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21일 화요일

아버지의 입맞춤

우리가 천상의 자리에 앉혀 질 때 하나의 큰 축복이 우리 것이 됩니다. 이 축복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받아들여지는 특권을 말합니다. “그가 사랑하시는 자[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He hath made us accepted in the beloved[Christ], KJV)”(에베소서 1:6). 헬라어로 "받아 들여졌다(accepted)"는 말은 극히 총애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영어의 용법상으로는 “적합하다고 여겨졌다”라는 말로 해석될 수 있지만 그와는 다릅니다. 영어로는 “그럭저럭 견딜 수 있다”는 태도를 암시하면서, 참아줄 만한 어떤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은 그와 전혀 다른 경우입니다. 그가 사용한 “accepted”는 이렇게 번역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극히 총애하셨다.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있는 우리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에게 매우 각별하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희생을 받아 들이셨기 때문에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묶인 사람들과 그리스도를 그분은 이제 오직 하나의 공동 인물로 보십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의 육은 죽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옛 성품을 처리해 버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그분은 오직 그리스도만 보십니다.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이 보시는 대로 우리 자신을 보는 법을 배워야 할 차례입니다. 이 말은 우리의 죄와 연약함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쟁취한 승리에 초점을 맞추라는 의미입니다.

탕자의 비유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안에 있는 천상의 지위가 주어졌을 때 오는 받아들여짐에 대해 생생한 묘사를 보여줍니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젊은이가 아버지로부터 자신의 유산을 챙겨 방탕한 생활을 하며 탕진해버렸습니다. 이 아들이 도덕적으로, 정서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완전히 파산에 이르렀을 때, 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버지의 모든 호의를 잃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가 분노에 차고 그를 혐오할 것이라고 두려워했습니다.

성경은 이 상한 젊은이가 자신의 죄에 대한 슬픔으로 가득 차 “나는 형편없는 사람이다. 하늘을 거슬러 죄를 지었다,”고 부르짖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경건한 슬픔을 통해 회개에 이른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탕자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리라(누가복음 15:18). 그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복을 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탕자는 자신의 죄로부터 돌이켜 세상을 뒤로하고 자신의 아버지가 그에게 약속했던 열린 문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는 회개하며, 또한 나아가는 길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탕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누가복음 15:20). 얼마나 아름다운 정경입니까! 죄 많은 아들은 아버지에게 용서받았고 품에 안겼고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무런 진노나 정죄도 없었습니다. 그의 아버지의 입맞춤을 받았을 때, 그는 자신이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