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1일 목요일

하나님의 벗

하나님이 친히 아브라함과의 관계를 묘사한 “나의 벗 아브라함”(41:8)이란 말을 생각해 보십시오. 신약도 마찬가지로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2:23).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칭찬입니까! 대부분 크리스천들은 유명한 찬송가 “죄 짐 맡은 우리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를 불러 보았을 것입니다. 위의 두 성경 구절들은 이 진리를 힘차게 절실히 느끼게 합니다. 우주 만물의 창조주께서 한 인간을 벗이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일이 아브라함에게 일어났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과 얼마나 가까운 사이였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사용한 친구라는 히브리말은 애정과 친근함을 의미합니다. 야고보가 사용한 헬라어 친구는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를 뜻합니다. 둘 다 깊은 친밀함을 나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가까이 자라갈수록, 그분의 존전에서 전적으로 살고자하는 우리의 바람도 커지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예수님만이 유일하게 진정한 토대가 되심을 점점 더 확실히 알게 됩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11:10)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 인생에서 영원한 것이 없었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이 그에게는 “낯선 곳”이라고 말합니다. 그곳은 뿌리를 내릴 곳이 못 됩니다. 아브라함이 갈망했던 하늘의 본향은 실제로 있는 장소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아버지와 함께 집에 거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늘의 본향”의 히브리말은 Pater 인데 아버지(Father)를 뜻하는 말의 어근에서 왔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바랐던 하늘의 본향은 문자 그대로 아버지와 함께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신비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몽롱한 영적 안개에 싸여 살았던 금욕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지상의 삶을 살았고 세상사에 깊이 관여하였습니다. 어떻든 수천이나 되는 가축을 소유했던 사람이었고 사병을 조직할 만큼 많은 하인이 있었습니다. 하인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소, , 염소들을 사고파느라 바빴을 것입니다.


그토록 많은 업무와, 책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