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31일 금요일

은혜안의 성장은 저해 받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경고했습니다.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에베소서4:14). 당신은 아마 “이 구절은 나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내 기초는 성경적으로 확고하다. 나는 사람들을 그리스도로부터 마음을 돌리게 하는 모든 새로운 복음의 유행이나 경박한 수법에 현혹되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내리고 기초를 두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뒤이은 바울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4:14) 아마도 당신은 거짓 교훈에 당황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당신이 아직도 다른 많은 문제로 인해 휩쓸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당신은 당신을 반대하는 자들의 사악한 계획에 의해 요동합니까?”라고 묻습니다.

바울의 메시지는 다시 한 번 자신을 점검하라고 우리를 청합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형제자매라고 스스로 호칭하면서 우리에 대해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반응합니까?

바울이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라고 명령할 때 그는 우리에게 “험담과 비방, 사기와 조작, 교활함과 간사함, 기만과 음흉의 수법을 사용하는 너희의 원수들, 그들은 모두 반역하는 자녀들이다. 그들은 교활하고 타락한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 안에서 역사하시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들의 악하고 유치한 게임에 농락당하지 말라. 그들은 자신들의 심술에 너희가 어린 아이처럼 반응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너희는 그들에게 유치함으로 응대하지 말아야 것이다.”

그 다음 구절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성숙을 향하여 전진할 것을 촉구합니다.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 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에베소서4:15). 그는 말합니다. “너희가 받는 경멸, 입은 상처, 너희에 대한 험담, 너희를 겨냥한 사기와 기만을 너희는 어찌 할 수 없다. 하지만 너희는 이것들을 은혜 안에서 성장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 이것들을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기회로 삼아라. 온유한 심령으로 부드럽게 응대하라. 악의로 너를 이용하는 자들을 용서하라.”

2008년 10월 30일 목요일

지옥을 뒤흔드는 기도

다니엘서가 기록 되었을 당시,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있었습니다. 6장에 이를 때 다니엘은 오랜 사역에 몸 바치고 여든 살이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항상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노후에 이르러서도 기도 생활을 느슨히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성경에는 다니엘이 지치고 낙심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 반대로, 다니엘은 정작 시작하는 중이었습니다. 성경은 이 사람이 여든 살이 되었을 때에도 그의 기도가 마귀를 격분케 하며 지옥을 뒤흔들었음을 보여줍니다.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그 땅의 최고위직으로 승진시켰습니다. 왕자들과 120개 도의 고관들을 총괄하는 세 명의 총리 중 한사람이 되었습니다. 다리오는 다른 두 총리들 보다 다니엘을 총애하여 정부 정책을 기안하는 일 그리고 궁정 관리들과 지식인들을 교육하는 일을 맡겼습니다(다니엘6:3).

다니엘은 무척 바쁜 선지자였음이 분명합니다. 분주한 스케줄과 시간을 요하는 회의들로 이 사역자가 받을 중압감을 나는 그저 상상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다니엘에게서 기도하는 시간을 앗아가지 못했습니다. 너무 바빠서 기도하지 못한 적이 결코 없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기도는 그가 수행해야할 다른 모든 일에 앞서는 중추적인 직무였습니다. 하루에 세 번씩 주님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지도자로서 자신의 의무와, 부담, 요구사항으로부터 몸을 빼내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모든 활동을 멈추고 기도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에게 응답하셨습니다. 그는 무릎 꿇고 있는 동안 그가 가진 모든 지혜, 방향, 말씀과 예언을 받았습니다(다니엘 6:10 참조).

당신은 아마 지옥을 뒤흔드는 기도란 무엇인가? 라고 물을지 모릅니다. 그것은 자신의 나라와 교회가 죄의 나락으로 깊이 떨어지는 것을 보는 신실하고 부지런한 종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무릎을 꿇고 부르짖습니다. “주님, 나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참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사악한 시대에 당신의 보전하시는 능력의 본보기가 되기 원합니다. 아무도 기도하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나는 기도할 것입니다.”

너무 바빠서 기도하지 못합니까? “나는 믿음으로 그저 감당할 것이다,”라고 말하십니까? 당신은 스스로 이렇게 생각 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내 마음을 아신다. 내가 얼마나 바쁜지 아신다. 나는 하루 종일 생각으로 그분께 기도드린다.”

나는 주님이 우리와 단둘이서 질 높은 시간, 서두르지 않는 시간을 보내시기 원한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되면 기도는 단순히 탄원하는 시간이 아니라 사랑과 헌신의 몸짓이 될 것입니다.

2008년 10월 29일 수요일

그리스도안에 있는 능력 청구하기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요16:23). 그리고나서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16:24)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지요. 이 장면에서 그리스도는 그분의 추종자들에게 자신이 떠나갈 것과 잠시 동안 그들을 보지 못하실 것을 경고하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그분은 그들이 모든 하늘의 복을 누릴 수 있다고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그들이 그분의 이름으로 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것들을 두드리고, 찾고, 구하라는 예수님의 개인 교습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우선적으로 모든 은혜, 능력, 힘과 같은 아버지의 모든 축복은 그리스도안에서 발견된다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무리들에게 이렇게 선언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14:12-14).

제자들에게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이 나의 정곡을 찌릅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요16:24). 이 말씀을 읽을 때 주님이 나에게 속삭이는 것을 들었습니다. “데이빗, 너는 내가 너에게 허용해준 능력을 청구하지 않았다. 그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된다.”

모든 육의 죄를 다 합한 것보다 더욱 하나님의 마음을 비탄에 잠기게 하는 것이 여기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분의 약속에 대해 나날이 불신이 깊어가는 것, 그분이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에 대해 날로 의심이 늘어가는 것, 또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안에 있는 능력을 점점 더 청구하지 않는 것을 애통해 하십니다.

당신이 아무리 많이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을 구했다 해도 그분의 창고에서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 영적 지혜의 자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풍성하게 구하십시오! 지혜를 구하십시오. 인도하심을 구하십시오. 계시를 구하십시오. 그러나 아무것도 의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구해야만 합니다.

2008년 10월 28일 화요일

당신의 예수님은 얼마나 크십니까?

요한복음 14장은 두 가지 장엄한 약속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 합니다.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14:12-14).

두 구절 지나 예수님은 약속하십니다. “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14:16-18). 그리스도께서 “나는 너희에게 진리의 영을 주겠다. 그리고 그분의 능력이 너희 안에 거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주신 두 가지 엄청난 약속입니다. 그런데 이 둘 사이에 끼어있는 한 구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14:15). 이 말씀이 왜 이곳에 있을까요?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순종의 문제가 이 약속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두 가지 약속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충족되어야 그리스도안에 있는 능력을 청구하는 데 아무런 장해물이 없을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거의 아무것도 구하지 않는 것은 그분에 대한 질책이라고 확신합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많은 크리스천들이 더욱 더 적은 것으로 만족합니다. 결국에는 단지 구원으로 만족합니다. 언젠가 천국에 가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그리스도의 끝에 도달해 있습니까? 그분의 능력과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습니까? 당신의 그리스도는 또 하루를 지탱할 만큼의 힘을 주시는 데서 끝납니까? 그분은 인생의 대부분을 사탄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당신에게 때때로 평강과 기쁨을 주시는 그 자리에서 끝나고 마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안의 이 모든 구절들은 “나의” 예수님은 나의 요청하는 것만큼만 크다는 것을 나에게 설득해 줍니다. 하지만 비통하게도 많은 믿는 자들이 그들의 불신으로 인해 그리스도를 무의미하고 무능력하게 보이도록 만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나의 그리스도가 제한받지 않기를 원합니다. 오히려 나의 큰 요청으로 말미암아 나의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지 지옥의 온 마귀가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 나는 나의 그리스도로부터 더 많은 것을 원합니다. 나는 내 인생에서 어느 때 보다 그분이 더욱 더 커지시기를 원합니다.

2008년 10월 27일 월요일

그분의 손에 당신의 이름을 쓰셨습니다

기도할 때 우리에게는 얼마나 놀라운 권위가 주어졌는지요. 정확히 어떻게 우리는 이 권위를 사용합니까? 그리스도 그분의 이름을 통하여 사용합니다. 예수님께 우리의 믿음을 두었을 때 그분은 우리에게 자신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나는 그리스도의 것이며, 나는 그분 안에 있으며, 나는 그분과 하나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예수님은 우리의 이름을 취하셨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그분은 자신의 손바닥에 그 이름을 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서 그분의 영광스러운 이름하에 등록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라는 구절이 단지 비인격적인 공식이 아니라는 이유를 아셨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은 문자 그대로 예수님과 함께 가지고 있는 우리의 지위입니다. 그리고 그 지위를 아버지께서 인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 말씀하십니다. “그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요16:26-27).

여기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명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때마다 너희의 요청은 마치 내가 구하는 것과 똑같은 능력과 효과가 아버지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기도는 마치 아버지 보좌 앞에서 예수님 자신이 말씀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병자에게 안수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은 마치 예수님이 병자에게 안수하여 치유하는 것처럼 우리를 보십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받기 위하여.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아버지, 나는 가서 열매를 맺기 위하여 그리스도안에서 택함 받은 자로 당신 앞에 섰습니다. 이제 나의 기쁨이 충만하기 위하여 풍성하게 구합니다.”

나는 많은 크리스천들이 “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했지만 내 기도는 응답받지 못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이 믿는 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청구하려했다. 하지만 내게는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기도에 대해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와 우리의 연합을 더럽히는 어떤 죄를 허용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것들은 장해물이 되어 그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복을 가로막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죄를 버릴 때까지 그분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또는 하나님의 일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나 냉담한 태도 때문에 막히기도 합니다. 아마도 우리가 그리스도의 능력으로부터 우리를 단절시키는 의심에 눌려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야고보는 경고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야고보1:6-7).

야고보는 분명히 말합니다. “흔들리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못할 것이다.” 야고보가 사용한 흔들리다라는 단어는 “결정하지 않은”이란 뜻입니다. 사실은 이러한 사람들이 요청을 할 때 그들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나에게 응답하시면,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이 기도만 응답해 주시면 당신께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그러나 응답해 주시지 않으면, 나는 내 방식대로 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뇌물을 받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을 아시며 언제 우리가 그분의 아들에 대하여 헌신을 결단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아십니다. 전적으로 그분께 맡기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스도안에 있는 능력을 유보하고 계십니다.

2008년 10월 24일 금요일

모든 것을 원하십니다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너는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가 네 부르짖느 소리로 말미암아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밤에 하듯이 노래할 것이며....마음에 즐거워할 것이라”(이사야30:18-19, 21,29).

이사야는 말합니다. “너희가 단순히 주님을 의뢰하기만 하면, 너희가 다시 그분께 부르짖으며 돌이켜 그분을 신뢰하면, 그분은 내가 말했던 것 모든 것 그리고 그보다 더욱 너희에게 행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그저 한마디 말씀만 하셔도 원수는 우리 앞에서 넘어질 것입니다. “여호와의 목소리에 앗수르가 낙담할 것이며 주께서는 막대기로 치실 것이라”(이사야30:31).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아버지가 해결하지 못하실 일이 없으며 입술에서 나오는 단지 한마디 말씀을 가지고 우리를 위해 이기지 못하실 전쟁이 없습니다. 이사야는 “거기에 불과 많은 나무가 있은즉 여호와의 호흡이 유황 개천 같아서 이를 사르시리라,”(이사야30:33)고 말합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 하나님을 신뢰해가는 이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최근 나는 이곳 뉴욕시에 있는 우리 교회의 건물 상황에 대하여 주님께 구했습니다. “아버지 나는 이일에 대해 당신을 신뢰합니다. 나는 당신께 구했고 이일에 대해 평강을 누릴 것입니다.” 그분은 내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데이빗, 너의 부동산, 재정, 그리고 다른 물질적인 일에 대해 나를 신뢰할 수 있다니 놀랍구나. 그런데 너는 아직도 너의 건강문제에 대해서는 나를 신뢰하지 않는다.”

나는 내 나이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 내 가족이 어떻게 될지 지나치게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주님의 정곡을 찌르시는 말씀이 번개처럼 나를 쳤습니다. 나는 모든 물질적인 염려는 그분의 손안에 두었는데 영원한 염려는 두지 않았습니다. 나는 깨달았습니다. “주님, 당신은 내가 모든 것에 당신을 신뢰하기 원하시는군요, 그렇지요?”

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분은 모든 것을 원하십니다 - 당신의 건강, 가족, 미래. 그분은 당신이 모든 문제에 대해 그분을 신뢰하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고요함, 자신감, 안식 가운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니, 당신의 은밀한 골방으로 들어가 주님과 홀로 계십시오. 그분께 모든 것을 들고 나아가십시오. 그분은 약속하셨습니다.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믿음의 증거는 안식입니다. 신뢰하는 믿음의 귀결은 마음의 평강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믿음은 모든 것을 그분의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2008년 10월 23일 목요일

영적인 힘과 신뢰

우리의 모든 필요를 하나님의 손안에 내려놓고 그분의 권능을 신뢰할 때 성령은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룻은 이런 종류의 신뢰의 본보기가 됩니다. 남편이 죽은 후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살았습니다. 나오미는 룻의 행복과 장래를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룻에게 부유한 보아스의 발치에 눕고 자신의 친족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기를 청하라고 충고했습니다.

그날 저녁, 곡식 까불리는 일을 마친 후 보아스는 “곡식 단 더미의 끝에”(룻3:7)누워 이불을 덮었습니다. 새벽에 보아스는 깨어나 자기 발치에 한 여인이 누워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룻이 이곳에 있었던 것은 당시에 통상적인 관습으로 부도덕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룻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룻3:9). 요약하면 이런 말입니다. “당신은 나를 위해 친척의 의무를 맡아주시겠습니까? 나의 필요를 채워 주시겠습니까?” 실제로는 “나와 결혼해 주시겠습니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이것은 조작해 꾸민 계략이 아닙니다. 룻과 나오미는 하늘의 질서를 따라 모든 일을 행했습니다. 우리는 이를 확신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혈통이 룻을 통해 왔기 때문입니다. 룻이 집에 돌아왔을 때 나오미가 물었습니다.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룻3:16 KJV: Who art thou, my daughter? 내 딸아 너는 누구냐? ). 나오미는 다시 말해서 “너를 ‘약혼한’ 룻이라고 부를까? 아니면 아직도 ‘과부’ 룻이냐?”라고 묻는 것입니다.

룻은 나오미에게 자초지종을 고했습니다. 나오미의 경건한 충고를 들어보십시오.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 그사람이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아니하리라”(룻3:18). 나오미는 이일에 대해 하나님의 지시를 기다리며 기도했었고 하나님은 그녀에게 조언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기업 무를 자에 대한 규례를 상기시켜주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전형이며 예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자신과 룻이 할 바를 다했다고 확신했습니다. 이제는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이행하시도록 그분을 신뢰할 시간이었습니다. 나오미는 “룻아, 이제 모든 것이 하나님 손에 달려있다. 편안히 쉬고 잠잠히 있어라,”고 말합니다.

나오미의 집에 고요와 평강이 깃들었습니다. 아무도 손톱을 물어뜯으며 “하나님이 과연 하실까? 언제 이 일이 이루어질까?” 궁금해 하며 안절부절 하지 않았습니다. 이 신실한 두 여인은 편안히 쉬며 주님의 선하심을 노래하며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했습니까? 신뢰했습니까? 가만히 앉아 “주님의 구원을 볼” 준비가 되었습니까? 그분은 모든 것을 통제하고 계십니다.

2008년 10월 22일 수요일

기도의 사람 되기

예레미야 5장에서 하나님은 간청하십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예레미야5:1). 주님이 말씀하시는 요점은 “단 한사람이라도 나를 찾는 사람을 발견하면 내가 자비를 베풀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시절에 하나님은 다니엘에게서 그 한사람을 발견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주님은 그런 유형의 경건한 남자들과 여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는,” 오로지 기도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일을 기꺼이 하고자 하는 신실한 종들을 찾습니다.

다니엘처럼, 그러한 사람은 손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있을 것입니다. 성령이 다니엘에게 임했을 때 이 선지자는 예레미야서를 읽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 때 성령이 이스라엘을 구속하실 하나님의 때가 이르렀음을 계시하셨습니다. 계시가 임하자 다니엘은 기도할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다니엘9:3-4).

다니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그분의 회복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선지자는 자신의 동료들의 죄를 맹렬히 비난 했을까요? 아닙니다. 다니엘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도덕적 타락을 자신과 동일시했습니다. 그는 선언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수치가 우리에게 돌아오고....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다니엘9:5,8).

하나님은 오늘날 자신의 백성에게 복주시기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의 마음이 이세상의 영으로 오염되어 있다면 그분의 복들을 받을 태세가 되어있지 않은 것입니다. 다니엘은 다음과 같은 강력한 말씀을 했습니다. “이 모든 재앙이 이미 우리에게 내렸사오나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떠나고 주의 진리를 깨달아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얼굴을 기쁘게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우리에게 내리게 하셨사오니”(다니엘9:13-14).

하나님께 구하옵기는 주님과 함께 하는 우리 자신의 삶을 점검하고 성령께서 우리가 타협하고 있는 부분들을 보여주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한 나라를 위하여 하는 기도보다 더욱 더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울부짖을 것입니다. “오 주님, 나의 마음을 수색해 주십시오. 내 영혼 속에 숨어든 모든 이세상의 영을 내 안에 드러내 주십시오.” 그 연후에 우리는 다니엘처럼 우리 가족, 우리나라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기로 결심할 수 있습니다.

2008년 10월 21일 화요일

하나님은 영광스러운 새 일을 행하시려고 합니다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달리 행하였었나니 내가 그들을 인도하여 내는 것을 본 나라들 앞에서 내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려 하였음이로라”(에스겔20:14).

하나님은 영광스러운 새 일을 행하시려고 합니다. 이 새 일은 부흥이나 각성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자신의 거룩한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을 참지 못하시고 홀로 시작하시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말씀이 짓밟혀 수렁에 쳐 박히고 소위 “교회”라는 곳이 가증한 것으로 더럽혀졌다고 판결하실 때가 오면, 그분은 일어나 상실한 세상에 대하여 자신의 이름을 방어해야만 합니다.

“내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려” 하나님은 두 가지 강력한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첫째, 그분은 나라들과 그분의 교회를 구속하시기 위한 심판들로 정결케 하실 것입니다. 동성애자들과 삯꾼들이 그분의 집을 침입하는 것을 막으실 것이며 사역을 성결하게하고 정화하며 그분의 마음에 합한 목자들을 세우실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한없는 자비로 간섭하셔서 자신의 거룩한 이름을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심판이 행하여지는 극심한 고통가운데에서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역사로 남은 자들을 그분 자신에게로 “돌이키시는” 반전의 결과를 얻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실 때 행하셨던 일들을 다가오는 미래에도 다시 행하실 것입니다.

에스겔서 36:21-38에서 이 모든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이 예언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 정결하게 하고 새 영과 새 마음을 너희에게 줄 것이다.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내가 너희를 모든 더러운 데에서 구원할 것이다.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이름을 위한 것이다.”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내 손을 막아 달리 행하였나니 내가 그들을 인도하여 내는 것을 본 여러 나라 앞에서 내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려 하였음이로라...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의 악한 길과 더러운 행위대로 하지 아니하고 내 이름을 위하여 행한 후에야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에스겔20:22,44).

2008년 10월 20일 월요일

영적인 힘의 비결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이사야30:15).

여기 영적인 힘에 대한 하나님의 비결이 있습니다. “잠잠하고 조용하여야 힘을 얻을 것”입니다. 잠잠하다는 말의 히브리어 단어는 “휴식”을 의미하고 휴식은 모든 불안으로부터 평온하고, 긴장을 풀고 자유하게 됨을 말하며, 고요하고 밑에서 받쳐줌으로 편안히 눕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날 이런 종류의 잠잠함과 신뢰를 소유한 크리스천이 많지 않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광적으로 활동에 관여하고 부와 소유물과 쾌락을 얻기 위해 미친 듯이 질주합니다. 사역에서 조차도 하나님의 종들이 근심하고 두려워하며 회의나 세미나, 베스트셀러 책들에서 답을 찾으려고 허둥댑니다. 모두가 자신의 영을 안정시키기 위한 안내와 해법, 그 무언가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찾기 위해 모든 출처를 뒤져보지만 정작 하나님은 제외합니다. 하나님이 이사야를 통해 그들에게 이미 말씀하셨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그분을 자신들의 원천으로 의지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노력은 애통과 혼동으로 귀결되고 말 것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의가 우리 안에서 무엇을 성취하기로 되어있는지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이사야32:17). 우리가 진정으로 의 가운데 행한다면, 우리의 삶은 고요한 영, 잠잠한 마음, 하나님과 화목이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이사야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하나님의 백성이 말과 병거에 의지하고 사람을 신뢰하여 애굽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달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대사들이 오고갑니다. 지도자들이 긴급 전략회의를 주재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우리가 어찌 할꼬?” 울부짖습니다.

이사야는 그들을 확신을 주었습니다. “이러지 않아도 된다. 너희의 타락에서 돌이켜라. 다른 것들을 신뢰한 반역을 회개하라. 주님을 의지하라 그러면 그분이 너를 평강의 이불로 덮어줄 것이다. 그분은 네가 당면한 모든 것 가운데서 너를 잠잠케 하시고 쉬게 하실 것이다.

2008년 10월 17일 금요일

마흔 한 번째 날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을 당하시고 난 직후 마흔 한 번째 날에 그분을 만났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분의 얼굴은 광채가 납니다. 위대한 승리를 쟁취하셨기에 아버지를 찬양하며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에게서 생명과 자신감이 풍겨 나오는 것을 볼 것입니다. 이제 그분은 지옥의 권세를 상대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암흑가운데 처해있는 큰 도시들을 향하여 담대하게 떠나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며 복음을 전합니다. 아버지께서 함께하고 계심을 알며 병든 자들을 고칩니다.

한편 당신은 자신의 삶을 점검하며 정반대 상황을 봅니다. 당신은 아직도 자신의 메마른 광야 체험에 직면해 있습니다. 사탄의 불같은 공격을 견뎌낸 후 당신의 영혼은 낙심했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나와 같은 시련을 겪지 않으셨다. 이것들 보다는 나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아마 믿음이 강해 보이는 사역자를 보게 될지 모릅니다. 그가 하나님의 임재를 너무도 강하게 확신하는 것처럼 들려서 당신은 “그는 나 같은 문제를 겪어보지 않았을 것이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모든 사실을 알았다면 좋았을 것을! 하나님이 이 사람을 말씀을 전파하라고 부르시고 그 후에 혹독하게 시험받게 하시려고 광야로 인도하셨을 때 당신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가 절망으로 낙심하여 한 없이 낮아졌을 때 당신은 그곳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종종 그의 가장 훌륭한 설교가 자신의 삶에서 받았던 시험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당신은 모릅니다.

바울은 우리가 남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비교하여 우리의 의를 측정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우리는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와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그들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고후10:12).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없습니다. 마흔 한 번째 날, 예수님이 길고도 험난한 시험에서 막 헤어 나왔다는 것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분에게서 본 그 영광이 사람들이 당했던 어떤 것보다도 더 험했던 고투에서 나왔던 것이라는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의, 그분의 거룩함에만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그 모든 것에 똑같이 접속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시험의 때에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분 자신의 영이 당신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분 자신의 아들이 이미 그곳에 계셨었고 당신이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정확하게 아십니다. 그분이 당신 안에 하나님에 대한 의존과 신뢰를 쌓는 역사를 완수하시도록 하십시오. 당신은 자신감, 경건한 동정심과 남을 돕는 힘을 가지고 나올 것입니다.

2008년 10월 16일 목요일

울어버리십시오

가장 고통이 심할 때에 당신의 은밀한 골방으로 들어가 절망을 다 쏟아 울어버리십시오.

예수님도 우셨습니다. 베드로도 바로 하나님의 아들을 부인한 상처를 짊어지고 통곡하였습니다. 그 쓰디쓴 눈물이 그의 안에서 신묘한 기적을 이루어내었습니다. 그는 돌이켜 사탄의 왕국을 뒤흔들었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울부짖는 심령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51:17). 한 번도 주님은 “네 자신을 추슬러라! 일어나 약을 복용해라! 이를 악물고 눈물을 닦아라”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결단코! 예수님은 모든 눈물은 그분의 영원한 눈물 병에 담아두십니다.

마음이 상하십니까? 몹시 상하십니까? 그러면 그저 울어버리십시오.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하지만 그 눈물이 불신이나 자기 연민이 아닌 당신의 상처로 부터만 흘러나게 하십시오.

삶은 계속됩니다. 당신을 도와주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얼마나 견뎌낼 수 있는 지 당신도 놀라게 될 것입니다. 고통이나 상처 없이 사는 것이 행복은 아닙니다. 진정한 행복은 모든 슬픔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한 번에 하루씩 사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든지 상관없이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당신은 거부당했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버림받았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당신의 믿음이 약할지도 모릅니다. 아무 쓸모없이 되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슬픔, 눈물, 고통, 공허가 때때로 당신을 삼켜버릴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분의 보좌에 앉아계십니다. 그분은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은 스스로를 도울 수 없습니다. 당신의 고통과 상처를 멈출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복된 주님은 당신에게 오셔서 그분의 사랑스런 손으로 당신을 일으켜 천상의 자리에 다시 앉혀 주실 것입니다. 그분이 죽음의 공포에서 당신을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당신을 향한 그분의 한없는 사랑을 계시해 주실 것입니다.

위를 바라보십시오! 주님 안에서 당신을 격려하십시오. 안개에 휩싸여 당신의 딜레마를 빠져나올 출구를 볼 수 없을 때에. 예수님의 품안에 기대어 누워 단순히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그분은 당신의 믿음-당신의 확신을 원하십니다. 당신이 큰소리로 외치기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그분은 나와 함께 계신다! 그분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분이 지금 당장 모든 것을 해결하시고 계신다! 나는 낙담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사탄에게 희생당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내 편이시다! 나는 그분을 사랑한다-그리고 그분은 나를 사랑한다!”

기본은 믿음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이 절대적인 원리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너를 치려고 제조된 모든 연장이 쓸모가 없을 것이라...”(사54:17).

2008년 10월 15일 수요일

헤아려본 하나님의 영광

“또 이르시되...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막4:24-25).

예수님이 이 말씀이 영적인 귀를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들릴 것을 아시고 먼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막4:23)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네 마음이 하나님의 영을 향해 열려있다면,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예수님은 정확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요?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즉, 확연한 그리스도의 임재입니다. 요약하면, 주님은 자신의 영화로운 임재를 교회에게든지, 개인에게든지, 여러 가지 분량으로 분배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그분의 영광을 전혀 받지 못합니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삶들과 교회들로부터 더욱 더 큰 분량으로 솟아나 날로 증가하는 분량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말일에 그분의 백성들에게 자신의 영을 부어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진실로 모든 성경 말씀은 시간이 끝날 때 승리하고 영광에 찬 교회를 기리키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지옥의 문들이 그분의 교회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기진맥진하어 우울하고 훌쩍거리며 패하고 낙심한 모습으로 절뚝이며 천국에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분의 교회에 더욱 큰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이 능력은 그저 표적과 기사로만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분의 백성들에게 계시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만짐을 받아 마음들이 영화로운 변화를 받는 가운데.

어떻게 하면 우리가 더욱 크고 날로 증가하는 그리스도의 영광의 분량을 얻을 수 있을까요?
주님은 우리에게 매우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막4:24). 예수님의 말씀은 “네가 네 자신을 나에게 할당한 몫만큼 나도 너에게 돌려줄 것이다. 네가 나를 다루는 그 방법으로 나도 너를 다룰 것이다. 너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나도 너를 헤아릴 것이다.”

당신이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당연시 여기며 그분께 게으름과 태만을 할당하면 졸음의 영을 상대하게 될 것입니다.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태만한 사람은 주릴 것이니라”(잠19:15). 그 결과, 당신의 영혼은 굶주리고 충족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향한 하나님의 사랑, 자비, 은혜는 끝이 없습니다. 여기서 이슈는 그분의 사랑, 자비 또는 은혜를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그분의 영광의 복을 갖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우리가 우리 마음을 그분께 분배하는 것에 따라서 자신의 영광의 분량을 다르게 하여 우리에게 분배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할 바는 우리의 예배, 순종과 부지런함 가운데 단순히 그분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것입니다.
11.

2008년 10월 14일 화요일

고통스러울 때

이런 저런 경위로 우리는 모두 고통을 받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의 자신의 고통의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당신이 깊이 상처를 입었을 때,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내적인 공포와 가장 깊은 고뇌를 막아줄 수 없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들도 당신이 치르는 전투와 당신이 입은 상처를 이해 하지 못합니다.

상한 심령을 치료하는 연고가 있습니까? 가슴 속 깊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습니까? 조각 조각난 마음을 꿰맞추어 더욱 튼튼하게 만들 수 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절대적으로 가능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짖궂은 장난에 불과하고 하나님 자신은 거짓말쟁이 일 것입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고통 없는 인생길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탈출구”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고통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돕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연약하여 당신이 비틀거릴 때 바로 설 수 있도록 힘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당신의 하늘 아버지는 동요하지 않는 눈으로 당신을 주시하고 계십니다. 모든 동작이 관찰됩니다. 모든 눈물이 병에 담겨집니다. 그분은 당신의 모든 고통과 함께 하십니다. 모든 고통을 느끼십니다. 당신이 눈물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당신의 상처가 마음을 퇴락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정확한 시간에 오셔서 당신의 눈물은 닦아 주시고 애통대신 희락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당신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도록 만드는 능력이 당신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을 당신을 응시합니다 - 그리고 우리에게 일어나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두려움을 털어버리라고 명령하십니다.

2008년 10월 13일 월요일

승리에 필요한 모든 은혜

종종 우리는 은혜를 하나님으로부터 공로 없이 받는 호의나 축복으로 정의하는 것을 듣습니다. 하지만 나는 은혜는 이것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내 견해로는 은혜는 우리의 고난의 때에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의미하는 것- 능력, 권세, 친절, 자비, 사랑 등 우리를 고난의 시기에 지켜주시는 모든 것입니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엄청난 시련, 고통, 시험과 고난의 시기였지만 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분했었다고 증언할 수 있습니다. 내 아내가 연이어 재발하는 암으로 고통당하고, 나의 두 딸도 또한 발병함으로 인해 하나님을 향해 의문을 품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 그들은 모두 건강하고 나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또한 사탄의 사자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압니다. 나는 지독히도 시험과 유혹을 당해왔고 원수들이 사방에서 나를 둘러싸고 일어났습니다. 소문에 의해 비방을 당하기도하고 거짓으로 비난을 받고 친구들에게 버림받았습니다. 그 캄캄했던 시기에 나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분의 은혜로 나는 항상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은혜가 충분합니다. 어느 날엔가 영광 중에 나의 아버지는 그분이 내내 갖고 계셨던 아름다운 계획을 나에게 계시해 주실 것입니다. 나의 모든 시련을 통해서 어떻게 내가 인내를 습득했는지,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을 배웠는지, 내 약함 가운데서 어떻게 그분의 능력이 완전해 졌는지, 어떻게 나를 향한 그분의 절대적인 신실함을 배웠는지, 좀 더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내가 얼마나 갈망했는지, 그분이 나에게 보여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래도 이유를 물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신비로 남아있습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오실 때 까지 나는 그것을 용납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나의 시련과 고난에는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현재까지 50 여 년간 사역하는 동안 그치치 않았습니다. 아직도 세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통하여, 계속 증가하는 그리스도의 능력의 분량을 아직도 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분의 영광에 대해 내가 받은 가장 위대한 계시는 나의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왔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신의 가장 처참한 순간에, 예수님은 그분의 능력의 가장 충만한 분량을 당신에게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고통, 우울증, 불안감에 대해 결코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치유를 간구하는 기도가 왜 응답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결코 알아내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유를 알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너는 내 은혜를 받았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녀야, 그것이 네가 필요한 전부이다.”

2008년 10월 10일 금요일

대적하라 마귀가 피하리라

사탄은 다음과 같이 제안하며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4:9). 이 말은 시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이상 망측하고 우스꽝스럽게 들립니다. 안 믿어질지 모르겠으나 이것은 강력하고 마음을 유혹하는 제안입니다. 사탄은 이렇게 말하며 예수님께 도전하고 있습니다. “네가 단지 내 발아래서 절하기만 하면, 한번만 경배하기만 하면, 나는 싸움을 멈추겠다고 약속한다. 이 영역을 주관하는 내 모든 능력을 포기하겠다. 어느 누구도 사로잡거나 노예로 삼지 않겠다. 네가 인류를 위해 하나님의 저주를 감당할 정도로 그들을 사랑하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기다릴 필요가 없지 않느냐? 지금 당장 너를 희생하여 이 순간부터 세상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왜 마귀는 이것을 위해 그의 모든 능력을 기꺼이 포기하겠다고 합니까? 그는 자기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자신의 영원한 운명이 갈보리에서 인봉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가시는 것을 막기만 하면 그 운명에서 자신을 구해낼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아마 “이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하고 궁금해 할지 모릅니다. 사탄은 아직도 비슷한 제안을 들고 의로운 자를 시험합니다. 우리에게 위협과 참소를 들고 옵니다. “너는 나를 경배할 필요가 없다 - 내가 이미 네 육에 접속되어 있으니까. 너의 모든 약점을 다 알고 있단다. 자, 그리스도안에서 누리는 자유에 대해 증언해 보아라. 네가 가장 목청 높여 찬양하는 순간에 나는 네 마음을 악으로 장악해 버릴 것이다. 네 죄를 네 앞에 통렬하게 폭로할 것이고. 너는 자유롭게 되리라는 소망을 잃게될 것이다. 너는 털끝만한 힘도 없다.”

우리는 사탄의 참소에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사탄이 얼마나 많은 시험을 당신에게 던지든지 문제없습니다. 당신이 과거에 어떤 죄를 지었든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그것을 덮었다면 마귀가 무슨 짓을 해도 당신을 아버지로부터 분리시킬 수 없습니다.

2008년 10월 9일 목요일

의문이 떠오를 때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4:2-3).

예수님이 육체적으로 허약할 그 때에, 마귀가 그의 첫 시험을 던졌습니다.

배고픈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무엇이 문제입니까? 사탄은 예수님께 이렇게 도전하는 것입니다. “네가 완전한 하나님이라면, 네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 너는 현재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사용해서 너 자신을 구원하려무나. 네가 그 능력을 적절히 사용하는지 알기위해 그분이 너에게 능력을 주시지 않았느냐?”

진실로 경건한 사람들이 당면하는 가장 교활한 시험 중 하나가 여기 있습니다. 당신의 본이 되시는 예수님처럼 당신도 하나님을 위한 열정이 있습니다. 그분께 온전히 맡기려고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당신을 광야 체험으로 인도하시고 얼마 후 의문점들이 떠오릅니다. 당신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무엇인가 의아해 하면서 당신의 삶이 흐트러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며 승리를 얻으려고 애쓰는 동안 사탄의 시험은 더욱 더 강렬해지는 듯이 보입니다.

원수는 당신이 아버지로부터 독립적으로 행동하기를 원합니다. 마귀는 “네 고통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견뎌 내야할 필요가 없다. 네 안에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 그 말씀을 해버리고 너를 자유롭게 해라. 네 자신의 굶주림을 채워라,”고 말합니다.

사탄의 첫 번째 계획은 능력이 실패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요청하셨다 해도 하나님이 예수님의 떡을 구하는 부르짖음을 들어주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늘의 능력이 실패하게 되면 그리스도는 자신의 신성을 의심하게 되고 자신의 지상에서의 영원한 목적으로부터 돌이킬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사탄은 하나님이 예수님께 일러준 말씀대로만 행하기위해 보내심을 받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로 하여금 자신의 안녕을 위해 불순종하도록 설득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약 예수님이 현재 고통을 피하기 위해 그분의 능력을 사용한다면, 추후 십자가를 회피하기 위해 마찬가지로 행동 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에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4:4). 요약하면 그리스도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지상에 온 것은 나의 필요나, 상처나 육체적 안락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을 구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인류에게 주러 왔다.”

고통의 정점에서도 예수님은 그분의 영원한 목적을 놓치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우리 주님이 광야 체험을 통해 의존과 동정심을 배웠다면 우리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2008년 10월 8일 수요일

광야 여정

독일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크리스천을 얼음 조각이 떠다니는 바다를 건너려는 사람으로 묘사했습니다. 그 크리스천은 바다를 건너는 동안 하나님이 그를 끝까지 지키실 것이라는 자신의 믿음외에는 어느 곳에서도 안식할 수 없습니다. 그는 어느 한 곳에 너무 오래 서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가라앉아 버릴 테니까요. 한 걸음 뗀 후에 다음 걸음을 위해 주의 깊게 살펴야만 합니다. 그의 밑에는 심연이요 그의 앞에는 불확실함이 있지만 항상 앞장서시는, 든든하고 확실한 주님이 계십니다. 육지는 아직 보이지 않지만 그곳에 있다는 약속이 그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리하여 크리스천 여행자는 목적지만을 응시합니다.

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했던 것같이 인생을 광야 여정으로 생각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리고 여호사밧 왕과 유다 전체 백성이 참여한 전투가 또한 우리의 전투입니다. (역대하 20장 참조). 확실히 그곳은 광야입니다. 뱀이 출몰하고, 말라버린 물구덩이들, 눈물 계곡들, 적군들, 뜨거운 모래, 가뭄, 통과할 수 없는 산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자녀들이 그분의 구원을 보며 확고히 섰을 때, 주님은 그 광야에 식탁을 펴셨습니다 -하늘에서 만나를 비처럼 내려주셨고 -오로지 그분의 능력으로 적군을 멸하셨으며 -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 뱀에 물린 상처에서 독을 제거하셨으며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 그들에게 젖과 꿀을 주셨으며 - 드높고 강한 손으로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들이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은 다가올 모든 세대에게 전하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4:6).

도움을 청하려고 그릇된 방향을 쳐다보지 마십시오. 은밀한 장소에서 예수님과 홀로 계십시오. 당신의 혼란스러움을 그분께 모두 말씀 드리십시오. 그분께 당신은 달리 갈 곳이 없다고 말씀하십시오. 그분만이 당신을 끝까지 지키실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씀하십시오. 당신은 자신의 손으로 문제를 다루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될 것입니다. 스스로 매사를 헤아려보고 싶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과연 역사하시는지 의아해 할 것입니다. - 손해 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베드로가 이 모든 것을 요약했습니다.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6:68).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이사야45:22).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미가7:7).

2008년 10월 7일 화요일

치유하는 고난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67).

나는 치유에 대해 믿습니다. 나는 고난에 대해 믿습니다. 나는 “치유하는 고난”을 믿습니다. 내가 그릇행하는 것을 막고 그분의 말씀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도록 만드는 고난은 치유입니다.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하나님의 가장 은혜로운 치유능력은 고난들 일 수 있습니다.

고통과 고난이 마귀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제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라고 다윗을 몰아댄 것이 마귀라고 제안하는 것입니다. 나는 엄청난 고통을 겪었습니다. 나는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을 의지하였고 그분이 완전히 치유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계속 믿는 가운데서도 나는 하나님께 현재의 상태에 대해 감사드리고 이것이 나에게 얼마나 그분을 진실로 의지할 수 밖에 없는지를 상기시켜 주는 역할을 하도록 했습니다. 다윗과 함께 나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시119:71)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통과 고난이 마귀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업신여기면 안 됩니다. 그러한 괴로움이 믿음과 통찰력을 지닌 위대한 사람들을 만들어내었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벧전5:7).

바울은 자신에게 지워진 교회들의 “염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고후11:28 참조). 새로 태어난 교회는 모두 그의 어깨에 지워진 또 하나의 “염려”였습니다. 교구가 성장하고 확장되고 연장되는 것들은 항상 새로운 염려를 가져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어깨가 넓어야합니다. 수많은 염려와 책임들의 도전앞에서 감히 움츠러들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셔서 밟도록 하시는 새로운 믿음의 단계마다 수많은 새로운 염려와 문제들이 야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신뢰하여 맡길 수 있는 염려거리가 어느 정도 되는 지 정확히 알고계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건강이나 기력을 상하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추수할 것은 너무 많고 자원하는 일꾼이 너무 적기 때문입니다. 염려는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에게서는 거두어져서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어집니다. 당신이 지고 있는 염려의 짐 덩어리를 잊어버리십시오. 우리는 그것들 모두를 그분께 맡길 수 있지 않습니까?

모든 새로운 축복은 염려 일가와 친척입니다. 이들을 분리시킬 수 없습니다. 당신이 염려와 함께 사는 것을 배우기 전 까지는 축복과 함께 사는 것을 배울 수 없습니다.

2008년 10월 6일 월요일

수그러들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

수그러들지 않는(unrelenting)이란 단어에 대해 얘기해 봅시다. 그것은 강도에 있어서나 수고의 정도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굴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으며 논쟁에 의해 바뀔수도 없고 설득당할 수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수그러들지 않는다는 것은 정해진 길을 고수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경이로운 묘사입니다! 우리 주님의 사랑은 결코 수그러들지 않습니다. 그 무엇도 죄인과 성도들에 대한 그분의 사랑에 찬 추구를 방해하거나 감퇴시키지 못합니다. 시편기자 다윗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시139:5, 7-8).

다윗은 우리가 삶에서 직면하는 가장 높이 오를 때와 가장 낮은 곳에 처할 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내가 복을 많이 받았을 때에는 기쁨으로 마음이 고양됩니다. 다른 경우에는 정죄당하고 하찮은 자로 지옥에서 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내가 어떤 상태에 있든지, 내가 복을 받았다고 느끼든지, 내 상황이 형편없든지 간에 주님, 당신은 그곳에 계십니다. 나는 당신의 수그러들지 않는 사랑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습니다. 쫓아버릴 수 도 없습니다. 내가 얼마나 자격이 없는지 말씀드려도 당신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내가 당신의 진리를 거슬러 죄를 짓고 당신의 은혜를 당연시 받아들이며 불순종 할 때조차도 당신은 멈추지 않고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은 수그러들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의 간증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의 생애를 읽어보면 하나님의 교회를 박멸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을 만납니다. 바울은 미친 사람 마냥 크리스천들을 증오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자를 죽이겠다고 위협했습니다. 대제사장에게서 믿는 자들을 수색할 권한을 받아서 그들의 집으로 쳐들어가 감옥으로 끌어가고자 했습니다.

그가 개종한 후에 바울은 자신이 편견에 차서 맹목적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죽이려던 그렇게 증오에 찬 세월을 지낼 때조차도 하나님을 자신을 사랑하셨다고 증언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요약해서 말하면, “내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을 나를 찾고 계셨다. 결국 말위에 앉아 있는 나를 문자 그대로 떨어뜨려 나뒹굴 때 까지 그분은 사랑으로 계속 나를 찾아오셨다. 그것이 수그러들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바울은 하나님이 그의 모든 높고 낮음을 통해서 끝까지 뜨겁게 사랑하실 것이라고 더욱 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그는 이렇게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제 나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그 무엇도 나를 그분의 사랑으로부터 끊을 수 없다. 악마도, 귀신도, 권세자도, 사람도, 천사도, 아무것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멈추시게 할 수 없다.”

2008년 10월 3일 금요일

사람을 시험하심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대하32:31).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하는데 온 마음을 집중해 버려서 하나님이 사람을 시험하시는 인생의 큰 시험에 대비해 마음을 예비해 두지 않았습니다. 혹시 현재 당신이 당면하고 있는 어려운 시련이나 무거운 짐이 실제로는 당신을 시험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아닐까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가서........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22:1-2). 하나님은 그 심중에 진실로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시기 위해 한 나라 전체를 검증하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하심이라”(신8:2).

역대하 32장 31절에서 우리는 놀라운 일을 봅니다. 하나님이 위대한 왕을 시험하시기 위해 잠시 떠나셨습니다.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

때때로, 주님의 청지기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의롭게 추진하고 있는 동안, 확연히 버림 받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인내의 한계에 다다르도록 시험을 당하고 지옥의 세력과의 싸움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하나님이 복을 주신 모든 사람은 같은 방법으로 시험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이상한 환경에 놓여있습니까? 버려진 것 같고 홀로 있습니까? 예측할 수 없는 적과 승산 없는 싸움을 하고 있습니까? 이 모든 것들이 시험 과정을 가리키는 표시들입니다.

승리하는 것이 항상 바람직하지만, 당신이 실패했다 해도 기억하십시오. 당신이 고독한 싸움에서 승리했든지 패전했든지 그 후에 당신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에 하나님은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께 헌신하는 것이 하나님의 바람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시거나 내버려두시지 않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의 기록에는 아버지께서 우리를 시험하시기 위해 그분의 임재를 거두시는 때가 있다고 밝혀 줍니다. 그리스도 조차도 십자가에서 고독한 순간을 체험하셨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의 복된 구세주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가장 깊이 느끼시고 마음이 움직이셔서 “내가 너를 위해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한다,”고 속삭여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마16:24 참조).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연약하고 허약한 육을 말합니다. 그것을 지고 믿음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그분의 힘이 당신 안에서 완전해 질것입니다. 당신의 자아와 죄의 십자가가 너무 무겁습니까? 그렇다면, 친구여, 당신의 십자가를 지고 계속 따라가십시오. 그분은 이해하시고 무거운 짐을 들어 주시기 위해 당신 곁에 계실 것입니다.

2008년 10월 2일 목요일

그리스도가 당신을 위해 싸워 승리하셨다

최근 몇 달 동안 아직도 죄의 습관에 매여 있는 신도들로부터 애석하고 측은한 편지를 많이 받아 읽었습니다. 고투하고 있는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이렇게 썼습니다. “도박을 끊을 수 없습니다...알콜 중독에 빠져 있습니다....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데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외설물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편지마다 이 사람들은 똑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께 자유하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기도하고 통곡하고 경건한 조언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랫동안 나는 주님께 이 믿는 자들에게 무어라고 답변해야 할지 지혜를 구했습니다. “주님, 당신은 이 자녀들의 삶을 알고 계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헌신되고 성령이 충만한 성도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그들은 당신의 승리를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자유를 모릅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어느 날 나는 자신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포함된 성경 구절을 연구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흠없이 제시하기 위해서, 믿음으로 우리를 의롭다하시기 위해서, 믿음으로 우리를 성결케 하시기 위해서, 믿음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보존하시기 위해서, 우리가 넘어지지 않도록 지켜주신다는 약속이 생각났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옛사람이 믿음으로 십자가에 못박혔으며 또한 믿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진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모든 약속들에 공통적인 구절인 “믿음으로”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이 모든 것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들 고투하고 있는 크리스천의 문제들에 대해 명백하고 유일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들을 속박하고 있는 것의 뿌리 근저에 불신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단순하게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의 의지력으로 승리를 얻고자 애쓰고 있습니까? 당신의 옛 성품으로 전투에 임하고 있습니까? 바울이 지적합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4:4-5).

당신의 승리는 통곡이나 수고를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을 위해 승전하셨다는 믿음을 통해서 와야만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히11:6). 진정으로 바울은 하나님의 약속에 단 하나의 조건이 붙어있다고 말합니다.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골1:23).

그리스도는 온전히 순종하는 아들이 되기 위해 모든 것을 그분의 아버지께 맡겼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하신 그대로 우리도 아버지를 온전히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2008년 10월 1일 수요일

하나님은 어디에 거하시는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사도 요한은 영광의 장엄한 환상을 받았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계21:22-23). 다시 말해서 하늘에 있는 유일한 성전은 예수님 자신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성전이 영광에 싸여 그분의 우편에 앉아 계시는데 지구상에서 주님은 어디에 거하고 계십니까? 하나님 자신이 말씀하셨듯이, “네가 나에게 무슨 집을 지어주겠느냐? 내가 안식할 곳이 어디 있느냐?” 우리가 알듯이 어느 건물도 하나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그분은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에 계시지 않습니다. 뉴욕시의 성 패트릭 성당에 계신 것도 아닙니다. 유럽의 거대한 성당 어느 곳에도 계시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이 아덴의 아레오바고에 서서 말하였듯이,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행17:24). 간단히 말해서,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처소를 어떤 건물 안에서 찾는다면, 어디서도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처소를 찾아내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피조물인 인류의 몸들 속에 거하시고 안식하십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성전이 인간의 몸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3:16).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직접 거하시는 곳, 즉 성전이 됩니다. 이것은 다락방에서 눈앞에 생생하게 실연되었습니다. 성령이 그곳에 있던 제자들에게 내려와 그들을 성령님 자신으로 충만케 하였습니다. 성령은 그들의 성결케 된 몸을 아버지께서 오셔서 거하실 하나님의 성전으로 점유하셨습니다. 성령이 그들의 죄악된 육의 행실을 억제하고 멸하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능력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그들의 몸은 손으로 짓지 않은 처소,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14:23). 거처는 사는 곳, 머무르는 장소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20). 다시 말해서 당신은 하나님께 속해 있고 그분은 당신이 자신의 안식처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자, 이제 이 진리에 대해 당신의 마음을 열고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