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16일 금요일

믿음에 대한 진리

내 아들 하나가 숲속에서 곰덫에 걸려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며 도와달라고 소리치면서 쓰러져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의 아버지로서 아들의 믿음의 본질을 분석해 보기위해 멈추어 설까요? 내가 스스로에게 “내 아들이 내가 와서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고 신뢰할 만큼 나에 대한 믿음이 있을까?” 라고 질문할까요?

아닙니다. 천 번이라도 아닙니다! 나는 아들 곁으로 달려갈 것입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믿음 여부도 아무 상관없습니다. 왜냐하면 다친 아이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나를 움직이는 동기이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믿음이 나의 동기를 유발하지 않습니다. 그가 하는 어떤 행위 때문이 전혀 아니고 그저 단순히 아이에 대한 나의 사랑이 동기입니다.

세상의 어떤 아버지가 단순히 자녀가 아버지에 대한 믿음을 표명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를 피 흘리고 다친 채로 외딴 숲속에 내버려두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도 결코 그분의 자녀가 홀로 고통당하도록 내버려두시지 않을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 연약하다고 해서 그들의 부르짖음에 결코 귀를 막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디모데 후서 2:13).

나의 믿음, 당신의 믿음, 모든 믿음은 우리 천부의 인애와 돌보심에 기초를 두어야합니다. 우리는 우리 아버지의 사랑과 영원한 인자를 기뻐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예레미야 9:24).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를 몹시 사랑하시기에 마치 엄마가 아기의 울음을 예상하듯이 자녀가 부르기 전에 들으십니다. 그것이 바로 다윗이 이렇게 기도했던 이유입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내 소리를 들으소서 여호와여 주의 규례들을 따라 나를 살리소서”(시편 119:149).

그분은 나를 사랑하시고 내 믿음이 연약할 때, 그분으로부터 응답받을 만한 자격이 없을 때, 오로지 그분의 사랑과 인자로 인해 나를 구하러 오십니다.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시편 103:8).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스스로 확신하고 나서부터 가장 큰 평강이 내 삶에 밀려들어왔습니다. 그토록 사랑하시므로 그분은 나를 구하러 오실 것이며 내 인생의 모든 상황에서 적절히 행하실 것입니다. 믿음이 연약하든지 상관없이 그분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며 그 사랑을 방해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