하기 보다는 우리의 과거 죄를 파헤치며 하나님께 우리가 얼마나 형편없는 자들이었는지 고하는 것이 겸손인줄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늘 죄의식으로 팽배하여 “하나님은 나에게 진노하실 수 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 보다 내가 더 악한 죄를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종들이 가장 좋은 옷을 내어다가 아들에게 입힌 것은 그가 그리스도의 의로 입힌것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의 손가락에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하는 가락지를 끼워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들에 발에 신발을 신겨주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평안의 복음으로 신기운 것을 상징합니다. 이 사랑하는 아버지는 그의 자녀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를 기쁘게 하려는 자기노력과 같은 조각 조각난 육의 누더기들을 버려라. 내가 너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보여주마. 너는 나의 집과 나의 존전에 새로운, 왕과 같은, 왕족 자녀로 들어오고 있다. 거지나 노예로서가 아니라 나를 기쁘게 하는 나의 아들로 들어오는 것이다! 자, 담대하게 확신을 가지고 들어오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자신의 임재 가운데로 받아들이시는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새롭게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10:19-20, 22 저자 임의 강조).

여기서 “담력”이란 말은 “해방된 노예”를 의미하는 어근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것은 더 이상 죄와 사망의 법아래 있지 않고 은혜의 법아래 있다는 뜻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아버지의 사랑에 의해, 오직 그분의 은혜로, 우리가 그분의 존전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그 자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자격을 주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1:12-13 이탤릭체 부분 저자 임의 삽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