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7일 목요일

대각성

대각성이란 말을 나는 어떤 의미로 썼을까요? 나는 바울이 계시와 계몽이라고 묘사한 것을 말하고자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 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1:17-19).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당신에게 새로운 계시를 주시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눈뜨게 해주시기를 기도 합니다. 나는 그분께 당신이 자기 유산, 즉 그리스도안에서 당신에게 속한 부요함을 새롭게 깨닫게 해주시기를 구합니다. 하나님이 당신 안에 풀어놓기 원하시는 강력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안에 있었던 것과 같은 능력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늘 보좌에 앉아계신 예수님 안에 있었던 바로 그 능력이 지금 당신 안에 있습니다.


바울에 의하면, [그의 능력이]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바로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의 능력과 같다는 것입니다(1:20, 19). 바로 이런 이유로 바울은 우리에게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고후13:5)하라고 권고합니다.


우리 자신을 어떻게 시험해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엄청난 약속에 자신을 견주어 봄으로써 시험하는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마귀를 물리치기 위해서 나는 그리스도의 자원에 의지하는가? 죄를 이기기 위해서 그분의 능력을 사용하는가? 나는 예외 없이 모든 믿는 자에게 약속하신 예수님의 기쁨, 평강, 안식 속에서 계속해서 살고 있는가?


당신 개인의 “대각성”은 어느 날 당신이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다음과 같이 부르짖는 그날에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삶은 틀림없이 이것 보다 뭔가 더 나아야만 한다. 내 모든 계획은 흐트러지고 내 모든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나는 공포와 육신의 정욕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다. 그러나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나는 주님이 이 패배한 삶보다 나은 것으로 부르신 줄 알고 있다. 또한 나는 위선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 하나님, 내가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당신의 힘을 공급해 주시는 그런 곳이 실제로 있습니까? 당신은 진정으로 나를 시련가운데서 정복자보다 뛰어난 자로 만들어 주기를 원하십니까? 내가 전투를 치르는 동안에도 나를 위하여 완벽한 평강의 자리를 예비해 놓으셨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당신과 지속적으로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이 정말 가능한가요? 내가 더 이상 냉랭한 상태에 빠지지 않아도 되고 또 당신을 기쁘게 하기위해 고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사실인가요? 내 믿음이 굳건하게 지속되기 때문에 더 이상 부흥이 결코 필요 없는 안식처가 실제로 당신 안에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