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부터 알아야 합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를 만난 후 (누가복음 17:11-19 참조), 아마 예수님과 사도들은 간단한 식사 후 그 마을로부터 멀리 떠나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 뒤에서 소란한 음성이 들렸고, 그들이 뒤돌아 보았을 때, 한 사람이 팔을 흔들면서 큰 소리로 부르며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제자 중 하나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사람은 아까 마을에 있었던 열 명의 문둥병자 중 한 사람이네요.” 그가 가까이 오면서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예수님께 영광을!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는 사마리아인 문둥병자였습니다! 그가 예수님 앞에 와서는 주님 발 앞에 엎드려 찬양과 감사를 터뜨렸습니다! 그의 가장 깊은 심령으로부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향한 경배가 쏟아져 나왔던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영광 받으소서!”

예수님께서는 그를 내려다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열 사람이 정결하게 되지 아니하였더냐? 그런데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누가복음 17:17). 주님은 이렇게 묻고 계셨던 겁니다. “왜 너 혼자 왔느냐? 내가 고쳐준 나머지 네 친구들은 다 어디 있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오늘도 여전히 하고 계신 질문입니다! 그분이 정결케 하시고 온전케 만들어준 많은 자 중, 오직 소수만이 주님께 돌아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모든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들은 고침 받은 아홉 문둥병자가 처했던 곳과 똑같은 장소에 있습니다. 즉, 종교의 영에 의해 삼켜진 채 교회 안에서 상실되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성경의 통계를 믿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에 기록된 이 사건의 통계가 정확하다면, 예수님으로부터 만짐을 받은 자들 중 구십 퍼센트가 생명이 없고 메마른 교회로 돌아간다는 것이 됩니다. 그들은 종교에 빠져서 결코 예수님께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 아홉 문둥병자는 절실히 그들의 삶을 되찾기를 원하며 가족에게로 돌아가고 싶었겠지요. 그리고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나는 내 자존심을 되찾고 싶어. 다시 회당으로 돌아가서 오실 메시아에 대해 더 공부해야겠어!”

당신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왜 잘못입니까? 한 남자가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가 아닌가요?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의 깊은 것을 묵상하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그리스도인들은 그 아홉 문둥병자가 그랬듯이 부지런히 일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더군다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제사장에게 곧장 가라고 하셨잖아요?”

예, 그 모두가 맞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께서 맨 먼저 예수님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 모든 것은 무의미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