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7일 화요일

섬김

자존심은 섬김의 정신에 의해 격퇴당합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은 다른 무엇보다도 종이 되는 것만큼은 원치 않습니다. 미국에는 “우주의 주권자들”이라고 불리는 어린이들에게 매우 인기 있는 게임이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불행하게도 많은 그리스도인의 신학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 성경 말씀을 인용합니다. “그러므로 너는 더 이상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상속자니라” (갈라디아 4:7). 여기서 바울이 실제로 말하고 있는 것은, 올바르게 배운 아들은 그가 법적으로 모든 권한을 가진 왕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지만, 아버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종의 역할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장 1절에서 그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했고 야고보도 자신을 “하나님과 주 예수의 종”이라고 불렀습니다.

종은 자신의 의지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주인의 말씀이 곧 그의 의지입니다. 십자가는 나 자신의 모든 계획과 생각, 바램, 희망 그리고 모든 꿈의 죽음을 나타냅니다. 무엇보다도 십자가는 나 자신의 의지에 대한 절대적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참된 의미의 겸손입니다. “그리하여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자신을 낮추시고 죽음에까지 순종하셨으니 십자가의 죽음에까지라” (빌립보서 2:8).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음식 (삶에서의 만족)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라 (요한복음 4:34). 달리 설명하면, “나는 스스로 행하기를 거부한다. 나는 내 아버지로부터 모든 인도하심을 듣기 위해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분이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기 때문이니라” (요한일서 4:17).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기꺼이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정말로 그분의 뜻을 따르길 원해.”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놓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무언가 우리가 원하는 것에, 무언가 좋아 보이는 것에, 그리고 논리적으로는 그럴싸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들에 우리 마음을 둡니다. 우리는 금식하고 기도하며 중보합니다. 눈물이 강물이 되도록 웁니다. 선포하며 성경 말씀을 인용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받아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오는 가장 큰 함정은, 하나님에게서 오지 않은 좋은 발상, 그분에게서 온 것이 아닌 전략, 그분 것이 아닌 잘 잉태된 계획입니다. 당신의 열망이 십자가를 통과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그것으로부터 떠나서 그것에 대해 죽을 수 있습니까? 당신은 정직하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주님, 마귀가 저를 막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저를 막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일 이것이 당신의 뜻이 아니라면, 이것은 저를 망하게 할 거예요. 제가 십자가에 그것들을 던져버립니다. 당신의 방법으로 해 주세요,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