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7일 화요일

징계하는 사랑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은 당신은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회개하고 그분께 돌아오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징계입니다. 당신은 과거와 현재의 죄들 때문에 당신 영혼 안에 하나님의 화살을 느낄지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이 회개하는 심령을 가지고 잘못으로부터 돌이키기 원한다면 그분의 징계하시는 사랑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고침을 받게 되나 그분의 크신 자비와 동정심으로 고쳐주실 것입니다. 당신은 이방인들이 그렇듯이 그분의 진노를 느끼지 않고 도리어 그분이 사랑스런 손길로 치시는 훈련의 막대기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당신의 고통은 잘못내린 결정에서 온 것인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하나님이 결혼하지 말라고 경고하신 사람과 결혼하였기 때문에 고통당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자녀들이 부모를 한계상황으로 몰아넣으며 마음 아프게 합니까? 하지만 많은 경우 부모 자신들의 과거의 죄와 태만과 타협으로 인해 생긴 일입니다.

당신이 가장 밑바닥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 때, 그 때가 깨진 가운데 회개와 믿음 안에서 주님을 구할 때입니다. 성령의 힘을 새롭게 주입 받을 때입니다. 당신 안에 영적 힘이 흘러넘치도록 새로워지고 회복되어야 할 때입니다.

아시다시피, 당신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그분은 당신에게 그분의 힘을 부어주십니다.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분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보상해 주시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오니”(시138:3, 7-8).

크리스천들이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것 중 하나가 의인이 고통당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시대까지 유대인들은 번영과 건강을 경건한 것과 연관 지었습니다. 당신이 부유하고 건강하거나 또는 다른 면으로 복을 받았으면 그것은 하나님이 당신을 기뻐하시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19:24)는 그분의 말씀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이유입니다. 제자들은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만약 당신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으면 하나님이 절대로 당신이 고통당하게 하시지 않고 하나님을 부르기만 하면 그분이 달려와 즉시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잘못된 교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에 열거된 믿음의 영웅들은 모두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동행하였으며 돌에 맞고, 조롱당하고, 고문당하고 참혹한 죽음을 당했습니다(36-38절).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했던 바울 자신도 파선을 겪고, 돌에 맞고, 채찍질당하고, 죽도록 내버림을 받고, 강도당하고, 투옥당하고 핍박받았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고통을 받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것들이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의 믿음을 시험받고, 정화되고, 입증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시험과 시련을 통하여 우리 마음가운데 뭔가를 심기 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주 예수님, 당신은 나의 보호자이시고 나는 당신이 내 삶에 일어나는 일들을 통치하신다고 믿습니다. 만일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것은 당신이 허락하셨기 때문이며 그렇게 하시는 당신의 목적을 신뢰합니다. 그 일로 내가 어떤 교훈을 받기 원하시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내가 의안에서 행하고 내 마음속에 당신의 기쁨이 있다면 내가 살든지 죽든지 당신께 영광이 될 것입니다. 당신이 어떤 영광을 예비해 놓으셨을 수도 있고 내 유한한 마음이 이해할 수 없는 영원한 목적이 있을 수도 있다고 믿습니다. 어떻든지, 나는 ‘예수님, 살든지 죽든지 나는 당신 것입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