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4일 목요일

왜곡된 우선순위

기도를 등한시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우선순위가 왜곡되어 있습니다. 많은 성도는, 만일 시간이 나게 되면 그때 기도하리라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매주 세차하고, 집 청소하고, 친구들 방문하고, 외식하고, 쇼핑하고, 스포츠 게임을 시청하느라 그리스도를 찾는 일이 덜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기도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하지 않습니다.

노아 시대 사람들과 롯 시대 사람들 사이에는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가장 우선순위는 먹고 마시고, 사고팔며, 시집 장가가고, 가족을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메시지를 들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심판이 임했을 때, 아무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수세기가 지나는 동안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은, 그들의 우선순위 명단 가장 밑에 계시고, 수입, 미래 삶의 보장, 쾌락, 가족 등은 명단 꼭대기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는 당신 삶의 찌꺼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기도 제목들을 빨리 던져 올릴 수 있을 만큼만의 잠깐 짬 내는 시간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런 것은 기도의 헌신이 아닙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이렇게 썼습니다: “너희가 눈먼 것을 생물로 드리면 그것이 악하지 아니하냐? 너희가 다리 저는 것과 병든 것을 드리면 그것이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네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말라기 1:8).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은 이것입니다. “너희는 아무 보잘것없는 농장 동물들을 하나님 전에 드리려고 가져오는구나—무관심하고 아무 배려 없는, 새것이 아닌 헌것으로 말이다. 하물며 너희 총독에게 그런 선물을 해 보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아라!”

하나님께서는 백성이 그분께 드려지는 희생물을 고를 때 그들의 가축을 조심스럽게 살펴보고 잘 점검해서, 가장 완벽한 표본만을 고를 것을 기대하셨습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서 똑같은 것을 기대하십니다. 그분은 서둘러서 억지로 짜낸 시간이 아닌,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원하십니다. 우리는 그러한 시간을 내어 드리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야만 합니다!

한번은 제가 미국에서 가장 큰 교회 중 한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분은 제가 보아온 사람 중에서 가장 분주한 사역자였습니다. 그는 사과도 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기도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 말의 진정한 의미는 이렇습니다. “저는 기도를 전혀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교회를 방문했을 때 저는 회중 가운데서 성령의 임재를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설교했던 교회들 중 가장 메마른 교회였습니다. 담임 목사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에 무슨 생명이 있겠습니까?

자신의 삶 속에서 가족, 직업, 여가생활,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기도가 최우선이 되지 않는 한, 어떤 그리스도인도 기도하기 위한 시간을 아껴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지 않는 한 그의 제물은 변질된 것입니다!