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25일 목요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제한함 (Limiting)

“그들이...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노엽게(limited, KJV)하였도다”(시78:41). 여기에서 쓰인 limited 는 두 개의 어근을 가진 말입니다. “형적을 긁어내어버림으로써 하나님을 슬프게 하였다”는 의미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limiting God 의 의미는 선을 긋거나 원을 그려놓고 “하나님은 이 안에 계신다. 이것을 넘지 않으신다,” 고 말하는 것입니다. 많은 믿는 자들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규모에 대해 마음속에 아주 작은 형적이나 개념을 표시해 둡니다.

예루살렘의 초대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작은 원을 그려 그리스도를 제한하고 유대인들에게만 한정시켰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한될 수 없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제한하는 우리의 작은 원을 지속적으로 타파하시고 항상 최대한으로 뻗어나가십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약 40년 전 순복음주의자들은 성령 세례를 그들 자신만의 운동으로 제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대다수 순복음주의자들이 “우리는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교회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순복음주의 설교자들은 죽어있는 주류 교단에 대해 애통하며 “저들은 우리와 같은 충만한 복음이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불시에 하나님의 영이 모든 사람이 그려놓은 원을 터뜨려 버렸습니다. 성령이 모든 교단을 망라하여 믿는 자들에게 임했습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에 대해 쓴 책이 John L. Sherrill의 “They Speak With Other Tongues(그들은 방언으로 말하였다)”입니다.

주님은 또한 내가 저술한 “The Cross and the Switchblade(십자가와 칼날)”을 사용하셨습니다. 특별히 캐톨릭 교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헌데 베드로와 초대교회마냥 나 자신도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전에 하나님이 내 마음가운데서 역사하시도록 내어드려야만 했습니다. 나는 순복음주의자로 양육 받았는데 난생처음 신부님들이 죄를 자각하여 예수님께 울부짖으며 흐느끼는 것을 보았습니다.

곧 이어 복음주의적 설교자들이 나와 다투었습니다. “캐톨릭의 마리아 숭배 사상을 어찌하려고 하십니까?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사역할 수 있습니까?” 나도 베드로와 같은 답변을 하였습니다. “나는 마리아 숭배 사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내가 아는 것은 캐톨릭 교회에도 굶주린 사람이 있다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신부님들 가운데도 진정으로 예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들에게 그분의 영을 부어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도처에 자신의 백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 중 어느 누구에게도 보잘 것 없다거나 불결하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미미한 존재로 묘사하지 않도록, 또한 우리의 미약한 생각 안에 가두어놓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