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12일 화요일

인간의 소망 너머에

인생을 살다보면 인간의 소망이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때가 있습니다. 조언도 없고, 의사나, , 다른 아무 것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상황은 불가능으로 치닫습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종국에는 파멸에 이를 것입니다.


그러한 시기에 유일하게 남은 소망은 누군가가 예수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아버지든, 어머니든, 또는 아이든, 아무 상관없습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을 붙드는 책임을 져야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응답을 듣기 전에는 자리를 뜨지 않을 것이다. 그분은 나에게 ‘이제 됐다. 네 길을 가라’고 말씀해야만 한다,”라고 결심해야 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우리는 위기에 처한 한 가족을 봅니다.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4:46). 이는 아마도 왕족이었을 지도 모를 지체 높은 집안이었습니다. 부모가 죽어가는 아들을 간호하고 있을 때 죽음의 영이 그 가정을 덮고 있었습니다. 그 집에는 다른 가족, 아마 고모나 삼촌, 할아버지, 할머니 또는 다른 자녀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인들을 포함해서 전 가족이 믿었다고 우리는 듣습니다.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4:53).


문제에 처했던 그 가정에서 어느 한 사람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고 그분의 기적적인 권능에 대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25마일 가량 떨어진 가나에 계시다는 말이 어떻게 해서 그 가정에 들려왔습니다. 아버지는 절박한 나머지 주님을 찾아 몸소 나섰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4:47). 이 신하는 단단히 결단하고 주님을 향하여 무리를 헤치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이 병을 고쳐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4:47). 얼마나 놀라운 중보의 장면입니까. 이 사람은 주님이 한 말씀 해주실 것을 간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젖혀두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4:48). 예수님은 무슨 의미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분은 이 사람에게 가장 시급히 필요한 것은 기적적인 구원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히려 제일 먼저 다루어야 할 것은 그 사람의 믿음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스도는 그 가족의 집에 들어가 죽어가는 아들에게 안수하고 그를 낫게 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랬다면 이 가족이 예수님에 대해 아는 것은 그분이 기적을 행하셨다는 것이 전부였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이 사람과 그 가족에게 그이상의 무엇인가를 바라셨습니다. 그들이 자신을 육신을 입은 하나님으로 믿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이 신하에게 핵심만 보면 이렇게 말씀 했습니다. “네가 지금 이 필요를 채워주시기를 구하고 있는 이가 하나님인 것을 믿느냐? 너는 내가 그리스도요 세상의 구세주 인 것을 믿느냐?” 그 신하가 대답했습니다.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4:49). 이 때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서 믿음을 보셨음이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뒤이은 구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4:50)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예수님이 마치 이렇게 말씀하신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는 내가 육신을 입은 하나님인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