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12일 수요일

순종이 수문을 엽니다

그리스도에 대해서 그분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그분 앞에 놓인 즐거움으로 인해 인내하고 자신의 천부에게 순종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분은 모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인내로 경주했습니다. 수치를 견뎌내고 마음으로 결코 나약해지거나 지치지 않았습니다. 순종의 영광스러운 보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내적 소요에 지칠 만큼 지쳐서 그리스도안에서 약속된 영화로운 부요를 갈구하기 시작해야하지 않을까요? 두려움은 순종을 향한 최고의 동기가 아닙니다. 사랑이 그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주신 위협은 결국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시당했습니다. 귀에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과 그분의 두려운 천둥소리조차도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황금 송아지 주위를 돌며 춤추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에 대한 깊고 내주하는 사랑과 존경만이 그러한 불순종으로부터 그들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하늘을 우리에게 열어주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즐거이 순종하는 것입니다. 모든 죄, 모든 불순종의 행위를 내어드리는 것이 그리스도가 진정 어떤 분인가에 대한 계시를 우리에게 허락해 줍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요한일서 3:6).

우리가 불순종가운데 살아감으로써 그분으로부터 멀어지게 된 것은 아닐까요? 그리스도, 그분이 죄를 미워하심, 그리고 그분의 영광과 자비에 대한 계시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방식대로 사는 것이 아닐까요? 쉽게 말하자면 “불순종 가운데 사는 자는 현실에서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본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한복음 14:21).

사랑하여 순종하는데 대한 보상으로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것 보다 우리가 원하는 더 큰 보상이 있겠습니까? 그토록 큰 계시에 대한 공식이 얼마나 단순한지요! “나에게 순종할 만큼 나를 사랑하여라. 나도 너를 사랑하여 내가 누구인지 너에게 보여주리라!” 당신은 그분에 대해 모두 읽을 수 있고, 그분의 성품, 역사적 배경을 연구할 수 있지만 모든 일에서 그분께 완전히 순종하는 그처럼 단순하고 기본적인 일을 행할 때 까지는 그분을 결코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다나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하늘이 열리고....보리라”(요한복음 1:47, 51).

우리가 항복하고 절대 순종에 우리 자신들을 맡기는 순간, 우리 속사람 안에서 경이로운 치유 능력이 풀려나옵니다. 하나님이나, 지옥,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더 이상 없습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행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이상 없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영이 새로운 빛, 새로운 소망, 큰 기쁨, 영광스러운 평강과 풍성한 믿음으로 우리에게 넘치기 시작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