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1일 목요일

끝까지 굳게 붙들면

하나님께는 가장 작은 불신도 싫어하십니다. 그것은 영혼을 파멸시키는 저주스러운 죄입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며,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는 모든 죄의 근원입니다.

당신은 모든 속세의 소유로부터 완전히 끊어졌고, 예수님의 재림만을 갈망하고 계실 수 있습니다. 당신은 그분의 교회에서 강력한 설교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계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열정적으로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이렇게 기도하지 않는 한 절대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 하나님, 제 속 사람이 이 말씀을 듣게 해 주소서; 저로 하여금 그것을 제 삶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제 생명이 될 것임을 믿게 하소서.” 당신이 듣는 것은 믿음과 화합 되어져야 합니다.

“전파된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을 주지 못한 것은, 그것을 들은 자들이 믿음을 결합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히브리서 4:2). 이 구절이 충분히 이해되도록 설명하자면: “너희가 읽는 것과 듣는 설교가 믿음과 합쳐지지 않는한, 너희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느니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신실했던 것 같이 자기를 세우신 분에게 신실하셨느니라” (히브리서 3:2). 그들의 신실함이 어떠한 방법으로 측정되었을까요? 어떻게 그들이 모든 일에 그토록 신실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의 신실함이 인정되었던 이유는, 천부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을 절대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 말씀 하신 것을 반드시 행하실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실함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지키실 것을 단순히 믿는 것입니다.

이 의미로 보면, 예수님과 모세는 “(그들의) 확신의 시작을 끝까지 확고히 붙들고” (히브리서 3:14)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오르락내리락하거나, 뜨거워졌다 차가워졌다 하는 종류의 믿음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절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향한 확신에 신실하셨듯이 우리의 신실함도 같은 기준으로 측정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집을 다스리는 아들로서 신실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기쁨을 끝까지 굳게 붙들면 우리가 그분의 집이니라” (히브리서 3:6).

우리의 시험이 증가하고 전투가 더욱 치열해질 때 우리 육신이 지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성도들은 두려움과 의심이 침투해 오게끔 허용합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그들 자신을 포기했던 것과 어린아이와도 같았던 믿음을 잃어버렸을 때, 의심이 그들의 마음을 침범하게 됩니다.

제 남은 삶의 길을 내려다 볼 때, 저는 제한된 시간을 봅니다. 그리고 저는 소망으로 기뻐하며 끝까지 굳게 붙들 수 있게 되기를 무엇보다도 더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