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7일 화요일

치유하는 고난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67).

나는 치유에 대해 믿습니다. 나는 고난에 대해 믿습니다. 나는 “치유하는 고난”을 믿습니다. 내가 그릇행하는 것을 막고 그분의 말씀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도록 만드는 고난은 치유입니다.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하나님의 가장 은혜로운 치유능력은 고난들 일 수 있습니다.

고통과 고난이 마귀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제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라고 다윗을 몰아댄 것이 마귀라고 제안하는 것입니다. 나는 엄청난 고통을 겪었습니다. 나는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을 의지하였고 그분이 완전히 치유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계속 믿는 가운데서도 나는 하나님께 현재의 상태에 대해 감사드리고 이것이 나에게 얼마나 그분을 진실로 의지할 수 밖에 없는지를 상기시켜 주는 역할을 하도록 했습니다. 다윗과 함께 나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시119:71)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통과 고난이 마귀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업신여기면 안 됩니다. 그러한 괴로움이 믿음과 통찰력을 지닌 위대한 사람들을 만들어내었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벧전5:7).

바울은 자신에게 지워진 교회들의 “염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고후11:28 참조). 새로 태어난 교회는 모두 그의 어깨에 지워진 또 하나의 “염려”였습니다. 교구가 성장하고 확장되고 연장되는 것들은 항상 새로운 염려를 가져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어깨가 넓어야합니다. 수많은 염려와 책임들의 도전앞에서 감히 움츠러들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셔서 밟도록 하시는 새로운 믿음의 단계마다 수많은 새로운 염려와 문제들이 야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신뢰하여 맡길 수 있는 염려거리가 어느 정도 되는 지 정확히 알고계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건강이나 기력을 상하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추수할 것은 너무 많고 자원하는 일꾼이 너무 적기 때문입니다. 염려는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에게서는 거두어져서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어집니다. 당신이 지고 있는 염려의 짐 덩어리를 잊어버리십시오. 우리는 그것들 모두를 그분께 맡길 수 있지 않습니까?

모든 새로운 축복은 염려 일가와 친척입니다. 이들을 분리시킬 수 없습니다. 당신이 염려와 함께 사는 것을 배우기 전 까지는 축복과 함께 사는 것을 배울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