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2일 금요일

예사롭지 않은 말씀

최근 성령께서 제게 예사롭지 않은 말씀을 하셨는데, 그것은 제가 별로 듣고 싶어하지 않았던 말씀이었습니다!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주님의 다정하며 사랑스러운 긍휼의 바다에 대해 매우 제한된 시각에 묶여있다. 네가 성령으로 하여금, 용서하고 치유하며, 회복시키는 내 긍휼의 광대함이 드러나도록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네가 많은 죄책감과 비난 그리고 두려움을 통과해야만 했다. 너는 나의 다정함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이 바로 많은 포기와 실패의 근원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죄가 공격해 올 때, 사탄이 홍수처럼 밀려올 때, 당신이 옛적 나쁜 습관이나 죄에 빠질 때, 마귀는 속박을 만들어냅니다. 일단 죄책감이 밀려 들어오고 나면, 두려움이 당신의 마음을 채웁니다. 완전한 패배감과 무력감이 당신의 영혼을 압도합니다. 이 상황에 도달하면 대부분의 성도가 은혜로부터 이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긍휼에 대한 그들의 관점이 너무도 미약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당신에게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네 한계에 달했어. 너는 네 죄를 매번 고백했었지. 네가 빛을 대적해서 죄를 범했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이 너를 용서해 줄 리가 만무해. 네가 또 한 번 돌이켜서 죄를 고백한다 해도, 돌아서면 다시 똑같은 죄를 짓게 될 거야. 그러니 이제 포기해라!”

마귀는 당신이 하나님의 긍휼의 바다를 보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는 당신이 아주 조금밖에 보지 못하기를 원합니다! 용서와 회복의, 그리스도의 사랑의 능력에 대한 우리의 무지 때문에 우리는 파멸했습니다. 우리가 제한된 시각에 처참하게 묶여있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향한 긍휼도 고갈되었습니다. 우리의 영안은 다정하신 우리 아버지의 끝없는 긍휼에 아직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긍휼에 대한 거짓되고 제한된 관점에 너무도 묶여있기 때문에, 야고보가 이렇게 말한 것을 믿거나 받아들이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께서는 지극히 동정심이 많으시며 친절한 긍휼을 베푸는 분이시니라” (야고보서 11:5).

이 구절은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와 상처에 쉽게 괴로워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고통과 실패를 감지하시고, 항상 친절하시며 우리를 향한 동정심을 품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적이었을 때에도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그분께 죄를 범할 때에도, 그분은 우리를 신속히 도와주시고 회복시켜 주시며 용서해 주십니다.”

긍휼이라는 단어의 뜻은 “누군가의 능력 아래서 친절과 동정심으로 범죄자를 다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범할 때마다 우리를 지옥으로 떨어뜨릴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그분의 통제 아래 두셨고 그분 뜻대로 우리에게 무엇이든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가장 실망하게 한 자들을 향해서도 기꺼이 동정심과 사랑과 친절의 다정한 마음을 품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