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2일 목요일

당신을 끈질기게 괴롭히는 죄에 대한 승리

죄는 크리스천들로 하여금 굴욕적인 패배가운데 사는 비열한 겁쟁이가 되도록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 가운데 있는 은밀한 죄 때문에 죄에 대해 용기있게 대항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불순종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죄를 묵인하고 자신들이 패배 속에 살기 때문에 승리에 대해 설교할 수 없습니다.

다윗왕은 대적들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주님과 바르고 좋은 교제를 나누고 있을 때 그의 대적 중에서 아무도 그 앞에 설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죄를 짓고 주님에게서 멀어졌을 때 그의 대적들이 대담해지고 그를 이겼습니다.

다윗의 간음죄는 그의 가장 위대한 승리 중 하나를 이룬 직후에 있었습니다. 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은 대단한 승리의 영광에 취해 밧세바를 탐하기 시작했고 그녀의 남편인 우리아를 죽이고 그녀와 간음죄를 저질렀습니다.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삼하 11:27).

그래서 주님은 선지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냈습니다. 이 선지자는 다윗의 죄와 정죄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 조언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나단은 이 사안의 핵심을 찔렀습니다. “당신은 주님의 율법을 멸시했습니다. 당신은 주님이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당신은 은밀한 죄를 지었습니다.” 다윗은 광야로 도망했습니다. - 죄로 인해 그의 능력과 용기를 박탈당한 비열한 자로서 울면서, 맨발로.

우리는 우리의 문제와 두려움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 충분히 배웠습니다. 우리의 삶속에 있는 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배우지 못했습니다. 습관이 되어버린 죄를 당신은 어떻게 극복합니까? 거의 당신 삶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죄에 대한 승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어떤 공식이나 간단한 해결책이 없습니다. 영과 육 사이의 전투를 하는 사람들을 위해 성경에 많은 위로가 있는 줄 압니다. 바울도 동일한 종류의 원수에 대항해서 동일한 종류의 전투를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롬7:19).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들은 성령께서 그들 심중에 심어놓으신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잠언서 기자는 선포합니다.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잠 16:6).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3: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14:27).

여기서 언급된 “하나님을 경외함”은 존경에서 나온 두려움과 존중을 훨씬 능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에 대한 경외가 우리 안에 깊이 뿌리내리기 전에는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충만한 계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모든 계시는 그분에 대한 거룩한 경외와 연결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없이는 우리가 죄로부터 지속적인 구원을 체험할 수 없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하지만 많은 교회에서 주님에 대한 경외가 금기시 되는 주제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주제로 한 설교를 마지막으로 들어 본 것이 언제 입니까?

이에 대한 한 가지 이유로 사회의 방임주의가 하나님의 전을 침투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최근 들어 “은혜”라는 단어는 죄를 덮어준다는 의미가 되어버렸습니다. 시편기자가 기록했듯이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습니다(시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